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
노명식 지음 / 책과함께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천 [서평] 노명식 저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를 읽고 / 2011. 06., 446쪽, 책과함께

이 책은 1789년 프랑스혁명과 복고 왕정, 1848년 2월 혁명과 나폴레옹 3세의 제2제국, 그리고 파리 코뮌의 발발과 실패까지 100년에 가까운 프랑스 혁명사를 알기 쉽게 풀어쓴 입문서다. 특히 저자는 프랑스 근대사가 영국이나 미국과 다른 노정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추적했다.

개인적으로 프랑스혁명과 그후 100년사는 늘 언젠가 한 번 공부하고 싶었던 역사였다. 프랑스와 조선은 비슷한 시대에 봉건제 절대왕조라는 엇비슷한 사회체제였는데, 프랑스에서는 18헤기 말 시민혁명 또는 사회혁명이 발생한 후 100년간 혁명과 반혁명이 이어지면서 근대국가로 이어졌고, 조선에서는 19세기 초부터 세도정치가 100년간 이어지다가 급기야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미나 교재로 채택된 이 책과 피에르 세르나 등이 발간한 <무엇을 위하여 혁명을 하는가 : 끝나지 않은 프랑스혁명>, 마크 스틸의 < 혁명 만세 : 걸쭉한 넉살, 삐딱한 불온함, 끝내 가슴 뭉클한 프랑스대혁명 이야기 >, 그리고 프랑스혁명의 주역들이 영감을 얻은 책인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연달아 읽었다.
루소와 더불어 프랑스혁명의 주역들에게 영향을 끼친 토머스 페인의 <상식>과 <인권>은 한두 달 전에 이미 읽었고...

제1장 ~ 제4장은 프랑스대혁명을 불러일으킨 18세기 프랑스의 사회경제적 토대과 사상적 배경, 대혁명의 직접적인 원인과 국민의회, 공화정의 수립과 루이 16세의 처형을 가져온 입법의회와 국민공회, 데르미도르파의 반동과 로베스피에르의 실각, 그리고
부르주아 공화국이 흔들리는 과정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프랑스 혁명의 궁극적인 원인은 "번영 속에서 불거진 계급 간의 불균형"이었다. 프랑스혁명의 배경과 원인에서 한국사회의 소위 지도층과 재벌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지난 1987년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 역시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와 마찬가지로 "번영 속에서 불거진 계급 간의 불균형"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그리고 지난 10년 역시 재벌과 기득권들의 번영과 중산층 이하 서민들의 소득악화의 연속이었다는 것이다.

1장 ~ 4장을 통해 새롭게 알게된 흥미로운 사실은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는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점거나 프랑스 혁명 직후 처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루이 16세는 혁명 후 3년 6개월 후인 1793년 1월 20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프랑스 혁명 직후 국민의회와 인민들은 루이 16세가 공화정을 인정하고 따르면 입헌군주제로 정착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루이 16세는 겉으로는 헌법을 존중하고 공화정 수립을 인정하는 채 했지만, 뒤로는 왕당파와 외국 왕조와 결탁하여 반혁명을 추진하다가 발각되었고, 그에 따라 의회에서 '공화국의 적'으로 판결되어 처형된 것이다.

제5장 ~ 제9장은 나폴레옹 시대의 개막과 몰락(15년), 제1/2차 복고 왕정(15년)과 7월 왕정(19년), 제2공화국의 탄생과 좌절(5개월), 제2제국의 탄생(23년)과 프로이센 대 프랑스의 전쟁, 그리고 코뮌 혁명의 발발과 실패를 서술하고 평가한다. 프랑스 역사에서는 파리코뮌의 좌절과 함께 프랑스의 3공화국이 시작된다.

프랑스 혁명이 꾸준히 이어지지 않고 반혁명 - 쿠테타 - 군사독재 - 왕정복고 - 제2공화국 - 제2제국 - 파리코뮌이라는 우여곡절을 겪게 되는 데 있어 큰 분기점은 혁명가 마라의 암살과 당통파의 실각, 그리고 로베스피에르와 산악파의 실각이었다.
저자는 로베스피에르의 산악파에 대한 데르미도르의 반동을 "프랑스의 민주 공화주의를 100년간 후퇴시킨 반혁명"으로 규정한다.

한국의 대다수 교과서나 책, 그리고 인터넷의 기록에 의하여 한국인들은 로베스피에르라고 하면 당연히 '공포정치'와 '독재'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와 그의 혁명정파인 산악파가 집권했을 때의 프랑스 현실은 프랑스혁명을 완성시키기 위한 강력한 중앙집권이 필요했다.
5장을 통해 처음 알게된 사실은 로베스피에르가 세상에 알려진 소문과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그를 "냉철한 성격과 대담한 용기, 예리한 통찰력과 사람들을 압도하는 웅변, 탁월한 조직력과 완전한 공평무사"하다고 평가한다. 로베스피에르의 예리한 통찰력은 1792년 독일 군주들에 대한 혁명정부의 전쟁을 반대한 것으로 나타난다. 로베스피에르는 "전쟁이 일어난다면 반드시 군사독재자가 나타나서 프랑스를 반혁명과 패전으로 이끌고 갈 것"이라며 전쟁을 반대함으로써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출현(1799년)을 예고했던 것이다.
또한 로베스피에르와 산악파의 혁명정책은 "빈민에게 토지를 분배하여 시민의 경제적 사회적 독립을 성취하고 그 독립을 기반으로 하여 진정한 민주주의와 자유를 세우려던 평등과 덕의 공화국 프로그램"이었다. 그들이 실각한 이후 그런 정책이 프랑스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100년 이상이 더 필요했다.(소설 <장발장>과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은 1829년 7월 혁명 후 설립된 7월 왕정 기간 중인 1832년 6월 봉기를 소재로 한 것이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프랑스 혁명이 프랑스만을 근대국가로 전환시킨 역사적 사건이 아니었다고 평가한다. 프랑스혁명은 낡은 전제주의 유럽 여러 나라에 자유와 평등, 국민주의와 자유주의,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의 새 씨앗을 뿌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프랑스 혁명은 그 자체로서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입헌 군주주의의 시도도, 민주 공화주의의 실험도, 심지어 나폴레옹 제국마저도 다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데이비드 톰슨과 뷔리의 입장을 소개하면서 프랑스대혁명 100년의 마지막을 장식한 파리 코뮌의 실패를 프랑스의 "공화적, 혁명적 전통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20세기 사회혁명의 모델로 보았던 마르크스의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평가에 무게를 두고 있다. 파리 꼬뮌의 처절한 경험이 사람들로 하여금 폭력에 의한 혁명의 기도를 포기하게 하여 제3공화국 체제라는 평화적 타결과 화해의 길을 열게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프랑스는 어째서 영국이나 미국처럼 순조롭게 시민혁명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피로 얼룩진 혁명과 반혁명을 되풀이해야 했을까?"라는 저자의 질문에 어떤 해답을 내릴 수 있을까? 사실 이 책을 모두 읽은 다음에도 쉽사리 그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과연 저자의 질문은 타당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영국 시민혁명은 왕권과 지주권력의 타협이 1차 혁명이고 부르주아와 왕권-지주권력의 타협이 2차 혁명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영국에서 진짜 "일하는 사람들"인 인민의 권력에 대한 타협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이 시민혁명이라 주장하기에는 영국 등 유럽대륙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이 1천만 명이 훨씬 넘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하고 차지했다는 점에서 원초적으로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다. 미국의 시민혁명은 고작 영국이라는 식민지 본국에 대한 식민지인들의 독립투쟁일 뿐이었다고 폄하할 수도 있다.
또한 미국과 영국의 시민혁명의 주요 주체인 부르주아 세력의 경우 해외에 광범위한 식민지를 개쳑(?)한 후에 식민지에서 수탈한 부를 통해 정치권력을 분배받고자 하는 투쟁이었다는 점에서 정당성이 결여된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 소위 '신식민지' 방식으로 군사 경제적 수탈을 계속하고 있지 않은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말까지의 한국현대사도 거칠게 표현하면 혁명과 반혁명이 반복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1894년 갑오농민혁명에서부터 1997년 IMF까지... 그 사이에는 1910년 일제에 의한 식민통치 굴욕과 1919년 기미인민항쟁(3.1운동), 1928년 원산총파업과 1929년 광주학생항쟁, 1948년 4.3항쟁과 5.10 단독선거, 1950~53년 한국전쟁, 1960년 4월 혁명과 61년 반혁명 군사쿠테타와 1972년 유신 친위쿠테타, 1979년 부마항쟁과 12.12 반혁명 쿠테타,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과 1987년 6월항쟁, 1995년 전두환 구속과 1997년 IMF 경제붕괴까지 프랑스만큼 파란만장한 100년이었고 그 과정에서 민중들의 피와 땀이 물들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선거를 통한 혁명을 시도한 것이고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선거를 통한 반혁명을 시도한 것이라면 너무 과도한 규정일까??

비록 시대가 다르고 조건도 다르고 역사도 다르기 때문에 프랑스혁명 이후 100년사를 한국현대사를 일대일로 맞대응하거나 비교할 수는 없어도 프랑스혁명 후 100년사에서 우리 역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 인상 깊은 문장 :

"8월 10일 사건은 파리 시의회 즉 파리 코뮌을 프랑스의 실권자로 만들었다. 입법의회는 파리 코뮌의 요구대로 왕권의 일시 정지를 선언하고 보통선거에 의한 새 국회인 국민공회의 소집을 가결했다. 왕권은 우선 잠정적으로 정지되었지만 결국 영원히 폐지될 터였다. 왕은 탕플에 유폐되었다. 그는 거기서 다섯 달을 더 살다가 처형되고 만다. 라파예트는 8월 10일 사건에 반격을 시도하여 일선 군대를 파리로 회군시키려다 실패하여 벨기에로 도망했다. 왕정을 수호하여 입헌군주 체제의 테두리에서 혁명을 성취하려던 사람들은 이제 라파예트와 함께 몰락하였다. 8월 10일 사건의 주동 세력은 온건한 부르조아가 아니라 파리의 노동자와 빈민과 영세 상인이었다. 이들이 앞으로 혁명을 한결 더 과격하게 만든다. 이들은 귀족이 입는 퀼로트라는 바지를 입지 않는다고 하여 '상퀼로트'라 불렸는데, 이제 이 상퀼로트가 파리 코뮌의 실권자로 나타났다."(p.126~127)

"돌격을 알리는 북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무장 군인이 의사당을 점령하였다. 총검이 500인회 의원들을 쫓아냈다. 저녁 7시경 원로원은 앞서 500인회가 결의한 나폴레옹의 추방을 취소하는 조건으로 보나파르트, 시에예스, 뒤코스의 3인으로 구성되는 임시 통령정부의 조직을 공포하였다. 총재정부는 폐지되고 새 통령들에게 행정권이 위임되었다. 루시앵은 30~40명의 500인회 의원들을 긁어 모아놓고, 원로원의 결정을 승인하고 62명의 자코뱅파 의원을 제명하고 12월 22일까지 6주일간의 휴회를 결의하였다. 밤 2시, 세 사람의 통령이 의회에서 공화국에 대한 충성을 선서하였다.
이 나폴레옹의 쿠데타를 브뤼메르 18일 쿠데타라고 한다. 지난 1792년에, 혁명정부가 전쟁을 시작하면 혁명은 결국 군인 독재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리라던 로베스피에르의 말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10년간의 혁명은 이제 한 군사 모험가의 지배로 그
막을 내렸다.(p.207)

"3월 28일 정식으로 파리 코뮌이 선포되었다. 약 2만 명의 방위대와 수만 명의 시민이 운집한 시청 광장에서 의원으로 선출된 방위대 중앙위원회의 랑비에가 “인민의 이름으로 코뮌을 선언한다”고 외치자 “공화국 만세! 코뮌 만세!”의 함성이 하늘을
찔렀다. 방위대의 행렬이 프랑스 국가 ‘라마르세예즈’의 주악에 맞추어 의원들의 사열대 앞을 보무도 당당히 행진하면 민중의 미친 듯한 갈채가 우뢰처럼 터져 나왔다. ……
분명히 파리의 민중은 이제 자신이 자신의 생활과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감동과 의욕에 넘쳐서 코뮌 선포의 날을 축제의 날로 지샜다. 민중의 소박하고 약동하는 해방감이 코뮌의 파리를 뒤덮었다."(p.417~418)

[ 2014년 2월 28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봉암평전 - 잃어버린 진보의 꿈
이원규 지음 / 한길사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천 [서평] 이원규 저 <조봉암 평전, 잃어버린 진보의 꿈>를 읽고 / 2013. 03., 한길사

자신의 권력을 위해 외세에 기생하고 친일파와 손을 잡은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학살자이자 독재 정권일 뿐이다. 이 책은 그런 이승만 정권에게 1959년 사법살인을 당한 죽산 조봉암 선생의 일대기에 대한 평전이다. 
2011년 대법원에서 죽산 조봉암에 대한 재심을 열어 무죄를 확정하였고 이후 그에 대한 재평가가 시도되고 있으며 추모비 건립도 이루어졌다.

이 책을 통해 죽산 조봉암의 생애는 많은 부분 자세하게 다루어져 있다. 죽산을 호의적으로 평가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죽산에게 불리할 수 있는 자료와 정보조차 있는 그대로 평전 속에 담고자 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한마디로 "그의 생애는 식민지 피지배와 민족분단으로 얼룩진 한국 근현대사의 축소판"이다.
나는 이 평전을 통해 상당 부분 죽산애 대한 오해나 편견을 재거할 수 있었으며, 죽산이 일제로부터 독립하고자 헌신적으로 노력했던 청년시절과 한국전쟁 후 자주독립과 평화통일 세력이 전멸된 상황에서 순수하게 반독재와 평화통일을 위해 마지막 노력을 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다만, 2011년 이후 한국사회에 나타난 죽산에 대한 평가 역시 이 평전을 통해 필요 이상의 거품을 제거할 수 있었기에 저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책을 통해 본 조봉암의 생애는 일제 식민지 시대와 해방 후 격변을 온 몸으로 겪은 듯 파란만장했다. 저자가 세세하게 기술한 그의 생애를 짧게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조봉암은 1899년 일제강점 직전 강화도의 한미한 농가에서 태어났고 정규학력은 보통학교 졸업이 전부였다. 저자는 그가 어린 시절 군청 사환, 임시 고원, 대서소 보조원 등으로 일했으나 진정성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화술, 뛰어난 강연술, 그리고 탁월한 사회기(司會技) 등을 스스로 갖추면서 비범한 인물로 성장했다고 평가한다. 고학으로 세이소쿠영어학교와 모스크바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잠시 수학하기도 했다. 
조봉암은 강화도의 3.1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조선공산당 창당의 주역이 됐으며, 모스크바 공산대학과 상하이 망명 투쟁 중 일제에 의해 체포당해 7년간 신의주형무소에 수감되었다. 8.15광복 후 우익으로 전향했으며, 대한민국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서 농지개혁을 입안했다. 
조봉암은 국회부의장을 지내고 대통령선거에서 두 번이나 차점 낙선을 한 거물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젊은 날 그가 선택했던 공산주의가 전향한 뒤에도 원죄처럼 그를 따라다녔고, 이승만 정권의 북진통일 정책에 맞서 평화통일을 주장한 것이 빌미가 되어 국가변란과 간첩죄의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사형을 당했다.

그가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사법살인을 당한 것은 2011년 사법부의 판결을 통해 법적으로 사면, 복권되었다. 현재 진행 중인 것은 역사적, 정치적 재평가일 것이고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도 그 일환일 것이다.

저자가 조봉암의 생애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에서 중요하게 검토한 부분은 두 가지인데 죽산이 일제시대에 공산주의 운동에 뛰어들고 전향한 이유와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농지개혁을 통해 농민들에게 기여한 점이다.
저자는 조봉암의 과거 진술을 빌어 일제시대에 공산주의 운동에 뛰어든 이유는 "공산주의가 조국 독립의 최선의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며, 해방 후 그가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우익으로 전향한 이유는 "8.15광복 후 좌익계의 권력욕이 국가를 위해 옳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죽산이 진행한 농지개혁에 대해 "조봉암 덕분에 한국은 세계 최고수준의 토지 균등성을 빠른 속도로 이룩해"냈으며, "국민 대다수가 농민이던 당시에 토지 균등성이란 모두에게 잘살 수 있는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하는 것이었다. 농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줘 혁명을 포기하게 만들었고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나라 전체가 공산화되는 것을 막는 원인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나는 저자가 제기하는 두 가지 사안에 대한 평가를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다소 비판적이다.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1~2년 고학을 하면서 마르크스 레닌주의 서적을 읽고 모스크바 공산대학에서 1~2년 공부했다고 자신이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제3자가 진정한 공산주의자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만 죽산의 말처럼 일제강점기의 세계사적 사상의 조류를 돌이켜보면 자유주의나 자본주의 또는 민주주의를 내세웠던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이 제국주의가 되어 조선과 같은 제3세계를 식민지화하고 독립을 가로막았으니 식민지의 민족해방투쟁에 우호적이면서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소련이 국가적 이념으로 내세웠던 공산주의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충분히 공감이 된다.
죽산이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우익으로 전향한 이유도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죽산은 1920년 후반 상해에서 여자문제와 공금횡령, 보신주의 등의 문제를 일으켜 박헌영뿐 아니라 여운형에게도 비판을 받았으나 그는 신의주 교도소에서 출감(교도소 내에서 항일운동을 포기했다는 의혹은 차치하고도)한 이후 그리고 해방 후에도 그 문제에 대해서 좌익진영에게 제대로 소명하거나 공식적인 징계를 자처하지도 않았고 그에 따라 좌익진영에서 배제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군정 방첩대에 체포되어 전향공작을 받는 과정에서 전향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그의 전향 이유를 그의 말 그대로 인정하기는 어렵다. 우익으로 전향했다고 하여 당시 대표적인 우익이던 김구나 김규식에게 인정받지도 못했다. 일제 말부터 죽산이 보인 행보는 전향이라기 보다 반제국주의 투쟁과 자주독립의 의지를 꺽고 일신의 영달과 출세로 나아간 듯 하다.

저자가 두 번째로 중요하게 평가한 농지개혁에 대해서도 인정하기 어렵다. 
일단 무소속 의원인 죽산이 혼자 농지개혁안을 마련했다는 평가도 어불성설이지만, 죽산이 마련했다는 농지개혁안은 '150% 유상몰수와 120% 유상분배'였는데 일제 강점기 수탈당할대로 당한 소작농 중에서 그러한 조건을 받을 수 있는 소작농은 거의 없었을 것이며, 겉으로 나타난 통계 역시 지주들이 저지른 각종 탈법,불법 행위를 고려하면 액면 그대로 인정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죽산의 농지개혁은 한국전쟁 이전까지 여러 정치적 사정으로 시행되지 못했고 결국 한국전쟁 이후 시작되었다. 즉,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나라 전체가 공산화되는 것을 막는 원인이 되었다"는 저자의 평가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사실 한국전쟁 중 남한을 점령한 북한은 짧은 기간이나마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실시한 바 있다.

그 이외에도 평전을 통해 알게 된 죽산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2차 조선공산당이 일제로부터 탄압받은 후 3차 공산당 재건과 항일투쟁을 위해 상해에서 다수의 좌익 운동가들이 국내에 들어갔는데 죽산은 이를 회피했다. 죽산에게 나타나기 시작한 많은 문제들이 이 시점에서 시작되었다. 여자문제, 공금문제, 일제협력문제, 전향문제까지.(역으로 왜 여운형과 박헌영은 조봉암을 비판적으로 포용하지 못했는가에 대해 아쉬움과 궁금증이 남는다.)
둘째, 김이옥 등 죽산의 여성 편력에 대해서다. 죽산은 정식 결혼한 부인을 제외하고 평생을 걸쳐 김이옥을 비롯해 3명의 내연녀(?)를 두었다. 당시의 상황이 봉건적인 신분질서나 문화가 완전히 변하지 않은 상황이고 여러가지 사정과 조건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존중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특이한 점은 죽산이 매번 새로운 여성들과 관계가 발생하는 시점이 공교롭게도 죽산의 정치적 입지가 아주 나빠졌을 때였다. 상해에서도 그랬고, 해방 후 정치적 입지가 나빠졌을 때 그리고 한국전쟁 후 또 정치적 입지가 나빠졌을 때 그랬다.
셋째, 경제적 문제에 대해서다. 죽산은 상해에서 모플자금이라는 공금에 손을 댔다. 그리고 신의주 교도소에서 출감한 후 인천지역에서 일제에 협력하고 있던 경제인들에게서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그는 해방 뒤 정치계에 입문한 후 미군정에게 정치자금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고, 친일 지주와 자본가들에게서도 정치자금을 받았다.

평전에서 확인하기 어려운 의혹도 몇 가지 있다. 
1. 일제에게 상해에서 붙잡혀 신의주 교도소에 수감된 죽산은 7년 만기를 채우지 않고 가석방으로 출감했다. 일제가 신의주 교도소내 항일투사들의 성향을 기록한 문서에서 죽산은 전향한 그룹에도 전향을 거부한 그룹에도 속하지 않았다. 일제가 전행공작 자체를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 위키백과의 설명과 달리 죽산은 교도소를 출감한 후 1945년 1월 일제에 의해 예비검속 차원에서 구금될 때까지 항일투쟁 자체를 포기하면서 생계만 꾸렸다. 참고로 일제가 가장 극성을 부린 시점이자 친일파와 변절자가 가장 많이 나타난 시점이 짧게는 1941년부터였고 길게는 1937년부터였다.
3. 평전에 의하면 그는 해방 후 여운형이 최선을 다해 믿고 지지해주었으나 좌우합작이나 남북협상에 그다지 열성적이지 않았으며, 이승만의 단독정부 노선에 일찌감치 합류했고, 친일파를 제외한 대부분의 자주독립, 단정반대 세력이 불참한 1948년 5.10 단독선거에 참여했다. 
4. 한국전쟁 중 이승만이 장기집권을 목적으로 저지른 폭력사태였던 '부산 정치파동'에서 이승만의 손을 들어주었다.(저자는 이때 미군정의 협박을 받아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한다) 죽산은 이처럼 이승만 정권에 대해 한국전쟁 후인 1950년대 중반까지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죽산이 이승만으로부터 사법살인을 당한 것은 저자가 말한 '과거 공산주의 활동이 빌미'가 된 것이 아니라 해방 후부터 미군정과 이승만에게 협조해 오던 죽산이 독자노선을 걷기 시작하자 미국과 이승만에게 제거해야할 대상이 된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오히려 죽산과 진보당이 탄압받을 당시 같은 야당이고 친일 보수세력인 민주당 등이 정치적인 유불리로 진보당 탄압과 죽산의 살인에 적극 협조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1959년 당 강령과 국가변란 혐의로 죽산의 진보당이 등록 취소되고 조봉암 당수가 사형 판결을 받은 것과 2013년 이석기 의원 등이 내란음모 조작으로 구속되고 강령 등의 이유로 박근혜 정권이 통합진보당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 심판을 청구한 것은 시대를 초월하여 비슷한 배경과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민주당 등 야당과 소위 진보진영이라는 이들의 행태까지도...

죽산의 생애 중 정치사상적인 면에 대한 나의 평가를 한 줄로 요약하면 "출세주의와 엘리트주의의 패배"다. 죽산은 젊은 시절 "설득의 천재, 조직의 명수"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똑똑하고 달변이었다. 그래서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일찍 높은 직책과 역할을 책임졌다. 그만큼 포부가 컸고 직책과 역할에서 밀려났을 때 좌절에 따른 실망도 컸음을 책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평전 중에 "나도 대통령을 할 수 있다"라는 죽산의 말이 인용되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죽산의 생애를 통해 내가 얻은 교훈은 두 가지다. 출세주의와 엘리트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과 실패하고 좌절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출세주의는 분파와 분열을 일으키는 요인이고 엘리트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포기하면 변절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일상생활도 그렇지만 특히 정치사회 운동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해야 만이 많은 약점과 어려움, 고난을 이겨낼 수 있다는 교훈이다.

참고로 평전에서 옮기고 싶은 조봉암의 발언은 두 가지다. 
그는 1956년 11월 진보당 창당 개회사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일을 없애고 모든 사람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고 모든 사람이 착취당하는 것이 없이 응분의 노력과 사회적 보장에 의해서 다 같이 평화롭고 행복스럽게 잘살 수 있는 세상. 이것이 한국의 진보주의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라고 선언했다. 2014년 한국사회에서 죽산 진보당의 강령과 비슷한 수준은 통합진보당이 가장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죽산이 남긴 유언 중에도 있다. “우리가 못 한 일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후배들이 해나갈 것이네. 결국 어느 땐가 평화통일의 날이 올 것이고 국민이 고루 잘사는 날이 올 것이네. 씨를 뿌린 사람이 거둔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 나는 씨만 뿌리고 가네.”

[ 2014년 1월 24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추천 [서평]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저, 안규남 역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을 읽고 / 2013. 08., 123쪽, 동녘

이 책은 공부모임 선정 도서인데, 제목부터가 한국사회에서도 필요한 문제제기라 생각이 들어 흔쾌히 주문한 것이다. 얇은 책 두께도 선택에 한 몫..ㅎ

왜 사람들은 불평등을 감수할까? 저자는 불평등을 감수하는 사회적 원인을 따져 보고 이런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하려 한다. 섣불리 희망을 노래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현실을 인정하지도 않는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떤가. 부자는 갈수록 부자가 되고, 부자 중에서도 최상층은 더 큰 부자가 되고 있다. 반면, 중산층은 공동화되어 가난한 사람이 갈수록 더 늘어나고 있고, 저소득층은 희망을 잃고 하루하루 지옥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또한, 사회적 기회는 기득권자들이 독식하며 양극화의 심화와 승자독식이라는 불평등은 우리들이 해결해야할 공동의 숙제가 되었다.

정치적, 사회경제적인 불평등이 점점 더 심화되는 21세기 한국사회 그리고 초국적 자본이 지배하는 지구촌은 저자의 말처럼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날 사회적 불평등은 역사상 최초로 영구기관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수많은 실패 끝에, 인간들은 마침내 영구기관을 만들어 작동시키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라는 저자의 말이 실감나는 현실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의 불평등은 이전의 불평등과 질적으로 다르다. ‘20 대 80의 사회’는 이미 철 지난 이야기다. 오늘날 전 세계 최고 부자 20명의 재산 총합이 가장 가난한 10억 명의 재산 총합과 같다. ‘0.1 대 99.9’의 사회라고 말해야 더 정확하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돌연변이다. 질적으로 다른 사회적 종의 출현이다.
그런데도 언론과 학자, 전문가들의 불평등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는 없고, 불평등의 찬가, 현실 긍정의 찬가가 유행한다. 우리는 애써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마트에 가서 웃으며 물건을 사고 백화점에서 대기업이 유혹하는 상품을 바구니에 담기에 바쁘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불평등’의 희생자들 사이에서 우리는 쇼핑을 하고 웃고 떠든다. 불평등의 희생자들이 오히려 불평등을 옹호하고 평등의 외침을 비웃는 이 기이한 현상은 어떻게 된 일인가? 불평등의 희생자들이 왜 불평등에 동의하는가?

저자는 이 기이한 현상의 비밀을 우리가 암묵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거짓 믿음들에서 찾는다. 불평등에서 이익을 얻는 계층이 우리에게 심어놓은 그 대표적인 새빨간 거짓말 4가지를 바우만은 이렇게 제시한다.
“1. 경제성장은 공생에서 생기게 마련인 과제들을 처리하고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2. 영구적으로 늘어나는 소비 혹은 더 정확히 말해 새로운 소비 대상들의 가속적인 교체는,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길이거나 혹은 적어도 중요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길일 것이다. 3. 인간들 간의 불평등은 자연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삶의 가능성들을 삶의 불가피성에 맞춰 조절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반면, 삶의 원칙들을 함부로 변경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손해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4. 경쟁(가치 있는 사람들은 올라가고 가치 없는 사람들은 배제되거나 추락하는 양면을 지닌)은 사회 질서의 재생산과 사회 정의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왜 우리는 이런 거짓말에 속고 있을까? 바우만은 이 책 3장에서 왜 우리가 이런 거짓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면밀히 검토한다.

그렇다고 거짓 믿음들을 버리기만 하면,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구조화된 현실의 힘, ‘운명’의 힘은 막강하다. 하지만 거짓 믿음에 근거한 잘못된 선택이 바로 우리를 옥죄는 구조화된 현실을 만들고 공고히 하는 고리를 끊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부정의한 현실을 바꾸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러한 선택을 하고 그러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초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도 패배할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바우만은 말한다.

"패배했다는 것이 임박한 파국에 맞서 승리할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단지 무지 그리고/또는 무시로 인해 승리가 저지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p.112)

스티글리츠가 <불평등의 대가(The Price of Inequality)>에서 미국이 "부자들은 담장 공동체(gated community)에 살면서 자녀들을 값비싼 사립학교에 보내고 최고의 의료 혜택을 받는 반면에, 나머지 사람들은 불안 속에서 기껏해야 보통 수준의 교육과 배급제와 다름없는 의료 서비스를 받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나라가 되어 가고 있다"고 경고한 것처럼, 한국사회의 부자들 역시 ‘영훈국제중학교’ 입시 비리 사건에서 보았듯이 온갖 탈법으로 자신들만의 성을 쌓아가기에 바쁘다.
최근 '부자감세'와 과태료 과잉징수, 폐지 노인들에 대한 과세와 ‘부유세’ 등의 논란 속에서도 1퍼센트의 부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이 나머지 다수의 약자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관념을 심어 주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우리를 설득한다. 이에 대해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렇게 말한다.

"부자들의 부의 증가는 부와 소득의 위계에서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고사하고 부자들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조차 ‘낙수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악명이 자자하지만 그나마도 갈수록 환상이 되어가고 있는 계층 상승의 ‘사다리’는 오늘날 점점 더 통과할 수 없는 수많은 격자들과 넘을 수 없는 장벽들로 바뀌어가고 있다. ‘경제성장’은 소수에게는 부의 증가를 의미하지만, 수많은 대중에게는 사회적 지위와 자존감의 급격한 추락을 의미한다."(p.59)

컵을 피라미드같이 쌓아놓고 위에서 물을 부으면 제일 위의 컵에 물이 다 찬 뒤에 그 아래에 있는 컵으로 물이 넘치게 된다. 이처럼, 대기업이나 수도권을 우선 지원하여 경제가 성장하게 되면 그 혜택이 중소기업이나 소비자, 지방에 돌아간다는 주장이 바로 낙수효과(Trickle Down)이다.
이런 논리라면 역사는 기득권이 영원히 보존되는 형국이 될 것이며, 아마 기득권자들은 이런 세상이 영구화되길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바우만은 이런 현실을 다음과 같이 비꼰다.

"오늘날 불평등은 자체의 논리와 추진력에 의해 계속 심화된다. 그것은 외부로부터의 도움이나 추진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외적 자극이나 압력, 충격 같은 것은 전혀 필요 없다. 오늘날 사회적 불평등은 역사상 최초로 영구기관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수많은 실패 끝에, 인간들은 마침내 영구기관을 만들어 작동시키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p.22)

대기업이 잘 되면 덩달아 중소기업과 일반 소비자들한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이 ‘낙수효과’는 정부가 경제정책을 대기업 중심으로 가져가는 데 주요 근거가 됐다. 정부가 감세를 통해 대기업과 부유층의 부를 늘려주면 결국 총체적인 국가의 경기를 자극해 경제발전과 국민 복지가 향상된다는 것이다.
1990년 초 미국에서 시행된 이런 정책은 이미 폐기된 지가 오래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2013년 들어서도 여전히 이런 잘못된 믿음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아니 시민들은 점점 그 효과를 의심하는 데 반해, 정부와 여당 그리고 어용방송과 보수(극우)언론은 끊임없이 시민들에게 선전하고 세뇌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전면적 경제 시스템 교체 없이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는 ‘창조경제’, ‘경제민주화’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한국사회에는 요즘 '철도 민영화'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지금 정부의 눈길은 온통 민영화에 쏠려 있다. 정부와 여당은 공개적으로는 '민영화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민영화를 추진할 생각이 아니라면 무엇하러 방만하기만 하고 인건비만 더 투입되는 철도공사의 자회사를 만들어 흑자 노선인 KTX를 분리시키려 할까? 왜 의료법인의 자회사가 영리사업이 가능하도록 만들려 하는가?
이러한 정책은 스티글리츠가 <불평등의 대가>에서 지적한 것처럼 또 다른 불평등을 낳을 것이고 우리는 결국 다시 좌절의 늪에 빠질 것이다.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가 우리들의 시선을 끈 것은 그가 언급한 미국의 불평등한 현실에 못지않게 한국의 불평등 정도가 상당히 심각한 수준에 있다는 자각 때문이다.
스티글리츠는 이 책에서 “모든 불평등은 시장의 정치적 힘과 정치적 권모술수가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생겨나고 이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도 정치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바우만은 사회학자답게 정치나 경제적인 측면 외에 더 나아가 한 사회적인 상황도 주목한다.

"사회적 비용이 큰 선택일수록 선택될 확률이 낮다. 그리고 선택하는 사람들이 고분고분히 선택할 때 받게 되는 보상처럼 압력을 받고 있는 선택을 거부할 때 드는 비용도 주로 사회적 용인, 지위, 위신이라는 소중한 통화로 지불된다.
우리 사회에서 이 비용들은 불평등과 불평등의 공적, 사적 결과들에 대한 저항을 매우 어렵게 만들고 따라서 저항하기보다는 체념하고 얌전히 굴복하거나 아니면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길을 시도하고 추구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조정된다.
자본주의적이고 개인주의화된 소비자 사회의 주민인 우리가 인생이라는 게임의 전부 혹은 대부분에서 계속해서 던질 수밖에 없는 주사위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불평등에서 이익을 얻거나 혹은 이익을 얻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정해져 있다."(p.41)

바우만은 이렇게 우리가 불평등을 감수하는 사회적 원인을 밝힌 뒤, 이런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세계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비합리적인 행위이다. 하지만 결정에 대한 책임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모두 감수하면서까지 세계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세계의 논리가 초래하는 맹목으로부터, 타자와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결과로부터 세계의 논리를 구원할 마지막 기회다."(p.113~114)

저자는 이 책에서 섣불리 희망을 노래하지 않는다. 쉽게 현실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어떤 식으로건 문제를 회피하지 말 것! 그리고, 손쉽게 타협하지 말고 철저하게 사유하라고 강조한다.
그렇지만 나는 저자의 제안대로 '사유'만 해서는 이 사회가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사유'와 '실천'이 병행되고,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상승작용을 하지 않으면 한국사회의 미래를 없을 것이다.

[ 2013년 12월 13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식, 인권
토머스 페인 지음, 박홍규 옮김 / 필맥 / 200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천 [서평]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저, 박홍규 역의 <상식 Common Sense 인권 Rights of Man>을 읽고 / 2004. 12., 435쪽, 필맥

이 책은 미국 독립혁명 및 프랑스혁명 시기의 혁명적 정치사상가였던 토머스 페인(Thomas Paine)의 대표작 <상식>과 <인권>을 한데 묶은 것이다.
<상식>은 18세기 후반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메리카의 인민들에게 자주독립 및 대의제에 입각한 공화국 수립을 촉구함으로써 아메리카 독립전쟁을 혁명의 차원으로 끌어올렸고, <인권>은 프랑스혁명을 비난한 보수논객 에드먼드 버크에 대항해 프랑스혁명을 옹호하면서 자연권에 입각한 인권의 관점에서 국가의 바람직한 모습과 역할을 논했다.

두 책은 독립혁명기의 미국 인민대중으로 하여금 영국의 제국주의적 횡포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민주국가 건설에 나서도록 자극했다. 오늘날 미국이 스스로 제국건설에 나서면서 자신의 건국이념을 어떻게 배신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20세기 전반기에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참혹한 인권유린을 겪은 세계는 1948년 12월 10일 유엔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해 선포하고,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의 이정표로 삼았다. 그러나 그 후에도 불평등, 인종차별, 성차별 등으로 인해 인권유린은 계속돼왔다. 최근에는 테러와 대테러 전쟁, 경제적 세계화에 수반된 불평등 심화, 종교간 갈등 등으로 인한 인권유린의 참상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2013년 한국의 정치와 사회처럼 '상식'과 '인권'이 간절할 때가 없었던 것 같다. '보수'를 주창하는 이들은 상식이나 인권을 벌레보듯 하고,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 중 일부는 상식과 인권을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경향이 많아 보인다.
나 역시 무의식적으로 '상식'과 '인권'을 이야기하면서도 서구에서 넘어온 '상식'가 '인권'이 어떤 시대적 배경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온 개념인지 잘 모르고 떠들었다. 이제 '상식'과 '인권'을 서구사회에 전격적으로 제기했던 페인의 팜플렛과 책을 읽으면서 그 개념의 배경과 취지를 이해하고 싶었다.

이 책을 번역한 박홍규 교수가 추천서에 쓴 글도 의미심장하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소용돌이를 겪은 후, 이 책을 번역하여 출판했던 박홍규 교수가 '옮긴이의 말'에 남긴 문장이 9년이 지난 지금에도 크게 공감이 된다. 공직자라 하여 정상적인 비판이 아니라 근거도 없이 감정섞인 마녀사냥식 비난을 퍼붓는 이들을 보면 무척 안타깝다.

"2003년 초부터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의에서 다수의 국민들은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을 국회가 탄핵한 점에 본노했다. 그 분노는 대통령이나 국민이 갖는 상식적인 인권을 국회가 비상식적으로 침해한 민주주의의 원리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의 권위에 대한 국회의 도전에 대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아직도 권위주의적인 대통령상까지 도사리고 있다. 대통령이 국회보다 더 부패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당시 분노의 이유 중 하나였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탄핵반대 의견이 거세었다가 과거 독재자 대통령의 딸이 국회 다수당의 새 대표로 뽑히자 그 반대가 삽시간에 수그러든 점은, 대통령에 대한 권위주의적 생각이 국민 대다수의 마음에 존재한다는 점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런 현상은 아직도 우리에게 인권과 민주주의가 상시이 아님을 웅변한다."

박 교수의 해석을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자만, 대통령에게는 인권이 없다는 상식 아닌 상식이 광범위하게 도사리고 있으니 국회의원, 그것도 소수당의 국회의원 한 명이나 사회단체 그리고 일반 국민들의 인권이 쉽사리 짓밟히는 것이 어찌보면 한국사회에서 상식이 제대로 자리잡기 쉽지 않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정치인과 지식인, 언론인은 "일반 국민에게는 인권이 있지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검찰총장에게는 인권이 제한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주장은 인권이 무엇인가에 대해 철저하지 않은 생각이 문제일 것입니다.
인권이 보편적이고 절대적이라는 것은 개인의 지위나 출생, 직업이나 재산정도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 보편적으로 불리우는 '상식'이라는 개념이 서구에서 어떤 과정으로 탄생하였는지 공부하다 보면 상식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이고 철저한 인식에 도달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것도 아니라면 서구처럼 식민지 지배자와 지배권력에 대항하는 혁명과 전쟁을 통해서 한국인 개개인들이 인식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는 상당한 인명의 희생이 따라야 할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이미 수많은 인명의 희생을 통해 인권과 민주주의가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맞지만, 여전히 많은 정치인, 지식인, 개인들이 개념과 적용에서 '아전인수'하는 경향이 많고 인권과 민주주의가 지난 2008년 이후 지속적으로 후퇴하고 있으니 걱정이 걱정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책을 읽는 데 있어 서구의 사상에서 늘상 나타나는 두 가지 경향은 잊지 말아야한다. 첫째, 토머스 페인이 아메리카로 이주한 유럽인들이 애초 아메리카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부당하게, 짐승처럼 ?i아낸 것을 자신의 주장의 근거나 논리에 포함시켰는지 둘째, 200년 전에 처음 제기된 개념이고 동양과 서양이 진화해온 사회와 문화가 다르니 우리에 맞게 다시 해석하고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18세기 미국과 영국 그리고 21세기 한국과 미국
페인의 저술 중에서 일부를 소개한다. 당시의 시대를 21세기로 바꾼 후, 아래 문장에서 영국을 미국(아메리카)로, 프랑스/스페인을 중국으로 바꾸어 읽어도 별로 이상하지 않습니다. 당시 미국의 종속과 그에 따른 위협은 지금 한국에서도 동일하게 발견할 수 있다. 18세기 미국과 영국의 관계와 21세기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밀접하게 연결되는 셈이다.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영국이 우리를 보호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영국이 자신의 비용과 함께 우리의 비용으로 대륙을 방어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방어는 보호라기보다는 독점이며, 영국은 같은 동기, 즉 장사와 영토를 위해서라면 그게 아메리카가 아니라 터키라도 방어했을 것이다.
가련하게도 우리는 낡은 편견 때문에 길을 잘못 들어섰고, 미신에 엄청난 희생을 바쳤다. 우리는 영국의 동기가 '사랑'이 아니라 '이익'이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고, 영국의 보호를 자랑해왔다.
그러나 영국은 '우리를 위해 우리의 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자기 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한 것이었고, 그 적은 '이와 다른 이유로' 우리와 싸운 적이 없지만 앞으로는 '이와 같은 이율'로 우리의 적이 될 것이다.
영국이 더 이상 대륙에 그런 거짓 주장을 할 수 없게 하거나 대륙이 더 이상 영국에 종속되기를 거부한다면, 프랑스와 스페인이 영국과 전쟁을 해도 우리는 그들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p.48)

우리는 우리 자신뿐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해서라도 그런 동맹을 파기해야할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어떤 식으로든 영국에 복종하거나 예속된다면 아메리카 대륙은 곧장 유럽의 전쟁과 분규에 말려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서로 우호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아무런 불평이나 감정도 갖지 않은 나라들과도 사이가 틀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유럽은 우리의 무역시장이므로 우리는 그 어느 부분과도 편파적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 유럽의 투쟁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미국의 참된 이익이다. 그러나 아메리카가 영국 정치라고 하는 저울에서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기 위한 부속물에 머물러 있는 한 그것은 불가능하다.(p.52)

나는 복수심을 도발할 목적으로 공포를 심으려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확고한 목적을 단호하게 추구할 수 있도록 치명적이고 비겁한 반수면 상태에서 우리를 일깨우고자 하는 것뿐이다. '머뭇거림'과 '비겁'으로 인해 아메리카인들이 스스로 정복당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 영국이나 유럽은 그들의 힘만으로 아메리카를 정복할 수 없다.(p.56)

영국이 다시는 우리을 찾취하지 않을 것이라 여기는 것은 헛된 환상이다. 우리는 인지조레가 폐지되었을 대 그렇게 생각했지만 불과 일이 년 만에 진실은 드러났다. 따라서 한번 패배한 국민은 그 패배한 일에 대해 절대로 다시 싸움을 시작하지 않으리라고 가정해도 좋다.
영국은 이 대륙을 정의롭게 통치할 힘이 없다. 그 일은 너무 버겁고 복잡해서,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우리에 대해 너무나 모르는 나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p.57)"

영국과 전쟁을 통해 미국이 독립한 후 미국이 제대로 된 사회와 국가로 정비되었고 그에 따라 미국과 영국의 관계가 공정하고 평등하고 평화롭개 변모했듯이 미국과 한국의 관계도 한국이 미국에 대한 종속, 예속에서 벗어날 때만이 미국과 진정한 '동맹'이든 '동반자'든 가능할 것이다.
당시 미국 내에 존재하는 친영파가 현재 국내에 친미파로 존재하고 있고, 영국의 보호를 주장하는 이들처럼 작전지휘권을 돌려받기를 겁내하면서 어처구니 없게도 그 댓가로 미국 무기를 사주려는 작자들이 있다.

분단체제의 극복은 미국으로부터 심리적, 군사적, 정치외교적,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주권을 세우는 과정과 동전의 양면이 될 것이다. 지난 20년 과정에서 보았듯이 북한 문제는 '권력쟁탈'과 '이익'을 위한 핑계일 뿐이고...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이념인 인권선언

인권의 기원은 1789년 프랑스 국민회의가 선포한 인권선언, 즉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대한 선언'이다. 인권선언 17개 조항 중에서 인권선언의 토대인 몇 가지 조항을 살펴 보면 아래 네 가지다.

제1조,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도 평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났다. 따라서 사회적인 차별은 공공의 이익을 근거로 해서만 있을 수 있다.
제2조, 모든 정치적 결사의 목적은 자연적이고 소멸될 수 없는 인간의 권리를 보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권리란 자유, 재산, 안전, 그리고 압제에 대한 저항 등이다.
제3조, 모든 주권은 본질적으로 국민인다. 어떤 개인이나 단체도 명백히 국민에게서 나오지 않는 권위를 행사할 수 없다.
제4조, 정치적 자유는 타인을 해치지 ?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리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자연권 행사는 사회의 다른 구성원이 동일한 권리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데 필요한 제한 외에는 어떤 제한도 받지 않는다.
제6조, 법은 공동체 의지의 표현이다. 모든 시민은 스스로 또는 대표를 통해 법 제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법은 보호를 하든 처벌을 하근 모든 사람에게 동일해야 한다.
제11조,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교환은 인간의 가장 고귀한 권리 중 하나다. 따라서 모든 시민은 자유롭게 말하고 쓰고 출판할 수 있다. 단, 법으로 정한 경우 그 자유의 남용에 대해서는 책임져야 한다. (토머스 페인의 <인권> 중에서...)

따라서 이 인권선언을 2013년 대한민국에 적용할 경우, 작년 대선에서 51.6% 득표율로 당선된 정권이라 하여 48.6%의 유권자를 차별하거나 배제할 권리는 없다. 다수당이라고 하여 소수당을 다수결로 차별할 권리도 없으며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다고 하여 다른 정당, 단체, 개인, 정책을 차별할 권리도 없는 것이다. 그런 차별을 허용한 법과 제도는 인권 침해이므로 바꾸어야 한다.
또한 강정마을, 쌍용차 해고자, 밀양 송전탑, 용산참사에 대한 정권의 강제와 폭력은 주권자이자 인권을 가진 사람의 자연적이고 소멸할 수 없는 권리인 자유, 안전, 저항권을 침해한 것입니다. 이런 경우 공권력의 행사는 폭력일 뿐이고 자연인의 저항은 권리인 것이다.

시민과 유권자가 스스로 법 제정에 참여할 권리를 제한한 현행 헌법과 법률은 한국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사법부와 주요 임명직 공직자에 대한 주권자의 대표 선출권도 강화되어야 한다. 스위스처럼 일정한 규모의 주권자가 요구할 경우 법률 제정권과 공직자에 대한 탄핵권을 가져야 한다.
국가보안법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원천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악법 중의 악법이다. 국가보안법 폐지가 되지 않는 이상 한국사회에 인권이 보장되었다거나 민주화되었다라는 말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국가 안보는 국민의 안전과 자유, 저항권, 평등, 생존권이 보장되었을 때 국민들의 힘으로 지켜지는 것이다.

정부와 정권을 반대하는 개인, 단체, 정당의 주장과 노력을 '종북' '빨갱이'로 매도하는 모든 언행은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해 전혀 무지하거나 부정하는 것이다. 특히 언론과 배운 것들의 행태는 헌법과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 짓이다.
마찬가지로 올해 지속되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 극우언론의 탄압과 여론몰이는 인권과 정치적 자유에 대한 침해다. 소위 진보정치인과 진보지식인의 비판을 위장한 비난 역시 인권이나 정치적 자유, 공공의 이익이나 사상 의견의 자유에 대한 몰이해, 종파적 이익 또는 극우콤플렉스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당시 토머스 페인의 한계를 지적해야 한다. 그는 "노르만의 윌리엄으로부터 시작하면, 영국이라는 국가는 본래 침략과 정복에 기반을 둔 전제정이었음을 알게 된다."(p.279)고 저술했지만, 미국의 독립 이전에 수백 년간 서구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해 원주민, 인디언을 ?i아내고 학살하여 토지를 장악했던 것 역시 침략이자 정복이기 때문이다. 페인은 책 어디에서도 이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 2013년 10월 31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동의 배신 -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워킹 푸어 생존기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최희봉 옮김 / 부키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 바버라 에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 저, 최희봉 역 < 노동의 배신 Nickel and Dimed >를 읽고 / 2012. 06., 311쪽, 부키

"최저 임금을 받아서 과연 먹고살 수 있을까?"
"그들이 가난한 게 정말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일까?"

이 책은 <긍정의 배신>으로 긍정주의 처세술과 긍정신학의 본질과 속셈을 고발했던 저자의 워킹 푸어(working poor, 근로 빈곤층) 생존기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3년에 걸쳐 미국 내 여러 개 주에서 자신이 직접 식당 웨이트리스, 호텔 객실 청소부, 가정집 청소부, 요양원 보조원, 월마트 매장 직원 등으로 일하며 최저 임금 수준의 급여로 정말 살 수 있는지를 체험했다.(2012년 현재 미국 연방 정부의 최저 임금은 시간당 7.25달러)

처음 저자의 목표는 단순했다. 일을 구하고 그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음식을 사고 잠자리를 구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단순한 목표를 이루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직업, 직장을 구하는 과정에서부터 감정과 존엄성을 말살하는 노동 환경, 영양은 커녕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열량조차 섭취하지 못하는 식생활, 부자들이 집값을 올려놓은 탓에 싸구려 모텔과 트레일러 주택을 전전하며 점점 더 외곽으로 쫓겨나는 주거 실태, 가난하기에 돈이 더 많이 들고 그래서 더 일해야 하고 빚을 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쳇바퀴까지, 저임금 노동자들을 옥죄는 생활의 굴레를 저자 특유의 위트와 날카로운 분석으로 파헤친다.
저자는 우리가 영화와 드라마에서만 보았던 미국사회의 중산층 이하 계층의 삶이 얼마나 위태롭고 위험한지 생생하게 말해준다. 극심한 빈부격차와 함께. 도시기반시설 차이만 없다면 21세기 미국사회의 속살은 20세기 초 시카고 도시민의 지옥같은 삶을 보여준 업튼 싱클레어의 <정글>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더욱 심각한 생각이 들도록 한 것도 있다. 저자가 저임금 체험을 할 당시, 미국은 성장은 지속되면서 물가는 안정된 이른바 '골디락스 경제'에 한껏 취해 있었다. 일부 부유층을 제외한 대다수 임금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하락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집값과 주가 상승 등 자산 거품이 빚어내는 '부의 효과'에 흥청거렸다.
그런 경제 상황이었음에도 당시 미국 내 시간제 노동자의 생존이 '워킹 푸어'라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미국 내 저임금 노동자의 삶이 어떠했을지는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미국의 공화당이나 민주당 정부는 세계적인 군사패권전략과 군산복합체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처구니가 없다. 중동에서의 전쟁,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와 군사훈련, 무지막지한 군사비의 유지가 과연 미국 내 중산층 이하 국민들의 삶을 책임질 수 있을지...

참고로, '노동의 배신'이라는 한국어판 제목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점점 더 가난해지는, 노동에 '배신'당하는 워킹 푸어의 역설적인 현실을 의미한다. 원제인 'Nickel and Dimed' 역시 '야금야금 빼앗기다', '매우 적은 돈을 쓰다'라는 두 가지 뜻으로, 푼돈조차 아껴 쓸 수밖에 없으며 가난하기에 오히려 돈이 더 드는 워킹 푸어의 생활을 보여 주는 말이다. 
출판사는 이 책이 15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이자 예일대 등 미국 600여 개 대학의 필독서로 지정된, 온몸을 던져 신자유주의 시대의 빈곤 문제를 다룬 '현대의 고전'이라 평가받는다고 소개한다.

사실 전례 없는 호황이라던 그때, 노동 인구의 30퍼센트가 생활이 가능한 수입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당 8달러 이하의 임금을 받았고(1998년), 최저 임금은 1997년부터 2006년까지 10년간 시간당 5.15달러에 멈춰 있었다. 다만 거품에 취해 있던 대다수의 미국인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깊어지는 풍요의 그늘'을 외면했을 뿐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에런라이크는 빈곤층의 열악한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내며 그들이 결코 게으르거나 일을 하지 않아서 가난한 게 아님을, 그들의 빈곤이 중산층의 안락함의 토대임을 섬뜩할 만큼 몸으로 보여 주었기에 미국 사회가 받은 충격은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2001년 5월 초판이 나오자마자 책은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생활 임금 운동의 큰 동력이 되었다. 그 결과 29개 주가 최저 임금을 인상했고 100개 이상의 도시에서 생활 임금을 지급하라는 법령이 통과됐다. 마침내 2007년 7월에는 연방 정부가 최저 임금을 인상하기에 이른다. 

저자가 처음 맞닥뜨린 저임금 일은 식당 웨이트리스였다. 일을 더 잘하고 싶고 손님들을 잘 돌보고 싶다는 고차원적인 '아가페', 혹은 서비스 윤리는 쉴 새 없이 몰려드는 손님들에 지쳐 어느새 사라진다. 손님들이 적으로 보이는 웨이트리스 일에 필요한 것은 '생각하지 말고 계속 움직이는 것'이니까. 게다가 컴퓨터 터치스크린으로 하는 주문 시스템에 적응해야 하고 끊임없이 쓸고, 닦고, 썰고, 붓고, 채우는 '잡일'도 해야 한다.
두 번째로 체험한 청소 용역 회사의 파견 청소부는 강도 높은 육체노동이 반복되는 일이다. 집 안 곳곳의 먼지를 털고 거대한 진공청소기를 등에 진 채 청소하고 무릎을 꿇어 바닥을 닦고 똥 묻은 변기와 욕조의 체모까지 치워야 한다. 온몸은 땀투성이가 되고 곳곳이 아프기 마련. 부상을 당하는 일도 다반사지만 치료는커녕 마음 편히 쉬기도 어렵다. 가려움증 때문에 나병 환자 같은 몰골이 된 저자에게 사장은 '아무 문제없다'며 일하러 가라고 떠민다. 값싼 진통제나 담배, 술 한 잔에 의존하거나 대부분은 그냥 참는 것으로 버틴다. 
마지막으로 체험한 월마트 매장 일은 '단순노동'. 저자는 숙녀복 매장에 배치돼 손님들이 어질러 놓고 간 옷을 정리하고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 귀가 안 들리고 말을 못한다고 해도 아무 문제없이 할 수 있고, 자폐증이 있으면 오히려 더 유리할 것 같은 그런 일이다. 그러나 해도 해도 끝이 없을 만큼 양이 많다. 게다가 3일마다 한 번씩 매장 배치가 바뀌는 탓에 그때마다 자리 배치를 다시 외워야 한다. 저자는 근무 시간 초반에 친절한 '지킬 박사'였다가도 끊임없이 옷가지를 헤쳐 놓는 손님들에 지쳐 이내 '하이드'로 폭발하고 만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 힘든 것은 정신적인 고통이다. 특히 지배인, 매니저 등 관리자들의 비인간적인 관리 방식이 노동자들을 가장 괴롭힌다. 이를테면 웨이트리스들은 마치 중학생처럼 식당 한쪽에 서서 지배인에게 야단을 맞고, 평소에는 한시도 쉬지 못하게 감시를 받는다. 
청소부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유니폼 자체가 이미 '죄수복'이다. 노란색과 녹색의 요란스런 색깔로 어디서든 존재를 노출시킨다. 집주인들은 청소부들을 늘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한다. 귀중품 옆에는 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있고, 카펫 밑에는 먼지 덩어리가 숨겨져 있다.
무엇보다 다른 저임금 노동자들에게조차 따돌림당하는 현실은 가슴 아프다. 워킹 푸어의 세계에서는 청소부가 최하층에 자리한 '불가촉천민'인 셈이다. 그러니 자신들을 '착취'하는 사장의 인정에 과도하게 매달리게 된다. 아무리 깨끗이 청소해도 누구 하나 내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심지어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다면? 사장의 인정이 내 존재 가치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거대 기업인 월마트 역시 다를 바 없다. 입사할 때는 하루 종일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동료'라는 말로 다독이고, '우리들이 월마트를 월등하게 만든다'고 추켜세우지만, 그것 역시 직원들을 '길들이는' 과정일 뿐이다. 

처음 저임금 체험에 뛰어들었을 때, 저자는 복지 개혁론자들이 주장하듯 최저 임금을 받는 일자리로 생계를 꾸려 갈 수 있다면 가난한 사람들에겐 '특별한 절약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없었다. 오히려 가난하기에 돈이 더 드는 상황에 수시로 맞닥뜨렸다.
아파트를 구할 때 필요한 한 달치 집세와 한 달 집세에 상응하는 보증금이 없으면 일주일 단위로 방을 빌리면서 엄청난 방세를 내야 한다. 조리 기구가 없는 집에서 살아야 한다면 콩 스튜 같은 걸 미리 요리해 놓고 냉동시켜 먹을 수는 없다. 주로 웬디스나 맥도날드에서 패스트푸드를 먹거나 편의점에서 즉석 식품을 사 먹어야 한다. 의료보험에 들 형편이 안 되니 정기 검진을 받을 수 없고, 처방전이 필요한 약도 살 수 없고, 결국에는 약을 구하지 못해 일을 오래 쉬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2000년, 보스턴에 있는 고용 문제 연구소 '미래의 직업(Jobs for the Future)'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94퍼센트가 '풀타임으로 일하는 사람이라면 가족을 빈곤으로부터 지킬 수 있을 만큼 임금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풀타임으로, 때로는 두 가지 일을 해도 더 가난해지고 빚만 늘어 가는 워킹 푸어의 수는 점점 더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2010년에는 미국의 노동 인구 중 7.2퍼센트인 1,050만 명이 워킹 푸어로 집계돼 2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미 2008년에 전체 노동 인구의 11.6퍼센트인 270만 명이 워킹 푸어로 조사됐고, 최근에는 전체 인구의 10퍼센트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빈곤층이 더욱 늘어나는 데 따라 그들을 백안시하는 문화도 더 심해지고 있다. 이제 가난은 거의 범죄가 되었다. 법조차 빈민을 차별한다. 콜로라도 주 그랜드정션의 시 의회는 구걸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을 논의 중이고, 애리조나 주의 템페에서는 2011년 6월 말에 나흘 동안 극빈자를 단속했다. 또 가난한 사람이 무단 횡단을 하거나 쓰레기를 버리는 등의 가벼운 범법 행위만 해도 필요 이상으로 단속하는 추세다.

일을 해도, 아니 일을 할수록 가난해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평범한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이 극심한 불평등을 단지 1퍼센트의 탐욕 때문이라고 간단히 결론짓고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속 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우리에게 저자는 도끼를 내리친다. 우리의 안락함이 바로 이들의 희생 위에 지어진 것이라고. 에런라이크는 우리의 특권과 그들의 고통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끄집어내고 '이 사태에 당신은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라고 물으며 독자에게 인식의 확장은 물론 행동의 변화를 요구한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그들에게 수치심을 느껴야 마땅하다고 절절히 호소한다. 수백만 워킹 푸어가 겪는 빈곤을 '응급 상황'으로 받아들여 이를 개선하자고 외친다. 임금을 올리고, 그들을 범죄자 취급하지 말고, 그들이 조직을 결성해 더 나은 임금과 노동환경을 얻어내도록 하자고 말한다. 무엇보다 넘어져 있는 그들을 발로 차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원칙이라도 필요하다는 호소에는 평소 누구보다 앞장서 사회 운동을 활발히 펼쳐 온 에런라이크의 현실에 대한 분노와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저자의 경험은 불과 십 몇 년전 미국사회의 모습이지만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내내 전혀 미국같지가 않았다. 저자의 노동 경험은 최근 한국사회에서 심각하게 사회문제가 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박근혜 정권이 올해 집권 초기에 선언한 '시간제 노동'이 자리잡은 미국 본토의 현실이다. 과연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은 그런 '시간제 노동'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려는 정책을 수립한 것인지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다. 친미와 종미 사대주의의 필연적인 방향인지 우려스럽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의 실세 김무성의 주장처럼 새누리당이 한두 번만 더 집권하면 충분히 한국사회에서도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로도 제대로 된 식사, 휴식, 휴가, 의료, 교육, 주거를 보장받지 못하는 한국사회는 저자의 경험이 오히려 덜 고통스러울 수 있을 정도로. 아니 이미 한국사회 밑바닥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시간제 노동으로 워킹 푸어의 삶을 사는 이들이 무수히 숨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한국 내 식당 웨이트리스, 호텔 객실 청소부, 가정집 청소부, 요양원 보조원, 월마트 매장 직원 등의 이름으로 스쳐 지나가는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구체적인 삶과 고민과 고통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는 이 책과 저자를 통해 한국 내 대학교수들과 지식인, 언론인들의 게으름과 안일함 그리고 비인간성을 고발하고 싶다. 정부, 정당, 기관들은 그냥 재벌과 기득권층의 하수인이라 지탄하고 청산해야할 집단이라 간주하더라도...

○ 인상 깊은 문장 :

- "허스사이드에서 며칠 일하면서 나는 수유 호르몬인 옥시토신 주사를 한 방 맞은 것처럼 온몸이 서비스 정신으로 가득 찼다. 대부분의 고객은 힘든 노동을 하는 지역 주민들이었다. 트럭 운전사, 건설 현장 노동자, 심지어는 식당이 속해 있는 호텔에서 일하는 청소부들도 왔다. 지저분한 환경이 허락하는 한, 나는 그들에게 '고급스런' 식사에 가장 근접한 식사를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다. 손님에게는 '당신'이라고 하지 않고 12세 이상이면 누구나 '선생님'과 '사모님'이라고 불렀다. 아이스티와 커피를 계속 채워 주는 한편 손님들이 식사하는 도중에 다가가서 음식이 괜찮은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샐러드를 시키면 잘게 썬 생버섯이나 여름 호박 조각, 또는 냉장창고 안에서 곰팡이가 피지 않은 야채를 뭐든 찾아 예쁘게 썰어 위에 얹어 내갔다." ('1장 가난하기에 돈이 더 든다' 중에서/ p.36)

- "당신의 대리석 벽이 피를 흘리는 게 아닙니다. 저것은 전 세계의 노동자 계급, 즉 대리석을 캐 나른 노동자들, 당신이 아끼는 페르시아산 카페트를 눈이 멀 때까지 짠 사람들, 당신이 가을을 주제로 아름답게 꾸며 놓은 식탁 위의 사과를 수확한 사람들, 쇠못을 만들기 위해 강철을 제련한 사람들, 트럭을 운전한 사람들, 이 건물을 지은 사람들, 그리고 지금 이 집을 청소하려고 허리를 굽히고 쪼그리고 땀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흘리는 피입니다." ('2장 모두가 우리를 무시한다' 중에서/ p.129)

- "예를 들어 똥에 대해 얘기해 보자. 청소부에게 똥은 피할 수 없는 일의 한 부분이다. 청소부가 되어 처음으로 똥 묻은 변기와 대면했을 때 나는 누군가와 원치 않는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는 사실에 심한 충격을 받았다. 바로 몇 시간 전에 어떤 통통한 엉덩이가 이 변기에 앉아 힘을 주었고 나는 여기서 그걸 치우고 있구나." ('2장 모두가 우리를 무시한다' 중에서/ pp.130~131)

- "6시가 지나 멜리사와 엘리가 퇴근하고 나면, 그리고 9시에 이사벨까지 퇴근하고 나면 그때부터 매장은 '내 것'이 되었다. 저리 비켜요, 샘. 여기는 이제 바브-마트(Barb-Mart)라고요. 카트를 끌고 매장 둘레를 시찰하다 제자리에 있지 않거나 떨어져 있는 상품을 보면 얼른 뛰어가서 줍고 모든 것을 보기 좋게 정리했다. 탁 치면서 제자리에 놓았다. 똑바로 걸려 있어, 차려 자세로. 아니면 선반에 정연하게 엎드려 있어. 이런 마음 상태가 되면 고객이 상품을 들추고 다니며 매장을 건드리는 게 보기 싫어졌다. 사실은 상품이 팔린다는 개념 자체가 싫었다. 원래의 집에서 뿌리가 뽑혀 상태가 어떤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옷장 안으로 내 옷이 빨려 들어간다는 게 정말 싫었다. 여성복 매장을 거대한 플라스틱 거품 안에 넣어 소매상점들에 관한 역사박물관 같은 어디 안전한 곳에 잘 보관했으면." ('3장 '동료'라는 이름의 노예' 중에서/ p.226)

- "바로 그 순간에 나와 함께 휴게실에 있던 여성이 벌떡 일어나더니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텔레비전을 향해 주먹 쥔 팔을 흔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빠르게 두 검지를 아래로 향하는 손짓을 해 보였다. "여기! 우리들! 우리도 저렇게 할 수 있어요!"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내가 앉아 있는 곳으로 달려와 얼굴을 가까이 하더니 "당연하죠, 젠장!"이라고 말했다. 발이 너무 아파서 그랬는지 그녀가 '젠장'이라고 욕을 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내 휴식 시간을 훌쩍 넘기고 아마도 그녀의 휴식 시간도 지날 때까지 우리는 함께 얘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딸 얘기, 계속 장시간 근무를 하느라 딸과 함께하는 시간을 한 번도 제대로 가져 본 적이 없다는 얘기, 그리고 아무리 일하고 벌어도 저축할 엄두도 못 내는데 이렇게 일만 하면 뭐 하느냐는 얘기…. 나는 지금도, 만약 월마트에서 조금만 더 일했더라면 그녀와 둘이서 뭔가를 해냈을 거라고 생각한다." ('3장 '동료'라는 이름의 노예' 중에서/ p.257)

[ 2013년 10월 19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