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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여자의 공간 - 여성 작가 35인, 그녀들을 글쓰기로 몰아붙인 창작의 무대들
타니아 슐리 지음, 남기철 옮김 / 이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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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여자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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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서가 그 많은 책들 중에, 하필 단 번에 내 눈에 들어온 책이 바로 <글쓰는 여자의 공간 (원제:Wo Frauen ihre Bücher schreiben) >. 딱 보인다. 거침 없이 드러낸다. 무얼 희구하는지, 어떤 열등감에 묶여 있는지. 몇 해전 강렬히 감동 받은 <공간의 위로 (원제: SOULSPACE : Transform Your Home, Transform Your Life)>에서도 결국 화두는 공간이었다. 꿈을 꾼다면, 이왕이면 그 꿈을 구체적인 이미지화할 것. 그 꿈을 실현시킬 최적의 공간을 구상하고 확보할 것. 이것이 저자이자 인테리어 전문가인 소린 벨브스(Xorin Balbes)의 핵심 조언이다. 그런 의미에서 궁금했던 것이 사실이다. 글쓰는 여자들은 어떤 공간을 확보했을까? 그녀들의 정체성, 작가적 지향을 그 공간이 드러내는가? 그러낸다면 그 단서는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나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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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여자의 공간>에는 모두 35인의 작가가 등장한다.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나 엘프리데 옐리네크처럼 (내게) 생소한 작가들도 있지만, 프랑스아즈 사강이나 버지니아 울프처럼 팬덤을 형성한 유명 작가들이 등장한다. 이 책의 작가 타니아 슐리(Tania Schlie)는 35명의 작가들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디에서 글을 썼는지를 사진 자료들을 중심으로 재구성한다. 워낙 많은 작가들을 한정된 지면에 소개하는지라, 혹은 사진에만 전적으로 의거해서 작가의 집필 공간을 유추 설명하는지라 어떤 부분에서는 설명이 상상과 다를 바 없다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평소 궁금했던 작가들의 내밀한 성향, 고집, 작업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단서도 많이 담고 있어 유익했다.
*
'작가'라고 하지 않고, '글쓰는 여자'라고 번역한 데는 출판사측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글쓰는 여자, 그녀들을 남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자유롭게 하는 게 있다면? 반면 상대적으로 제약하는 요소가 있다면? 아마, 대놓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육아'와 '가사'로 인한 제약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이에 대해 상당히 상반적인 진술이 두 가지 있어 옮겨보자면.
먼저, 그 찬란한 시몬 드 보부아르는 "공공장소를 주된 생활공간으로 삼았으며, 카페에 앉아 책을 쓰거나 식사를 하고 친구들을 만났다. 물론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했던 시절이라 카페가 집보다 난방 시설이 좋기도 했지만, 단지 그런 이유 때문에 카페를 즐겨 찾은 것은 아니었다. 보부아르는 일생 동안 일체의 가정사를 거부한 여성으로서, 요리를 비롯한 어떤 살림살이도 하지 않았다. 가사야말로 여자들의 자유와 삶, 글쓰기를 방해하는 덫이라고 여긴 것이다." 반면 의 저자 토니 모리슨은 "아이들이 어려서 글을 쓸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사람들과는 정반대입니다. 저는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글을 전혀 쓰지 않았어요."두 진술을 반복해서 읽다보면, 사실 둘은 크게 다른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가사와 육아로 글을 쓰네, 못 쓰네는 절대적 요소가 아님. 아니어야 한다. 외적 제약을 다른 차원으로 승화시킬 결단이 필요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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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는 여자의 공간>에 왜 그리 담배를 입에 물거나, 담배를 들고 있는 작가의 사진이 자주 등장하고 담배가 중요한 정체성 지표로 등장하는지 누가 더 이야기좀 해 줬으면 좋겠다.  대학 캠퍼스에서 숏 커트 여교수가 많은 것과 비슷한 맥락인가? 담배 한 손에 들고, 글 구상하는 여자사람 작가의 사진은? 아님 정말 담배가 글 술술 풀리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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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서재를 엿보니 흐뭇하다. 천진난만 사랑스러운 그녀의 캐릭터만큼이나 그녀 역시 나이를 거스르는 사랑스러움을 발산한다. 내 눈에만 그런가? 꿈꾸는 자는 나이 들어도 눈빛과 입매가 다르다. 입매가 살짝 들려 있다! 각설하고,  <글쓰는 여자의 공간> 총평이자 다시 본론, 공간을 확보하라! 공간을 사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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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반복의 힘 - 끝까지 계속하게 만드는
로버트 마우어 지음, 장원철 옮김 / 스몰빅라이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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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반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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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지. 부. 진. 자. 기. 혐. 오. 의. 지. 상. 실.
*
혐. 오. 의. 지.  부. 진. 자. 기.
*
기. 혐. 오. 의.
 
결국 동의어가 아닐까. 결심했으나, 가시적인 성과 없고, 자꾸 스스로의 결심을 허무는 모습에 자기 혐오를 느껴 다시 결심하지 못하는 악순환.
그 악순환을 과감히 끊고, 인생 대변혁 이루고 싶은 이들 많을텐데, 문제는 HOW?
<아주 작은 반복의 힘>에서 답하길, "스몰 스텝small step"부터 성취하라. 인간의 뇌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저항한다. 그러니 성공 가능성을 높이려면, 계획은 작으면 작을수록 좋다. ,부담이 없는 변화로 시작하고 계획을 작게 세워 습관이 되도록 매일 성취하라. 그러면 결국 큰 변혁으로 이어지고, 성공한다.  UCLA의대 교수인 로버트 마우어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성공이유'가 궁금해서 연구를 진행했다고 한다. 꼭 성공을 목적으로 삼지 않더라고, 자존심, 자긍심을 높이는데 스몰 스텝 접근이 유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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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반복의 힘>을 읽다가, 뜨끔하도록 무서운 예화를 하나 만났다. 술에 취한 남자가 가로등 아래에서 잃어버린 열쇠를 찾고 있었다. 경관이 '어디에' 떨었뜨렸냐고 묻자, '저쪽'이라고 답하면서도 '가로등 아래'가 밝아서 여기서 찾노라고 대답한 고주망태의 모습은 나와 다르지 않다. '하루 1권 읽고 쓰기'의 자잘한 계획이 결국은 열쇠 찾는 일에 직접 착수하기가 두려워 내건 자기 기만의 미션임을 고백한다. 목적전치가 되어서는 안된다. 안락한 가로등 아래 안주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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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보다 작은 질문의 반복이 변화를 이루는데 유익하다고 한다. 매일 '당신이 주차한 옆 자리에 자동차 색깔은?'이라고 반복해 묻는다면, 결국 옆 자리 자동차 색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작은 질문은 매일 던지면 어떻게 될까?
 
'짜투리 시간들을 어떻게 가치 있게 보낼까?'
'하루 한 페이지씩 쓰기를 어떻게 착수하면 될까?'
가치 있는, 작은 질문을 만들어 본다. 질문 던지기를 습관화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한다. 고민후 실천을 습관화 한다. 결국 나는 내가 원하는 그 방향으로 변화해 나간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다.

전망좋은 도서관을 검색하다 새로 알게 된 '전망대 북까페,' 하늘 바로 아래 있는 그 북까페의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읽은 책이 바로 <아주 작은 반복의 힘>인지라, 오래 기억할 것이다. 실천은 더욱 오래 지속적으로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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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내다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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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로베르트 제탈러 지음, 오공훈 옮김 / 그러나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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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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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집중해야 하는 책을 잠시 멀리해도 된다는 변명거리를 주기 위해 집어든 소설, < 한평생>. 제목 외에는 아무런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다. 평생 산과 가까이 자연인으로 노동의 숭고함을 실천하며 살았던 주인공처럼 참 내향적이고 과묵한 책이다. 드라마틱한 전개도, 사건도, 흔한 로맨스조차 살짝 다루고 지나가는데도 '참 잘 읽었다' 싶다. 다 읽고 나서, 옮긴이의 후기를 보니 작가 로베르트 제탈러의 <한평생>은 2016년 맨 부커 인터내셔널 상의 최종 후보작에 올랐던 검증받은 작품이다. 한국인에게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로 기억될 2016 맨 부커 상이겠지만.

*

이 작가는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섞어 비벼낸 작품에서 탁월한 기량을 발휘해왓다고 옮긴이가 소개하는데, < 한평생>에서 역시 산악 지역 휴양지 개발 과정이 허구와 잘 어우러져 묘사된다. 작가가 오스트리아 빈 태생인데, 소설의 주요 공간적 배경인 산악 지역 역시 오스트리아 서부 티롤 산악 지역이라고 한다.

*

 

시작은 죽음이다. 죽어가는 노인, 노인의 죽음에 대한 묘사, 죽음에 대한 주인공의 태도, "죽음은 차가운 여인"이라는 염소지기 노인의 말에, 젊은 주인공은 "하지만 제 등에서 돌아가시면 안 돼요!"라고 말한다. 부모 없는 에거는 어려서부터 모진 학대를 당해 다리골절을 입고 절름발이가 되었으나, 평생을 묵묵히 숭고한 노동으로 연명한다. 비록 다리길이도 짝짝이도 다리뼈도 이상하게 휘었지만 산 하나만큼은 기막히게 잘 타서, 스키 휴양지로 개발하려는 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일 역시 기막하게 잘한다. 젊어서는 그 일로 먹고 살았다. 늙어서는 도시 사람들에게 '산림체험(?), 산 안내'를 해주고 받는 돈으로 먹고 살았다. 하지만 욕심부리지 않아서 소박하게 먹고, 단순하게 살았다. 종교 수행자도 아니건만 에거의 삶은 금욕 그 자체였다. 아내 마리를, 산사태로 갑작스레 떠나보내고 난 이후 어떤 사랑에 빠지지도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저 고독하게 마리를 그리워했다.

*

마지막 역시 죽음이다. 이번에는 츨생 증명서상 일흔아홉의 노인이 된 에거의 죽음. <한평생>에는 다양한 양상의 죽음과 죽음에 대한 태도가 등장하는데, 에거의 죽음은 천천히 그리는 인물화 같이 천천히 온다. 시인이 아름다운 풍경을 관조하듯 관조하며 천천히 온다. 겸허히 수용한다. 작가는 이렇게 그의 마지막을 묘사한다.

 

에거는 심장 쪽에서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고, 자신의 상반신이 서서히 앞으로 쓰러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한쪽 뺨이 탁자 표면에 닿았다. 에거는 그런 자세로 쓰러진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 뛰는 소리가 멈추자, 고요함에 귀를 기울였다. 참을성 있게 심장이 다시 뛰기를 기다렸다. 더 이상, 심장이 뛰지 않자, 그는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죽었다. (149쪽)

이렇게 이야기가 끝이었다면 <한평생>은 에거의 고독한 한평생을 몰래 들여다보는 이야기로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에거의 죽음을 묘사한 후, 다시 6개월 전으로 거슬러 간다. 노인 에거의 정신이 혼미해져서 가끔 치매 기운을 보이는 와중, 에거는 9월에 눈송이를 맞았다. 자신을 부르러 온 죽음의 여인으로 착각했던 에거는 "아직은 아냐."라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겸허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며 나이드는 와중에도, 생이 찬란해 미칠것 같은 순간 한 번 없이 거진 80년을 살아오면서, 그 느리고 외로운 생을 더 연장하고 싶어함이 한 마디에 내포되어 있다. 노인이 된 에거는 우연히 빙하에서 발견된 노인 시신과 마주하는데, 그 노인은 바로 소설의 첫 페이지에 등장한 염소지기이다. 염소지기는 산에서 죽었고, 산악 지방의 차가움 때문에 40여년 동안 냉동 미이라가 되었던 것이다. 젊은 날의 에거 등에서 죽어가던 노인의 미이라를, 이제 그 노인만큼 늙어버린 에거가 마주본다. "에거가 몰두한 생각은 하나 더 있었다. 얼어붙은 염소지기가 마치 시간의 창을 통하기라도 하듯 에거를 응시하고 있다는 상상이었다. 하늘을 향한 그의 얼굴 표정에는 무언가 젊은 기운이 어려 있었다. 에거가 오두막에서 죽을병에 걸린 염소지기를 발견해 나무지게에 지고 골짜기로 내려갔던 당시, 하네스는 마흔 살이나 쉰 살쯤 되었던 것 같다. 이제 에거는 일흔 살을 훌쩍 넘겼고, 자신이 젊다는 느낌은 절대 들지 않았다. 산에서의̋ 삶과 노동으로 인해 그에게는 진한 흔적이 남게 됐다. (137~8쪽).
*

나에게는 이 부분이 클라이막스로 느껴졌다. 40년전 눈 앞에서 홀연히 사라져버린, 죽어가는 노인의 미라를 이제 그보다 더 늙은 남자가 되어 다시 만나는 부분. 압축된 40년은 소설 속 '한 문장'이요, 한 순간이다. 허망하기까지 하다. 그 세월, 반평생의 세월이. 다만 노인의 미라에게서 느껴지는 '젊다는 느낌' 앞에서, 이제는 폭삭 늙어버린 주인공이 여전히 떳떳할 수 있음은, 그가 순간순간 진실로 최선을 다했기에.

비록 자식도, 그 흔해 빠진 집한채의 재산도, 뭐 하나 남기지 못했기에 세속적 명예 창구는 텅텅 비었겠지만 에거의 삶은 숭고했다. 노동했고, 진실했다. 그래서 세속적 창구가 비었어도 떳떳하고 죽음 앞에서 비굴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얻은 교훈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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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권 독서법 - 인생은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인나미 아쓰시, 장은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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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권 독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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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읽으면, 아니 종이에 인쇄된 활자 앞에만 있으면 스트레스며 강한 희노애락의 감정이 부드럽게 중화되는 책벌레로서는 '서평가'는 꿈꿔볼만한 직업이다 (누가 내게 서평가를 제안해준다면, 덥썩 제안을 물고 싶다).  인나미 아쓰시가 바로 그 부러운 직함을 가진 서평가이자, 프리랜서 작가 겸 편집가이다. 작가의 아버지 역시 책 만드는 일을 하셨고, 인나미 아쓰시 역시 책을 참 좋아했단다. 단, 그에게는 컴플렉스가 있었는데 현직 서평가로서는 역설적이게도, '읽기 능력'에 대한 수치감이었다.  작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사고로 3주간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던 이후, 도무지 빨리 책을 읽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한 페이지에 5분은 족히 걸릴만큼 지독하게 느린 독서법으로 책을 대하던 그가, 웹미디어에서 서평란을 담당하면서 하루 한 권을 소화하고 서평을 "써야만"하는 상황에 놓였다. 궁하면 통한다고 하였던가. 그는 '거북이' 독서법에서 토끼형' 독서법으로 혁신적 전환을 한다. 그가 콕 집어 소개한 단어 그래도 설명하자면, '플로우 리딩(flow reading)'법인데 말그대로 "책에 쓰인 내용이 자신의 내부로 흘러드는(flow) 것에 가치를 두는 독서법 (33쪽)"이다.  이와 대립항에는 '스톡(stock)형 독서법'을 놓을 수 있는데, 이는 지식과 정보를 담아두는 독서법이다. 책 빨리 읽기의 달인 인나미 아쓰시에 따르면 책을 앞에두고 먼저, "읽지 않아도 되는 책  ( =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책)," "빨리 읽을 필요가 없는 책," "빨리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분류한 후 읽기 시작하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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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하루에 2권씩, 일년이면 700권의 책을 읽을 수 있는 데는 '"정독의 저주 (24쪽)"에서 자유로운 힘이 크다. 어짜피 아무리 공들여, 시간들여 책을 읽은들 한 번의 독서로 내용을 모두 기억할 수 없다면 왜 같은 책을 계속 붙잡고 있는가? 차라리 많은 책을 읽어나가, 레고 블록을 쌓듯이 '큰 덩어리'로 독서경험을 구축해나가는 방향을 선택하는 편이 현명할 텐데.
저자는 '정독에의 강박'이나 '밑줄치며 읽기'를 실패한 독서법의 특징으로 든다. 대신 플로우 리딩을 하되, 책 한 권의 정보를 응축한 '운명의 한 줄'을 발견하라고 충고한다. 구체적인 실천 방법으로, 읽으면서 손글씨도 책 내용 메모하기를 권한다. 저자가 전문 서평가이기 ˖문에 컴퓨터를 많이 쓰지만,  A4나 A5 크기의 큰 노트에 책 내용을 메모해가면서 읽어나가면 '운명의 한 줄'을 찾는 알찬 독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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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권 독서법>은 어찌보면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사사키 후미오, 2015)류로 대변되는 미니멀리즘의 유행과도 겹친다. 정독하며 다시 읽고 또 읽는 독서법 대신, 후다닥 읽어도 될 책들을 후다닥 읽어 1줄, 1문장의 엑기스로만 남긴후 빠른 처분을 하라는 충고를 던지니 말이다.
책의 후면에는 실제 저자 인나미 아쓰시가 쓴 리뷰가 예시로서 여러 편 소개된다. 저자 스스로 자신의 서평의 차별화된 점으로 '인용'을 꼽았는데, 실로 그의 모든 리뷰에는 해당 도서에서 따온 문장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호흡으로서의 독서'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행위가 숨을 내쉬는 '인용'"(75쪽)이라며 인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용을 많이 쓴다, 서평 대상이 되는 도서의 문장을 그대로 많이 빌어온다는 말은 다시 이해하면,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읽기 보다는 빨리 읽고 내용파악하기에 중점을 둔 독서법의 결과라고 보인다. 실제 인나미 아쓰시는 꽤 솔직하게 본문에서, 자신이 제안하는 독서법은 '독서 엘리트'(34쪽)에게는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실로 그는 아직 10000권의 책을 읽은 독서가가 아니다. 1년에 700권씩 읽어나가다보면 10년 후에 1만권을 읽게 될 독서가이다. 이런 점을 참고하며 <1만권 독서법>을 유용하게 읽기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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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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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Breath becomes 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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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새해는 드니 뵐뇌브 감독의 <그을린 사랑>과 <시카리오>를 보며 시작해서 나름 특별히 기억하는데, 2017년은 우연히 <숨결이 바람될 때 (원제: When Breath Becomes Air)>을 뒤적이며 시작했다. 보통 에세이류는 한 번만 읽는데, 두 번 읽었다. 한국식으로 이야기하면, 의사를 많이 배출한 (금, 은, 동?) 수저 집안의 엄친아가 명문대에서 남들 하나 따기도 어려운 학위를 분야를 바꿔 따고도 35세에 촉망받는 의대교수 예비후보가 되었다가 36세에 폐암으로 요절한 주인공의 자서전이다.

*

암 투병기에 유려한 글을 남긴 올리버 색스의 <고맙습니다>나 장영희 선생님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었던 기억과 교차해보면 폴 칼라니티의 처녀작이자 마지막 책은 사뭇 다르다. 세 분 모두,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며 사망하기 전까지 천직이 있었으며 암투병기에 글을 썼다. 그런데 유독 폴 칼라니티의 글을 읽다보면 성공에의 압박과 명예에의 뜨거운 욕구, 경쟁의식이 냉철한 지성의 문체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다. 신경외과 의사에 대한 그의 자부심 역시 대단해서, 그가 '의사,' 특히 (그가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생각에) 격이 다른 '신경외과의'에 갖는 생각이 의아하게 느껴진다. "생사를 가르는 결정과 싸움에 끼어들고 싶었다."라는 그의 문장이 많은 생각을 대변해 준다.

1차 치료가 끝나고, 대개의 사람들은 힘든 레지던트 7년차로 돌아가는 대신 산으로 들어가거나 몸의 힐링에 집중할텐데 그는 다시 고강도 레지던트 생활에 자신을 던졌다. 대강하지 않았다. 의대 교수를 목표로, 약을 말 그대로 쏟아부어가며 일했다. 그 와중에 이 책을 썼는데, 결국 이 책은 미완으로 끝났다.

*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한 책이다. 감상을 대신하여, 인상적이었던 문구들을 올려본다. 나중에 내 생각이 바뀔지는 몰라도, 2017년에 내가 폴 칼라니티의 글을 읽었을 때, 나는 시큼했다. '꼭, 그렇게 내 몰아야하나?' 하는 생각으로. 그게 답일지도. 지금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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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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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 중에도 일을 놓지 않다. 의대교수로서의 경력을 갈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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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저자 폴 칼라니티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는 바람에(공격적인 항암 치료에 폴 칼라니티가 더욱 급작스럽게 무너지면서) 마무리 하지 못한 책에 대해 아내이자 내과의사인 루시 칼라니티가 맺음말을 쓰면서 완결된 모양새를 갖춘다. 역자 이종인은 남편 폴의 글 이상으로 아내 루시의 글이 좋다고 말한다. 담담하게 표현하나 남편을 향한 깊은 사랑과 존경.

그녀는 남편과 함께 레지던트 생활의 고락을 함께하며 누구보다도 외과 수련의의 과정이 험난함을 잘 알테지만, 남편이 1차 항암치료를 마치고 다시 병원으로 복귀하겠다는 뜻을 밝혔을 때 누구보다도 열렬하게 지지했다. 무엇이 옳은지를 모르겠지만.....성취에 성취에, 앞으로 나아가며 싸우려는 부부의 의지가 놀라웠다.

 

리뷰 쓸 때, 출판사 측에 누가 될까 본문 사진은 자체검열로 5장 이하로 제한하는데 이 책만큼은 유독 본문 사진을 많이 올렸다. 다 옮겨 적기는 어렵겠으나, 시간의 추이에 따라 저자의 생각과 문체의 호흡 변화를 느낄 수 있기에 남겨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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