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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죽은 이는 말이 없다. 역사는 살아 있는 자의 입을 통해 전해질뿐이다. 인간에게 죽은 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많은 미스터리가 풀릴 것이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살아남은 자들뿐만 아니라 죽은 자들의 입을 통해 듣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이야기이다.
그 당시의 잔혹한 현장을 담담하게 마치 제삼자의 이야기인 것처럼 묘사하는데, 이는 오히려 더 그 상황과 그들의 감정에 몰입하게 된다. 특히 죽은 이들을 쌓아놓고 석유통을 붓고 불을 붙이는 장면은 소름 끼치도록 침착하고 차분하다.
<소년이 온다>에 나오는 수많은 상황들 중 몇 가지만 나열해도 그 당시 상황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잔인하였고 무자비하였는지 알 수 있다. 전쟁 중 일어날 것 같은 일들이 한 민족 안에서 발생한 것이다.
외부와 연락이 안 되게 시외 전화를 차단시켰다. 군인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때리고 총을 쏘았다. 당시, 중고등학생들까지도 체육관으로 몰려드는 시체를 정리하고 유가족이 오면 안내하고 시체를 이송하는 것을 도왔다. 마지막 날, 도청에서 마지막으로 저항한 광주 시민들은 총을 들고 있었지만 총을 쏘지 않았다. 그러나 군인들은 총을 버리고 항복하며 내려오는 아이들에게 총을 쏘아 죽였다.
군인들이 받은 탄환이 팔십만 발이었다. 그때 도시의 인구는 사십만 명이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문이 자행되었다. 여성들은 아기를 가질 수 없게 되고 남자와 접촉하는 일을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책에서 저자는 인물들의 입을 통해 그 당시의 군 권력을 비판하고 있다. 국가라는 것은 국민들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데 오히려 그 당시 정권은 국민을 죽이고 사실을 왜곡시킨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수많은 광주 시민들이 죽음을 당하였다. 그들은 죽음을 당하면서도 왜 자신들이 몽둥이에 맞고 총을 맞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여기에는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녀들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던 부모의 마음은 찢어졌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 이야기는 그 어머니의 이야기인데 후회와 미안함,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다.
"마지막 날에 내가 너를 찾아 갔을 적에, 네가 그리 순하게 저녁에 들어갈라요, 말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으까이. 나는 안심을 하고 집에 가서 느이 아버지한테 그랬어야.
여섯시에 문 잠그고 집에 온다요. 다 같이 저녁 묵자고 약속했고."
518광주 민주화 운동은 비극의 역사이다. 그러나, 비극이라고 해서 꽁꽁 싸매어 두고 숨기기만 해서는 안된다. 다시는 그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어떠한 형태로든 후대에 전해지고 회자되어야 하며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광주 민주화운동 영화들이 나오고 책이 나오는 것이다. 물론, 책과 영화를 통해 그 비극을 알아가는 과정은 가슴 아프고 답답하며 화도 나는 우울하고 어두운 길이다. 그러나 그 길 끝에 밝고 환한 길이 있음을 믿으며 걸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