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음의 진화 - 대니얼 데닛이 들려주는 마음의 비밀 ㅣ 사이언스 마스터스 9
대니얼 C. 데닛 지음, 이희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2월
평점 :
우리는 살아가면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한 번쯤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한다.
누군가의 마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 수 있을까?
남자가 된다는 게 어떤 건지 여자는 알 수 있을까?
태어날 때 아기는 어떤 경험을 할까?
태아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경험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경험일까?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의 마음은 어떤 상태일까?
말도 생각을 할까?
왜 대머리수리는 동물의 썩은 사체를 먹으면서도 메스꺼움을 느끼지 않을까?
사람을 제외한 모든 동물은 정말로 마음이 없는 로봇에 불과한 것일까?
어느 험상궂은 사람이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없는 것일까?
이 책은 < 섹스의 진화 >, <원소의 왕국>, < 마지막 3분 >, <인류의 기원>, <세포의 반란>, <휴먼 브레인>, <에덴의 강>, <자연의 패턴>에 이어 - 사이언스 마스터스 시리즈 - 의 아홉 번째 책으로, ’마음의 비밀’을 주제로 삼았다.
인지연구센터 소장으로서 인공 지능 로봇 코그(Cog)의 개발에 지대한 공헌을 한 저자는 진화론의 개념을 적극 활용하여 철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세계적인 철학자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누구나 한번쯤은 품어 보았을 마음에 대한 질문들을 하나하나 철학적, 과학적으로 정제된 언어로 소개한다.
마음은 신비하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를 사로잡아 온 질문이다.
그들은 무수한 질문을 던지고 무수한 해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마음의 수수께끼를 속 시원하게 풀지는 못했고 대개의 경우 형이상학적 말놀이에 그쳤다.
현대 신경과학과 인지과학 그리고 뇌과학의 엄청난 발전은 기존의 철학자들이 내놓은 형이상학적 해답을 헛소리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마음의 물리적 기초를 밝혀내는 데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신경 네트워크, 시냅스, 신경 전달 물질, 뇌의 구조가 MRI 같은 새로운 기술을 통해 하나둘씩 그 정체가 밝혀짐으로써 우리 인류는 마음이라는 거대한 미지의 대륙으로 한 걸음 발을 들여 놓았다.
그러나 현대 뇌과학도 마음과 마음 사이에 있는 벽을 넘지 못하고 있으며 마음의 본질에 대한 온전한 설명도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신경 세포 사이의 전자 불꽃과 신경 전달 물질의 이동을 분석해도 왜 인간은 동물과 다른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까?
어떻게 해서 인간은 자신의 행동과 생각에 대해 반성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리고 우리가 만든 기계는 마음을 가지게 될까?
하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한다.
저자는 독특한 가설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그것은 ’생산’과 검증의 탑’이라는 모형이다.
유기체가 미래를 생산하는 양식과 그것이 현실에서 검증되는 양식의 다양성을 검토하면서
그는 진화론적 발전 단계에 따라 유기체를 다윈 생물, 스키너 생물, 포퍼 생물, 그레고리 생물로 구분한다.
가장 하등단계에 있는 다윈 생물은 회로가 닫혀 있다.
스키너 생물은 학습 능력을 가지고 있다.
포퍼 생물은 사전 예측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레고리 생물은 외부 환경을 내부환경에 옮겨 놓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그레고리 생물로 발돋움한 것은 언어라는 강력한 마음의 도구를 발전시켜 외부 환경에 대한 의존도를 줄였기 때문이다.
그레고리 생물은 세상에 대한 표상을 내부 환경 안에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생물이다.
저자는 마음의 종류, 마음 연구의 방법론, 마음의 진화적 역사, 몸과 마음의 관계, 의식적 사고, 생각의 탄생 등 마음 연구의 모든 영역을 흥미로운 사례와 신선한 물음으로 알기 쉽게 개괄하면서
철학적 문제틀과 진화생물학 및 현대 뇌과학의 최신 성과들을 종합하여 오랫동안 철학자들이 다루어 왔지만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던 ‘마음의 본질’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모색한다.
이 책은 마음의 문제를 둘러싼 형이상학적 철학의 공허함과 자연과학의 단편성을 극복하려는 시도이며 자연과학의 도전에 대한 철학의 응전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알 수 없는 것’이라는 불가지론과 맞서려 한다.
우리는 동물과 의사소통할 수 없기 때문에 동물에게 우리와 같은 마음이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생각, 마음이 있는 존재와 마음이 없는 존재의 경계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마음의 존재 유무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 등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단순하게 자기를 복제하는 데 급급한 세균에서 자기 행동의 일거수일투족을 의식하고 신경 써야 하는 인간까지 마음이 어떤 식으로 진화되었는지, 몸과 마음의 관계는 무엇인지, 언어는 어떻게 탄생했는지, 마음의 진화와 도구 사용 또는 문자(상징)의 상호 작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하나하나 설명해 나간다.
저자가 철학과 첨단 뇌과학을 이용하여 인간 마음의 진화와 구조를 분석하려는 시도는 신선하고 훌륭했으나, 실제 그 결과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것 같다.
책 속의 철학과 뇌과학은 매끄럽게 결합되지 못하였고
다양한 이론과 연구결과를 소개하는 수준에 그친다.
몇 가지 자신의 가설과 주장을 설명하는 내용이 기억에 남기는 하지만,
그것들이 명확하고 구체적, 논리적으로 독자에게 설득되지는 않아 보인다.
그만큼 21세기 과학자와 철학자들에게 인간의 마음에 대한 연구와 분석은 어려운가 보다.
- 기억에 남는 조사 결과(226쪽) :
자주 관찰되는 현상은 아니지만 집을 떠나 병원에서 지내게 된 노인들은 육체적으로는 더 없이 편한 대우를 받는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불이익을 당하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심지어 그들은 노망기를 보이기도 한다.
음식을 먹고 옷을 입고 몸을 씻는 기본적인 할동조차 제대로 해 내지 못한다.
그러니 더 큰 흥미를 나흔 활동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런데 막상 집으로 돌아가면 혼자서 그럭저럭 생활을 꾸려 나간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은 집이라는 환경 안에 너무도 낯익은 표지, 몸에 밴 행동을 유발하는 자극제,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에 음식이 있고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하며,
전화기는 어디에 있는지 등을 일깨워 주는 신호를 투여해 온 것이다.
새로운 종류의 학습을 하기에는 뇌의 기능이 둔화되었지만 노인은 그처럼 지겹도록 낯이 익은 세계에서라면 혼자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그런 노인을 집 밖으로 내모는 것은 사실상 마음의 주된 영역에서 그를 단절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 잠재적 충격파는 뇌수술에 버금갈 것이다...
[ 2010년 9월 1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