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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미세먼지 탓인지 목 안이 칼칼하고 가슴이 답답하지만 요 며칠 푸근한 날씨가 이어졌습니다. 이제 내일 하루만 지나면 2014년은 과거의 기억 속으로 영원히 묻힐 것입니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한 해를 잘 보냈다는 뿌듯함보다는 왠지 모를 헛헛함이 밀려오는 게 사실입니다. 처음과 끝은 항상 맞물려 돌아가는 것임에도 '처음'보다는 '끝'에 오랜 시간 눈길이 머물고 떨쳐버릴 수 없는 진한 아쉬움과 미련을 품게 마련이지요.

 

세월의 흐름은 몸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을 늙게 하나 봅니다. 까닭도 없이 불안하고 우울해지는 걸 보면 말입니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늙는다는 것, 한 살이라도 더 나이를 먹는다는 의미는 남보다 뒤처진다는 것,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심하게 말하자면 머지않은 미래에 폐기처분의 신세를 면키 어렵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이 늙어간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기 위해 기를 쓰게 되는가 봅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가 쓴 <오래된 미래>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라다크에서 늙어감은 죽음과 마찬가지로 자연 순환의 일부로 여겨진다. 흔히 한동안 떠나 있다가 오랜만에 라다크 친구들을 만나면 그들은 "지난번 보았을 때보다 많이 늙었네요"라고 말할 것이다. 그 말을 겨울에서 봄으로의 변화를 말하듯 아무렇지 않게 할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는 내가 더 늙어 보인다는 말을 듣기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라다크 사람들은 나이를 겁내며 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삶의 각 단계는 그 나름의 이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 중에서)

 

나도 모르게 왠지 헛헛하고 쓸쓸해지는 이 즈음에는 의지가 될 만한 무언가가 절실해지곤 합니다. 그 대상이 가족이든, 연인이든, 좋아하는 음악이나 그림이든, 혹은 책이든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요. 다가오는 2015년에는 라다크 사람들처럼 평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세월에 쫓기지 않고 느긋한 마음으로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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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도 1차로인 도로에서 신호대기를 하거나 신호를 기다리는 차량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우회전을 해본 경험이 있으신지. 어느 정도 운전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게 되는 일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나타나는 반응은 운전자의 성격에 따라 상당히 다양하게 나타나는 듯합니다.

 

제가 만일 편도 1차로의 도로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면 대개는 중앙선 쪽으로 제 차를 가깝게 붙여 우회전하는 차량의 소통을 방해하지 않으려 하는 노력합니다. 내 뒤에 오는 우회전 차량이 방향지시등을 켠 채 경적을 울리며 애걸복걸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딱한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간혹 자신의 차를 차로의 중앙에 떡하니 세워 놓은 채 뒷차량이 우회전을 하던 말던 전혀 개의치 않는 운전자도 보게 됩니다. 그럴 때 저는 그 차량의 운전자가 운전 경험이 전혀 없는 완전 초보이거나 일부러 심술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우회전을 하려는 뒷차량의 차로를 확보해주고는 싶으나 운전 실력이 부족하여 어찌할 줄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는 경우라거나 충분히 비켜줄 수 있는 운전 실력은 되지만 못 들은 체 무시하는 경우이겠지요. 제가 생각하기에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아주 고약한 심보이지요. 나도 기다리고 있으니까 너도 기다리는 게 당연하다는 투의 막가파 식 운전 행태라고나 할까요.

 

물론 신호대기를 하는 차량의 운전자가 어떤 위반을 한 것은 아니지요. 법적으로 비켜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구요. 단순히 배려의 차원에서 행하는 일일 뿐이지만 무대포로 버티고만 있는 차를 뒤에서 지켜볼 때 그닥 좋아보이지는 않더군요.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저도 심술이 나서 비켜주지 않고 버텨본 경험이 있습니다. 저도 언제나 미소만 짓는 천사는 아니거든요. 주로 택시가 그 대상이었던 것 같아요. 일반 차량의 운전자는 대개 우회전 방향지시등을 켠 채 한두 번의 짧은 경적을 울림으로써 자신이 먼저 가겠다는 의사표시를 하지만 일부 택시 운전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더군요. 예컨대 '내가 우회전 하려는데 네가 감히(?) 내 앞길을 막아?'하는 표정으로 귀가 먹먹할 정도로 경적을 길게 누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일순 심사가 뒤틀리곤 합니다. 한 명의 손님이라도 더 태워야 사납금도 벌고, 집에 있는 자식들의 용돈도 줄 수 있기에 늘 바삐 돌아다닐 수 밖에 없다는 건 잘 알지만 적어도 앞 차량의 운전자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니만큼 짧고 가볍게 울릴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지요.

 

저는 외국에서도 몇 번 운전을 해본 적이 있지만 우리나라 운전자만큼 안하무인의 운전자를 만났던 경험은 없었던 것 같아요. 물론 아주 짧은 시간을 운전하는 외국에서의 경험과 오랫동안 운전했던 국내의 경험을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국토가 넓은 나라에서 태어나지 못한 게 죄라면 죄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약간의 배려로 서로의 마음을 기분좋게 할 수 있다면 웃을 일 없는 요즘과 같은 시기를 그래도 잘 버텨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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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빚에 허덕이는 서민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주려는 정부의 노력이 눈물겹도록 가상하다. 진심이다. 다사다난했던 2014년을 뒤돌아 볼 때 대한민국의 국민들 대부분은 웃을 일보다는 슬퍼하거나 화낼 일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인지 정부에서는 블록버스터급 코미디 두 편을 선보였다.

 

그 하나는 '정윤회 문건에 얽힌 비화(가제)'이다. 이미 검찰의 수사도 마무리 단계이고 저간의 의혹도 대부분 덮인 상황이지만 국민들도 대부분 배꼽이 빠질 정도로 웃었을 줄 안다. 정부와 검찰의 노고에 감사하면서. 압권이었던 것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실에서 근무했던 박모 경정이 정말, 아주 정말 할 일이 없고 무료해서 '찌라시'와 같은 소설을 썼다는 것이다. 우리는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근무하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 표해야만 한다. 나도 소식을 접하기 전까지는 그 자리가 그렇게 무료하고 할 일이 없는 직책인 줄은 미처 알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다리가 배배 꼬일 정도로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박모 경정은 위험을 무릅쓰고 보고서 형식을 빌어 소설 한 편을 완성했던 것이다. 다 함께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그의 상사와 청와대 관계자들도 박 경정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리라. 그렇게 재미있는 소설을 일부 관계자들만 즐긴다는 건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들로서 있을 수 없는 일, 언론을 통하여 전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은 물론 소설 속의 주인공들(정윤회, 박지만 등)을 불러 검찰청에서 차도 한 잔씩 대접함이 마땅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었던 듯하다. 그나저나 박 경정은 이제 대한민국 작가협회 정식 회원으로 등록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의 코미디극은 '대통령 당선 2주년 선물(가제)'이다. 알다시피 오늘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성된 지 2주년이 되는 날이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노고를 치하하고, 당선 2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409일 동안 준비했다고 한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선물을 대통령께 드린 셈이다. 그동안 박 경정이 쓴 소설과 되는 일 하나 없는 국가 운영에 속이 문드러질 대로 문드러졌을 텐데 늦게나마 여론과 언론의 압박으로부터 대통령의 숨통을 틔워준 일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찬조출연한 어버이 연합 등 보수단체의 멋진(?) 퍼포먼스도 있었다.

 

정말 웃을 일 없는 시기에 조금이라도 국민을 웃게 만들려는 국가의 노력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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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유난히 글이 잘 써지는 날이 있다. 미리 구상한 것도 아닌데 술술 풀려나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남에게 내놓고 자랑할 만큼 멋진 글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 날 나는 그날 있었던 일을 곰곰 되짚어 보게 된다. 좋은 꿈을 꾸었다거나, 뜻하지 않은 횡재가 있었다거나, 난데없는 칭찬을 들었다거나 뭔가 다른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다 할 공통점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여느 날보다 기분이 좋았던 것도 아니고, 책을 더 열심히 읽었던 것도 아닌데 미리 준비된 원고처럼 글이 쉽게 쓰이는 걸 보면 도통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쓰인 글에는 여지없이 많은 댓글이 달린다. 물론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읽으면 초등학생 수준의 글로 비춰질 게 뻔하지만 말이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날은 정말 고심하여 리뷰를 쓰는 경우도 있다. 몇 번씩이나 글을 수정하고 반복하여 읽어본 후 괜찮다 싶어 올린 글임에도 불구하고 평가는 냉담할 때가 있다. 어떤 칭찬이나 대가를 바라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어깨가 처지고 풀이 죽는다.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의심도 해보지만 딱히 이렇다 할 만한 게 없다. 기껏해야 짧은 리뷰나 일상에서 벌어지는 잡담 수준의 글을 쓰면서 이런 고민을 하는 것도 우습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 말이다. 수정이나 퇴고도 없이 단숨에 써내려간 글에 댓글이 달리는 걸 보면 나름 신기할 때가 더러 있다. 모르긴 몰라도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은 보이지 않는 어떤 끈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다. 모임도 잦고 밀린 일도 많다 보니 요즘은 이웃 블로거의 글도 읽어볼 시간이 없다. 미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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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4-12-18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공감하는 부분이 있어서 읽다가 소리내서 웃었네요~ :)

꼼쥐 2014-12-19 14:26   좋아요 0 | URL
다들 비슷하신가 봐요. ㅎㅎ

2014-12-19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19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의 조선미술 순례』


디아스포라 서경식이 만난

조국의 미술과 미술가들



나의 서양미술 순례』 이후 20년,

디아스포라 서경식의 또 다른 미술 순례기



한국의 많은 독자들이 서경식이라는 이름을 저자로서 기억하게 된 것은 1993년 번역 출간된 『나의 서양미술 순례』 덕분일 것이다. 이 책은 이제는 너무 많이 쏟아져 나와 거의 하나의 분야로 자리 잡은 ‘미술 기행’의 거의 첫 출발에 해당하는 책이었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판매되는 몇 안 되는 미술 기행기이기도 하다.

많은 독자들이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통해 그림 읽기의 새롭고도 친근한 방법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조국에서 옥살이를 하는 형들(서승, 서준식)의 옥바라지를 하는 30대의 재일조선인 청년에게 유럽의 다양한 미술관에서 만난 작품들은 지하실에 난 창문으로 겨우 들어오는 희박한 공기였다고, 저자는 그 책에서 기록한 바 있다. 예술이 역사와 현실과 삶과 독특하게 뒤섞이며 서로를 해석하거나 확장하는 놀라운 장면들이 그 책에 가득 담겨 있었다.

이번에 출간되는 『나의 조선미술 순례』에서 저자는 이제 60대가 되어 유럽의 미술관이 아닌 한국의 미술관들을 순례한다. 30대의 재일조선인 청년이 집착했던 주제들, 죽음, 섹슈얼리티, 가족, 민족…… 같은 것들이 여전히 60대 재일조선인 노교수의 눈과 귀와 온갖 감각들을 사로잡고 날카로운 통찰들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과 삶의 변화를 따라 미묘하게 달라진 지점들 역시 드러난다.

가령 저자는 이제 홀로 유럽의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작품과 고독하게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 F와 함께 때로는 제자들과 함께 ‘조국’의 미술관을 찾는다. 그리고 정말로 원한다면 그 작품을 만든 작가들과 직접 한국어로 대화를 할 수도 있다. 조국은 더 이상 그가 70년대에 보았던 군사독재 치하의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또 이제 형들의 옥바라지를 위해 조국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구와 활동을 위해 찾게 되었다. 이렇듯 달라진 상황에서 저자는 20년 전, 30년 전 그림들 앞에서 던졌던 것과 똑같은 물음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이번에는 이 물음들에 답할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이전에는 단순히 목격자에 머물 수 있었던 독자들을 이번 순례에는 더 깊이 동참시킨다. 위의 답을 혼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20~30년 전의 그 순례와 지금의 이 순례의 미묘한 차이들을 읽어내는 것은 작가 자신의 변화를 읽어내는 일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나 자신의 변화를 읽어내는 일이 된다.

한편 『나의 서양미술 순례』와 『나의 조선미술 순례』를 나란히 놓고 보는 일은 마치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나란히 걸린, 렘브란트의 34세 때와 63세 때의 자화상을 보는 일 같기도 하다.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삶의 질문, 궁극의 질문에 대한 답을 갈구하는 그 빛나는 눈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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