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인권
토머스 페인 지음, 박홍규 옮김 / 필맥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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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저, 박홍규 역의 <상식 Common Sense 인권 Rights of Man>을 읽고 / 2004. 12., 435쪽, 필맥

이 책은 미국 독립혁명 및 프랑스혁명 시기의 혁명적 정치사상가였던 토머스 페인(Thomas Paine)의 대표작 <상식>과 <인권>을 한데 묶은 것이다.
<상식>은 18세기 후반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메리카의 인민들에게 자주독립 및 대의제에 입각한 공화국 수립을 촉구함으로써 아메리카 독립전쟁을 혁명의 차원으로 끌어올렸고, <인권>은 프랑스혁명을 비난한 보수논객 에드먼드 버크에 대항해 프랑스혁명을 옹호하면서 자연권에 입각한 인권의 관점에서 국가의 바람직한 모습과 역할을 논했다.

두 책은 독립혁명기의 미국 인민대중으로 하여금 영국의 제국주의적 횡포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민주국가 건설에 나서도록 자극했다. 오늘날 미국이 스스로 제국건설에 나서면서 자신의 건국이념을 어떻게 배신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20세기 전반기에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참혹한 인권유린을 겪은 세계는 1948년 12월 10일 유엔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해 선포하고,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의 이정표로 삼았다. 그러나 그 후에도 불평등, 인종차별, 성차별 등으로 인해 인권유린은 계속돼왔다. 최근에는 테러와 대테러 전쟁, 경제적 세계화에 수반된 불평등 심화, 종교간 갈등 등으로 인한 인권유린의 참상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2013년 한국의 정치와 사회처럼 '상식'과 '인권'이 간절할 때가 없었던 것 같다. '보수'를 주창하는 이들은 상식이나 인권을 벌레보듯 하고,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 중 일부는 상식과 인권을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경향이 많아 보인다.
나 역시 무의식적으로 '상식'과 '인권'을 이야기하면서도 서구에서 넘어온 '상식'가 '인권'이 어떤 시대적 배경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온 개념인지 잘 모르고 떠들었다. 이제 '상식'과 '인권'을 서구사회에 전격적으로 제기했던 페인의 팜플렛과 책을 읽으면서 그 개념의 배경과 취지를 이해하고 싶었다.

이 책을 번역한 박홍규 교수가 추천서에 쓴 글도 의미심장하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소용돌이를 겪은 후, 이 책을 번역하여 출판했던 박홍규 교수가 '옮긴이의 말'에 남긴 문장이 9년이 지난 지금에도 크게 공감이 된다. 공직자라 하여 정상적인 비판이 아니라 근거도 없이 감정섞인 마녀사냥식 비난을 퍼붓는 이들을 보면 무척 안타깝다.

"2003년 초부터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의에서 다수의 국민들은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을 국회가 탄핵한 점에 본노했다. 그 분노는 대통령이나 국민이 갖는 상식적인 인권을 국회가 비상식적으로 침해한 민주주의의 원리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의 권위에 대한 국회의 도전에 대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아직도 권위주의적인 대통령상까지 도사리고 있다. 대통령이 국회보다 더 부패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당시 분노의 이유 중 하나였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탄핵반대 의견이 거세었다가 과거 독재자 대통령의 딸이 국회 다수당의 새 대표로 뽑히자 그 반대가 삽시간에 수그러든 점은, 대통령에 대한 권위주의적 생각이 국민 대다수의 마음에 존재한다는 점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런 현상은 아직도 우리에게 인권과 민주주의가 상시이 아님을 웅변한다."

박 교수의 해석을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자만, 대통령에게는 인권이 없다는 상식 아닌 상식이 광범위하게 도사리고 있으니 국회의원, 그것도 소수당의 국회의원 한 명이나 사회단체 그리고 일반 국민들의 인권이 쉽사리 짓밟히는 것이 어찌보면 한국사회에서 상식이 제대로 자리잡기 쉽지 않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정치인과 지식인, 언론인은 "일반 국민에게는 인권이 있지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검찰총장에게는 인권이 제한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주장은 인권이 무엇인가에 대해 철저하지 않은 생각이 문제일 것입니다.
인권이 보편적이고 절대적이라는 것은 개인의 지위나 출생, 직업이나 재산정도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 보편적으로 불리우는 '상식'이라는 개념이 서구에서 어떤 과정으로 탄생하였는지 공부하다 보면 상식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이고 철저한 인식에 도달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것도 아니라면 서구처럼 식민지 지배자와 지배권력에 대항하는 혁명과 전쟁을 통해서 한국인 개개인들이 인식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는 상당한 인명의 희생이 따라야 할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이미 수많은 인명의 희생을 통해 인권과 민주주의가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맞지만, 여전히 많은 정치인, 지식인, 개인들이 개념과 적용에서 '아전인수'하는 경향이 많고 인권과 민주주의가 지난 2008년 이후 지속적으로 후퇴하고 있으니 걱정이 걱정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책을 읽는 데 있어 서구의 사상에서 늘상 나타나는 두 가지 경향은 잊지 말아야한다. 첫째, 토머스 페인이 아메리카로 이주한 유럽인들이 애초 아메리카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부당하게, 짐승처럼 ?i아낸 것을 자신의 주장의 근거나 논리에 포함시켰는지 둘째, 200년 전에 처음 제기된 개념이고 동양과 서양이 진화해온 사회와 문화가 다르니 우리에 맞게 다시 해석하고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18세기 미국과 영국 그리고 21세기 한국과 미국
페인의 저술 중에서 일부를 소개한다. 당시의 시대를 21세기로 바꾼 후, 아래 문장에서 영국을 미국(아메리카)로, 프랑스/스페인을 중국으로 바꾸어 읽어도 별로 이상하지 않습니다. 당시 미국의 종속과 그에 따른 위협은 지금 한국에서도 동일하게 발견할 수 있다. 18세기 미국과 영국의 관계와 21세기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밀접하게 연결되는 셈이다.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영국이 우리를 보호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영국이 자신의 비용과 함께 우리의 비용으로 대륙을 방어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방어는 보호라기보다는 독점이며, 영국은 같은 동기, 즉 장사와 영토를 위해서라면 그게 아메리카가 아니라 터키라도 방어했을 것이다.
가련하게도 우리는 낡은 편견 때문에 길을 잘못 들어섰고, 미신에 엄청난 희생을 바쳤다. 우리는 영국의 동기가 '사랑'이 아니라 '이익'이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고, 영국의 보호를 자랑해왔다.
그러나 영국은 '우리를 위해 우리의 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자기 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한 것이었고, 그 적은 '이와 다른 이유로' 우리와 싸운 적이 없지만 앞으로는 '이와 같은 이율'로 우리의 적이 될 것이다.
영국이 더 이상 대륙에 그런 거짓 주장을 할 수 없게 하거나 대륙이 더 이상 영국에 종속되기를 거부한다면, 프랑스와 스페인이 영국과 전쟁을 해도 우리는 그들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p.48)

우리는 우리 자신뿐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해서라도 그런 동맹을 파기해야할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어떤 식으로든 영국에 복종하거나 예속된다면 아메리카 대륙은 곧장 유럽의 전쟁과 분규에 말려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서로 우호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아무런 불평이나 감정도 갖지 않은 나라들과도 사이가 틀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유럽은 우리의 무역시장이므로 우리는 그 어느 부분과도 편파적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 유럽의 투쟁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미국의 참된 이익이다. 그러나 아메리카가 영국 정치라고 하는 저울에서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기 위한 부속물에 머물러 있는 한 그것은 불가능하다.(p.52)

나는 복수심을 도발할 목적으로 공포를 심으려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확고한 목적을 단호하게 추구할 수 있도록 치명적이고 비겁한 반수면 상태에서 우리를 일깨우고자 하는 것뿐이다. '머뭇거림'과 '비겁'으로 인해 아메리카인들이 스스로 정복당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 영국이나 유럽은 그들의 힘만으로 아메리카를 정복할 수 없다.(p.56)

영국이 다시는 우리을 찾취하지 않을 것이라 여기는 것은 헛된 환상이다. 우리는 인지조레가 폐지되었을 대 그렇게 생각했지만 불과 일이 년 만에 진실은 드러났다. 따라서 한번 패배한 국민은 그 패배한 일에 대해 절대로 다시 싸움을 시작하지 않으리라고 가정해도 좋다.
영국은 이 대륙을 정의롭게 통치할 힘이 없다. 그 일은 너무 버겁고 복잡해서,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우리에 대해 너무나 모르는 나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p.57)"

영국과 전쟁을 통해 미국이 독립한 후 미국이 제대로 된 사회와 국가로 정비되었고 그에 따라 미국과 영국의 관계가 공정하고 평등하고 평화롭개 변모했듯이 미국과 한국의 관계도 한국이 미국에 대한 종속, 예속에서 벗어날 때만이 미국과 진정한 '동맹'이든 '동반자'든 가능할 것이다.
당시 미국 내에 존재하는 친영파가 현재 국내에 친미파로 존재하고 있고, 영국의 보호를 주장하는 이들처럼 작전지휘권을 돌려받기를 겁내하면서 어처구니 없게도 그 댓가로 미국 무기를 사주려는 작자들이 있다.

분단체제의 극복은 미국으로부터 심리적, 군사적, 정치외교적,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주권을 세우는 과정과 동전의 양면이 될 것이다. 지난 20년 과정에서 보았듯이 북한 문제는 '권력쟁탈'과 '이익'을 위한 핑계일 뿐이고...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이념인 인권선언

인권의 기원은 1789년 프랑스 국민회의가 선포한 인권선언, 즉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대한 선언'이다. 인권선언 17개 조항 중에서 인권선언의 토대인 몇 가지 조항을 살펴 보면 아래 네 가지다.

제1조,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도 평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났다. 따라서 사회적인 차별은 공공의 이익을 근거로 해서만 있을 수 있다.
제2조, 모든 정치적 결사의 목적은 자연적이고 소멸될 수 없는 인간의 권리를 보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권리란 자유, 재산, 안전, 그리고 압제에 대한 저항 등이다.
제3조, 모든 주권은 본질적으로 국민인다. 어떤 개인이나 단체도 명백히 국민에게서 나오지 않는 권위를 행사할 수 없다.
제4조, 정치적 자유는 타인을 해치지 ?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리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자연권 행사는 사회의 다른 구성원이 동일한 권리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데 필요한 제한 외에는 어떤 제한도 받지 않는다.
제6조, 법은 공동체 의지의 표현이다. 모든 시민은 스스로 또는 대표를 통해 법 제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법은 보호를 하든 처벌을 하근 모든 사람에게 동일해야 한다.
제11조,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교환은 인간의 가장 고귀한 권리 중 하나다. 따라서 모든 시민은 자유롭게 말하고 쓰고 출판할 수 있다. 단, 법으로 정한 경우 그 자유의 남용에 대해서는 책임져야 한다. (토머스 페인의 <인권> 중에서...)

따라서 이 인권선언을 2013년 대한민국에 적용할 경우, 작년 대선에서 51.6% 득표율로 당선된 정권이라 하여 48.6%의 유권자를 차별하거나 배제할 권리는 없다. 다수당이라고 하여 소수당을 다수결로 차별할 권리도 없으며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다고 하여 다른 정당, 단체, 개인, 정책을 차별할 권리도 없는 것이다. 그런 차별을 허용한 법과 제도는 인권 침해이므로 바꾸어야 한다.
또한 강정마을, 쌍용차 해고자, 밀양 송전탑, 용산참사에 대한 정권의 강제와 폭력은 주권자이자 인권을 가진 사람의 자연적이고 소멸할 수 없는 권리인 자유, 안전, 저항권을 침해한 것입니다. 이런 경우 공권력의 행사는 폭력일 뿐이고 자연인의 저항은 권리인 것이다.

시민과 유권자가 스스로 법 제정에 참여할 권리를 제한한 현행 헌법과 법률은 한국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사법부와 주요 임명직 공직자에 대한 주권자의 대표 선출권도 강화되어야 한다. 스위스처럼 일정한 규모의 주권자가 요구할 경우 법률 제정권과 공직자에 대한 탄핵권을 가져야 한다.
국가보안법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원천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악법 중의 악법이다. 국가보안법 폐지가 되지 않는 이상 한국사회에 인권이 보장되었다거나 민주화되었다라는 말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국가 안보는 국민의 안전과 자유, 저항권, 평등, 생존권이 보장되었을 때 국민들의 힘으로 지켜지는 것이다.

정부와 정권을 반대하는 개인, 단체, 정당의 주장과 노력을 '종북' '빨갱이'로 매도하는 모든 언행은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해 전혀 무지하거나 부정하는 것이다. 특히 언론과 배운 것들의 행태는 헌법과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 짓이다.
마찬가지로 올해 지속되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 극우언론의 탄압과 여론몰이는 인권과 정치적 자유에 대한 침해다. 소위 진보정치인과 진보지식인의 비판을 위장한 비난 역시 인권이나 정치적 자유, 공공의 이익이나 사상 의견의 자유에 대한 몰이해, 종파적 이익 또는 극우콤플렉스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당시 토머스 페인의 한계를 지적해야 한다. 그는 "노르만의 윌리엄으로부터 시작하면, 영국이라는 국가는 본래 침략과 정복에 기반을 둔 전제정이었음을 알게 된다."(p.279)고 저술했지만, 미국의 독립 이전에 수백 년간 서구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해 원주민, 인디언을 ?i아내고 학살하여 토지를 장악했던 것 역시 침략이자 정복이기 때문이다. 페인은 책 어디에서도 이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 2013년 10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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