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기에 ‘나‘를 알고자 하고 나답게 살아보고자 하는 열망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나‘
로 세상에 나왔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왔지만, 결국엔 ‘나‘라는 존재를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인지 인생 후반기에는 번잡함을 피해 고요한 곳에 홀로 머물고 싶기도 하고, 철학이나 영성에 관한 책들이 눈에자주 들어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사유와 성찰로 눈길이 향합니다.

좀 거창한 은유를 들자면 이것은 ‘영웅의 귀환‘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트로이 전쟁을 끝낸 오디세우스가 온갖 모험을 겪고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오듯이 우리 모두는 본래의 ‘집‘으로 귀환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생 후반기를 지나는 중인 많은 사람들이 자아 찾기, 명상 등의 프로그램을 찾아다니는 것도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이나 심신의 안정을 위해서인 것 같지만 깊이들여다보면 ‘나‘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할 수 있습니다.
인생 후반기에 ‘나‘를 찾는 여정은 한마디로 말하면 ‘변화‘를 위한 모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톨릭 프란치스코회 리처드로어 신부는 인생 후반전의 과제를 배움이 아니라 지움이라고 말했습니다. 과거에 배운 것들로 만들어진 습관과 패턴들이 현재 우

푸코가 보기에 수도승들의 독서는 자기 배려, 자기 돌봄을 위한테크닉이고 실존의 기술이었습니다. 수도승들은 경청하고, 읽고,
쓰고, 금욕적 수행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깊은 이해와 묵상을 통해 통찰력을 얻었고, 때로는 권위 있는스승에게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갈등, 환상 등을 털어놓음으로써 자기 돌봄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영혼을 돌보고 가꾸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푸코가 지적한 대로 이런전통은 근대 데카르트 이후 중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조너선 갓셜은 『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이라는책에서 이야기꾼은 ‘구슬림‘이 목적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상대방의 마음을 얻으려고 재미와 공감이라는 양념을 사용하여 이야기를 만든다고 말합니다. 이 구슬림이 좋은 관계와 치유를 가져오는
‘지혜‘가 될 것인지, 상대방을 내 편으로 끌어들여 제 욕망을 채우려는 ‘사리사욕‘이 될 것인지는 이야기꾼의 인성에 달려 있겠지요.
분명한 것은 지혜로운 이야기꾼 곁에는 늘 사람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살아갈 힘과용기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야기꾼은 가족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습니다.

C. S. 루이스의 말이 적절하게 인용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던 어떤 꽃의 향기, 우리가 듣지 못했던어떤 곡조의 울림,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어떤 나라의소식을 감지하는 무언가가 내면에 존재한다."

리처드 로어 신부는 인생 후반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동안 배워 알고 있는 것을 지우는 작업이라고 말합니다. 변화는 배움보다 배운 것을 지움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세계적으로 알려진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얼마 전 방송사 인터뷰에서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왜 역사를 배워야 하나요?"라고 묻는 아나운서에게 그는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역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과거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에 예속되고 지배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해방되기위해서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과거로부터 답습된 것들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아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이기고 지배하려 했던가요.

인생 후반전은 배우기보다 지우기라는 말의 뜻은 지나간 과거의 일이 더 이상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기쁨을 앗아가지 못하도록 하면서, 타인들의 시선이나 세상의 기준에 연연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전직 사제였던 이반 일리치가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에서 한 말이 귀에 쟁쟁합니다.
"우리 인생의 3분의 1은 무엇을 처방받아야 할지 배우고, 나머지3분의 2는 자신의 습관을 관리하는 저명한 전문가의 고객으로살다 생을 마친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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