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에 관한 언급을 잘 안 하는 편인데(저자의 이력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책을 읽으며 궁금해졌다. 도대체 그의 주 연구분야가 어디길래, 과학과 문학을 아우르며 책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과학사와 철학사를 전공했다는 이력을 읽고 나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책의 제목에 쓰인,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프레임이다. 그것도 유성매직으로 진하게 테두리를 그어놓은, 벗어날 수 없는 범주라고 볼 수 있다. 이 프레임은 어디에 그어진 것일까? 그리고 이 프레임이 과연 무엇일까? 책을 읽는 내내 그동안 내가 배웠던 지식의 (오만한) 프레임을 인식할 수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던 그게 바로 우리의 선입견이었고, 그로 인해 우리는 한 틀을 머리 안에 가진 채, 그 범주 안에서 모든 지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그랬기에 어느 순간, 그 틀을 벗어나는 이야기는 거부하거나 반감이 생겼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바로 그 틀을 깨고, 바로잡는 역할을 해주었던 책이라 이야기할 수 있다.
책에 전체적으로 흐르는, 깨야 할 틀은 바로 "서양"중심의 사고다. 내 안에도 동양과 서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굳어진 이미지가 있다. 서양은 세련된, 정돈된, 앞서가는, 신문명이라는 생각이 드는 반면 동양은 고리타분한, 정적인, 변화 없는, 구시대의 하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과연 정말 우리의 생각대로 동양은 서양에 비해 낙후되고 뒤처진 문명일까? 저자는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바로 그동안 권력을 지닌 서양 세력이 심어놓은 잘못된 프레임이다. 책에 등장하는 어떤 것도 이 프레임의 범주를 넘어서지 않는다. 바로 이 프레임을 기본으로 놓고 모든 논리를 전개한다. 과학을 예로 들어보자. 이 책의 서두에는 한 장의 사진이 등장한다. 보기에는 마치 미용실에서 염색된 모발의 색상을 보기 위한 샘플같이 보인다. 하지만 이 안에는 무시무시한 논리가 숨어있다. 바로 머리카락 색과 곱슬 정도를 통해 좋은 유전자와 나쁜 유전자를 구분하는 머리카락 색깔 측정기였다. 프랜시스 골턴에 의한 골턴 컬렉션도 결을 같이 한다. 앞에서 말한 좋고 나쁜 유전자에 대한 구분이 바로 우생학이었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나쁜 유전자를 가진(소위 장애를 가지거나, 특정 인종 같은) 사람의 생식을 막고, 우월한 유전자만 전달하도록 강제하는 이론을 통해 결국 독일 나치의 유태인 학살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지금이야 우생학이나 유태인 학살 등이 말도 안 되고, 있어서는 안되는 논리라고 이야기하지만 아쉽게도 우리의 주변에서는 우생학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책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다.
교육도, 민주주의도, 예술도, 시간도 바로 이 논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모두가 한번은 죽게 되는, 인간이면 당연히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측면에서 죽음은 평등할까? 글쎄...
책을 읽으며 부딪치는, 당연하다고 알고 있던 기본 프레임의 균열을 느끼게 될 것이다. 왜 우린 서양 중심의 프레임을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스펀지처럼 받아들였던 것일까? 한 번도 의심하고, 왜?냐고 묻지 않았던 것은 단지 우리가 비판적인 사고를 갖기 전에 이 모든 것을 배웠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