큰 틀의 기준을 잡고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디지털 온리에서 태어난 자중감 있는 현재적 세계인‘. 이것이 잘파세대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수많은 특징이 있겠지만, 크게 보면 디지털 온리, 자중감, 현재적 감각, 세계인, 이렇게 4가지 특징으로 수렴할 수가 있어요. 잘파세대가 Z세대와알파세대를 합한 말인 만큼 이 두 세대의 차이도 있을 수 있는데,
결이나 방향성의 차이가 아니라 이 4가지 특징의 농도차라고 할수 있습니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지정학적 경계가 약하기 때문에 국가 구분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덜합니다. 메타버스에서 다른 나라 친구들을 만나고 틱톡이나 릴스로 서구권의 최신 유행을 실시간으로 공유합니다. 반대로 외국 친구들은 K-POP 소식을 실시간으로 알기도 하고요 그래서 친구나 인간관계, 개념이나 사고가 글로벌합니다. 다양한 가치에도 열려 있는 편이죠. 성정체성이라든가 종교에대한 태도, 이념의 차이 같은 부분에 대해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편입니다.

스마트폰 네이티브로서의 잘파세대잘파Z+alpha 세대는 Z세대와 알파세대를 묶어서 이르는 말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MZ라는 용어가 M세대와 2세대를 묶어서 ‘
르는 것과 마찬가지인 호칭인 거죠. 사실 MZ라는 용어가 젊은 사람들에 대한 대명사로 쓰이고 있는데, 최근 들어 이 중 M세대가결코 젊은 사람들이 아님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코로나로 인한 셧다운은 오프라인 만남의 기회를 빼앗았는데, 이미 사회화 경험이 있는 세대에게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되는 답답함을 그저 참아야 하는 기간이었지만, 성장기에 이시기를 거친 세대에게는 소통과 친화 능력에 대한 경험을 상당 부분 앗아간 사건이었습니다. 원래 외향적인 사람은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하겠지만, 내향적인 사람은 사회화를 연습할 기회를 많이잃게 된 셈이에요.

시인 나희덕 씨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하기도 했어요.
"궁극적 목표는 임시적 목표는 세운 일이 없다. 목표를 세워봤자 그대로 된 적이 없고 늘 다른 돌발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도 몇 등을 하겠다. 이걸 갖고 싶다, 무엇을 이루겠다하는 생각이 없었다. 눈앞에 있는 한순간 한순간을 최선을 다해살아낼 뿐이다. 외부적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내면을 잘 살펴서 삶의 방향이나 태도를 돌아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잘파세대는 거창한 미래를 꿈꾸고 그 미래를 향해 매진하자는말보다 이렇게 ‘큰 목표를 세우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자‘
는 말에 더 공감하는 거예요.

우리에게 전달되는 정보의 형태가 짧아지고 있어요. 우선 멀쩡한 말을 자꾸 줄여서 쓰는 경향이 생겼죠. 그래서 예능에서는 ‘신조어 맞추기‘라고 해서 제시하는 줄임말이 원래 무슨 뜻인지 맞추는 퀴즈가 종종 나옵니다. <1박 2일>이나 <삼시세끼>로 유명한 나영석 PD가 론칭한 <뿅뿅 지구오락실>이라는 예능은 4명의 젊은여성 출연자에게 나PD와 제작진이 쩔쩔매는 구도로 진행됩니다.
그런 구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에피소드가 ‘알잘딱깔센‘ 에피소드예요. 알잘딱깔센은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라는 뜻의 줄임말입니다. <뽕뽕 지구오락실>의 제작진이 절대음감이라는게임을 하면서 이 키워드를 제시했는데 ‘알잘깔딱센‘이라고 잘못낸 거예요. 그것을 출연자 중 한 명인 걸그룹 아이브의 멤버 2003년생 안유진이 "알잘딱깔센 아닌가요? 땡!"하고 지적한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차이점이 있는데 텍스트로 볼 때는 조금 더 머리를 쓰고 생각하며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비해, 영상으로 정보를대할 때는 보통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영상을 보면서 음성과 음성 사이에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하거든요. 그리고최근의 유튜브 영상은 중간에 늘어지지 않도록 말의 문장과 문장사이를 매우 빠르게 이어지게 하기도 하고요. 미국 신경심리학자매리언 울프는 <책 읽는 뇌》에서 읽는 능력‘이 우리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 말하며 "독서는 뇌가 새로운 것을 배워 스스로 재편성하는 과정으로, 독서의 핵심은 사색하는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잘파세대의 정보 습득 방법은 ‘읽기‘보다는 ‘보기‘ 입니다. 그리고 그런 정보조차도 길면 안 돼요. 유튜브 영상도 8분짜리를 보는것이 아니라 30초짜리 쇼츠나 릴스로 봅니다. 그러다 보니 정보에 기승전결이 없어요. 논리적 인과를 만들거나 스토리를 만들 시간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 냅다 춤을 추는 거죠. 개와 고양이 영상,
아기나 동물의 귀여운 영상이나 사진은 특별한 서사를 만들 필요가 없어요. 언어가 필요 없는 귀여운 장면 하나만 있으면 전 세계적으로 ‘좋아요‘를 받을 수 있어요.

진을 공유했습니다. 그런데 단톡방의 다른 멤버들이 ‘뭐야?‘, ‘왜?‘
같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예요.
알파세대인 아이와 대화를 하다가 아이가 갑자기 맥락 없이 말을 바꾼다며 화내는 부모가 있는데, 그 아이의 머릿속에는 나름의연결과정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런 과정을 일일이 공유하지 않을 뿐이지요. 그리고 과정을 공유한다고 해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연결의 고리가 주제가 아닌 소재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쇼츠나 릴스의 영상이 그렇듯 말이죠.

<사피엔스>로 유명한 세계적인 석학 유발 하라리가 2016년에내한했을 때 기자간담회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습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저도 몰라요.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있죠.
부모나 선생님이 지금 아이에게 하는 충고는 아이가 성인이 됐을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에요. 2050년대에는선생님이나 연장자로부터 배운 걸로는 인간 생활을 하기가 불가능한 역사상 첫 사례로 기록될 거예요."

에 쓸모 있는 것을 배우거나 한 적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노인들에게 무엇인가를 배운다거나 큰 충고를 받아들일 준비가 그다지되어 있지 않다는 거죠. 하지만 존경심이 없다고 노인을 멸시한다거나 하는 차원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잘파세대를 키우고경제적으로 보살펴 주는 사람은 할아버지, 할머니이기 때문에 잘파세대가 노인들에게 가지는 애정은 누구보다 강할 수 있어요. 잘파세대 배우 한소희 씨는 SNS에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를 ‘나의전부‘라고 표현하기도 했죠.
X세대만 해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명절 때나 만나는 존재이기때문에 노인들과의 교감이 크지 않거든요. 그런데 잘파세대의 부모인 X세대나 M세대는 아예 잘파세대의 할아버지, 할머니(때로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같은 아파트에 살며 자녀의 양육을 함께한 사람들이 많습니다.(잘파세대의 부모는 이전 세대에 비해 맞벌이하는 비중이 높아서 조부모가 육아를 대신한 사람들이 꽤 많거든요.) 그런 면에서 보면 잘파세대는 노인을 대하는 데 서툰 X세대

비혼주의를 선언한 잘파세대의 이모나 삼촌은, 말하자면 자기아이를 가지기는 부담스럽고 대신 조카들을 보면서 대리만족을느낍니다. 그러다 보니 조카를 끔찍하게 아끼고요. 육아에 대한책임은 없지만 가끔 육아 체험을 할 수 있는 정도면 환영이죠. (고양이나 강아지를 기르고 싶어도 여건상 기르지 못하니 유튜브를 보며 후원하는 랜선 집사도 있잖아요.) 이 사람들은 돈을 벌지만, 그돈을 쓸 곳이 자기 자신과 조카들 정도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에어팟을 낀다는 건 음악을 듣거나, 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에어팟을 끼고 있다는 것은 ‘지금-여기‘의 맥락에서 벗어나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버스안에서, 길을 걸으면서, 카페에서, 아니면 혼자 있을 때 에어팟을 끼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여러 사람이 같이 있는 상황에서 에어팟을 끼고 있다는 건, 이 사람들 속에자신이 속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표시입니다. 그러니 일반적인 직장인이라면 회사에서 에어팟을 끼고 일하는 신입 사원이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니까 에어팟은상징일뿐, 지금 우리가 같은 조직의 성공을위해 개인적인 니즈를 희생하면서 같이 으쌰으쌰 하는 사람인가아닌가의 문제라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잘파세대는 조직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아요. 그전까지 젊은 세대들이 칼퇴를 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표명할 때는 조직과의 투쟁인 측면이 있었습니다. 눈치를 보면서도 칼퇴를 하면서 자신의 권리를 찾아가는 건데요, 이런 칼퇴는 사실 조직의 흐름을 인식한다는 면에서 어쨌거나 조직이라는 거대한 가치를 인정하는 거거든요. 하지만 잘파세대의 칼퇴에는 조직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없습니다. 자신의 스케줄에 6시 퇴근이 예정되어 있으니까 퇴근하는 거예요.

잘파세대는 환경파괴로 인한 이상기온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세대이기도 해서 누구보다도 환경을 지키기 위한 공익캠페인에 앞장서기도 합니다. 산책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같은 활동에적극적이고 ESG(Environment 환경, Social 사회, Goverance 지배 구조를 뜻하는 약어로, 기업의 사회 및 환경적 활동까지 고려하여기업의 가치를 측정하는 지표)를 실천하는 기업의 제품을 사용하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본 적도 없는 북극곰의 어려움에 공감해 후원을 하기도 하고요.

진정한 개인주의는 연대를 통해 그 힘을 얻는다는 것을 알기때문에, 아이팟을 끼고 일하니 매우 비사교적이고 자기만의 동굴에 침잠할 것이라는 편견과는 다르게 사교적인 거예요. 잘파세대는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워터밤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즐겁게 축제를 즐기고, 처음 만나는 사람과 MBTI를 이야기하며 무리 없이 대화를 나눕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경계하며쉽사리 대화하지 못하고 자신의 동료(혹은 패거리)만을 챙기는 것은 X세대 이상의 세대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애국심에 호소하는 한국제품 소비 전략은 잘파세대에게 먹히지 않습니다. 한국 것이니까 한국인인 우리가 의식적으로 써야 한다는 식의 손쉬운 홍보문구는 40~50대 이상에게는 아직은 먹힐지 모르지만, 세계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갖춘 잘파세대에게는그다지 큰 효과가 없어요. 그런 면에서 잘파세대가 갤럭시를 안쓰고 아이폰을 쓰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위기에 대해서 삼성전자 내의 위기의식은 무척 나이브합니다. 2023년 8월 갤럭시 언팩 후에 가진 내부 행사에서한 직원이 "아빠가 삼성 다닌다니까 저희 딸은 갤럭시를 쓰는데친구들은 다 아이폰을 쓴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생각하시나요?" 하고 묻자, 스마트폰과 가전을 담당하는 DX 부문최고 경영진을 포함한 임원들 사이에서 나온 대답이 "아이폰 인기는 10대들의 막연한 선망이다. 성인이 되면 갤럭시를 쓰는 만큼아직 희망이 있다"였습니다." 이 대답은 사내 익명 게시판에서

잘파세대의 감성은 개인주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수많은 연결을 원하고 있어요. 같이 애플을 쓰고, 에어드롭(애플 제품 간에파일을 전송할 수 있는 기능)으로 그 자리에서 콘텐츠를 주고받고아이메시지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애플을 쓴다는 동질감에 동참

이는 미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미국 10대들 사이에는갤럭시 폰을 비롯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이용자를 ‘녹색 말풍선‘
이라고 부르며 "녹색 말풍선을 쓰는 남자와는 데이트하지 마Neverdate a green texter"라는 말까지 유행처럼 돈다고 합니다. 아이폰 이용자끼리는 문자가 파란색 말풍선으로 뜨고, 안드로이드 이용자의 문자는 초록색 말풍선으로 뜨거든요.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어테인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10대의 83%가 애플 아이폰을 가지고있다고 답했는데, 갤럭시 이용자의 비율은 10%에 불과했어요."
그래서인지 미국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아이폰 사용을 전제로 숙제를 내거나 공지사항을 전달하는 일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심지어 IT기업에서조차 이런 촌스런 전략을 많이 가지고 나옵니다. 네이버가 생성형AI를 발표하면서 Chat GPT에 한참 뒤진 것을 만회하기 위해서 강조한 부분이 새로운 기능이나 차별화된 성능이 아니었어요. ‘우리 것이라서 우리한테 잘 맞을 테니 이걸 써서 외세의 침입을 막자‘는 호소였죠. 흥선대원군시절이 떠오릅니다. 실패로 끝난 쇄국정책 말입니다. 우리 것이니까 우리가 애용하자는 애국주의 마케팅은 사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불패신화를 자랑하는 아주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이었지만, 이제 세계시민인 잘파세대가 점점 사회 전면으로 나오면서 효과가바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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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후반기에 ‘나‘를 알고자 하고 나답게 살아보고자 하는 열망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나‘
로 세상에 나왔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왔지만, 결국엔 ‘나‘라는 존재를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인지 인생 후반기에는 번잡함을 피해 고요한 곳에 홀로 머물고 싶기도 하고, 철학이나 영성에 관한 책들이 눈에자주 들어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사유와 성찰로 눈길이 향합니다.

좀 거창한 은유를 들자면 이것은 ‘영웅의 귀환‘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트로이 전쟁을 끝낸 오디세우스가 온갖 모험을 겪고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오듯이 우리 모두는 본래의 ‘집‘으로 귀환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생 후반기를 지나는 중인 많은 사람들이 자아 찾기, 명상 등의 프로그램을 찾아다니는 것도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이나 심신의 안정을 위해서인 것 같지만 깊이들여다보면 ‘나‘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할 수 있습니다.
인생 후반기에 ‘나‘를 찾는 여정은 한마디로 말하면 ‘변화‘를 위한 모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톨릭 프란치스코회 리처드로어 신부는 인생 후반전의 과제를 배움이 아니라 지움이라고 말했습니다. 과거에 배운 것들로 만들어진 습관과 패턴들이 현재 우

푸코가 보기에 수도승들의 독서는 자기 배려, 자기 돌봄을 위한테크닉이고 실존의 기술이었습니다. 수도승들은 경청하고, 읽고,
쓰고, 금욕적 수행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깊은 이해와 묵상을 통해 통찰력을 얻었고, 때로는 권위 있는스승에게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갈등, 환상 등을 털어놓음으로써 자기 돌봄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영혼을 돌보고 가꾸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푸코가 지적한 대로 이런전통은 근대 데카르트 이후 중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조너선 갓셜은 『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이라는책에서 이야기꾼은 ‘구슬림‘이 목적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상대방의 마음을 얻으려고 재미와 공감이라는 양념을 사용하여 이야기를 만든다고 말합니다. 이 구슬림이 좋은 관계와 치유를 가져오는
‘지혜‘가 될 것인지, 상대방을 내 편으로 끌어들여 제 욕망을 채우려는 ‘사리사욕‘이 될 것인지는 이야기꾼의 인성에 달려 있겠지요.
분명한 것은 지혜로운 이야기꾼 곁에는 늘 사람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살아갈 힘과용기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야기꾼은 가족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습니다.

C. S. 루이스의 말이 적절하게 인용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던 어떤 꽃의 향기, 우리가 듣지 못했던어떤 곡조의 울림,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어떤 나라의소식을 감지하는 무언가가 내면에 존재한다."

리처드 로어 신부는 인생 후반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동안 배워 알고 있는 것을 지우는 작업이라고 말합니다. 변화는 배움보다 배운 것을 지움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세계적으로 알려진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얼마 전 방송사 인터뷰에서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왜 역사를 배워야 하나요?"라고 묻는 아나운서에게 그는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역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과거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에 예속되고 지배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해방되기위해서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과거로부터 답습된 것들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아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이기고 지배하려 했던가요.

인생 후반전은 배우기보다 지우기라는 말의 뜻은 지나간 과거의 일이 더 이상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기쁨을 앗아가지 못하도록 하면서, 타인들의 시선이나 세상의 기준에 연연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전직 사제였던 이반 일리치가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에서 한 말이 귀에 쟁쟁합니다.
"우리 인생의 3분의 1은 무엇을 처방받아야 할지 배우고, 나머지3분의 2는 자신의 습관을 관리하는 저명한 전문가의 고객으로살다 생을 마친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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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키시 주술상이Power Figure>의 배는 임신한 것처럼 부풀어 있고, 팔과 가슴은 신성한 기름을 발라 매끈하며, 털과 깃털로 된 머리 장식, 방패형의 볼록한 얼굴을 하고 스프링 같은 목 위에 거대한 머리가 균형을 잡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 조각상의 탄생에 한몫을 했다.
로들은 조각상을 의뢰했고 마을 사람들은 신중하게 고른 나무를 베어 왔다. 우두머리 조각공은 <은키시 주술상>의 형태를 만들었고 ‘응강가Nganga‘라고 부르는 치유사 역할의 무당은 ‘비심바Bishimba‘라고 불리는 약재와 주술적인 물질을 주입했다. 완성된조각상은 사람의 손으로 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야자 섬유로 만든 끈을 조각상의 손목에고정해 긴 막대기로 옮겨졌다. 그렇게 은키시는 신성한 거처로행진했고 마을의 남자 중 한 명이 언제나 그 곁을 지켰다. 그 남자는 꿈이나 영매를 통해 지역 사회에 관한 중요한 메시지와 경고를 받았다.

박력 넘치는 조각상의 주위를 돌며 나는 예술가가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사실에 감탄할 뿐이다. 예술의 위대한 기적이 행해졌고 아름다움의 새로운 모습이 세상에 더해졌다. 감탄스러울 뿐만 아니라 감동적이다. 눈을 지그시 감은 <은키시 주술상>은 다가오는 위험한 세력들에 대적하는 의지를 불러일으키려는 듯이 내면에 몰두하는 강력한 기운을 뿜는다. 이 조각상은 폭력, 불행, 질병 등 끊이지 않는 일상적인 고난으로부터 송예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패배가 정해진 싸움이었겠지만 그 시도만큼은 심금을 울린다. 엄청난 압박의 손아귀를 뿌리치기 위해서는 이렇듯 웅장한 모습이어야 했을 것이다.

내가 갈팡질팡하며 설명하는 동안 남자는 그런 이야기에 굶주린 듯 귀를 기울인다. 보기 드문 사람이다. 아는 척을 하거나비웃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수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들의 충돌을 반기는 사람. 나는 온종일 감탄했던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 남자의 개방적인 태도에 더 탄복한다. 남자는 나에게 감사를 표한 후 떠났고 그때부터 나는 그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습관이 생겼다.그는 듣는 사람이었다. 대부분은 말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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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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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면 될까? 너나 내가 기계를 만든다면 논리적으로 접근하겠지. 최소한의 부품을 써서 깔끔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지만 살아 있는 자연은 전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아. 겹치는 것도 엄청나게 많고, 빙빙 돌고, 주제하나를 놓고 수백만 개의 변형을 만들어내, 그래서 4분의 3쯤 잘못돼도 생명체는 죽질 않아. 그 결과로 생기는 게 골드버그 장치같은 건데, 무지 튼튼한 골드버그 장치인 거지. 상상할 수 없을만큼 괴상하고 엄청나게 여러 겹을 가진 물건이 탄생하는 거야.

글자 그대로 상상이 불가능한 물건 무슨 말이냐면 우리 두뇌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하고 엄청난 것이 작은 세포 안에숨겨져 있다는 얘기야. 난 그게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했어." 톰은 ‘재미있다‘는 말을 여기저기에 붙였다.

"이봐, 형." 언젠가 내가 이렇게 물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런 일이라는 건 암을 뜻했다. 형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흠, 모를 일이지. 내가 하는 일, 그러니까 생물 수학이 웃기는 게가끔은 나도 장외 홈런을 치기도 한다는 사실이지. 생각해보면대단한 일이야. 멋들어진 순수 수학뿐 아니라 우리가 관찰과 본능을 통해 알고 있는 것들이 실제로 자연을 정확하게 설명하고있다는 걸 깨달을 때가 있거든. 믿기 힘든 일이지. 하지만 일을하다 보면 많은 순간 진심으로 겸손한 마음이 들어, 연조직 육종으로 말하자면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이제 곧 말을 못 하게될거야. 하지만 행복해 여러 가지로 운이좋았지. 가족, 크리스타를 잘 돌봐줘. 수학을 끝내지 못한 건 후회가 돼. 포기하지는 않을 거야. 넌 걱정 안 해. 훌륭한 녀석. 사랑해. 나도 괜찮은 사람으로 산 거 같아. 잠들었는데 그사이에 누가비디오를 대여점에 돌려줘버렸어. 누구나 고통을 겪지, 내 차례야. 누구나 죽어, 내 차례고, 고통을 피하는 약을 먹고 싶기도 하고 먹고싶지 않기도 해. 죽는 건 상관없어. 다만 고통을 겪고 싶진 않아, 모두들 늙어가는 걸 보고 싶은데…. 크리스타를 행복하게 해줘. 행복한 추억이 많아. 너랑 이야기한 것도 좋은 추억이야 영화를 보다 잠이 들었는데 다 끝내지 않은 비디오를 누군가가 돌려줘버린 느낌이야.

형의 아담한 입원실은 대체로 명랑한 분위기였다(사실 형은여러 병실을 전전했지만 내 기억에는 모두 하나의 병실로 뭉뚱그려져남아 있다). 검소한 방이었다. 십자말풀이, 신문, 야구 경기를 중계하는 텔레비전, 책을 읽어주는 소리, 점심 배달 주문. 형은 투중에도 안절부절못하지 않았다. 새 종교를 찾지 않았고 자기가 늘 좋아했던 것들을 계속 좋아했다. 그 덕분에 나는 형이 좋아했던 것들에서 뭐랄까, 후광이 비치는 느낌을 받았다. 함께 보던 야구 경기들은 좋은 경기들이었고 책들은 좋은 책들이었으며 병실을 찾아온 친구들은 좋은 순례자들이었다. 모든 게 단순했고, 모든 게 포옹 같았다.

그날도 그런 순간 중 하나였다. 동이 트기 시작하는 새벽녘이었을 것이다. 나와 함께 형의 침대 옆에 앉아 있던 어머니는 모든 것을 마치 처음인 것처럼 바라봤다. 어머니는 잠이 든 아들을보고, 나를 보고, 새벽빛을 보고, 아픈 몸을 보고, 그 끔찍함을 보고, 그 우아함을 보았다. "우리 좀 봐." 어머니가 말했다. "봐, 지금 우리가 바로 옛 거장들이 그렸던 그런 그림이잖아."
몇 달 후, 우리는 필라델피아에 사는 어머니의 네 형제자매를 찾아갔다. 스물여섯 살짜리 아들을 땅에 묻은 후에 자신의 형제자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혹은 되지 않는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 짐작이 갈 것이다. 시간을 보내다가 어머니가 좀 더 단순하고 조용한 곳으로가자고 제안했고 우리 두 사람은 자리에서 슬쩍 빠져나왔다. 차창문 밖으로 평범한 도시의 삶이 흘러가고 있었다. 거리는 조깅하는 사람,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을 비롯해서 누군가에게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일이 벌어졌다고 한들 세상이 멈추는 일은 없으리라는 증거들로 넘쳐났다. 우리는 벤 프랭클린 파크웨이를 벗어나 미술관 앞에 차를 세웠다.

이런 테마의 장면을 ‘경배Adoration‘라고 부르는데 나는 그 아름다운 단어를 마음에 품었다. 그런 순간에 생겨나는 애정 어린 숭배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참 유용한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미지 앞에서 우리는 말문을 잃고 말랑말랑해진다. 뒤이어강렬하고 명백하지만 일상생활의 소란 속에서는 약하게밖에 느껴지지 않던 무엇인가가 우리의 안으로 침투한다. 경배하는 대상에 대한 설명은 필요 없다. 맥락을 더하는 것은 이 수수께끼같지 않은 수수께끼의 명백한 의미를 흐릴 뿐이다. 누구나 자고있는 아이나 연인, 떠오르는 태양 혹은 어쩌면 성스러운 유물이나 죽은 지 오래된 이탈리아인이 곱게 그려낸 그림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형이 두 손을 꼭 쥐고 용감하게 고통을 참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그 느낌 말고는 다른 감정이거의 들지 않았다. 기쁨의 별에서 특별한 종류의 선명한 빛이 나오는 듯했다. 옛 거장의 그림들에서 볼 수 있는 선명함과 같은것이었다

매우 아름답지만 당돌하리만치 죽은 게 확실한 젊은이를그의 어머니가 온몸으로 받치고 있는 장면이다. 마치 아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그를 껴안고 있는 어머니를 그린 이 그림은 ‘통곡amentation‘ 혹은 ‘피에타Picti‘라고 부르는 장르에 속한다. 어머니는 늘 잘 울었다. 결혼식에서나 영화관에서나 눈물을 흘리곤 하는 사람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어깨가 흔들리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가 심장이 부서지는 동시에 충만해져서 그렇게 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그림이 어머니 안의 사랑을 깨워서 위안과 고통 둘 다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경배‘를 할 때 아름다움을 이해한다. ‘통곡‘을 할 때 ‘삶은 고통이다‘라는 오래된 격언에 담긴 지혜의 의미를 깨닫는다. 위대한 그림은 거대한 바위처럼 보일 때가있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냉혹하고 직접적이며 가슴을 저미는 바위 같은 현실 말이다.

내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모든 의미에서 어디로 갈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로 미드타운의 분주한 행인들 틈에 섞였다. 운 좋게 얻은 전도유망한 직장이 있는 마천루의 사무실로는더 이상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세상 속에서 앞으로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종류의 일은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거기서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움직이고 싶지가 않았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는 침묵 속에서 빙빙돌고, 서성거리고, 다시 돌아가고, 교감하고, 눈을 들어 아름다운것들을 보면서 슬픔과 달콤함만을 느끼는 것이 허락되었다.
지친 승객들을 가득 태우고 브루클린을 향해 달리는 지하철의 흔들림에 몸을 맡겼다. 그러다 한 생각이 머리 속에서 형태를갖추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나는 뉴욕의 훌륭한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눈여겨봐왔다. 보이지 않는 사무실에서 일하는큐레이터들이 아니라 구석마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서 있는 경비원들 말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되면 어떨까? 해결책이 이렇게 간단해도 되는 것일까?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세상에서 빠져나가 온종일 오로지 아름답기만 한 세상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속임수가 과연 가능한 것일까?

이집트인들은 시간에 대해 우리와는 다른 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시간을 ‘네헤Neheh‘, 즉 ‘수백만 년간‘이라고 불렀고 그것의 본질은 화살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원과 같은순환이었다. 해가 뜨고, 지고, 또 뜬다. 나일강은 범람하고, 물러났다가, 또다시 범람한다. 별들은 한자리에 선 관찰자의 주위를절대적인 규칙에 따라 회전하며 거대한 시간의 바퀴 또한 망자들을 처분하고, 새로 태어난 이들을 성숙과 숙성을 겪게 해 죽음으로 안내한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흐르지만 실제로 변하는 것은 없다. 이집트인들에게 이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물의 본질로여겨졌고, 이런 사고방식은 사후 세계로까지 확장해 메트에 전시된 인물상들의 끝없는 노동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다. ‘이렇게 뛰어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내가 잘하고 있다는 거야!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내 이름을 알고 있어! 나는 중요하고 존재감 있는 자리의 명함을 지니고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만 계속하면 반드시 그런 사람이 될 거야!‘
이 달갑지 않은 역설을 직시하는 데는 거의 3년이 걸렸다. 내가 만약 덜 ‘대단한‘ 일을 하고 있었더라면 그동안 틈틈이 내 생각들을 흐릿하게나마 적어두었을테고, 영감을 주는 주제가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과감히 도전해 글을 써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도리어 이런 빅리그였기에 내 생각에 스스로 족쇄를 채웠고야망은 이상하리만치 줄어들었다. 나는 평론 한 마디」라는 섹션에 들어가는 한 단락짜리 서평을 쓰는 데도 스스로가 아닌 목소리를 사용하고, 내 것이 아닌 권위를 주장하고, 정말 그렇게느끼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의견들을 피력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거북이처럼 흐르는 파수꾼의 시간에 굴복한 것 같다. 나는 이 시간을 소비할 수 없다. 그것을 채울수도, 죽일 수도, 더 작은 조각들로 쪼갤 수도 없다. 이상하게 한두 시간 동안이라면 고통스러울 일도 아주 다량으로 겪다보면견디기가 수월해진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일이 끝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나는 사치스러운 초연함으로 시간이 한가히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구식의, 어쩌면 귀족적이기까지할 삶에 적응해버렸다.

멜로디를 뽑아낸다. 음악은 알 수 없는 리듬을 따라 내가 예상하는 음계에서 항상 조금 위나 아래에 있는 음들로 이어진다. 나는이것이 선입견을 버리고 일어나는 일들을 그대로 흡수할 때 비로소 할 수 있는 종류의 경험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연주자가 마침내 손을 멈췄을 때는 아마 1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을테지만 수많은 디테일로 채워진 그 연주를 듣는 동안 마치 수천번의 붓놀림으로 채운 그림이 순간순간 공중에 걸려 있는 듯했다. 나는 겸손해지는 것을 느낀다. 세상을 탐험해볼 자격만을 간신히 갖춘 갓난아기가 된 기분이다.

곽희는 풍경화가 "일상 세계의 굴레와 족쇄"로부터 "두루미의 비행과 원숭이의 울음소리가 우리의 가까운 벗이 되는 곳으로 도피할 수 있게 한다는 글을 남겼다. 하지만 반드시 글자 그대로 자연 속이라고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그림 안에있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자연과 작가의 마음이 적절히 어우러

시간이 흐르면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나만의 방식을 갖추게됐다. 우선 작품에서 교과서를 쓰는 사람들이 솔깃해할 만한 대단한 특이점을 곧바로 찾아내고 싶은 유혹을 떨쳐낸다. 뚜렷한특징들을 찾는 데 정신을 팔면 작품의 나머지 대부분을 무시하기 십상이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가 그린 초상화가 아름다운 까닭은 그의 천재성을 반영한 특징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색채와형태, 인물의 얼굴, 물결처럼 굽실거리는 머리카락 등이 아름답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이 다양하고 매력적인 세상의 속성들이 훌륭한 표현 수단 안에 모아졌기 때문이다. 어느 예술과의 만남에서든 첫 단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지켜봐야 한다. 자신의 눈에게 작품의 모든 것을 흡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건 좋다‘, ‘이건 나쁘다‘ 또는 ‘이건 가, 나, 다를 의미하는 바로크 시대 그림이다‘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상적으로는 처음 1분 동안은 아무런 생각도 해선 안 된다. 예술이 우리에게 힘을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만약 무언가가 웃기는지 알고 싶다면 그것이 우리를 웃게 만드는지 확인하면 된다. 어떤 그림이 아름다운지 알고 싶다면 그림을 바라볼 때 우리 안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확인하면된다. 웃음만큼 확실하지만 대부분은 좀 더 조용하고 주춤거리며 나오는 반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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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이나 슬픔 없이 사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갈등이 고도 갈등으로 변하면 마음의 집을 태워버립니다. 당장 원하는 대로 되고 짜릿한 도파민이 분출된다고 해도 곧 양육권 분쟁, 무례한 방문, 폭력, 비방전 등이 뒤를 잇습니다. 고도 갈등에 승자는 없어요.

"저는 옳고 그름보다 무엇이 더 생산적인 방법일까로 관심을 옮겼습니다. 40년의 중재 경험에 따르면 내 관점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었어요

그는 질문을 통해 각자 불만에 가려 보지 못하던 소중한 것을 대면하도록 도와준다. 냄비를 서로 가져야겠다고 싸우면 그 냄비가 왜 중요한지를 질문한다. 돈 때문에 양보 없이 싸우는 것 같지만 그 액수의 의미를 파고들어 가면 각자의 고통과 소망이 보인다. 그리고 눈을 감고 10년 후 각자가 어떻게 살아갈지 상상해 보라고 한다.

최고의 해법은 경청입니다. 게리 프리드먼이 제게 그러더군요. 남의 말을 듣는 것과 듣는 척 연기하는 것은 다르다고. 사람들은 남에게 이해받기를 너무나 갈망합니다. 상대가 내 말을 듣는다는 느낌을 받으면 마법이 일어나요. 스스로 모순을 인정하기까지 하죠.

타르 웅덩이를 빠져나오려면 진짜 들어야 해요. 비록 사실과 다른 말을 하더라도 정성을 다해 들어주는 것만으로 갈등의 악순환을 멈출 수 있습니다.

착각입니다.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생각에는 ‘내가 옳고 당신은 그르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늘 내가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고 설득하려고 하나요? 이제는 제발 소셜미디어에 그런 글을 올리지 마세요. 그런 행동은 역풍을 불러옵니다. 남을 설득하기 전에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하려면 경청해야죠.

언어가 중요하다

스스로 갈등 촉발자가 되지 않으려면 다양한 논조를 읽으세요. 복잡한 글을 읽은 사람은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높은 수준의 아이디어를 내놓습니다. 복잡성은 전염돼요. 호기심도 전염되죠. 갈등이 극한에 달했다고 할지라도 더불어 살아가려는 태도가 있으면, 갈등은 반드시 극복됩니다.

상대를 악마화하는 교착 상태’에서 빠져나와 ‘아이의 평안’이라는 가장 큰 목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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