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틀의 기준을 잡고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디지털 온리에서 태어난 자중감 있는 현재적 세계인‘. 이것이 잘파세대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수많은 특징이 있겠지만, 크게 보면 디지털 온리, 자중감, 현재적 감각, 세계인, 이렇게 4가지 특징으로 수렴할 수가 있어요. 잘파세대가 Z세대와알파세대를 합한 말인 만큼 이 두 세대의 차이도 있을 수 있는데,
결이나 방향성의 차이가 아니라 이 4가지 특징의 농도차라고 할수 있습니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지정학적 경계가 약하기 때문에 국가 구분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덜합니다. 메타버스에서 다른 나라 친구들을 만나고 틱톡이나 릴스로 서구권의 최신 유행을 실시간으로 공유합니다. 반대로 외국 친구들은 K-POP 소식을 실시간으로 알기도 하고요 그래서 친구나 인간관계, 개념이나 사고가 글로벌합니다. 다양한 가치에도 열려 있는 편이죠. 성정체성이라든가 종교에대한 태도, 이념의 차이 같은 부분에 대해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편입니다.

스마트폰 네이티브로서의 잘파세대잘파Z+alpha 세대는 Z세대와 알파세대를 묶어서 이르는 말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MZ라는 용어가 M세대와 2세대를 묶어서 ‘
르는 것과 마찬가지인 호칭인 거죠. 사실 MZ라는 용어가 젊은 사람들에 대한 대명사로 쓰이고 있는데, 최근 들어 이 중 M세대가결코 젊은 사람들이 아님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코로나로 인한 셧다운은 오프라인 만남의 기회를 빼앗았는데, 이미 사회화 경험이 있는 세대에게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되는 답답함을 그저 참아야 하는 기간이었지만, 성장기에 이시기를 거친 세대에게는 소통과 친화 능력에 대한 경험을 상당 부분 앗아간 사건이었습니다. 원래 외향적인 사람은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하겠지만, 내향적인 사람은 사회화를 연습할 기회를 많이잃게 된 셈이에요.

시인 나희덕 씨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하기도 했어요.
"궁극적 목표는 임시적 목표는 세운 일이 없다. 목표를 세워봤자 그대로 된 적이 없고 늘 다른 돌발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도 몇 등을 하겠다. 이걸 갖고 싶다, 무엇을 이루겠다하는 생각이 없었다. 눈앞에 있는 한순간 한순간을 최선을 다해살아낼 뿐이다. 외부적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내면을 잘 살펴서 삶의 방향이나 태도를 돌아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잘파세대는 거창한 미래를 꿈꾸고 그 미래를 향해 매진하자는말보다 이렇게 ‘큰 목표를 세우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자‘
는 말에 더 공감하는 거예요.

우리에게 전달되는 정보의 형태가 짧아지고 있어요. 우선 멀쩡한 말을 자꾸 줄여서 쓰는 경향이 생겼죠. 그래서 예능에서는 ‘신조어 맞추기‘라고 해서 제시하는 줄임말이 원래 무슨 뜻인지 맞추는 퀴즈가 종종 나옵니다. <1박 2일>이나 <삼시세끼>로 유명한 나영석 PD가 론칭한 <뿅뿅 지구오락실>이라는 예능은 4명의 젊은여성 출연자에게 나PD와 제작진이 쩔쩔매는 구도로 진행됩니다.
그런 구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에피소드가 ‘알잘딱깔센‘ 에피소드예요. 알잘딱깔센은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라는 뜻의 줄임말입니다. <뽕뽕 지구오락실>의 제작진이 절대음감이라는게임을 하면서 이 키워드를 제시했는데 ‘알잘깔딱센‘이라고 잘못낸 거예요. 그것을 출연자 중 한 명인 걸그룹 아이브의 멤버 2003년생 안유진이 "알잘딱깔센 아닌가요? 땡!"하고 지적한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차이점이 있는데 텍스트로 볼 때는 조금 더 머리를 쓰고 생각하며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비해, 영상으로 정보를대할 때는 보통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영상을 보면서 음성과 음성 사이에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하거든요. 그리고최근의 유튜브 영상은 중간에 늘어지지 않도록 말의 문장과 문장사이를 매우 빠르게 이어지게 하기도 하고요. 미국 신경심리학자매리언 울프는 <책 읽는 뇌》에서 읽는 능력‘이 우리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 말하며 "독서는 뇌가 새로운 것을 배워 스스로 재편성하는 과정으로, 독서의 핵심은 사색하는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잘파세대의 정보 습득 방법은 ‘읽기‘보다는 ‘보기‘ 입니다. 그리고 그런 정보조차도 길면 안 돼요. 유튜브 영상도 8분짜리를 보는것이 아니라 30초짜리 쇼츠나 릴스로 봅니다. 그러다 보니 정보에 기승전결이 없어요. 논리적 인과를 만들거나 스토리를 만들 시간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 냅다 춤을 추는 거죠. 개와 고양이 영상,
아기나 동물의 귀여운 영상이나 사진은 특별한 서사를 만들 필요가 없어요. 언어가 필요 없는 귀여운 장면 하나만 있으면 전 세계적으로 ‘좋아요‘를 받을 수 있어요.

진을 공유했습니다. 그런데 단톡방의 다른 멤버들이 ‘뭐야?‘, ‘왜?‘
같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예요.
알파세대인 아이와 대화를 하다가 아이가 갑자기 맥락 없이 말을 바꾼다며 화내는 부모가 있는데, 그 아이의 머릿속에는 나름의연결과정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런 과정을 일일이 공유하지 않을 뿐이지요. 그리고 과정을 공유한다고 해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연결의 고리가 주제가 아닌 소재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쇼츠나 릴스의 영상이 그렇듯 말이죠.

<사피엔스>로 유명한 세계적인 석학 유발 하라리가 2016년에내한했을 때 기자간담회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습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저도 몰라요.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있죠.
부모나 선생님이 지금 아이에게 하는 충고는 아이가 성인이 됐을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에요. 2050년대에는선생님이나 연장자로부터 배운 걸로는 인간 생활을 하기가 불가능한 역사상 첫 사례로 기록될 거예요."

에 쓸모 있는 것을 배우거나 한 적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노인들에게 무엇인가를 배운다거나 큰 충고를 받아들일 준비가 그다지되어 있지 않다는 거죠. 하지만 존경심이 없다고 노인을 멸시한다거나 하는 차원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잘파세대를 키우고경제적으로 보살펴 주는 사람은 할아버지, 할머니이기 때문에 잘파세대가 노인들에게 가지는 애정은 누구보다 강할 수 있어요. 잘파세대 배우 한소희 씨는 SNS에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를 ‘나의전부‘라고 표현하기도 했죠.
X세대만 해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명절 때나 만나는 존재이기때문에 노인들과의 교감이 크지 않거든요. 그런데 잘파세대의 부모인 X세대나 M세대는 아예 잘파세대의 할아버지, 할머니(때로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같은 아파트에 살며 자녀의 양육을 함께한 사람들이 많습니다.(잘파세대의 부모는 이전 세대에 비해 맞벌이하는 비중이 높아서 조부모가 육아를 대신한 사람들이 꽤 많거든요.) 그런 면에서 보면 잘파세대는 노인을 대하는 데 서툰 X세대

비혼주의를 선언한 잘파세대의 이모나 삼촌은, 말하자면 자기아이를 가지기는 부담스럽고 대신 조카들을 보면서 대리만족을느낍니다. 그러다 보니 조카를 끔찍하게 아끼고요. 육아에 대한책임은 없지만 가끔 육아 체험을 할 수 있는 정도면 환영이죠. (고양이나 강아지를 기르고 싶어도 여건상 기르지 못하니 유튜브를 보며 후원하는 랜선 집사도 있잖아요.) 이 사람들은 돈을 벌지만, 그돈을 쓸 곳이 자기 자신과 조카들 정도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에어팟을 낀다는 건 음악을 듣거나, 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에어팟을 끼고 있다는 것은 ‘지금-여기‘의 맥락에서 벗어나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버스안에서, 길을 걸으면서, 카페에서, 아니면 혼자 있을 때 에어팟을 끼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여러 사람이 같이 있는 상황에서 에어팟을 끼고 있다는 건, 이 사람들 속에자신이 속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표시입니다. 그러니 일반적인 직장인이라면 회사에서 에어팟을 끼고 일하는 신입 사원이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니까 에어팟은상징일뿐, 지금 우리가 같은 조직의 성공을위해 개인적인 니즈를 희생하면서 같이 으쌰으쌰 하는 사람인가아닌가의 문제라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잘파세대는 조직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아요. 그전까지 젊은 세대들이 칼퇴를 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표명할 때는 조직과의 투쟁인 측면이 있었습니다. 눈치를 보면서도 칼퇴를 하면서 자신의 권리를 찾아가는 건데요, 이런 칼퇴는 사실 조직의 흐름을 인식한다는 면에서 어쨌거나 조직이라는 거대한 가치를 인정하는 거거든요. 하지만 잘파세대의 칼퇴에는 조직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없습니다. 자신의 스케줄에 6시 퇴근이 예정되어 있으니까 퇴근하는 거예요.

잘파세대는 환경파괴로 인한 이상기온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세대이기도 해서 누구보다도 환경을 지키기 위한 공익캠페인에 앞장서기도 합니다. 산책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같은 활동에적극적이고 ESG(Environment 환경, Social 사회, Goverance 지배 구조를 뜻하는 약어로, 기업의 사회 및 환경적 활동까지 고려하여기업의 가치를 측정하는 지표)를 실천하는 기업의 제품을 사용하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본 적도 없는 북극곰의 어려움에 공감해 후원을 하기도 하고요.

진정한 개인주의는 연대를 통해 그 힘을 얻는다는 것을 알기때문에, 아이팟을 끼고 일하니 매우 비사교적이고 자기만의 동굴에 침잠할 것이라는 편견과는 다르게 사교적인 거예요. 잘파세대는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워터밤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즐겁게 축제를 즐기고, 처음 만나는 사람과 MBTI를 이야기하며 무리 없이 대화를 나눕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경계하며쉽사리 대화하지 못하고 자신의 동료(혹은 패거리)만을 챙기는 것은 X세대 이상의 세대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애국심에 호소하는 한국제품 소비 전략은 잘파세대에게 먹히지 않습니다. 한국 것이니까 한국인인 우리가 의식적으로 써야 한다는 식의 손쉬운 홍보문구는 40~50대 이상에게는 아직은 먹힐지 모르지만, 세계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갖춘 잘파세대에게는그다지 큰 효과가 없어요. 그런 면에서 잘파세대가 갤럭시를 안쓰고 아이폰을 쓰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위기에 대해서 삼성전자 내의 위기의식은 무척 나이브합니다. 2023년 8월 갤럭시 언팩 후에 가진 내부 행사에서한 직원이 "아빠가 삼성 다닌다니까 저희 딸은 갤럭시를 쓰는데친구들은 다 아이폰을 쓴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생각하시나요?" 하고 묻자, 스마트폰과 가전을 담당하는 DX 부문최고 경영진을 포함한 임원들 사이에서 나온 대답이 "아이폰 인기는 10대들의 막연한 선망이다. 성인이 되면 갤럭시를 쓰는 만큼아직 희망이 있다"였습니다." 이 대답은 사내 익명 게시판에서

잘파세대의 감성은 개인주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수많은 연결을 원하고 있어요. 같이 애플을 쓰고, 에어드롭(애플 제품 간에파일을 전송할 수 있는 기능)으로 그 자리에서 콘텐츠를 주고받고아이메시지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애플을 쓴다는 동질감에 동참

이는 미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미국 10대들 사이에는갤럭시 폰을 비롯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이용자를 ‘녹색 말풍선‘
이라고 부르며 "녹색 말풍선을 쓰는 남자와는 데이트하지 마Neverdate a green texter"라는 말까지 유행처럼 돈다고 합니다. 아이폰 이용자끼리는 문자가 파란색 말풍선으로 뜨고, 안드로이드 이용자의 문자는 초록색 말풍선으로 뜨거든요.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어테인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10대의 83%가 애플 아이폰을 가지고있다고 답했는데, 갤럭시 이용자의 비율은 10%에 불과했어요."
그래서인지 미국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아이폰 사용을 전제로 숙제를 내거나 공지사항을 전달하는 일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심지어 IT기업에서조차 이런 촌스런 전략을 많이 가지고 나옵니다. 네이버가 생성형AI를 발표하면서 Chat GPT에 한참 뒤진 것을 만회하기 위해서 강조한 부분이 새로운 기능이나 차별화된 성능이 아니었어요. ‘우리 것이라서 우리한테 잘 맞을 테니 이걸 써서 외세의 침입을 막자‘는 호소였죠. 흥선대원군시절이 떠오릅니다. 실패로 끝난 쇄국정책 말입니다. 우리 것이니까 우리가 애용하자는 애국주의 마케팅은 사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불패신화를 자랑하는 아주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이었지만, 이제 세계시민인 잘파세대가 점점 사회 전면으로 나오면서 효과가바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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