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테우스 - 토벨라의 심장
디온 메이어 지음, 이승재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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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의 시작은 1984년의 파리.

미국 CIA의 최고 암살 요원 도플링을 뒤쫓는 그림자가 하나 있다. 그러다 둘은 인적 없는 거리에서 맞붙는다. 총이 아닌 칼로. 결국 도플링은 추적자의 손에 죽고 죽어가는 그를 보며 추적자인 흑인은 말한다.

 "어디로 갈 거지? 알고 있나?"

 

  '프로테우스'는 (스릴러 장르에 한정한다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작가, 디온 메이어의 작품이다. 본문만 606페이지에 이르는 두툼한 볼륨을 자랑하는 이 책은 인용한 마지막 대사처럼 어디로 가는 이야기다. 영화로 치자면 로드 무비에 가깝다. 추적자 흑인이 주인공이다. 이름은 토벨라. 냉전 시절, 소련의 최고 암살 요원으로 활약했던 토벨라는 피와 어둠에 물든 모든 과거를 청산하고 새롭게 살기로 결심한다. 이 계기는 전작인 '오리온'에 나와있다. 프로테우스는 굳이 오리온을 읽지 않아도 즐기기엔 무리가 없으나 연대기적 순서를 중시한다면 아무래도 오리온을 먼저 읽고 프로테우스를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여하튼 BMW의 바이크 가게 점원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토벨라는 우연히 한 눈에 반한 여인, 미리암을 만나게 되고 그녀의 아들 파카밀레와 함께 가정을 이루어 진정한 제2의 삶을 가지려 한다. 그를 위해 그는 오래도록 자신의 염원이었던 농장까지 마련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과거의 어둠은 그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다. 옛날에 빚을 졌던 한 인물, 조니 클레인티에스가 납치 당하고 그를 구하고 싶으면 그가 비밀리에 보관하고 있던 하드 디스크를 가져다 주어야 하는데 그 임무를 그가 맡게 된 것이다.

 무려 600KM에 이르는 거리를 72시간 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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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먼 곳을 왜 당신이 가야 하느냐고 미리암이 묻자, 토벨라는 말한다.

 

 "난 이 일을 안 할 수 없어."

 "안 할 수 없다고? 당신은 그럴 의무가 없어. 그냥 안 된다고 대답하면 될 일이잖아. 그냥 그 사람들이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라고. 당신은 빚진 거 없어."

 "난 조니 클레인티에스에게 신세를 졌어." 그가 되풀이 했다.

 "더 이상 그렇게 살 수 없다고 말했잖아. 그 생활을  깨끗이 청산했다고 당신 입으로 말했잖아."

 "맞아. 그렇게 말했어. 내 마음도 그렇고. 그건 달라지지 않았어. 당신 말이 맞아. 싫다고 말할 수 있어. 그건 내 선택이니까. 그리고 난 옳은 선택을 해야 해. 난 정당하고 옳은 일을 해야 돼. 미리암. 날 명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줄 일 말이야. 그건 정말 내리기 힘든 결정이야. 언제나 힘든 결정이라고.(...) 조니 클레인테스에게 진 빚은 남자 대 남자의 명예가 걸려 있는 거야. 명예는 단지 당신과 파카밀레를 돌보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집에 와서 정직한 일, 평화로운 일을 하는 게 다가 아니야. 신세를 졌으면 갚아햐 하는 게 명예야."(P. 55)

 

 명예다. 삶의 두 번째 기회를 져버릴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그 먼 거리를 홀로 갈 수 있도록 만드는 추진력은 바로 명예인 것이다. 보통의 명예는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함이다. 하지만 토벨라의 명예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오로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명예를 중시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리 차일드의 잭 리처를 닮았다. 사실 토벨라는 여러모로 잭 리처와 비슷하다. 거구에다 냉철한 판단력, 그리고 가공할만한 전투력까지 겸비했으니. 흑인 잭 리처, 남아프리카공화국판 잭 리처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사실 지금 토벨라 앞에 놓인 길은 리처만한 능력이 없으면 어려운 길이기도 하다. 그 하드 디스크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최고 기밀 사항이 담겨 있었고 이미 토벨라가 부탁을 받았을 때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보부의 감시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보부는 하드 디스크를 회수하기 위해 토벨라를 붙잡으려 한다. 공항에서 1차 시도를 했으나 토벨라의 전적을 몰랐기에 실패한다. 이제 토벨라는 간선 도로가 그물망처럼 펼쳐진 육로를 택한다.

 무려 600KM에 이르는 거리를 BMW GS 바이크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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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그 길은 과거의 인연과 연결되어 있으니 곧 그 여정이란 토벨라가 버렸던 과거로의 귀환이기도 하다. 제2의 삶을 살기 위해 꼭꼭 봉인해 두었던 기억 속을 달려가는. 즉 '회상'의 여정인 것이다. 알라이다 아스만의 '기억의 공간'이란 책에 따르면 기억과 회상은 다르다고 한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의 일을 재현하는 것이지만 회상은 본질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환기, 재형성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토벨라의 여정은 바로 그런 회상의 여정이다. 그냥 지워버리기만 했었던 과거의 자신과 진정으로 대면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새로운 삶에 걸맞는 정체성을 다시금 형성해 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부활하기 위해 먼저 자신의 몸을 불태워 소멸시켜야 하는 불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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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바로 '프로테우스'라는 제목 자체에서 드러난다. 프로테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이다. 이 신은 특히 자신을 마음대로 변신할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토벨라의 유일한 친구이자 전작 '오리온'의 주인공 판 헤이르던은 토벨라를 '프로테우스'라고 말한다. 토벨라가 '끝이라고 끝! 전투도, 폭력도, 총도 싸움도, 증오도 끝이라고! 증오 같은 건 끝이야, 정말 싫어, 끝!'이라고 말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고 했을 때 한 말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이 세상에 달라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자네야."

 판 헤이르던은 마치 자기 자신의 사활이 걸린 문제처럼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p.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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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우스의 모습

 

 하지만 판 헤이르던의 견해는 전혀 다르다. 그는 인간은 프로그래밍된 존재로 결코 달라질 수 없다고 한다. 진정한 의미의 새출발? 그런 건 없다는 것이다.

 

 난 인간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고 생각지 않아.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우리 안에 가지고 있는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정도야.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는 거지. 왜냐하면 엄연히 존재하는 거니까. (...) 우리는 선이 칭송받고 악이 배척받는 세상에 살고 있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관점을 달리하는 것뿐이야. 천성을 바꿀 수는 없다고."(p. 245)

 

 여기에 대해 토벨라는 '그렇지 않아'하고 반박한다. 판 헤이르던은 성악설에다 비관론자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토벨라는 성선설에다 낙관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둘은 뚜렷이 대비된다. 여기서 우리는 궁금한 것이 하나 생긴다. 디온 메이어는 왜 주인공들을 이렇게 판이하게 설정했을까? 이것은 '오리온'과 '프로테우스' 작품들만 가지고 풀 수 없는 의문이다. 제대로 헤아리려면 보다 외연을 넓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역사와 현실을 가져와야 한다.

 

 개인적으로 '오리온'과 '프로테우스'를 'POST MANDELA NOIR' 라고 부르고 싶다.

 

 만델라의 집권으로 오래도록 남아프리카공화국을 고통 받게 했던 아파르트헤이트는 종식되었다. 만델라의 집권은 특히나 차별받고 있던 대다수 흑인들에게 장밋빛 미래를 가져올 것이라 기대했으나 현실은 전혀 달랐다. 빈부의 격차는 여전했고 사회 부조리의 만연도 변함 없었다. 흑인들이 직접 자신의 손으로 대표를 뽑고 이제 그 흑인 관료들이 백인보다 훨씬 많아지기까지 했으나 대다수 흑인의 삶은 계속 비참하고 불안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손으로 뽑은 흑인들이 예전 아파르트헤이트 때의 백인들과 똑같이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 챙길 뿐 같은 흑인 민중의 이익을 외면해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남아프리카공화국에는 인종차별 대신 극심한 계층 차별이 존재하고 미래가 가로막힌 이들의 증가로 인해 범죄가 만연하고 있다. 만델라의 집권은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들이 오래도록 바랐던 꿈이었지만 그것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변한 것은 없었다. 전혀. 바로 여기에 판 헤이르던은 절망한 것이다. 그의 절망, 결정주의, 비관론은 바로 남아프리카공화국 현실의 반영이다.

 

 거기에 대해 아니라고 말하는 토벨라는 말하자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현실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이다. 즉 좋게 될 가능성과 희망의 긍정이다. 디온 메이어는 바로 그 시선을 '프로테우스'에 투영하고 있는 것이며 정말 토벨라의 말대로 되려면 무엇보다 '프로테우스'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즉 변화의 긍정이다. 그러고 보면 흥미로운 점이 하나 보인다. 그것은 토벨라의 앞길을 가로막는 세력들에 대한 것인데, 그러니까 주로 비밀정보부의 사람들, 그들에게 모두 변화를 거부하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토벨라를 함정에 빠뜨린 멘츠부터 토벨라의 라이벌이라고 할만한 마지부코 대위까지 대부분 현재에만 집착하고 자신과 다른 것,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자신과 다른 것은 오로지 제거의 대상일 뿐이며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 조차 보다 더 가열찬 통제의 필요성만 더욱 부각시킬 뿐이다. 토벨라는 바로 그런 존재들을 돌파하여 자신의 길을 여는 것이다. 또한 바로 그것이 현재도 희망이 불투명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하여 디온 메이어가 제시하는 대안이다. 그 진정한 모습은 바로 이와 같은 대목에서 여실히 나타나 있다.

 

 토벨라 음파이펠리는 자신을 둘러싼 주변 세계로 스며들었다. 검은 하늘에 뜬 환상적인 보름달, 자유주의 대평야, 화려한 달빛에 반짝이며 끝없이 펼쳐진 초원, 여기저기에 어둡게 드리워진 가시나무 그림자, 오토바이 전조등을 따라 눈앞에 나타난 도로. 그는 오토바이를 느끼고, 자기 자신을 느꼈다. 아프리카 대륙이야말로 자신의 자리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거센 강물처럼 넘실거리며 그를 이리저리 이끄는 삶이 느껴졌다.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왜냐하면 강렬하고 완벽한 것일수록 이 세상에선 너무나 덧없고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P. 411 ~ 412)

 

 결별해야 할 것은 아집의 자신이다. 희망과 대안이 없다는 생각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방조가 진정 헤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한다면 행동하라, 빛이 없다면 만들어라!' '프로테우스'의 변화가 지향하고자 하는 모토다. 토벨라를 가장 잘 알고 있는 판 헤이르던은 토벨라를 무엇보다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명예의 중시도 바로 그 때문이다. 삶은 매 순간 선택이며 명예는 오로지 행동으로 지켜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변화의 긍정도 바로 그 행동을 위한 거름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함께 해야 한다. 디온 메이어는 그것을 위해 토벨라를 도와주는 많은 인물들을 집어 넣는다. 그들은 어떤 위험이 있다고 해도 굴하지 않고 오로지 선의로, 형재애로 토벨라를 도와준다. 이런 장면들 때문에 토벨라의 여정은 더욱 구원의 색채를 띤다.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서문에서 디온 메이어는 다른 소설에 비해 더 많은 역량을 쏟아 부었다고 밝혔다. 토벨라가 속한 코사 부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공부했고 이스턴 케이프에 위치한 코사 부족의 심장부를 누비고 다녔다. 뿐만 아니라 몇몇 코사 부족 친구들과 장시간에 걸친 토론을 비롯해 길을 가다 만나는 모든 코사 부족에게 말을 걸었다고 한다. 디온 메이어가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자신이 창조하고자 하는 토벨라가 자신과 전혀 다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토벨라는 디온 메이어에게 전적인 타자였다. 그는 그 전적인 타자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위하여 그만한 노력을 한 것이다. 덕분에 토벨라는 아주 생생한 인물로 살아날 수 있었다. 나는 이런 디온 메이어의 작업이 '프로테우스'의 주제를 단적으로 대변하고 있다고 본다. 들뢰즈에 따르면 무언가에 대한 글쓰기란 어디까지나 '타자-되기'다. 강아지에 대해 쓰면 '강아지-되기'고 노예에 대해 쓰면 '노예-되기'다. 이 말을 수용한다면 타자에 대한 글쓰기란 그 자체가 '프로테우스'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타인을 보다 잘 이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더 변신하는 것이다. 자신의 벽을 기꺼이 허물고 그를 닮아가는 것. 디온 메이어는 스스로 그것을 잘 보여 주었다. 덕분에 '프로테우스'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현실까지 감안하여 판단하건대 더욱 흥미롭게 읽을만한 작품이 되었다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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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5-04-03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바뀔 수도 있고 바뀔 수 없기도 하겠죠 이건 사람마다 다른 듯합니다 그래도 바뀔 수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바뀌게 할 수 없지만 자신이 바뀌는 건 할 수 있겠죠 바뀐다고 하니 장 발장이 생각나네요 장 발장이 바뀐 건 바뀔 기회를 준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군요 토벨라도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신세를 졌다고 하니... 그러고 보니 다른 책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았군요 누구한테나 그런 만남이 찾아올까요

행동하면 안 좋은 것을 바꿀 수 있겠죠 시간이 걸릴지 몰라도... 바라는 일이 이뤄졌다 해도 그게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기도 한 듯해요 하나가 바뀐다고 모두 바뀌는 건 아니니까요


희선

헤르메스 2015-04-17 23:49   좋아요 0 | URL
결국 선택 가능한 길은 두 가지로 귀착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나설 것인가 가만히 있을 것인가? 오리온과 프로테우스의 길인 것이죠. 작가는 우리나라처럼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조국의 상황을 두 작품을 통해 다 헤아려 보려 했던 것 같아요. 모두가 바뀌는 건 어렵지만 그래도 작은 변화라도 일으키면 그것이 희망이 되어 좀 더 오래 버틸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그런 작은 희망이라도 필요한 쪽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