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국제자원 쟁탈전 - 에너지의 새로운 지정학
Michael T. Klare 지음, 이춘근 옮김 / 한국해양전략연구소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지난 화요일 공보모임에서 교재로 삼아 세미나를 진행한 책이다.
이전 세미나에서 앤서니 기든스의 <기후변화의 정치학>을 공부한 후, 21세기 인류에게 닥친 에너지 문제와 에너지를 둘러싼 세계 각국의 노력과 갈등, 위협과 대안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다.
 
서울 주유소 대부분의 휘발류 1리터 가격이 2,000원대를 기록한지 한참 되었다. 물가인상과 고유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정부에서 정유사들을 압박하여 유가를 내리려다 실패한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생색내기’에 치우친 정부 관료들의 모습에 헛웃음도 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에너지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실행하지 못하는 정부의 한심한 모습에 우울한 기분이 든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사회문제화되지 않았고 정책의 우선순위에도 오르지 않았지만, 에너지 문제는 20세기 후반기부터 전세계 각국의 초미의 관심사이자 각국의 정책에서 최우선 순위라 할 수 있다. 중동 분쟁,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란에 대한 봉쇄, 아프리카 다루프루 사태, 중국과 일본의 동지나해 영유권 분쟁, 미국과 중국의 갈등, 중동 민주화 투쟁에 대한 서구국가들의 상이한 대처 등 현재 많은 세계의 갈등과 분쟁의 이면에 에너지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이 책의 주제는 지구상 주요 국가들이 현재의 석유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석유 및 천연가스는 물론 광물자원들을 획득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그러한 노력들이 지구상에 어떠한 불안정과 분쟁을 야기하고 있는지, 그리고 세계의 안정과 평화에 위협이 되고 있는 ’자원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 * 마이클 클레어는 누구인가? ----------------------------
미국의 안보전문가이자 군사전문가이다. 1963년 컬럼비아 대학에서 석사, 박사(68년) 학위를 받고, 워싱턴에서 1977년부터 1984년까지 워싱턴 D.C의 정책연구소에서 군사와 비무장에 관해 연구하였으며, 1985년부터 PAWSS(Peace and World Security Studies)의 책임자이다. ------------------------
 
저자는 책을 9개의 장으로 나누어 에너지 문제를 다루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2005년 ’유노컬 사건’을 통해 석유 및 에너지 자원 구입문제는 이미 순수한 상업 거래의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유노컬 사건’이란 중국의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 Limited)가 115년 역사의 미국 석유회사인 유노컬을 185억달러에 인수하려하자 CNOOC보다 적은 입찰가를 제시한 미국의 세브론사의 치밀한 공작과 미국 내 정치권과 언론 등이 나서서 이 문제를 ’국가 안보’ 문제로 이슈화시켰다. 20세기 하반기부터 미국이 전세계에 퍼뜨리기 시작한 ’자유무역’의 원칙은 오간데 없이 사라졌다. 결국 CNOOC는 유노컬 인수를 포기하였다. 일부 분석가들은 ’유노컬 사건’이 미국과 중국 관계의 분기점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제1장 [달라진 세상]에서 저자는 20세기 후반 냉전시대가 종료한 이후 에너지 문제가 각국의 정책에서 최우선 순위로 올라서면서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질서가 ’신국제 에너지 질서(New International Energy Order)’로 재편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새로운 국제 에너지 질서에서 국가들은 이제 군사력이 아니라 에너지가 있는 나라와 부족한 나라로 구분되고 에너지에 대한 접근성이 높은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로 재편되게 된다.
민간 석유회사들이 전세계 석유 생산량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 석유회사들이 에너지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극복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 지도자들은 에너지 획득 문제를 직접 챙기기 시작했다. 이는 결국 ’에너지 민족주의’ 또는 ’자원 민족주의’로 정의될 수도 있다.



제2장 [늘어나는 석유 수요량, 줄어드는 석유 부존량]에서 저자는 ’석유 정점(Peak Oil)’을 둘러싼 여러가지 주장과 의견을 소개하면서 21세기 내에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량이 ’정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석유와 천연가스 뿐 아니라 석탄, 우라늄, 구리, 보크사이트, 백금 등 산업생산에 필요한 대부분의 광물자원 역시 뒤이어 생산량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저자는 석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광물의 생산량 감소에 따라 에너지 문제가 정부의 우선순위가 되고 ’비경제적인 자원’의 활용이 늘어남으로써 지구 기후변화 문제가 정책의 순위에서 밀려남과 동시에 더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됨으로써 지구와 인간의 환경이 지금보다 더 열악해질 수 있음을 우려한다.
 
3장에서 7장까지는 에너지 문제를 둘러싼 주요 국가들의 모습과 카스피해, 아프리카, 중동지역의 에너지 갈등 문제를 설명한다.
제3장 [친디아의 도전]에서는 20세기 중반 이후 중국과 인도의 산업화 과정과 폭발적인 성장, 그에 따른 엄청난 자원 사용문제를 이야기한다. 중국과 인도의 엄청난 산업 성장은 블랙홀처럼 전세계의 에너지 자원을 소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중국과 인도 정부는 전세계에서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으로 자원보유 국가들과 협력과 개입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의 그러한 노력은 미국과 러시아, 유럽과 일본 등 기존 경제강국과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게 된다.

제4장 [러시아 에너지의 파괴력]에서는 1990년대 초 소련 제국의 멸망 이후 러시아의 정치경제 흐름을 살펴본 후 푸틴 대통령이 어떻게 러시아의 정치경제 권력을 장악했는지, 국영 에너지기업인 가즈프롬 회사를 발전시켰는지 설명한다. 푸틴과 가즈프롬은 러시아의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러시아의 대외적 국력과 강제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가즈프롬을 통해 시베리아 석유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경쟁, 해외 민간기업의 배제와 통제하는 모습을 통해, 그리고 카스피해의 자원개발과 관리를 둘러싼 러시아 정부와 가즈프롬의 공격적이 행보를 통해 드러난다.


제5장 [고갈되는 카스피해 연안의 석유] 카스피해 주변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그루지아, 아르제바이잔, 키르키즈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에는 소련이 방치한 자원이 상당량 존재한다. 저자는 카스피해의 자원을 둘러싼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일본, 유럽국가들의 경쟁적인 모습을 이야기한다.
미국은 소련 제국 멸망 후 1970년대부터 정치군사적인 이유로 카스피해 지역에 접근하기 시작했으나 1990년대 이후부터는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아르제바이잔, 그루지아, 키르키즈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키르키즈탄과 우즈베키스탄(일시적)에는 미국 군사기지가 있다.
러시아는 자원이 부족한 국가는 아니지만, 정치군사적인 이유와 더불어 카스피해 지역의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과거 소련 영토인 카스피해 지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과거 소련 영토 내의 국가들과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를 구성하여 카스피해 국가들을 관리하고 있다.
중국은 1996년 테러 방지와 안보협력을 위해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키즈단, 타지키스탄과 함께 ’상하이 기구’를 설립하여 협력하기 시작했다.(나중에 우즈베키스탄 참여) 이를 통해 중국은 카스피해에서 자원을 개발하고 획득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석유 수립의 중가는 더 강력한 독재정권과 일치하며 통치자들이 자신들의 부를 엘리트들에게 일정부분 나누어줌으로써 통치자의 능력을 강화하는 한편 경제 및 정치 개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은 지연되고 있다"고 말한다. 석유로 인한 부가 소수에게 집중됨으로써 부에서 소외되고 가난한 대중들의 욕구 불만과 분리주의는 개별국가와 지역의 불안정을 촉발시키게 되고 불안정은 외부세력의 개입을 초래할 수 있다. 



제6장 [아프리카의 사활적 자원을 향한 지구의 총공격]은 아프리카 자원의 특성과 ’아직도 유럽의 사냥터인 아프리카의 현실’을 이야기한 후, 20세기 후반 이후 자원을 목표로 하는 미국의 진출과 중국의 적극적인 공략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프리카 자원국가들의 모습은 ’자원의 저주’를 받은 카스피해 지역의 국가들과 비슷하거나 더 열악한 상황이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자원을 둘러싼 갈등과 불안정성은 카스피해 지역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제7장 [미국의 호수를 향한 공격] 중동의 ’페르시아만’은 1950년대 이후 ’미국의 호수’라고 불리운다. 그만큼 석유자원을 중심으로하는 중동지역에 대한 대한 미국의 경제,군사적인 지배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 냉정이 해체된 이후 중동지역의 자원을 둘러싼 새로운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중동 산유국들은 국내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치,외교,군사,자원 거래에서 미국 의존도로부터 벗어나고 있으며 이에 발맞추어 러시아와 중국, 유럽과 일본, 인도 등의 공략이 진행되고 있다. 



제8장 [문턱을 넘다]에서 저자는 자원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경쟁과 갈등이 결국 ’위험한 선’을 넘어서고 있고 앞으로도 그런 양상이 더욱 노골화될 것을 우려한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은 중동, 카스피해, 아프리카의 자원을 지배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무기를 공급하고 있고 필요한 경우 ’함포외교’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유라시아 지역에서는 ’상하이 기구’를 중심으로하는 중국과 러시아 대 미국과 일본이 등 과거의 냉전을 방불케하는 새로운 ’블럭’을 형성되고 있다. 
자원 경쟁을 위한 에너지 민족주의와 블록 형성이 지정학적 충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경고한다.

제9장 [재앙을 피하기 위한 방안들]에서 저자는 21세기에 자원 갈등으로 인한 세계적인 대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한다. 이 두 국가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고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으며 ’G2’라 불리울 정도로 서로 무시할 수 없는 국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국과 일본이 에너지를 둘러싼 갈등과 분쟁을 확산시키지 않도록 하는 협력과 협조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동시에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원을 개발하고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도 구축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개인적으로는 산업적인 생산방식과 ’성장’, 그리고 ’경쟁’만을 고집하는 현대의 국가사회시스템으로는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류는 ’경쟁’이 아닌 ’협력’과 ’공생’을 통해 미래 재앙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고 개인과 집단, 사회와 인류의 ’성숙’과 ’행복’을 이루어낼 수 있다.
그럼에도 현재 거의 대부분의 인류가 산업 생산양식과 성장, 경쟁을 ’종교’처럼 받들고 피튀기는 경쟁을 계속하는 상황에서는 현실적인 상황에 맞추어 문제에 접근할 수 밖에 없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저자는 에너지의 고갈 문제, 에너지를 둘러싼 지정학적인 갈등, 그리고 현실적인 분쟁들과 미래의 재앙의 위협에 대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저자의 구체적인 사례 제시와 원인분석을 통해 20세기 후반부터 지구상의 각종 사건을 둘러싼 내면적인 요인들 중에서 에너지를 이유로 한 ’국가안보’가 가장 크게 부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막연하게 미래가 희망적이라고 제시하지도 않았고 또 무조건 절망적이라고 포기하지도 않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위협과 재앙으로부터 가장 크게 고통받게 되는 사람들은 결국 약소국의 민중들이고 지구상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임을 확신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저자가 차갑고 논리에만 충실한 이론가이자 따뜻한 마음을 지닌 지식인임을 느낄 수 있었다.
 
책 속에서 거론되는 세계적인 ’자원쟁탈전’은 분명 심각한 재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미 인류는 자원과 시장을 둘러싸고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치루었고 그로 인해 수 많은 인명이 살상되었다. 전쟁에서 패배한 국가  뿐 아니라 승리한 국가도 수 십년간 그 고통을 치유한 바 있다. 세계대전에서 가장 큰 이익을 냈고 피해가 적은 집단은 바로 자본가 세력과 관료들이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은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에게 치명적인 파괴와 인명피해를 가져다 주었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일본 제국주의로 인한 피해가 국가와 사회 곳곳에 아직도 남아 있다.
우리나라는 강대국들이 침을 흘릴 수준의 자원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잘 느끼지 못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중앙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에는 강대국들의 자원쟁탈전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강대국들은 겉으로는 자유와 평화, 인권과 민주주의를 외칠 뿐 자원을 가져가기 위해 자원보유국 정부가 군사정권이든, 독재정부든, 자국의 국민들을 학살하든, 인권을 탄압하든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자원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그런 독재정부를 지원하고 학살과 탄압을 요구하기도 한다.
가슴아픈 일이고 분노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고통받고 굶주리는 약소국 민중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가 않고 근본적으로 해결해줄 수도 없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대안으로 제시한 ’미국과 중국의 협력’에 대해서는 다소 비관적이다. 소위 선진산업국가 중에서 가장 국가이기주의가 극성이고 약소국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그리고 일당독재를 통해 13억 인구를 통치하면서 ’국가의 부’를 하루빨리 증대시켜야 하는 중국 역시 중화민족주의가 거세다. 두 국가 모두 이성이나 인류 전체 차원에서 에너지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국가가 아니다.
내가 판단컨대, 미국과 중국은 국민들의 이해와 요구가 올바로 수렴되고 집행되는 체제가 아니다. 미국은 자본과 기득권에 둘러쌓인 정부이고 중국은 일당독재 국가다. 중국 뿐 아니라 미국 역시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는 아니다. 일본과 인도, 러시아도 마찬가지... 그런 면에서 서유럽과 북유럽 정부체제는 민주주의 면에서는 다소 진보적인 국가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유럽의 역할에 좀 더 기대하는 편이다.(하지만, 국가를 통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국가 이외의 정치세력에 대해서는 거의 거론하지 않았다. 21세기 들어 서구 국가들에서 관료와 자본의 힘은 커지고 정당의 힘은 약화되고 있다. 정당은 보통 자본과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정당과 민중과 진보,민주세력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나누어져 있다. 대신 NGO와 같은 시민단체들은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세계 각국의 진보적,민주적 정당들과 시민세력의 공동대응이 불가피해지는 구조가 될 것을 예고하는지도 모르겠다.
 
[ 2011년 7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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