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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수업 - 따로 또 같이 살기를 배우다
페터 볼레벤 지음, 장혜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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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숲이 우리에게 주는 느낌은 평안함이다. 사진만 보고 있어도 따뜻함이 느껴지고 평화로움이 전해져 온다. 모든 것을 받아주고 덮어줄 것만 같다. 그래서 <나무 수업> 제목을 보면 호기심이 생긴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나무 수업>이다.

 

저자인 페터 볼레벤은 독일에서 20년 넘게 산림 관리 공무원으로 일했고 지금은 휨멜 조합의 산림경영지도원이다. 그는 친환경적 산림 경영을 추구하고 있다. 산림 자체가 친환경이 아닌가 하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에 따르면 나무를 심는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나무가 자라는 과정과 나무를 둘러싸고 있는 생태계가 친환경적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인간의 손이 전혀 닿지 않는 원시림과 같은 산림을 조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보통은 숲과 나무를 가꾸기 위해 농약을 사용하고 기계를 이용하는데 그와 반대로 아무런 손을 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무의 신기한 활동들을 알게 되었는데 그중에 하나는 '뿌리에 문제가 생기면 그 정보가 나무 전체로 퍼져 나가고 나무는 잎을 통해 향기를 발산'한다는 것이다. 그 향기는 애벌레마다 다른데 향기를 뿌려 애벌레의 천적을 불러오게 된다. 이렇게 나무는 움직일 수 없는 대신 자신을 보호할 방어책을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러나 향기는 바람이 불면 멀리까지 날라 가지 못한다. 그래서 나무는 뿌리까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전기 신호도 활용한다고 책에 나와 있다. 뿌리를 통해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주변의 다른 나무들도 물질을 뿜어낸다.  

 

원시림의 세계는 모든 생물체가 긴밀히 연결되어 상호작용하고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무들은 서로 신호를 주고받기도 하고 멀리 있는 나무는 균류를 통해 신호를 받기도 한다. 그런데, 나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잡목이나 풀들도 원시림 안에서 이렇게 신호를 주고받는 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들판에 나가면 식물들이 이런 상호 작용을 안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쉽게 곤충의 먹잇감이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가 말하는 원시림은 1,2백 년이 아니다. 최소 500년, 1000년 이상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원시림을 형성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따라서 저자가 말하는 원시림은 사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숲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나무가 살아가는 모습은 책의 제목처럼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물이 충분하지 않은 비탈에서 자라는 나무는 성장 속도가 느리다. 이것만 보면 사람들은 쉽게 저 나무를 가엽게 여기고 양지바른 평지로 옮겨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가뭄이 오면 비탈에 있는 나무들이 더 잘 견딘다. 평상시에도 물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물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나무들보다 혹독한 가뭄도 잘 견디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릴 때부터 여러 환경과 형편으로 고생을 하며 자라는 아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 순간들을 잘 소화하고 긴 훈련의 시간을 잘 보낸다면 굴곡 없이 지낸 아이들보다 훨씬 강한 어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비탈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은 공급받는 것처럼 아이들도 그러한 사랑과 보살핌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무와 관련해서도 인간의 탐욕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 수 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세상은 숲을 나무 공장이나 자재 창고 정도로 바라본다. 그리고 나무의 생태계와 전혀 관계없는 아무 곳에 나무를 막 심어 놓는다. 대로변에 있는 가로수들은 사실 인간이 보기 좋게 하려고 나무의 의사(?)와 관계없이 심은 것이다. 그리고 나무가 자라서 조금이라도 지저분하다고 생각되면 가차 없이 줄기를 자르며 정비를 한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손길은 전혀 나무가 원하는 것들이 아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수관을 자르면 뿌리도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뿌리는 지상의 수관에 맞추어 최적의 크기를 확보한다. 그런데 갑자기 대부분의 가지를 잘라 내서 광합성을 못하게 되면 지하의 뿌리 중 상당수가 양분을 얻지 못해 굶어 죽는다. 그럼 이 죽은 뿌리 끝과 톱질을 한 줄기의 상처 부위로 균류가 침범한다."

 

아무 생각 없이 자른 나무의 줄기가 결국은 그 나무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전혀 이런 사항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무가 말라죽기 전에 다시 그 자리에 어린 나무로 대체를 할 것이다. 

 

인간에게 주는 또 다른 교훈은 무조건 어릴 때부터 잘 자라는 것이 만사형통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숲을 관리한다고 하면서 햇빛을 못 받는 나무들이 있다고 큰 나무의 줄기를 자르는 경우가 있다. 그럼, 어린 나무들이 햇빛을 더 받아 확실히 성장 속도가 빨라지기는 한다. 그런데, 충분히 단단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키만 자라면 문제가 발생한다.

 

저자가 책에서 자주 언급하는 너도밤나무의 경우 햇빛을 잘 받으면 일단은 빠르게 자란다. 그러나 어느 정도 키가 크게 되면 맨 위에까지 수분이 도달할 수 없게 되고 그럼 그 줄기는 말라죽게 된다. 이어서 말라죽은 줄기를 통해 균류가 번식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어릴 때의 느린 성장은 오래 살 수 있는 전제 조건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나무도 공동체, 즉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저자는 책에서  "한 나무의 삶은 그것을 둘러싼 숲의 삶만큼만 건강하기 때문이다."라고 언급한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건강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내가 아무리 건강하고 잘 먹고 관리를 한다고 하더라도 옆 사람이 감기 걸리면 옮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 도시가 아무리 관리를 잘 해도 옆 도시에서 폐기물과 오염물질을 강을 통해 흘러보내면 우리 도시도 같이 건강에 위협을 받게 된다. 한 나무의 건강이 나무를 둘러싼 숲의 삶만큼 건강한 것처럼 우리의 건강도 우리를 둘러싼 환경만큼만 건강할 수 있다. 

 

그 외에 나무와 관련된 여러 지식을 전달하고 있다.


- 다 자란 너도밤나무 한 그루는 매일 500리터의 물을 끌어올려 가지와 잎에 공급한다.
- 균류는 나무에 의존해서 생명을 유지하지만 중금속 여과 기능을 해준다. 박테리아나 나쁜 균류 등을 막아준다. 
- 여름에 피톤치드 냄새가 강해지기 때문에 숲에 들어가면 좋은 향기가 난다. 호두나무 아래다 벤치를 두면 모기에게 물릴 확률이 가장 적다.
- 이끼 보고 방향 예측하는 것은 잘못이다. 흔히 비바람이 가장 많이 들이치는 서쪽과 북쪽에 이끼가 많이 생긴다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 다른 나라 나무가 멋지다고 함부로 수입해서 심으면 안 된다. 생태계가 다르기 때문에 똑같이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 젊은 숲을 만들자는 건 틀린 말이다. 일정 나이가 넘으면 나무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말은 목재 생산의 차원에서만 맞다. 노인 나무가 성장 속도도 더 빠르고 생물량도 많이 생산한다.

 

책을 읽으며, 저자가 관리하는 원시림에 직접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독일에 갈 일이 있으면 꼭 방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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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1 1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2 0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위기의 한국 경제, 그래도 희망은 있다
유동원 지음 / 원앤원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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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이 출판된 2016년 2월은 코스피가 아직 박스권에 있을 때였다. 그 당시 코스피 지수는 약 1,950이다. 그때 저자는 대한민국 경제에 여전히 희망이 있다는 책을 낸 것이다. 그리고 책에서 대한민국 증시의 재평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2017년 10월 19일) 기준으로 코스피 지수는 2,473이다. 코스피는 박스권을 뚫은지 이미 오래 지났다. 코스피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을 때는 이 책은 코스피 지수가 5년 넘게 박스권에 갇혀 있었던 때 쓰인 책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동시에, 저자의 예측이 현재의 상황과 얼마나 맞아떨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 저자는 앞으로 우리 증시를 어떻게 예측하고 있는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저자는 확신에 찬 어조로 대한민국 증시는 2년 안에 재평가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근거는 대한민국의 신용등급 상승, 수출경쟁력, 기업이익의 증가, 저유가 등이다. 그리고 이어서 2018년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중국으로 인한 위기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의 부동산 거품, 기업들 부채비율, 공급과잉의 문제 등을 눈여겨봐야 한다.

 

책이 나올 당시, 유가는 30달러 밑으로 떨어진 상황이었다. 그리고 현재 기준으로 50달러를 넘어섰다. 저자는 유가가 더 하락하기 힘들고(정제마진, 중국의 수요, 숏 포지션 급격하게 증가) 50달러 선으로 유지할 거라고 이야기하며 수요보다 공급이 더욱 확대되고 있어서 큰 폭으로 상승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원유 수입국의 미래가 밝다고 판단한다. 특히, 한국과 중국 제조 기업들의 실적 기대가 커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유가 하락은 중동 국가들의 긴축 재정을 불러오고 이는 한국의 해외 수주 감소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는 전 세계 모든 나라가 겪는 상황이고, 한국의 세계 경쟁력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유가만 안정되면 한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으로 보고 있다.

 

신용등급 상승과 관련해서는 저자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무디스가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상향한 이유는 통합 재정수지가 2010년부터 흑자가 지속되고 있고, 대외부채가 GDP 대비 30% 수준에 불과하며, 경제와 재정 회복 역량을 높게 보았기 때문이다."

 

무디스 등급에 따르면 한국은 중국, 일본보다도 두 등급이나 높은 Aa2이다. 이는 프랑스, 영국, 홍콩과 같은 등급이다. 책에서는 신용등급 향상으로 "미연준의 금리 인상 이후에 나타날 외국인 자금 유출 우려를 충분히 완화할 수 있다." 고 설명한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천천히만 진행된다면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로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실제로 이는 전 세계 증시에 호재로 작용하여 상승을 불러오고 있다.

 

경제를 예측하는 부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어떤 지표를 눈여겨보느냐이다. 이에 따라 예측이 정반대로 나오기도 한다. 저자가 미국 경제에 있어서 눈여겨보는 지표는 바로 실업률과 소득 증가율이다. 그리고 세계 경제가 과열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각국의 예대율(예금에 대한 대출의 비율)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금융위기와 관련해서는 스왑스프레드를 꼽는다. 

 

저자는 미국 경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미국 경제를 다시 한 번 정리해보면 생산성 성장률이 높고, 소득 증가율이 지속되며, 유동성도 풍부한데다 소매판매 증가율은 아주 약한 2%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미국 경기는 회복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책에서 말하는 저자의 예측과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저자가 힘주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지금(2016년 2월)은 대세 하락의 초입이 아니라 큰 상승장의 중간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출판되었을 때 읽고 저자의 말대로 투자를 했다면 꽤 큰 수익을 맛보았을텐데 라고 사후 확신 편향을 가져 본다.

 

중요한 점은 저자는 무한정 상승할 거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세 상승을 향후 1~3년으로 보고 그 이후 다시 하락장이 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따라서 향후 1~3년 보유 후, 매도하고 잠시 쉬다가 하락이 지나고 다시 투자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올해 한국 증시의 큰 이벤트 중 하나는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의 보복이었다. 그로 인해, 화장품주를 비롯한 관련 주들이 큰 폭으로 하락하였다. 당연히 이런 정치적인 이슈로 인한 이벤트는 예측할 수가 없는 부분이긴 하다.

 

따라서, 모든 거시 지표와 경제 상황이 저자의 책에 예측된 대로 흘러간다고 하더라도 결코 방심할 수 없는 것이 증시 시장이다. 그리고 팻테일 현상은 금융시장에 분명히 존재한다. 따라서 누구도 100% 확신할 수도 없고 확신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시스템 리스크를 대비한 안전장치가 호황기에도 당연히 필요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소득 증가율이 노동생산성의 상승보다 낮기 때문에 그만큼 기업들의 펀더멘털이 상승하고 있다.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 상승률의 괴리는 기업이익 증가로 나타난다."라고 언급한 부분이다. 사실 이것은 이렇게 결론 내릴 문제는 아니다. 이는 한동안 이슈가 되었던 바로 사내유보금 관련 내용이다. 기업의 펀더멘털은 상승하고 있을지 몰라도 서민들의 펀더멘털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물론, 주식 시장 측면에서는 호재이긴 하다. 냉정한 시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가혹한 시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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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12-01 2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즈음 많이 생각하는 부분이예요..
하락장에 대한 대비..

그런데 사람의 탐욕이 대세 상승을 경험한 후 하락을 예상하며 매도하고 잠시 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임을 알기에 균형을 잡으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합니다

데굴데굴 2017-12-02 03:38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고수들도 수익이 난 다음에 큰 손실을 보기 쉽다고 하니깐요

결국 잠시 쉬는 것도 정확한 그림과 예측을 통해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터너 하우스
안젤라 플루노이 지음, 문동식.엄성은 옮김 / 시그니처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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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너하우스는> 프란시스 터너와 비올라, 그리고 그들의 13명의 자녀들이 뒤엉켜 살아가는 모습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려내고 있다. 

 

13명의 자녀는 성인이 되어 각자의 가정을 이루고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혼한 자식을 둔 형제도 있고 경찰로 살아가는 형제도 있고 도박에 빠져 있는 사람도 있다.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다 보니, 대화를 해서 의견을 맞추기가 너무 어렵다. 특히, 중요한 문제를 결정해야 하는데 조율이 되지가 않는다.

 

<터너하우스>에서 13명이 자녀가 맞닥뜨린 문제는 바로 예전에 자신들이 살던 집을 처분하는 것이었다. 시가로 4천 달러 정도에 불과한데, 그 집과 관련되 빚이 4만 달러였기 때문에 공매를 하던 빚을 갚든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공매로 처리하게 하면 집의 소유권을 포기하게 되지만 대신 빚도 함께 탕감될 수 있었다.

 

여기서 13명의 자녀들은 각자의 목소리를 내게 된다. 모두가 추억을 가지고 있는 집이다. 그리고 그 추억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마음 또한 동일하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상황 판단은 제각각이다. 빨리 공매를 진행하려고 몰래 움직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이 가진 돈을 내면서 다 같이 돈을 모으자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이렇게 각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니 일이 진행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족이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산재하지만, 때가 되면 모여서 서로를 축하하고 안부를 묻는다. 물론, 그 배경에는 13명의 어머니인 비올라가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터너하우스의 모습은 마치 나의 부모님 세대와 많은 부분이 닮았다. 내가 어렸을 때, 명절이 되면 항상 할아버지댁에 온 친척이 모였던 기억이 있다. 물론 만나서 처음은 화기애애하다. 그러나, 특정한 이슈가 거론이 되면 불편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며 싸움로 번지기가 일수였다. 그렇게 싸우고 나서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러다가도 다시 연락하며 지내고 다시 다음 명절에 모여서 다시 화기애애하게 지냈다. 

 

그러나 이런 모임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였다. 두 분이 돌아가시고 나면 그 때부터는 모임의 축이 사라지고 만다. 각자 가정이 있고 손자손녀가 있어서 따로 모이게 되는 것이다. 터너하우스는 아직 여기까지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서 비올라가 죽게 되면 조금씩 모임의 원동력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13명의 형제들 한 명 한 명이 프란시스 터너가 되어 다시 대가족의 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사이다.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할 수는 없다. 어릴 때 엄마아빠를 따라 할아버지 할머니께 인사드리러갔는데, 어느 새 보니, 나이를 먹어 내가 엄마아빠가 되었고 이제 나의 자식이 나를 따라 다니는 것이다. 나의 엄마아빠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면 나의 자식들이 엄마, 아빠가 되어 할아버지가 된 나를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그 여정 가운데 수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가문이 되고 가문의 내력이 된다. 그렇게 터너 가문의 내력도 생겨난 것이다.

 

<터너하우스>는 이렇게 인간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아무런 여과 없이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있다. 결혼에 실패하고 도박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집착하는 등 마냥 화목하고 좋은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이야기를 터너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실패와 좌절이 존재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인생을 살아가고 있고 또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가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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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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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는 말이 없다. 역사는 살아 있는 자의 입을 통해 전해질뿐이다. 인간에게 죽은 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많은 미스터리가 풀릴 것이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살아남은 자들뿐만 아니라 죽은 자들의 입을 통해 듣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이야기이다.  

 

그 당시의 잔혹한 현장을 담담하게 마치 제삼자의 이야기인 것처럼 묘사하는데, 이는 오히려 더 그 상황과 그들의 감정에 몰입하게 된다. 특히 죽은 이들을 쌓아놓고 석유통을 붓고 불을 붙이는 장면은 소름 끼치도록 침착하고 차분하다.

 

<소년이 온다>에 나오는 수많은 상황들 중 몇 가지만 나열해도 그 당시 상황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잔인하였고 무자비하였는지 알 수 있다. 전쟁 중 일어날 것 같은 일들이 한 민족 안에서 발생한 것이다. 

 

외부와 연락이 안 되게 시외 전화를 차단시켰다. 군인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때리고 총을 쏘았다. 당시, 중고등학생들까지도 체육관으로 몰려드는 시체를 정리하고 유가족이 오면 안내하고 시체를 이송하는 것을 도왔다. 마지막 날, 도청에서 마지막으로 저항한 광주 시민들은 총을 들고 있었지만 총을 쏘지 않았다. 그러나 군인들은 총을 버리고 항복하며 내려오는 아이들에게 총을 쏘아 죽였다.


군인들이 받은 탄환이 팔십만 발이었다. 그때 도시의 인구는 사십만 명이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문이 자행되었다. 여성들은 아기를 가질 수 없게 되고 남자와 접촉하는 일을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책에서 저자는 인물들의 입을 통해 그 당시의 군 권력을 비판하고 있다. 국가라는 것은 국민들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데 오히려 그 당시 정권은 국민을 죽이고 사실을 왜곡시킨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수많은 광주 시민들이 죽음을 당하였다. 그들은 죽음을 당하면서도 왜 자신들이 몽둥이에 맞고 총을 맞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여기에는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녀들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던 부모의 마음은 찢어졌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 이야기는 그 어머니의 이야기인데 후회와 미안함,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다. 

 

"마지막 날에 내가 너를 찾아 갔을 적에, 네가 그리 순하게 저녁에 들어갈라요, 말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으까이. 나는 안심을 하고 집에 가서 느이 아버지한테 그랬어야.
여섯시에 문 잠그고 집에 온다요. 다 같이 저녁 묵자고 약속했고."

 

518광주 민주화 운동은 비극의 역사이다. 그러나, 비극이라고 해서 꽁꽁 싸매어 두고 숨기기만 해서는 안된다. 다시는 그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어떠한 형태로든 후대에 전해지고 회자되어야 하며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광주 민주화운동 영화들이 나오고 책이 나오는 것이다. 물론, 책과 영화를 통해 그 비극을 알아가는 과정은 가슴 아프고 답답하며 화도 나는 우울하고 어두운 길이다. 그러나 그 길 끝에 밝고 환한 길이 있음을 믿으며 걸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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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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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 중 한 가지는 간접 경험이다. 사람이 짧은 인생을 살면서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삶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 간접 경험하는 것이다. 여행에 관한 책을 읽으면 실제로 내가 여행 중에 있는 것 같고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느껴진다. 추리소설을 읽으면 실제로 내가 탐정이 되어 그 사건을 수사하고 범인을 추적하는 것 같은 긴장감과 스릴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책을 통해 실존하는 내가 아닌 책 속의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결코 쉬운 책이 아니다. 살인자의 엄마가 되는 간접 경험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도 자녀가 있는 엄마이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함께 고민하고 답답해하며 가슴아파할 수밖에 없었다. 
  
책의 저자 수 클리볼드는 1999년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두 명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이다. 이 사건으로 열두 명의 학생과 교사 한 명이 살해를 당했으며 스물네 명이 부상을 입었고 두 범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두 범인은 그 고등학교의 학생들이었다. 
  
내 자식이 살인범이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아프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기어 다니고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모든 순간을 지켜보며 온 정성을 다해 키운 내 자식이 이런 끔찍한 사건을 일으킨다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아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수 클리볼드는 그것을 인지해야 했고 이해해야 했으며 받아들여야 했다. 그 시간이 무려 16년이었다. 저자는 책 첫 부분에 '알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데에 바친 16년'이라고 그 시간을 표현하고 있다. 본인 외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고통과 번민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그 과정과 그녀가 내린 나름의 결론을 책으로 풀어낸다. 그래서 책의 원제도 'A Mother's Reckoning : Living in the Aftermath of Tragedy' 이다. 
  
자신의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처음 듣고 그녀는 모든 부모와 마찬가지로 자식의 안전을 빌게 된다. 그러나 곧이어, 그 범인이 자기 자식인 것을 듣고 모든 상황을 인식하게 된 후, 다음과 같이 기도하게 된다. 
  
리틀턴의 모든 엄마들이 그랬겠지만 나도 아들이 안전하길 빌고 있었다. 그런데 뉴스에서 스물다섯 명이 죽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나는 다른 기도를 했다. 딜런이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하거나 죽이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면, 멈춰야 했다. 엄마로서 가장 힘든 기도였지만, 그래도 그 순간 내가 바랄 수 있는 최대의 자비는 내 아들의 안전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사건이 저자에게 얼마나 비극적이고 고통스러운 사건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자식의 안전이 아니라 죽음을 기도해야 되는 상황보다 더 나쁜 상황은 없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가장 최선이 바로 아들의 죽음이었던 것이다. 
  
사건 이후, 그녀의 가족과 친척은 수많은 비난과 공격을 받게 되고 수십여 개의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그 가운데서도 그녀는 고민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 사건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녀의 아들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었다. 
  
콜럼바인 총기사건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이 그 아이의 부모는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이다. '아이가 그 지경이 되도록 부모는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 분명 가정에서 제대로 돌봄과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부모와의 관계가 안 좋았을 것이다.' 등등 온갖 생각이 떠오른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이런 생각과 너무나 다른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녀의 아들 딜런은 흔히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청소년이었던 것이다. 부모와의 관계도 좋았다. 아빠와 함께 중고차를 수리하며 수다를 즐기는 아이였고 친구들과 함께 프롬파티에도 참석하는 밝은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여러 요소가 결합하여 이런 끔찍하고 무서운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물론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딜런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녀는 사건 이후, 딜런의 일기 등 여러 자료를 통해 딜런에게 우울증과 자살 충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이 몰랐던 아이의 모습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에게 이런 모습이 있더라도 부모가 전혀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은 그녀에게도 충격적이었고 우리에게도 충격적이다. 같이 집에서 하루 종일 지내도 자녀들이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려고 마음만 먹으면 숨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책에서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부모는 자기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자기가 낳아 기른 아기라도 전혀 모르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다. 안됐지만 누가 사이코패스 거짓말쟁이인지 부모도 나만큼이나 오리무중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가장 크게 후회하는 점이 딜런의 내면이 정말 어떤지를 알기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라고 고백한다. 아이의 내면이 어떠한지를 보기 위해 부모는 끝없이 대화하고 들어주고 관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처럼 한 사람의 내면, 속마음을 알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자녀들의 마음을 알기 위해 더 노력하고 끊임없이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책에서 말하는 또 다른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는 친구, 또래 집단의 영향이다. 그녀는 멜로이 박사의 연구 결과를 이야기하며 십 대 충격 가해자 서른네 명 가운데 25퍼센트가 짝을 이루어 움직였다는 점을 언급한다. 
  
멜로이 박사는 이렇듯 위험한 2인조가 형성될 수 있으므로 부모들이 아이와 친구들의 역학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두 번째 사실은, 전형적으로 두 아이 중 한 명은 사이코패스이고 나머지 한 명은 영향을 쉽게 받고 의존적 성향이 있고 우울에 시달린다는 점이다.
  
피터 버거를 비롯한 저명한 사회학자들 신념을 형성하는 데 또래 집단이 깊은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리치 해리스는 ‘양육 가설’이란 책에서 부모는 아이의 성격이 결정되는 데 별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아이들은 집 밖에서 또래들과 함께하는 환경 속에서 사회화되고 성격을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또래집단이 아이들의 가치관과 성격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이 영향을 미치고 부모의 영향은 생각보다 작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 클리볼드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후회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딜런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굴욕을 당했다고 해서 딜런이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이 덜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딜런이 종일 지내는 장소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잘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 뼈아프게 후회된다. 학교의 학업성취도 대신 학교 분위기와 문화를 아는 데(그리고 그게 딜런과 잘 맞는지 파악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녀의 후회는 자녀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대부분의 부모는 학교를 선정할 때 학교의 학업성취도에만 관심을 보인다. 학교의 분위기와 문화는 학업성취도와 같은 말로 여긴다. 공부를 열심히 시켜 좋은 대학에 보내는 학교면 그 학교는 좋은 분위기와 좋은 문화를 가진 학교로 판단해버린다. 그러나 정작, 아이의 정서와 가치관을 건강하게 형성하는데 그 학교의 분위기와 문화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오해와 싸워야 했고 견뎌야 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느끼고 배우고 알게 된 것들을 나누고자 용기를 내고 그동안의 이야기를 공개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녀가 고민하며 깨달은 것들을 조심스럽게 풀어 놓았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부모들을 생각하며 이 책을 쓴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나를 비롯한 많은 부모들이 다시 한 번 자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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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oman 2017-11-30 0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데굴데굴 2017-11-30 08:15   좋아요 0 | URL
저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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