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노블로 읽는 수학 이야기 쉽고 재미있는 인문학 3
인동교 지음 / 시간과공간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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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부터 수학에 손을 놓았을까? 고2 때까지는 보습학원을 다니면서 나름 수학 강의를 들을 때 강사가 던지는 질문에 대답도 곧잘 했던 것 같다. 고3 때도 문제 앞에서 막 찍기만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좋았던 것 중 하나는 이제는 다시 수학을 강제로(?)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지극히 문과인 과목을 전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상과 달리 내가 입학한 학교는 문과와 이과(?) 같은 과목이 "학부"라는 이름으로 묶여있었고, 주 전공이 나누는 3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두 학과의 전필을 들어야 했으니 말이다. 1학년 1학기 경영 수학이라는 이름으로 수학과 계속 만나게 되었고, 그 이후 결국 내가 배운 두 학과의 복수전공하면서 졸업 전 마지막 학기까지 "회계"과목을 수강했다. TMI를 더 뿌리자면, 나는 현재 15년째 돈을 만지는 회계분야에서 밥을 먹고 살고 있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다분히!!! "그래픽 노블로 읽는" 때문이었다. 수학 이야기라고 하지만, 차례를 보니 수학사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수학사+다양한 수학이 등장한다.

만화지만, 첫 장부터 머리가 아팠다. 진짜 접고 싶었다. 이렇게 진도가 안 나갈 줄이야...! 다시 악몽(?) 아닌 악몽이 떠오른 이유는 바로 도형 때문이었다. 국민학교 2학년 때 산수 교과서에 등장한 도형은 내 평생 처음 겪는 좌절의 기억이었다. 도대체 도형의 넓이를 왜 구해야 하는 거고, 어떻게 해야 나오는지 아무리 쳐다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공식만 주야장천 외우고 나니, 응용문제가 나오면 족족 틀렸다. 근데 이 책의 시작은 탈레스고, 그는 이등변 삼각형이 등장한다. 그 이후로도 몇몇 장을 지나야 도형이 끝나니 정말 덮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도형을 넘기고 나니... 괜찮을 줄 알았는데 로그가 나오고, 파이가 나오고 좌표와 방정식이 나온다. 아마 그래픽 노블이 아니었다면 첫 장에서 바로 접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래픽 노블이니 읽을 수 있었다.

읽다 보면 꽤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등장한다. 어! 하는 바로 그 사람들... 내가 이렇게 수학자를 많이 알고 있었나? 싶을 정도다.(저자가 익숙한 이름의 수학자들을 소개해서 그럴 수도 있다.) 내용은 기억 안 나지만 피보나치수열, 유클리드 기하학, 피타고라스의 정리, 메르센 소수, 페르마의 정리뿐 아니라, 다분히 철학자로 알고 철학자라고 배웠던 데카르트도 등장한다. 익숙함이 책을 읽게 만드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왜 수학을 배워야 하는가? 실생활에 쓰는 건 사칙연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않는가?라는 대답에 대 수학자 유클리드는 이렇게 대답한다.

저자에게 동전 세 개를 쥐여 주고 보내거라.

배움으로 이익을 얻을 것만 생각하다니...

너무 한심하구나!

P.57

수학사 속에 담긴 뒷얘기를 읽어보는 재미도 나름 쏠쏠하다. 무리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던 피타고라스가 벌인 제자 히파수스 살인사건, 아마추어 수학자인 페르마가 17세기에 남긴 문제의 풀이는 과연 언제 풀렸을까?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있기에 무턱대고 피하기 보다 가볍게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이해가 안 되면 넘기자! 교양으로 읽는 거지, 앤드루 와일즈 처럼 전문적으로 문제를 풀 건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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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해시태그 한국 민주주의사 청소년을 위한 해시태그
조한성 지음 / 생각학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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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참 좋아한다. 고3 수시모집에 사학과를 넣었을 정도로 한국사를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물론 여차여차해서 한국사가 아닌 행정학을 전공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한국사는 꾸준히 읽고 볼 정도로 여전히 나는 한국사를 좋아한다. 그럼에도 내가 유일하게 잘 안 보게 되는 시대는 근현대사인 것 같다. 굳이 핑계를 찾자면...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근현대사를 제대로 배운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중3, 고3 때 한국사를 배웠는데 수능을 얼마 앞둔 상황인지라 정말 근현대사는 날림으로 배웠었고, 중 3 때도 상황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청소년을 위한"이 붙어 있는 이 책을 보자마자 이번에는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현대사라고 쓰여있지는 않지만, 책 속 한국 민주주의사는 근현대사와 기간을 같이 한다. 우선, 이 책의 제목에 등장한 한국 민주주의사의 시작은 언제일까? 나 역시 8.15 해방 이후 일 거라 생각했는데, 저자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의 시작을 1894년으로 보았다. 1894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바로 갑오년. 나는 갑오개혁이 떠올랐는데, 저자는 그에 한발 앞서 동학농민운동을 민주주의사의 시작으로 본다. 동학이 중요하게 주장한 만민 평등사상이 바로 민주주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총 4부로 이루어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사는 1부에서는 동학농민운동부터 광주학생항일운동까지(일제강점기 포함)를 다루고, 2부에서는 광복 이후부터 이승만 대통령의 부정부패와 하야를 촉발시킨 4.19 혁명까지의 역사가 담겨있다. 3부에서는 박정희 독재 정권이, 4부에서는 전두환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부터 김대중 정권까지의 역사가 담겨있다. 유난히 숫자가 많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정치인이 아닌 민중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 피와 땀을 흘리고 결국은 목숨으로 이루어낸 슬프지만 대단한 과거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자유가 과거 조상들의 피맺힌 노력의 성과 때문이라는 사실을 책을 읽는 내내 되새기게 된다.

어찌 보면 시작부터 잘못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이라면 절대 말도 안 되는, 투표용지를 바꾸는 상황이 그때는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졌고,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정치깡패를 동원해 자신에게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을 구속시키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다행이라면, 과거 왜곡된 역사를 이 책에서는 바로잡고 있다는 점이다. 과오는 포장을 넘어 분장을 하고 어물쩍 넘어가면서 잘한 면만 과장해서 부각시키는 역사의 왜곡이 일본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있지 않았는가? 그런 면에서 이제는 잘못을 들추어 내고, 명명백백 밝힐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도 민주주의가 이루어 낸 변화가 아닐까 싶다. 5.16을 명백한 군사정변이라고 이야기하고, 5.18을 쿠데타나 폭동이 아닌 민주화 운동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아닐까 싶다. 풀뿌리 민주주의라 일컫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한 사람의 욕심에 제대로 목소리를 내고 꾸짖었던 민중으로부터 시작되어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도 우리의 민주주의가 퇴보하지 않고 올곧은 길을 갈 수 있도록 깨어있는 민중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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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선정 위대한 그림 220
이경아 엮음 / 아이템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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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가 선정한 세계의 명작 220작품(실제 책에 담긴 작품은 그 이상이다.)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다. 무슨 이야기인가 했는데, 과거 BBC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를 주제로 해서 책이 탄생했다. 단, 12세기부터 1950년대까지의 작품 중에서 유럽 회화를 중점으로 소개하고 있다. 물론 중국이나 일본의 작품도 아주 잘 찾으면 한두 점 만날 수 있다.(아쉽게도 우리나라의 작품은 없다.) 220점의 그림 중 낯익은 그림이 더러 있긴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모나리자,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등)은 의도적으로 제외했다고 한다. 그 뜻은 좀 더 다채롭고 다양한, 그래서 때론 신선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었기에 만족스럽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순서가 거꾸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첫 장이 220번째 작품이니,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숫자가 적어진다. 마치 "벤자민 버튼의 사간을 거꾸로 간다"같은 느낌이다. 물론 의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특정 주제나 뭔가 분류하는 기준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 작품을 깊이 있게 설명하기보다는, 지극히 작품에 집중하여 충실하지만 짧게 설명한다. 길어야 몇 페이지(한 명의 작가가 아니어서)인데, 대부분은 한 페이지 분량이다. 각 그림에 대한 내용이 한 페이지 분량이기에, 아쉽게도 책에 등장한 명화의 사이즈가 그리 크지 않다. 그럼에도 작품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이고 디테일하게 설명해야 하는 경우는 양쪽 페이지를 다 사용해서 작품을 보여주거나, 그 부분만 확대해서 보여주기에 아쉬움이 조금은 덜어졌다.

처음 보는 작품도 있지만, 눈에 익은 작품들도 있다. 가령 반 고흐의 자화상이나 잠자는 집시여인,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같은 작품들이다. 한 작가의 여러 작품이 소개되기도 한다. 프란시스코 고야처럼 말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에곤 실레처럼 익숙한 이름도 있지만, 쿠르트 슈비터스나 조지 스터브스, 위베르 로베르 등 처럼 처음 들어오는 이름이 과반 이상을 차지한다. 또한 작품의 주제가 다양하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단화와 같은 종교적 색채를 띤, 성경 속 그림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 속 그림도 상당수 담겨있다. 또 피카소와 함께 등장한 입체파 화가들의 작품도 꽤 눈에 띈다. (역시나 이해하기 난해하긴 하다.)

책을 읽으며 진짜 놀란 작품이라면, 독일 화가 고트하르트 그라우브너의 검은 피부라는 작품이었다. 솔직히 내 눈에는 그저 검은색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자세히 보면 수많은 다채롭고 겹쳐진 레이어가 보인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저 도화지 같은 검정이 아닌 중간중간 옅고 선으로 보이는 검은색이 보인다. 역시 미술에도 도슨트의 해설이 필요한 이유를 이런 데서 알게 되는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작품이 여럿 있지만, 에곤 쉴레의 "어머니와 두 아이"라는 작품과 폴 내쉬의 "꿈에서 본 풍경"이라는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우선 에곤 쉴레의 작품은 곁들여진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한(오히려 부정적인) 글 때문에 기억에 남고, 꿈에서 본 풍경이라는 작품은 마치 액자같이 보이지만 거울 같기도 하고, 또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현실 같기도 해 신선하게 느껴졌다. 해설을 보니 초현실주의적인 모습이 드러난 작품이라고 한다.

그림을 잘 모르지만, 이번에도 처음 접하는 작품들이 많아서 그런지 신선했고, 작품에 대한 해설이 곁들여져서 좀 더 이해하기 쉬웠던 것 같다. 현존하는 작가들도 있는 걸 보면, 정말 현재 진행형인 그림을 마주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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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노부인이 던진 네 가지 인생 질문
테사 란다우 지음, 송경은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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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자신의 내면의 나침반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행복이

(아무리 커다란 손실을 보는 일이 있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느껴요.

우린 해복을 우리 안에서만 찾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p.71

얼마 전, 집을 뛰쳐나간 적이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출근 준비와 두 아이를 깨워서 등교, 등원을 시키고 출근을 한다. 업무가 끝나고 미친 듯이 달려서 작은아이 하원, 그리고 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큰 아이 픽업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야근 시작이다. 집 정리와 저녁 준비, 10시간 예약해둔 빨래를 건조기에 넣고, 저녁을 먹이고, 아이들 목욕을 시키고 나면 설거지와 다 마른 빨래가 기다리고 있다. 대략 이 일을 마무리할 정도가 되면 남편이 오고, 또 저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한다. 매일같이 쌓이는 일 앞에서 숨 쉴 구멍이 없었다. 이대로 있다간 숨이 막혀 죽거나, 뛰어내리거나 둘 중에 하나 일 거라는 생각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목적지도 없이 그냥 집을 나갔다. 물론 1시간 반 만에 들어오긴 했지만...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나와 공통점이 참 많았다. 그래서 더 공감이 많이 되었고, 더 와닿았던 것 같다. 주인공은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으로 회계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남편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고, 직장에서도 나름 인정을 받고 있다. 하지만, 수시로 답답함을 느낀다. 그날도 주인공은 쌓이는 스트레스 속에서 도저히 집으로 갈 수 없어서 아이들을 베이비시터에게 부탁하고 숨 쉴 곳을 찾았다. 한 벤치에 앉아있는데, 백발의 노부인이 말을 건넨다. 누구와도(특히 모르는 사람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주인공은 자신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말을 내뱉는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알았을까? 노부인이 그녀에게 건넨 질문은 그녀의 삶을 조금씩 바꿔놓는다.

노부인은 주인공에게 그저 주입식의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주인공이 자신의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답을 찾기를 원했고 그랬기에 주인공은 노부인이 던진 질문들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었고, 자신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대입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나 또한 주인공과 같은 삶의 태도를 지니고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린이집 후원회장 안야가 토요일 바자회에 케이크를 구워올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주인공은

Yes라고 대답한다. 문제는, 전화를 끊고 나서부터 짜증이 물밀듯이 밀려왔다는 것이다. 왜일까? 주인공은 노부인으로부터 받은 질문에 자신의 현 상황을 대입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요리하고, 케이크를 굽는데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왜 싫은 일이 주어졌을 때, No라고 대답하지 못했을까? 그 질문의 대답은 그동안의 삶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주변의 목소리에 세뇌되어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보다, 타인이 어떻게 반응할까에 더 집중했기 때문이다.

노부인이 던진 인생의 질문은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발견하도록 인도한다. 특히 마지막 질문은 참 묵직하다. 이 질문 앞에서 과연 내가 그동안 움켜지고, 집중하고, 욕심 내왔던 것들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짧지만, 생각해 볼 여지가 많은 책이었다. 물론 이 책이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고, 당장 내 앞에 산적해있는 집안 일과 육아, 직장의 여러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번아웃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내 마음에 위로와 함께 또 다른 시선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은 확실하다. 지치고 힘들어서 뭔가 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일독을 권한다. 새로운 시각을,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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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 - 현대 문명의 본질과 허상을 단숨에 꿰뚫는 세계사
수바드라 다스 지음, 장한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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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관한 언급을 잘 안 하는 편인데(저자의 이력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책을 읽으며 궁금해졌다. 도대체 그의 주 연구분야가 어디길래, 과학과 문학을 아우르며 책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과학사와 철학사를 전공했다는 이력을 읽고 나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책의 제목에 쓰인,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프레임이다. 그것도 유성매직으로 진하게 테두리를 그어놓은, 벗어날 수 없는 범주라고 볼 수 있다. 이 프레임은 어디에 그어진 것일까? 그리고 이 프레임이 과연 무엇일까? 책을 읽는 내내 그동안 내가 배웠던 지식의 (오만한) 프레임을 인식할 수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던 그게 바로 우리의 선입견이었고, 그로 인해 우리는 한 틀을 머리 안에 가진 채, 그 범주 안에서 모든 지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그랬기에 어느 순간, 그 틀을 벗어나는 이야기는 거부하거나 반감이 생겼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바로 그 틀을 깨고, 바로잡는 역할을 해주었던 책이라 이야기할 수 있다.

책에 전체적으로 흐르는, 깨야 할 틀은 바로 "서양"중심의 사고다. 내 안에도 동양과 서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굳어진 이미지가 있다. 서양은 세련된, 정돈된, 앞서가는, 신문명이라는 생각이 드는 반면 동양은 고리타분한, 정적인, 변화 없는, 구시대의 하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과연 정말 우리의 생각대로 동양은 서양에 비해 낙후되고 뒤처진 문명일까? 저자는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바로 그동안 권력을 지닌 서양 세력이 심어놓은 잘못된 프레임이다. 책에 등장하는 어떤 것도 이 프레임의 범주를 넘어서지 않는다. 바로 이 프레임을 기본으로 놓고 모든 논리를 전개한다. 과학을 예로 들어보자. 이 책의 서두에는 한 장의 사진이 등장한다. 보기에는 마치 미용실에서 염색된 모발의 색상을 보기 위한 샘플같이 보인다. 하지만 이 안에는 무시무시한 논리가 숨어있다. 바로 머리카락 색과 곱슬 정도를 통해 좋은 유전자와 나쁜 유전자를 구분하는 머리카락 색깔 측정기였다. 프랜시스 골턴에 의한 골턴 컬렉션도 결을 같이 한다. 앞에서 말한 좋고 나쁜 유전자에 대한 구분이 바로 우생학이었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나쁜 유전자를 가진(소위 장애를 가지거나, 특정 인종 같은) 사람의 생식을 막고, 우월한 유전자만 전달하도록 강제하는 이론을 통해 결국 독일 나치의 유태인 학살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지금이야 우생학이나 유태인 학살 등이 말도 안 되고, 있어서는 안되는 논리라고 이야기하지만 아쉽게도 우리의 주변에서는 우생학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책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다.

교육도, 민주주의도, 예술도, 시간도 바로 이 논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모두가 한번은 죽게 되는, 인간이면 당연히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측면에서 죽음은 평등할까? 글쎄...

책을 읽으며 부딪치는, 당연하다고 알고 있던 기본 프레임의 균열을 느끼게 될 것이다. 왜 우린 서양 중심의 프레임을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스펀지처럼 받아들였던 것일까? 한 번도 의심하고, 왜?냐고 묻지 않았던 것은 단지 우리가 비판적인 사고를 갖기 전에 이 모든 것을 배웠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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