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아시아 - 새로운 백년을 이끌 거대한 도전
스티븐 로치 지음, 이건 옮김 / 북돋움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미국은 2007년 기준으로 GDP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72%(9조6천억달러)에 이른다.
나머지는 저축 1.5%와 인프라 등 투자와 수출이 16.5%다.
미국인들은 20세기 말부터 그 많은 소비자금을 부동산 대출과 신용대출로 마련했다.
그 자금은 미국의 재무부 채권을 세계시장에 발행하여 조달했고
미국 재무부 채권의 주요 구매자는 아시아, 중동 국가들이다.
저자는 저축이 부족한 상태에서 미국의 GDP를 유지하고 미국인의 소비를 이어가기 위해서 미국은 외국의 잉여저축을 들여와야 했고 
그래서 자본을 끌어들이려면 막대한 경상수지와 무역수지 적자를 일으킬 수 밖에 없다는 것...
역으로 미국의 이런 정책은 수출 주도로 성장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정책과 결합되면서 완벽하게 보완이 되었다.
 
세계경제 분석과 관련한 ’탈동조화(Decouling)’라는 용어가 있다.
한 나라, 일정 지역의 경제가 세계경제 흐름이나 특정 국가의 흐름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아시아 각국의 내부거래 규모가 늘어나고 미국에 대한 무역규모가 줄어들면서 아시아 경제가 미국경제로부터 서서히 독립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다.(유럽도 마찬가지...)
이 말은 외형적인 규모만 보아서는 그럴듯해 보인다.
2007년 기준으로 세계 전체 GDP에서 미국이 20%, 유럽이 20%, 중국과 인도만 합해도 21%나 되기 때문이다.(일본이 6%)
하지만 아시아 주요 국가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중국은 2007년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41%나 되고 41% 중 미국이 21%나 차지한다.
(한국은 GDP에서 수출이 36.7%, 그 중 미국이 13.3%를 차지한다.)
아시아 전체로 보면 아시아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45%까지 급증했다.
대신, 아시아의 내수(소비) 비중은 1990년대 말 57%에서 2007년 47%로 줄어들었다.
45% 중 아시아 역내 교역이 급증하기는 했지만, 대부분 부품 교역으로써 완제품으로 조립된 다음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으로 수출된다.
즉, 아시아 수출에서 미국과 선진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30%~40%나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소비를 통해 성장하려는 정책이 드디에 한계에 봉착했다.
미국은 개인 소득과 저축을 초과하고 보유자산까지 이용해서 소비를 너무 늘려왔다.
미국은 2007년 하반기 서브프라임으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발생하였고 그에 따라 유럽과 일본 등 선진국이 동시에 금융위기에 봉착했다.
2007~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위기는 신용위기와 실물경제까지 영향을 미쳤고
미국은 2008년 마이너스 성장까지 감수해야 했다.
미국의 소비와 성장이 정체되면 그 여파는 미국에 대한 수출로 먹고살던 아시아, 중동 등 세계 각국의 성장에 결정적으로 타격을 준다.
 
2010년 현재, 중국과 한국은 세계경제의 침체를 위한 임시방편으로 재정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은 2008년 11월 인프라 중심의 6,000억달러 규모의 재정지원책을 채택했고
한국의 MB정부는 3년짜리 22조원에 달하는 ’4대강 살리기’ 인프라를 채택했다.
그리고 미국은 2008~2009년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자금을 투입한 이후
무역수지 회복을 위해 수출을 장려하고 대외 무역수지를 줄이기 위해 미국에 대해
대규모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무역상대국을 압박하고 있다.
저자가 미국 경제학자로서 시장경제와 세계화를 신봉하고 살리고자 애쓰고 있는 반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목을 매고 있는 한국의 정부와 정치권, 경제연구소와 학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역시 사람들을 극심한 최악의 상황을 통해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정녕 변하지 않는 것인지...
 
저자는 이러한 각국의 정책이 세계경제 구조를 악화시키고 5~10년 후 더 큰 대규모의 경제위기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 이유는 세계 주요국가의 경제구조의 문제점은 ’균형’이기 때문...
미국은 저축이 부족하고 소비가 과다한 것이 결정적인 문제이고
아시아 각국은 저축과 수출이 과다하고 내수(소비)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경제가 선순환이 되기 위해서는 저축과 투자, 수출과 소비가 적절하게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
 
결국, 세계경제가 선순환 구조로 개선되고 각국이 경제위기를 극복하면서 서로 악영향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서는 ’균형회복’이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중국경제가 결국 ’균형회복’으로 나아갈 것이며,
중국 중심으로 아시아 경제가 통합되면서 19세기 유럽, 20세기 미국에 이어
아시아가 21세기 세계경제를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거시경제 지표로만 분석하고도 미국의 2007년 금융위기를 경고한 경제학자가 있다.

저자는 2007년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으로 취임하기 전 미국에서 근무할 때부터 미국 경제의 금융위기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저자는 아시아에 관한 한 낙관론자로서 세계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떠오른 아시아의 앞길에 숨겨진 기회와 도전, 위험을 탁월한 통찰력으로 분석한다.
그는 이 책에서 아시아와 세계화의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어보며 19세기 유럽, 20세기 미국에 이어 다가오는 백년을 이끌 ‘아시아 세기’라는 꿈과 희망을 실현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큰 그림을 제시한다.

이 책은 저자가 각종 신문사나 경제지, 의회 청문회에서 발표한 원고를 주제별, 일자별로 엮은 것이다.
따라서 지겹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곳곳에서 중복된 주장과 수치와 자료를 만나게.
이 때문에 한 편으로는 짜증도 났지만,
저자의 집요한 주장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문제제기하고 싶은 것들...
1. 왜 중국경제가 미국과 달리 ’균형회복’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전망하는지...
   책 속에서 저자는 중국의 경제주체에 대해 자주 불안감을 표출했다.
   특히,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외형과는 달리 ’성’ 단위로 경제가 운용되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지시하고 통제하는 금융정책과 경제정책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데...
2. 거시경제의 ’균형회복’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닌지...
   이 책에서 주로 거론되는 미국, 중국, 인도, 아시아, 중동국가들은 모두 ’지니계수가’가 아주 높은 국가들이다.
   즉, 빈부격차가 극심한 상황이고 더 좋지 않은 것은 그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수(소비)’가 늘어나는 것 역시 그 ’양’에 못지않게 ’질’도 중요할 것이다.
   빈부격차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고용이 안정되지 못한 것이고 실질임금이 저조하다는 것이고
   결국 부자들의 소비에 끌려간다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저축률이 50%에 달하는 것이 사회안전망이 부족해서라면,
   한국은 사회안전망이 훌륭한 편인데 왜 저축률이 부족하고 내수(소비)가 살아나지 않는 것일까?
3.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근본적인 문제는 아닐까?
   21세기는 한 국가의 정책이 경제주체, 특히 자본가들과 투자가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세계경제가 흔들리고 미국에 금융위기와 경제위기가 발생해도 미국 내 자본가들과 주요 투자가들의
   수익율은 오히려 더 높아졌다는 것이 그 반증이 아닐까? 
 

* 저자 소개 : 스티븐 로치(Stephen S. Roach)

30년 넘게 월가의 선구적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다. 현재 모간스탠리 아시아 회장으로 홍콩에서 근무하고 있다. 경력 기간 대부분을 모간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로서 뉴욕, 런던, 프랑크푸르트, 파리, 토교, 홍콩, 싱가포르의 유력 경제팀을 이끌며 ‘월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코노미스트’라는 평판을 얻었다. 2007년부터 모간스탠리 아시아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에는 세계화, 중국과 인도 신흥 시장의 부상, 세계 경제 불균형이 자본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에 초점을 맞춘 분석을 내놓으며 아시아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다. 스티븐 로치의 견해는 세계 유수 언론에 널리 보도되고 있다. 그는 미국 의회에서 증언하기도 했으며, 세계 주요 정부와 기관, 정책 입안자들에게 자문을 하고 있다.
그는 신용에 기반한 미국의 과잉 소비와 아시아 경제의 과도한 수출의존도에서 야기된 ‘글로벌 불균형’이 결국 자본시장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같은 논리로 세계 금융위기를 예견하는 등 대표적 신중론자로 분류된다. ‘W자형 경기 침체’를 의미하는 ‘더블 딥(Double-Dip)’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기도 했다.
1982년 모간스탠리에 합류하기 전에 그는 모간개런티트러스트와 워싱턴 D.C. 연방준비위원회에서 근무했다. 뉴욕 대학(New York University)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에서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코네티컷에 사는 가족과 아시아 8개국 사이를 오가며 시차를 극복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 2010년 9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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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국제자원 쟁탈전 - 에너지의 새로운 지정학
Michael T. Klare 지음, 이춘근 옮김 / 한국해양전략연구소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지난 화요일 공보모임에서 교재로 삼아 세미나를 진행한 책이다.
이전 세미나에서 앤서니 기든스의 <기후변화의 정치학>을 공부한 후, 21세기 인류에게 닥친 에너지 문제와 에너지를 둘러싼 세계 각국의 노력과 갈등, 위협과 대안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다.
 
서울 주유소 대부분의 휘발류 1리터 가격이 2,000원대를 기록한지 한참 되었다. 물가인상과 고유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정부에서 정유사들을 압박하여 유가를 내리려다 실패한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생색내기’에 치우친 정부 관료들의 모습에 헛웃음도 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에너지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실행하지 못하는 정부의 한심한 모습에 우울한 기분이 든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사회문제화되지 않았고 정책의 우선순위에도 오르지 않았지만, 에너지 문제는 20세기 후반기부터 전세계 각국의 초미의 관심사이자 각국의 정책에서 최우선 순위라 할 수 있다. 중동 분쟁,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란에 대한 봉쇄, 아프리카 다루프루 사태, 중국과 일본의 동지나해 영유권 분쟁, 미국과 중국의 갈등, 중동 민주화 투쟁에 대한 서구국가들의 상이한 대처 등 현재 많은 세계의 갈등과 분쟁의 이면에 에너지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이 책의 주제는 지구상 주요 국가들이 현재의 석유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석유 및 천연가스는 물론 광물자원들을 획득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그러한 노력들이 지구상에 어떠한 불안정과 분쟁을 야기하고 있는지, 그리고 세계의 안정과 평화에 위협이 되고 있는 ’자원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 * 마이클 클레어는 누구인가? ----------------------------
미국의 안보전문가이자 군사전문가이다. 1963년 컬럼비아 대학에서 석사, 박사(68년) 학위를 받고, 워싱턴에서 1977년부터 1984년까지 워싱턴 D.C의 정책연구소에서 군사와 비무장에 관해 연구하였으며, 1985년부터 PAWSS(Peace and World Security Studies)의 책임자이다. ------------------------
 
저자는 책을 9개의 장으로 나누어 에너지 문제를 다루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2005년 ’유노컬 사건’을 통해 석유 및 에너지 자원 구입문제는 이미 순수한 상업 거래의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유노컬 사건’이란 중국의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 Limited)가 115년 역사의 미국 석유회사인 유노컬을 185억달러에 인수하려하자 CNOOC보다 적은 입찰가를 제시한 미국의 세브론사의 치밀한 공작과 미국 내 정치권과 언론 등이 나서서 이 문제를 ’국가 안보’ 문제로 이슈화시켰다. 20세기 하반기부터 미국이 전세계에 퍼뜨리기 시작한 ’자유무역’의 원칙은 오간데 없이 사라졌다. 결국 CNOOC는 유노컬 인수를 포기하였다. 일부 분석가들은 ’유노컬 사건’이 미국과 중국 관계의 분기점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제1장 [달라진 세상]에서 저자는 20세기 후반 냉전시대가 종료한 이후 에너지 문제가 각국의 정책에서 최우선 순위로 올라서면서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질서가 ’신국제 에너지 질서(New International Energy Order)’로 재편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새로운 국제 에너지 질서에서 국가들은 이제 군사력이 아니라 에너지가 있는 나라와 부족한 나라로 구분되고 에너지에 대한 접근성이 높은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로 재편되게 된다.
민간 석유회사들이 전세계 석유 생산량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 석유회사들이 에너지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극복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 지도자들은 에너지 획득 문제를 직접 챙기기 시작했다. 이는 결국 ’에너지 민족주의’ 또는 ’자원 민족주의’로 정의될 수도 있다.



제2장 [늘어나는 석유 수요량, 줄어드는 석유 부존량]에서 저자는 ’석유 정점(Peak Oil)’을 둘러싼 여러가지 주장과 의견을 소개하면서 21세기 내에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량이 ’정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석유와 천연가스 뿐 아니라 석탄, 우라늄, 구리, 보크사이트, 백금 등 산업생산에 필요한 대부분의 광물자원 역시 뒤이어 생산량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저자는 석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광물의 생산량 감소에 따라 에너지 문제가 정부의 우선순위가 되고 ’비경제적인 자원’의 활용이 늘어남으로써 지구 기후변화 문제가 정책의 순위에서 밀려남과 동시에 더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됨으로써 지구와 인간의 환경이 지금보다 더 열악해질 수 있음을 우려한다.
 
3장에서 7장까지는 에너지 문제를 둘러싼 주요 국가들의 모습과 카스피해, 아프리카, 중동지역의 에너지 갈등 문제를 설명한다.
제3장 [친디아의 도전]에서는 20세기 중반 이후 중국과 인도의 산업화 과정과 폭발적인 성장, 그에 따른 엄청난 자원 사용문제를 이야기한다. 중국과 인도의 엄청난 산업 성장은 블랙홀처럼 전세계의 에너지 자원을 소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중국과 인도 정부는 전세계에서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으로 자원보유 국가들과 협력과 개입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의 그러한 노력은 미국과 러시아, 유럽과 일본 등 기존 경제강국과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게 된다.

제4장 [러시아 에너지의 파괴력]에서는 1990년대 초 소련 제국의 멸망 이후 러시아의 정치경제 흐름을 살펴본 후 푸틴 대통령이 어떻게 러시아의 정치경제 권력을 장악했는지, 국영 에너지기업인 가즈프롬 회사를 발전시켰는지 설명한다. 푸틴과 가즈프롬은 러시아의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러시아의 대외적 국력과 강제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가즈프롬을 통해 시베리아 석유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경쟁, 해외 민간기업의 배제와 통제하는 모습을 통해, 그리고 카스피해의 자원개발과 관리를 둘러싼 러시아 정부와 가즈프롬의 공격적이 행보를 통해 드러난다.


제5장 [고갈되는 카스피해 연안의 석유] 카스피해 주변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그루지아, 아르제바이잔, 키르키즈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에는 소련이 방치한 자원이 상당량 존재한다. 저자는 카스피해의 자원을 둘러싼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일본, 유럽국가들의 경쟁적인 모습을 이야기한다.
미국은 소련 제국 멸망 후 1970년대부터 정치군사적인 이유로 카스피해 지역에 접근하기 시작했으나 1990년대 이후부터는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아르제바이잔, 그루지아, 키르키즈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키르키즈탄과 우즈베키스탄(일시적)에는 미국 군사기지가 있다.
러시아는 자원이 부족한 국가는 아니지만, 정치군사적인 이유와 더불어 카스피해 지역의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과거 소련 영토인 카스피해 지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과거 소련 영토 내의 국가들과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를 구성하여 카스피해 국가들을 관리하고 있다.
중국은 1996년 테러 방지와 안보협력을 위해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키즈단, 타지키스탄과 함께 ’상하이 기구’를 설립하여 협력하기 시작했다.(나중에 우즈베키스탄 참여) 이를 통해 중국은 카스피해에서 자원을 개발하고 획득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석유 수립의 중가는 더 강력한 독재정권과 일치하며 통치자들이 자신들의 부를 엘리트들에게 일정부분 나누어줌으로써 통치자의 능력을 강화하는 한편 경제 및 정치 개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은 지연되고 있다"고 말한다. 석유로 인한 부가 소수에게 집중됨으로써 부에서 소외되고 가난한 대중들의 욕구 불만과 분리주의는 개별국가와 지역의 불안정을 촉발시키게 되고 불안정은 외부세력의 개입을 초래할 수 있다. 



제6장 [아프리카의 사활적 자원을 향한 지구의 총공격]은 아프리카 자원의 특성과 ’아직도 유럽의 사냥터인 아프리카의 현실’을 이야기한 후, 20세기 후반 이후 자원을 목표로 하는 미국의 진출과 중국의 적극적인 공략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프리카 자원국가들의 모습은 ’자원의 저주’를 받은 카스피해 지역의 국가들과 비슷하거나 더 열악한 상황이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자원을 둘러싼 갈등과 불안정성은 카스피해 지역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제7장 [미국의 호수를 향한 공격] 중동의 ’페르시아만’은 1950년대 이후 ’미국의 호수’라고 불리운다. 그만큼 석유자원을 중심으로하는 중동지역에 대한 대한 미국의 경제,군사적인 지배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 냉정이 해체된 이후 중동지역의 자원을 둘러싼 새로운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중동 산유국들은 국내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치,외교,군사,자원 거래에서 미국 의존도로부터 벗어나고 있으며 이에 발맞추어 러시아와 중국, 유럽과 일본, 인도 등의 공략이 진행되고 있다. 



제8장 [문턱을 넘다]에서 저자는 자원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경쟁과 갈등이 결국 ’위험한 선’을 넘어서고 있고 앞으로도 그런 양상이 더욱 노골화될 것을 우려한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은 중동, 카스피해, 아프리카의 자원을 지배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무기를 공급하고 있고 필요한 경우 ’함포외교’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유라시아 지역에서는 ’상하이 기구’를 중심으로하는 중국과 러시아 대 미국과 일본이 등 과거의 냉전을 방불케하는 새로운 ’블럭’을 형성되고 있다. 
자원 경쟁을 위한 에너지 민족주의와 블록 형성이 지정학적 충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경고한다.

제9장 [재앙을 피하기 위한 방안들]에서 저자는 21세기에 자원 갈등으로 인한 세계적인 대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한다. 이 두 국가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고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으며 ’G2’라 불리울 정도로 서로 무시할 수 없는 국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국과 일본이 에너지를 둘러싼 갈등과 분쟁을 확산시키지 않도록 하는 협력과 협조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동시에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원을 개발하고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도 구축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개인적으로는 산업적인 생산방식과 ’성장’, 그리고 ’경쟁’만을 고집하는 현대의 국가사회시스템으로는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류는 ’경쟁’이 아닌 ’협력’과 ’공생’을 통해 미래 재앙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고 개인과 집단, 사회와 인류의 ’성숙’과 ’행복’을 이루어낼 수 있다.
그럼에도 현재 거의 대부분의 인류가 산업 생산양식과 성장, 경쟁을 ’종교’처럼 받들고 피튀기는 경쟁을 계속하는 상황에서는 현실적인 상황에 맞추어 문제에 접근할 수 밖에 없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저자는 에너지의 고갈 문제, 에너지를 둘러싼 지정학적인 갈등, 그리고 현실적인 분쟁들과 미래의 재앙의 위협에 대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저자의 구체적인 사례 제시와 원인분석을 통해 20세기 후반부터 지구상의 각종 사건을 둘러싼 내면적인 요인들 중에서 에너지를 이유로 한 ’국가안보’가 가장 크게 부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막연하게 미래가 희망적이라고 제시하지도 않았고 또 무조건 절망적이라고 포기하지도 않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위협과 재앙으로부터 가장 크게 고통받게 되는 사람들은 결국 약소국의 민중들이고 지구상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임을 확신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저자가 차갑고 논리에만 충실한 이론가이자 따뜻한 마음을 지닌 지식인임을 느낄 수 있었다.
 
책 속에서 거론되는 세계적인 ’자원쟁탈전’은 분명 심각한 재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미 인류는 자원과 시장을 둘러싸고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치루었고 그로 인해 수 많은 인명이 살상되었다. 전쟁에서 패배한 국가  뿐 아니라 승리한 국가도 수 십년간 그 고통을 치유한 바 있다. 세계대전에서 가장 큰 이익을 냈고 피해가 적은 집단은 바로 자본가 세력과 관료들이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은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에게 치명적인 파괴와 인명피해를 가져다 주었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일본 제국주의로 인한 피해가 국가와 사회 곳곳에 아직도 남아 있다.
우리나라는 강대국들이 침을 흘릴 수준의 자원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잘 느끼지 못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중앙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에는 강대국들의 자원쟁탈전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강대국들은 겉으로는 자유와 평화, 인권과 민주주의를 외칠 뿐 자원을 가져가기 위해 자원보유국 정부가 군사정권이든, 독재정부든, 자국의 국민들을 학살하든, 인권을 탄압하든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자원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그런 독재정부를 지원하고 학살과 탄압을 요구하기도 한다.
가슴아픈 일이고 분노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고통받고 굶주리는 약소국 민중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가 않고 근본적으로 해결해줄 수도 없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대안으로 제시한 ’미국과 중국의 협력’에 대해서는 다소 비관적이다. 소위 선진산업국가 중에서 가장 국가이기주의가 극성이고 약소국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그리고 일당독재를 통해 13억 인구를 통치하면서 ’국가의 부’를 하루빨리 증대시켜야 하는 중국 역시 중화민족주의가 거세다. 두 국가 모두 이성이나 인류 전체 차원에서 에너지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국가가 아니다.
내가 판단컨대, 미국과 중국은 국민들의 이해와 요구가 올바로 수렴되고 집행되는 체제가 아니다. 미국은 자본과 기득권에 둘러쌓인 정부이고 중국은 일당독재 국가다. 중국 뿐 아니라 미국 역시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는 아니다. 일본과 인도, 러시아도 마찬가지... 그런 면에서 서유럽과 북유럽 정부체제는 민주주의 면에서는 다소 진보적인 국가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유럽의 역할에 좀 더 기대하는 편이다.(하지만, 국가를 통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국가 이외의 정치세력에 대해서는 거의 거론하지 않았다. 21세기 들어 서구 국가들에서 관료와 자본의 힘은 커지고 정당의 힘은 약화되고 있다. 정당은 보통 자본과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정당과 민중과 진보,민주세력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나누어져 있다. 대신 NGO와 같은 시민단체들은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세계 각국의 진보적,민주적 정당들과 시민세력의 공동대응이 불가피해지는 구조가 될 것을 예고하는지도 모르겠다.
 
[ 2011년 7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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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진화 - 대니얼 데닛이 들려주는 마음의 비밀 사이언스 마스터스 9
대니얼 C. 데닛 지음, 이희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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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한 번쯤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한다.
누군가의 마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 수 있을까?
남자가 된다는 게 어떤 건지 여자는 알 수 있을까?
태어날 때 아기는 어떤 경험을 할까?
태아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경험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경험일까?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의 마음은 어떤 상태일까?
말도 생각을 할까?
왜 대머리수리는 동물의 썩은 사체를 먹으면서도 메스꺼움을 느끼지 않을까?
사람을 제외한 모든 동물은 정말로 마음이 없는 로봇에 불과한 것일까?
어느 험상궂은 사람이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없는 것일까?
 
이 책은 < 섹스의 진화 >, <원소의 왕국>, < 마지막 3분 >, <인류의 기원>, <세포의 반란>, <휴먼 브레인>, <에덴의 강>, <자연의 패턴>에 이어 - 사이언스 마스터스 시리즈 - 의 아홉 번째 책으로, ’마음의 비밀’을 주제로 삼았다. 
 
인지연구센터 소장으로서 인공 지능 로봇 코그(Cog)의 개발에 지대한 공헌을 한 저자는 진화론의 개념을 적극 활용하여 철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세계적인 철학자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누구나 한번쯤은 품어 보았을 마음에 대한 질문들을 하나하나 철학적, 과학적으로 정제된 언어로 소개한다.
 

마음은 신비하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를 사로잡아 온 질문이다.
그들은 무수한 질문을 던지고 무수한 해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마음의 수수께끼를 속 시원하게 풀지는 못했고 대개의 경우 형이상학적 말놀이에 그쳤다.
현대 신경과학과 인지과학 그리고 뇌과학의 엄청난 발전은 기존의 철학자들이 내놓은 형이상학적 해답을 헛소리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마음의 물리적 기초를 밝혀내는 데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신경 네트워크, 시냅스, 신경 전달 물질, 뇌의 구조가 MRI 같은 새로운 기술을 통해 하나둘씩 그 정체가 밝혀짐으로써 우리 인류는 마음이라는 거대한 미지의 대륙으로 한 걸음 발을 들여 놓았다.
그러나 현대 뇌과학도 마음과 마음 사이에 있는 벽을 넘지 못하고 있으며 마음의 본질에 대한 온전한 설명도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신경 세포 사이의 전자 불꽃과 신경 전달 물질의 이동을 분석해도 왜 인간은 동물과 다른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까?
어떻게 해서 인간은 자신의 행동과 생각에 대해 반성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리고 우리가 만든 기계는 마음을 가지게 될까?
하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한다.
 
저자는 독특한 가설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그것은 ’생산’과 검증의 탑’이라는 모형이다.
유기체가 미래를 생산하는 양식과 그것이 현실에서 검증되는 양식의 다양성을 검토하면서
그는 진화론적 발전 단계에 따라 유기체를 다윈 생물, 스키너 생물, 포퍼 생물, 그레고리 생물로 구분한다.
가장 하등단계에 있는 다윈 생물은 회로가 닫혀 있다.
스키너 생물은 학습 능력을 가지고 있다.
포퍼 생물은 사전 예측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레고리 생물은 외부 환경을 내부환경에 옮겨 놓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그레고리 생물로 발돋움한 것은 언어라는 강력한 마음의 도구를 발전시켜 외부 환경에 대한 의존도를 줄였기 때문이다.
그레고리 생물은 세상에 대한 표상을 내부 환경 안에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생물이다.
 
저자는 마음의 종류, 마음 연구의 방법론, 마음의 진화적 역사, 몸과 마음의 관계, 의식적 사고, 생각의 탄생 등 마음 연구의 모든 영역을 흥미로운 사례와 신선한 물음으로 알기 쉽게 개괄하면서
철학적 문제틀과 진화생물학 및 현대 뇌과학의 최신 성과들을 종합하여 오랫동안 철학자들이 다루어 왔지만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던 ‘마음의 본질’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모색한다.
이 책은 마음의 문제를 둘러싼 형이상학적 철학의 공허함과 자연과학의 단편성을 극복하려는 시도이며 자연과학의 도전에 대한 철학의 응전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알 수 없는 것’이라는 불가지론과 맞서려 한다.
우리는 동물과 의사소통할 수 없기 때문에 동물에게 우리와 같은 마음이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생각, 마음이 있는 존재와 마음이 없는 존재의 경계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마음의 존재 유무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 등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단순하게 자기를 복제하는 데 급급한 세균에서 자기 행동의 일거수일투족을 의식하고 신경 써야 하는 인간까지 마음이 어떤 식으로 진화되었는지, 몸과 마음의 관계는 무엇인지, 언어는 어떻게 탄생했는지, 마음의 진화와 도구 사용 또는 문자(상징)의 상호 작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하나하나 설명해 나간다.
 
저자가 철학과 첨단 뇌과학을 이용하여 인간 마음의 진화와 구조를 분석하려는 시도는 신선하고 훌륭했으나, 실제 그 결과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것 같다.
책 속의 철학과 뇌과학은 매끄럽게 결합되지 못하였고
다양한 이론과 연구결과를 소개하는 수준에 그친다.
몇 가지 자신의 가설과 주장을 설명하는 내용이 기억에 남기는 하지만,
그것들이 명확하고 구체적, 논리적으로 독자에게 설득되지는 않아 보인다.
그만큼 21세기 과학자와 철학자들에게 인간의 마음에 대한 연구와 분석은 어려운가 보다.
 
- 기억에 남는 조사 결과(226쪽) :
자주 관찰되는 현상은 아니지만 집을 떠나 병원에서 지내게 된 노인들은 육체적으로는 더 없이 편한 대우를 받는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불이익을 당하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심지어 그들은 노망기를 보이기도 한다.
음식을 먹고 옷을 입고 몸을 씻는 기본적인 할동조차 제대로 해 내지 못한다.
그러니 더 큰 흥미를 나흔 활동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런데 막상 집으로 돌아가면 혼자서 그럭저럭 생활을 꾸려 나간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은 집이라는 환경 안에 너무도 낯익은 표지, 몸에 밴 행동을 유발하는 자극제,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에 음식이 있고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하며,
전화기는 어디에 있는지 등을 일깨워 주는 신호를 투여해 온 것이다.
새로운 종류의 학습을 하기에는 뇌의 기능이 둔화되었지만 노인은 그처럼 지겹도록 낯이 익은 세계에서라면 혼자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그런 노인을 집 밖으로 내모는 것은 사실상 마음의 주된 영역에서 그를 단절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 잠재적 충격파는 뇌수술에 버금갈 것이다...  

 
[ 2010년 9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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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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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책장에 꽂아놓고 여러번 읽을만 하다.
 
지난 달 MB정부의 인사청문회에서 여러 명이 탈락하고 여러 명이 도덕적으로 상처를 받았다.
국무총리 후보 김태호씨와 문화부장관 후보 신재민씨...
그들은 불법행위를 저질렀는가? 아니면 부도덕한 행위를 한 것인가?
특임장관 후보와 이재오씨와 경찰청장 후보 조현오씨는 과연 ’정당’한가?
21세기 한국사회는 ’정의’나 ’도덕’에 대해서 너무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다.
특히, 오피니언 리더들의 경우 더 심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도덕 기준’을 가지고 있을까??
  
"당신은 전차 기관사이고, 시속 100킬로미터로 철로를 질주한다고 가정해보자.
저 앞에 인부 다섯 명이 작업 도구를 들고 철로에 서 있다. 전차를 멈추려 했지만 불가능하다.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이 속도로 다섯 명의 인부를 들이받으면 모두 죽고 만다는 사실을 알기에(이 생각이 옳다고 가정하자.) 필사적인 심정이 된다.
이때 오른쪽에 있는 비상 철로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도 인부가 있지만, 한 명이다.
전차를 비상 철로로 돌리면 인부 한 사람이 죽는 대신 다섯 사람이 살 수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돌려! 죄 없는 사람 하나가 죽겠지만, 다섯이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한 사람을 희생해 다섯 목숨을 구하는 행위는 정당해 보인다.
이제 다른 전차 이야기를 해보자.
당신은 기관사가 아니라, 철로를 바라보며 다리 위에 서 있는 구경꾼이다.(이번에는 비상 철로가 없다.)
저 아래 철로로 전차가 들어오고, 철로 끝에 인부 다섯 명이 있다. 이번에도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전차가 인부 다섯 명을 들이받기 직전이다.
피할 수 없는 재앙 앞에 무력감을 느끼다가 문득 당신 옆에 덩치가 산만 한 남자가 서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당신은 그 사람을 밀어서 전차가 들어오는 철로로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면 남자는 죽겠지만 인부 다섯 명은 목숨을 건질 것이다.
(당신이 직접 철로로 몸을 던질 생각도 했지만, 전차를 멈추기에는 몸집이 너무 작다.)
그렇다면 덩치 큰 남자를 철로로 미는 행위가 옳은 일인가?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연히 옳지 않지. 그 남자를 철로로 미는 건 아주 몹쓸 짓이야."
누군가를 다리 아래로 밀어 죽게 하는 행위는 비록 죄 없는 다섯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 해도 끔찍한 짓 같다.
그러나 여기서 애매한 도덕적 문제가 생긴다.
한 사람을 희생해 다섯 사람을 구하는 첫 번째 예에서는 옳은 것 같았던 원칙이 왜 두 번째 예에서는 잘못된 원칙으로 보일까? "
(책의 본문 중에서 / pp.36~40)
 
이 책은 저자가 하버드대학에서 20년간 수강생들에게 ’정의’와 ’도덕’에 대하여 강의한 내용을 토대로 하여 엮은 책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저자는 사회에서 정의에 대해 묻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을 올바르게 분배한다. 다시 말해, 각 개인에게 합당한 몫을 나누어 준다.
이 때 누가, 왜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묻다 보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서구와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런 ’정의’를 묻고 논의하기 시작했고
대립하는 여러가지 주장을 검토하면서 ’재화 분배’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을 찾았다.
그것은 행복과 자유와 미덕이었다.
저자는 세 가지 개념에 대한 사례와 이론을 검토하면서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도덕적 진실과 도덕적 사고, 도덕적 판단을 위해 정치철학을 탐구하자고 제안한다.
 
이 책이 아리스토 텔레스, 칸트, 제레미 반담(공리주의), 존 스튜어트 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자유지상주의), 존 롤스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어려운 고대와 근현대 정치철학을 다루고 있음에도 그렇게 어렵지 않게 읽었다.
그것은 저자가 아래와 같은 상당히 많은 사례와 샘플을 제시하면서 독자들의 구체적인 고민을 이끌어내면서 고민하고 생각하고 논쟁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 철로에 서 있는 인부들을 어떻게 구출해야 하는가?
- 2004년 플로리다를 덮친 허리케인의 악몽 속에서 물품과 서비스 가격을 10배 이상 올려 폴리를 취한 업자들을 처벌해야 하는가?
- 어떤 상처를 입어야 상이군인훈장을 받을 수 있을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훈장을 받을 자격이 없는가?
- 2008년 미국 금융계가 구제금융을 받은 후에 임원들에게 상여금을 지급한 것은 부당한 행위인가?
- 2005년 아프카니스탄에 비밀정찰업무로 파견된 미국 특수부대원들이 정찰 중에 염소치기 민간인(아파카니스탄인과 어린이)을 발견하였을 때 이들을 사살해야 했을까? [당시 미군들은 그 민간인들을 살려주었고 몇 시간 후 탈레반들에게 포위되어 세명이 죽고 구출하러온 헬리콥터도 파괴되어 추가로 16명이 죽었다.)
- 1884년 영국 선원 4명이 배가 난파되어 구명보트에서 구조를 기다리다가 19일째 되는날 가장 어리고 병약한 젊은이를 살해하여 5일간 식용으로 먹은 후 구조되었다. 이들을 처벌해야 하는가?
- 한 때 한국 젊은이들이 푹 빠진 미국 드라마 ’24시’에서 주인공 잭 바우어는 테러리스트라고 확신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고문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것은 정당한가?
- 대가를 받는 임신은 권리나 합리적 계약인가, 부도덕한가?
- 마이클 조던이 마직으로 NBA 무대를 뛸 때, 그는 한 시즌에 3,100만달러의 연봉을 받았다.
이 때 정부가 조던의 연봉에서 상당한 세금을 부과하여 가난한 이들의 복지에 사용하는 것은 조던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아닌가?
- 2001년 독일에서 소프트웨어 기술자가 인터넷에 ’죽어서 먹힐 의향이 있는 사람을 찾는’ 광고를 올려 찾아온 컴퓨터기술자를 죽여 시체를 토막낸 뒤 요리해 먹었다.
이 때 그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을까?
- 군대에 대한 봉급제, 징집제, 자원제, 용병제는 도덕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이러한 정의와 부정의,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에 관하여 다양한 주장이 난무하는 영역을 어떻게 이성적으로 통과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답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책은 사상의 역사가 아닌 도덕적, 철학적 사고를 여행한다.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가 책 속에 등장하지만 정치사상사에서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미쳤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정의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정의’와 ’도덕’에 대한 주요 이론과 주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아리스토 텔레스 : "정의는 목적론에 근거한다. 권리를 정의하려면 문제가 되는 사회적 행위의 ’텔로스(목적,목표,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바이올린은 세상에서 가장 바이올린을 잘 켜는 자가 차지해야 한다.
2. 제레미 반담 : 도덕의 최고 원칙은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쾌락이 고통을 넘어서도록 하여 전반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 사람들의 옮은 행위는 ’공리’를 극대화하는 모든 행위.
3. 존 스튜어트 밀 : 사람들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개인의 자유를 간섭하면서 개인을 보호하려 들거나 다수가 믿는 최선을 삶을 개인에게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4.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 "경제평등을 성취하려는 시도는 하나같이 강압적이고 자유사회를 파괴하기 마련".
  "국가가 할 일이라고 널리 인식된 행위 가운데 상당수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법행위".
5. 로버트 노직 : 분배정의를 구현하려면 돈을 벌 때 사용한 자원이 애초에 합법적인 소유물이었는지, 시장에서 자유로운 교환으로 또는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이 건네준 선물로 벌었는지가 중요하다. 부당하게 얻은 것으로 경제활동을 시작하지 않는 한 자유시장에서 분배는 그 결과가 평등하든 불평등하든 정당하다.
6. 이마누엘 칸트 : 어떤 행동이 도덕적으로 선하려면 "도덕법에 순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도덕법 그 자체에 기여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행동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동기는 의무인데, 칸트가 말하는 의무 동기란 올바른 이유로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6. 존 롤스 : "자연의 분배방식은 공정하지도, 불공정하지도 않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특정한 사회적 위치에 놓이는 것 역시 부당하지 않다. 그것은 타고나는 요소일 뿐이다. 공정이나 불공정은 제도가 그러한 요소들을 다루는 방식에서 생겨난다."
 "우리가 그러하 요소를 다룰 때, 서로의 운명을 공유하고 우연히 주어진 선천적이거나 사회적인 환경을 자신을 위해 이용하려면 그 행위가 반드시 공동의 이익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저자는 존 롤스의 이론을 결론으로 삼고 그에게서 21세기 미국의 ’정의’와 ’도덕’을 찾는 듯 하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정의와 권리에 관한 논의를 좋은 삶에 대한 논의에서 분리하려는 시도는  두 가지 이유로 잘못이다.
본질적인 도덕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정의와 권리의 문제를 결정할 수 없고,
설령 그럴 수 있다 해도 바람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려운 정치철학의 개념과 이론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고 편하게 풀어나간다.
하버드에서 그를 유명하게 만든 실제 정의 수업의 방식은 이 책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데,
도발적으로 질문하고, 반박하고, 재검토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과정은
다원화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각계 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한 공동선을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저자가 제시한 수 많은 사례는 한국사회,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않게 벌어지는 여러가지 사건과 상황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다.
우리 역시 ’정의’나 ’도덕’에 대해 자주 고민하고 갈등하고 있으니까... 
그나마 머리 속에서 웅얼대고 혼란스러웠던 ’정의’와 ’도덕’에 대한 저자의 논리와 의견을 접하고서
내 나름대로 여러가지 해석 및 판단기준을 세울 수 있음이 이 책을 읽은 소득이고...
 
이 책을 읽으면서 부러웠던 점은,
중요한 철학적, 도덕적 쟁점과 개념을 공개적으로 오픈하고
다양한 사람과 계층, 집단이 상대방의 의견과 주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공공연하게 펼치는 점과
그것을 이성적,논리적으로 헤쳐나가려 하는 노력한다는 점...
아마 그런 토대가 19세기와 20세기에 서구와 미국이 지구의 정치경제와 문화사상을 주도하게 된 근본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이 책은 서구식, 미국식 ’정의’와 ’도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비록 내가 한국, 중국 등 동양의 고전에 대해 그다지 아는 바가 없고
결과적으로 동양이 서양 문물에 경도되어 왔던 20세기를 지나왔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이 책 속에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고 부족한지 지적할 수는 없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답답했고 무언가 안타깝고 아쉬웠다.
 
물론, 나의 ’부덕’과 ’무지’의 소치이지만...ㅎㅎ 
 
 
이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 들어가는 말

[1] 옳은 일 하기
1. 행복, 자유, 미덕
2. 어떤 상처를 입어야 상이군인훈장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3. 구제금융을 둘러싼 분노
4.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
5. 철로를 이탈한 전차
6. 아프가니스탄의 염소치기
7. 도덕적 딜레마

[2] 최대 행복 원칙
1. 공리주의
2.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
3. 반박 1: 개인의 권리
4. 반박 2: 가치를 나타내는 단일통화
5. 대가를 받고 치르는 고통
6. 존 스튜어트 밀

[3]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1. 자유지상주의
2. 최소국가
3. 자유시장 철학
4. 마이클 조던의 돈
5.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4] 대리인 고용하기
1. 시장과 도덕
2. 징집과 고용, 무엇이 옳은가?
3. 자원군 옹호
4. 대가를 받는 임신
5. 대리 출산 계약과 정의
6. 외주 임신

[5] 중요한 것은 동기다
1. 이마누엘 칸트
2. 칸트의 권리 옹호
3. 행복 극대화의 문제점
4. 자유란 무엇인가?
5. 사람과 사물
6. 도덕이란 무엇인가? 동기를 찾아라
7. 도덕의 최고 원칙은 무엇인가?
8. 정언명령 대 가언명령
9. 도덕과 자유
10. 칸트에 대한 의문
11. 섹스, 거짓말, 그리고 정치

[6] 평등 옹호
1. 존 롤스
2. 계약의 도덕적 한계
3. 합의만으로는 부족할 때: 야구 카드와 물이 새는 변기
4.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을 때: 흄의 집과 유리닦이
5. 이익인가, 합의인가? 샘의 자동차 수리
6. 완벽한 계약 상상하기
7. 정의의 원칙 두 가지
8. 도덕적 임의성 배제 논리
9. 평등주의 악몽
10. 도덕적 자격 거부하기
11. 삶은 불공평한가?

[7] 소수집단우대정책 논쟁
1. 시험 격차 바로잡기
2. 과거의 잘못 보상하기
3. 다양성 증대
4. 인종별 우대정책은 권리를 침해하는가?
5. 인종분리정책과 반유대적 할당제
6. 백인 우대 정책?
7. 정의는 도덕적 자격에서 분리될 수 있는가?
8. 대학이 경매로 입학생을 뽑아도 될까?

[8] 누가 어떤 자격을 가졌는가?
1. 아리스토텔레스
2. 정의, 텔로스, 영광
3. 목적론적 사고: 테니스 코트와 [곰돌이 푸]
4. 대학의 텔로스는 무엇인가?
5. 정치의 목적은 무엇인가?
6.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가?
7. 행동으로 터득하기
8. 정치와 좋은 삶

[9]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1. 충직 딜레마
2. 사죄와 손해배상
3. 조상의 죄를 우리가 속죄해야 하는가?
4. 도덕적 개인주의
5. 정부는 도덕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하는가?
6. 정의와 자유
7. 공동체의 요구
8. 이야기하는 존재
9. 합의를 넘어서는 의무
10. 연대와 소속
11. 애국심이 미덕인가?
12. 연대는 우리 사람만 챙기는 편애인가?
13. 충직이 보편적 도덕 원칙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14. 정의와 좋은 삶

[10] 정의와 공동선
1. 중립을 지키려는 열망
2. 낙태와 줄기세포 논란
3. 동성혼
4. 정의와 좋은 삶
5. 공동선의 정치 

[ 2010년 9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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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근 한 달여만에 소설을 집어들었다. 직전에 읽은 [발해고]와 이 책은 [한미 FTA는 우리의 미래가 아닙니다]를 읽으면서 무거워진 머리와 부글부글 끓는 가슴을 식히기 위해 읽었다.(그런데 유득공의 [발해고]는 머리와 가슴을 식혀주기는 커녕 한숨만 나오게 했지만...)
그래도 이 책은 가공된 환경에서 가공인물에 의해 전개되는 것이니 그래도 현실에서 벗어나 상상하고 추리하는 기분을 들게해 주었다.
 
이 책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라마구(Jose Saramago)의 ’도시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다.
도시에 실명 바이러스가 전염병처럼 번지고, 이를 해결하지 못한 정부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눈이 먼 자들을 모아 정신병동에 가두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눈먼 자들 사이에서 실명하지 않은 단 한 명, 의사 부인은 인간을 두 종류로 구분하여 바라본다. 생존을 위해 남을 짓밟고 일어서려는 동물적 본능이 살아 있는 인간과 서로를 보살피고 헌신하며 순간에 감사할 줄 아는 인간의 참모습이 그것이다.
소설의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을 탄생한 동명의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2008년 개봉,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마크 러팔로, 줄리안 무어 출연)는 원작의 숨 막힐 듯 한 감정과 깊이 있는 스토리를 스크린으로 옮기기에는 역부족 이였다는 평단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깊은 관심과 2008 시체스영화제의 수상을 거머쥐는 기염을 토한다.
사회의 본질을 꿰뚫는 사라마구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인간의 섬뜩하고 추악한 본질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 * 주제 사마라구는 누구인가? ----------------------
1922년 포르투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라마구는 1947년 [죄악의 땅]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후 19년간 단 한 편의 소설도 쓰지 않고 공산당 활동에만 전념하다가, 1968년 시집 [가능한 시]를 펴낸 후에야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사라마구 문학의 전성기를 연 작품은 1982년 작 [수도원의 비망록]으로, 그는 이 작품으로 유럽 최고의 작가로 떠올랐으며 1998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마르케스, 보르헤스와 함께 20세기 세계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사라마구는 환상적 리얼리즘 안에서도 개인과 역사, 현실과 허구를 가로지르며 우화적 비유와 신랄한 풍자, 경계 없는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해 왔다. 여든여섯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왕성한 그의 창작 활동은 세계의 수많은 작가를 고무하고 독자를 매료시키며 작가정신의 살아 있는 표본으로 불리고 있다. ----------------
 
<줄거리> 
한 도시에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안 보이는 `실명` 전염병이 퍼진다. 첫번째 희생자는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차를 운전하던 사람. 그는 안과 의사에게 가봤지만, 의사 역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였고, 그날 밤 ’실명병’을 고민하던 그 자신도 그만 눈이 멀어버린다.
이 전염병은 사회 전체로 퍼져나간다. 정부 당국은 눈먼 자들을 모아 이전에 정신병원으로 쓰이던 건물에 강제로 수용해 놓고 무장한 군인들에게 감시할 것을 명령하며, 탈출하려는 자는 사살해도 좋다고 말한다. 수용소 내부에서는 눈먼 자들 사이에 식량 약탈, 강간 등 온갖 범죄가 만연한다. 화재가 발생해 불길에 휩싸인 수용소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수용소 밖으로 탈출한 사람들은 수용소 밖 역시 썩은 시체와 쓰레기로 가득한 폐허가 되었고, 공기는 역겨운 냄새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된다. 처음 ’실명병’이 발병한 이래 얼마 되지 않은 시간 만에 도시와 국가 전체로 확산되어 말 그대로 ’눈 먼 자들의 도시(국가)’가 되어버렸다.
이 악몽의 유일한 목격자는 수용소로 가야 하는 남편(안과 의사)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눈이 먼 것처럼 위장했던 의사의 아내. 그녀는 황량한 도시로 탈출하기까지 자신과 함께 수용소에 맨 처음 들어갔던 눈먼 사람들을 인도한다. 남편, 맨 처음 눈먼 남자와 그의 아내, 검은 안대를 한 노인,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 엄마 없는 소년 등 이름없는 사람들로 구성된 이 눈먼 사람들의 무리를 안내하고 보호한다. 그녀는 폭력이 난무하고 이기주의가 만연한 혼란스러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를 책임감으로 받아들이며, 희생과 헌신을 한다. 눈먼 사람들이 서로간에 진정한 인간미를 느끼며 타인과 자신을 위해 사는 법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들은 드디어 다시 눈을 뜨게 된다.
 
 
이 작품은 문장 부호가 무시된 채 격류가 흐르는 듯한 문체로 쓰였다. 그래서 처음 몇 쪽은 읽기가 다소 생소하다. 역자는 <해설>에서 "사마라구의 작품에는 담론간의 일치나 담론의 내적 긴장이 중시되고 있으며, 문장부호를 생략하며 직,간접 화법조차 구분하지 않는 그의 작품이 독자들을 몹시 긴장시키며 집중력을 요구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그런 문체로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역사와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고, 현대사회에서 잃어가는 인간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작업을 통해 삶과 세계로 새로운 의미를 부각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새로운 문학 언어의 추구와 함께, 조국 포르투칼의 희박해져 가는 역사성과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노력, 나아가 이성에 치우쳐 윤리의식을 상실한 현대사회와 인간의 모습을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다. 이는 한국의 문학가들에게서 부족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작품은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우상과 권뤼에 대한 개인의 외로운 싸움이나 윤리관이 파괴된 사회 체계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인간의 무지를 주제로 하고 있다. ’눈이 멀었다’라는 것은 단순히 눈이 멀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많은 것을 잃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우리는 소설을 다 읽은 후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었을 때에야 가지고 있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우리는 물질적 소유에 눈이 멀었을 뿐 아니라 그 소유를 위해 우리의 인간성조차 쉽게 말살하는 장님이기에 눈을 비벼 눈곱을 뗀 후 세상을 다시 보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새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소설 <눈 먼 자들의 도시>는 현대사회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수 있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이익과 남들이 ?아가는 발자욱만 따라가는 사람은 결국 ’눈 먼 사람’이라 할 수 있고 그런 사람들로 가득찬 도시는 결국 ’눈 먼 자들의 도시’가 된 것이다. 책 속에는 실명과 침묵을 통해 무책임한 윤리 의식과 붕괴된 가치관, 그리고 폭력이 만연한 사회를 암시해주고 있는데 실제 같은 시대에,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협하고 폭행하고 찾취하는 우리의 모습은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시대의 비극이다.
그리고 처음 눈이 멀어 수용소에 들어가게 되는 집단이 함께 고통을 나누고 서로가 의지하며 도와가는 인간 관계의 회복은 살아 있는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저자는 소설 속에서 눈 먼 사람들이 서로 돕고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보이지 않는 환경을 극복해 나가는지 보여줌으로써 현대사회의 인간들이 어떤 자세와 태도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연대 의식’은 인간성이 말살된 사회에서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진정한 휴머니즘이자 인간이 존재하는 본질적인 이유인 것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빌어 저자는 현대사회의 시민들이 멀쩡한 눈을 가지고서 ’눈 먼 자들’이 되지않기 위해 어떻게 마음먹고 살아야 하는지 말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에 로마를 공화정 체제에서 제국으로 만든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현대사회에서도 카이사르의 말은 여전히 적용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통해, 자신이 알고 살아온 경험 속에서, 자신의 이해관계에 몰입하여 객관적인 사실과 현실을 꿰뚫어보지 못하고 살고 있다. 가공된 정보, 주입된 사고,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방송언론매체의 홍보에 길들여져 스스로 분석하고 찾아보고 판단하는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예요.(p.419)"
 
또한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규정하고 살아있음을 느끼고 실제 살아간다는 것을 말한다. 의사의 말 "조직이 있어야지. 인간의 몸 역시 조직된 체계야. 몸도 조직되어 있어야 살 수 있지. 죽음이란 조직 해체의 결과일 뿐이야. ... 자신을 조직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눈을 갖기 시작하는 거야.(p.416)"을 통해 저자는 거대한 권력과 불의,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일반사람들이 스스로 뭉치고 조직을 만들어 서로를 위하고 도모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눈 먼 자들’로 가득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수 십년, 수 백년 전 우리의 부모세대나 선조들보다 못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인간답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혼자서, 몇몇으로 그것이 가능할까?
 
* 책 속의 문장
- 눈이 먼 남자의 차를 훔친 남자는 처음에 돕겠다고 나섰을 때부터 악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는 단지 관용과 이타심이라는 감정을 따랐을 뿐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 두 감정은 인간 본성 가운데 가장 좋은 두 가지 특질이며, 이 남자보다도 훨씬 고질적인 범죄자에게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p.29)
 
-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볼 수 없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을 볼 권리가 없다.(p.98)
 
- 어쩌면 눈먼 사람들의 세상에서만 모든 것이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p.180)
 
- 그들이 처음 요구했을 때 당연히 저항했어야 하는 건데, 그걸 못한 거야. 물론이예요. 우리는 두려웠고, 두려움이 늘 지혜로운 조언자 노릇을 하는 건 아니죠.(p.272)
 
- 그녀는 생각했다. 평소에 하지 않던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상황의 힘과 특성이 사람의 언어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p.319)
 
- 우리가 전에 지니고 살았던 감정, 과거에 우리가 사는 모습을 규정하던 감정은 우리가 눈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야. 눈이 없으면 감정도 다른 것이 되어버려.(p.354)  

 
[ 2011년 7월 0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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