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놈들의 제국주의 - 한.중.일을 위한 평화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3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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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8일 노무현 대통령 자이툰 부대를 방문하다.

  매번 책을 읽고 서평을 쓸때마다 사진을 하나씩 찾아본다. 각 책의 내용을 단 하나의 컷으로 표시할 수 있는 사진을 찾아본다. 이 사진을 찾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느 순간 보았던 기사를 떠올리기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신문 기사를 뒤지고 인터넷을 뒤지다가 간신히 하나식 찾아내곤 한다. 이 책을 읽고 사진을 찾는 일도 마찬가지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 어려움의 성격은 지금까지와는 너무 다르다. 지금까지는 사진을 찾지 못하여 어려움을 겪었다면 이번에는 너무나 많은 사진 가운데 어느 것을 선별하느냐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국 사회 속에는 제국주의를 닮아가려는 속성이 너무나 만연해 있다는 의미이다.

  내 조국인 대한 민국은 참 묘한 구석이 있는 나라이다. 미국 사람들도 믿지않는 미국 정부를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나라이다. 아무리 국민들이 불안에 떨어도 미국 정부가 보증한다면 믿어야 한다, 쇠고기가 그렇게 걱정인데 된장 고추장은 어떻게 먹냐는 말을 아무런 고민도 없이 함부로 내뱉는 사람들이 이나라를 이끌어 가고 있는 실세들이다. 사회 개혁을 이야기하면 빨갱이로 몰아 붙이고, 빨갱이는 백주 대낮에 맞아 죽어도 상관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나라가 2008년의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복잡한 세계 전략과 군사 전략에 대한 이해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미국은 6.25의 은인이라 말하는, 그러면서도 쓰러져가는 명나라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명의 편에 섰다가 청나라에 침범당한 조상들의 무지몽매함을 한껏 비웃는 나라, 이것이 내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대한 민국이다. 너무나 미국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넘쳐난다. 이곳이 대한민국이 아닌 미국의 코리아주로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뒤틀린 시각이 아닐 것이다.

  미국 닮기는 영화를 비롯한 문화와 패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교육을 비롯하여 경제, 군사 분야까지 온 분야를 두루 포함하고 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에게 있어서 미국은 신의 나라요, 자유주의 국가요, 닮고 싶은 모델이다. 지금까지 정권들은 이것들을 조용하게 숨겨왔지만 이명박 정부는 백주 대낮에 거리낌 없이 한다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이다. 오죽하면 워싱턴 포스트지에서 토니블레어를 제치고 이명박 대통령이 부시의 새로운 애완견이 되었다고 비꼬겠는가?

  왜 그렇게도 미국을 닮고 싶어 하고 미국 없으면 죽는 줄 아는가? 대한민국 지도층들이 촌놈이기 때문이다. 촌놈이 서울 오면 서울의 번잡함에 압도되어 버리고 만다. 마찬가지로 촌놈인 한국의 지도층들이 미국을 가까이에서 보고 경험하게 되면서 미국에 압도되어 버렸다. 그 거대한 압도감에서 벗어나는 길은 최대한 미국을 닮아가는 것이다. 미국에게 숙이고 들어가는 것이다. 한미 군사동맹 강화라는 측면에서 미국이 돌려 주겠다는 전시작전권도 돌려받으면 안된다고 이야기하는 보수꼴통이 넘쳐나는 이유도 이것이 아니면 설명이 안된다. 미국과의 안보강화, FTA 타결을 위해서는 국민이 어찌 생각하든 쇠고기를 열어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기가막힌 생각을 대통령과 장관이 갖고 있는 것도 미국을 닮고 싶은 열망이 아니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미국에서 강력한 대선 후보인 오바마가 한미 FTA를 재협상하겠다고 외치는 마당에서도 부시 정권에서  FTA 인준이라는 장밋빛 꿈을 꾸는 정부를 바라보며 기가 차서 말이 안나온다. 그것이 던져주는 영향력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렇다. 대한민국에는 미국 아니면 죽는 줄 아는 촌놈들이 넘쳐난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을 닮고 싶어한다. 미제국주의를 닮고 그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 한류 상품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된 문화침략, 국익이라는 명목하에 평화재건의 기치를 걸고 파병된 자이툰 부대, 그리고 한나라당의 딴지 걸기에 대한 반격으로 급작스럽게 행해진 노무현 대통령의 자이툰 부대 방문. 이 모든 과정을 꼼꼼히 살펴본다면 우리는 이미 제국주의를 위한 첫발을 내딛고 있는 것이 나 다름이 없다. 제도뿐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서도 말이다.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이 사진을 바라보면서 감격적인 눈물을 흘리거나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았었는가?

  촌놈들의 제국 주의는 무척 슬플 수밖에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촌놈은 촌놈이다. 촌놈들만의 삶이 있다. 촌놈들의 삶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스스로 촌놈인 줄 모르고 미국을 닮고 싶어하는 갑제형님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일본과 중국에 대해서는 그렇게 강성으로 밀어 붙이면서도 이상하게 미국 앞에만 서면 왜 그리 작아지는 사람들이 많은지...

  우리나라 지도층들이 분명히 알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지속적으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국가는 미국보다는 일본과 중국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세계 10권의 군사 대국 가운데 3개가 몰려 있는(북한을 제외하고) 동북아에는 전쟁의 그림자가 가실 날이 없을 것이다. 미국 군산복함체들은 이러한 동북아의 위기를 적절히 조장하고 확대할 것이다.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말이다.

  이미 동북아는 제국주의의 발걸음을 내 딛기 시작했다. 중국 유학생들의 폭동, 일본의 독도 문제, 중국의 동북공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과 중국사이에서도 발생하는 문제가 한반도를 전쟁의 위기로 내 몰수도 있다. 게다가 북한이라는 변수가 있으니 전쟁의 위기는 더 커질 것이다. 만일 북한이 남한의 새로운 식민지로 전락해 버린다면 그 위험은 더 커질 것이다.

  촌놈은 촌놈으로 좋다. 욕심을 조금 버리고 유유자적하며 살아가는 정다운 촌놈이 좋다. 욕심부려 제국주의를 닮아간다면 그 길은 결국 북한의 내 동포들을 동포가 아니라 착취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서울이 이미 지방에 해왔듯이. 향후 북한에 남한 사람들이 진출해 "지역경제를 위해 이렇게라도 땅 사주는 것을 고마워하라"는 이동관식의 발언을 거침없이 던질날이 오지 않을 거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제국주의 노선, 강경주의 노선, 민족주의 노선에 침몰하지 말고 평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라. 무임 승차객들이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

ps. 뭐랄까? 책이 너무 성의가 없달까? 왠지 그런 느낌을 받았다. 내 생각에는 1만원 정도의 가격을 받는 것이 적절하게 생각될 정도의 편집인데 1만 2천원이다. 이 페이스로 가면 우석훈 시 책에 대해서 반감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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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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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우리 사회가 시끄럽다. 국익이라는 이름하에 개인의 자유가 침해 되었기 때문이다. 외통부에서 외교적인 마인드로 일을 벌여 놓고 국민에게는 닥치고 처먹으라는 식의 이야기가 넘쳐난다. 이것을 바라보면서 국민들이 손에 불을 들고 일어섰다. 촛불을 들고 일어선 민심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좌빨"이라는 구시대적인 발상을 가지고 배후가 누구인지 밝혀 내는데 골몰하고 있다. 그러나 도무지 밝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당연하다. 배후가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정치권만 외면한다. 이 정도면 꼴통도 여간 꼴통이 아니다. 게다가 보수 우익 단체들이 한 목소리 거든다. 거기에는 창피하게도 한기총이 들어 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논리로 사람들을 밀어 붙인다. 도대체 어느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빨갱이는 지옥에 가고 우파는 천국에 간다는 논리를 무엇인가? 반공이 복음이 되는 이상 야릇한 기독교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1987년 6월 10일 시민들은 전두환 독재 권력에 맞서 싸웠다. 그리고 승리를 쟁취하였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에 의하여 개인의 자유가 억압된다는 것이 순응해야할 논리가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국가의 권력이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가장 단순하지만 명확한 진리가 법보다 상위에 있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불의에 순응할 때 양심있는 이들이, 소로우 표현에 의하면 '한사람으로서의 다수'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6월 10일 민주 항쟁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 날을 맞이하여 많은 시민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기 위하여 모였다. 고시철폐를 외치고, 이명박 정권 퇴진을 외친다. 전국민으로부면 얼마 안되는 숫자이지만, 분명 이들 가운데 아무 생각 없이 나오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들은 한 사람으로서의 다수이다. 아니 한 사람으로서의 다수가 아니어도 좋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모였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종식시키고 생존을 효율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제도가 국가라면, 나서서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란 없어져야 할 것이다. 유의미한 소수를 무시하고 다수의 논리로, 국익의 논리로 몰아 붙인다면 그것이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진 국가라 하더라도 민주주의라는 이름은 떼어버리라. 이미 국민재권의 원칙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왕조 시절에도 왕들은 끊임없이 민심을 살폈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민심을 살피고 먹을 것을 보장해 주는 왕은 아무리 많은 실정을 한다고 할지라도 민초들에게 버림을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민심을 살피지 못하고 독선적으로 흐른다면 민심은 너무나 급격하게 식어버리고 그들의 지지를 거두어 버렸다. 온갖 도덕적인 흠에도 불구하고 경제만 살릴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으로 열화와 같은 지지를 보냈던 민심이 이젠 그들의 지지를 거두어 가고 있다. 인터넷 워리어라 불리던 사람들 뿐 아니라, 열렬한 한나라당 지지층까지 그들의 지지를 거두어 가고 있다. 취임 100일만에 10%후반대의 지지율을 자랑하는 현 정권의 문제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민심은 천심이다. 그 천심이 촛불을 들었다. 광화문을 밝히는 정도이지만 천심이 막혀 버린다면 이들은 광화문을 밝히는 촛불로 청와대를 태우고, 여의도를 태울지도 모른다. 아무리 외교가 중요하고, 미국이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현 정권은 미국의 정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권이다. 이들이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지 미국이 아니고 미국 축산업자가 아니다.

  촛불집회가 과격해 졌다. 애국가와 헌법1조가가 아침이슬로 바뀌었다. 고시철폐 구호가 정권퇴진 구호로 바뀌었다. 이젠 님을 향한 행진곡이 나올지도 모른다. 군대를 동원하는 불상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만 알아두라. 어떤 경우에도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권은 오래가지 못했다는 것을. 정부에 의하여 개인의 자유가 억압된다면 국민들은 기거이 일어날 것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고, 말릴지라도 양심이 살아 있는 단 한사람이 일어날 것이다. 이것은 누구도 억압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사람이 다수를 깨울 것이다. 부디 현 정권이 민심을 살피기를 바란다.

PS. 시민의 불복종만 읽어도 좋았을 것을. 뒤에 있는 에세이들은 시민의 불복종과는 그다지 연관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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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병원 사용 설명서 - 병원이 우리에게 말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
강주성 지음 / 프레시안북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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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의대생이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의대를 졸업할 때 히포크라테스 선서라는 것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남의 나라 사람이고 하도 오래전 사람이라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내가 아는 수박 겉핥기 식의 지식에 의하면 서양 의학의 사조로 존경받는 사람이라더라. 그의 의술에 대한 정의랄까 가치관이랄까 이것을 받아들여서 의사로서의 본분을 지키겠다는 선서라고 한다. 지금 하는 선서는 원래 히포크라테스 선서와는 내용이 많이 다르다고 들었다. 제네바 협약을 통해 동의를 얻은 선언문을 가지고 선서를 한다고 하는데 그게 위의 사진에 나온 것이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마지막에 엄숙하게 선언한다. "이제 의사로 살면서..." 의사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어느 책에서 보았다. 나는당최 남의 나라 사람이고 잘 모르는 히포크라테스라는 사라보다 허준이라는 분에게 관심이 더 간다. 고 이은성시의 소설 동의보감 중편 157페이지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자기 아들에게 유의태가 질책하면서 던지는 말이다.

  "의원은 영달하는 길이 아니니라. 의원은 돈 버는 길이 아니니라. 영달을 꿈꾼다면 중국말 열심히 배워 역관이라도 될 것이요, 돈 버는 게 소원이거든 장사꾼으로 풀릴 일......의원은 병자를 보살피는 게 소임이다. 그것이 첫번째 소임이요 둘째도 셋째도 의원의 소임은 그것뿐!"

  "흙 파먹을 때 흙 파먹더라도 봐줘야 할 병자는 봐줘야 해. 그게 의원이랄밖에......"

  왠지 히포크라테스라는 고상한 사람의 고상한 말보다는 이은성씨가 그리고 있는 유의태란 의원의 투박한 말이 가슴에 더 와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꾸밈이 없기 때문일까?

  대한민국 병원 사용설명서! 프레시안의 책이라 선택했다. 의약분업을 이명박 정권이 밀어붙인다는 말을 듣고 선택했다. 강주성이란 사람을 알고 산 책이 아니다. 그만큼 의료 서비스라는 부분은 나와는 상관없는 영역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고 있다. 의사들이 매우 거만하다는 것을 말이다. "닥터K, 노구찌, 테루"라는 만화를 보면서 이런 의사가 있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내가 겪은 현실은 암담했다. 이 책을 읽기 전 읽은 TTB리뷰에 보니 손가락 끝에 날카로운 칼을 달고 달을 보라하니 칼이 두려워 손가락만 본다는 표현을 하시던 분이 있더라. 의사이신 것 같더라. 그 분의 입장에서야 의사라는 직업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늘어놓으니 불만일 밖에. 그런데 실상 이 책에는 의사를 비판하는 내용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병원과 제도를 공격하고 있을 뿐이지.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빠졌는데, 내가 알고 있는 의사들, 내가 만난 의사들은 하나같이 거만했다. 행동이 투박하고 거친 것이 아니라 거만하다. 환자의 몸은 고치면서 환자의 마음에는 비수를 꽂는다. 간단한 예를 들어볼까? 최근의 일이다. 두달이 조금 못된 달을 데리고 변원에 갔다. 배에 가스가 차는지 우유를 자꾸 토하고 먹지를 못해서 말이다.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이 걱정하는 아내에게 그 대단하신 산부인과 의사 나으리는 왜 안먹이냐고 숟가락으로 떠서 억지로라도 먹이라고 혼을 내더라. 애가 먹지 못해서 왔는데, 이것저것 물어보지도 않고, 진찰하지도 않고 억지로라도 먹이라고, 토하더라도 억지로라도 먹이라고 하더라. 두달 된 딸을 데리고 말이다. 지금가지 내가 만난 의사는 이런 범주를 넘어가지 않더라. 이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촉망받는 전문직 의사의 현주소이다.

  이것만이 아니겠지? 이런저런 일로 병원 한번 더 오게 하고, 조금더 비싼 것을 권하고, 무뚝뚝하게 거만한 의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환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돈 잘버는 직업, 어느 정도 지위에 오른 직업, 사회적인 명망이 따라다니는 직업이기에 선호의 대상이 될 뿐이지, 그 안에는 유의태의 일갈은 없다. 이것이 대한민국 의료의 현주소이다. 거기에다 민간보험을 들어도 안심이 안되는 보험제도. 그런데 정부는 시장의 논리로 모든 것을 결정하려 한다. 서비스라는 말 때문이다. 언제 의료가 서비스고, 교육이 서비스가 되었던가? 오랜 세월 우리 나라에서 의료와 교육은 서비스가 아닌 천직이었다. 그런데 어느순간 돈 잘버는 서비스업이 되어 버렸다. 이제 이 서비스업을 더 잘 개발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병원을 영리법인으로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그나마 있는 건보도 유명무실화 하려고 한다. 의료에도 무한 경쟁의 논리를 적용하려고 하고 있다.

  외과의사 봉다리? 종합병원? 내가 보기에 그것은 로맨스 소설이다. 현실은 오히려 하얀거탑에 가깝다. 정치와 돈과 이건이 잔뜩 끼어든 그래서 시장통 같은 곳 이곳이 병원이다. 궁금하면서도 두렵다. 이제 병원이 어디로 가려는가? 내가 상상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앞으로 치료받을 목적으로 범죄하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른다. 감옥에 들어가면 밥 먹여주기에 범죄하던 시절이 있던 것처럼 감옥에 들어가면 무료로 치료해주는 것을 노리고 범죄를 기도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 목숨을 돈으로 사고 파는 시대, 사람의 가치를 그 사람의 재산으로 평가받는 시기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도래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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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사회
로버트 프랭크.필립 쿡 지음, 권영경 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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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서평을 쓰기 전에 먼저 두 기사를 읽었다. 예전에 읽었던 기사인데 잊혀지지가 않아서 스크랩 해 놓았던 기사들이다.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가장 바람직한 정치인 상은?’이란 글을 통해 대한민국의 부자들의 95%는 젊은 날 검소와 절제와 노력으로 재산을 모은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명박 정부의 ‘강부자 내각’을 옹호하는 듯한 주장을 펼쳐 파문이 일고 있다.
  그는 11일 홈페이지에 올린 이 글에서 “부정부패로 돈을 벌었던 시절이 언제였습니까? 그 시절은 바로 그 옛날 권위주의적 정치시절이었습니다”라며 “부정부패는 우리 사회에서 지금 엄격한 잣대로 응징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전 의원은 “대한민국 부자들의 95%는 젊은 날 검소와 절제와 노력으로 재산을 모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멸치볶음과 김치만의 도시락을 집에서 싸갖고 다니며 열심히 일하셨던 분들이 더 많다”고 썼다.
  전 의원은 한 네티즌이 쓴 ‘가장 바람직한 정치인상은?’이란 글에 대해 ‘다 부정부패 수단으로 부자가 되었다’는 인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이것은 공부 잘 하는 사람은 다 고액 과외를 하고 컨닝을 해서 성적을 좋다는 식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며 “고액과외한 학생이라고 다 좋은 대학에 가거나 좋은 성적을 내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 2008년 5월 14일 자 중앙일보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이 이명박 정부는 ‘우습게 보이는 실용’이 아니라 ‘무서운 실용’의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20일 홈페이지에 올린 ‘위기 때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자그마한 탈정치적 자세가 실용이 아니다. 철저하게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이념을 바탕으로 했을 때 실용노선은 강도 높은 지진에도 끄떡 없이 버틸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중국과 인도가 이제 ‘열정’과 ‘실력’으로 한국이 아니라 ‘미국 따라잡기’를 목적으로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 이것은 분명한 위기”라며 “위기를 ‘이명박 정부의 낮은 지지율’이 아니라 ‘국제환경’에서 긴 안목으로 짚어보고 진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전 의원은 “실용이야말로 철저한 가치, 철학, 이념이란 어머니의 산통으로 이 세상에 나오는 아기와 같은 것”이라며 “즉 실용은 자유주의의 오랜 전통 아래 시장을 보호하고 지키면서 쌓아온 우리 가치가 단단해야만이 우리 사회에서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

  존경하는 친구들, 그리고 영등포 구민 여러분안녕하세요? 오늘 점심을 먹고 국회 안을 걸었습니다. 18대를 맞이하기 앞서 17대를 정리하고 싶어섭니다.
  제게 17대는 '정권교체'를 위해 화약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심정으로 보냈던 시절이었습니다. 정권교체를 했습니다. 그러나 참 유감스럽게도 불과 석 달도 안돼 대통령은 지지율은 떨어지고 국민들은 기대에 못 미치는 '일처리'에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 어제 늘 좋아하고 아끼는 후배와 점심을 먹으며 고민했습니다. 그 후배 말하기를 - '선배-실용은 무서운 거예요'저는 그 한마디에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그래-실용이라는 것- 간단치 않고 무서운 것이 맞아.' 저는 즉시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즉 '실용이야말로 철저한 가치, 철학. 이념이란 어머니의 산통으로 이 세상에 나오는 아기와 같은 것이다'라는 생각 말입니다. 즉 실용은 자유주의의 오랜 전통 아래 시장을 보호하고 지키면서 쌓아온 우리 가치가 단단해야만이 우리 사회에서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시작의 기회는 공평히 갖되 결과의 불공평은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땀과 노력을 바친 결과에 대해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미소 지으며 박수칠 수 있는 사회여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실용정부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용'이라는 가치를 인정받고 한국사회에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해 신뢰와 인정이 중요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저는 모든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바랄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 우리는 토마스 프리드만이 이야기 한 '평평한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중국과 인도가 이제 '열정'과 '실력'으로 한국이 아니라 '미국 따라잡기'를 목적으로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위기입니다. 위기를 '이명박정부의 낮은 지지율'이 아니라 '국제환경'에서 긴 안목으로 짚어보고 진단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우리 한국인들이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위기 때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그마한 탈 정치적 자세가 실용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이념을 바탕으로 했을 때실용노선은 강도 높은 지진에도 끄떡없이 버틸 수 있는 것입니다. '우습게 보이는 실용'이 아니라 '무서운 실용'의 자세로 이명박 정부는 나아가야 합니다. 위기 때는 낭비할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 2008년 5월 20일 자 중앙일보

  조금 길지만 서평을 쓰면서 이 두 기사를 인용한 것은 일단 서평을 기록함으로 인해서 이 기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이고, 두번째로는 이 기사의 내용이, 즉 젼여옥 의원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이 책에서 공격하고 있는 이 시대의 잘못된 룰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용은 무서운 것이다, 평평한 세계이다, 부자는 검소함으로 부를 이루었다 등등 전여옥 여사가 던지는 말들은 일반 대중들의 공격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차치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만 경쟁을 멈추자는 사회적인 합의에 도달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쟁을 더 가속화하는 것이 시장의 논리요, 우리가 나아갈 길이요, 행복한 미래를 보장해 주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말도안되는 논리를 지껄이고 있기 때문이다. 말이 좀 과격해졌지만 전여옥 의원의 말이 정말로 입에서 나오는대로의 지껄임 그 이상으로도 그 이하로도 들리지 않는 것은 전의원의(아니 전의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 특히 한나라당 정치인들이 대다수 가지고있는 생각일 것이다.) 발언이 우리나라를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무한경쟁의 도박으로 몰아넣는 것을 당연시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기사를 읽다가 중고등학생들의 급훈에 대하여 기록한 기사를 읽었다. "조금 공부 더 하면 남편의 얼굴이 달라진다.", "엄마가 보고 있다.", "지하철 2호선에 미래가 있다." 등등 하나같이 무한경쟁의 논리를 내포하고 있는 것들이다. 특히 지하철 2호선에 미래가 있다는 이야기가 내 가슴을 답답하게 짓누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중고등학생들의 미래가 고작 2호선에 있다는 이야기는 학력 경쟁이라는 지위군비경재을 가감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과연옳은 일인가? 엄청난 사교육비를 쏟아가면서 일류대를 꿈꾸는 것이 과연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현상인가? 결코 아니다. 엄청난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위해서 가족들이 단란히 둘러 앉을 수 있는 시간과 행복을 포기해가는 모습들은 학력경쟁이 이 시대에 선물해준 최악의 수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일류대를 꿈꾸며 지위군비경쟁을 한다면 평균 성적이 약간 올라간 상태로 지금의 서열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리고 자본의 소유에 따라서 학력의 획득이 달라질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렇게 소모적인 경쟁을 할 것이라면 차라리 합의를 이끌어 내어 학력이라는 지위군축협정을 맺는 것이 더 좋은 일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오는 기회비용들을 다른 곳에 사용하는 것이 개인을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최선을 것이리라. 이것이 정부의 역할이요 교육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일이다. 그러나 정치의 논리에 의해서(전의원의 발언을 보면 알 것이다.) 교육이 흔들리고, 비지니스 프렌들리의 자세로 교육을 대하니 일류대를 위한 학력 경쟁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고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계속 이런 상태가 유지되고 심화된다면 지하철 2호선에 미래를 건 우리 10대들은 지하철 2호선에서 투신자살을 할지도 모른다. 승자는 2호선을 타고 다니고 패자는 2호선에 뛰어들 것이다. 학생들이 요즘 청계천에, 시청 앞에 촛불들고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라. 숨막히다는 것이다. 승자독식의 논리를 그만 멈추어 달라는 요청이다. 그런데 정부는 단순하게 좌빨이라는 이념으로 제단하고 있지 않은가? 참으로 웃긴 일이다.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 이미 우리 사회에도 심화되어 가고 있다. "유전무죄 무전 유죄", "돈이 돈을 번다.", "이대로(IMF시절 부자들이 높은 금리가 유지되기 바라며 외쳤던 건배구호)" 등 승자독식의 논리를 표현하는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다. 경쟁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경쟁해서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싶어하는 소박한 우리들의 꿈은 정말 말 그대로 소박한 것이다. 정당한 경쟁과 정당한 소득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유토피아적인 환상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현실은 달라요." 어느 개그맨이 이야기했던가? 맞다. 현실은 다르다. 적당한 경쟁은 사라져 버린지 모래다. 무한경쟁의 시대, 전부 아니면 전부의 시대가 도래했다. 아주 조금의 차이로 승자와 패자가 갈리고 자본의 획득과 상실이 결정될 것이다. 여기에 패한 사람은 아무리 많은 재능과 지식과 조건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회에서 도태될 것이다. 그들은 아주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기 때문이다. 패자부활은 과거에나 있었던 이야기이다. 놀며 데모하며 낭만을 꿈꾸던 대학생활은 없어졌다. 6년 공부하면 대학생이 되어서 편히 놀수 있다는 선생님들의 사탕발림은 사탕발림으로 끝났다. 우리는 무한 경쟁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멈춰야 한다. 적당한 경쟁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활력소가 되지만 무한경쟁은 적자생존의 정글을 우리 시대에 도래시킬 뿐이다. 여기에서 오는 엄청난 지위군비증강의 모습들은 엄청난 사회비용을 요구할 것이다. 이 비용들은 발전적인 모습이 아니라 서로를 상쇄하는 소모적인 경쟁에 사용될 것이다. 멈추는 것이 중요하다. 멈춘다면 대안이 생길 것이지만 멈추지 않는다면 파멸이 있을 뿐이다. 간단한 예로 지금 사교육에 쏟아붇는 돈들을 대학기부금으로 돌린다면 저가의 등록금으로 대학을 다닐 수 있을 것이다. 민간 보험에 쏟아붓는 돈을 건보에 돌린다면 우리는 건보하나만으로 거의 모든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장의 논리를 만능으로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국회를 장악했다.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사람들, 시장경제를 주창했던 사람들조차 인정했던 단점을 바라보지 못하고 시장의 논리에 따르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국회를, 청와대를 장악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를 좌빨이라 부르겠지? 그러나 내가 좌파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를 정상적으로 졸업하고, 정치경제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이 상식이 통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사회는 점점 경쟁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All or Nothing"의 법칙이 절대 법칙이 되어 가고 있다. 도박은 금지하면서 승자독식은 장려하는 모순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니 가슴이 답답할 수밖에.

PS. 이 책이 경제 경영으로 분류되어 있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승자독식의 사회는 경제 경영이 아니라 사회과학으로 분류함이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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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선거이야기 - 1948 제헌선거에서 2007 대선까지
서중석 지음 / 역사비평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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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총선을 바라보는 마음이 영 시원치 않았다. 그냥 답답한 마음이 느껴지던 선거였다. 정책도 없고, 인물도 없고, 정말 아무것도 없는 선거였다.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는 친박연대라는 이상야릇한 당을 바라보면서 요즘은 개나소나 다 국회의원이야라는 생각을 해봤다. 여전히 내 머릿속에 친박연대라는 이름은 당명이 아니라 이기적인 이합집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느껴지고 있다. 조금은 과격한 말이겠지만 솔직한 심정은 "쓰레기"이다. 정책이 없는 당이 과연 당이던가? 정책과 공약이 없는 정치인이 과연 정치인이던가? 박근혜씨와의 친밀함을 그렇게 강조하는 친박연대의 모습은 영 마뜩치 않아 보인다. 그런데 더 웃긴 것은 그들이 그렇게 기대는 박근혜씨의 이름값이 어디에서 오는가 하는 것이다. 두말할 필요없이 박정희 전대통령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던가? 이책에서 표현된대로 전 세계적으로도 버림받은 독재자, 경제에 실패하여 무너진 그 정권에 기대고 있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그저 우습기만 할 뿐이다. 죽은 뒤에 의도적으로 영웅화가 되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망령이 아직도 우리 사회 가운데 뿌리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또한 얼굴이 바뀌지 않는 민노당의 행태를 보면서 진보가 아닌 수구로 전락했구나 생각하면서 심기가 불편해 있었다. 권영길씨가 갑자기 JP의 모습과 오버랩 되면서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하였다. NL계 그 중에서도 골수 주사파들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민노당을 바라보면서 저러니, 저렇게 북한 분제에 대해서는 금기시 하니 좌빨이라는 소리를 듣지 생각하면서 안타까워하던 중 진보신당이 갈라져 나왔다는 말을 듣고 나름 기대를 갖기도 했던 선거였다. 그러나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정책이 없으면 여당이 유리하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났다. 역대 최저의 투표율, 거기에 대하여 정치적인 무관심,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말도 안되는 성장주의, 시간을 마치 30년전으로 돌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착잡한 마음으로 선거 기사를 읽던 중 어느인터넷 뉴스에서 위의 사진을 발견했다. 역사가 후퇴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결코 아니다."라는 마음을 심어준 사진이었다. 아직 희망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 사진이다. 어느 선거구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세명의 후보가 경선을 하는 곳인데 내가 보기에도 정말 찍을 사람이 없다. 이번 선거의 특징이 아니던가? 찍을 사람이 없는 것. 그 가운데에서 어쩔수 없이 표를 던지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 분은 아니었나보다. 선거는 국민의 의무이기에 꼭 해야하지만 맘에 안드는 사람에게 어쩔수 없이 표를 던지는 야합과 현실 포기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선거는 하지만 찍을 사람이 없으면 기권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습일 것 같다. 투표율이 적으면 정치인들은 국민을 우습게 본다. 그렇다고 어쩔수없이 표를 던지면 지들이 잘한 줄 안다. 이것에 제동을 거는 방법은 투표는 하지만 맘에 안들면 가차없이 기권표를 던지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몇번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옥석이 구분되지 않을까?

  이 책이 나름 재미가 있었던 이유는 한국 근현대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선거라는 새로운 렌즈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생각 속에 선거는 부정과 부패가 가득한 진흙탕이라 생각을 해왔는데 저자는 이러한 생각에 대하여 반대를 한다. 지금까지 우리 역사 가운데 선거는 사회를 변혁시키는 역동적인 활동이었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얻은 자유는 그냥 얻은 것이 아니라 몇번의 선거를 통하여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선거의 역동성에 대해서, 선거의 의미에 대해서, 그리고 광복 이후의 사건에 대한 새로운 시각들을 얻게 된 것은 책을 읽는 최고의 기쁨이었다.

  역사상 치러진 선거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에서부터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까지로 정의하고자 한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신물난 국민들이 "못살겠다 갈아보자"를 외치며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린 4.19가 있었고, 박정희 독재에 신물난 사람들이 갖고 있던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물론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한 말이지만 국민들이 공감했던 구호일 것이다.)는 구호는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렸다. 신군부는 "요즘은 박사 위에 육사 있다더라"는 구호로 무너졌다. 모두 민주화를 염우너하던 국민들이 선거 시에 외치던 구호들이었다.

  그러나 4자 필승론이 나오는 혼란기에서 오늘까지(나는 이때 민주주의가 오히려 쇠퇴했다고 생각한다.)를 사로잡고 있는 구호는 "우리가 남이가"이다. 충청도에서 김종필, 전라도에서 김대중, 경상도에서 김영삼이라는 지역주의로 대변되는 3김시대가 끝났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가 가득하다. 농담으로 그런 말을 한다. "혈연, 지연, 학연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학연이아." 무슨 말인가? 한국 사회만큼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에 목매달고 있는 사회는 없다는 말이다. 서로 돕고 산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약자를 돕는다는 측면에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사용된다면 긍정적이겠지만 이것이 정치로 들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이 된다. 이번 선거에서 여실히 드러나지 않았는가? 그리고 정치인들이 이것들을 여전히 이용하고 있지 않은가? 통합신당의 전라도 표 공략, 한나라당의 경상도 표 공략은 아직까지도 우리가 청산하지 못한 문제이다.

  여기에 더하여 "경제만 살리면 되지"라는 말도 안되는 구호는 박정희의 망령을 오늘에 되살아나게 만들었다. 근혜이즘, MB노믹스라는 말이 쉽게 나오는 시대, 한반도 대운하라는 건설경기 부양을 위한 비상식적인 정책들, FTA, 금산법 완화 및 궁극적으로는 폐지, 삼성 특검 등 중요한 사안들을 바라보면서 마치 우리나라가 박정희 정권 시절로 돌아간 느낌을 받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일파였다는 사실에 발끈하시는 어르신들, 경제만 살리면 모든 것이 용납된다는 경제 우선 논리, 기업인이면 선처해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사법부, 과연 이것들을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선거밖에 없다. 국민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합법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것을 막는다면 그 어떤 정권도 붕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제는 선거는 함부로 만질 수 없는 제도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는 것이다.

  비록 이번은 실패한 선거이지만, 그래도 참고 기다리련다. 다음 선거를 기다린다. 마음에 안든다면, 실정을 한다면 다음 심판에서 철저하게 심판하면 된다. 그저 안타까운 것은 너무나 지친나머지, 실망한 나머지 투표를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투표율이 90%가 넘는 시대가 오길 기대해 본다. 그리고 정치인이 정말 머슴이 되는 날이 오기를, 국민 알기를 무섭게 아는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ps. 강의안을 가다듬은 책이기 때문에 강의를 녹취한 듯한 느낌이 든다. 조금은 생소한 필체이긴 하지만 그덕에 읽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어설픈 역사 교과서를 가르치느니 차라리 이 책을 읽게 하는 것이 한국 현대사의 맥락을 잡는데 더 유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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