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부의 철학 - 깊은 공부, 진짜 공부를 위한 첫걸음
지바 마사야 지음, 박제이 옮김 / 책세상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저자는 일본에서 주목받는 젊은 철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먼저 집단적 동조에 주목한다. 페이스북을 하다가 아무 생각 없이 '좋아요'를 누르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점점 잠시 멈추어 생각하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은 나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여기저기로 끌고 다니며 생각 없이 그저 기사를 소비하게 만든다. 그래서 저자는 '유한화'를 제안한다.
"나는 제안한다. 한정된 것, 즉 유한한 범위에서 가만히 멈춰 서서 생각해보자고. 무한히, 정보의 바다에서 쉴 새 없이 밀어닥치는 파도에, 동조에, 그저 휩쓸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나는 이것을 공부했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 경험을 만들어야 한다. 공부를 유한화하는 것이다."
저자는 '깊이 공부한다는 것은 동조에 서툴러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관계에서 공감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생각 없는 공감과 동조는 위험하고 사고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부를 하면 내가 예전에 생각 없이 동조했던 것이 '바보 같았다'라고 돌아보게 된다. 내가 좁은 세상에 살았다는 것을 깨다는 것이다. 공부는 이런 점에서 과거의 나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동조에 서툰 사람이 되는 과정인 것이다. 이는 또한 발전적 변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는 쉬운 과정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환경에 맞춰 살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조는 다른 말로 '환경의 코드에 자신을 온전히 맞춘 상태'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따라서, 동조에 서툴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고 겉돌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환경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어떤 환경이든, 사람은 환경에 속하게 된다. 다만, 저자는 언어를 통하여 환경에 속하되 거리를 두라고 조언한다.
언어는 바로 환경에 의하여 나에게 설치된 것이다. 저자는 언어를 통해 점령당했다고 표현한다. 동시에, 언어는 현실에서 분리되어 있어서 다른 의미 부여의 가능성도 항상 열려 있다. 이것이 중요하다.
"어떤 환경, 즉 언어적 가상현실이 인간을 지배하는가 하면 해방하기도 한다. 즉 언어는 인간을 조종하는 리모컨이다."
따라서, 환경의 동조에서 벗어나려면 다른 동조로 이동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결국 공부는 다른 동조로 이사 가는 것이다. 동조에서 다른 동조로 이동하는 도중 우리는 불편을 경험하게 되고 위화감이 발생한다.
"특정 환경에서만 쓰이는 화법을 일부러 사용해야 한다. '기존의 동조라면 이러한 화법(=대상을 바라보는 방법)은 쓰지 않았을 텐데'하는 위화감이 들 것이다. '억지로 말하는 느낌'이 들 것이다.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저자는 도구적 언어 사용과 완구적 언어 사용을 구분한다. 도구적 언어는 어떤 목적을 위해 말을 사용한다. 완구적 언어는 말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말장난이나 잰말놀이 등이 그렇다. 환경 속에 있으면서 거리를 두기 위하여 도구적 언어 사용을 줄이고 완구적 언어 사용을 늘려야 한다. 이를 저자는 "언제나 언어유희적 태도로 언어에 관여하는 의식을 지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일부러 동조에 서툰 말을 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일부러 언어를 재수 없게 만들기' 위한 기술이라고 말한다. '겉도는'말을 하는 것이다. 겉도는 말을 통하여 공동성에서 분리하고 동조를 끊는다.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바로 츳코미(아이러니)와 보케(유머)이다. 아이러니에서 출발해서 유머로 나아간다.
"공부를 깊게 하다 보면 아이러니와 유머가 강해진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을 통해 나는 반대로 이렇게 생각했다. 아이러니와 유머를 일부러 발휘하는 방법을 제시한다면 깊은 공부를 할 수 있는 방향이 보이겠구나, 하고."
"아이러니는 '근거를 의심하는 것'이다. 유머는 '시각을 바꾸는 것'이다."
대화를 할 때 숨어 있는 코드를 발견하고 벗어나야 한다. 저자는 예를 들며 구직 활동에서 실패한 사람을 격려하는 일은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데, 여기에는 '취직은 좋은 것'이라는 코드가 숨어 있다고 말한다. 모두가 당연시 여기는 이 코드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애초에 왜 일해야만 하는 것인가?' 같은 질문 말이다.
아이러니는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에 '일부러' 혹은 '자각적으로' 반기를 든다. 즉, 숨겨진 코드를 발견하고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보기 위해서이다. 아이러니는 대화를 깊게 만드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이다. 유머는 자각적일 수도 있고 무자각적일 수도 있는데 저자는 자각적 유머를 말한다고 부연 설명한다.
결혼에 대한 아이러니는 '결혼이 행복할까?', '나만의 행복이란 무엇일까?' 같은 것들이다. 즉, 결혼의 당위성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 그런 다음, 유머를 통하여 코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나아가 코드의 부재의 상태에 가까워진다.
"대화의 코드는 애초에 불확정적이고 흔들리는 것이다... 아이러니로 인해 무리하게 코드의 근거를 찾으려다 보면, 코드 그 자체의 불확정성은 요컨대 '그저 분위기'였을 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환경은 퇴색하고 만다. 아이러니는 이처럼 '코드를 전복'한다."
유머는 아이러니와 달리 코드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고 새로운 '시각'을 가져오는 역할을 한다. 책에는 유머의 예로 "불륜이란 건 말이야, 음악 아닐까?"가 나온다. 이 유머를 통하여 '불륜은 악이다'라는 코드는 그렇다 치고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를 틀어 버린다.
공부를 하는 것은 문제의식을 지니는 것이다. 문제의식은 넓혀가야 한다. 결국, 개인의 문제도 구조적 문제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나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는 메타적 인식을 지녀야 한다고 설명한다.
공부의 유한화도 필요하다. 아이러니와 유머를 통하여 깊이 파고들어가다 한눈팔기가 자주 일어난다. 유한화라는 것이 최후의 공부라든지, 절대적 근거를 추구한다는 것은 아니다. 깊이 파고들기와 한눈팔기 프로세스를 반복하다 어느 선에서 만족하는 것이 공부의 유한화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결국, 어느 선에서 비교를 중단하고 임시 고정의 결론을 내려야 한다. 다만, 계속 정보 수집을 하며 여전히 비판적인 상태와 듣는 귀는 유지해야 한다. 이를 '공부를 계속하는 일'이라고 저자는 표현한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에 근거한 비교를 자기 나름대로 제대로 받아들여서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다만 그 결론은 절대적이지 않은 가상의 것이어야 한다."
이렇게 전체적인 이야기를 한 다음 구체적으로 어떻게 공부를 할 것인지 설명한다. 인터넷보다는 종이 책으로 먼저 공부할 것을 조언한다. 입문서는 여러 권을 읽고 비교해야 한다. 입문서, 교과서, 기본서 순으로 공부해야 한다. 출판 연도는 최근일수록 좋다. 완벽한 독서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질리지 않고 공부를 계속하려면 완벽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문서, 더 한정하면 학문적인 '연구서'를 공부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신뢰성의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인) 근거란 그 저자, 문헌이 '지적인 상호 신뢰의 공간에서 신뢰를 받고 있는지 여부'다."
독서를 할 때, 자신의 체감으로 끌어당겨서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텍스트의 구조 안에서 각 개념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텍스 안에서 언어가 사용되는 방법과 정의를 확인해야 한다. 구조를 파악하기 위하여 개념의 대립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조언한다.
중요한 텍스트는 외우거나 따로 독서 노트(문헌 제목과 쪽수, 출판 연도 등)에 정리해야 한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이렇게 독서 노트를 계속 쓰는 것도 포함한다. 저자는 에버노트 유저로, 에버노트나 원노트를 독서노트로 사용하라고 추천한다. 저자는 아이디어를 손으로 적고 사진을 찍어 디지털로 옮긴다.
글쓰기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글쓰기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나서 쓰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서 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먼저 자유롭게 목록 쓰기를 하라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