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결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있다면 금연과 운동, 다이어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까닭에 매년 1월이면 이와 관련된 '결심상품'들이 불티나게 팔린다지요. 나는 체중이 갑자기 늘어 고민해 본 적도 없고, 매일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을 부러워한 적도 없습니다. 적어도 그 두 가지 문제에 있어서는 자유로운 셈이지요. 어려서부터 꾸준히 운동을 해왔으니 운동은 이제 습관처럼 굳어져 있고 그 덕분에 몸무게는 항상 일정합니다.
다만 흡연이 문제라면 문제였지요. 셋 중에 제일 심각하고 실천하기 어려운 문제를 지니고 있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금연을 결심해본 적은 많지 않아요. 금연을 권하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늘 '담배를 피워도 몸이 견딜 만하니까 피우지 몸이 못 견딜 정도면 끊어도 벌써 끊었을 것'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 놓았고, 나도 지금껏 그렇게 믿고 지냈습니다. 그렇다고 흡연의 심각성을 몰라서 그랬던 건 아닙니다. 설마 흡연자 중에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라구요. 아무튼 내가 금연을 시도해본 것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그 횟수가 적었다는 사실입니다.
"담배를 피우는 것, 담배에 중독되는 것, 그 외에 어떤 중독에 빠져 있다는 것은 어린 시절에 겪은 '치명적인 상실'(부모, 특히 어머니의 공감반응 부족이나 부재)이 있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담배는 그런 상실을 위로하는 진통제 또는 값싼 보상(요즘에는 가격이 비싸졌지만)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담배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은 그런 상실의 상태가 지속되고 고착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p.142)
몇 해 전이었나 봅니다. 아내가 갖다 준 금연 패치를 붙여보기도 했고, 패치를 붙인 채 담배를 피우면 위험하다는 경고 문구를 읽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담배를 피워 물었던 적도 있고, 한번은 금연침을 맞으면 효과가 있다는 말에 시간을 내어 용하다는 한의원을 찾아가기도 했고, 쑥 태우는 냄새가 나는 금연초를 사서 피워보기도 했고, 물을 마시면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듣고는 앉은 자리에서 물을 몇 컵씩 들이켜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나도 금연을 위해 안 해본 게 없는 것 같군요.
그러나 이와 같은 금연 보조제로 금연에 성공했다는 말을 주변에서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어떤 극단적인 방법으로 금연에 성공한 사람은 본 적이 있습니다. 지인 중에 하루에 2갑 이상의 담배를 피우던 애연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담배 한 보루를 사더군요. 그 담배를 들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는 줄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담배 연기가 빠지지 않는 그 방에서 담배 대여섯 갑을 피웠나 봅니다. 다음날 그 분은 동네 치과에 들러 스케일링을 받더군요. 그리고는 담배를 끊었습니다.
나는 사실 2015년 1월 1일부터 담배를 끊고 지금껏 금연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제 3개월에 접어드는군요. 그러나 지금도 '담배'라는 말만 들어도 흡연의 욕구가 생겨납니다. 나는 결코 금연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루에 한 갑, 적어도 반 갑 이상을 지속적으로 피우던 내가 어떻게 60일 이상 금연할 수 있었는지 나로서도 신기할 뿐입니다. 온갖 방법으로도 단 하루를 버티지 못했던 내가 말입니다.
"담배는 아무도 내 아픔을 알지 못할 때 나를 달래주었습니다. 담배는 내가 걱정, 근심에 휩싸여 뒤척일 때마다 마음을 가라앉혀주고 잠들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때로는 천생연분처럼 느껴졌고, 때로는 건강을 해친다는 세상의 말에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p.181)
담배값 인상이 예고되었던 지난해 말, 나도 남들처럼 여분의 담배를 사들이기 시작했었지요. 사재기까지는 아닐지라도 한 갑 살 걸 두 갑 사는 식으로 여분의 담배를 비축했던 셈입니다. 다른 흡연자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었지요. 2015년이 되고 기념으로 2,3일만 끊어보자 생각했습니다. 독하게 참으면 그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았거든요. 이삼 일이 지나면 다시 피울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 느긋해지더군요. 정말 성공했고, 나조차도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애초의 생각으로는 다시 담배를 피워도 되었지만 그동안의 노력이 헛수고가 된다는 게 조금 아까웠어요.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두고 보기로 했죠. 그랬던 게 지금까지 온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담배 생각이 간절할 때가 언제냐는 질문과 어떤 부작용(?)이 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하루 중 담배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더 적다고 말하는 게 옳을 듯합니다. 시시각각 담배 생각이 간절하지요. 이 책 <담배 끊을 용기>를 읽는 동안에도 내내 담배 생각에 시달려야 했으니까요. 금연의 부작용(?)은 밤에 잠자다가 한두 번쯤 잠에서 깨거나 처음부터 잠들지 못하여 서성거릴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담배를 피우던 때에는 없었던 일이죠. 잠들기 전에 담배 한 개비 피우면 노곤해져서 쉽게 잠들 수 있었고, 일단 잠이 들면 아침까지 깨지 않고 잤었는데 말입니다.
신체적 변화도 물론 있었습니다. 우선 눈에 띄는 변화는 혀에 끼던 백태가 사라졌고, 노랗던 소변 색깔이 투명해졌고 거품도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후각 기능도 좋아졌는지 옆에 담배 피우는 사람이 있으면 냄새로도 구분할 수 있겠더군요. 아침마다 산에 오를 때 웬만해서는 호흡이 가쁘지 않은 것도 나아진 점입니다. 금연 초기에는 짜증이 심했었는데 지금은 조금 덜해진 듯합니다.
이 책 <담배 끊을 용기>는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가 자신의 금연 경험을 토대로 쓴 책입니다. 20년 넘게 흡연자로 살아왔다는 저자의 경험담은 흡연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금연을 위한 심리적인 치료 과정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금연을 위해 정신적 안정과 자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금연으로 가는 구체적 과정을 생략했던 것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읽어보았던 책 중에는 흡연을 비롯한 여타의 중독을 치료하기 위한 책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 중 이소무라 다케시의 <이중세뇌>와 찰스 두히그의 <습관의 힘>보다 더 좋은 책은 만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2015년에는 나를 포함해 금연을 결심한 모든 분들이 성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