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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평점 :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 중 한 가지는 간접 경험이다. 사람이 짧은 인생을 살면서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삶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 간접 경험하는 것이다. 여행에 관한 책을 읽으면 실제로 내가 여행 중에 있는 것 같고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느껴진다. 추리소설을 읽으면 실제로 내가 탐정이 되어 그 사건을 수사하고 범인을 추적하는 것 같은 긴장감과 스릴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책을 통해 실존하는 내가 아닌 책 속의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결코 쉬운 책이 아니다. 살인자의 엄마가 되는 간접 경험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도 자녀가 있는 엄마이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함께 고민하고 답답해하며 가슴아파할 수밖에 없었다.
책의 저자 수 클리볼드는 1999년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두 명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이다. 이 사건으로 열두 명의 학생과 교사 한 명이 살해를 당했으며 스물네 명이 부상을 입었고 두 범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두 범인은 그 고등학교의 학생들이었다.
내 자식이 살인범이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아프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기어 다니고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모든 순간을 지켜보며 온 정성을 다해 키운 내 자식이 이런 끔찍한 사건을 일으킨다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아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수 클리볼드는 그것을 인지해야 했고 이해해야 했으며 받아들여야 했다. 그 시간이 무려 16년이었다. 저자는 책 첫 부분에 '알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데에 바친 16년'이라고 그 시간을 표현하고 있다. 본인 외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고통과 번민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그 과정과 그녀가 내린 나름의 결론을 책으로 풀어낸다. 그래서 책의 원제도 'A Mother's Reckoning : Living in the Aftermath of Tragedy' 이다.
자신의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처음 듣고 그녀는 모든 부모와 마찬가지로 자식의 안전을 빌게 된다. 그러나 곧이어, 그 범인이 자기 자식인 것을 듣고 모든 상황을 인식하게 된 후, 다음과 같이 기도하게 된다.
리틀턴의 모든 엄마들이 그랬겠지만 나도 아들이 안전하길 빌고 있었다. 그런데 뉴스에서 스물다섯 명이 죽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나는 다른 기도를 했다. 딜런이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하거나 죽이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면, 멈춰야 했다. 엄마로서 가장 힘든 기도였지만, 그래도 그 순간 내가 바랄 수 있는 최대의 자비는 내 아들의 안전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사건이 저자에게 얼마나 비극적이고 고통스러운 사건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자식의 안전이 아니라 죽음을 기도해야 되는 상황보다 더 나쁜 상황은 없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가장 최선이 바로 아들의 죽음이었던 것이다.
사건 이후, 그녀의 가족과 친척은 수많은 비난과 공격을 받게 되고 수십여 개의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그 가운데서도 그녀는 고민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 사건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녀의 아들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었다.
콜럼바인 총기사건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이 그 아이의 부모는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이다. '아이가 그 지경이 되도록 부모는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 분명 가정에서 제대로 돌봄과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부모와의 관계가 안 좋았을 것이다.' 등등 온갖 생각이 떠오른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이런 생각과 너무나 다른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녀의 아들 딜런은 흔히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청소년이었던 것이다. 부모와의 관계도 좋았다. 아빠와 함께 중고차를 수리하며 수다를 즐기는 아이였고 친구들과 함께 프롬파티에도 참석하는 밝은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여러 요소가 결합하여 이런 끔찍하고 무서운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물론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딜런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녀는 사건 이후, 딜런의 일기 등 여러 자료를 통해 딜런에게 우울증과 자살 충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이 몰랐던 아이의 모습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에게 이런 모습이 있더라도 부모가 전혀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은 그녀에게도 충격적이었고 우리에게도 충격적이다. 같이 집에서 하루 종일 지내도 자녀들이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려고 마음만 먹으면 숨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책에서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부모는 자기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자기가 낳아 기른 아기라도 전혀 모르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다. 안됐지만 누가 사이코패스 거짓말쟁이인지 부모도 나만큼이나 오리무중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가장 크게 후회하는 점이 딜런의 내면이 정말 어떤지를 알기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라고 고백한다. 아이의 내면이 어떠한지를 보기 위해 부모는 끝없이 대화하고 들어주고 관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처럼 한 사람의 내면, 속마음을 알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자녀들의 마음을 알기 위해 더 노력하고 끊임없이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책에서 말하는 또 다른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는 친구, 또래 집단의 영향이다. 그녀는 멜로이 박사의 연구 결과를 이야기하며 십 대 충격 가해자 서른네 명 가운데 25퍼센트가 짝을 이루어 움직였다는 점을 언급한다.
멜로이 박사는 이렇듯 위험한 2인조가 형성될 수 있으므로 부모들이 아이와 친구들의 역학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두 번째 사실은, 전형적으로 두 아이 중 한 명은 사이코패스이고 나머지 한 명은 영향을 쉽게 받고 의존적 성향이 있고 우울에 시달린다는 점이다.
피터 버거를 비롯한 저명한 사회학자들 신념을 형성하는 데 또래 집단이 깊은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리치 해리스는 ‘양육 가설’이란 책에서 부모는 아이의 성격이 결정되는 데 별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아이들은 집 밖에서 또래들과 함께하는 환경 속에서 사회화되고 성격을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또래집단이 아이들의 가치관과 성격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이 영향을 미치고 부모의 영향은 생각보다 작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 클리볼드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후회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딜런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굴욕을 당했다고 해서 딜런이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이 덜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딜런이 종일 지내는 장소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잘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 뼈아프게 후회된다. 학교의 학업성취도 대신 학교 분위기와 문화를 아는 데(그리고 그게 딜런과 잘 맞는지 파악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녀의 후회는 자녀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대부분의 부모는 학교를 선정할 때 학교의 학업성취도에만 관심을 보인다. 학교의 분위기와 문화는 학업성취도와 같은 말로 여긴다. 공부를 열심히 시켜 좋은 대학에 보내는 학교면 그 학교는 좋은 분위기와 좋은 문화를 가진 학교로 판단해버린다. 그러나 정작, 아이의 정서와 가치관을 건강하게 형성하는데 그 학교의 분위기와 문화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오해와 싸워야 했고 견뎌야 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느끼고 배우고 알게 된 것들을 나누고자 용기를 내고 그동안의 이야기를 공개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녀가 고민하며 깨달은 것들을 조심스럽게 풀어 놓았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부모들을 생각하며 이 책을 쓴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나를 비롯한 많은 부모들이 다시 한 번 자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