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되는 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3
최진영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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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했다. 다른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무슨 일이든 해 보려고 발버둥 치는 삶보다, 정말 어딜 가나 비슷하구나 깨닫고 체념하는 삶보다, 지금처럼 고인 채로 매일 짜증 내며 조용히 썩어가는 삶이 최악이다. 박수원은 내가 어디에서도 지금만큼 인정받지는 못하리라고 단단히 믿고 있었다. 나는 박수원의 믿음이 역겨웠다. 그가 나를 얼마나 경멸하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후회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후회하는 삶을 살 것이다.


(최진영, 『내가 되는 꿈』中에서)


'그렇다면 나는 후회하는 삶을 살 것이다.' 최진영의 소설 『내가 되는 꿈』을 읽으며 밑줄 그은 문장은 저런 식이었다. 또 있다. '젊은 시절의 엄마 아빠처럼 자신을 견딜 수 없어 상대를 증오하는 방법으로 정신없이 화를 내며 살고 있는 나를 찾아왔다.' 대체 어쩌자는 건데 하는 식의 문장들. 불안, 분노, 짜증, 냉소 같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안고 살아가는 내가 감흥을 받은 문장. 애쓰지 않아도 좋아. 포기할 수 있다면 할 것. 간단명료한 말을 찾아가며 읽었다.


사직서에 일신상의 이유라는 두루뭉술한 말이 아닌 그동안에 쌓여 왔던 회사에 대한 울분을 써내는 장면에 책갈피를 했다. 『내가 되는 꿈』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장면으로 시작한다. 손주들에게 공평하게 200만 원씩 남겨 줬다는 엄마의 연락을 받으면서도 태희는 별다른 감정의 동요를 느끼지 못한다. 회사에서 야근을 하는 중이었다. 직장 상사라는 박수원 부장은 매번 태희의 실수를 지적해 내고 망신을 줬다. 할머니가 남긴 편지도 있으니 한 번 내려오라는 엄마의 말에 짜증을 낸다.


하필이면 전화를 받은 곳이 회사여서. 사직서든 편지든 무언갈 써야 정리가 되는 상황인데 태희는 기획서나 쓰고 있다. 번번이 까이고 퇴짜를 맡고 반려를 당하는 기획서를 쓰느라 할머니의 죽음 이후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다. 200만 원은 그냥 엄마 쓰라고 했다. 엄마는 일단 고마워해야 하는 마음이 먼저 아니냐고 했다. 태희는 실수와 잘못을 연달아 하는 자신의 삶이 실망스럽다. 다음 장에서는 태희의 과거가 나온다. 부모의 별거로 외갓집에서 이모와 한 방을 나눠 쓰며 살아가는 중학교 이후의 삶.


어른이 된 태희와 아이였을 때의 태희는 편지로 연결된다. 과거의 태희가 없었다면 현재의 태희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과거와 현재는 긴밀한 듯 때론 단절된 듯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있는데 그걸 어른이 된 나들은 잊고 산다. 애초에 과거 따위는 없다는 듯 현재의 구질구질함은 전부 지금의 내가 잘못 살아서 만든 것이라는 자책을 하면서 말이다. 아이였을 때. 내가 아이였을 때를 떠올려 보면 싫고 비참하고 슬프다. 어른의 보호는 없었고 어떻게든 성인으로서의 삶만이 구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아이는 자랄 수 있나. 어른으로 클 수 있나. 그게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어른. 안타깝게도 어른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는 어른.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됐다는 식으로 함부로 말하지 않는 어른. 책임감과 의무감이 소량으로라도 몸 안에 있는 어른이 아이의 곁에 있어야 한다. 태희의 곁에는 그런 어른이 없었다. 불완전한 존재로서 태희는 그 시간들을 감당해야 했다. 엄마는 매주 찾아오다가 뜸해지고 아빠는 취조식으로 질문을 하고 이모는 혼란한 연애를 한다.


직업으로서의 꿈만을 꿈이라고 여겼다. 꿈이 있는 아이는 구체성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 나만 빼고 훌륭해 보였다. 그림을 잘 그리고 공부를 잘하고 날씬하고 예쁘고 글짓기를 잘하는. 내게 없는 아이들의 장점을 동경하면서 살았다. 어중간했다. 겁이 많아서 비행을 저지르지도 재능과 노력이 없어서 공부도 못 했다. 그저 내가 가질 수 없는 누군가의 눈부신 모습을 보면서 나 스스로를 학대했다.


『내가 되는 꿈』의 아이 태희와 어른 태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커서 어른이 되었다. 크게 달라지지 않은 삶이었다. 뭣 같은 직장에서 과장 직함을 달고 있지만 부장 박수원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동료라고 부를만한 이도 없이 야근과 야근으로 이어지는 삶을 살고 있다. 책상을 치우고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축하한다는 전화를 하고 바람피운 애인에게 이별을 선언하는 그 모든 일들을 어른 태희는 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 어른 태희에게 편지 온다. 아이 태희가 보내온 과거에서 도착한 편지.


어떤 날에는 꿈이 현실이 되지 못한 것에 괴로워하고 최진영의 『내가 되는 꿈』 같은 소설을 읽고 나면 꿈을 이루지 못한 게 아니라 꿈을 옆에 놔두고 있다는 소설의 이야기에 안심이 되기도 하는 날. 나를 미워하다가 나를 위로하다가. 내가 싫다가 내가 괜찮다가. 확실한 주관 없이 살아가면서 남의 말에 쉽게 내 존재를 밑바닥으로 분류하다가도 '이제 정말 오지 않을 거라고 미지는 말했다. 같은 다짐을 계속하며 우리는 어른이 되겠지. 남들은 절대 알지 못할 하루와 마음을 끌어안으며. 중요한 말일수록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면서.' 이런 문장을 발견하면서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게 등신 같은 게 아니라는 위안을 받는다.


후회하지 않겠다고 생각할수록 꼭 해내야 한다는 다짐을 할수록 포기하면 지는 거야 선언할수록 나는 내가 되지 못했다. 내가 아닌 남이 되어 갔다. 규율과 관습과 평범으로 만들어진 삶으로. 어른 태희는 하지 않겠다고 말한 이후로 방을 치우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애인과 이별했다. 바틀비의 선언은 꼭 필요하다. 책임져주지도 않을 거면서 도전을 말하고 패기와 용기 없음을 비난하는 어른의 말은 들을 가치가 없다.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네가 하기 싫은 건 제발하지 마. 그래도 세상은 망하지 않아. 네가 그만둔다고 해서 네 인생이 끝장나지도 않지. 일단 살고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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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상처받았나요? - 상처 입은 사람에게만 보이는 술 빼고 다 있는 스낵바가 문을 연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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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오늘도 상처받았어요. 오늘만이 아니고, 오늘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당분간 내내 그럴 것 같아요는 아니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상처만 받는 상처 인간같이 돼버린 것 같아요. 그런 기분이 들어요. 요즘의 시간들은. 별거 아니라고 그냥 흘러듣고 잊어버리라고 하는데. 잘 안돼요. 성격 탓을 해봐도 위안이 되질 않아요. 타고나기를 소심하고 불안을 많이 느끼는 성향이라고 원인을 나름대로 찾아보았는데도. 그게 아닌 것 같아요. 나란 인간이 문제인 건 아닌가. 존재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닌가.


그 와중에도 마스다 미리의 신간이 나와서 당장 샀지요. 제목 좀 보세요. 『오늘도 상처받았나요?』라니요. 마스다 미리라는 것도 충분한데. 제목마저도 근사하네요. 나의 하루를 사찰하고 있는 듯한 제목. 책 택배가 왔다는 문자가 왔지만 확인만 하고 잊어버린 하루였어요. 집으로 걸어가다가. 오늘 하루도 잘 참았네. 그 순간에 화장실로 도망간 건 잘했어. 나를 다독이면서. 맞다, 문 앞에 책 택배가 와 있지. 갑자기 솟구친 힘으로 마저 길을 걸어갔어요.


성취감을 얻고자 하루에 만보 걷기를 하고 있답니다. 만보를 걸었다는 알림이 오면 약간 뿌듯해지네요. 택배 언박싱은 즐겁네요. 짜증과 분노로 가득한 하루를 잊게 만들어 줍니다. 그전에는 몰랐어요. 왜 직장인들이 집에 와서 미친 듯이 쇼핑을 하는지. 신용 카드를 긁는지. 카드빚을 갚느라 다시 출근을 하는지. 비싼 걸 사지도 못하지만 소소한 금액으로 물건을 사는 일로 정신이 건강해지면 자신이 무너지지 않으면 괜찮은 소비라는 걸 이제는 깨달아요.


청소까지 마치고 텔레비전 앞에 앉았어요. 고요한 저녁은 못 견딜 것 같아서. 『오늘도 상처받았나요?』를 펼쳐 들고. 야구가 진행 중이고. '우리는 어쩌면 서로 작은 상처들로 연결되어 있는 걸까?'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네요. 상처받은 사람들 눈에만 보인다는 '스낵바 딱따구리'가 주요 배경이에요. 먼저 콜센터 일하는 나카타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원하는 대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이름을 묻고 상급자를 찾는 고객. 나카타의 하루는 그렇습니다.


연인이 있어도 자기 말만 하고요. 배가 고픈데 요깃거리도 안되는 음식을 주문하는 연인. 나카타는 그와 헤어지고 '스낵바 딱따구리'를 발견합니다. 술은 팔지 않는다고 해요. 딱 봐도 인상이 좋아 보이는 주인이 있어요. 두유 라테를 주문하는데 오늘도 수고 많았어요라고 말해주네요. 간단한 말 있잖아요. 길게 주절거리는 말인지 방구인지 모를 말이 아닌. 그저 고생했어, 수고했어, 모르는 건 죄가 아니야, 천천히 해. 같은 주어와 서술어만 있는 말이 어떤 오후에는 필요해요.


『오늘도 상처받았나요?』를 등에 기대어 읽는데 자꾸 잠이 쏟아졌어요. 저녁 10시만 넘어가면 졸음이 쏟아지네요. 나카타의 이야기 뒤에는 나카타에게 약간의 진상을 부린 아다치의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식품 매장에서 일을 하는 아다치. 손님도 같이 일하는 동료도 아다치에게 함부로 대합니다. 매일 작은 손해를 보며 살아가고 있구나를 느끼는 아다치. 스낵바를 발견하고 들어갑니다. 두 대의 피아노를 주인과 치면서 하루의 상처를 털어냅니다.


우리는 서로를 몰라요.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데. 어쩌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된 걸까요? 책의 말대로 상처로 연결되어 있다면 이해가 되네요. 저는요, 그래요. 웬만하면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민감하고 예민하고 걱정이 많은 성격 탓에 상대의 말이나 행동에서 상처를 많이 받거든요. 의미 없는 말일 텐데 자학처럼 의도를 찾아내서 스스로 상처를 받아요. 사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지요.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어떤 말들은 대게 의미가 없는 헛소리로 판명됩니다. 생각 없이 지껄이는 말들이 많지요.


어른이라고 분류되는 나이로 살아가는데. 어른 흉내를 내며 살아가는 아이의 심정이에요. 『오늘도 상처받았나요?』의 등장인물인 열일곱 살의 메이의 말처럼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상처를 입어야 하는 어른의 얼굴을 한 아이가 저예요. 열일곱에는 꿈을 꿨어요. 무엇이 되겠다. 그 꿈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꿈을 꾸었던 열일곱은 기억합니다. 그거면 된다고, 『오늘도 상처받았나요?』는 말해주었어요. 미래보다는 오늘을 가치 있게 여기며 살아가야 한다고도.


불합리한 상황에서 조목조목 따져가며 말을 하진 못해요. 그냥 당하고 있어요. 얼굴도 모르는 타인 때문에 내 하루가 내 기분이 엉망이 되는 걸 보고만 있어요. 또는 한 공간에 있는 사람 때문에 내 세계가 허물어지는 걸 방기하고만 있어요.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지금 나는 감정이 없다. 인간이 아니다. 일하는 로봇이다. 일하는데 감정은 필요하지 않다. 속으로 되뇝니다. 집으로 돌아와 책을 읽고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습니다.


상처받은 사람들의 눈에만 보이는 '스낵바 딱따구리'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곳이 없다는 건 상처받은 사람들이 없다는 뜻이니까요.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고 싶어요. 정작 상처 준 사람은 그걸 기억도 못 하는데 나만 힘들고 아프고. 상처로 연결된 우리. 각자 처한 상황이 달라서 그런 거라고. 어느 날 우리 함께 모여서 두유 라테를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탭댄스를 추고 이야기를 나눠요. 규칙은 하나예요. 혼자서 오래 떠들지 말 것.


나의 오늘은요.


커피를 타고 사과 깎아 놓으라는 말과 반말을 듣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데 왜 말을 안 하냐고 사람이 말을 하면 대답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일을 어떻게 처리하냐고 지켜보고 있겠다고. 되는대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상처 세포가 유독 발달해서 그런지 더러운 기분이 쉽게 떨쳐지지 않았어요. 화장실에 앉아 있는 게 편하고 좋아요. 표정 관리가 힘들 땐 화장실로 가라던 누군가의 말을 듣고부터는 화장실로 가요. 심호흡을 하고 다시 웃으려고 해요.


편의점에서 알바하며 구직 활동을 하는 서른다섯의 도미타는 말 하네요. "더없이 평범해도 좋으니까. 확실한 내일을 원하지." 평범과 확실한 내일은 가질 수 없는 게 되어 버린 지 오래이지 않나요? 그래도 도미타는 원해요. 부디 도미타가 정규직으로 입사했으면 좋겠어요. 1년 계약직인 제가 주제넘는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스낵바 딱따구리'는 없으니까, 글을 써요. 그때 하지 못한 말을 써 나가요. 마음대로 쓰고 싶을 땐 항상 가지고 다니는 라이언 초록색 노트에. 근사한 나로 보이고 싶을 땐 블로그에.


희박한 확률이지만 현실의 나를 아는 누군가 내가 쓰는 글을 읽고 따지지 말아요. 나는 당신들이 아닌 내 이야기를 쓰는 거니까요. 나의 기분, 나의 감정, 나의 상처, 나의 어제, 나의 오늘, 나의 기억. 나는 당신들이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에요. 확실하게 해요. 반말을 할 건지. 존댓말을 할 건지. 타인을 하찮게 대하면 당신을 하찮게 대해도 된다는 걸로 알게요. 『오늘도 상처받았나요?』를 사서 건네주고 싶지만 그런 정도의 친분을 쌓고 싶지 않으니. 스스로 사서 읽도록 하세요. 얼굴과 마음이 뜨거워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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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심장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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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는 김숨의 『제비심장』은 시일까 소설일까, 노래일까. 마구 헷갈리는 그런 밤이었다. 걸어서 집에 오고 씻고 정리하고 어제 한 드라마를 뒤늦게야 보고 방에 들어가 책을 펼쳤다. 마음 같아서는 책을 다 읽고 싶었다. 하루하루의 성취는 거의 없다시피 한 시간 앞에서 완독이라도 하면 괜찮을 것 같아서였다. 내가 하는 일은 어설프고 하찮아서. 그건 그것대로 저녁 여섯시에 놔두고 온다.


그러고서 하는 일. 책을 읽는데. 그것도 어렵다. 많이 있는데 내게 없는 것 중에 체력도 없다. 어쩌다 태어나서 좋고 감사하고 슬프다. 어쩌다 태어났는데 자존감, 체력, 강한 정신력이 있었으면 좋았을걸. 조선소 노동자 그것도 여성 노동자를 중심으로 쓴 소설 『제비심장』은 다양한 문학적 장르가 혼재되어 있다. 장편소설이라고 하니까 처음엔 소설을 읽는 자세로 읽었다.


소설이라고 하니까. 그러다 어, 어. 서사는 이어지지 않았다. 조선소의 이야기를 기본으로 깔아 놓고 문장은 뒤섞인다. 인물의 대화는 일방적이다. 서로 대화를 하고 있지만 자신의 말만 한다. 그래도 소설은 흘러간다. 어느 시점부터(김숨이 사회 참여적인 소설을 쓸 때부터) 김숨의 소설은 소설이 아니게 된다. 소설로 읽으려고 했던 밤은 실패했다.


낮의 패배와 무력감이 밤으로까지 달려왔다. 배를 만드는 사람들. 사상공, 포일공, 도장공, 발판공, 용접공, 불 감시자. 그들이 철상자 안에서 고군분투한다. 거대한 철상자 안에서 길을 잃는다. 안전은 무시되기 일쑤다. 쇳가루가 날리고 독한 페인트 냄새가 공기처럼 떠도는 곳. 하루살이 노동자들은 일당을 받기 위해 하루를 온전히 바친다. 어제와 내일은 없고 오늘만 있다. 하루를 벌어야 하루를 산다. 내일은 살 수 없다.


소설로 읽기를 포기하고 책을 덮었다. 조선소 노동자와 달리 나는 내일이 있고 싶었다. 존재하는지 의문이 드는 미약한 내일을 위해. 내일은 오늘이 되었다. 오늘은 시로 읽었다. 『제비심장』은 시로 읽힌다. 시의 호흡으로 읽어간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있었던가. 세상 물정을 책으로만 배우고 알았기에 나는 그걸 몰랐다. 겨우 김진숙을 알뿐이었다.


하루 일당이 얼만데. 아침에 일어나 밥하고 세탁기 돌리고 빨래 널고 남편과 아이들을 깨워 밥을 먹인다. 다시 눕고 싶지만 그들은 생각하고 말한다. 하루 일당이 얼만데. 일 년에 한 번 지급되는 작업복과 작업화. 그마저도 하루살이 노동자에게는 남이 입던 걸 준다. 제대로 된 휴식 시간도 없다. 한 시간의 점심시간이 있지만 구내식당까지 왕복 30분이 걸린다. 40도가 넘어가는 철상자 안에서 철판을 자르고 조립한다. 높은 곳에서는 불꽃이 떨어진다. 잘못 맞으면 눈이 실명된다.


『제비심장』은 노래로 읽힌다. 그 다음날에는. 내일을 생각하기보다 눈을 뜰 수 있는 날이라고 친다. 내일이라는 시간은. 눈을 뜨고 일을 하러 간다. 하루 일당이 얼만데 하는 생각은 들지 않고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내가 아니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 그게 아닌데. 꾸역꾸역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는 걸 직시하고 포기해도 나는 나인데. 『제비심장』을 노래로 읽는 밤에는 내가 내가 되고 싶었다. 먼지와 쇳가루와 불씨가 있는 작업 환경에서 일을 하면서도 집에 돌아와 일을 하는 노동자들.


나는 그렇게 살 수 없다. 일을 하고 돌아와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다. 시와 소설, 노래가 섞인 책을. 문장을 따라가다가 한숨을 쉰다. 숨을 쉬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못된 마음이 든다. 이렇게 살아도 될까. 내가 내 인생을 방기하는 태도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어쩌면 선택이라는 건 강요가 아니었을까. 너는 이렇게 해야 하는 식으로 말이다. 주체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믿고 나를 고통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는 것 같아 참담하다.


시가 있을까.


오늘은 있고 내일은 없다.


시가 없는 내일 대신 시가 있는 오늘만.


한 편의 소설에는 시와 노래가 있었다. 소설로 시로 노래로 읽는 밤이었다. 아침이 오기 전까지 노래는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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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 - 영화가 끝나고 도착한 편지들
조해진.김현 지음 / 미디어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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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모른다. 나인투식스 생활을 할 줄이야. 그러면서 바뀐 건 책을 읽는 횟수. 예전에는 이틀에 한 권꼴로 읽었었는데 요즘엔 일주일에 한 권 정도. 한 권 읽기도 힘든 주가 있기도 하다. 그래도 주말에는 책을 완독하는 걸로 정했다. 유일하게 집에서 안 나갈 수 있는 시간이니까. 할 수만 있다면 집 밖으로 위험한 이불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 지금의 나는 박명수 말대로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어요다.


11월의 첫째 주는 어땠더라. 금목서 향기가 나는 천변을 부지런히 걸었다. 출퇴근을 걸어서 한다. 버스가 오지 않으면 어쩌나. 버스를 못 타면 어쩌나.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 싫어서. 걷는다. 집으로 들어갈 때 워치에 만보를 걸어 축하한다고 찍히는 문구를 보는 게 즐거움이다. 만보라니. 만보를 걸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니. 기준점을 어디에 두냐에 따르지만 이걸로만 보자면 열심히 살고 있다는 실감을 느낄 수 있다. 하루에 만 보 걷기.


소설가 조해진과 시인 김현이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는 유독 오래 읽었다. 책에서 소개한 영화를 한 편씩 보느라. 전부는 보지 못했고 글을 읽다가 마음이 끌리는 영화가 있으면 봤다. 총 세 편의 영화를 보았다. 내 마음이 마음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 마음이 있기나 한 걸까 의문이 들 때. 마음이 있지만 그건 돌이 아닐까 멀리 차버리면 날아갈 정도로 하찮게 느껴질 때.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를 읽으면.


숨겨져 있던 내 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건 사라지지도 날아가지도 않은 채 내가 다시 발견해 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책의 표현대로 영화를 본다는 건 영화 자체만을 보는 게 아니다. 영화를 보던 날의 기억과 함께 한다. 영화를 보러 가야지 계획하고 가는 것도. 영화관 앞을 지나가다 시간이 맞아서 우연히 들어가는 것도. 다 괜찮다. 영화를 소개해 주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혹은 책을 읽다가. 이 영화는 지금의 나에게 필요해 하면서 보는 것도.


전문적인 영화 리뷰 책은 아니다.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는. 그래서 더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가볍게 일상을 이야기하면서 일상에 스며든 어떤 영화 한 편을 서로에게 소개한다. 오늘 영화 한 편을 봤는데 혹시 보셨나요? 과거에 봤던 영화가 떠오르는 하루네요. 하는 식으로 책은 흘러간다. 9시에서 6시까지의 사회적 자아가 왕성하게 활동한 나머지 6시 이후에도 좀처럼 나로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6시 이후의 시간들.


빨리 돌아올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를 읽으면서.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예전에 봤던 영화도 괜찮고 책에서 두 작가가 보면서 감동했던 영화를 한 편씩 보는 것도 좋다. 그래서일까. 책의 뒤에는 '동시 상영 중인 영화 목록'이 친절하게 딸려 있다. 의욕 없음을 넘어서 무기력의 시간을 살고 있는 '사무 생활자', '출퇴근러'인을 위한 약 처방전처럼. 의외로 나 영화 많이 봤네.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를 읽으며 안도했다.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였구나.


문화생활을 누리는 게 아니라 간절하게 문화생활을 하고 싶어 했던 시간에 한 일이라고는 책 읽기와 영화 보기였다. 어떤 때는 개봉 중인 영화를 전부 봤던 한 주가 있었다. 구체적인 할 일이 없어서 봤던 영화를 또 보러 가기도 했다. 책은 특이하게도 보지 않은 영화라도 위화감이 들지 않도록 소개해 준다. 서로가 가진 일상의 안전함과 편안함을 바라는 두 작가의 다정한 마음 때문이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소설가와 시인의 우정은 이어진다. 친한 관계란 무엇일까 고민하는 요즘에 조해진과 김현의 관계를 보고 있자면 글 읽기와 쓰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 반갑고 고맙다.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를 읽다가 본 영화 세 편의 이야기.


《패딩턴》. 사랑스럽고 따뜻한 이 영화를 왜 나는 모르고 있었을까. 지금에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페루에서 영국으로 밀항한 곰이라니. 마멀레이드 잼을 좋아하고 말하는 곰이라니. 인간 가족과 허물없이 살게 되어 다행한 곰의 이야기. 공손하고 예의 바른 패딩턴. 내가 제일로 여기는 가치는 존댓말과 예의 바름이다. 인간도 하지 못하는 일을 말하는 곰 패딩턴은 한다. 먼저 인사를 하고 다른 이의 말을 경청한다.


《생일》. 영화가 나온다고 했을 때. 영화가 개봉했을 때. 차마 볼 수 없으리라고 여겼다. 보지 못하겠다고. 영화를 보는 내내 전도연은 최고다,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려운 영화 설정이고 연기였을 텐데. 전도연은 한다. 그저 하는 게 아닌 감당해낸다. 영화 밖의 현실을. 엄마, 나야. 영화의 마지막 장면들은 배우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들은 모여서 애도를 한다.


《걷기왕》. 멀미 때문은 아니지만 다행히 일하는 곳이 가까워 왕복 한 시간을 걸어서 출퇴근을 한다. 영화의 주인공 만복이는 4살 때부터 시작된 선천성 멀미 증후군 때문에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어서 학교에 간다. 지각은 다반사. 당이 떨어져 담임과 면담할 때 사탕을 폭풍 흡입한다. 상상력이 과도한 담임이 가정 면담을 오고 집으로 걸어가는 만복이를 보고 육상부에 들어갈 것을 제안한다. 뛰지 않아도 좋아. 멈추고 싶으면 멈춰. 영화는 할 수 없음에 대해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해준다.


단 한 장의 책도 읽을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옆으로 누워 영화 한 편을 때리는 것도 좋지. 당분간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의 영화 목록에 줄을 그어가면서 6시 이후의 나를 달래줘야지. 오랜만에 시를 생각했다. 김현은 추신의 자리에 오늘 쓴 시를 조해진에게 보낸다.


주말 이틀은 왜 이틀뿐일까 사흘이거나 나흘이어도 좋을 텐데 빨간색으로 가득 찬 한 장의 달력을 갖고 싶어 내가 울 때 네가 그걸 가지고 온다면 나는 기쁠 거야 일어나 앉아서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을 거야 오로라를 보러 가는 일도 어렵지 않겠지 쓰지 않은 머그컵을 꺼내는 일부터 할 거야


내가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한 시절 영화를 보면서 살아낼 수 있었다. 불 꺼진 상영관에 들어가 앉은 내 곁으로 어제의 기억과 추억이 될 오늘이 찾아온다. 다음에 개봉될 영화의 예고편이 끝나면 영화는 시작된다. 잠깐의 어둠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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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2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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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만 있다면 그게 가능하다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걱정과 두려움 없이 오늘을 즐기며 살고 싶다. 나만 이런가. 모두들 그렇지 않을까. 내일 따위는 없다는 듯, 거침없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막무가내로. 아마 이렇게 살다가는 인성 쓰레기라는 말을 듣지 싶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 성격과 성향의 문제가 있다. 타고난 게 이 모양인데. 누가 침묵하고 있으면 나 때문에 기분이 나쁜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믿기지 않겠지만 내내 이런 걱정을 하며 살았다.


오늘도 당황해서 죄송합니다를 말했고 사실 그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었는데 본능적으로 튀어나왔다. 뭐가 죄송한데? 모르겠다, 나도. 실력을 키우고 돈을 벌어서 지금의 위치보다 높은 곳에 가겠다는 열망을 품지 않는 건 그 자리에 맞는 책임감을 가져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책임감. 하여 학교 다닐 때 반장 선거에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나 하나 돌보지 못하는데 반 전체를 어떻게 통솔하고 책임 지나. 내내 뒷자리에 앉아서 책을 보거나 숙제를 했다.


이혁진의 장편소설 『관리자들』은 책임감을 정의한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현경이 굴착기를 현장 식당 앞으로 몰고 온다. 식당 안에서는 소장과 인부들이 회식을 하고 있다. 거침없이 현경은 굴착기의 액셀을 밟는다. 장면이 바뀌고 식당에서 현경은 목 씨에게 선길이 멧돼지 보초병으로 서게 됐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웬 멧돼지? 공사 밥이 부실하다는 인부들의 원성을 듣자 식당 주인은 난장판이 된 부식 비닐하우스를 보여준다. 멧돼지가 내려와 쑥대밭을 만들어 놓는 바람에 밥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국도 옆 관을 매립하는 공사를 하는 현장이 『관리자들』의 배경이다. 소장을 비롯한 인부들은 공기(공사기간)를 맞추기 위해 겨울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한다. 관리자로 대표되는 소장은 소설에서 비열하게 그려진다. 멧돼지는 없었다. 식당 주인과 짜고 공사비를 뒷돈으로 만들기 위해 부린 수작이었다. 일에 적응하지 못하는 선길은 소장에게 잘 보이고 싶은 반장의 술수로 심야에 공사 현장에서 보초를 서게 된다. 있지도 않은 멧돼지를 잡기 위해.


소설은 일의 부조리함과 불합리함을 다양한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일의 절차와 순서, 원칙은 상관이 없다. 지키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일을 빨리 끝내고 그 사이에 자리를 지키고 빼 먹을 수 있는 돈이 있다면 없으면 만들어 내서라도 자신의 주머니에 넣는다. 주먹구구식으로. 회사에 들어가면 놀란다지 않는가. 이렇게 중요한 일을 대충대충 하는 것에. 하루 종일 전화를 돌리다 보면 아는 게 있다. 궁금해서 물어보면 정작 당사자도 잘 알지 못해 전화기를 돌린다.


혹은 이것도 모르냐는 식의 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침묵. 그래 나 몰라. 몰라서 전화하는데 왜 그걸 모르냐는 질문을 하면 내가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는 건데. 『관리자들』을 읽어가다 보면 깜짝 놀라는 순간이 있다. 소장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거지 같은데 그가 하는 말은 틀리지 않다는 것에. 개소리를 길고도 성의 있게 한다. 읽다 보면 그렇지, 세상 일이라는 게 책임감을 갖는 게 아닌 책임감에서 멀어질수록 이득이 되는 거지. 수긍하게 되는 나를 발견한다.


소설은 우리가 가진 편견을 깨뜨린다. 현경이 굴착기를 밀고 들어가는 소설의 시작은 끝부분으로 이어진다. 왜 회식하는 인부들이 있는 식당으로 굴착기를 몰고 갈 수밖에 없는지 『관리자들』은 점진적으로 이야기한다. 소위 관리자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책임한지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지 보고 들었다. 경험도 했으리라. 교묘하게 책임감을 지우는 자들, 관리자들. 사람들 모이는 곳에 권력이 생기고 정치질이 시작된다.


그게 싫어서 진저리 나서 이렇게 살고 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까지 천천히 걸어와서 씻고 눕는다. 천변을 걷다 보면 금목서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앞에 가는 어떤 이가 향기를 맡기 위해 마스크를 잠깐 벗었다. 모습이 아름다워 울컥했다. 전염병이 돌고 있어도 사람들이 아파도 꽃은 피고 향기를 퍼뜨린다. 여름 지나 가을.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 잠시 서서 숨을 들이켠다. 살아 있어서 맡을 수 있는 향기에 감사하며. 다시 마스크를 쓰고 밤길을 걸어가더라. 나 역시 그렇게 했다.


『관리자들』의 마지막은 얇실한 희망을 피어 올린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에게 함부로 대하는 이들은 어떤 세상을 살고 있을까. 함께 일하고 밥 먹는 이를 궁지에 몰아넣는 그들은 어떤 세상을 살게 될까. 착하고 순수하다는 말은 나쁜 뜻이란다. 좋은 말이 아니라고. 멍청하고 바보 같다는 말을 돌려서 이야기하는 거라고. 문학은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까. 피하고 도망가고 자꾸 숨는 나를. 너만은 나를 이해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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