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고 지금껏 무난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부러워 하고 시샘을 하지만...실은 나는 백조다.
겉으로 유유자적 물을 가르는 것처럼 보이는 백조가
물위에 우아하게 떠있기 위해서는 물 속에서 엄청난 발길질을 해야 하는 걸,
난 일찍 몸으로 터득했다.
아이를 임신하고도 출산 막달까지,
지방 대학의 4시간짜리 야간 강의를 듣기 위해서,
직장 생활과,하루 왕복 4시간의 운전과,공부를병행하였다.
그후 얻게 된 지방대학의 강사자리를 한학기만에 걷어 차 버렸는데,
그 이유가 젊은 친구들은 나처럼 치열한 거 같지 않아서 였다.
나는 일주일 내내 열심히 준비해서 강의를 하려는데,
하나라도 더 들어서 자기것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전혀 없어 보였고,
그러다 보니,내가 내주는 과제를 버거워 하고,
급기야 운전하기 편할려고 입고 다니는 청바지 때문에,
그들에게 자질 운운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만 두게 되었을 때...후회나 미련 따윈 없었고,오히려 시원했었다.
나는 직장이 너무너무 그만두고 싶은데,
사람을 구해놓고 그만 두라는 오너의 말에...
구인 공고를 내고,이러저러 해서 면접을 치르게 되었다.
오기로 한 사람이 면접 시간이 됐는데 연락이 없어 전화를 해보니,
지방에서 올라오는데 길이 너무 막히고 사고까지 나서 좀 늦을 것 같으시단다.
난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사고로 놀랐을 마음을 안정하는 게 우선일듯하여,
난 괜찮으니,사고처리 잘 하고 천천히 오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두어시간 늦게 나타난 이 처자 옷차림부터 가관이다.
명색이 면접인데...찢어진 면 티셔츠를 레이어드 해 입고 똥꼬청치마를 걸쳐주셨다.
내가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다니며 가르쳤던 그 들 중 한명이라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사고는 자기차가 난게 아니고,다른 차가 나서 길이 막혀 늦으셨단다.
아무리 봐도 여행지의 술렁임을 그대로 묻혀가지고 온 기색이 역력하다.
"선배님, 시원한 쥬스 한 잔 주세요~백퍼센트 퓨어 있으면 그거 주세요"
"다들 퇴근해서...밖에 정수기에 백퍼센트 퓨어 워~러 있어요.그거 드세요."
물컵을 들고 들어오는 손톱까지 기르고 메뉴큐어를 발랐다.
손톱은 일을 하면 깎겠지 싶어 꾹 참고,
일에 관한 걸 물어 볼라치니까,이 처자 대답이 가관이다.
"선배님,우리 선수끼리 왜 그래요~^^그건 진단 프로그램 돌리면 되잖아요? "
"그럼 그 진단 프로그램 입력은 어떻게 할 건데... ?"
"건,앞에 코디네이터 시킴 되잖아요?"
"그럼 댁은 뭐 할 건데...?"
"진단 프로그램 결과보고 그에 맞는 처방을..."
"뭐,우리가 하는 일이 오픈 북 테스트는 아니잖아?"
"저 여지껏 그러고 잘 살아왔는 걸요~"
"우리 코디네이터 없어."
"그럼 선배님이 좀 도와주시면 되잖아요?"
"나 그만 두고 싶어서 내 후임을 구하는 거야~"
안면에다 대고,
"그만 나가~~~~~"하고 싶은 걸 꾹 참았더니 병이 날 것 같다.
그만두고 싶은 맘이 너무 절실한데,
이 처자를 내 후임으로 박아넣고 그만둬도 괜찮을까 모르겠다.
주말내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도 결론을 못 내겠다.

무너지는 것들 옆에서
- 고 정 희 -
내가 화나고 성나는 날은 누군가 내 발등을 질걸질겅 밟습니다 내가 위로받고 싶고 등을 기대고 싶은 날은 누군가 내 오른뺨과 왼뺨을 딱딱 때립니다 내가 지치고 곤곤하고 쓸쓸한 날은 지난날 분별없이 뿌린 말의 씨앗,정의 씨앗들이 크고 작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꽂힙니다 오 하느님,말을 제대로 건사하기란 정을 제대로 건사하기란 나이를 제대로 꽃피우기란 외로움을 제대로 바로잡기란 철없는 마흔에 얼마나 무거운 멍에인지요
나는 내 마음에 포르말린을 뿌릴 수 없으므로 나는 내 따뜻한 피에 옥시풀을 섞을 수는 없으므로 나는 내 오관에 유한락스를 풀어 용량이 큰 미련과 정을 헹굴 수는 더욱 없으므로 어눌한 상처들이 덧난다해도 덧난 상처들로 슬픔의 광야에 이른다해도, 부처님이 될 수 없는 내 사지에 돌을 눌러둘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