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마음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쓰메 소세키가 47세에 쓴 '마음'은, 4년 전의 '문'으로 다시 돌아간다.

 '마음'에 나오는 선생님(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부부는 '문'에 나오는 주인공 부부와 너무나 닮아있다. '마음'에 등장하는 선생님은 후반에 나오는 자필 편지에서, 원래 자신의 집은 재산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꽤나 재산이 많았으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자신은 재산에 별 관심이 없었기에 재산 관리를 숙부에게 일임했는데, 그 숙부가 아버지 재산 대부분을 횡령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문'의 주인공 역시 그와 똑같은 일을 겪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높은 학력에다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진출할 생각도, 어떠한 사회적 관계도 맺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는 은둔한 채로 고적하게 살아간다. '문'의 주인공도 그랬다. 그의 삶은 조그만 연못 속의 한 마리 잉어처럼 조용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어버린 원인마저 동일했다. 선생님이 그런 삶을 살게 된 것은 한 여인에 대한 사랑에 눈이 먼 나머지 그만 자신의 연적이라 생각했던 K를 자살로 몰아갔기 때문이었다(진실은 온전히 선생님의 책임이라 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선생님은 그의 죽음에 대해 큰 책임을 느낀다.). 그는 그것에 대한 속죄로 이렇게 누구와도 관계 맺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사는 삶을 택했던 것이다. '문'의 주인공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예 친한 친구의 반려자를 빼앗았다. 주인공과 연인의 혹독한 배신을 겪은 친구는 그만 삶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주인공은 친구가 언제 자신에게 복수할 지 몰라서 두려워한다. 그래서 되도록 세상에 드러나지 않도록 조용한 삶을 산다. '마음'과 '문'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마음'은 속죄의 삶을, '문'은 두려움의 삶을 그리고 있다는 것. 이 둘의 차이가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고 한다면 과연 어디에서 연유하고 있는 것일까?



 일단 '마음'이 가지고 있는 구성을 단순하게 말하자면, '마음'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마음'은 첫 장의 제목처럼 '선생님과 나' 두 사람이 중심이다. 하나는 바로 그 '나'가 '선생님'을 만나고 그를 멘토처럼 여기며 같이 지내다 일본 천황이 죽은 뒤에 선생님에게서 그의 삶과 자살하는 이유에 대해서 진실한 고백을 편지로 받는 것을 이뤄져 있다. 다른 하나는 선생님의 편지로만 채워져 있다. 소설은 선생님의 편지와 함께 끝난다. 그것을 읽은 뒤의 '나'는 나오지 않는다. 이런 구성은 바로 전작인 '행인'을 떠오르게 한다. '행인'의 마지막도 이와 같았다. 주인공의 형은 아내를 믿지 못하여 신경쇠약에 걸린다. 결국 형은 요양을 가게 되는데, 동생은 형의 지인에게 형과 동행해줄 것을 특별히 부탁하면서 요양 중의 형 상태가 어떠한지 편지로 전해줄 것을 청한다. 소설의 마지막은 그런 동생의 청에 따라 지인이 형에 대해 쓴 편지로 이뤄져 있다. 그 편지의 끝과 함께 소설도 끝난다. 편지를 읽고 난 뒤의 동생은 역시 나오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마음'의 선생님은 '행인'의 형과 비슷하다. '문'의 부부와 또 하나 차이나는 점이기도 하다. 아내에 관한 것이다. '문'의 부부는 배신에 공모했다. 아내도 함께 배신했고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죄책감과 두려움을 나눠 가진다. '마음'은 다르다. 친구에 대한 배신은 오로지 선생님의 몫이다. 아내는 K의 자살에 얽힌 진짜 사연을 전혀 모른다. 선생님이 아내의 마음에 검은 잉크 얼룩과 같은 상처를 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철저히 비밀에 붙였고, 자신이 사랑이 그런 비극을 낳았기에 사랑을 죄악으로 여긴다. 그리고 아내는 그런 자신의 마음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 말한다.


 "그럼 사모님도 믿지 못하십니까?"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다소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직접적인 대답을 피했다.

 "나는 나 자신조차 믿지 못하네. 말하자면 자신을 믿지 못하니까 남들도 믿을 수 없게 된 거지. 자신을 저주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는 거네."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요."

 "아니,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네. 그렇게 해버린 거지. 그렇게 하고나서 깜짝 놀랐네. 그리고 굉장히 두려워졌지."(p. 49)


 이런 선생님의 모습은 '행인'에 나오는 형과 정말 비슷해 보인다. 사랑해서 함께 했지만 그 어떤 두려움도, 상처도 나눌 수 없는 관계. 결국은 죽을 때까지 오롯이 혼자서 짊어지고 가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은 자의 체념과 고독. 이런 것들이 둘 모두에게서 느껴진다. '그렇게 해버린 거지'란 말은 '행인'의 형에게도 얼마든지 통용될 수 있다. 형도 친동생에게 자신의 아내를 유혹해 달라는 짓을 저질러 버렸던 것이다. 그 부탁을 하고 난 뒤, 아내가 정말 자신을 배신할까 봐, 형은 굉장히 두려워했었다.


 이렇게 보자면, '문'과 '행인' 그리고 '마음' 사이에 어떤 연속적인 경로가 있는 듯도 보인다. 똑같은 체념과 유폐의 삶이었지만, '문'의 주인공은 그래도 함께 나눠 짊어질 수 있는 아내가 있었다. 하지만 '행인'의 형에겐 그런 아내가 없다. 그래서 그는 광기에 빠진다. '마음'의 선생님도 그런 아내가 없다. 그런데 그는 죽음을 선택한다. 그것은 '행인'의 형이 없다고 고백했던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고통의 이유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행인의 형이 광기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음'의 선생님은 그 까닭을 알고 있다. 바로 인간 자체가 연약해서 그렇다는 것을. 


 나는 그저 인간의 죄라는 걸 깊이 느꼈네. 그 느낌이 나를 매달 K의 묘에 가게 하는 거야. 그 느낌이 나에게 장모님을 간호하게 한 거지. 그리고 그 느낌이 아내에게 다정하게 하라고 명령하지. 나는 그 느낌 때문에 길 가는 모르는 사람에게 채찍질당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한 적이 있네. 그런 단계를 하나하나 지나면서 남에게 채찍질당하기 보다는 자신이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 자신이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보다는 자신이 스스로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 하는 수 없이 나는 죽었다 생각하고 살아가기로 결심한 거지.(p. 269)


 선생님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숙부의 배신을 겪었다. 숙부의 배신은, 아버지가 그토록 믿을만한 사람이라 칭찬했던 이의 배신이었기 때문에 특히나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상황이 변하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는 식으로 인간에 대한 불신과 그만큼의 삶 자체의 불안정성을 깊이 깨닫게 해 주었다. 그는 숙부처럼 안 될 자신이 있었다. 그것을 어려운 처지에 있는 K를 힘껏 돕는 것으로 증명하려 했다. 그런데 K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인을 마음에 두고 있으며 언제든 그에게 빼앗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연적을 따돌리려 치졸한 방법을 썼다. 그렇게 K를 배신했다. 그만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숙부와 똑같은 짓을 해버린 것이다. 이런 일을 통해 선생님은 통렬하게 깨달았다. 인간의 마음이란 참으로 연약하다는 것을. 아무리 올곧은 신념으로 굳건히 무장해도, 갈바람에 흩날리는 낙엽만큼이나 쉽사리 속세나 인정에게 흔들리는 게 사람의 마음이었다. 교양은 무엇이며, 학식은 또 무엇인가? 배우고 깨우친 것은 다 어디로 가버렸는가? 자신의 마음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다니. K의 자살은 그것을 깨닫게 했고, 그 때 이미 선생님, 그는 죽은 것이었다.


 마음의 연약함. 그것은 곧 사상의 연약함이요, 정신의 연약함이기도 하다. '마음'에 이르러 그것에 대한 깨달음은 왜 이다지도 통렬해졌는가?

 이유는 역시 사회적인 것에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마음'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장면 때문이다. 소설 초반에 나오는 '나'는 친구의 초대를 받아 해수욕장으로 놀러간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친구가 집에서 급히 불러 가야 하는 바람에 혼자 있게 된다. 나중에 도쿄에 있게 된 나는 선생님과 같이 지내다가 갑자기 아버지가 병에 걸리셨다는 연락을 받고는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친구와 똑같은 일을 겪는 것이다. 그는 아버지를 돌보다 선생님의 자살을 알리는 편지를 받는다. 그렇게 '나'는 선생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한다. 마치 집 때문에 선생님의 세계에 영영 다시 가지 못하는 것 같다. 선생님의 편지에서도 우리는, 선생님과 K 모두가 가족에게 배신과 상처를 받는 모습을 본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선생님이 일본 천황이 죽을 때까지 자살하지 못한 것은 아내 때문이었다. 그렇게 자신이 속한 사회(한없이 최소화된 사회이긴 했지만)에 붙들려 있어, 친구를 죽음으로 내몬 것에 대한 속죄를 결행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경멸과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좌절 그리고 아내가 바라는 것만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하는 죄책감으로 점철된 감옥과 같은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선생님의 자살은 속죄의 결행, 거기에 투영된 자기 신념에 투철하려는 행위로도 해석된다.


 이런 반복은 마치 '마음'에 뚜렷한 하나의 전선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바로 나와 사회의 전선, 대립이다. 나는 나로 있고 싶은데, 사회가 끊임없이 방해하는 모양새를 띄기에 그렇다. 나쓰메 소세키의 주인공들은 바틀비를 자처한다. 허먼 멜빌의 '바틀비'처럼, 수동적이며 고적한 삶을 스스로 선택하여 사회의 동일화 압박에 저항하고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만 있으려는 존재들인 것이다. 이러한 마음은 '마음'과 같은 해에 행해진 '나의 개인주의'라는 소세키의 연설에서 뚜렷하게 집약되어 나타난 바이기도 하다. 그들은 사회가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스스로 이탈하려 한다. 사회와 대립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마음'에선 이런 대립이 '문'과 '행인'보다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다. 더하여 '바틀비'가 되려는 개인과 사회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문'에서 '마음'까지는 이런 연속된 흐름도 눈에 들어온다. '문'에서 사회는 바틀비가 되려는 개인들을 그저 두려움에 젖게 만드는 존재였다. '행인'에서 사회는 그런 개인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음'에 이르면 사회는 그런 개인들을 죽게 만든다. 이렇게 바틀비의 후예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는다. 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는 그렇다면 어떤 사회인가? 두 말할 것도 없이, 조선의 식민지화를 통해 폭력과 탐욕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난 일본 군국주의 사회라고 할 수밖에 없다.


 '마음'에선 이를 뒷받침 하는 아주 선명한 증거가 둘 있다 하나는 선생님을 속죄토록 만드는 이의 이름이 이니셜 K로 표현된다는 것. 둘은 선생님이 자살을 결심한 것이 바로 메이지 천황의 죽음 때문이라는 것이다. K는 두 말할 것도 없이 Korea, 즉 조선을 나타낸다. 조선에 대한 것은 이미 '문'에서 친구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 일어난 만주에서 돌아온다는 것으로 간접적으로 나타난 바 있다. '마음'에 이르러선 뚜렷한 실체가 된 것은 물론이고 선생님에게 직접 죄책감마저 가지게 한다. 이것은 그대로 일본의 식민지 조선에 대한 더욱 가혹해진 처사의 반영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소세키는 2년 전에 일어난 메이지 천황의 죽음을 언급한다. 선생님은 바로 이 죽음을 보고 굴욕적이라 할만큼 질기게 이어온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다. 일본에서 천황의 죽음은 한 시대와의 이별을 뜻한다. 메이지 천황의 죽음은 소세키가 살았고 그의 신념이 되었던 메이지 정신의 죽음인 것이다.


 그런데 여름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메이지 천황이 서거했네. 그 때 나는 메이지의 정신이 천황으로 시작되어 천황으로 끝났다는 생각이 들더군. 메이지의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은 우리가 그 후에 살아남는 건 결국 시대에 뒤처진 것이라는 느낌이 강렬하게 내 가슴을 쳤네.(p. 271)


 선생님은 자살을 결행하기 이전에도 늘 스스로를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와 똑같이 메이지 정신도 일본의 본격적인 제국주의적 행보와 더불어 죽었다. 그 최초의 희생양은 조선이었다. 조선의 식민지화는 메이지 정신이 제국주의로 변질되었다는 뚜렷한 증거였다. K의 죽음은 이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메이지 천황이 죽고, 소세키의 분신과 같은 선생님도 자살을 한다. 메이지 정신은 완전히 소멸했고 희망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이보다 선명한 표현이 또 있을 수 있을까?


 군국주의에 대한 우려는 '마음' 바로 다음 해에 발표한 '점두록'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는 1차 대전을 통해 창궐하는 독일의 군국주의를 보면서 이런 말을 한다.


 개인의 경우에도 싸움에 강하다는 것 자체가 단순한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은 헛되이 다른 사람을 해칠 뿐이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여서, 단순히 승리할 가능성이 많다고 해서 함부로 창과 방패를 드는 것은 주변 국가들에게 폐를 끼칠 뿐이다. 문명을 파괴하는 결과 외에 어떤 효과도 없다. 승리한 국가는 승리한 후에 인간의 삶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명에 대해서 단순히 손해를 보상한다는 수준 이상으로 공헌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적어도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나는 현재의 독일에 이만큼의 사명을 완수할 정신과 실력이 있을지 어떨지에 대해서 불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점두록' 중에서)


 소세키가 일본을 바라보는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같은 글에서 일본의 군국주의를 언급하며 그것이 사상과 전혀 별개의 것이며, 설령 둘 사이에 어떤 연쇄가 발견된다고 해도 그것은 발매금지와 같은 억압으로 인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단적으로 일본의 군국주의는 정신도, 이념도 없는 맹목적인 괴물이라는 것이다. 이런 광기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너나할 것 없이 거기에 휩쓸려 자신의 고유한 내면, 신념을 잃고 있었다. 식민지화는 비단 조선만이 아니라 메이지 정신이 열었던 모든 개화기 인물에게도 똑같이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또는 어떤 대안을 만들어 갈 것인가? '마음'은 그것에 대한 무력함의 고백이었고, 뒤이어 나온 '나의 개인주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이 있다고 한다면 이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내놓은 것이었다. 그 연설에서 소세키는 이런 말을 한다.


 당파심이 없고 옳고 그름이 분명한 그런 주의입니다. 붕당을 만들고 단체를 조직해서 권력과 금력을 위해서 맹목적으로 활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로서의 개인주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면에는 다른 사람이 알 수 없는 고적(孤寂)함도 잠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미 당파가 아닌 이상, 우리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자기 마음대로 갈 뿐이고, 그와 동시에 타인이 가야 할 길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때, 어떤 경우에는 인간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 제각각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고적(孤寂)입니다. ('나의 개인주의' 중에서)


 일본이라는 국가는 하나로 모으려 한다. 하지만 소세키는 그 대열에서 이탈하라고 한다. 휩쓸리지 말고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라고. 그가 다시금 '문'의 세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도 사실 여기에 있었다. '문'에서 '마음'까지 계속 작품에다 누벼온 그 고적한 삶이 지금으로써는 더이상 죄를 짓지 않는, 그리고 지금까지 지은 죄에 대한 속죄로써 최선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사람이 무리를 짓는 것은 불안과 공포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도 변함 없다. 여전히 무리를 짓고, 무리로 나누려는 온갖 무분별한 소문들과 불확실한 정보들이 '나'라는 한 개인 위를 정신없이 횡단한다. 사회가 불안할수록 이런 흐름은 더욱 거세진다. 자신이 아니라 타인에게 기생(그것이 의존이든, 배척이든)하여 내 불안과 공포를 지우려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가 경험했듯이 이런 것들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삶을 더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그렇다면 소세키 말대로, 타인의 감정과 생각에 무분별하게 전염되기 보다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 보다 낫지 않을까?  '사피엔스'를 쓴 유발 하라리는 소화하기엔 너무나 많은 정보들로 넘쳐나는 지금 이 시대에 우리의 구원은 보다 많은 정보의 습득이 아니라 나에게 몰려드는 정보들을 얼마나 최대한 단순화할 수 있느냐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 이 시대에 맞게 소세키의 고적함을 응용한다면 바로 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 '마음'은 바로 그런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어쩌면 그 때나 현재의 일본 그리고 오늘의 유럽이나 IS에서 볼 수 있듯이, 시대의 비극을 막거나 지연시킬 지도 모를 삶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인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해서 한 결혼도 행복하지 않았어.' 예전에 방영한 드라마 '불새'에서 이서진이 분한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고 보니 유하 감독의 데뷔작 영화의 제목은 '결혼은 미친 짓이다'였다. 소세키도 '문'에 나온 주인공 부부를 통해 충분히 보여주었다. 사랑 때문에 남자는 친구를, 여자는 애인을 배신하면서까지 결혼했지만 행복하지 않았고 자신이 속한 사회로부터 격리되었을 뿐만아니라 배신당한 사내가 언제 보복해 올지 몰라 불안을 그림자처럼 달고 살아야 했던 것이다. 그런 결혼은 정말 유하의 제목처럼 미친 짓이었다는 것을 '문'은 여실히 알게 해 주었다. 

 이후에 나온 '행인'은 그 정도를 더 심하게 몰고 간다. '행인'의 주인공은 지로. 아직 결혼하지 않은 그는 소설 속에서 그의 형 부부를 비롯해 많은 부부를 만난다. 마치 이 부부에서 저 부부로 여행하는 로드무비 같다. 그래서 제목도 쏘다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 행인(行人)인가 보다. 부부가 주역(主役)이었던 전작 '문'만큼 단촐한 제목이다. 문은 열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그 소설에서 문은 주인공 소스케에게 열리지 않았다. 종교에 귀의까지 하면서 구원을 찾았건만 그가 바란 구원은 끝까지 도래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행인은 머무르기 위해 걷는 존재이지만, 이 소설에서 머무름은 허락되지 않는다. 똑같이, 지로는 참 많은 부부를 만나지만 다들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한 부부는 아이가 없어 허전하고, 다른 한 부부는 남편의 마음에 들려고 너무 애쓴 나머지 그것이 과도한 심적 부담이 되어 미쳐 버린다. 그리고 또 한 부부는 사랑할수록 고독과 불신만 깊어가 결국 죽음을 원하게 된다. 소설은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을 살짝 인용하고 있는데, 지로의 여정도 그와 같다. 단테가 내려갈수록 더 끔찍한 지옥을 보게 되었듯이, 지로 또한 갈수록 사랑이 지옥이 되는 광경을 목도하는 것이다. '행인'은 그런 소설이다. 사랑을 해도 고독은 지워지지 않고, 오히려 사랑은 남도 가두고 자신도 가두는 굴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느끼게 하는 소설.



 알려진 대로, '행인'은 소세키의 자전적 체험이 바탕 되었다. 그는 형수를 흠모했고, 소설에서 형이 지로에게 형수를 유혹해달라고 하는 부탁은 소세키의 바람이 투영된 것이라는 말도 있다. 그리고 그의 결혼 역시 행복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영국 유학 시절, 아내가 있어도 고독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절절히 체험했다. 그래서 소세키는 영국 유학에서 돌아온 뒤,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너와 나는.

 무엇이든 내키는 대로 해,

 우리는 일치할 수가 없어, 너와 나는.

 너는 자신의 세계에 살고 있어 행복하다,

 나도 자신의 세계에 만족해.


  아무리 사랑해도 그녀는 결코 내가 될 수 없다. 고독의 운명은 무엇으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결혼은 그에게 이런 것을 남겼다. 그것은 소설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표현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는 다리는 없다.' 왜? 소세키는 대답한다. '자신에게 성실하지 못한 자는 결코 타인에게도 성실할 수 없기 때문이다'(p. 375)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의 마지막 장 제목은 '번뇌'다. 사랑은 결국 번뇌에 이른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번뇌는 이제 광기가 되어 간다. 형은 차츰 1장에 나왔던, 사랑을 아무리 해도 상대에게 이를 수 없어 결국 미쳐버린 여인처럼 되어간다. 그는 말한다.


 죽거나 미치거나, 아니면 종교에 입문하거나, 내 앞에는 이 세 가지 길 밖에는 없네.(...) 하지만 종교에는 아무래도 입문할 수 없을 것 같네. 죽는 것도 미련에 막힐 것 같고, 그렇다면 미치광이지. 그런데 미래의 나는 그만두고, 현재의 나는 제정신일까? 진작에 어떻게 된 게 아닐까? 난 무서워 견딜 수가 없네.(p. 381)


 '행인'은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타인에게 가 닿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끝까지 답사한다. 그러나 종착지는 없다. 우리는 늘 불안하고 고뇌할 뿐이다. 형수는 독신인 지로를 부러워한다.


 그녀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울적한 어투로 "남자는 참 홀가분하네요." 하고 말했다.

 "전혀 홀가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싫어지면 어디든지 멋대로 날아갈 수 있잖아요." (p. 297)


 결국 사랑할수록 깊어지는 불안에서 벗어나는 길은, 진정 자유롭게 되는 길은 사랑을 그치는 것밖에는 없다. 자신에게 성실하다는 것의 의미도 바로 그것이 아닐까? 타인을 통한 고독이 아니라 자신의 고독에 충실해지는 것. 유폐된 자신의 내면으로 계속 침잠하는 것. 수영장의 수면 아래로 고요히 가라앉는 것처럼. 문득 하루키의 소설들이 생각난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태엽감는 새', '1Q84',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르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그리고 '여자 없는 남자들'. 온갖 홀로의 내면 속으로 유폐되는 소설들이. 하루키는 건강한 고독이 타인과의 연대도 강고히 할 것이라 내다봤다. 쓰쿠르가 설계했던 역(驛)처럼. 소세키가 추구하는 것도 이것이 아닐까? 형의 입을 통해 말했던 향엄 스님이 보여주듯이.


 "이제 포기했다. 앞으로는 그저 죽이나 먹으며 살자."

 이렇게 말한 스님은 그 후 선(禪)의 'ㅅ'자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네. 선(善)도 버리고 악도 버리고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의 모습도 버리고 모든 것을 내던지고 말았지.(p. 408)


 모든 것을 버려라. 소세키는 되뇐다. 가 닿으려는 마음을 멈춰라. 행인이 되어라. 행인은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다. 행인은 어디에 머물기 위해 걷는 존재가 아니라, 오로지 걷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그 과정에 온전히 충실해질 때, 그가 있을 목적지는 비로소 열린다. 아니, 스스로 정한다. 더이상 그는 어디에 가 깃들지 않는다. 그 자신이 깊은  뿌리가 되고, 넓은 가지가 되어 다른 이들을 깃들게 할 것이다. '행인'은 이것을 보여주는 여정이다. 그렇게 소세키는 백 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하루키와 만난다. 고독의 참된 힘을 아는 소중한 동지로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9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홉수라는 말도 있다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아홉번째 소설 '문'은 그의 소설 중 가장 어두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갱도라는 더 극한의 암울한 공간을 배경으로 한 '갱부'도 있고 '문'에 나오는 부부의 후일담이라고도 볼 수 있는 '마음'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역시 가장 어두운 이야기는 '문'인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엔 미래가 없다. 그저 낮고 조용하고 암울하면서 추운 현재만이 내내 고인 물처럼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소스케와 오요네 부부에게 바깥으로 나가는 문은 결코 열리지 않는다. 열리지 않고, 열 수도 없는 문 앞에서의 조용한 체념과 절망. 이것이 소설 '문'이 가진 세계다.




 나쓰메 소세키는 왜 이런 소설을 썼던 것일까? 읽다보면 들지 않을 수 없는 의문이다. '문'이 신문에 연재되었던 것은 1910년. 우리는 이 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고 있다. 바로 조선이 일본에게 강제 병합 되었던 것이다.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이 그야말로 만천하에 본격적으로 드러났던 시기. 나쓰메 소세키는 한 때의 정욕에 눈이 멀어 친한 친구를 배신한 까닭에 내내 한 겨울 연못 속의 잉어들만큼이나 낮고 조용하며 고립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부부의 이야기를 썼다. 일본이 자꾸만 밖으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할 때, 거꾸로 안으로, 내부로 계속해서 침잠해 가는 삶을 말이다.


 그들이 처음부터 일반 사회에 흥미를 잃어서가 아니었다. 사회가 그들 둘 만을 떼어내고 차갑게 등을 돌린 결과일 뿐이었다. 외부를 향해 성장할 여지를 발견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은 내부를 향해 깊이 뻗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생활은 넓이를 잃음과 동시에 깊이를 얻었다. 그들은 6년간 세상과 산만한 교섭을 찾지 않은 대신 그 6년의 세월에 걸쳐 서로의 가슴에 파고들었다.(p. 169)


 왜 이런 삶일까? 그들의 성향이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적어도 소스케만은 지금과 아주 달랐다. 6년 전의 소스케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자신의 앞길을 착실히 개척해 나가는 존재였다. 그를 아는 이마다 과거의 그는 더없이 자기 주장이 강하고 활달했다고 입을 모은다. 소스케에겐 고로쿠란 동생이 있는데 그는 자기가 원하는 바를 솔직히 말하는 성격이다. 소스케는 그런 고로쿠를 보며 옛날에 내가 저랬었지 생각한다. 그런 그였다. 그런데 지금은 해야 할 일을 미루고, 하고 싶은 말도 우물쭈물 삼키며 한없이 수동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급변이 아닐 수 없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 물론 이유가 있다.

 지금의 아내 오요네는 원래 야스이란 친구의 여자였다. 야스이를 만나러 갔던 소스케가 그만 오요네에게 반해 야스이를 배신하고 빼앗았던 것이다. 야스이는 그로 인해 커다란 상처를 입고 그 때까지의 삶에서 완전히 일탈에 이제는 일본을 떠나 먼 이국의 땅을 방황하고 있다.


 그 이후로 두 사람은 야스이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걸 피했다. 굳이 떠올리려고도 하지 않았다. 야스이가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고 병에 걸리게 하고 어쩌면 만주로 내몬 죄에 대해 아무런 회한의 고통을 거듭한다고 해도 그들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p. 210)


 당시만 해도 그런 배신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친구도 가족도. 숙부는 패륜을 저질렀다고 말하고 하나 뿐인 동생과는 소원해졌다. 고향인 도쿄로 올라올 수 없었기에 아버지가 남긴 유산도 허망하게 잃어버렸다. 욕망에 충실한 것에 대해 그가 지불해야 할 대가는 아주 컸던 것이다. 사회와 미래 모두를 상실하고 말았다. 왜 미래마저 상실한 것이냐고? 아이가 없기 때문이다. 임신이 불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벌써 세 번이나 자식을 가졌었다. 결혼한 지 6년 동안 그들은 히로시마, 후쿠오카 그리고 도쿄 그렇게 세 번이나 거처를 옮겼다.(나중에 따로 말하겠지만 이 지명들은 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정말 중요하다.) 그 때마다 그들은 자식을 가졌다. 하지만 히로시마에선 임신 다섯 달만에 유산되었고 후쿠오카에서는 미숙아로 태어나 오래 살지 못했다. 그리고 도쿄에서는 임신 중에 오요네가 그만 이끼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태아의 목에 탯줄이 감겨 죽은 채로 태어나고 말았다. 그들이 거하는 곳 어디서도 그들은 미래를 낳을 수 없었다. 그러니 미래도 잃어버렸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내일은 없다. 봄도 오지 않는다.


 가혹하다. 소세키는 왜 이들을 이토록 혹독하게 대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아무래도 1910년에 일어난 조선의 강제 병합 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소설 초반에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이 나오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그 소식을 가져오는 것은 고로쿠다. 동생 고로쿠의 첫 등장과 동시에 그 이야기도 나오는 것이다. 고로쿠는 한 겨울의 동굴 속 너구리처럼 사는 소스케에게 일종의 곤경을 가져오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대로 영영 자신의 영역에만 머물며 살아가려는 소스케를 자꾸만 바깥으로 내모는 매운 연기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소설 초반, 그는 동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스스로 원하지 않는 관계를 맺고 움직여야 한다. 고로케는 소스케와 오요네만이 거하는 조용한 조각배를 뒤흔드는 파도다. 그런 고로쿠가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을 들고 소스케의 집으로 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한다. 재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자신은 조선과 만주로 갈 것이라고. 그러다 후반에 가서 소스케는 야스이가 자기 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기가 세들어 살고 있는 집 주인이 알고 보니 야스이의 친구와 아는 사이였던 것이다. 그 친구가 야스이와 함께 만주에서 여기로 온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소스케는 행여나 야스이와 만나게 될까봐 엄청 두려워한다. 병까지 얻게 될 정도로 심하게. 바로 그 야스이가 만주에 있는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된 곳. 그를 암살한 안중근이 있던 그 곳에.


 이런 접점으로 소스케와 오요네를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된다.

 사실 소스케와 오요네는 일본과 식민지가 된 조선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것을 뒷받침 하는 근거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소스케가 오요네와 맺어지는 과정을 야스이에게서 빼앗은 것으로 그렸다는 것. 이것은 그대로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식민지로 만든 것과 닮아있다. 이렇게 보자면 오요네는 조선의 독립 주권의 상징이며 야스이는 그 주권을 상실한 조선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소스케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일본 제국주의를 나타낸다.


 소세키가 이것을 염두에 두었음은 바로 두 번째의 근거에서 밝혀진다.

 바로 야스이를 파멸로 내몰고 난 뒤, 소스케와 오요네가 같이 살았던 곳이다. 앞에서 말했듯, 거기는 히로시마, 후쿠오카 그리고 도쿄다. 이 지명과 순서가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다. 이 세 지명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일본 제국주의가 비롯되고 정착되며 완성된 곳으로 그러니까 일본 제국주의의 궤적을 그린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제국주의가 되기까지 두 가지가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하나는 청일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러일전쟁이다. 일본은 두 전쟁에서 승리했기에 제국주의를 완성할 수 있었다. 히로시마와 후쿠오카가 바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나타낸다. 히로시마는 청일전쟁 당시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대본영이 있었던 곳이고 후쿠오카는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인 쓰시마 해전과 가까운 도시다. 이렇게 히로시마와 후쿠오카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상징하는 도시인 것이다. 소스케는 바로 그 곳들을 거쳐 현재 제국주의의 수도인 도쿄에 이르렀다. 일본 제국주의가 걸어온 경로 그대로.


 그러므로 소스케 부부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모든 도시에서 그들은 아이를 잉태하나 하나는 유산되고 다른 하나는 미숙아로 태어나 오래 살지 못했으며 마지막엔 사산했다. 아마도 이 아이들은 일본의 근대화를 열어젖혔던 메이지 유신에서 천명했던 메이지 정신을 의미하리라 본다. 편협한 제국이 아닌 공존과 조화의 세계를 꿈꾸었던 정신말이다. 이런 식으로 소세키는 지금의 일본은 원래의 정신을 배반했으며 결국 지금 일본 제국주의가 부르짓는 밝은 미래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며 오직 폭력과 고통으로 가득한 현재만이 영원히 되풀이 될 것이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즉 지금 소스케 부부의 현재는 장차 다가올 일본 제국주의의 미래이며 소세키의 예언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어두운 이야기가 되고 말았으리라. 소세키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어두운 미래였기에.

 여기에 대해선 소설의 여러 군데서 발견된다. 도쿄에서 소세키 부부가 머무는 곳은 골목의 가장 후미진 곳으로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곳이며 게다가 집 바로 앞에는 위태롭게 보이는 절벽마저 있다. 오래도록 그 지역에 살았다는 노인은 예전엔 거기가 대나무 밭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도 자라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부부, 소생이 불허된 공간. 더하여 거기는 온기가 거의 없다. 유일하게 따스했던 방은 같이 살게 된 동생 고로쿠가 차지한다. 사회에서도, 자연에서도 버림받은 그들. 그들에겐 오로지 상대방 밖에는 없었다.

  

 소스케 부부는 세상의 햇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추위에 서로 껴안아 몸을 녹이는 식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다. 어려울 때에는 언제든지 요오네가 소스케에게,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하고 말했다. 소스케는 오요네에게,

 "참아야지 뭐." 하고 말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체념이나 인내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으나 미래나 희망의 그림자는 거의 비치지 않는 듯이 보였다. 그들은 과거의 일을 그리 자주 말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약속이나 한 듯이 피하는 분위기조차 있었다. 오요네가 때로,

 "머지않아 또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그렇게 나쁜 일만 계속되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하고 남편을 위로하듯이 말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면 그것이 소스케에게는 진심 어린 아내의 입을 빌려 자신을 농락하는 운명의 독설처럼 느껴졌다. 소스케는 그런 경우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래도 눈치를 채지 못한 오요네가 뭔가 말을 계속하면,

 "우리는 그런 좋은 일을 기대할 권리가 없는 사람들 아닐까?" 하는 말을 과감히 내뱉는다. (...) 그들은 자업자득으로 자신들의 미래를 덧칠해버렸다. 그러므로 자신들이 걷고 있는 앞길에서는 화려한 색채를 볼 일이 없을 거라며 체념하고 오직 둘이서 손을 잡고 나아갈 생각이었다.(p. 51)


 하지만 상황은 점점 그것만으로는 견디기 힘들게 되어간다. 고로쿠 문제가 일어나고 요오네는 갑자기 앓게 되며 그리고 드디어 소스케 부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야스이가 찾아오는 것이다. 만주에서. 이것은 앞으로의 일본이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세키의 경고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힘들게 될 것이라는 저주다. 아니나 다를까 요오네만으로 견디기 힘들어진 소스케는 결국 신앙에 기댈 생각을 한다. 실제 소세키의 슈젠사 요양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절에서의 이야기는 천황에 대한 신앙으로 일본 국민의 파시즘 무장을 획책하던 일본 제국주의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곳에서조차 구원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두드려도 소용없다. 혼자 열고 들어오너라." 하는 목소리가 들렸을 뿐이다. 그(소스케)는 어떻게 해야 이 문의 빗장을 열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수단과 방법을 머릿속에서 분명히 마련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열 힘은 조금도 키울 수 없었다. 따라서 자신이 서 있는 장소는 이 문제를 생각하기 이전과 손톱만큼도 달라지지 않았다. (p. 252)


 마침내 소스케는 아무 결실도 없이 절을 나서게 된다. 그를 배웅하는 큰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도쿄는 아직도 춥겠지요?"하고 큰스님이 말했다. "조금이라도 실마리를 찾았다면 돌아가고 나서도 좀 편할 텐데, 애석한 일이군요." (p. 253)


 제국주의의 중심 도쿄는 여전히 춥다. 구원의 온기는 어디서도 소스케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온기는 자신의 변화에서 발화되는 것인데 소스케는 스스로 변하려는 노력은 없이 자꾸만 외부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 완고함, 타자를 인정하지 않는 제국주의의 편협함을 닮은 그 모습이 정말은 자신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지도 모른다.


 '문'은 이런 이야기였다. 조선 강제 병합에서 한껏 드러나버린 일본의 민낯. 그것을 낱낱이 봐버린 소세키의 우려와 경고가 짙게 투영된 소설이었다. 물론 지금의 우리는 너무나 잘 알듯이 소세키의 우려와 경고는 그대로 일본의 현실이 되어버렸다. 소스케도, 일본도 자신이 나오는 문만 있었을뿐, 타인을 맞이하는 문은 없었다. 공존을 위해 자신을 먼저 바꾸려는 태도는 없었다. 그런 소스케, 일본이 걷는 길은 불안과 고독의 연속이었지만, 내내 추위에 떠는 삶이었지만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저 그런 불안과 외로움 그리고 추위를 피하기에 급급했을 뿐.


 그의 머리를 스쳐 가려던 비구름은 간신히 머리에 닿지 않고 지나간 듯했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불안이 앞으로도 몇 번이고 여러 가지 수준으로 되풀이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어딘가에 있었다. 그것을 되풀이하게 하는 것은 하늘의 일이다. 그것을 피해다니느 것은 소스케의 일이다.(p. 260 ~ 261)


 하지만 피하는 것에도 한계는 있다. 천라지망이라는 말도 있듯이 결국은 하늘의 벌을 받게 되었다. 꼭꼭 닫혀있었던 일본의 문은 그 문을 아예 날려버리는 거대한 화염을 맞게 되었다. 제국주의를 향한 침략의 발톱이 처음으로 드러났던 히로시마가 일본 패망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던 원폭을 맞게 되었던 것은 어쩌면 운명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만한 경험을 했으면서도 현재의 일본은 여전히 그 때의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 '문'의 마지막 장면에서 소스케는 봄이 왔다는 오요네의 말에 이렇게 대꾸한다.


 "하지만 또 금방 겨울이 오겠지."(p. 264)


 이것이 우리가 오늘도 소세키의 '문'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소설에서 소스케 부부가 어떤 삶을 보냈는 지를 뇌리에 단단히 새겨두어야 하는 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12-10 0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산시로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쓰메 소세키가 신문에 연재한 소설들, 그러니까 첫 '우미인초'부터 '산시로'까지는 왜 하나같이 어디론가 떠나고 있는 것에서 시작되는걸까? '우미인초'는 교토의 산을 올라가는 중이고 '갱부'의 소년은 자신이 죽을 곳을 찾아 걸어가는 중이며 '산시로'는 기차를 타고 도쿄로 가는 중이다. 단적으로 이 모든 이들은 길을 찾아 움직이고 있다. 그것도 타의가 아니라 자의로. 안정을 구가할 수 있는 곳에서 뛰쳐나와 불확실한 상황 속에 자신을 내던지고 있는 것이다. 소세키의 소설들은 그의 문학론을 세상에 송출하기 위한 방법이었고 그런 면에서 신문 연재란 자신의 문학론을 가장 대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통로였다. 그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던 그이니만큼 연재소설엔 각오가 남달랐을 것으로 보이며 그것을 감안한다면 분명 여기에도 뭔가 뜻이 있을 듯 하다.


 어쩌면 이것은 당대 일본 상황에 대한 비유일 수 있다. 때는 러일전쟁의 승리로 한껏 부풀었던 희망의 거품이 모조리 꺼지고 지식인들 사이에선 현재 일본에 대한 환멸과 우울이 거세어지던 시대로 골목 어귀를 돌다가 문득 길을 잃고 말았다는 자각으로 당황하며 저 하늘 멀리 사위어가는 황혼녁의 태양을 처연하게 바라보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소세키 역시 비슷한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던 터라 시대 현실의 반영으로써 그렇게 시작했을 것이란 가정도 그리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여기엔 보다 더 근본적 이유가 있어 보인다.  바로 개인적 체험에서 나온 결과라는 측면이다.

 그는 유년 시절에 친부모와 헤어져 양부모 밑에서 살아야 했다. 그러다 또 양부모에게 파양을 당하여 다시 친가로 돌아와야 했다. 흔히 말하듯 부모란 자식에게 둥지와 같은 존재다. 둥지가 제 발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지 않듯이 부모도 자식에겐 언제까지나 제자리에 한결같은 모습으로 있는 존재였다. 부모에 대한 그러한 생각 때문에 우리들은 어쩌면 사랑이나 진리처럼 세상에 절대로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인 지도 모른다. 그러니 만일 부모가 그런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변하지 않는 가치나 세상에 대한 믿음도 무너지고 말리라. 나쓰메 소세키는 두 번이나 그런 경우를 당했다. 자신이 안정적이라 믿었던 세상이 여지없이 붕괴해 버리는 것을 두 번 경험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어찌 쉽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랬다. 소세키에겐 세상의 그 무엇도 절대적이지 않았다.  '같은 강물에 두 번 손을 담글 수 없다'고 말했던 헤라클레이토스처럼 모든 것은 그저 우연적이고 임시적인 것일 뿐이었다. 진실로 나쓰메 소세키는 그런 눈으로 모든 것을 보았다.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고 해도 이 여름이 곧 끝나 겨울이 올 것을 내다봤으며 혹한의 겨울에 처했어도 봄이 오리라는 것을 믿었다. 일본 사회도, 일본이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던 서양의 근대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은 강물이 흐르다 어쩌다 닿게 된 바위였고 새가 어쩌다 앉게 된 가지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이 소세키에게 도락의 여유를 주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아니, 도락에 대한 신념을 주었다고 해야 하리라.

 '우미인초'의 리뷰에서도 말했듯이 직업과 달리 도락은 단적으로 거기에 너무 빠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추종이 아니라 멀찍이 떨어져서 관찰자의 시선으로 보는 것. 누군가 금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금시계의 가치가 무엇인지 스스로 가늠하는 것. 그것이 바로 도락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우미인초'부터 그는 내내 이 '도락'을 강조해왔다. 전혀 다른 세계를 담고 있는 '갱부'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세 작품 모두 '떠난다'로 시작하는 것엔 이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변하거나 허물어지지 않는 절대적인 현재는 없으며 모든 것은 그저 어쩌다 깃든 임시적인 거처에 불과할 뿐이니 맹종 보다는 먼저 자신의 시선으로 관찰을 하라는 뜻을 향한 출발이라는.

 그렇기에 세 소설 모두에서 소세키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인물들이 가장 많이 하는 행위도 계속 뭔가를 보는 일이리라.



 세번째 연재작 '산시로'는 소세키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다.

 그만큼 인기를 얻었다는 뜻으로 일례로 이 소설의 무대로 지금의 동경대가 나오는데 거기 실제로 있는 연못에서 소설의 주인공 산시로는 흠모하는 여인을 처음 만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연못은 현재 '산시로의 연못'이라고 불릴 정도다. 그거야 어쨌든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우미인초'부터 내내 지속된 직업과 도락의 싸움이 보다 전면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확실히 '산시로'엔 도락과 직업 사이의 선명한 전선이 존재한다. 한편에는 노노미야와 히로타 선생 같은 속세의 명성이나 돈을 쫓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갈뿐인 '도락'이 있고 다른 쪽엔 그런 자를 패배시키고 길들이려 드는 '세계'가 있다. 산시로는 그 틈에 끼어 있는데 그것은 그가 흠모하는 여인인 미네코도 마찬가지다.


 여인이 상징으로서의 어떤 지향점으로써가 아니라 주인공과 똑같은 참여자로서 방황하고 갈등하는 존재로 나타나는 점이 '산시로'의 이채로운 점이라 할 만하다. 말하자면 주인공과 동행하는 느낌이 강하다. 이런 면에서 '산시로'는 후에 나올 소설인 '문'에서의 세상으로부터의 소외와 두려움을 공유하는 '부부'를 강력하게 예고하고 있다.


 아무튼 우리는 왜 하필이면 '산시로'에서 도락과 직업의 대립이 전면화 되었는지 궁금할 수 있는데 그 까닭은 '산시로' 바로 전에 나온 단편인 '문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왜 그 단편을 가져오는가 하면 바로 '산시로'를 쓰던 당시의 소세키를 여기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소세키는 세속적 인물인 미에기치로부터 문조를 하나 얻어 키운다. 그는 현재 소설 쓰기의 난항을 겪고 있는 참인데 그 고민 때문에 쓰기에 몰입할 수 없어  '찌요찌요'하고 우는 문조의 울음소리를 많이 듣게 된다. 그 때마다 그는 문조에게 가서 모이도 주고 물도 갈아준다. 그리고 꿋꿋이 버텨가는 작은 문조('문조는 화려한 하나의 발에 자신의 몸을 의지한 채, 묵묵히 새장 안을 지키고 있었다.' - '문조' 중에서)를 보며 감탄한다. 그 생명의 독립적인 면모 때문에 소세키는 세상의 조건에 따라 혼인을 시키는 게 옳지 않다는 생각까지 한다(이것은 산시로에서의 미네코 결혼과 관계가 있다. 거기서 미네코는 산시로 앞에서 '내 죄 내가 알고 있사오며, 내 죄 항상 눈 앞에 아른거립니다'(p. 330)'라는 뜻모를 말을 한다. 이 고백은 바로 문조에서의 소세키 깨달음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문조는 소세키 말고는 아무도 착실하게 신경 써 주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죽게된다. 다시 말해 외로이 자신의 길을 고집하는 문조가 무심한 세상에 의해 죽게된 것과 같았다. 그는 미에기치에게 마치 세상을 원망하듯 이렇게 가족을 성토하는 엽서를 쓴다.


 '집안 식구들이 먹이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문조가 죽어버렸네. 내가 부탁도 하지 않은 물건을 새장 안에 집어넣지를 않나. 더욱이 먹이를 주어야 하는 의무도 이행하지 않은 것은 너무나 잔혹하지 않은가.'


 마지막에 미에기치에게서 답장이 오는데 소세키는 '문조가 불쌍하게 되었습니다.'란 문구만 있을 뿐, 집안 식구들이 나쁘다거나 잔혹하다는 말은 일체 없었다고 밝힌다.


 문조의 죽음은 하찮게 되었다. 그만큼 세상은 비정해 버렸다. 그렇게 한 개인의 삶은 무가치해지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물론 소세키는 그 답을 알고 있다. 서양의 근대화를 추종한 결과 일본에 직업인이 너무 많아진 탓이다. 자기만 생각하는 이들이 양산된 까닭이다. 하여 그는 보다 전선을 선명히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서 기꺼이 세상의 비주류가 되어 걸어도 불안하지 않으리라는 믿음도 주려 했다. '문조'처럼.


 물론 문조는 죽는다. 하지만 죽는다고 해서 패배는 아니다. 그것은 주류 세상의 시각일 뿐이다. 소세키에겐 다르다. 그는 '우미인초' 마지막에서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죽음을 잊은 자는 사치하게 된다.(...) 아무리 춤을 추든, 아무리 미치든, 아무리 장난을 치든 살아있는 데서 벗어날 염려는 결코 없다고 생각한다. 사치는 심해지고 대담해진다. 대담함은 도의를 유린하며 마구 날뛴다. 만인은 삶과 죽음이라는 큰 문제에서 출발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며 말하기를 죽음을 버린다고 한다. 삶을 좋아한다고 한다. 여기서 만인은 삶을 향해 나간다. 단 만인은 죽음을 버린다는 데서 일치하기 때문에 죽음을 버려야 할 필요조건인 도의를 서로 지키도록 묵계했다. 하지만 만인은 나날이 삶을 향해 나가기 때문에 나날이 죽음을 등지고 멀어지기 때문에 마구 날뛰며 추호도 삶 안에서 벗어날 염려가 없다고 자신하기 때문에 도의가 필요하지 않게 된다.

 도의에 중점을 두지 않은 만인은 도의를 희생으로 삼아 온갖 희극을 행하며 의기양양하게 군다. 장난친다. 떠든다. 조롱한다. 무시한다.(...) 이 쾌락은 도의를 희생으로 삼아야 향유할 수 있기 때문에, 희극의 진보는 멈출 줄을 모르고 도의 관념은 나날이 희박해진다.('우미인초' p. 434)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는 근대의 성립이 죽음을 점차 격리하고 망각하는 것과 동시에 이뤄졌으며 네델란드의 철학자 요한 반 퍼슨은 죽음의 망각이 현세적 삶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낳았고 그만큼 삶을 궁핍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나쓰메 소세키는 이들보다 훨씬 전에 근대에 들어와 더 많이 망각되는 죽음이 가져올 문제점에 대해 이처럼 정확히 피력했다. 그에게 죽음은 긍정의 대상이다. '메멘토 모리'가 강했던 중세에 기사나 귀족들이 명예를 중시했던 것처럼 보다 더 스스로를 고귀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인으로 생각한다. 적어도 사람으로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게끔 만드는 울타리로 여긴다. 그는 죽음이 망각되면 사람들이 보다 현실 중심적이 되어 자신의 욕망을 이기적으로 채우느라 사람이 근본적으로 지켜야 할 도의조차 무너질 것이라 보았다. 그런 그의 예측이 얼마나 정확했는 지는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는 바다. 지금의 정부는 물질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낳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절반이 약간 넘는 유권자들은 '20만원의 연금만 받을 수 있다면', '아파트 가격만 올릴 수 있다면' 하는 생각으로 도의 같은 것은 쉽게 무시해 버렸다. 그 결과 우리는 곳곳에서 불법이 승리하고 편법이 활개 치는 세상을 목도하고 있는 참이다. 우리는 그야말로 산시로가 가장 마지막에 한 말 그대로 '스트레이 십'이 되어 버렸다.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는 길 잃은 양. 정확히 우리 모습이지 않은가.


 하지만 '산시로'가 그런 우울의 초상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여기에 희망을 암호처럼 수놓듯 문조와 같은 자들도 새겨넣었다. 그것이 바로 노노미야와 히로타 선생이다. 그들은 문조가 그랬듯이 세상이 자신의 길을 전혀 알아주지 않아도 타협하지 않으며 묵묵히 걸어가는 존재들이다. 도락의 신념으로 무장한 그들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에 불안하지도, 조급하지도 않다. 산시로는 이런 그들을 선망하는데 그러고 보면 산시로는 처음부터 제대로 된 충고를 들은 셈이다. 소설 초반 산시로는 열차에서 자신이 떠나온 고향의 색을 가지고 있는 여인과 우연히 만나 뜻하지 않게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되는데 그녀의 은근한 유혹에도 불구하고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나중에 그녀에게서 '당신은 참 베짱이 없는 분이로군요.(p.24)'란 말을 듣게 된다. 베짱. 어쩌면 그것이야 말로 정말 그에게 필요했을 지 모른다. 결국 세상과 타협하고만 미네코는 말 할 것도 없고.


 생각해보면 우리가 정말 길을 몰라서 스트레이 십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우리가 정말 배워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고 말했듯이 정말은 우리도 어디로 가야 하는 지 정도는 알고 있다. 다만, 나만 거꾸로 걷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러다 낙오할 것만 같아서 두려워 서성이는 것일 뿐이다. 너무나 직업인이 된 나머지 도락이 줄 수 있는 자유를 누리기는 커녕 보려하지도 않는 것이다. 하지만 남들이 떠받드는 가치와 안정을 쫓아봤자 돌아오는 것은 이전 선거가 잘 보여줬듯이 결국 우리 스스로를 파멸시킬 선택 뿐이다. 오답인 걸 알면서 선택해 놓고 그것이 정답이길 바라는 것만큼 어리석은 망상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정답을 기꺼이 선택할 베짱이 필요하다. 주눅들지 않고. 문조처럼! 문조는 설령 그것이 모이를 주는 손이라 해도 자신을 굽히고 아양을 떨어본 적이 없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가 구축한 세상 안에서 마음껏 활개치고 다녔다. 죽을때까지 그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세상과 싸웠다. 그런 베짱이 이제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은 아닐까? 베짱이 있을 때 우리는 걷고 있는 길이 설령 아무리 모르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길은 더이상 불안의 존재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도전으로 다가오며 새로운 가능성으로 열린 문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 눈을 갖고 싶다. 문조가 되고 싶다. 그렇기에 나는 또다시 산시로를 손에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미인초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5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미인초'는 항우의 애첩으로 유명한 우희의 무덤 앞에 피어났다는 꽃의 이름이다. '우희'하면 얼른 떠오르는 것은 역시 중국 감독 첸 카이거의 영화 '패왕별희'다. 여기서 장국영이 '패왕별희'라는 경극에서 우희를 연기하는 남자 배우로 분했었다. 그의 이름은 두치. 그는 창녀의 아들로 생활고를 못이긴 엄마는 어린 그를 경극단에 맡긴다. 그의 곱상한 외모로 여자 역할을 맡기기로 결정한 단장은 그를 철저하게 여자처럼 말하고 행동하도록 훈련시킨다. 남자로 태어났지만 그는 결코 남자로 살 수 없었다. 경극만이 아니었다. 시대 속의 그도 마찬가지였다. 때는 일본 제국주의와 국공내전 그리고 문화대혁명으로 한창 중국이 격동하던 중이었다. 거기서도 두치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대의 격량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린다. 그는 한 곳에 머무르려 하나 시대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결국 죽음만이 그에게 영원한 정지를 가져다 준다.


 이처럼 '패왕별희'는 요동치는 시대 앞에서 나약한 인간의 초상을 보여주었다. 같은 인물을 제목으로 하는 나쓰메 소세키의 '우미인초' 또한 그런 것을 보여준다. '우미인초'는 소세키가 불혹의 나이에 대학 강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어 생애 처음으로 신문에 연재한 소설이다. 비슷한 시기에 그는 자신의 문학관을 정립한 '문학론'을 출간했는데 가라타니 고진에 따르면 나쓰메 소세키에게 정말 중요했던 것은 '문학론'이었다고 한다. 소설이란 그가 추구하는 문학론을 실험하는 하나의 방법론일 뿐이었단다. 자신의 문학론이 얼마나 세상에 통용될 수 있는 지를 가늠하는.


 그런 의미에서 '신문 연재'라는 가장 대중적인 실험이자 소통의 매개체를 쓰고 있는 '우미인초'는 당시 그가 생각하고 있었던 문학론을 집약하고 있다고 보아도 그리 무리는 아니다.


 그렇다면 나쓰메 소세키에게 문학이란 어떤 것일까?

 그가 직접 고백한 바에 따르면 문학이란 어디까지나 '나와 사물 사이에 일어나는 분화와 발전에 따라서 점차로 몽롱해지는 것을 명료하게 의식하고, 의식한 것을 다시 자세히 구별해가는 것'이다. 즉 그에게 문학이란 하나의 시대상 안에서 점점 더 모호해지는 개별 인간이라는 존재와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정신 작용을 자세히 구분해서 '세밀하고 명료하게' 묘사해 나가는 작업인 것이다. 또한 그 분화에 있어서는 그것의 내용 역시도 다종다양하기 마련이라 어떤 의식의 경로로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지의 선택 역시 대부분 자유로울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그런 흐름은 가급적 존중하여 있는 그대로를 드러낼 것이며 인위적인 취사선택은 곤란하다고 보았다. 이렇게 보자면 나쓰메 소세키에게 문학은 꽤나 현상학적이고 사회학적이며 심리학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아마도 그가 집요하게 추구했던 개인주의와도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보편성에 짓눌리기 마련인 개체성을 성공적으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개체의 그 어떤 미세한 정신 작용도 현전하는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 어떤 보편과도 다른 개체만의 고유한 경로를 보여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이란 어쩌면 나를 압도하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 앞에서 '나'라는 존재를 구하려는 작업인 지도 모른다.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모두가 항우를 버릴 때, 자결로 그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입증했던 우희처럼 말이다. 우희의 자결은 그대로 시대의 흐름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런 식의 표현이 허용된다면 보편에 대한 '고유한' 개인의 승리였던 것이다.


 바로 그런 이야기를 소설 '우미인초' 역시 하고 있다.



 여기엔 두 명의 여자와 세 명의 남자가 나온다.

 먼저 여자부터 차례로 밝히자면 하나는 후지오, 다른 하나는 이토코다. '그 후' 리뷰에서도 말한 바 있는데 소세키의 소설에서 여자란 그냥 여자가 아니다. '그 후'에서 여자란 나라를 표상했다. '우미인초'도 다르지 않다. 두 명의 여자는 각자 다른 나라를 가리킨다. 후지오는 일본이 따라가고자 하는 서양을, 이토코는 거기에 반발해 일본 고유의 정신으로 돌아가려는, 그렇게 그녀가 에도 이전의 수도였던 교토 여자인 것처럼 러일전쟁 이전의 메이지 유신 때의 일본을 의미한다.


 이어 세 명의 남자인 고노, 무네치카 그리고 오노는 이 둘 사이에서 어느 한 방향을 정하고 걷는 개인들이다. 고노는 이토코를, 오노는 후지오를 바라보며 걷는다. 무네치카는 그 사이를 어정쩡하게 맴돈다. 무엇보다 이 세 명의 모습은 그대로 러일전쟁 직후의 일본 지식인들을 반영하고 있다. 더러는 현실에 타협하여 메이지 유신의 정신 따위 모두 잊고 권력과 물질에 경도되었고(오노) 더러는 서양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에 비타협 노선을 표방하고 메이지 유신에 걸맞는 그러나 현재는 잘 보이지 않는 대안을 찾으려 방황했다(고노) 또 더러는 어떤 땐 세속적 성공을 탐하다가도 또 어떤 땐 모든 게 진절머리가 나 팔짱을 끼고 주저앉아 버리기도 했다(무네치카). 소설에서 주요한 소재가 되는 금시계는 정확히 당시 일본 지식인들에게 가장 유혹이 되었던 대상을 의미한다. 단적으로 말하면 남들이 '우와!' 할 수 있는 세속적 성공이다. 교토에서 도쿄로 갓 올라온 지식인 오노는 후지오의 금시계를 욕망하는데 그래서 연인인 이토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지오의 마음에 들려고 애를 쓴다. 이것은 세속적 성공을 위해서 당시 일본에서 그것의 기준을 정하고 있는 존재이자 후지오가 표상하는 서양의 근대 가치관을 따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나쓰메 소세키에게 그것은 지식인이 아니라 '직업인'이 되는 것이다. 오노의 이러한 모습은 '우미인초' 초반에 나오는 고노와 무네치카의 한가한 산보 모습과 대조적인데 나쓰메 소세키가 이 소설에서 그 둘을 대비시키고 있는 데는 물론 이유가 있다.


 그는 언젠가의 연설에서 사람이 하는 일을 두고 '도락'과 '직업'으로 나눈 적이 있다. 이것은 서양의 근대가 일본에 들어오면서 생겨나게 된 구분으로 결정적으로 나쓰메 소세키는 서양의 근대가 정착시킨 분업화로 인해 직업이 세분화 그리고 전문화 됨으로써 사람을 불구로 만들고 있다고 여긴다. 물론 여기서의 불구는 신체적인 것이 아니다. 정신적인 것으로 그의 말에 따르자면 이런 것이다.


 개화의 조류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그리고 직업의 성질이 분화되면 분화될수록 우리들은 불구적인 인간이 되고 마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자신의 직업이 점차 전문화되는 쪽으로 기울어짐과 동시에 생존경쟁을 위해서 다른 사람보다 곱절의 일을 하던 것이 3배 내지는 4배로 점점 속도를 빨리 해서 쫓아가지 않으면 안되게 됩니다. 그 결과 그 쪽으로만 시간과 끈기를 모두 소모하게 되고 우리 이웃의 존재와는 격리되어 외따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웃의 일은 관심권에서 멀어져버립니다. 이런 식으로 인간이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진 직업전선에서 단지 한 가지만 선택하여 그 안에 갇히게 되고, 다른 방면으로 옮겨갈 여유가 전혀 없게 된 것은 요컨대 우리들의 사회적 지식이 협소하고 세심하게 한정된 결과로서, 이는 마치 스스로 좋아서 불구가 되는 것과 동일한 결과입니다.( 나쓰메 소세키, '도락과 직업' 중에서)


 즉 여기서 불구란 영혼의 시야가 지극히 협소해지는 것을 뜻한다. 눈을 가지고 있어도 이웃을, 내 울타리 바깥의 세상을 못 보는 상태. 경마장의 말처럼 오로지 자기 밖에 못 보는 상태가 나쓰메 소세키에겐 불구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될수록 그는 끊임없이 세파에 흔들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술자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모든 과정을 다 알고 있는 기술자와 딱 자기 과정만 알 수 있는 기술자가 있다고 한다면 어떤 위기가 닥쳐왔을 때 잘 흔들리지 않고 보다 잘 대처할 수 있는 자는 어디까지나 모든 과정을 숙지하고 있는 기술자일 것이다. 자기 것만 알고 있는 기술자는 그 범위를 넘어서는 어떠한 정보도 없기 때문에 거기서 문제가 발생하면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알 수가 없어 우왕좌왕하게 될 것이다. 즉 후자의 기술자는 전혀 독립적이지 못하다. 전자의 기술자는 얼마든지 홀로 독립된 인간으로 서 있을 수 있지만 후자의 기술자는 자신의 다리로 설 수 없다. 누군가 부축해줘야만 한다. 그러므로 불구인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말 그대로다.

 '스스로 독립된 인간으로 홀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그러한 인간으로 변해 전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 모습을 바라보면 이러한 나쓰메 소세키의 말이 얼마나 혜안인지 대번에 느낄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근대 초기에 이만큼 멀리 볼 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도락' 덕분이었다. 앞서 말한 직업의 모습을 반대로 생각하면 도락이 된다. 그것은 인위적인 분화를 거부하며 하나 밖에 모르는 전문성 보다 다양한 정보에 익숙해 지기를 꿈꾼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통섭의 태도라고 할 수도 있다.직업과 달리 도락은 실생활과 관련이 없고 그 때문에 물질적 보상에 구애되지 않으며 또 그것을 얻기 위해 책략을 부리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만큼 타인의 시선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직업인은 후지오의 눈에 들려고 애썼던 오노처럼 세속적 성공을 위해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신경스지만 '도락인'은 그런 것에 초연하다.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자아중심적이 된다. 즉 사회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것을 행한다. 소크라테스가 경청하고 있다고 고백했던 자기 내면의 소리인 다이모니온에게만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미인초'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자연의 제일의'라는 것이다. 이 말은 고노와 무네치카가 교토에서 사공이 젓는 배를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갈 때 처음 나온다. 그들은 아무렇게나 굽이쳐 흐르는 강을 두고  '자연의 제일의'라고 말한다. 강에게 무슨 사회 규범 같은 것이 있겠는가? 강은 그저 자기가 내키는 대로 흐를 뿐이다. 품은 마음 그대로를 지향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제일의'다. 나쓰메 소세키는 바로 이것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을 어쩌면 순리라고 부를 수도 있다. 즉 실리를 추구하는 속세의 계산을 넘어서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끝까지 고수해 나가는 순리인 것이다. '도락'은 독립된 인간이 되어 이 순리에 따라 살 수 있게 만든다고 소세키는 여긴다. 하여 '우미인초'에는 끊임없이 도락과 직업의 대립이 있으며 그것은 교토와 도쿄, 고노와 오노 그리고 후지오와 이토코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때문에 오노가 최종적으로 제일의에 따라 이토코를 택했을 때, 후지오는 이미죽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연출은 하나의 지향점으로 여성을 설정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전개다.


 이렇게 얘기하자니 아무래도 후지오를 그렇게 본다면 고유한 개인의 복권과 상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론이 있을 것 같다. 여기에 서투르게나마 변호해 본다면 주제와 방법의 측면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즉 고유한 개인의 복권은 방법의 측면이라는 것이다. 한 개인의 내외면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가급적 작가가 멋대로 개입하여 재단하는 것을 지양하고 되도록 어떤 상황에서의 외면과 내면을 온전히 드러내도록 지향하겠다는 것이다. 사람의 목소리가 개인마다 다 다른 것 같아도 가만히 들어보면 몇 종류의 목소리로 범주화가 가능하듯이 한 개인을 아무리 철저히 고유한 개인으로 묘사하더라도 그가 가진 특성이 어떤 보편성을 뜻할 수 있다. 단순히 말해 혈액형에 대한 보편적 분석이 내 얘기처럼 들리듯이 말이다. 후지오는 바로 그런 접점이라고 생각한다.


 사족처럼 이런 이야기를 하느라 글이 쓸데없이 길어졌는데 '우미인초'는 서양의 근대적 직업관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가져올 수 있는지, 그것도 누구도 그 해악을 몰랐던 근대 초기에 이미 묘파하고 있는 작품이다. 지금도 리처드 세넷이나 지그문크 바우어의 책을 읽어보면 나쓰메 소세키가 한 말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볼 수 있는데 그만큼 소세키가 제대로 짚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미인초'는 그러한 혜안이 한껏 우러나 있는만큼, 거기다 그 때의 상황과 지금의 모습이 전혀 다르지 않는만큼, 아무래도 꼭 좀 읽어보시라고 권할 수밖에 없다. '도락과 직업'이라는 눈으로 보면 분명 와닿는 것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미인초'는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와도 어느 정도 상통한 면이 있다. 같이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07-07 0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7 0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