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책장에 꽂아놓고 여러번 읽을만 하다.
 
지난 달 MB정부의 인사청문회에서 여러 명이 탈락하고 여러 명이 도덕적으로 상처를 받았다.
국무총리 후보 김태호씨와 문화부장관 후보 신재민씨...
그들은 불법행위를 저질렀는가? 아니면 부도덕한 행위를 한 것인가?
특임장관 후보와 이재오씨와 경찰청장 후보 조현오씨는 과연 ’정당’한가?
21세기 한국사회는 ’정의’나 ’도덕’에 대해서 너무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다.
특히, 오피니언 리더들의 경우 더 심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도덕 기준’을 가지고 있을까??
  
"당신은 전차 기관사이고, 시속 100킬로미터로 철로를 질주한다고 가정해보자.
저 앞에 인부 다섯 명이 작업 도구를 들고 철로에 서 있다. 전차를 멈추려 했지만 불가능하다.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이 속도로 다섯 명의 인부를 들이받으면 모두 죽고 만다는 사실을 알기에(이 생각이 옳다고 가정하자.) 필사적인 심정이 된다.
이때 오른쪽에 있는 비상 철로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도 인부가 있지만, 한 명이다.
전차를 비상 철로로 돌리면 인부 한 사람이 죽는 대신 다섯 사람이 살 수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돌려! 죄 없는 사람 하나가 죽겠지만, 다섯이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한 사람을 희생해 다섯 목숨을 구하는 행위는 정당해 보인다.
이제 다른 전차 이야기를 해보자.
당신은 기관사가 아니라, 철로를 바라보며 다리 위에 서 있는 구경꾼이다.(이번에는 비상 철로가 없다.)
저 아래 철로로 전차가 들어오고, 철로 끝에 인부 다섯 명이 있다. 이번에도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전차가 인부 다섯 명을 들이받기 직전이다.
피할 수 없는 재앙 앞에 무력감을 느끼다가 문득 당신 옆에 덩치가 산만 한 남자가 서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당신은 그 사람을 밀어서 전차가 들어오는 철로로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면 남자는 죽겠지만 인부 다섯 명은 목숨을 건질 것이다.
(당신이 직접 철로로 몸을 던질 생각도 했지만, 전차를 멈추기에는 몸집이 너무 작다.)
그렇다면 덩치 큰 남자를 철로로 미는 행위가 옳은 일인가?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연히 옳지 않지. 그 남자를 철로로 미는 건 아주 몹쓸 짓이야."
누군가를 다리 아래로 밀어 죽게 하는 행위는 비록 죄 없는 다섯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 해도 끔찍한 짓 같다.
그러나 여기서 애매한 도덕적 문제가 생긴다.
한 사람을 희생해 다섯 사람을 구하는 첫 번째 예에서는 옳은 것 같았던 원칙이 왜 두 번째 예에서는 잘못된 원칙으로 보일까? "
(책의 본문 중에서 / pp.36~40)
 
이 책은 저자가 하버드대학에서 20년간 수강생들에게 ’정의’와 ’도덕’에 대하여 강의한 내용을 토대로 하여 엮은 책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저자는 사회에서 정의에 대해 묻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을 올바르게 분배한다. 다시 말해, 각 개인에게 합당한 몫을 나누어 준다.
이 때 누가, 왜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묻다 보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서구와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런 ’정의’를 묻고 논의하기 시작했고
대립하는 여러가지 주장을 검토하면서 ’재화 분배’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을 찾았다.
그것은 행복과 자유와 미덕이었다.
저자는 세 가지 개념에 대한 사례와 이론을 검토하면서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도덕적 진실과 도덕적 사고, 도덕적 판단을 위해 정치철학을 탐구하자고 제안한다.
 
이 책이 아리스토 텔레스, 칸트, 제레미 반담(공리주의), 존 스튜어트 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자유지상주의), 존 롤스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어려운 고대와 근현대 정치철학을 다루고 있음에도 그렇게 어렵지 않게 읽었다.
그것은 저자가 아래와 같은 상당히 많은 사례와 샘플을 제시하면서 독자들의 구체적인 고민을 이끌어내면서 고민하고 생각하고 논쟁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 철로에 서 있는 인부들을 어떻게 구출해야 하는가?
- 2004년 플로리다를 덮친 허리케인의 악몽 속에서 물품과 서비스 가격을 10배 이상 올려 폴리를 취한 업자들을 처벌해야 하는가?
- 어떤 상처를 입어야 상이군인훈장을 받을 수 있을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훈장을 받을 자격이 없는가?
- 2008년 미국 금융계가 구제금융을 받은 후에 임원들에게 상여금을 지급한 것은 부당한 행위인가?
- 2005년 아프카니스탄에 비밀정찰업무로 파견된 미국 특수부대원들이 정찰 중에 염소치기 민간인(아파카니스탄인과 어린이)을 발견하였을 때 이들을 사살해야 했을까? [당시 미군들은 그 민간인들을 살려주었고 몇 시간 후 탈레반들에게 포위되어 세명이 죽고 구출하러온 헬리콥터도 파괴되어 추가로 16명이 죽었다.)
- 1884년 영국 선원 4명이 배가 난파되어 구명보트에서 구조를 기다리다가 19일째 되는날 가장 어리고 병약한 젊은이를 살해하여 5일간 식용으로 먹은 후 구조되었다. 이들을 처벌해야 하는가?
- 한 때 한국 젊은이들이 푹 빠진 미국 드라마 ’24시’에서 주인공 잭 바우어는 테러리스트라고 확신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고문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것은 정당한가?
- 대가를 받는 임신은 권리나 합리적 계약인가, 부도덕한가?
- 마이클 조던이 마직으로 NBA 무대를 뛸 때, 그는 한 시즌에 3,100만달러의 연봉을 받았다.
이 때 정부가 조던의 연봉에서 상당한 세금을 부과하여 가난한 이들의 복지에 사용하는 것은 조던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아닌가?
- 2001년 독일에서 소프트웨어 기술자가 인터넷에 ’죽어서 먹힐 의향이 있는 사람을 찾는’ 광고를 올려 찾아온 컴퓨터기술자를 죽여 시체를 토막낸 뒤 요리해 먹었다.
이 때 그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을까?
- 군대에 대한 봉급제, 징집제, 자원제, 용병제는 도덕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이러한 정의와 부정의,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에 관하여 다양한 주장이 난무하는 영역을 어떻게 이성적으로 통과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답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책은 사상의 역사가 아닌 도덕적, 철학적 사고를 여행한다.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가 책 속에 등장하지만 정치사상사에서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미쳤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정의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정의’와 ’도덕’에 대한 주요 이론과 주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아리스토 텔레스 : "정의는 목적론에 근거한다. 권리를 정의하려면 문제가 되는 사회적 행위의 ’텔로스(목적,목표,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바이올린은 세상에서 가장 바이올린을 잘 켜는 자가 차지해야 한다.
2. 제레미 반담 : 도덕의 최고 원칙은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쾌락이 고통을 넘어서도록 하여 전반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 사람들의 옮은 행위는 ’공리’를 극대화하는 모든 행위.
3. 존 스튜어트 밀 : 사람들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개인의 자유를 간섭하면서 개인을 보호하려 들거나 다수가 믿는 최선을 삶을 개인에게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4.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 "경제평등을 성취하려는 시도는 하나같이 강압적이고 자유사회를 파괴하기 마련".
  "국가가 할 일이라고 널리 인식된 행위 가운데 상당수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법행위".
5. 로버트 노직 : 분배정의를 구현하려면 돈을 벌 때 사용한 자원이 애초에 합법적인 소유물이었는지, 시장에서 자유로운 교환으로 또는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이 건네준 선물로 벌었는지가 중요하다. 부당하게 얻은 것으로 경제활동을 시작하지 않는 한 자유시장에서 분배는 그 결과가 평등하든 불평등하든 정당하다.
6. 이마누엘 칸트 : 어떤 행동이 도덕적으로 선하려면 "도덕법에 순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도덕법 그 자체에 기여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행동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동기는 의무인데, 칸트가 말하는 의무 동기란 올바른 이유로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6. 존 롤스 : "자연의 분배방식은 공정하지도, 불공정하지도 않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특정한 사회적 위치에 놓이는 것 역시 부당하지 않다. 그것은 타고나는 요소일 뿐이다. 공정이나 불공정은 제도가 그러한 요소들을 다루는 방식에서 생겨난다."
 "우리가 그러하 요소를 다룰 때, 서로의 운명을 공유하고 우연히 주어진 선천적이거나 사회적인 환경을 자신을 위해 이용하려면 그 행위가 반드시 공동의 이익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저자는 존 롤스의 이론을 결론으로 삼고 그에게서 21세기 미국의 ’정의’와 ’도덕’을 찾는 듯 하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정의와 권리에 관한 논의를 좋은 삶에 대한 논의에서 분리하려는 시도는  두 가지 이유로 잘못이다.
본질적인 도덕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정의와 권리의 문제를 결정할 수 없고,
설령 그럴 수 있다 해도 바람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려운 정치철학의 개념과 이론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고 편하게 풀어나간다.
하버드에서 그를 유명하게 만든 실제 정의 수업의 방식은 이 책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데,
도발적으로 질문하고, 반박하고, 재검토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과정은
다원화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각계 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한 공동선을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저자가 제시한 수 많은 사례는 한국사회,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않게 벌어지는 여러가지 사건과 상황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다.
우리 역시 ’정의’나 ’도덕’에 대해 자주 고민하고 갈등하고 있으니까... 
그나마 머리 속에서 웅얼대고 혼란스러웠던 ’정의’와 ’도덕’에 대한 저자의 논리와 의견을 접하고서
내 나름대로 여러가지 해석 및 판단기준을 세울 수 있음이 이 책을 읽은 소득이고...
 
이 책을 읽으면서 부러웠던 점은,
중요한 철학적, 도덕적 쟁점과 개념을 공개적으로 오픈하고
다양한 사람과 계층, 집단이 상대방의 의견과 주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공공연하게 펼치는 점과
그것을 이성적,논리적으로 헤쳐나가려 하는 노력한다는 점...
아마 그런 토대가 19세기와 20세기에 서구와 미국이 지구의 정치경제와 문화사상을 주도하게 된 근본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이 책은 서구식, 미국식 ’정의’와 ’도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비록 내가 한국, 중국 등 동양의 고전에 대해 그다지 아는 바가 없고
결과적으로 동양이 서양 문물에 경도되어 왔던 20세기를 지나왔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이 책 속에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고 부족한지 지적할 수는 없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답답했고 무언가 안타깝고 아쉬웠다.
 
물론, 나의 ’부덕’과 ’무지’의 소치이지만...ㅎㅎ 
 
 
이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 들어가는 말

[1] 옳은 일 하기
1. 행복, 자유, 미덕
2. 어떤 상처를 입어야 상이군인훈장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3. 구제금융을 둘러싼 분노
4.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
5. 철로를 이탈한 전차
6. 아프가니스탄의 염소치기
7. 도덕적 딜레마

[2] 최대 행복 원칙
1. 공리주의
2.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
3. 반박 1: 개인의 권리
4. 반박 2: 가치를 나타내는 단일통화
5. 대가를 받고 치르는 고통
6. 존 스튜어트 밀

[3]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1. 자유지상주의
2. 최소국가
3. 자유시장 철학
4. 마이클 조던의 돈
5.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4] 대리인 고용하기
1. 시장과 도덕
2. 징집과 고용, 무엇이 옳은가?
3. 자원군 옹호
4. 대가를 받는 임신
5. 대리 출산 계약과 정의
6. 외주 임신

[5] 중요한 것은 동기다
1. 이마누엘 칸트
2. 칸트의 권리 옹호
3. 행복 극대화의 문제점
4. 자유란 무엇인가?
5. 사람과 사물
6. 도덕이란 무엇인가? 동기를 찾아라
7. 도덕의 최고 원칙은 무엇인가?
8. 정언명령 대 가언명령
9. 도덕과 자유
10. 칸트에 대한 의문
11. 섹스, 거짓말, 그리고 정치

[6] 평등 옹호
1. 존 롤스
2. 계약의 도덕적 한계
3. 합의만으로는 부족할 때: 야구 카드와 물이 새는 변기
4.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을 때: 흄의 집과 유리닦이
5. 이익인가, 합의인가? 샘의 자동차 수리
6. 완벽한 계약 상상하기
7. 정의의 원칙 두 가지
8. 도덕적 임의성 배제 논리
9. 평등주의 악몽
10. 도덕적 자격 거부하기
11. 삶은 불공평한가?

[7] 소수집단우대정책 논쟁
1. 시험 격차 바로잡기
2. 과거의 잘못 보상하기
3. 다양성 증대
4. 인종별 우대정책은 권리를 침해하는가?
5. 인종분리정책과 반유대적 할당제
6. 백인 우대 정책?
7. 정의는 도덕적 자격에서 분리될 수 있는가?
8. 대학이 경매로 입학생을 뽑아도 될까?

[8] 누가 어떤 자격을 가졌는가?
1. 아리스토텔레스
2. 정의, 텔로스, 영광
3. 목적론적 사고: 테니스 코트와 [곰돌이 푸]
4. 대학의 텔로스는 무엇인가?
5. 정치의 목적은 무엇인가?
6.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가?
7. 행동으로 터득하기
8. 정치와 좋은 삶

[9]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1. 충직 딜레마
2. 사죄와 손해배상
3. 조상의 죄를 우리가 속죄해야 하는가?
4. 도덕적 개인주의
5. 정부는 도덕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하는가?
6. 정의와 자유
7. 공동체의 요구
8. 이야기하는 존재
9. 합의를 넘어서는 의무
10. 연대와 소속
11. 애국심이 미덕인가?
12. 연대는 우리 사람만 챙기는 편애인가?
13. 충직이 보편적 도덕 원칙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14. 정의와 좋은 삶

[10] 정의와 공동선
1. 중립을 지키려는 열망
2. 낙태와 줄기세포 논란
3. 동성혼
4. 정의와 좋은 삶
5. 공동선의 정치 

[ 2010년 9월 16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