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당대비평, 평화네트워크 공동 기획
노암 촘스키 외 지음 / 삼인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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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9.11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는 대명콘도에 있었다. 세미나에 참석한 후 함께 모여 라면을 끓여 먹던 중 텔레비전에서 비행기와 충돌하여 무너져 내리는 쌍둥이 빌딩의 마지막 모습을 중계해 주고 있었다. 무슨 영화가 저렇게 다큐멘터리 화면같이 나오냐라며 투덜거리던 우리는 그것이 뉴스 화면이라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어린 시절 내가 알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빌딩 목록에 이름을 올리던 그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렸다. 자본주의 제국인 미국의 핵심인 맨하탄에 무너질 것처럼 버티고 서 있던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렸다. 이 장면을 기켜보는 사람들은 모두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잠시 멍한 상황이 지나간 다음, 각자가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 세미나가 끝난 다음 주 수업의 모든 주제는 9.11로 모아졌다. 특히 내가 전공하던 윤리는 더욱더 날카롭게 이것들을 분석할 것을 내게 요구하였다.

  몇주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난 또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한 것이다. 물증도 없이 자신들의 심증만 가지고 오사마 빈라덴을 9.11의 배후로 지명하였다. 그리고 오사마 빈라덴을 내 놓지 않는 탈레반 정권을 응징하기 위하여 아프가니스탄을 공습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탈레반 정권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에 자유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들을 포장하였다. 항구적인 자유를 위하여 독재 정권, 반인권적인 정권 탈레반을 무너뜨리는 거룩한 사명을 미국은 자처했던 것이다. 현격한 무력의 차이는 탈레반 정권을 수도에서 몰아 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소련화 맞장떴던 전력이 있던 사람들이다. 소련을 상대하던 똑같은 전법으로 미국을 상대하기 시작하였고 전쟁이 시작된지 7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버티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만 끝난 것이 아니다. 다음은 사담 후세인이었다. 대량 살상무기가 테러에 사용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할 때 나는 미국이 북한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의 속내는 이라크에 있었다. 사담 후세인은 아버지 부시에게 걸프전에서 얻어맞고 이젠 아들에게 조차 얻어맞는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이번에는 얻어 맞는 것으로 부족해서 미국에 의해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고 판결을 받게 되었다. 재판 결과 후세인은 교수형을 당했다. 죄명은 시아파 학살과 쿠르드족 학살이었다.

  이제 미국은 이란과 북한을 조준하고 있다. 특히 이란에 대한 조준은 그 강도가 심상치 않다. 미국에 대하여 더 강경한 북한에 비하여 덜 강경한 이란을 미국이 정조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은 미국에 하등의 쓸모가 없는 땅이나 이란에는 미국에 막대한 부를 안겨줄 석유가 매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하여 중국 포위라는 거대한 전략을 완성할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까지 감안한다면 필연코 차지해야 하는 땅이다. 그러나 미국은 결코 이런 자기들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자유와 평화라는 빛좋은 선물로 멋있게 포장해 버릴 뿐이다.

  자유와 평화는 미국이 자기들의 대규모 테러를 포장할 때 주로 쓰는 말이다. 이 말에 속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이 땅에서 이러한 포장지에 의심을 갖는 것은 반민족적이요, 반자유적인 이적행위로 간주되어 버린다. 이미 이 땅에서 미국은 영원한 우방이요, 우리의 혈맹이요, 형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아프간과 이라크에 들어가지 않았던가? 이라크 재건을 위한 인도적인 차원이라는 말을 써가면서 사실은 미국에게서 무엇인가 단물을 얻어먹기 위함이 아니던가? 어째 하는 짓이 지구촌 양아치 미쿡이 보여주는 모습을 꼭 닮아 있다. 그러니 우리 나라가 미국 똘마니 취급 받는 것이 아니던가?

  진짜 평화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라면, 자유를 위해서라면 우리는 한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탈레반, 오사마 빈라덴, 후세인을 키워주고 그 위치에 올린 사람이 누구인가? 자유라는 미명하에 민간인을 학살하고 굶어 죽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슬로건 하에 록히드 마틴을 비롯하여 미국의 군수산업을 먹여 살리고 세계에 무기를 유통하는 이가 누구인가? 이것을 기억한다면 미쿡의 행위가 여지없이 양아치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지금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통하여 미국 본토의 안전을 유지하겠다고 한다. 더 강력한 국방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의 경찰로서의 역할, 두 지역에서 전쟁을 수행해 이길 수 있는 막강한 힘을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부족해서 MD체제라는 새로운 장난감을 마련하려고 한다. 러시아와 중국이 반대를 해도 스타워즈라는 망상을 버리지 못한다. 맘에 안들면 약속을 파기하면 되지 않겠나, 내가 하는 일에 신경꺼라, 꼬우면 니들도 힘을 키우던가라는 식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해댄다. 그러면서도 평화를 이야기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이야기한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말이 딱 들어 맞는다.

  진짜 평화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미국같은 양아치 놀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말이 과하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미국의 행동은 양아치 딱 그대로이다. 으슥한 곳에 진치고 있어서 지나가는 동네 꼬마들 불러 삥뜯는 양아치다. 자기보다 강자는 건드리지 않고 약자는 철저하게 우롱하고 빼앗는 양아치이다. 문제는 미국보다 강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미쿡이라는 양아치 형님의 똘마니로 들어서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한 구역 분할받을 것이라는 부푼 희망을 가지고 말이다. 그러니 지구촌의 평화는 여전히 요원한 일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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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복종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 지음, 박설호 옮김 / 울력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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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왜 인간은 독재자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가?"

  이 질문에서부터 이 책은 출발한다. 수많은 인민이 단 한사람의 독재자에게 복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그리 대중은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것인가? 독재자가 강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힘으로 굴복시키기 때문인가? 아니다. 독재자가 강한 것은 인민이 자발적으로 복종하기 때문이다. 인민이 스스로에게 주어진 자유를 망각하고 자기의 눈과, 팔과, 몸과, 삶을 독재자에게 내어 주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독재자를 무너뜨릴 수 있는가? 총칼도 필요없다. 그저 자발적인 복종을 멈추면 된다. 독재가가 사용할 땔감을 모두 치워버리면 된다. 그러면 독재자는 스스로 넘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인민들이 자각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교육이다. 스스로 노예 상태에 머무는 것이 행복이라 착각하게 만드는 교육 때문이다. 교육은 때론 사회 시스템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사회적인 관습의 모습이나 신분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교육을 깨버릴 때 우리는 진정 자유와 평등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과정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성으로 가능하다. 인간의 이성은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것으로 선한 것이다. 이 이성을 가지고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자각하게 된다. 이 책의 과정을 쉽게 이야기하자면 이성을 통하여 계몽하게 되고, 계몽된 상태는 우리에게 자유를 가르쳐 주고, 자유를 알게된 우리는 독재자에게 자발적인 복종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결국 이성이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이 억압받고, 이 땅에 독재자가 등장하고 그 위세를 떨쳐가는 이유가 단순히 이성의 부재이기 때문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에 대한 희망이 얼마나 쉽게 절망으로 변하였는지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보지 않았는가?

  중세를 마치면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맞으면서 신학의 대안으로 인문학이 대두외었다. 계시의 대안으로 이성이 대두되었다. 인간의 이성이 발현되기만 한다면, 인간의 이성을 억누르는 억압기재가 사라져버리고, 인간이 자유를 누리기만 한다면 이 땅에 독재자는 사라지에 될 것이고, 인간은 진정 자유하고 행복한 존재가 될 것이라는 행복한 망상이 이 땅에 가득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성은 인간을 구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것들이 이 땅에 더 많은 분란을 가져왔으며, 이성이라는 것 조차도 독재자의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리지 않았는가?

  르네상스를 끝으로 인간의 이성에 대한 낙관주의가 사라졌는가? 아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이 땅에 유토피아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전 유럽에 팽배했던 시절이 있었다. 인간 개인이 선하고 윤리적으로 산다면 그 사회는 당연히 선해질 것이라는 순진무구한 생각이 전 유럽을 휩쓸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 1차 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이지 않는가?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출현이지 않는가?

  라 보에티와 인문학자들이 갖고 있던 인간의 이성에 대한 난관론은 그저 맹목적인 것으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그런 순진한 생각이 오늘날에는 전혀 먹히지 않는다. 인간이 이성적이기만 하다면 독재자는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오늘날 구시대적인 발상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자발적인 복종을 멈추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인간의 이성이 자발적인 복종을 멈추는 대안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직접행동에 나설 수 밖에 없다. 라 보에티는 말한다. 폭군을 무너뜨리기 위해 애쓸 필요 없다. 그저 복종하지 않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정말 이것으로 충분한가?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복종하지 않는다면 독재자의 폭정은 자연스럽게 멈추어져 버릴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성장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복종하지 않는 것, 그것은 그저 침묵하는 것일 뿐이다. 자기 위안일 뿐이다. 역사적인 일에 대한 책임회피일 뿐이다. 나에겐 오히려 이것이 자발적인 복종이다.

  얼마전 우리 사회에게는 심각한 분열이 있었다. 미국산 소 수입건으로 사회가 양쪽 진영으로 갈라져서 싸웠다. 수입 반대를 외치는 이들을 향하여 이명박 대통령이 했던 이야기가 무엇인가? "맘에 안들면 안사먹으면 그만"이 아니던가? 모든 것은 시장에서 조절이 된다는 시장만능주의가 아니던가? 그러니 시끄럽게 떠들지 말라는 것이 그 말의 이면에 감추어진 의미가 아니던가? 이런 사회에서 그저 침묵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자발적인 복종이 아니던가?

  ps. 책이 난해하다. 번역도 매끄럽지 못하고. 더 실망한 것은 보론과 이에 대한 참고 자료가 본문보다 더 많다는 것이다. 아마도 책의 분량을 채우기 위해서인 것 같다. 보론을 읽고 나서 더 난해해졌다. 앞으로 이 책을 읽는 사람은 과감히 보론을 생략하는 것이 본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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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덫
장하준 지음 / 부키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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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달 전 미국소 수입으로 몸살을 알던 때 정부와 한나라당과 조중동 신문을 비롯한 보수 진영에서 이구동성으로 외쳤던 말이 있다.

“분명 촛불집회에는 북의 지령을 받고 이 나라를 전복시키려는 불순한 배후 세력이 있다. 그들을 찾아내야 한다. 그들이 오늘 이 모든 일의 원흉이다.”

  그리고 촛불집회의 원흉을 찾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했다. 북이다, 진보세력이다, 빨갱이다, 민노당이다 등등 케케묵은 색깔 논쟁이 다시 불거져 나왔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층들은 노뽕 좌빨을 외쳤고, 이 땅에 다시 공안정국이 시작되었다. 그 때 아고라에서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촛불집회의 진짜 배후를 찾았습니다. 가까운 식육점(?)으로 연락해주세요.

◆ 조선일보 (http://chosun.com) 기사
01. "역시 대영제국"… 광우병 파동에 차분히 대처  1996.04.18 (목)
02. 광우병과 CJD 연관성 입증증거 발견..영과학자  1996.04.25 (목)
03. [영국] 광우병소 도살-소각때 토양-지하수 감염우려   1996.06.11 (화)
04. [유럽] 이번엔 가축 `구제역' 파동   1996.07.15 (월)
05. [광우병 파문] EU, 가축성분 포함 화장품 판매금지   1997.01.21 (화)
06. [보건복지부] 광우병 관련 화장품 수입금지   1997.05.27 (화)
07. [영국] 광우병, 신종 뇌질환 유발   1997.09.29 (월)
08. [토픽] 광우병 겁나 도둑질한 화장품 반납   1997.11.10 (월)
09. [복지부] "CJD 오염가능 혈액제제 610명분 수입됐다"   1997.12.16 (화)
10. [인간 광우병] 10-15년 내 유행 가능   1998.02.12 (목)
11. [사설] 광우병, 제대로 알려야   2001.02.07 (수)
12. 광우병 '맥'빠진 맥도널드   2001.03.15 (목) / 신용관기자
13. [시론] ‘No’ 할 수 있는 장관을 ..... 정진홍   2001.03.25 (일)
14. [광우병소 확인] 일본 축산물 전면 수입금지   2001.09.23 (일)
15. [사설2] 광우병 파동 통상마찰 대상 아니다   2003.12.29 (월)
16. "미국에 광우병 소 더 있을 것"   2004.02.13 (금) / 이동혁기자
17. 미국서 태어난 소 광우병 첫 확인   2005.06.26 (일)
18. KBS 스페셜 '인간 광우병' 방송에 시청자들 충격   2006.10.30 (월)
19. 불가사리 콜라겐 화장품 수산과학원서 개발 출시   2006.07.26 (수) / 권경훈기자
20. 초식동물에게 육식 강요한 인간 탐욕의 말로 광우병   2007.03.09 (금) / 이영완기자 21. [심층 분석] 미국 “일본 빼고 가장 까다로워”   2007.09.06 (목) / 김정훈 기자
22. [모닝커피] 한국 곱창시장 재탈환 나선 미국   2007.11.08 (목) / 금원섭 기자
23. 미국 사상최대 쇠고기 리콜   2008.02.19 (화)

◆ 중앙일보 (http://joins.com) 기사
01. 노화방지 크림 광우병 위험  1999.11.03 (수)
02. 영국, 광우병 관련 환자 계속 늘어  1999.12.19 (일)
03. 영국 광우병 발병 매년 20-30%씩 증가  2000.07.19 (수)
04. 광우병 다른 동물 전염 가능성 우려  2000.08.30 (수)
05. 영·불 각료들 광우병 관련 살인혐의로 기소될 듯  2000.12.29 (금)
06. 수입 화장품업계에 광우병 불똥  2001.01.10 (수)
07. 맥도널드 납품 伊도축장서 광우병 의심 소 발견  2001.01.16 (화)
08. 마가린·햄버거도 광우병 감염 우려  2001.01.29 (월)
09. "우리 선조들 광우병 대비했다"  2001.02.07 (수)
10. 노출된 인간광우병 '빙산의 일각'  2001.05.15 (화)
11. EU, "광우병에 성역 없다"  2001.09.11 (화)
12. 맥도널드 저팬, 광우병 파동으로 타격  2002.03.18 (월)
13. 중국, 광우병 우려로 일본제 화장품 수입금지  2002.07.18 (목)
14. "수혈 광우병 감염 환자 사망"  2003.12.18 (목)
15. "美워싱턴주 작년 7개월간 광우병검사 全無"  2004.01.16 (금)
16. 美농무부 '광우병 소' 자료조작 논란 수사  2004.03.04 (목)
17. 英·美 '인간 광우병' 확인  2004.03.17 (수)
18. 英 정부가 감추고 싶은 59가지 진실  2007.03.06 (화)
19. 국민 10명중 7명 "뼈있는 美쇠고기수입 반대"  2007.10.19 (금)

◆ 동아일보 (http://donga.com) 기사 
01. [美 광우병 충격]日, 濠-뉴질랜드産 쇠고기확보 비상  2003.12.25 (목)
02. [美 광우병 충격]뉴욕타임스 ‘쇠고기 안전하게 먹는 법’  2003.12.25 (목)
03. [사설]‘광우병 쇠고기’ 협상대상 아니다  2003.12.30 (화)
04. [자연과학]‘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그리고 숨겨진 치매’  2007.03.10 (토)

  날 미국소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 주장들이 그대로 담겨있다. 차이가 있다면 이 기사들이 과학적 근거로 무장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던 시기가 이명박 정부 시절이 아닌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 차이가 있다면 당시 광우병을 우려하던 사람들이 마치 공수교대를 하듯이 이제는 광우병은 허구라고 말한다는 것 정도? 2년 후배가 그러더라.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 하는데 뭘 그리 야단이냐고, 분명이 불순한 세력이 끼어든 것이라고. 그 후배의 나이가 50~60대냐 결코 아니다. 29살이다. 그것도 여자다. 그 후배는 주로 인터넷으로 기사를 접하는데 조중동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 녀석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설마라는 말을 하더라. 보여줘도 안 믿는다.

  원래 내가 조중동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이중적인 잣대가 맘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한나라당의 편에 서서 사실을 왜곡한다. 가령 이런 것이다. 헨젤을 잡아 가두고 먹을 것을 잘 챙겨주는 마귀할멈이 있다. 그는 헨젤을 잡아먹기 위하여 살을 찌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헨젤에게 먹을 것을 주는 모습만 놓고 본다면 그는 집을 잃어버린 어린 아이를 거두어 먹을 것을 주면서 자선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전자나 후자나 동일하게 사실이다. 그러나 진실은 전자이다. 신문의 역할은 진실을 알리는 것이지만 조중동은 언제나 후자의 행동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동일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하나같이 정부의 시책을 반대하는 것들이었다. “신자유주의를 거부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가, 대타협이 필요하다, 비정규직을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이냐? 민영화만이 능사는 아니다. 공적 자금을 제대로 회수해야지 뭐하는 것이냐? 국가의 책임을 포기 하냐?” 등등 하나같이 정부의 시책들을 꼬집는 이야기들이다. 오늘날 한겨레나, 경향신문에 실릴 법한 기사들이다. 한나라당이 말하는 경기부양책인 민영화, 고환율 정책, 재산세 인하 등등 어느 것 하나 그냥 놔두는 것이 없다. 하나같이 다 “잘못되었다. 그것이 능사가 아니다.”라는 내용의 인터뷰 기사들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기사들이 여지없이 80%이상 조중동과 문화일보에 실렸던 것들이다. 경향신문이나 한겨레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어렵다. 60개의 기사가 거의 대부분 조중동, 문화일보, 한국일보에 실렸던 글들이다. 어쩌다 가끔씩 오마이뉴스와 말지 경향신문이 나온다. 그 빈도수도 정말 극수소이다. 그리고 하나같이 일어버린 10년 사이에 발표된 글들이다. 그것도 “나쁜 사마리아인”이라는 국방부 선정 불온도서를 집필한 장하준 씨의 인터뷰 기사들이다. 오늘날 돌아가는 조중동의 입장에서 이야기한다면 그들은 벌서 오래전에 북의 지령을 받고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불순분자들이라는 말이다. 하나같이 잡아내서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하는 불순분자들이다. 참 아이러니다. 자기들이 자기들을 불순분자라 공격하는 것이다. 개혁의 덫이라는 책을 통해서 발견하게 된 가장 큰 개혁의 덫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무조건 비난하고, 이명박 정부를 무조건 편들다 보니 자기들 스스로도 어찌 할 수 없는 덫에 빠져 버린 것이다. 한참을 웃었다. 유머집보다 더 재미있는 책이다. 꼭 읽어보길 권한다. 어느 신문에 났던 인터뷰 기사인지도 곡 확인하길 권고한다. 물론 날짜도 확인해 보시라.

  요즘 경기부양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정책들이 이 책에서는 쓰레기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것도 재미있는 요소 중의 하나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참 쉽다. 내용이 깊지 않다. 그래서 얻을 것이 별로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읽어보길 권한다. 이 책을 읽는 순간 당신의 삶에 엔돌핀이 팍팍 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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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 / 김영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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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도 버린 사람들!!

  제목이 너무나 자극적이다. 어떤 형편의 사람들이기에 감히 신도 버렸다는 말을 쓰는 것인가? 힌두교의 나라 인도는 내게 너무나 생소한 나라이기에 제목만으로 언뜻 다가오지 않는다. 인도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이라면 카스트 제도뿐이다. 카스트 제도에 대하여 내가 아는 것도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4계급이 존재하고 그 중 제일 밑바닥에서 온갖 궂은 일을 다해온 것은 수드라다." 이정도? 그저 세계사 시간에 한번 지나가는 말로 들었을 뿐이다. 시험에 나온다기에 달달 외웠을 정도? 계급의 이름가지 외우지만 그 계급이 뜻하는 바를 나는 도무지 알지 못했다. 그저 막연히 수드라라는 억압받는 계급이 있다더라. 그들은 중세 시대의 농노와 같은 신분이었다더라는 정도로 알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처음으로 가진 생각은 "수드라에 관한 이야기"이구나라는 것이다. 그런데 책을 펴고 저자의 머릿글을 읽는 순간 그 생각은 여지없이 깨졌다.

  천외천이라고 했던가? 바닥 중에서도 바닥이 있을 줄이야. 그것도 같은 바닥에서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근본부터 다른 바닥이 존재했을 줄이야. 카스트 제도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out of Cast! 그들의 삶이 나를 울게 만들었다. 그저 달리트라 불리우는 카스트에도 들지 못하는 계급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이들에게 인간이길 거부 당하는 그들의 슬픔, 영혼의 분노! 이것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였다. 이들의 마지막이 어떻게 되엇을까, 이들의 삶은 과연 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그 운명에 대항할 것인가? 어느새 나는 이들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백조로 변하기 위하여 온갖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이들의 삶을 보면서 어느새 나도 그들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다무! 힘내야 해!"라는 말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달리트라는 그들에게 주어진 굴레를 부정하고 그것을 벗어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하는 다무의 인생여정, 그의 자식 대에 이어지는 입신양명, 그의 손자대에 이어지는 카스트에 대한 완전한 자유! 이것이 그렇게도 꿈꾸었던 다무의 열망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을 불가촉천민이 아닌, 가축보다 못한 존재가 아닌 인간으로 봐주길 바라는 것, 이것이 그가 평생을 꾸었던 꿈일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계속 홍길동전이 생각이 났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이라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던 길동이의 넋두리가 다무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서얼이라는 이유로 천대받던 이들, 재주가 아닌 출신 성분으로 인하여 온갖 멸시를 받던 천출들. 오죽하면 그들을 賤出이라 불렀을까? 그 신분의 굴레대문에 사장된 천재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왕가에서는 천출도 상관이 없으나 왜 그리 양반층에서는 천출을 구분해 냈던가? 왕가는 치외법권 지역이란 말인가? 또같이 한 사람의 목숨일텐데 왜 그리 차별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들이 평생을 꿈구었던 것은 입신 양명이 아닐 것이다. 벼슬이 아니다. 그들은 오직 사람이길 원했던 것이다. 그저 한 사람으로 대접을 받는 것이 그들이 원했던 것이 아닐까? 양반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저 한명의 백성으로라도 취급받고 싶은 것이 그들의 열망이 아니었을까?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시대에는 달리트들이 너무나 많다. 특히 한국에서는 불가촉천민들이 너무나 많다. 불가촉천민이라는 것이 눈에 띄는 사회 현상이 아니지만 우리의 의식 을 지배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은 불가촉천민이다. 그들과 옷깃을 스치는 것만으로 병이 옮는 것처럼 유난을 떠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정규직에게 달리트는 비정규직이다. 기업가에게 달리트는 노동자이며, 상위 2%에게 나머지 98%는 달리트이다. 이들과 친분을 섞는 것도, 혼맥을 맺는 것도 절대로 피해야할 일들이다.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서민들은 꼭 달리트 같은 존재이다. 허울 좋은 서민이라는 이름을 주고 그들의 말을 절대로 듣지 않는다. 듣는 것조차 금지해야 할 일들이다. 사회 시스템 자체가 정도의 차이만 있지 달리트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 그러나 이 달리트는 가끔 운좋게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 학연을 통한 탈굴레는 이 시대 달리트들이 꿈꿀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물론 그 대안도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약간 나은 정도의 현실적인 대안이지만. 물론 조만간 그 길도 유명무실해지겠지만. 그래서인지 대한민국에는 광풍이 몰아친다. 사교육이라는 망령이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다. 그들은 이 시대의 달리트들에게 이 길만이 오지 그릇을 벗을 수 있는 길이라 속삭인다. 이 속삭임에 많은 이들이 넘어가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주시하지 않는 진실이 있다. 탈달리트라는 것은 인간화를 말하는 것이지, 신분의 상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탈달리트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램이지 브라만이나 크샤트리아가 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이 시대 탈달리트를 꿈꾸는 이들은 브라만이 되는 것을 탈달리트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2008년 대한민국이 처한 슬픈 현실이다. 탈달리트를 꿈꾸는 이들에 의하여 카스트 제도가 강화되는 아이러니가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이 시점 다무의 인생을 통하여 한가지 사실을 다시 한번 새겨본다. 조선시대 천출들의 바램을 되짚어 본다. 그들이 꿈꾸었던 것은 계급없는 사회이다. 백조가 된다는 것은 오리를 짓밟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우받는 것이다. 인간이 되고자 하는 다무의 소원 그것이 너무나 어려운 대한민국 현실이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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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 이랜드 노동자 이야기 우리시대의 논리 6
권성현 외 엮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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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정직한 자의 형통을 믿노라."

  이랜드 박성수 회장의 간증집 제목이다. 그는 사랑의 교회 장로요 성공한 크리스천 CEO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기업가이다. 이 사람의 간증을 예전에 테잎으로 접해본 기억이 있다. 워낙 간증이라는 것을 듣지 않는 나인데 후배의 차를 얻어타고 가던 길에 우연히 듣게 되었다. 정직하게 살지 못하는 크리스천 기업가들이 많고, 하나님이 아닌 이익에 휩쓸리는 크리스천들이 많다. 그러나 자기가 기업을 해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이더라는 요지의 간증을 들으면서 속으로 한마디 했다. "웃기네." 그리고 후배에게 말 했다. 왜 이런 불온 테잎을 듣는지 모르겠다고 이런 거 들을바엔 텔레비전에 벗고 나오는 여자 연예인들 노래나 하나 더들으라고. 그게 몇년전 일이다. 홈에버 상암점의 비정규직 투쟁이 일어나기 1년전의 일이가. 그때도 여전히 나는 박성수 회장의 정직한 자의 형통을 믿는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았었다. 예수님을 팔아서 장사하는 모습이 너무 눈에 드러났기 때문이고, 여기에 속아서 한때 이랜드 옷만 사입었던 어리석은 내 10대의 모습이 기억나서였다. "나는 정직한 자의 형통을 믿노라."라는 말은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철저히 정직한 자인척하는 이의 형통을 믿노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이랜드 사태를 보면서 참 우리 예수님 안됐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분이 무슨 잘못이 있어서 욕을 덤탱이로 먹고 있으며 나는 또 무슨 잘못이 있어서 나와 상관없는 이 때문에 내 신앙에 상처를 받아야 하는가?

  작년 이랜드 파업 사태가 한참 진행되던 7월 초교파적으로 기독교인들이 모여서 상암 월드컵 운동장에서 평양 회개운동 기념 성회를 가졌었다.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를 기점으로 하여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기의 죄를 회개하기 시작하였다. 그날 분위기는 너무나 진지하고 뜨거웠다. 자신들의 회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모습들은 거기에 참석한 많은 이들의 가슴에 깊은 감동을 남겼다.

  그러나 상암운동장 밖, 즉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라는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가 울려퍼진 그 바로 옆자리에서 또 다른 이들은 다른 의미에서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라며 신음하고 있었다. 그렇게 살려달라고, 자기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신 옥한흠 목사님께서 키워 놓으신 박성수 장로에 의하여 죽음으로 내 몰린 많은 비정규직자들이 "우리도 일하고 싶다, 살려달라."는 애원의 목소리를 거친 팔뚝질과, 농성으로 이어가고 있었다. 어느 기자가 그러더라. 과연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를 들으셨겠느냐고?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그냥 울었다는 표현이 아니라 정말 많이 울었다. 화장실에서 책을 보면서 울기도 하고, 혼자 방안에서 책을 읽다가 울기도 하고,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하여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기도 했다. 책을 읽는 내내 눈물이 난다. 이랜드 비정규직자들의 삶이 안되서 울고, 그 가족들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알겠기에 울고, 국가 공원력에 의해서 보호되는 재벌들을 겪으면서 그들이 맛볼 좌절감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예상 가능하기에 울었다. "나는 정직한 자의 형통을 믿노라."는 박성수 회장의 말장난에 놀아나는 한국 교회가 안되서 울고, 박성수 회장을 강사로 모시고 특별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는 사랑의 교회 신자들의 순박함과 오정현 목사님의 의도적인 침묵에 답답해서 울었다. 또한 내가 그렇게 붙잡고 믿고 의지해온, 내가 그렇게 사랑하는 교회가 싸잡아 욕먹는 것이 안타까워서 울고, 십자가를 지신 그분이 다시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되서 울었다. 이래저래 이 책은 울게 만드는 책이다.

  만일 2008년 지금 이 땅에 예수님이 오신다면 어떤 모습으로 오시겠는가? 항상 예수님은 사회 가장 밑바닥에 오셨다. 소위말하는 막장 인생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는데, 2008년 대한민국에 오신다면 어떤 모습으로 오실까? 비정규직자의 모습으로 이 당에 오시지 않을까? 매일매일 똑같은 업무, 그것도 살인적인 강도의 업무와 정말로 쥐꼬리보다 못한 월급. 여기에 신음하는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시지 않으셨을까? 아마 그분도 팔뚝질을 하셨을 것이고, "무임금 무노동 노동자 탄압 총파업으로 맞서리라."고 쟁가를 부르셨을 것이다. 충분히 그러시고도 남을 분이다. 아니 이것을 위해 오셨을 분이다. 십자가에 비정규직 차별, 고강도 노동 저임금, 1%만을 위한 정책, 성차별, 가정경제 파탄 등 수없이 많은 짐을 지고서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셨을 것이다. 비록 그를 따르겠다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이 이 땅에 천만을 헤아린다고 자랑할지라도 구레네 시몬은 아마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 정말 소박한 이들의 꿈이 절망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묻고싶다. 과연 노무현 정권이 개혁정권이였냐고 묻고 싶다. 진정 크리스천 기업가들이 예수의 정신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지 묻고싶다. 목회자들이 진자로 예수의 논리를 가르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까지는 묻지 않겠다. 그저 예수님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똑같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물어도 대답없는 질문에 마음이 속상하지만 나 혼자라도 응원하련다. 정말 해줄 것이 없지만 그저 책 한권 사고, 기회가 되면 누군가에게 이 책을 사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나만이라도 자본의 논리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련다.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이것밖에 없다. 나는 박성수 회장이 아니기에, 나는 정직한 자가 아니기에.

PS. 마지막 4부가 책의 감동을 많이 흐려놓았다. 먹물은 먹물로, 삶은 삶으로 놔야지 먹물이 들어나기 삶이 빛을 잃는다. 가장 아쉬운 점이다. 노동 운동이 어떻고 저떻고는 다른 책을 통해서 이야기했다면 좋았을 것을. 특히 김원씨의 글은 너무 어렵고 학적이고 딱딱해서 여기에 싣는 것이 에러라고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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