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산을 찾는 사람 중에는 몸과 마음 중 어느 하나가, 또는 둘 모두가 아픈 사람이 많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저는 숫제 그런 쪽으로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지냈습니다. 적어도 그런 사람들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종편 프로그램의 <나는 자연인이다>에나 나올 법한 그런 곳에서나 살아갈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왔었기에 지병을 다스리기
위한 방편으로 도시 한가운데 위치한 야산을 매일마다 오르내릴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여느 날처럼 산에 올라 가볍게 몸을 풀고는 등산로를 따라 걷고 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숨을 헐떡이며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꼭 마주치던 분이었습니다. 일년 사계절 동안 거르지 않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인데 아주머니도 그
중 한 분이었습니다. 인사를 하고 걸음의 속도를 늦추었습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같이 걷다 보니 아주머니께 인사를 하는 사람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습니다. 아주머니의 등산 연륜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자신에게 인사를 하고 지나치는 분들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방금 지나간 사람은 나이가 에순이 넘었고,
그전에 지나쳐 간 빼빼한 여자는 대장암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고..." , 아주머니는 마치 중계를 하듯 말씀하셨습니다. 본인도 산을 오르기
전에는 많이 아팠다고 했습니다. 젊어서는 안 해본 일 없이 억척스럽게 일을 해서 아이들 교육시키다 보니 몸이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더랍니다.
그래서 산을 찾기 시작했답니다. 어떤 날은 밥도 거른 채 하루 종일 걸었던 적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먹는 약 때문에 한동안 빠지지 않던 붓기도
그렇게 걸으면서 뺐다고 했습니다.
왜 아내와 같이 나오지 않았느냐 묻기에 그냥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주말부부로 지낸다고 하면 이런 저런 질문이 한동안 이어질 것 같아서
말이죠. 아내는 산에 오는 걸 싫어해서 나 혼자 다닌다고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더 멀리까지 간다는 아주머니와 헤어져서는 왔던 길을 되짚어 산을
내려왔습니다. 아주머니의 보조에 맞추느라 천천히 걸었던 탓에 시간은 꽤난 지체되었더군요. 산을 찾는 사람 대부분이 산을 오르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있게 마련이라던 아주머니의 말이 지금도 머릿속에서 뱅뱅 맴을 돕니다. 나는 산을 찾는 사람 대부분이 나처럼 그저 산이 좋아서 찾아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 아픔을 보지 못했습니다. 귀찮다는 이유로 일부러 외면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