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근 한 달여만에 소설을 집어들었다. 직전에 읽은 [발해고]와 이 책은 [한미 FTA는 우리의 미래가 아닙니다]를 읽으면서 무거워진 머리와 부글부글 끓는 가슴을 식히기 위해 읽었다.(그런데 유득공의 [발해고]는 머리와 가슴을 식혀주기는 커녕 한숨만 나오게 했지만...)
그래도 이 책은 가공된 환경에서 가공인물에 의해 전개되는 것이니 그래도 현실에서 벗어나 상상하고 추리하는 기분을 들게해 주었다.
 
이 책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라마구(Jose Saramago)의 ’도시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다.
도시에 실명 바이러스가 전염병처럼 번지고, 이를 해결하지 못한 정부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눈이 먼 자들을 모아 정신병동에 가두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눈먼 자들 사이에서 실명하지 않은 단 한 명, 의사 부인은 인간을 두 종류로 구분하여 바라본다. 생존을 위해 남을 짓밟고 일어서려는 동물적 본능이 살아 있는 인간과 서로를 보살피고 헌신하며 순간에 감사할 줄 아는 인간의 참모습이 그것이다.
소설의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을 탄생한 동명의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2008년 개봉,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마크 러팔로, 줄리안 무어 출연)는 원작의 숨 막힐 듯 한 감정과 깊이 있는 스토리를 스크린으로 옮기기에는 역부족 이였다는 평단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깊은 관심과 2008 시체스영화제의 수상을 거머쥐는 기염을 토한다.
사회의 본질을 꿰뚫는 사라마구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인간의 섬뜩하고 추악한 본질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 * 주제 사마라구는 누구인가? ----------------------
1922년 포르투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라마구는 1947년 [죄악의 땅]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후 19년간 단 한 편의 소설도 쓰지 않고 공산당 활동에만 전념하다가, 1968년 시집 [가능한 시]를 펴낸 후에야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사라마구 문학의 전성기를 연 작품은 1982년 작 [수도원의 비망록]으로, 그는 이 작품으로 유럽 최고의 작가로 떠올랐으며 1998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마르케스, 보르헤스와 함께 20세기 세계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사라마구는 환상적 리얼리즘 안에서도 개인과 역사, 현실과 허구를 가로지르며 우화적 비유와 신랄한 풍자, 경계 없는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해 왔다. 여든여섯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왕성한 그의 창작 활동은 세계의 수많은 작가를 고무하고 독자를 매료시키며 작가정신의 살아 있는 표본으로 불리고 있다. ----------------
 
<줄거리> 
한 도시에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안 보이는 `실명` 전염병이 퍼진다. 첫번째 희생자는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차를 운전하던 사람. 그는 안과 의사에게 가봤지만, 의사 역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였고, 그날 밤 ’실명병’을 고민하던 그 자신도 그만 눈이 멀어버린다.
이 전염병은 사회 전체로 퍼져나간다. 정부 당국은 눈먼 자들을 모아 이전에 정신병원으로 쓰이던 건물에 강제로 수용해 놓고 무장한 군인들에게 감시할 것을 명령하며, 탈출하려는 자는 사살해도 좋다고 말한다. 수용소 내부에서는 눈먼 자들 사이에 식량 약탈, 강간 등 온갖 범죄가 만연한다. 화재가 발생해 불길에 휩싸인 수용소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수용소 밖으로 탈출한 사람들은 수용소 밖 역시 썩은 시체와 쓰레기로 가득한 폐허가 되었고, 공기는 역겨운 냄새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된다. 처음 ’실명병’이 발병한 이래 얼마 되지 않은 시간 만에 도시와 국가 전체로 확산되어 말 그대로 ’눈 먼 자들의 도시(국가)’가 되어버렸다.
이 악몽의 유일한 목격자는 수용소로 가야 하는 남편(안과 의사)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눈이 먼 것처럼 위장했던 의사의 아내. 그녀는 황량한 도시로 탈출하기까지 자신과 함께 수용소에 맨 처음 들어갔던 눈먼 사람들을 인도한다. 남편, 맨 처음 눈먼 남자와 그의 아내, 검은 안대를 한 노인,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 엄마 없는 소년 등 이름없는 사람들로 구성된 이 눈먼 사람들의 무리를 안내하고 보호한다. 그녀는 폭력이 난무하고 이기주의가 만연한 혼란스러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를 책임감으로 받아들이며, 희생과 헌신을 한다. 눈먼 사람들이 서로간에 진정한 인간미를 느끼며 타인과 자신을 위해 사는 법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들은 드디어 다시 눈을 뜨게 된다.
 
 
이 작품은 문장 부호가 무시된 채 격류가 흐르는 듯한 문체로 쓰였다. 그래서 처음 몇 쪽은 읽기가 다소 생소하다. 역자는 <해설>에서 "사마라구의 작품에는 담론간의 일치나 담론의 내적 긴장이 중시되고 있으며, 문장부호를 생략하며 직,간접 화법조차 구분하지 않는 그의 작품이 독자들을 몹시 긴장시키며 집중력을 요구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그런 문체로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역사와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고, 현대사회에서 잃어가는 인간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작업을 통해 삶과 세계로 새로운 의미를 부각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새로운 문학 언어의 추구와 함께, 조국 포르투칼의 희박해져 가는 역사성과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노력, 나아가 이성에 치우쳐 윤리의식을 상실한 현대사회와 인간의 모습을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다. 이는 한국의 문학가들에게서 부족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작품은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우상과 권뤼에 대한 개인의 외로운 싸움이나 윤리관이 파괴된 사회 체계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인간의 무지를 주제로 하고 있다. ’눈이 멀었다’라는 것은 단순히 눈이 멀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많은 것을 잃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우리는 소설을 다 읽은 후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었을 때에야 가지고 있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우리는 물질적 소유에 눈이 멀었을 뿐 아니라 그 소유를 위해 우리의 인간성조차 쉽게 말살하는 장님이기에 눈을 비벼 눈곱을 뗀 후 세상을 다시 보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새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소설 <눈 먼 자들의 도시>는 현대사회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수 있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이익과 남들이 ?아가는 발자욱만 따라가는 사람은 결국 ’눈 먼 사람’이라 할 수 있고 그런 사람들로 가득찬 도시는 결국 ’눈 먼 자들의 도시’가 된 것이다. 책 속에는 실명과 침묵을 통해 무책임한 윤리 의식과 붕괴된 가치관, 그리고 폭력이 만연한 사회를 암시해주고 있는데 실제 같은 시대에,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협하고 폭행하고 찾취하는 우리의 모습은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시대의 비극이다.
그리고 처음 눈이 멀어 수용소에 들어가게 되는 집단이 함께 고통을 나누고 서로가 의지하며 도와가는 인간 관계의 회복은 살아 있는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저자는 소설 속에서 눈 먼 사람들이 서로 돕고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보이지 않는 환경을 극복해 나가는지 보여줌으로써 현대사회의 인간들이 어떤 자세와 태도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연대 의식’은 인간성이 말살된 사회에서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진정한 휴머니즘이자 인간이 존재하는 본질적인 이유인 것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빌어 저자는 현대사회의 시민들이 멀쩡한 눈을 가지고서 ’눈 먼 자들’이 되지않기 위해 어떻게 마음먹고 살아야 하는지 말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에 로마를 공화정 체제에서 제국으로 만든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현대사회에서도 카이사르의 말은 여전히 적용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통해, 자신이 알고 살아온 경험 속에서, 자신의 이해관계에 몰입하여 객관적인 사실과 현실을 꿰뚫어보지 못하고 살고 있다. 가공된 정보, 주입된 사고,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방송언론매체의 홍보에 길들여져 스스로 분석하고 찾아보고 판단하는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예요.(p.419)"
 
또한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규정하고 살아있음을 느끼고 실제 살아간다는 것을 말한다. 의사의 말 "조직이 있어야지. 인간의 몸 역시 조직된 체계야. 몸도 조직되어 있어야 살 수 있지. 죽음이란 조직 해체의 결과일 뿐이야. ... 자신을 조직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눈을 갖기 시작하는 거야.(p.416)"을 통해 저자는 거대한 권력과 불의,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일반사람들이 스스로 뭉치고 조직을 만들어 서로를 위하고 도모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눈 먼 자들’로 가득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수 십년, 수 백년 전 우리의 부모세대나 선조들보다 못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인간답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혼자서, 몇몇으로 그것이 가능할까?
 
* 책 속의 문장
- 눈이 먼 남자의 차를 훔친 남자는 처음에 돕겠다고 나섰을 때부터 악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는 단지 관용과 이타심이라는 감정을 따랐을 뿐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 두 감정은 인간 본성 가운데 가장 좋은 두 가지 특질이며, 이 남자보다도 훨씬 고질적인 범죄자에게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p.29)
 
-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볼 수 없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을 볼 권리가 없다.(p.98)
 
- 어쩌면 눈먼 사람들의 세상에서만 모든 것이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p.180)
 
- 그들이 처음 요구했을 때 당연히 저항했어야 하는 건데, 그걸 못한 거야. 물론이예요. 우리는 두려웠고, 두려움이 늘 지혜로운 조언자 노릇을 하는 건 아니죠.(p.272)
 
- 그녀는 생각했다. 평소에 하지 않던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상황의 힘과 특성이 사람의 언어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p.319)
 
- 우리가 전에 지니고 살았던 감정, 과거에 우리가 사는 모습을 규정하던 감정은 우리가 눈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야. 눈이 없으면 감정도 다른 것이 되어버려.(p.354)  

 
[ 2011년 7월 0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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