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괜찮게 살고 있습니다 - 하루하루가 쾌적한 생활의 기술
무레 요코 지음, 고향옥 옮김 / 온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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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잔소리는 싫지만 충고는 더 싫다는 한 초등학생의 말을 들으면서 무릎을 탁 쳤다. 놀라운데. 어느정도 인생 살아보고 삶의 진리를 터득한 자의 입에서나 나올 소리여서. 잘못된 점을 고치라고 하는 말인 줄은 안다, 잔소리. 나 잘 되라고 하는 말인 줄도 안다, 충고. 처음 들을 때는 바꿔야지. 멋진 내가 되어야지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그러다 잔소리와 충고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짜증이 난다. 일단 됐고. 나 알아서 살 거다. 이런 마음이 된다.


삶이 점점 나아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건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다. 늦잠 자는 습관을 고치고 싶고. 빵과 과자를 사 먹는 식습관을 바꾸고 싶고. 오늘 일을 내일로 간단하게 미뤄 버리는 나를 혼내주고 싶다. 정말 잘 알고 있다. 바보 같은 자신의 모습을. 《인사이드 아웃》에 나오는 슬픔이처럼 매사에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나를 고치고 싶다. 그럴 때 누군가의 잔소리와 충고를 듣기보다는 책을 읽으며 반성과 자책, 후회를 하며 일상을 산뜻하게 만들어 보는 것이다.


무레 요코의 『꽤 괜찮게 살고 있습니다』를 읽은 건 그와 같은 이유이다. 육성이 아닌 문자로 조곤조곤한 잔소리와 충고가 가득한 책.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무엇을 먹나. 어떤 걸 사나. 불안한 마음이 들거나 싫은 소리를 들었을 때 마음을 어떻게 다 잡나. 궁금한 게 많다. 시끌벅적한 만남을 가지며 묻고 싶지 않다. 자랑과 허세가 섞인 말을 들으며 영혼이 탈곡 되고 싶지도 않다.


영화 《카모메 식당》의 원작자로도 잘 알려진 무레 요코는 '하루하루가 쾌적한 생활의 기술'을 담백하고 솔직한 언어로 들려준다. 음식, 집, 옷, 건강, 돈, 일, 취미, 인간관계를 주제로 자신만의 가치관을 들려준다. 일상을 살아가고 지켜내는 자의 지혜가 『꽤 괜찮게 살고 있습니다』에 담겨 있다. 너무 솔직한 이야기들. 이를테면 본가의 집을 지을 때 본인 명의로 대출을 받아서 오랫동안 갚았다. 지분이 있는데도 남동생은 본가의 열쇠를 주지 않았다. 자신을 지갑처럼 여겼다는 어머니와 남동생. 절연을 선언했다는 이야기.


통장은 세 개를 쓰고 있으며 늙은 고양이와 함께 살아서 생활의 리듬을 고양이에게 맞춘다. 쓰는 화장품의 종류. 온라인에서 옷을 살 때 실패하지 않는 팁. 동전 지갑은 무엇이 좋나. 심플 라이프를 향한 여정. 쓰레기는 바로바로 버리며 청소는 되도록 열심히 하지 않는 편. 책을 읽어 나가며 쾌적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렇게 저렇게 바꾸어야 한다. 내가 가진 규칙을 따라야 한다, 가 아니다.


다양한 삶의 모습과 규칙이 있다는 것. 내 경우에는 이렇게 했더니 괜찮더라 같은 수줍음이 섞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이다. 거창한 목표와 성취로 이루어진 삶이 아닌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기가 요즘의 내가 가진 화두이다. 이를 응원하는 책이다, 『꽤 괜찮게 살고 있습니다』는. 다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궁금하다. 절약하며 사는지 욜로를 즐기는지. 간절기 때 옷은 사서 입는지 산다면 얼마의 경비를 들여서 사는지.


『꽤 괜찮게 살고 있습니다』는 나의 호기심을 채워준다. 너무 세세해서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읽고 나면 따뜻한 잔소리와 충고를 얻은 느낌이 든다. 귀에 피가 나지 않은 건 덤. 나만의 생활의 기술 하나를 투척한다. 꿀팁이니 받아 적으시라. 카카오뱅크에는 저금통 기능이 있다. 그날 쓴 금액에서 잔돈을 모아준다. 3,720원이 남으면 720원을 저금통에 넣어준다. 티끌 모아 티끌이지만 얼마나 모였는지 금액에 해당되는 물건으로 표시를 해줘서 궁금증과 알 수 없는 성취욕을 불러일으킨다. (카뱅에서 1원도 받지 않았습니다. 라이언 때문에 계좌 만들었는데 라이언 못 잃어서 계속 쓰고 있을 뿐입니다. 헤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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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10미터 앞 베루프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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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의 추리 소설이라면 밤을 새우도록 읽을 수 있겠다. 일상적이고 친절하다. 머리가 복잡하고 다른 생각으로 책에 집중할 수 없을 때 요네자와 호노부의 『진실의 10미터 앞』을 권한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묘한 기분에 젖으면서 빠져든다. 《도요 신문》의 기자 다치아라이가 펼치는 추리의 세계. 여섯 편의 이야기는 다른 에피소드를 전하면서 감추어진 진실에 한 걸음 다가가기를 권한다.


여기서 나의 편협한 시각을 밝히고자 한다. 주인공 다치아라이를 나는 『진실의 10미터 앞』의 3분의 1 정도를 읽을 때까지 남성인 줄 알았다.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사건이 벌어지고 취재를 떠난다. 사건 안에 숨어 있는 진실을 밝히는 다치아라이. 고정된 성 역할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이런. 독서는 훌륭한 행위이다. 갇혀 있는 사고를 확장해 준다. 기민하고 총명하며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다치아라이는 여성이다.


먼저 표제작인 「진실의 10미터 앞」은 도산한 회사의 홍보 담당을 찾으러 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사장과 그의 여동생 마리는 의욕적으로 회사를 꾸려 갔지만 부도를 맞게 된다. 취재차 알게 된 마리의 여동생 유미의 부탁으로 다치아라이는 실종자를 찾으러 간다. 유미에게 걸려온 마리의 전화. 간단한 통화였지만 그것을 토대로 다치아라이는 마리를 찾아낸다.


전철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 「정의로운 사나이」는 인간이 가진 악의에 주목한다. 음험하게 도사리고 있는 악한 본성이 발현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고이가사네 정사」는 두 고등학생의 자살 사건 배후를 캔다. 다치아라이는 사건이 일어난 현장을 찾아가 부자연스러운 단서를 발견해내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다. 사소한 단서도 놓치지 않는다. 「이름을 새기는 죽음」은 고독사라는 현대 사회의 문제를 끌고 온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안타까움을 유발한다.


「나이프를 잃은 추억」은 씁쓸함을 안겨준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누나. 내내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남동생. 진실을 감추면서도 한편으로는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충돌한다. 수해로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된 노부부를 구조대가 구해내는 이야기, 「줄타기 성공 사례」. 노부부를 구조했던 사연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진실의 10미터 앞』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님을 매력적인 주인공 다치아라이를 통해 보여준다.


'눈'이라는 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진실을 바라보려는 자에게만 '눈'은 열린다. 다치아라이 시리즈가 계속 나와도 좋을 듯하다. 무심하고 정이 없어 보이지만 사건을 추리하는 데 있어서 냉철하고 인간미를 잃지 않는다. 소소한 반전이 펼쳐지면서 추리 소설을 읽는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복잡한 트릭은 없다. 스트레스로 가득한 하루를 보냈다면 잠이 들기 전 『진실의 10미터 앞』을 꺼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으로 달려가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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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여름 2020 소설 보다
강화길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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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구월. 아직도 2020년이 지속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많은 일이 일어나고 많은 일을 경험하고 많은 시간이 흘러간 것 같은데. 이렇게 가다가는 영원히 2020년이 계속되고 있지 않을까. 스티븐 킹 식대로 이해한다면 다른 세계에서 2020년을 무한 반복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도 같다.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과 소중한 시간이니 감사히 살아가야지 하는 두 개의 마음을 가지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계절의 소설로 문지에서 기획한 '소설 보다 시리즈' 여름을 뒤늦게야 읽었다. 『소설 보다 여름 2020』에 실린 세 편의 소설은 지나간 시간을 추억하는 혹은 환멸에 가까운 감정으로 복기한다. 순간을 살아가다 보면 순간을 놓친다. 뒤늦게야 깨닫는다. 그때의 감정과 기분은 처참했으며 대뇌피질 어느 구석에도 저장하고 싶지 않다고.


강화길의 「가원佳園」은 밥값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외할머니를 이해하기 위한 소설이다. 담임 선생님의 좌우명이 '밥값을 하자'였더랬다. 초등학생인 나는 그 말에 살짝 감동했다. 정직, 믿음, 사랑 같은 추상어가 아닌 일상어로 신념을 이야기하는 어른을 처음 만난 것이다. 그 이후로 한동안 나의 좌우명도 밥값을 하자였다. 이 말은 지키기가 어려운 성질의 것임을 나중에야 깨닫고는 되는대로 살고 있다. 밥값을 하는 인간 보다 밥이라도 실컷 먹는 인간이 되자는 식으로. 강화길은 여성 화자의 목소리를 다르게 들려준다. 「음복」에서는 제삿날 며느리의 목소리로. 「가원佳園」에서는 평생 한량으로 살아간 남편을 둔 아내의 목소리로. 각자의 이름을 가져야 한다고 나직하게 외친다.


서이제의 소설은 처음 읽어본다. 「0%를 향하여」. 어쩐지 서이제의 소설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읽을 것 같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는. 독립 영화를 보기 위해 대전까지 찾아간 기억으로 지금은 영화를 만들다 백수로 지내는 '나'. 모르는 사람과 허물없이 대화를 하고 친구들을 찾아가서는 물회를 얻어먹으며 한국 영화의 독립을 꿈꾼다. 독립이 되지 않을 것임에도. 한국 영화 100주년의 역사를 귀엽게 훑어가면서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같은 감히 내가 건드리지 못할 것 같은 사조를 비꼰다. 관념, 추상, 현학적으로 소설이 흘러가지 않아서 좋았다.


미주신경성 실신을 앓고 있는 이 병은 질환은 아니고 증상이라고 하는데 하여튼 미주신경성 실신 증상이 있는 진영. 임솔아의 「희고 둥근 부분」은 진영이 증상의 완화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모가 겪은 죽음에의 기억.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력의 기억은 대를 건너서 진영에게로 옮겨 온다. 진영 역시 가르치는 학생을 방관 혹은 간섭했다는 추측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실신을 하고 죽음의 위협을 느낀다. 어렴풋하고 희미한 희고 둥근 부분을 찾아다니며 삶의 기운을 회복한다.


겨우 구월. 고통은 끝나고 삶은 계속된다. 나는 나대로 살아갈 힘을 찾는다. 책을 읽고 신기한 경험을 하는 일로. 『소설 보다 여름 2020』을 다 읽었더니 서점 앱 푸시 알람으로 『소설 보다 가을 2020』이 나왔다고 떴다. 우연일까. 장바구니에 쏘옥 가을을 집어넣었다. 며칠 후면 가을이 배달되어 오겠지. 괜찮고 괜찮을 것이다. 그래서 겨울을 읽을 수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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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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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가고 계절은 가을로 변해 있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매미는 안녕이라고 말했을까. 엄청 크게 인사하고 떠났을 텐데. 못 들었다. 그 자리에 풀벌레들이 찾아왔다. 어서 와. 가을이야. 백수린의 『여름의 빌라』에 담긴 여덟 편의 소설을 읽어나가는 일은 과거의 시간을 소환하는 과정이었다. 서랍 속에 부끄럽고 치졸했던 시절을 안 보이게 넣어 놨는데.


『여름의 빌라』의 첫 번째 소설 「시간의 궤적」에서는 관계의 무심함을 이야기한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주인공이 주재원인 언니를 만나고 함께 한 시절을 회상한다. 언제까지나 열렬한 시간이 계속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과거는 힘이 없음을 말하는 소설이다. 표제작인 「여름의 빌라」에서 추억 역시 현재까지 오는 데에는 소진된 힘 밖에는 없다고 보여준다. 다른 문화에서 살아가는 두 부부의 끊어질 듯 이어지는 만남에서 평안을 빌어주고 끝이 난다.


「고요한 사건」과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에서는 혼란으로 가득한 학창 시절을 불러온다. 어리고 미숙했다. 성장 소설의 궤를 같이 하는 두 편의 소설에서 그래 어떡하든 무사히 통과했잖아 안심하게 만든다. 「폭설」과 「흑설탕 캔디」에서는 이전에서는 만날 수 없던 여성상을 그린다. 「폭설」은 어머니. 「흑설탕 캔디」는 할머니. 그들에게 양보, 배려, 평화의 의무를 강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두 편의 소설에서는 사랑, 자신, 자존감을 토대로 내일을 그리는 여성이 나온다. 그래서 희망이 된다.


그러면서도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와 「아주 잠깐 동」안에는 포기, 체념, 허무로 가득한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을 그린다. 백수린 소설의 장점은 자의식 과잉으로 흐르지 않는 문장에 있다. 부드럽고 긍정적인 비유를 쓸 줄 안다는 것. 부정과 혐오의 시선이 아닌 긍정과 사랑, 위로의 의식에서 『여름의 빌라』는 쓰였다. 아무 이유 없는 위로가 필요한 시절이다, 지금은.


무턱대고 무책임한 응원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


안녕이라고 듣지 못했지만 여름은 다시 올 것이다. 매일 인사를 주고받지 못했더라도 모두 잘 있겠지. 『여름의 빌라』는 다정하지 않았더라도 현재로 오게 되는 기억에게 지금은 괜찮다고 말해준다. 나의 세계로 느닷없이 굴러온 환멸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지 『여름의 빌라』를 읽으며 고민한다. 사랑으로 가기 위한 용기를 얻기 위한 책 읽기의 시간으로 가을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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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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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의 역사는 어떻게 기록될까. 후대인들은 놀라고 신기해할 수도 있겠다, 2020년의 기록을 살펴보다가.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돌았고 사람들은 어디에서든 마스크를 써야 했으며 아이들은 학교 대신 집에서 원격 수업을 했더라는 사실 앞에서. 거리두기 단계라는 제도가 시행되면서 어떤 업종의 가게는 잠정 휴업을 하고 대신 배달업이 번창을 하는. 10인 이상 집합 금지 명령이 내려지고 모임보다는 혼자의 시간을 많이 갖게 되었다고도.


희망 대신 절망을 꿈이 아닌 좌절의 감정을 쉽게 느끼며 살았다는 2020년의 세계. 가만히 들여다보면 후대인들의 현재도 2020년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 연민과 슬픔을 함께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기록을 멈추지 않고 읽어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사실이 있을 것이다. 빈 병 만 개를 모아 가난한 이웃에게 기부를 하는 부부. 부모님이 주신 용돈을 모아 마스크를 사서 기부하는 어린아이. 불어난 물에 다리가 끊어질 것 같아 차를 오지 못하게 해서 생명을 구한 시민.


2020년의 역사는 이토록 굴곡 많고 다채로운 색감으로 기록 될 것이다. 용기를 잃어가는 순간에도 희망을 찾아 서로에게 나누어 주려는 사람들이 있었음이 역사로 기억된다. 최태성의 『역사의 쓸모』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디에서 용기와 희망의 빛을 찾아야 하는지 알려준다. 책을 읽은 시점에 나는 또 한 번의 좌절을 겪어야 했다. 광복절을 기점으로 코로나가 재유행을 해버렸다. 하루 확진자 수가 300명이 넘어가면서 잠시 일을 쉬어야 했다. 원래 일이란 게 하고 있으면 하기 싫고 하지 않고 있으면 하고 싶은 역설이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다. 징징 대면 안 된다. 끌어모을 용기를 찾아야 한다.라는 마음으로 『역사의 쓸모』를 읽어나갔다. 최태성은 역사 속 인물과 일화를 바탕으로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오늘의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무작정 힘을 내어야 한다, 습관을 바꾸고 너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같은 뻔한 소리를 늘어놓지 않는다. 몇 백전에 살았던 인물의 업적과 그들이 품었던 신념을 강의하듯 친절하게 알려준다. 몰랐던 사실 앞에서 혹은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알았던 진실 앞에서 겸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역사가 흘러가는 것을 보면 희망이라는 말이 조금은 다르게 다가와요. 말하자면 역사는 실체가 있는 희망입니다. 아무런 근거 없이 조금 더 살아보자고, 버텨보자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단지 조금만 더 멀리 봤으면 좋겠어요. 지금 당장은 두렵겠지만 나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잖아요. 세상도 변하는데 나의 인생이라고 늘 지금과 같을까요? 힘든 세상에서 희망마저 없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최태성 『역사의 쓸모』 中에서)


삼일천하로 끝난 급진 개화파가 가졌던 새로운 세상의 열망. 전성기를 늦게 맞이한 약소국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 일제 강점기 때 권력의 편에 서지 않고 우리 민족을 위해 일생을 걸었던 이회영과 박상진의 신념. 자신의 한계에 매몰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끊임없이 찾았던 정도전의 돌파력. 거란의 패를 정확히 읽어 전쟁 없이 강동 6주의 땅을 가져올 수 있었던 서희의 뛰어난 관찰력.


『역사의 쓸모』는 능력이 검증된 역사 속 인물의 삶을 통해 어렵고 험난한 이 시대를 돌파해 가자고 말한다. 그들이 보여주었던 빛나는 삶의 기지와 이상을 실현하고자 보여주었던 모습에서 나의 절망을 조금씩 무너뜨릴 수 있었다. 역사는 오래되고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는가. 돈을 벌고 집을 사고 취업을 하는 일에 역사는 당장의 쓸모가 없다는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오늘만 살 수는 없다. 괜찮은 나를 만들고 그런 나가 살 수 있는 내일에 희망을 걸어보는 일에 '역사'가 있다고 『역사의 쓸모』는 힘주어 이야기한다.


선덕여왕은 위기의 순간에 '혁신'을 꾀한다. 황룡사 9층 목탑을 지어 올리라는 명령을 내린다. 80미터 높이의 아파트 30층에 해당하는 탑을 지어 신라인들이 어디에서나 그 탑을 볼 수 있게 했다. 신라를 괴롭히는 주변국의 이름을 탑에 새기면서 힘 있는 나라로 나아가겠다는 열망을 심어주었다. 강해질 수 있다는 마음을 모으며 신라는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다졌다. 2020년은 위기의 시대임이 분명하다. 불안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암담함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위기를 극복하고 서로의 꿈을 위해 연대해야 함을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다면 '역사의 쓸모'는 소임을 다한 것이다. 선덕여왕이 신라인의 마음에 열망을 심어주었던 것처럼 우리는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을 서로에게 심어주어야 한다. 체면 보다는 실리를 따지며 외교와 국방의 안전을 위했던 장수왕에게서는 필요할 땐 한 발 물러서는 용기를 배워야 한다. 정약용은 유배 생활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역사의 구경꾼’으로 남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들의 삶을 읽어나가며 우리는, 지지 않았고 사랑과 걱정으로 코로나 시대를 살아갔다고 역사는 기록될 것이다. 2020년의 역사는 놀라운 희망으로 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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