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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
김진영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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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의 일이다. 하루는 아버지가 서울에 있는 집에 오셨다가 아파트가 갑갑하다며 이틀만에 부리나케 내려가셨다. 그렇지 않아도 아버지는 계시는 동안 어딘가 안절부절해 보였다. 평생 마당 있는 집에서만  당신은 오로지 안과 밖만 있는 아파트에 적응이 되었던 거다. ‘이거 , 중간이 없으니 어정쩡 하네.’ 그렇게 말씀하신 기억난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 , 김진영의 데뷔작마당이 있는 집' 읽고서였다.

 거기 나오는 주인공 주란이 마당 있는 집을 원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에서 어렵게 살아온 그녀는 자신보다 살은 많지만 능력 있고 많은 남편을 만나 마침내 꿈을 이룬다. 그러나 그토록 바랐던 마당에서 어느 악취가 심하게 난다는 알게 된다. 기분 탓이라는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당을 파헤친 주란은 묻힌 사람의 손가락을 발견하고는 혹시 남편의 짓이 아닐까 두려워한다. 그렇게 완벽해 보였던 주란의 삶에 균열이 일어난다.






 그런데 작가는 이러한 의심이 오로지 바깥 사실이 불러일으킨 것일까 독자가 의심하도록 연출한다. 작가가 주란이 전부터 남편 때문에 가정에서 계속 소외 당하고 있음을 내면의 고백으로 계속 기워넣는 것이다그녀는 자신을 자꾸만 종속적으로 만드는 남편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의심은 바로 그러한 불만이 지핀 것인지도 모른다. 내심엔 자신을 계속 우리 인형으로만 만드는 남편이 파멸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심이 가진 진짜 형상은 남편이라는 얼레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다.


 때문에 작가는 마당을 제목에 넣으면서까지 중요하게 취급하는 것이다.

 마당이 바로 주체성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마당은 주인의 영토. 주인만이 마당을 자유롭게 활보할 있다. 이처럼 마당을 주체성의 상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마당을 갖는다는 , 이는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 삶을 이끌고 가는 주체가 된다는 뜻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주란과 대등한 비중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하나의 여성인 상은에겐 마당이 없다. 그녀는 아파트에서 제약 회사 영업 일을 하는 남편과 산다. 가구 판매장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상은은 하루라도 빨리 이런 삶과 남편의 폭력과 무시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녀 역시 주란만큼이나 마당을 원하는 것이다. 마당을 위해 상은은 교묘한 수법으로 남편을 살해한다. 이는 주란이 남편의 파멸을 원하는 것과 이어진다. 주란과 상은은 결코 다른 존재가 아니다. 상은은 과거의 주란이기도 하다. 소설은 마치 그것을 강조하듯, 살인으로 주란과 상은을 서로 만나게 한다. 그리고 아직 살아있는 주란의 남편에게 같이 대적하도록 뭉치게 한다. 상은은 마당을 갖기 위해 돈이 필요하고, 주란은 가짜에 불과한 마당을 진짜로 만들려면 오염원인 남편을 지워야하기 때문이다.


 이렇듯,‘마당이 있는 마당으로 상징되는 삶의 주체성을 획득 또는 회복하려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전선(戰線) 뚜렷하기에 구조가 단조롭게 느껴질 있다. 작가가 주란의 바로 옆에 여성만의 게토까지 넣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게토가 주란의 집과는 달리 너무나 주체적이며 안정적이기에 조금은 주제를 위해 너무 과도한 설정을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은 이야기를 읽다보면 금새 휘발되고 만다. 이야기가 흥미롭기 때문이다. 범인과 사건의 진실을 마지막까지 숨기면서 끝까지 서스펜스를 끌고 나가는 작가의 능력이 뛰어나다. 심리 묘사도 좋아서 자기 삶에서 주체적이 되고자 하는 주인공들의 갈망이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소설은 결말에서 그토록 바랐던 마당이 정말은 어디에 있는가를 은근히 보여주면서 거기까지 끌고 주제를 매조지한다주란과 상은은 마당이 자기 바깥에만 있다고 여겼지만 실은 자기 내부에 있었다는 것으로 말이다. 마당은 획득의 대상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이었고 그건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달리함으로 가능하다는 .


 주체가 되는 것엔 매개가 필요하지 않다. 그런 것이 있다고 생각하여 거기에 얽매이는 것이 도리어 자신이 바라던 모습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마당이 있는 그런 것을 넌지시 일러준다. 미래의 어느 날이 아니라 지금 당장 변하지 않는다면 발을 옥죄고 있는 사슬은 절대 풀어지지 않을 거라고.


 이런 때문에 남자와 여자를 떠나 지금도 내가 거할 마당이 없다며 서성이는 분들에게 소설로의 초대장을 널리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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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보스 수상한 서재 1
김수안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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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어로 '양쪽'을 뜻하는 '암보스'는 바디 스위치(body switch) 장르의 소설입니다. '암보스'란 말을 들으니 문득 헤밍웨이가 그렇게나 좋아했다는 하바나에 있는 '암보스 문도스 호텔'이 생각나네요. 아무튼 '바디 스위치'란 사람의 영혼이 서로 뒤바뀌는 것을 다루는 장르로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아빠는 딸'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장르는 대부분 '아빠는 딸'처럼(혹은 미국에서 엄마와 딸의 영혼이 바뀌었던 '프리키 프라이데이'처럼) 서로 극심한 갈등을 겪는 두 사람이 몸이 뒤바뀐 것을 계기로 상대방의 입장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주로 얘기해 왔기에, 이 소설처럼 스릴러 소재로 삼은 적은 거의 없어서 일단 새로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신선해 보이는 시도가 독자들에게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도 궁금했구요.


 초반에 나오는 하나의 허들만 독자가 잘 넘길 수 있으면 이 소설은 끝까지 꽤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그 허들이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 기자 이한나와 은둔한 소설가 강유진의 영혼이 서로 뒤바뀌는 것이죠. 소설은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장면도 보여주지 않아요. 아예 뒤바뀐 것에서 시작해 버리죠. 마치 독자들에게 그렇게 뒤바뀐 상황을 그냥 납득하라고 말하는 것 처럼 말이죠. 소설 끝까지 어떻게 가능했지는 나오지 않아요. 마지막 부분은 그것의 단서 같아 보이지만, 그조차 모호한 지라 딱 '이거다!'라고 말하긴 쉽지 않아요. 그러니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그냥 소설이 보여주는 대로 받아들이고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일단은 자신의 손을 소설에 허락하고 소설이 이끄는 쪽으로 무작정 따라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그 한 걸음만 수락하면 소설이 준비한 게임이 아주 흥미롭게 당신 눈 앞에 펼쳐질 겁니다.




 이 소설엔 프롤로그가 있습니다. 아이가 자신의 엄마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하는 내용이죠. 그 다음, 우리가 보는 건 강유진의 몸으로 병원에서 의식이 깨어나는 이한나의 모습입니다. 초반 전개는 '바디 스위치'에서 흔히 보는 대로예요. 결국 자신의 몸이 강유진과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은 이한나는 자신의 몸이 되어 있는 강유진과 독대를 하게 되죠. 강유진은 빌딩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다가, 이한나는 건물 방화 현장을 취재하다가 화염에 포위되자 자신이 지고 있는 삶의 짐이 너무 힘겨워 살려는 의지를 스스로 내려 놓다가 영혼이 교체되었다는 것을 말이죠. 그런데 왜 하필 바뀐 대상자가 그들이었을까요? 거기에 대해 이한나는 마침내 이런 결론에 도달합니다.


 내가 갈구한 것. 가족으로부터의 자유, 경제적 여유, 누구의 삶과도 무관한 글을 마음 편히 쓰는 것, 쫓기지 않는 삶.

 그게 전부 강유진에게 있었다.

 그녀가 갖지 못한 것. 가족, 사회적 관계, 반듯한 외모, 건강.

 이건 고스란히 내게 있었다.

 믿기 어렵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답은 전율을 몰고 왔다. 완벽하게 대조된 삶이었다.(p. 102)


 모두 자신의 삶에서 달아나고 싶었기에, 그들은 현재 주어진 육체를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딱 1년 만, 이한나는 강유진으로, 강유진은 이한나로 살기로 한 것입니다. 그걸 바란 건 강유진이었습니다. 사실 이한나는 강유진에게 마음의 빚이 있었습니다. 예전 자살한 청소년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그가 강유진의 소설 '글루미 선데이'에 영향 받아 자살했다고 기사를 쓴 바람에 강유진이 사회적으로 많은 고초를 겪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과연 1년 후에 강유진의 말대로 몸이 원래대로 돌아올지 모르겠지만 그 때를 위해 서로의 삶이 파괴되지 않도록 잘 지켜주자는 계약까지 한 채, 둘은 새로 거주하게 된 육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한나에겐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 벌어지고 맙니다. 강유진이, 그러니까 이한나의 몸이 연쇄 살인마의 손에 무참하게 살해당하여 양손이 잘린채로 발견된 것입니다. 하지만 경찰은 이 살인이 실은 모방 범죄라는 걸 알아냅니다. 그런데 연쇄 살인 방식은 오직 경찰만 알고있을 뿐, 언론으론 전혀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과연 범인은 어떻게 그 정보들을 얻은 것일까요? 그래서 경찰은 죽은 이한나가 통칭 '812'라고 부르는 연쇄 살인을 추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내자 범인은 분명 이한나에게서 그 정보를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한나의 주변 인물들을 수사합니다. 그러다 최근 가장 많이 연락하고 돈까지 오고간 정황이 드러난 강유진(실은 이한나)가 주요 용의자로 수사망에 포착됩니다.


 졸지에 돌아갈 몸도 잃은데다, 그래서 이젠 너무나 싫어하게 된 강유진의 삶을 계속 살아야하는 것도 모자라 살인 용의자까지 오르게 되었다는 걸 안 이한나는 강유진의 돈을 사용해 스스로 강유진 죽음의 진실을 찾아 나섭니다. 과연 이한나는 자신에게 씌어진 모든 누명을 벗고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도대체 강유진은 어쩌다 그렇게 죽게 되었을까요? 이것은 또 프롤로그에 나왔던 살인과 어떻게 연결될까요? 소설은 이런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주면서 전혀 뜻밖의 진실 앞으로 독자를 데려갑니다.


표지는 이렇게 양면으로 펼쳐야 온전히 보이도록 되어 있는데, '바디 스위치'라는 걸 잘 드러내고 있어서 마음에 듭니다.


 소개는 이 정도로 하고 소설에 대한 제 인상을 말하자면, 바디 스위치란 소재를 재치있게 사용한 지적 게임에 가까워 보입니다. 소설은 이한나와 탐정 역할을 맡는 형사의 시선이 번갈아가면서 전개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시간 순서가 다소 얽혀 있어 앞에 등장한 사건이 나중에 가서 커다란 문제라는 게 비로소 밝혀지는 등, 읽는 이의 흥미를 유발할만한 장치가 잘 마련되어 있습니다. 후반에 이르면 경찰이 사건 추리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을 보면 작가가 꽤 논리적으로 공들여 설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겠더군요. 그 정도라면 작가의 설명 없이 독자 스스로 사건의 전말을 파헤칠수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지적 게임이란 말을 해봤습니다. 


 다른 걸 다 떠나 그냥 이야기 하나만으로 재밌게 읽을 수 있습니다. 작가도 그다지 욕심을 가지지 않은 것 같아요. '바디 스위치'는 정체성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기에 솔직히 욕심껏 철학이나 사회적인 의미들을 곁가지로 얼마든지 넣을 수 있는데 그러지 않고 오직 '육체 교환을 통한 미스터리와 서스펜스의 창출'이라는 이 하나에만 매진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몰입감이 더 컸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장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물론 개인에 따라서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만 제게는 경찰에 대한 부분과 조연급 인물들에 대한 부분이 너무 상세하게 나와 분량이 필요 이상(이 소설은 무려 500페이지 입니다.)으로 늘어난 느낌이었습니다. 장황 하다고 해야할지, 하여간 그것이 조금 이야기의 몰입을 방해하는 측면이 있더군요. 뭐, 어디까지나 '조금'입니다. 재밌는 소설이라는 건 변함 없어요.


 오직 재미만 추구한다고 해서 아무런 주제의식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이건 소설에 대한 오해가 될 것 같아 꼭 얘기해야겠네요. 이 소설에도 주제가 있다고 말이죠. 이한나와 강유진이 육체 교환을 받아들이게 만든 이유가 바로 소설의 주제입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기에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이유가 전혀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당사자가 깨닫는 것이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바라는 거죠. 타인의 삶이란 그저 아주 멀리서 바라 본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랄까요. 높은 하늘 위에서 아래를 바라다 보면, 높은 빌딩도 낮은 움막도 그저 2차원의 사각형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 거리가 동경과 부러움을 만드는 것이지, 그 누구의 삶이든 실제 안으로 들어가보면 내 삶만큼이나 모나고 아픈 것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겁니다. 


 아니, 당신도 이미 잘 알고 계시지 않을까요? 완벽하게 행복한 삶은 오직 TV나 영화관 화면 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사막을 정처없이 헤매이게 만드는 오아이스의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 신기루에 대한 현혹이 내게도 있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재미를 떠나 자신에게 경고를 준다는 의미로도 '암보스'를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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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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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2월 22일

 지리산에서 함께 별을 보던 날로부터 931일째 되는 날, 수정은 살해당했다. 열여섯의 나이였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다는 동지. 우진의 인생에도 가장 어둡고 긴 밤이었다. (p. 38)


  세상에 이처럼 가혹한 삶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잘 자요 엄마'로 유명한 미스터리 소설 작가 서미애의 신작,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의 주인공 우진의 삶이 그러합니다. 어려서는 부모님을 잃고 어른이 되어서는 자기 삶에서 가장 빛나던 별이었던 외동딸을 범죄로 잃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밤이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소설은 이제 겨우 밤의 끝에 다달았나 싶었던 우진이 또 한 번 참혹하고 기나긴 밤을 맞게 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딸 아이의 상실과 암 발병까지 겨우 이겨온 아내가 갑자기 투신 자살을 한 것입니다. 우진의 눈 앞에서 아내는 '왜 이렇게 날 구차하게 만들어'라며 우진을 원망하면서 눈을 감습니다. 그렇게 우진의 삶에서 모든 빛이 사라졌습니다. 자신 역시 스스로 삶을 마감할 것을 결심한 우진은 아내의 장례식 동안 내내 입고 있었던 상복의 주머니에서 분명 누군가 몰래 집어 넣은 쪽지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게 우진을 다시 한 번 살아가게 만듭니다. 쪽지가 이렇게 말하고 있었거든요. 딸 아이를 죽인 진범은 따로 있다고.


 딸 아이의 사건은 범인이 잡혀 이미 재판까지 끝난 상황입니다. 어이없게도 딸 아이가 살해당했는데도 불구하고 딸 아이와 같은 고등학생이었던 세 명의 가해자 남자들은 봉사활동과 교육 수강 명령만 받았습니다. 가해자 부모들이 병원 원장등 뒷배가 든든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진범이 따로 있다니, 누가 넣었는지도 모르고 진실인지도 알 수 없지만 우진은 딸 아이의 사건에 정작 당사자였던 자신이 진실을 밝혀야 책임을 사법부에게만 맡기고 너무 수동적으로만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가해자들을 만나 직접 파헤쳐 볼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 돌연 이야기의 화자가 바뀝니다. 재수생인 이세영으로 말이죠. 그녀 역시 삶의 빛을 잃어가는 참입니다. 재수생이어서가 아니라 가정이 파탄나고 있기 때문이죠. 부유하지만 세영의 가정엔 사랑이 조금도 없습니다. 모두가 이기적이고 자신의 삶만 소중합니다. 한창 사랑을 받아야 할 시기에 손톱만큼의 관심도 받지 못하니 삶이라는 게 그저 피곤하기만 할 뿐 아무런 애착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다 뜻밖에 전혀 만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도 우진의 딸을 죽였던 가해자 중 한 사람을. 그를 피해 무작정 달아나던 세영이 우연히 근처에 있던 차에 오릅니다. 그 차는 우진이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기 싫었던 세영과 그것을 알아채고 죽은 딸이 생각난 우진은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바다까지 함께 동행하기로 합니다. 그러다 우진은 우연히 세영이 자기 딸 사건을 맡았던 검사의 딸이라는 걸 알아내고 그를 통해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고자 납치했다는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의 화자는 세영의 아버지, 검사로 바뀝니다. 지금 그는 검찰을 그만두고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자기 밖에 모르는 아내에게 넌더리가 나 이혼하게 된 그에게 자신의 삶에 단 하나 남은 빛이 세영밖에 없었지만 그만큼 신경써 주진 못합니다. 늘 뒤늦게 후회만 할 뿐이죠. 그러다 우진에게 그런 문자를 받은 것입니다. 그는 우진의 협박에 따라 세영을 만나러 왔던 가해자 집을 찾았다가 그가 이미 목에 칼을 찔려 시체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의도치 않았던 납치에서 살인으로 급변한 사건은 우진을 비롯한 모두를 뜻밖의 진실 앞으로 데려갑니다. 알려진 진실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은 일단 세 가지 점이 인상적입니다. 하나는 한 번 잡으면 끝까지 내처 읽게 만드는 이야기의 몰입력. 다른 하나는 반전.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실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놀랍도록 생생한 묘사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이 다른 두 가지 보다 더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딸과 아내를 잃은 우진의 삶에 대한 묘사는 정말 상실의 탄내를 흠뻑 맡게 만들더군요. 읽으면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삶이 이렇겠구나 하고 얼마나 많이 느꼈는지 모릅니다. 그럼 아픔의 묘사가 바탕이 되었기에 우진이 세영이가 자기 딸 사건의 담당 검사 딸인 것을 알자마자 납치라는 거짓 문자를 보낸 것도 스포일러가 되기에 밝힐 수 없습니다만 마지막의 선택도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감히 미스터리도 미스터리이지만 그 아픔에 대한 심리 묘사만으로도 이 소설은 읽을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묘사가 이 소설이 정말 독자에게 전하고 싶어 하는 것, 그러니까 가족이란 무엇이고 가족을 위해 우리가 진정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에 대해 독자 스스로 시간을 들여 생각해 보게 만드니까요. 분명 이 소설을 읽고나면 한 번쯤 자신의 가족이나 주위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아다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된 연유가 있더군요. 서미애 작가 자신이 그것을 경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책의 말미에 있는 작가 자신의 말에 따르면 최근에 그녀는 소중한 오빠를 잃었다고 하니까요.  다시 말해 작가 자신이 '별이 사라지던 밤'을 경험한 것이었습니다. 그 밤의 시간과 그것을 관통해 나오며 겪었던 것을 이 소설에 그대로 투영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직접 겪은 것을 토대로 자아내는 것만큼 피부에 와 닿는 묘사도 또 없을테죠. 


 저는 서미애 작가의 다른 작품을 본 일이 없습니다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와 이토록 마음의 결을 잘 나타내는 작가라면 그녀의 다른 작품도 만나보고 싶어지는군요. 아직 별이 사라지지 않은 운 좋은 분들에게 지금 있는 별을 더없이 소중히 여기기 위해서라도 꼭 한 번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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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에이스는 유니폼이 없다
최혁곤.이용균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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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넓고 미스터리의 소재 또한 그만큼 다양합니다. 당연히 야구도 자주 미스터리의 소재로 쓰였었죠. 야구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 한국에선 야구를 소재로 이렇다할 미스터리가 없었는데 드디어 그런 소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본격 야구 미스터리 소설'을 표방하고 나온 '수상한 에이스는 유니폼이 없다'가 그 장본인입니다. 그런데 저는 사실 이 소설을 소재 보다 작가 때문에 읽게 되었습니다. 작가가 제가 한국 최고의 스릴러 소설 중 하나로 치는, 흔히  'B 시리즈'라고 알려진 'B컷'과 'B파일'의 작가 최혁곤이었거든요. 지금까지 그가 쓴 소설은 거의 다 읽어본 것 같은데, 모두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런 작가가 이번엔 야구를 소재로 미스터리를 썼다고 하니, 호기심 때문에라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 그런데 최혁곤 작가만의 소설은 아닙니다. 공동 저자입니다. 경향신문에서 야구 기사를 쓰는 이용균 기자가 함께 썼습니다. 이렇게 미스터리에 강한 사람과 야구에 강한 사람이 함께 써서 그런지, 미스터리는 미스터리대로, 야구 이야기는 야구 이야기대로 모두 어디 흠 하나 얼른 잡아내기 어려운 작품이 태어난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수상한 에이스는 유니폼이 없다'는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도,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도 다 만족시킬만한 소설입니다.




 표지에 소설의 주요 인물이 다 나와 있네요. 중간에서 카메라를 만지고 있는 여인은 소설의 주요 무대가 되는 프로야구 팀, 몽키스 구단의 젊은 단장 홍희입니다. 그리고 옆에서 그녀를 내려다 보는 남자는 이 소설에서 주로 탐정 역할을 하는 몽키스의 프런트 팀장 신별입니다. 맞은 편에서 카메라를 내려다 보고 있는 저지 차림의 여인은 신별과 같은 프런트 팀으로 왓슨처럼 탐정의 조수 역할을 하는 기연이구요. 사실 신별과 기연, 이 둘이 거의 활약을 다 한다고 보면 됩니다. 하나의 사건만 나오는 장편은 아니고 모두 6막에 걸쳐 여섯 사건이 등장하는 단편집입니다. 그리고 미스터리 스타일도 종막을 제외하면 살인이나 거대한 음모 같은 게 등장하지 않는 일상 미스터리 쪽에 가깝습니다. 다만 그 일상이란 게, 프로야구 세계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것이지만 말이죠. 그래서 이야기 자체가 아주 새롭습니다. 그 세계에 발을 깊숙이 담그고 있어야만 체험할 수 있는 것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2막, '악마의 리스트에는 마구가 숨겨져 있다'는 소설의 이러한 특성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이 에피소드는 구단 사이의 선수 트레이드를 소재로 하고 있는데 어떤 선수를 주고, 어떤 선수를 받을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구단 사이에 벌어지는 머리 싸움이 거의 첩보전을 방불케 합니다. 저야 물론 언론을 통해 트레이드 결과만 볼 뿐이라서 소설이 묘사하는 현실의 트레이드라는 게 이토록 치열한 수 싸움을 통해 이뤄진다니 많이 신기했습니다. 이렇게 언론을 통해 잘 드러나지 않는 프로야구 계 막후의 현장을 경험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 소설이 줄 수 있는 최상의 재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간단히 줄거리를 소개해 보도록 하죠. 주인공 신별은 원래 경향스포츠 야구 전담 기자로 있다가 최근 몽키스 구단의 프런트로 스카우트 당했습니다. 그가 직업을 바꾼 것은 돈 때문이 아니라 20년 전 사라진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신충은 20년 전, 핀토스 구단의 투수로 '노 히트 노 런'까지 기록한 대단한 투수였는데 자신이 선발인 한국시리즈 5차전 경기를 앞두고 홀연히 사라져 이후 영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신별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아버지 실종의 미스터리를 혼자라도 풀기 위하여 보다 야구와 가까운 직업을 가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에 몰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가 팀장으로 있는 '에이스 팀'은 구단 내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골칫거리를 홍희 단장의 지시에 따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죠. 이쯤되면 눈치채셨겠죠? 제목인, '수상한 에이스는 유니폼이 없다'가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지? 네, 바로 '에이스팀'인 신별과 기연입니다. 그들은 회의실에서 발견된 도청 장치 사건을 시작으로 얼른 납득할 수 없는 트레이드 리스트를 제시해 온 상대 구단의 책략을 간파해야 하고 한 조선족 살인 현장에 우연하게 포착된 유격수 유망주가 숨기고 있는 비밀을 파헤쳐야 하며 과거 후배 선수 폭행으로 방출된 투수가 있는데 그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이 실은 팀에서 왕따를 당했다면서 계속적으로 시위를 하자 그 진실도 밝혀야 합니다. 이렇게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터질 지 모르는 온갖 돌발적인 사건들을 인과 관계를 잘 규명하여 잡음 없이 깨끗이 해결하는 게 '에이스 팀'의 임무인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해결사라고나 할까요. 비록 마운드에 서지는 않지만 그 배후에서 팀이 경기에만 전념에 승리할 수 있도록 돕고 있으니 유니폼은 없다고 해도 선수나 다를 바 없는 것이죠. 제목은 분명 그런 뜻을 담고 있을 것입니다. 신별은 놀라운 추리력으로 자신의 역할을 잘 해냅니다. 경찰 출신에다 태권도 유단자인 기연 또한 신별이 잘 하지 못하는 일을 척척 해내어 완벽하게 조력하구요. 이들의 콜라보와 케미 앞에서 모든 에피소드의 미스터리는 명쾌하게 해결됩니다. 마지막의 아버지 실종 사건 역시도.


 재미와 정보가 잘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특히 모든 에피소드 뒤에는 신별이 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야구 칼럼이 삽입되어 있는데, 모두 야구의 매력과 야구를 하는 의미에 관한 것으로 에피소드가 단순히 재미만을 위해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을 짐작케 합니다. 그저 독자의 흥미와 재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야구를 통해 자신의 삶 또한 음미할 수 있도록 손짓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소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하지 않은 본격 야구 미스터리 소설이 이토록 성공적인 모습으로 나왔기에 아무래도 추천하지 않을 수 없네요. 앞서도 말했듯, 야구와 미스터리를 좋아하신다면 꼭 한 번 벗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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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7-12-29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오쿠다 히데오가 울고 가나 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언젠가 오쿠다 히데오도 야구 소설을 썼더군요 그걸 기억해서 다행이네요 그 책을 정말 읽은 건지 다른 사람이 쓴 걸 본 건지... 제가 책을 읽고도 쓰지 않을 때 봤을지도 모르겠네요 책 읽고 쓰고는 오쿠다 히데오 소설 별로 못 봤어요 존 레논이 나오는 소설을 본 다음일지도... 그 책을 잘 못 봐서 그랬습니다

미스터리와 야구 둘을 좋아하는 사람은 즐겁게 보겠습니다 아니 야구만 좋아해도 재미있게 볼 것 같아요


희선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 - 개정판 변호사 고진 시리즈 2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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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우! 결말에서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도진기 작가의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을 읽고 난 뒤 든 첫 소감입니다. 정말 충격적인 반전이 있군요.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은 도진기 작가의 초기작입니다. '붉은 집 살인사건'에 이은 두 번째 작품으로 알고 있어요. 그것이 이번에 새로이 '황금가지'에서 나왔네요. 눈길을 확 잡아끄는 노란 표지로.



 베르디의 유명한 오페라 제목이기도 한 '라 트라비아타'는 '길을 잃어버린 여인'을 뜻합니다. 살해된 정유미를 뜻하는 것일까요? 표지의 열쇠는 사라진 104호의 현관 열쇠입니다. 그 곳은 정유미와 함께 발견된 시신의 남자가 거주하는 곳이죠. 아마도 범행 방법을 알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단서라 표지에 나온 것 같습니다.


 도진기 작가에겐 두 가지 시리즈가 있습니다. 하나는 어둠의 변호사 '고진'이 활약하는 시리즈고, 다른 하나는 해결사 '진구'가 활약하는 시리즈죠. 그동안 진구 시리즈는 제법 많이 만나봤는데, '고진' 시리즈는 처음입니다. 아, '진구' 시리즈에서 그가 한 번 까메오처럼 출연한 것을 본 적도 있군요. '가족의 탄생'이란 작품에서 말이죠. 어쨌든 그렇게 '라 트라비아타'로 고진 시리즈와 첫 대면을 해봤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솔직히 말해, 진구에겐 미안하지만 '진구' 시리즈 보다 더 좋았어요. 아마도 제가 '본격파'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은 순도 100%의 본격 미스터리이니까요.


 아, 본격이라는 말은 순수하게 추리로 트릭을 풀고 범인 찾기에만 집중하는 소설을 말합니다. 그동안 도진기 작가의 본격 미스터리를 안 접해본 것은 아니지만 그건 모두 단편이었습니다.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처럼 장편으로 만나본 것은 처음인데, 정말 잘 썼더군요. 처음부터 끝까지 잔뜩 몰입하게 만들었습니다. 소설은 '붉은 집 살인 사건'에서 등장한 이유현이 법정에서 커다란 실망감을 얻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서초구의 한 독신자 아파트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범인을 잡아 재판에 넘겼는데 한 변호사의 도움으로 풀려난 것이죠. 그 방법이 실로 절묘했기에 이유현은 그 변호사가 누군지 능히 짐작합니다. 바로 '붉은 집 살인 사건'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어둠의 변호사 '고진'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그것을 깨달은 이유현이 고진에게 전화로 연락하면서 이야기는 이제 독자를 그 살인 사건의 현장으로 데려갑니다.


 피해자는 정유미라는 25세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집인 204호 거실에서 목에 송곳이 박혀 죽은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시신 한 구가 더 있습니다. 남자로, 그는 나중에 바로 아래층인 104호에 사는 사람이고 살해된 정유미를 예전부터 스토킹해 오던 인물로 밝혀집니다. 이 사건을 경찰이 발견하게 된 것은 정유미의 애인 김형빈의 신고였습니다. 김형빈은 정유미와 통화하다 '강도다'라는 말을 듣고 얼른 경찰에 신고한 것입니다. 이제 서초경찰서 강력반 팀장 이유현의 수사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 사건 난해하기 그지 없습니다. 정유미의 현관은 비밀번호를 눌러야 들어갈 수 있는 도어락이 걸려 있는데, 그 비밀번호는 정유미와 애인 김형빈만 알고 있다고 합니다. 이 집엔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할머니도 한 분 드나들고 계셨는데 정유미는 자신에게도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았으며 언제나 그녀가 먼저 열어줘서 들어갔다고 진술합니다. 살해된 현장엔 그 어디도 강제로 침입한 흔적이 없기 때문에 알리바이가 확인된 김형빈을 용의자에서 제외하면 침입 경로는 오직 베란다 하나 뿐입니다. 이것은 아파트 입구 CCTV를 확인한 결과 다른 외부 침입자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기에 더욱 굳어지게 됩니다. 그래도 혹시 동기를 가진 범인이 있지 않을까 하여 정유미 주변 인물을 샅샅이 탐문했지만 너무나 깨끗하여 결국 동기가 아니라 범행 방법에 치중하여 베란다 침입이 가능한 물품을 언제나 사용할 수 있는 자를 체포합니다. 그런데 그 자가 고진의 조력으로 풀려난 것입니다. 따지듯 자신을 찾아온 이유현에게 고진은 범인이 정말 흥미로운 존재라며 자신의 추리를 들려줍니다. 이 때부터 고진의 추리쇼가 3회에 걸쳐서 상연됩니다. 한 번에 그 세 가지를 다 말하는게 아니고 하나씩 풀어놓는데 그 하나만 듣고 이유현이 수사하게 됩니다. 그러나 막히고 그러면 고진이 두 번째 가능성을 들려주고 또 막히면 세 번째 가능성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마치 3막으로 된 추리극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고진의 추리 정말 탁월합니다. 그 방법에 나름 놀랐습니다. 이 사건엔 두 가지 트릭이 있습니다. 하나는 '심리트릭'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차 트릭'입니다. 이 트릭을 하나하나 논파해 내는 고진의 추리가 정말 절묘합니다. 본격 미스터리를 즐기는 것은 어디까지나 어려운 트릭을 정교한 추리를 통해 아귀가 딱딱 맞게 해결하는 것을 보는 쾌감 때문이죠. '라 트라비아타'는 그런 쾌감을 충분히 선사합니다. 소설에서 고진은 이유현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현대의 기술 앞에 범죄의 설자리는 갈수록 없어지고 있다고들 말하지. 지문, DNA, 혈흔 분석 같은 거야 물론 예전부터 있었지만, 요즘은 사건 생기면 딱 세 가지만 보면 되잖아? 휴대폰, 이메일, 그리고 통장 계좌. 이거만 뒤져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누구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지 다 나와. 그래서 전통적인 추리 소설의 트릭은 대부분 현대에는 성립이 안 돼. 하지만 말이야. 난 좀 생각이 달라.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 만큼 새로운 트릭의 지평도 그만큼 넓어진 거야. 수사 기관을 속일 수단도, 기발한 범죄의 여지도 얼마든지 더 생겨난 거야. 그런 내 이론을 범인이 그대로 실현해 보여 줬어. 정말 재미있지 않나? 하하하."(p. 160 ~ 161)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은 그야말로 그런 고진의 생각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놀라운 반전까지 마련되어 있는데, 이것이 또 전혀 뜬금 없지 않습니다. 이 말은 사전에 단서가 다 제시되어 있으며 꼼꼼하게 읽고 잘 추리했다면 알 수 있다는 것이죠. 한 번 도전해 보시죠. 당신은 과연 범인을 찾아낼 수 있을까요? 이런 점까지 더해 도진기 작가가 왜 초기에 발표한 두 작품만으로도 명성을 얻었는지 잘 알겠더군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면 한 번 꼭 읽어보세요. 분명 어릴 때 셜록 홈즈나 엘큘 포와로의 추리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즐거움을 다시 맛보게 해 줄 것입니다. 정작 도진기 작가는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을 읽고 미스터리계에 입문했다고 하지만요.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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