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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건축
쿠마 켄고 지음, 임태희 옮김 / 안그라픽스 / 2010년 7월
평점 :
건축에 있어서 20세기는 콘크리트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의 기술로 세계를 덮어버리고,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는 국제화와 세계화가 이 시대의 주제였다. 건축의 영역에서 그것을 가능하게 한 주역은 바로 콘크리트였다. 일본이든 유럽이든 아프리카든 상관없이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고, 형태 또한 자유로우며 내구성도 강하다. 하지만 그 보편성은 장소와 소재와의 관계성을 단절하고 다양한 장소, 다양한 자연이 콘크리트라는 단일 기술의 힘으로 파괴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 책 <자연스러운 건축>에서 저자이자 주목받는 건축가인 쿠마 켄고는 브루노 타우트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작품에서 방법론을 찾아내어 물, 돌, 나무, 대나무, 흙, 종이 등의 소재를 각각의 장소에 맞게 디자인하고 고안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건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관계성이다. 타우트는 형태의 아름다움만 중시하는 모더니즘과 형식주의(formalism)를 비판하고,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주체가 건축이라는 매개를 통하여 자연과 어떻게 접속하며, 우주나 세계라고 하는 영역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밀도 있게 설명하고 있다. 쿠마 켄고 역시 이러한 관계성에 충실한 설계를 하고 있다. 고객의 의뢰에 따라 쌀 창고를 돌 미술관으로 재건축하는 프로젝트에서, 아시노 마을 뒷산에서 얻을 수 있는 아시노석을 이용해 벽돌이나 돌을 쌓아 올리는 조적조 방식을 이용해서 풍부하고 부드러운 질감을 얻는다. 20세기 건축에서 흔히 보이는 강렬한 대비가 아닌 점진적인 그라데이션을 통하여 건축물을 주변 환경과 완만하게 연결하기도 한다. 쵸쿠라 광장 프로젝트에서는 오타니석과 철판을 조합시켜 마치 직물을 짜듯이 만들어나가는 아이디어를 사용해 견고함과 동시에 소재의 장점을 살렸다.
우키요에 화가 안도 히로시게의 미술관 설계에서는 일본의 삼목을 불연성으로 가공해서 활용하고 마치 신사의 토리이와 같은 이미지로 안과 밖을 연결하는 느낌을 주었다. 이런것이 바로 라이트가 말한 공간의 연속성이 아닐까. 흥미로운 것은 와시(일본 전통 종이)로 만든 벽인데 파손을 우려하는 의견이 많아 뒤쪽에 강도가 센 인공 종이를 덧대었고 그 뒤로 파손 없이 건재하다고 한다. 그러한 자연 소재는 결함을 가지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결함을 인정하고 결함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외에 대나무를 가공해 만든 중국의 그레이트 윌 코민, 안요지의 흙벽돌 담, 보통의 전망대와 달리 산 안쪽으로 파고 들어간 기로잔의 전망대, 다카야나기의 와시로 만든 벽 등 다양한 설계와 결과물을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참 인상적이었던 것이, 저자가 설계를 하면서 의뢰인이나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최대한 예산이나 기한 등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자연 소재가 갖는 한계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함께 해결 방법을 모색한 점이다. 예술가들은 대부분 자기 주장이 강해서 타협할 줄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모습은 꽤 따뜻하게 비춰졌다. 또한 20세기의 모더니즘을 추구하는 건축물들이 사실은 획일적이고 주변 풍경과 동떨어져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참 차가운 느낌이 드는데 쿠마 켄고의 건축물들은 굉장히 주변과 잘 어울리면서 재료 특유의 아름다움을 살릴 수 있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담이지만 책의 디자인도 저자의 철학을 반영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어판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한국어 번역본의 겉 커버는 잔무늬가 새겨졌고 촉감이 꽤 부들부들한 하얀 종이로 되어 있고, 그 커버를 벗겨보면 나무결 무늬의 책이 나온다. 역시 쿠마 켄고답다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