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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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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수필 '광야를 달리는 말'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는 것이어서, 30년이 지난 무덤가에서는 사별과 부재의 슬픔이 슬프지 않고, 슬픔조차도 시간 속에서 바래지는 또 다른 슬픔이 진실로 슬펐고, 먼 슬픔이 다가와 가까운 슬픔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인데, 이 풍화의 슬픔은 본래 그러한 것이어서 울 수 있는 슬픔이 아니다. 우리 남매들이 더 이상 울지 않는 세월에도, 새로 들어온 무덤에서는 사람들이 울었다. 이제는 울지 않는 자들과 새로 울기 시작한 자들 사이에서 봄마다 풀들은 푸르게 빛났다"

 

끔찍했던 '세월호 사건'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김훈의 문장을 생각하곤 한다. 특히나 '슬픔조차도 시간 속에서 바래지는 또 다를 슬픔이 진실로 슬펐고'하는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컥컥 목이 메인다. 무시로 찾아드는 슬픔에 이따금 나는 그 문장을 혼잣말로 되내이다가 찔끔 눈물을 보였고, 누가 볼세라 서둘러 눈물을 훔치곤 했었다. 그러나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는 것이어서' 세월호 참사의 슬픈 기억은 아주 오래된 옛일처럼 잊혀져간다.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나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 13명의 육성기록을 담은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으며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저는 앞으로도 오래 살려구요. 오래 오래 살아서 우리 아들 기억해줘야죠. 시간이 지나면 우리 아들 잊는 사람들도 많아질 거고 벌써 잊은 사람들도 있을 텐데 나는 오래 버텨야 되겠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건우 아빠, 나는 아흔살 백살까지 살 거야. 내가 혼자서라도 끝까지 기억해줘야 할 것 같아"라고 했더니 "아흔살? 너무 많지 않아"라고 해요." (p.42 김건우 학생의 어머니 노선자 씨)

 

내가 어렸을 때, 놀러간 친구네 집의 안방에서 친구들과 법석을 떨며 놀다 보면 아랫목 이불 속에 묻혀 있던 밥주발이 나동그라지곤 했다. 친구는 혹여라도 어머니께 들켜 불벼락이 떨어질세라 흩어진 밥알을 주워담으며 황급히 수습했었다. 보온밥통이 없던 시절의 한겨울. 삼시 세끼 식구들에게 더운밥을 먹이고 싶어 하던 어머니 마음은 아랫목에 깔린 솜이불처럼 따사로웠다. 나는 이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의 부모 마음이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그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295명이 숨지고 9명이 실종된,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해난 사고에 대하여 우리는 아는 게 없다. 사고의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왜 그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수밖에 없었는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책임져야 할 대한민국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정부의 무능을 비판할라치면 반드시 뒤따르는 옹호 논리가 있다.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가 사고를 냈느냐는 질문. 이런 세살배기 어린애와 같은 논리로 국민들의 분노를 잠재우겠다는 발상을 하는 놈들이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분노한다. 끝내 가라앉지 않는 분노. 2014년 4월 16일 수요일의 그날, 금요일에 돌아올 아이들을 기다려야 할 부모들은 따순 밥 한그릇 준비하지 못한 채 아이들을 보냈다.

 

"4월 16일 이후 우리는 모두 세월호 참사가 만들어낸 시간을 살아가게 되었다. 슬픔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그래서 슬픔을 잊기 위해 그 시간들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며. 그 말들이 비수가 되어 다시 하나의 시간을 슬픔에 가둔다." (p.342)

 

그날 우리 가슴에 달았던 노란 리본에는 기다림이 배어 있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물거품처럼 흩어지고 그리움은 국화꽃처럼 시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발족되고 가동을 시작했지만 그날의 진실은 여전히 바닷속 어둠에 갇혀 있다. 누군가를 잊는 것도, 누군가로부터 잊혀지는 것도 저 나름의 권리가 아니겠는가,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자식의 죽음을 제 가슴에조차 묻지 못하는 희생자 부모의 마음을 생각할 때 그날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죄인인 양 오그라든 가슴을 끝내 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숙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저 불운한 일이라고, 이제는 큰아이를 잘 보듬어야 할 때라고도 여겼다. 주변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수현이 아버지는 그렇게 넘어갈 수 없었다. 사랑하는 아이가 억울하고 원통하게 죽었는데, 그걸 숙명으로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견디기 어려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도무지 아버지가 할 일이 아니었다." (p.207 박수현 학생의 아버지 박종대 씨)

 

지난 9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 후 첫 공식회의를 열었던 날 로마 교황청을 방문한 한국 주교들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세월호 문제는 어떻게 되었나요?"라고. '고통 앞에 중립 없다'는 말을 남기며 세월호의 아픔을 보듬었던 교황. 이 땅에 사는 우리는 먼 이국땅의 교황에게 어떤 대답을 준비해야 하는가. 뜨거운 시간을 홀로 식혀온 찬밥 한 덩이처럼 4월 16일의 아침에 걸려 미래를 향해 단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는 우리의 시간. 거짓과 부정의 발걸음은 저 멀리 성큼성큼 거침 없는데 진실의 발걸음은 어찌 그리 더디기만 한 것인지.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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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끊을 용기 - 정신과 전문의가 찾아낸 기적의 금연 치유력
전지석 지음 / 스토리3.0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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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결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있다면 금연과 운동, 다이어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까닭에 매년 1월이면 이와 관련된 '결심상품'들이 불티나게 팔린다지요. 나는 체중이 갑자기 늘어 고민해 본 적도 없고, 매일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을 부러워한 적도 없습니다. 적어도 그 두 가지 문제에 있어서는 자유로운 셈이지요. 어려서부터 꾸준히 운동을 해왔으니 운동은 이제 습관처럼 굳어져 있고 그 덕분에 몸무게는 항상 일정합니다.

 

다만 흡연이 문제라면 문제였지요. 셋 중에 제일 심각하고 실천하기 어려운 문제를 지니고 있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금연을 결심해본 적은 많지 않아요. 금연을 권하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늘 '담배를 피워도 몸이 견딜 만하니까 피우지 몸이 못 견딜 정도면 끊어도 벌써 끊었을 것'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 놓았고, 나도 지금껏 그렇게 믿고 지냈습니다. 그렇다고 흡연의 심각성을 몰라서 그랬던 건 아닙니다. 설마 흡연자 중에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라구요. 아무튼 내가 금연을 시도해본 것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그 횟수가 적었다는 사실입니다.

 

"담배를 피우는 것, 담배에 중독되는 것, 그 외에 어떤 중독에 빠져 있다는 것은 어린 시절에 겪은 '치명적인 상실'(부모, 특히 어머니의 공감반응 부족이나 부재)이 있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담배는 그런 상실을 위로하는 진통제 또는 값싼 보상(요즘에는 가격이 비싸졌지만)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담배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은 그런 상실의 상태가 지속되고 고착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p.142)

 

몇 해 전이었나 봅니다. 아내가 갖다 준 금연 패치를 붙여보기도 했고, 패치를 붙인 채 담배를 피우면 위험하다는 경고 문구를 읽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담배를 피워 물었던 적도 있고, 한번은 금연침을 맞으면 효과가 있다는 말에 시간을 내어 용하다는  한의원을 찾아가기도 했고, 쑥 태우는 냄새가 나는 금연초를 사서 피워보기도 했고, 물을 마시면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듣고는 앉은 자리에서 물을 몇 컵씩 들이켜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나도 금연을 위해 안 해본 게 없는 것 같군요.

 

그러나 이와 같은 금연 보조제로 금연에 성공했다는 말을 주변에서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어떤 극단적인 방법으로 금연에 성공한 사람은 본 적이 있습니다. 지인 중에 하루에 2갑 이상의 담배를 피우던 애연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담배 한 보루를 사더군요. 그 담배를 들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는 줄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담배 연기가 빠지지 않는 그 방에서 담배 대여섯 갑을 피웠나 봅니다. 다음날 그 분은 동네 치과에 들러 스케일링을 받더군요. 그리고는 담배를 끊었습니다.

 

나는 사실 2015년 1월 1일부터 담배를 끊고 지금껏 금연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제 3개월에 접어드는군요. 그러나 지금도 '담배'라는 말만 들어도 흡연의 욕구가 생겨납니다. 나는 결코 금연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루에 한 갑, 적어도 반 갑 이상을 지속적으로 피우던 내가 어떻게 60일 이상 금연할 수 있었는지 나로서도 신기할 뿐입니다. 온갖 방법으로도 단 하루를 버티지 못했던 내가 말입니다.

 

"담배는 아무도 내 아픔을 알지 못할 때 나를 달래주었습니다. 담배는 내가 걱정, 근심에 휩싸여 뒤척일 때마다 마음을 가라앉혀주고 잠들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때로는 천생연분처럼 느껴졌고, 때로는 건강을 해친다는 세상의 말에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p.181)

 

담배값 인상이 예고되었던 지난해 말, 나도 남들처럼 여분의 담배를 사들이기 시작했었지요.  사재기까지는 아닐지라도 한 갑 살 걸 두 갑 사는 식으로 여분의 담배를 비축했던 셈입니다. 다른 흡연자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었지요. 2015년이 되고 기념으로 2,3일만 끊어보자 생각했습니다. 독하게 참으면 그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았거든요. 이삼 일이 지나면 다시 피울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 느긋해지더군요. 정말 성공했고, 나조차도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애초의 생각으로는 다시 담배를 피워도 되었지만 그동안의 노력이 헛수고가 된다는 게 조금 아까웠어요.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두고 보기로 했죠. 그랬던 게 지금까지 온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담배 생각이 간절할 때가 언제냐는 질문과 어떤 부작용(?)이 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하루 중 담배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더 적다고 말하는 게 옳을 듯합니다.  시시각각 담배 생각이 간절하지요. 이 책 <담배 끊을 용기>를 읽는 동안에도 내내 담배 생각에 시달려야 했으니까요. 금연의 부작용(?)은 밤에 잠자다가 한두 번쯤 잠에서 깨거나 처음부터 잠들지 못하여 서성거릴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담배를 피우던 때에는 없었던 일이죠. 잠들기 전에 담배 한 개비 피우면 노곤해져서 쉽게 잠들 수 있었고, 일단 잠이 들면 아침까지 깨지 않고 잤었는데 말입니다.

 

신체적 변화도 물론 있었습니다. 우선 눈에 띄는 변화는 혀에 끼던 백태가 사라졌고, 노랗던 소변 색깔이 투명해졌고 거품도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후각 기능도 좋아졌는지 옆에 담배 피우는 사람이 있으면 냄새로도 구분할 수 있겠더군요. 아침마다 산에 오를 때 웬만해서는 호흡이 가쁘지 않은 것도 나아진 점입니다. 금연 초기에는 짜증이 심했었는데 지금은 조금 덜해진 듯합니다.

 

이 책 <담배 끊을 용기>는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가 자신의 금연 경험을 토대로 쓴 책입니다. 20년 넘게 흡연자로 살아왔다는 저자의 경험담은 흡연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금연을 위한 심리적인 치료 과정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금연을 위해 정신적 안정과 자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금연으로 가는 구체적 과정을 생략했던 것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읽어보았던 책 중에는 흡연을 비롯한 여타의 중독을 치료하기 위한 책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 중 이소무라 다케시의 <이중세뇌>와 찰스 두히그의 <습관의 힘>보다 더 좋은 책은 만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2015년에는 나를 포함해 금연을 결심한 모든 분들이 성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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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lph 2015-03-12 09:55   좋아요 0 | URL
유명한 금연 법으로 Allen Carr Method 가 있는데, 결국 흡연이라는 것이 위안이 되기 보다는 담배를 끊음으로써 생기는 금단증상을 없애기 위해서 담배를 지속적으로 피울 뿐으로, 실제로는 담배 자체가 어떤 위안도 주지 못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결국 담배가 만든 괴로움을 담배를 다시 피움으로써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일뿐.. 실제로 담배 자체가 제공하는 위안은 원래는 없다는 것이지요. 이방법으로 여러 유명인인 끊었다는 군요..

꼼쥐 2015-03-15 16:28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도 그런 내용을 잠시 언급하고 있더라구요. 그런데 문제는 흡연자들이 어떤 이성적 판단으로 금연을 실행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머릿속에서는 끊는 게 옳다는 생각을 백 번도 더 하지만 정작 몸은 정 반대로 행동하지요. 나도 모르게 담배를 피우는 게 문제이지요.
 
속죄
미나토 카나에 지음, 김미령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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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을 하는 성직자들이 가슴에서 마음 하나를 꺼내어 요리 굴리고 조리 굴리며 한나절 노는 것처럼 소설가들의 눈에도 우리가 볼 수 없는 어떤 세상이 펼쳐 보여지는 게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가령 시간과 공간으로 한정된 어느 곳에는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는 여러 이야기가 구름처럼 둥둥 떠다니는데, 어느 소설가가 그중 하나를 골라 잡아 요리조리 살펴보고는 제 맘에 쏙 드는 놈으로 눈먼 독자들에게 선심쓰듯 툭 던져주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기발한 생각들을 소설로 옮겨 쓸 수 있을까. 그것은 아름다운 문장을 신들린 듯 써내려갈 수 있는 얕은 재주와는 사뭇 다르다. 지금껏 그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한 편의 소설로 읽고 있을 때, 나는 그 소설가가 어느 성인처럼 위대해 보이곤 한다.

 

소설가 미나토 가나에를 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우연한 기회로 읽게 된 그녀의 작품 <고백>. 추리소설을 그닥 좋아하지 않던 나는 별 기대도 없이 책을 읽었었다. 그러나 내가 소설 속으로 정신없이 빨려들어가는 데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소설의 여운이 어찌나 강했던지 다 읽은 후에도 진한 아쉬움이 남았고 기회가 되면 작가의 다른 소설도 읽어봐야지, 생각했었다. 그랬던 게 어제 같은데 나는 한동안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한눈을 팔게 되었고 미나토 가나에는 까맣게 잊고 지냈었다.

 

내가 오늘 읽은 미나토 가나에의 <속죄>는 이언 매큐언의 소설 <속죄>와는 판이하게 다른 작품이다. 독자의 시각에 따라 각자 다른 주제를 이끌어낼 수 있겠지만 큰 테두리에서는 몇 가지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살인사건이 목격자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 하는 문제와 폐쇄적인 농촌 집단에서 도시 출신 이방인의 소외, 미성숙한 아이들의 또래집단에서 소통의 부재로 인한 오해와 그 결과 등으로 이 소설의 주제를 요약할 수 있겠지만, 이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은 조용한 농촌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과 그들이 받는 트라우마 정도가 아닐까 싶다.

 

소설은 도시에서 전학온 초등학교 여학생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작가는 <고백>에서도 그랬지만 먼저 살인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보여주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여러 원인들을 작중 인물들의 서술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밝혀나가는 방식을 취한다. 다분히 연역적이다. 인물들의 기억이나 증언은 동일한 질문에 대해서도 서로 다르다. 각자의 증언을 다 들어보기 전까지 우리는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없다. 우리의 상상이 서서히 압축되어가는 살인의 실체를 향해 점차 다가감에 따라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작업복 차림의 한 남자에 의해 학교 풀장의 탈의실에서 에미리가 살해된다. 같이 놀던 네 명의 아이들이 그 현장을 목격하였고, 각자의 임무에 따라 흩어졌다. 여린 성격에다 체구도 작아서 자신은 또래보다 어리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에는 살해된 에미리를 지키게 되었고, 야무지고 똑똑하다는 주변의 기대를 받고 자란 까닭에 자신도 늘 그렇게 처신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렸던 마키는 선생님께 알리러 갔고, 곰 같다는 놀림을 받으며 외모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아키코는 에미리의 엄마에게 달려갔고, 지병이 있는 언니 그늘에서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는 유카는 경찰서를 향해 달렸다.

 

네 명의 아이들은 모두 범인을 목격하였지만 그 누구도 범인의 얼굴을 떠올리지 못했다.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외동딸을 잃은 에미리의 엄마는 사건 해결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했던 에미리의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원망의 마음을 품었고, 에미리가 죽고 3년이 지나 마을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부른다. 그 자리에서 에미리의 엄마는 아이들을 향해 험한 말을 내뱉는다. 범인을 잡거나 속죄를 하며 살라고.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친했던 아이들은 이제 그 사건으로 인해 소원한 관계가 된다. 그렇게 15년이 흘렀다. 결혼을 하고 남편을 따라 해외로 나갔던 사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을 살해하고 혼자 귀국한다. 선생님이 된 마키는 어느 날 풀장에 칼을 들고 난입한 한 남자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려다가 본의 아니게 그 남자를 물에 빠트려 죽음에 이르게 한다. 에미리가 살해된 것이 자신의 잘못인 양 느끼며 고등학교도 진학하지 않은 채 외톨이로 지내던 아키코는 딸이 있는 싱글맘과 결혼한 오빠가 어린 양딸을 추행하는 것을 보고 오빠를 살해하고 만다. 부모의 사랑에 사랑에 굶주려 있던 유카는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던 언니가 경찰과 결혼하자 에미리의 사건을 신고하러 갔을 때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경찰관을 떠올렸고 결국 유카는 형부의 아이를 임신한다.

 

사건을 목격하였던 네 아이의 삶은 너무도 비극적으로 펼쳐졌던 것이다. 남편을 살해하고 귀국했던 사에는 자신이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경위를 상세히 적은 편지를 에미리의 엄마에게 보내고 또 다른 불행을 예감한 에미리의 엄마는 에미리의 다른 친구들에게 편지를 복사하여 보낸다. 그러나 불행은 사에에게서 그치지 않고 그 네 명의 친구들에게 들불처럼 번진다. 시골 마을로 이사하여 하나밖에 없는 딸을 잃었음에도 어떤 위로의 말도 듣지 못했던 어머니의 증오가 현실에서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듯한 두려움에 에미리의 엄마는 경악한다. 그리고 자신의 딸이 죽게 된 배경에는 젊은 시절에 저질렀던 자신의 잘못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시골마을로 이사갔던 한 가족의 비극이 각자의 오해 속에서 또 다른 비극을 낳은 셈이다.

 

"내 안의 아픔과 어려움을 혼자서 감내하며 키워나갈 게 아니라, 용기를 내어 나 이렇게 아프다고 누군가에게 먼저 말해보는 것, 그래서 타인과 같이 나누고 공유하는 것이 하나의 치유책이 되지 않을까." (p.303, '역자 후기' 중에서)

 

대학을 갓 졸업했을 무렵 지방의 소도시에서 잠깐 살았던 경험이 있다. 그 때 나는 지역민의 알 수 없는 집단적 거부감에 무척이나 놀랐었다. 내게 있는 도시에서의 습관을 버리지 않는 한 그들과 동화되기는 어렵겠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시골 태생인 나도 그럴진대 온전한 도시내기는 오죽이나 힘들까.

 

"그러나 에미리가 이사 오고 나서 할아버지의 말씀을 처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예쁘고, 스타일 좋고, 영리하고, 운동 잘하고, 손재주까지 좋은 부자. 확실히 불평등하더군요. 에미리와 나 자신을 비교하다 보면 비참해질 뿐이었죠. 하지만 처음부터 갖고 태어난 것이 아예 다르다고 생각을 바꾸면 아무렇지도 않은 게 되죠. 에미리는 에미리. 나는 나. 다른 아이들은 에미리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난 처음부터 에미리를 다른 세계 사람으로서 좋아했어요." (p.133)

 

딸을 잃은 엄마의 증오에 찬 한마디 말은 결국 네 소녀의 운명을 수렁으로 이끌고 말았다. 어쩌면 작가는 이 책에서 불교의 연기설에 바탕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저질렀던 업이 딸에게, 그 딸의 죽음에서 비롯된 증오의 감정이 네 명의 소녀에게, 결국은 그 소녀들의 원망이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구조는 약간의 억지스러움이 있지만 어쩐지 으스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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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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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편지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나는 금세 닿을 수 없는 어떤 그리움에 후루룩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아요. 다들 그렇지 않나요? 그래서인지 편지 형식의 문학 작품을 많이도 읽었던 듯합니다. 기억나는 것만으로도 고흐의 <반고흐, 영혼의 편지>, 헬렌 한프의 <채링크로스 84번지>, 안토니오 그람시의 <감옥에서 보낸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루시드 폴과 마종기 시인의 <아주 사적인, 긴 만남>, 서경식과 타와다 요오꼬의 <경계에서 춤추다>, 이중섭의 <이중섭의 편지와 그림들> 등 아련한 추억과 함께 떠오르는 책의 제목들이 그저 미소짓게 합니다. 아름다운 책들입니다.

 

우리가 서간체 문학에 감동하는 이유는 아마도 다양한 인간의 속성 중에서 사랑과 신뢰의 감정을 두드러지게 드러내기 때문일 것입니다. 진실되고 투명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까닭에 다른 사악한 감정들이 감히 개입할 수조차 없는, 적어도 편지를 쓰거나 읽는 시간만큼은 그러한 감정들의 존재마저 부정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편지가 갖는 순수한 고백성은 때로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적시고, 순박했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게도 합니다.

 

나는 편지글 자체로서의 수필뿐만 아니라 편지 형식의 소설도 좋아하는 편입니다.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나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기를 통과하는 상징과 같은 서간체 소설이라면 메리 앤 섀퍼의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봄날의 산책길에 우연히 만난 제비꽃처럼 귀엽고 앙증맞은 소설입니다.

 

채널제도의 건지 섬을 배경으로 씌어진 이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점령되어 5년의 세월을 견뎌야 했던 건지 섬 사람들의 이야기를 편지글 형식으로 실감나게 그리고 있습니다. 여느 전쟁소설처럼 당시의 상황을 참담하거나 비극적으로 그리지 않고, 섬마을이라는 작은 공동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소박하고 진실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이 독자들의 사랑과 강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이유는 낯선 섬 이름과 파이 이름을 내세운 특이한 제목,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씌어졌다는 점, 찰스 램, 제인 오스틴, 앤 브론테, 찰스 디킨스, 오스카 와일드 등 당대의 유명 작가와 그들의 작품이 이야깃거리로 등장한다는 점, 편지글 하나하나가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묘사되어 독자들로 하여금 지적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겠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인 줄리엣은 영국의 인기 작가이자 칼럼니스트입니다. 그녀는 어느 날 건지 섬에 사는 한 남자로부터 편지를 받게 됩니다.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문학회 회원이었던 그를 통하여 줄리엣은 다른 회원들과도 편지를 주고받게 되었고, 종전 이후 다음 작품의 주제를 정하지 못하고 있던 그녀는 편지가 지속되는 동안 건지 섬주민들의 삶과 문학회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느끼게 됩니다.

 

소설에는 그녀가 남자친구와 주고받았던 편지와 전보, 그녀의 절친한 친구인 소피와 소피의 오빠이자 줄리엣의 책을 출간한 스티븐스&스타크 출판사의 발행인 시드니와 주고받는 편지, 또 건지 섬 사람들 10여 명과 주고받는 168통의 편지가 등장합니다. 편지로만 이루어진 이 소설에서 독자들은 당시 사람들의 사랑과 우정, 생명의 위협 속에서 꽃피운 인간애, 나치 감시 하에서 삶의 의지가 되었던 문학회와 책을 통해 변화되어 가는 그들의 인간정신에 깊이 감동하게 됩니다. 특히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문학회를 만든 엘리자베스가 전쟁 중에 한 아이를 낳고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던 이야기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엘리자베스의 딸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주인공의 이야기에서 먹먹한 슬픔을 느낍니다.

 

이 책은 한 노년의 작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수십 년에 걸쳐 만든 소설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섀퍼는 1976년에 방문했던 영국해협 채널제도의 건지 섬을 배경으로 책을 쓰겠다고 이야기했고, 수년에 걸친 조사기간을 거쳐 2000년경 집필 작업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의 집필을 끝내자마자 암 진단을 받았고, 마지막 정리 작업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조카이자 동화작가인 애니 배로스에게 마무리 작업을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 2월, 책이 출간되는 것도 보지 못하고 73세의 나이에 복부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자친구를 버리고 떠났던 소설 속의 주인공 줄리엣은 결국 건지섬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찾게 됩니다. 영국에 있던 줄리엣에게 건지 섬에서 처음으로 편지를 보냈던 도시 애덤스는 결국 그녀의 신랑이 된다는 해피 엔딩의 결말입니다. 자극적이지 않고 잔잔한 글이 고픈 날에는 이 소설이 어떨까 싶습니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최악의 겨울 황사가 물러간 오늘, 봄볕처럼 따사로운 오후에 나는 연애편지를 읽듯 이 소설을 읽었습니다. 

 

"결혼을 이렇게 서두르는 게 꼴사나운가요? 내가 기다리기 싫어서 그래요. 지금 당장 시작하고 싶어요.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는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무사히 약혼하면 그걸로 이야기가 끝인 줄 알았어요. 결국 제인 오스틴이 만족한다면 누가 봐도 만족스러운 일일 테니 말이죠. 하지만 아니었어요.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이에요. 앞으로 하루하루 새로운 줄거리가 되는 거고요. 어쩌면 내가 쓸 다음 책은 환상적인 신혼부부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 대해 알게 되는 것들에 관한 내용이 될지도 몰라요." (p.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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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이유 - 가슴 뛰는 여행을 위한 아홉 단어
밥장 글.그림.사진 / 앨리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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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하여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더없이 멋진 말로 정의하였지만 나는 그 중 "여행은 삶에서 출발하여 죽음을 향해 간다."는 루이 페르디낭 쎌린느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의 저서 <밤 끝으로의 여행> 도입부에 나온 말입니다. 여행은 삶의 저편에 속한다는 말로 끝을 맺고 있는 쎌린느의 정의는 나로 하여금 여행에 대한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게도 하였지만 때로는 현실과 아주 멀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불러온 것도 사실입니다. 누구나 현실에 붙잡힌 채 살다 보면 여행은 한낱 상상 속의 그 무엇이 되곤 합니다. '삶의 온도가 빙점 이하로 내려갔을 때, 그렇게 동양으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고 밝혔던 후지와라 신야의 고백에 비추어 보면 나에게는 아직 삶의 온기가 조금쯤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세월이 좋아져서 요즘은 맘만 먹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게 해외여행이라지만 실상 떠나고 싶다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껏해야 차를 몰고 휑하니 떠난 주말여행이나 그도 여의치 않으면 여행 서적을 읽으며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는 게 고작인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여행은 때로 잊혀진 꿈이자 로망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인 밥장의 <떠나는 이유>를 읽었습니다. 황금같은 주말에 말입니다. 내가 글을 쓴다면 아마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쯤 되지 않을까 싶은, 서글픈 기류가 듬성듬성 떠다니는 주말 오후에 작가와 함께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떠나봅니다. 마음 한켠에는 '언젠가는 나도...' 하는 옅은 희망을 품고서 말입니다.

 

밥장의 여행기는 처음인 듯합니다. 어쩌면 그의 책은 처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 소개를 보면 이런 저런 책을 여러권 집필한 인기 작가인 모양인데 왜 나만 몰랐던 것일까요. 작가는 꽤나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더군요.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평범한 회사원으로 생활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림에 빠져 아티스트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네요. 여행 마니아로도 유명한 저자는 이 책에서 그가 뽑은 여행의 아홉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그 아홉 가지 키워드는 '행운, 공항 + 비행, 자연, 사람, 음식, 방송, 나눔, 기록'입니다.

 

"뉴요커의 입맛을 사로잡은 타바론 차는 티 소믈리에가 여러 가지 차를 섞어 그 손님만의 향을 만들어주는 차라고 합니다. 저도 '장소'라는 재료를 섞어서 저만의 여행을 만들어보았습니다. 이 책은 장소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밥장만의 블랜딩으로 만들어낸 여행의 맛과 향에 가깝습니다." (p.21)

 

열거한 키워드만 보더라도 이 책의 내용을 대강 어림할 수 있겠지요? 그 중 방송과 나눔은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도 그랬습니다. 작가는 이미 EBS <세계문화기행>을 비롯한 몇몇 여행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마도 방송 큐레이터로서의 욕심보다는 타고난 여행 DNA의 촉수가 여행을 도와줄 여러 분야의 냄새를 맡고 그곳으로 뻗어가도록 부추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 남수단에 다녀온 적이 있다는 저자는 그곳에서의 경험이 꽤나 강렬했던 모양입니다. 지금은 내전이 일어나 갈 수도 없는 그곳을 다시 가보고 싶어 하는 작가의 마음이 '나눔' 편에 잘 드러납니다.

 

"중세의 수도사 테오필루스는 예술가의 재능이 질투라는 지갑과 이기심이라는 창고에 갇히지 않도록 해야 하고, 예술가 역시 자신의 재능을 기꺼운 마음으로 예술을 찾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하였습니다. 예술이 먹고사는 데 꼭 필요하지 않는데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은 가난하더라도 예술을 많은 이들과 나누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재능나눔으로 벽화를 그리러 가거나 그림을 그릴 때면 조용히 지켜보다 한마디 툭 던집니다. 그 말을 들으면 다시 힘이 솟아납니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더라."" (p.289)

 

각 챕터의 끝에 수록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음악’에는 작가가 각각의 여행지에서 들었던 음악을 소개하고 있는데 언급한 음악을 들어볼 수 있도록 QR코드를 수록해 놓은 것도 이채롭습니다. ' 어떻게 일상과 떨어져있으며, 또한 일상과 어떻게 연결이 되어 있는지를 복합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여행이다.'라고 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이 생각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삶의 온도가 임계점 이하로 내려가거나 미지의 세상으로부터 '먼 북소리'를 듣게 된다면 자신도 모르게 배낭을 꾸려 홀연 그 낯선 세상으로 뛰어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행은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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