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움직인 과학의 고전들
가마타 히로키, 정숙영, 이정모 / 부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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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며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해온, 고전이라 불리는 책이 수없이 많다. 그러한 고전은 문학, 인문사회 분야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자연과학 분야에도 그러한 고전들이 존재하며, 위대한 과학자들이 현대 문명의 기초를 다져온 증거가 새겨져 있다. 지금까지의 위대한 과학적 발견에는 그 이론을 뒷받침하는 논문이나 저서가 존재했고 그러한 책들이 곧 과학 고전이지만 이공계 전공자를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익숙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나 역시 순수 문과계 인간으로, 수학이나 과학의 어려운 논문이나 이론서 같은 것은 읽을 엄두가 도무지 나지 않는다. 그러나 가마타 히로키 교수의 이 책 <세계를 움직인 과학의 고전들 (원제 世界がわかる理系の名著)>에서는, 인류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과학 고전들 가운데 열네 권을 추려서 과학의 본질과 내용을 '쉽고 간명하게' 풀어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과학 고전들은 대부분 제목은 들어 봤지만 실제로 읽어 본 적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 책에서는 어떠한 배경으로 그 책들이 등장할 수 있었고, 과학자들의 발견이 어떻게 당대에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현대의 우리들의 삶에는 어떠한 도움이 되는지를 알기 쉽게 서술하고 있다. 과학자와 과학책 소개, 관련된 에피소드, 그리고 책의 핵심적인 내용을 일부 발췌했으며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에 대해 칼럼과 함께 소개하기도 한다. 원서에서는 일본 내의 책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번역출간조차 되지 않은 책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번역출간의 인프라가 아직 일본보다 한참 뒤쳐지는 면을 보는 듯 하여, 참 안타까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한국어판에만 있는, 번역본의 감수자가 한국에 출간된 책들 중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되는 책들을 찾아서 간략히 소개하는 부분이 있으므로 딱히 낙심할 것은 없다.

이 책에서 다루는 고전들은 생명, 환경과 인간, 물리, 그리고 지구의 신비의 네 가지 분야로 나뉜다. 생명 분야에는 생물의 진화론을 확립시킨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일상적인 언어와 표현으로 자연에 대한 지식을 전달한 앙리 파브르의 <곤충기>, 완두콩 실험으로 유전 법칙을 밝혀낸, 신부님이었지만 취미로서 연구를 했던 그레고르 멘델의 <식물의 잡종에 관한 실험>, 과학자들의 욕망과 경쟁이 눈에 띄었던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이 들어 있다. 이 중 <이중나선>은 예전에 읽었는데 과학적인 발견에 대한 부분보다도 자신의 연구에 도움을 준 능력있는 동료 연구자를 무시하고 깔아뭉개는 왓슨의 태도가 눈에 띄었던 기억이 난다. 환경과 인간 분야에는 '환세계'라는 새로운 개념을 확립하여 생물학과 철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윅스퀼의 <생물로부터 본 세계>와 '파블로프의 개' 실험으로 유명한 생리학 연구의 선구자 이반 파블로프의 <대뇌 양 반구의 작용에 대한 정의>, 생태계와 자연보호적 측면에서 화학약품의 폐해에 관해 연구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다뤄지고 있다. 

또한 물리 분야에서는 목성의 네 번째 위성을 통해 지동설을 증명한, 이단심판의 탄압 속에서도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명언을 남긴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시데레우스 눈치우스(Sidereus nuncius)>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한, 물리학의 아버지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 일반상대성이론과 특수상대성이론을 정립하고 연구한,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혀를 내민 사진으로 유명한 천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성운과 은하에 대해 연구하여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에드윈 허블의 <성운의 세계>가 소개되어 있다. 지구과학 분야에서는 고대 로마제국의 과학자로 자연에 대해 세세히 기술한 플리니우스의 <자연사>, 지구의 역사와 메커니즘을 설명하여 지질학을 하나의 학문 분야로 정립시킨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 원래 지구상의 대륙들은 한 덩어리였다가 맨틀의 대류를 통해 이동했다는 대륙이동설을 세운 알프레트 베게너의 <대륙과 대양의 기원>이 소개되어 있다.

개중에는 너무나 유명해서 대략적으로나마 내용을 파악하고 있던 책들도 있고, 이 책을 통하여 처음으로 알게 된 책들도 있다. 무엇보다 간결한 문체와 이해를 돕는 각종 그림과 도판들 덕분에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쉬웠고, 내가 순수 문과계인데도 전혀 막히는 부분 없이 굉장히 쉽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역시 교토대에서 '가장 수업 받고 싶은 교수' 1위로 뽑힐 만 하다. 사실 대부분의 자연과학 서적들은 일종의 각오를 하고 읽기 시작하는데, 이 책은 전혀 그런 것 없이 마음 편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또한 이 책은 일종의 소개를 위해 쓰여진 개괄서이므로 더 알고 싶은 분야에 대해서는 본문에 언급된 고전들과 참고 서적들을 직접 하나씩 찾아나가며 읽어나가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아무래도 여기서 그치는 것보다는 좀 더 많은 과학적 지식을 얻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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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0-19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학 고전은 다른 분야와 비교하면 독자들이(과학 전공자 포함)
쉽게 읽혀지지 않기 마련인데, 이 책을 먼저 접하고 관심 있는
과학 고전들을 읽으면 아주 유익할거 같네요.

교고쿠도 2010-10-20 00:00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이론서나 논문 같은것이 어려워서 손이 잘 안가는데(특히나 저같은 문외한은) 이런 개괄서 같은 책은 참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듯 합니다. ^^
 
뇌는 답을 알고 있다 -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 뇌클리닉
다니엘 G. 에이멘 지음, 김승환 옮김 / 부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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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외부에 대한 인식, 시각과 청각 등의 감각, 신체의 움직임, 지능, 성격 등 모든 것이 뇌에서 비롯된다. 멘사 회원이 되고 나서부터 지능지수에 대해 꽤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물론 어릴때만큼은 아니겠지만 성인들도 두뇌를 많이 사용하거나 하면 지능지수를 약간이나마 높일 수 있다고 하니 대천재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영재 정도는 되고 싶다는 일종의 희망을 아직은 갖고 있다. 그런데 대니얼 G.에이멘의 책 <뇌는 답을 알고 있다(원제 Making a good brain great)>를 읽고, 그동안 뇌에 대해 잘 모르던 내용들과 더불어 뇌의 건강을 개선시켜서 삶의 질을 높이는 많은 방법들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에이멘은 정신과 전문의, 신경과학자로 활동하면서 20년 동안 3만건이 넘는 뇌 SPECT 영상을 분석해왔고, 그것을 바탕으로 뇌 문제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진료해 왔다. 예로 제시된 사례들을 보며 그 동안 나이가 들어서, 혹은 선천적으로 성격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되어 왔던 많은 증상들이 알고 보니 스트레스, 머리 부상, 뇌의 과활성 등으로 인해 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일부 흉악범죄자 중에도 뇌를 다치거나 해서 뇌 기능의 문제로 인해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뇌를 심하게 다치면 의식을 잃거나 하지만, 약간의 부상을 입으면 본인도 잘 모르고 지나가기 때문에 머리 부상은 참 무서운 것이다. 뇌를 싸고 있는 두개골 안쪽에는 뼈로 이루어진 울퉁불퉁하고 거친 모서리가 많기 때문에 머리에 충격이 가해지면 뇌가 부딪혀서 혈관들이 터지거나 하는 것이다. 

또한 뇌의 각 영역이 과도하게 활성화되거나 저활성 상태일 때 발생하는 여러 가지 질환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전전두엽이 저활성되면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정신분열증, 행동장애 등이 발생할 수 있고 뇌의 기어 변속 장치에 해당하는 앞띠이랑(전대상)이 과활성되면 강박장애, 섭식장애, 투렛증후군 등이 발생한다. 깊은 번연계가 과활성되면 우울증과 부정적 사고, 주기적 기분장애가 발생하며 뇌의 중심부에 있는 기저핵이 과활성되면 불안장애나 일중독 등이 발생한다. 기억과 정서를 담당하는 측두엽 역시 저활성, 과활성 상태일때 정서와 관련된 여러 질환이 발생한다. 협응과 속도 조절 등을 담당하는 소뇌가 저활성 상태가 되면 자폐, 발달장애, 글씨 쓰기가 어려워짐, 신체의 균형을 못 잡는 현상이 발생한다. 또한 그러한 상태들에 있을 때는 어떠한 치료를 해야 하고, 어떠한 약물이나 보조제가 도움이 되는지도 자상하게 알려주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뇌를 건강하게 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될까? 우선 '완벽한 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뇌에 치명적인 물리적 외상을 피하기 위하여 럭비 같은 위험한 운동과 오토바이 타는 것을 삼가라고 저자는 말한다. 마약류는 물론이고 카페인이나 알코올, 니코틴 같은 것도 뇌에 독성물질로 작용하므로 줄이는 편이 좋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뇌는 80퍼센트가 수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많은 양의 물을 마시는 것 역시 중요하다. 생선류에 들어 있는 오메가3는 대뇌피질을 구성하는 DHA를 공급하므로 치매 등을 예방한다.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이 조화된 균형있는 식사를 하고, 말린 과일 등의 간식을 먹는 것도 꽤 좋다. 써놓고 보니 일반적인 건강론 혹은 장수론과도 비슷한 면이 있는 듯 하다. 뇌가 건강해야 몸의 나머지 부분도 건강할 수 있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항상 무엇인가를 배우고 공부하고, TV나 게임 등을 줄이고 전혀 새로운 영역을 배우는 것에 도전해 보는 것도 두뇌 회전에 도움이 된다. 또한 치유 음악이나 명상 역시 뇌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된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뇌 건강에 큰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피할 수 있다면 과도한 업무 등을 피하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며 자기최면이나 심리상담 등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이 책의 뒤쪽에는 뇌 건강에 도움이 되는 ALC나 오메가3, 알파리포산, 은행잎 추출물, 비타민B, 코엔자임Q10  등의 여러 가지 보조제들이 나오는데, 효과와 권장 용량 등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표로 만들어둔 점이 꽤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의 제일 끝부분에는 '훌륭한 뇌를 위한 15일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나오는데, 위에 열거한 것들을 실천하며 일기처럼 작성해 나가는 것이다. 실제로 해보면 뇌 건강에 꽤 좋을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며, 예전에 몰랐던 많은 것들이 알고 보니 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균형을 잘 못잡는 편이라 툭하면 넘어지고 부딪혀 다치고, 때로는 정신이 너무 산만해서 집중을 못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는데 이런 것이 알고 보니 뇌에서 비롯된 것이라니,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 어떤 면에서는 약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지만 저자처럼 뇌 영상을 바탕으로 진료하는 곳이 한국에는 별로 없고, 또 교통사고 등의 정말 큰 부상을 입지 않고서야 뇌 사진을 찍지 않으며 보험 처리도 되지 않아 꽤 비싸기 때문에 뇌에 이상이 있다고 쳐도 그것을 알아내서 거기에 맞는 치료를 받는 일이 꽤나 어려운 것이 안타깝다. 이러한 뇌 영상 분석 기술을 많은 곳에서 활용하게 되면 원인 모를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빛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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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0-12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뇌를 건강하게 하는 방법,, 유심히 잘 봤었어요, 교고쿠도님^^
지금 저의 생활 방식과 비교하면,,, 제가 뇌를 혹사시키고 있었네요ㅠㅠ

교고쿠도 2010-10-13 02:29   좋아요 0 | URL
으음, 사실 저도 카페인과 니코틴 등으로 뇌를 꽤나 혹사시키는듯 합니다. ㅜ.ㅜ 다행히 격렬한 스포츠 같은건 하지 않아서 물리적 부상에서는 비교적 안전한듯 하지만 예전에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세게 부딪힌 적이 있는데 걱정이 되네요. 흑
 
<하찮은 인간 호모라피엔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존 그레이 지음, 김승진 옮김 / 이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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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믿고 있는 진실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심하지 않는다. 인간의 우월성에 대한 관념이나 유일신에 대한 관념 같은, 오랜 세월 동안 일종의 도그마로서 작용해 온 이론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인류는 언어와 문자, 도구 등을 이용하여 문명을 발전시켜 왔고 이러한 인간이 지구상의 다른 종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화 되어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철학자 존 그레이는 이 책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원제 Straw Dogs: Thoughts on Humans and Other Animals)>에서 그러한 인간 종 중심주의(Anthropocentrism)에 반기를 들고 직설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어찌 보면 꽤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원제의 '지푸라기 개 Straw Dogs'는 노자의 도덕경에 등장한 개념으로 고대 중국인들이 제사를 지낼 때 신에게 바치기 위해 만든 희생물이다. 제사가 끝날 때까지는 최고의 예우를 받았지만 제사가 끝나면 내팽개져쳤다. 저자는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인간의 오만과 편견이 지구를 위협하고 있고 인간이 스스로를 자정하지 않으면 지구가 자정 능력으로 인간을 '지푸라기 개'처럼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인간 종 중심주의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한편, 서구 문명의 핵심에 자리한 휴머니즘과 '진보에 대한 확신'의 약점에 대해서 파헤친다. 

지금까지 과학과 철학, 종교와 도덕에서는 인간은 동물과 달리 주어진 본성을 초월하여 자신이 가진 것을 통제함으로서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일종의 진보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발상 자체가 위선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가이아 가설을 창조한 러브록은 지구를 자기 조절이 가능한 거대한 생명체로 보고 있고, 그래서 인간의 삶이라고 해서 세균의 삶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지구 전체에 파종성 질환을 퍼뜨리는 병리조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확실히 그런 면이 있는 것이, 인간 때문에 지구의 환경이 오염되고 자원이 고갈되고 있으며 다른 동식물 종들이 하나씩 멸종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전개될 미래는 인류의 멸망, 지구의 파괴, 지구의 만성적 감염(지금과 같은 형태로 근근히 사는 것), 공존(인류와 지구가 서로 도와가며 사는) 의 4가지 시나리오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식으로 앞으로도 살아간다면 전쟁이나 기아, 질병 등으로 암울한 미래가 찾아올 것이고, 그러면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는 '진보에 대한 확신' 역시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저자는 도덕에 대해서도 희망적인 입장을 갖지 않는다. 비정상적인 상황에 직면하면 도덕이라는 가치를 실현할 수 없는 예들을 들고, 도덕을 정상적인 상황에서만 적용되는 것으로 정의해 버린다. 사실 인간이 극한 상황에 몰리면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폭력이나 살인, 심지어는 식인까지도 하지 않는가. 물론 모든 인간이 다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도덕도 예의도 최소한의 조건이 갖춰졌을 때만 지켜진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인간들이 왜 만물의 영장이며 특별한 존재인가, 그러한 인간 중심의 철학은 일종의 기만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 우리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행동하는 인간에서 관상(Contemplation, 觀想)하는 인간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놀이하는 인간(호모 루덴스)이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의 마지막 문단이 참 인상깊다. '동물들은 삶의 목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자기모순적이게도, 인간이라는 동물은 삶의 목적 없이는 살 수가 없다. 그냥 바라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삶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일까?' 이 문장들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들을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둥바둥 애쓰며 살기보다 그저 바라보며 성찰하고 지금을 누리며 사는 것, 확실히 매력적이다. 이 책을 읽으며 여러 학자들의 이론들을 짧게나마 접해볼 수 있었던 것과 꽤 어려운 내용인데도 마치 에세이나 독서 노트처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게 쓰여진 점이 꽤 마음에 들었다. 때로는 가벼운 책보다 이런 무거운 내용의 책이 참 끌린다. 사실 읽으며 시니컬한 느낌에 좀 불편하기도 했지만 기존의 권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러한 주장들이 많이 나와야 일종의 균형이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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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수학>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범죄 수학 범죄 수학 시리즈 1
리스 하스아우트 지음, 오혜정 옮김, 남호영 감수 / Gbrain(지브레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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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순수 문과계 인간인 나는 수학을 증오한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수학이 나의 발목을 잡거나 나를 아주 갖고 논 적이 몇 번이었던가. 수학으로 인해 당한 괴로움은 이루 말할수 없다. 그런 내가 이 나이를 먹고 수학 책을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천재 고등학생 리스 하스아우트의 <범죄 수학>은 추리물에 등장할 법한 사건들과 수학을 결합시킨 꽤 기묘한 책이다. 이 책에서 주인공 라비는 경찰에서 풀지 못한 사건이나 미심쩍은 사건들을 멋진 수식으로 해결한다. 마치 히가시노 게이고의 갈릴레오 시리즈에 등장하는 유카와 교수같다. 특유의 BGM이 흐르고, 수식을 칠판이나 유리창 등에 갈겨 쓰며 멋지게 사건을 해결하는 유카와의 모습에 나는 열광했다.

하지만 갈릴레오 시리즈가 수학적인 것보다는 실제 사건에 더 비중을 둔 반면, 이 책은 추리와 수학 중 어떤 쪽의 비중이 더 높으냐면 당연히 수학이다(나로서는 별로 달갑지 않지만). 각 사건의 뒤쪽에 설명된 수식들은 나를 좌절시켰다. 미적분, 수학적 귀납법, 순열조합, 교란순열, 블리히펠트의 보조정리(Blichfeldt's lemma), 민코프스키의 정리(Minkowski's Theorem), 팽창변환(dilatation) 등 절대 만만하지 않은 개념들이 등장한다. 고등학교 수학에서 다루고 있는 것들도 있지만 그것을 훌쩍 넘어서는 수준의 내용들도 꽤 된다. 졸업한지 오래 되어서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나는 분명히 수학2까지 배웠는데, 교란순열이니 팽창변환이니 블리히펠트의 정리 같은 것은 처음 본다. 이런 것들을 알아야만 탐정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포기했을 것 같다. 

추리물과 수학을 결합시키려는 시도는 참 신선하고 좋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 책이 쓰여진 의도처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기에는 좀 무리가 따르지 않나 싶다. 웬만큼 수학을 좋아하거나 잘하지 않고서는 저런 어려운 내용들을 즐겁게 읽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성인 대상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한 것이, 이공계 전공자가 보기에는 좀 싱거울 듯 하고 수학과 친하지 않은 사람이 보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좌절할 가능성이 크다. 이 책을 읽으며 간혹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전반적인 감상은 역시 수학은 나를 괴롭게 한다는 것과 그 어떤 추리물이나 호러물보다도 내게 공포와 절망을 선사해 주었다는 느낌이다. 멘사 회원인 내게 말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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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건축>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자연스러운 건축
쿠마 켄고 지음, 임태희 옮김 / 안그라픽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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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 있어서 20세기는 콘크리트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의 기술로 세계를 덮어버리고,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는 국제화와 세계화가 이 시대의 주제였다. 건축의 영역에서 그것을 가능하게 한 주역은 바로 콘크리트였다. 일본이든 유럽이든 아프리카든 상관없이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고, 형태 또한 자유로우며 내구성도 강하다. 하지만 그 보편성은 장소와 소재와의 관계성을 단절하고 다양한 장소, 다양한 자연이 콘크리트라는 단일 기술의 힘으로 파괴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 책 <자연스러운 건축>에서 저자이자 주목받는 건축가인 쿠마 켄고는 브루노 타우트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작품에서 방법론을 찾아내어 물, 돌, 나무, 대나무, 흙, 종이 등의 소재를 각각의 장소에 맞게 디자인하고 고안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건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관계성이다. 타우트는 형태의 아름다움만 중시하는 모더니즘과 형식주의(formalism)를 비판하고,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주체가 건축이라는 매개를 통하여 자연과 어떻게 접속하며, 우주나 세계라고 하는 영역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밀도 있게 설명하고 있다. 쿠마 켄고 역시 이러한 관계성에 충실한 설계를 하고 있다. 고객의 의뢰에 따라 쌀 창고를 돌 미술관으로 재건축하는 프로젝트에서, 아시노 마을 뒷산에서 얻을 수 있는 아시노석을 이용해 벽돌이나 돌을 쌓아 올리는 조적조 방식을 이용해서 풍부하고 부드러운 질감을 얻는다. 20세기 건축에서 흔히 보이는 강렬한 대비가 아닌 점진적인 그라데이션을 통하여 건축물을 주변 환경과 완만하게 연결하기도 한다. 쵸쿠라 광장 프로젝트에서는 오타니석과 철판을 조합시켜 마치 직물을 짜듯이 만들어나가는 아이디어를 사용해 견고함과 동시에 소재의 장점을 살렸다. 

우키요에 화가 안도 히로시게의 미술관 설계에서는 일본의 삼목을 불연성으로 가공해서 활용하고 마치 신사의 토리이와 같은 이미지로 안과 밖을 연결하는 느낌을 주었다. 이런것이 바로 라이트가 말한 공간의 연속성이 아닐까. 흥미로운 것은 와시(일본 전통 종이)로 만든 벽인데 파손을 우려하는 의견이 많아 뒤쪽에 강도가 센 인공 종이를 덧대었고 그 뒤로 파손 없이 건재하다고 한다. 그러한 자연 소재는 결함을 가지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결함을 인정하고 결함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외에 대나무를 가공해 만든 중국의 그레이트 윌 코민, 안요지의 흙벽돌 담, 보통의 전망대와 달리 산 안쪽으로 파고 들어간 기로잔의 전망대, 다카야나기의 와시로 만든 벽 등 다양한 설계와 결과물을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참 인상적이었던 것이, 저자가 설계를 하면서 의뢰인이나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최대한 예산이나 기한 등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자연 소재가 갖는 한계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함께 해결 방법을 모색한 점이다. 예술가들은 대부분 자기 주장이 강해서 타협할 줄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모습은 꽤 따뜻하게 비춰졌다. 또한 20세기의 모더니즘을 추구하는 건축물들이 사실은 획일적이고 주변 풍경과 동떨어져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참 차가운 느낌이 드는데 쿠마 켄고의 건축물들은 굉장히 주변과 잘 어울리면서 재료 특유의 아름다움을 살릴 수 있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담이지만 책의 디자인도 저자의 철학을 반영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어판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한국어 번역본의 겉 커버는 잔무늬가 새겨졌고 촉감이 꽤 부들부들한 하얀 종이로 되어 있고, 그 커버를 벗겨보면 나무결 무늬의 책이 나온다. 역시 쿠마 켄고답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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