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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움직인 과학의 고전들
가마타 히로키, 정숙영, 이정모 / 부키 / 2010년 9월
평점 :
세상에는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며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해온, 고전이라 불리는 책이 수없이 많다. 그러한 고전은 문학, 인문사회 분야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자연과학 분야에도 그러한 고전들이 존재하며, 위대한 과학자들이 현대 문명의 기초를 다져온 증거가 새겨져 있다. 지금까지의 위대한 과학적 발견에는 그 이론을 뒷받침하는 논문이나 저서가 존재했고 그러한 책들이 곧 과학 고전이지만 이공계 전공자를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익숙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나 역시 순수 문과계 인간으로, 수학이나 과학의 어려운 논문이나 이론서 같은 것은 읽을 엄두가 도무지 나지 않는다. 그러나 가마타 히로키 교수의 이 책 <세계를 움직인 과학의 고전들 (원제 世界がわかる理系の名著)>에서는, 인류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과학 고전들 가운데 열네 권을 추려서 과학의 본질과 내용을 '쉽고 간명하게' 풀어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과학 고전들은 대부분 제목은 들어 봤지만 실제로 읽어 본 적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 책에서는 어떠한 배경으로 그 책들이 등장할 수 있었고, 과학자들의 발견이 어떻게 당대에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현대의 우리들의 삶에는 어떠한 도움이 되는지를 알기 쉽게 서술하고 있다. 과학자와 과학책 소개, 관련된 에피소드, 그리고 책의 핵심적인 내용을 일부 발췌했으며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에 대해 칼럼과 함께 소개하기도 한다. 원서에서는 일본 내의 책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번역출간조차 되지 않은 책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번역출간의 인프라가 아직 일본보다 한참 뒤쳐지는 면을 보는 듯 하여, 참 안타까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한국어판에만 있는, 번역본의 감수자가 한국에 출간된 책들 중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되는 책들을 찾아서 간략히 소개하는 부분이 있으므로 딱히 낙심할 것은 없다.
이 책에서 다루는 고전들은 생명, 환경과 인간, 물리, 그리고 지구의 신비의 네 가지 분야로 나뉜다. 생명 분야에는 생물의 진화론을 확립시킨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일상적인 언어와 표현으로 자연에 대한 지식을 전달한 앙리 파브르의 <곤충기>, 완두콩 실험으로 유전 법칙을 밝혀낸, 신부님이었지만 취미로서 연구를 했던 그레고르 멘델의 <식물의 잡종에 관한 실험>, 과학자들의 욕망과 경쟁이 눈에 띄었던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이 들어 있다. 이 중 <이중나선>은 예전에 읽었는데 과학적인 발견에 대한 부분보다도 자신의 연구에 도움을 준 능력있는 동료 연구자를 무시하고 깔아뭉개는 왓슨의 태도가 눈에 띄었던 기억이 난다. 환경과 인간 분야에는 '환세계'라는 새로운 개념을 확립하여 생물학과 철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윅스퀼의 <생물로부터 본 세계>와 '파블로프의 개' 실험으로 유명한 생리학 연구의 선구자 이반 파블로프의 <대뇌 양 반구의 작용에 대한 정의>, 생태계와 자연보호적 측면에서 화학약품의 폐해에 관해 연구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다뤄지고 있다.
또한 물리 분야에서는 목성의 네 번째 위성을 통해 지동설을 증명한, 이단심판의 탄압 속에서도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명언을 남긴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시데레우스 눈치우스(Sidereus nuncius)>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한, 물리학의 아버지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 일반상대성이론과 특수상대성이론을 정립하고 연구한,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혀를 내민 사진으로 유명한 천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성운과 은하에 대해 연구하여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에드윈 허블의 <성운의 세계>가 소개되어 있다. 지구과학 분야에서는 고대 로마제국의 과학자로 자연에 대해 세세히 기술한 플리니우스의 <자연사>, 지구의 역사와 메커니즘을 설명하여 지질학을 하나의 학문 분야로 정립시킨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 원래 지구상의 대륙들은 한 덩어리였다가 맨틀의 대류를 통해 이동했다는 대륙이동설을 세운 알프레트 베게너의 <대륙과 대양의 기원>이 소개되어 있다.
개중에는 너무나 유명해서 대략적으로나마 내용을 파악하고 있던 책들도 있고, 이 책을 통하여 처음으로 알게 된 책들도 있다. 무엇보다 간결한 문체와 이해를 돕는 각종 그림과 도판들 덕분에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쉬웠고, 내가 순수 문과계인데도 전혀 막히는 부분 없이 굉장히 쉽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역시 교토대에서 '가장 수업 받고 싶은 교수' 1위로 뽑힐 만 하다. 사실 대부분의 자연과학 서적들은 일종의 각오를 하고 읽기 시작하는데, 이 책은 전혀 그런 것 없이 마음 편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또한 이 책은 일종의 소개를 위해 쓰여진 개괄서이므로 더 알고 싶은 분야에 대해서는 본문에 언급된 고전들과 참고 서적들을 직접 하나씩 찾아나가며 읽어나가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아무래도 여기서 그치는 것보다는 좀 더 많은 과학적 지식을 얻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