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은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아 - 힘겨운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니콜 슈타우딩거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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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뿐인 인생. 나만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다.
유방암을 이겨낸, 내 인생을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은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아. 니콜 슈타우딩거. 갈매나무.
 
갈매나무 출판사 마지막 서포터스 활동 일환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2017년 가을. 내가 준비하던 시험은 결국 사라졌다. 더는 도전조차 불가능했다. 이력서를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하지만 단 한 자도 쓸 수 없었다. 이력서에 쓸 만한 내용은 내 인생에 존재하지 않았다. 내 20대는, 그 무엇도 남기지 못한 채, 허무하게 스러져갔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비관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이력서에 쓸 내용이 없다면 이력서를 쓰지 않아도 되는 직업을 찾으면 될 일. 다행히 믿는 구석이 조금은 있었다. 부모님에게 재차 손을 벌리는 것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중에 잘 돼서 갚으면 될 일.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언제 잘 되는지 묻는다면. 내가 알고 싶은 걸 당신이 묻지 마. 버럭.

2017년 가을. 노력한다고 모두 이룰 수 있는 건 아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뒤, 하고 싶지 않은 건 하지 않기로 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하고 싶지 않은 걸로 채우고 싶지는 않았다. 부스러기나마 남아있던 양심을 박박 긁어 곱게 모은 뒤 쓰레기통으로 직행시켰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그런 말은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기로 했다. 하나 남은 내 자존심이었다.
어쩔 수 없이 주어지는 상황에서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분명 있을 터. 그것만큼은 스스로 결정하기로 했다. 후회하지 않는 인생은 불가능하다. 하나. 왜 그때 나는 스스로 결정하지 않았을까. 왜 주위에 등 떠밀리듯 결정했을까. 그 후회만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설령 결과가 나쁘게 나오더라도. 스스로 결정한 자의 권리이자 의무로서, 오만하게 고개를 들기로 했다.
설령 패배자의 자존심에 지나지 않더라도.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 어떤 역경이 닥치든 오만하게 고개를 들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나아가는 사람들. 강한 것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 그들은 분명 분노하며 좌절하고 슬퍼한다. 하지만 그 역경을 핑계로는 만들지 않는다. 상황이 나빠질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상황 때문에 ‘나’까지 나빠질 수는 없다. 그들은 그렇게 믿고 나아간다.
이 책의 저자도, 그런 ‘오만한’ 사람이다. 
 
순탄한 인생은 아니다. 곳곳의 암초에 걸려 넘어지고 비틀거린다. 왜 하필 내가. 이런 말로 세상을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상황이 ‘나’를 좌지우지하는 건 허락하지 않는다. 설령 그런 상황일지언정 내 인생을 살겠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꿋꿋하게 나아간다.
자기계발서로서 읽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에세이로 읽었다. 잘 나가던 영업사원에서 카운슬러로 변신하고 암을 겪은 뒤 강사로 다시 인생을 바꾼 사람의 에세이.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생활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 사람의 분투기로.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공감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렇더라도 좌절하고 분노하면서도 결국 자신의 인생을 흔들림 없이 사는 그녀의 인생은 멋있었다. 한 번 사는 인생, 폼 나게 사는 것도 분명 좋겠지만, 설령 소소할지언정 타인이 아닌 ‘나’를 위한 인생을 사는 것 역시 나름 운치가 있지 않을까. 

이 책 184p.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불행한지 아닌지 고민할 시간이 있어서다.” 읽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맞는 말이다. 사실 상황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건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2017년 가을. 나는 내 인생을 비관한 채 방구석에 처박혀 우는 쪽을 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큼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까지 떨어지는 건 내가 비참해서 싫었다. 원하던 인생을 살 수 없다면, 남은 길에서 원하는 인생을 만들면 된다는 마음을 품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 얼마만큼 만들었는지 묻는다면, 화낼 거지만. 제대로 화낼 거지만. 마구마구 분노할 테지만.

이 책은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책이 아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질문하는 책이다. 그래서 책에 대한 이야기 대신 내 이야기를 해보았다. 당신 역시, 당신의 이야기가 있겠지. 이 책을 읽으며 ‘당신’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면 좋겠다.

마지막. 사족 of 사족. 신뢰하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는다. 그 어떤 말에도 흔들림 없이 내 옆을 지켜주는 남편에게 감사 인사를 해두자. 사실 그 시기에, 실패해도 괜찮아. 그래도 옆에 있을게. 그렇게 말해주는 남편(당시에는 남자친구)이 없었다면 조금은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그, 그래도. 사랑하지는 않아. 흥핏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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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3 - 동서융합의 세계제국을 향한 웅비 그리스인 이야기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경덕 옮김 / 살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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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몰락. 그리고 알렉산더 대왕이 몰고온 헬레니즘
그리스인 이야기의 마지막 이야기를 읽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

 

 

그리스인 이야기3. 시오노 나나미. 살림.

이 글은 살림출판사 서포터스 마지막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자기계발서에서 바쁘다는 말은 자기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말과 동격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지금 그 말에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자기 입으로 바쁘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그리 바쁘지 않다. 정말로 바쁘면, 바쁘다는 말을 할 시간조차 사라진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그리 크지 않다. 특히 우리 과는 현재 다섯 명. 원래는 여섯 명인데, 한 명이 빠져나간 뒤, 충원이 되지 않고 있다. 그도 모자라 신입만 나까지 포함해서 세 명. 지금은 바쁘다는 말을 할 정도의 여유는 생겼지만, 그동안은 바쁘다는 말조차 할 시간이 없었다. 책을 펴고 싶어도,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나날이었다.
고작해야 몇 주 일에 치인 걸로 징징거리는 나로서는, 몇 년 혹은 몇 십 년,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사람을 보면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 책에 나오는 알렉산더 대왕이 그렇다. 그리스 식으로 읽으면 알렉산드로스지만, 일단은 익숙한 방식으로 읽어보자. 참고로 우로부치가 쓴 페이트 제로 소설에서는 이스칸달이라고 읽는다. 애니로도 나온 상태다.

서포터스 마지막 활동으로는 그리스인 이야기3이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책은 읽지 않고 있었다. 그 누구도 멸망을 바라지 않음에도, 결국은 멸망으로 향해버리는 이야기는 서글프고도 우울해서. 하지만 그리스인 이야기3은 다행히 서글프지도 우울하지도 않았다. 알렉산더 대왕이라는 걸출한 인물의 일대기를 시오노 나나미의 필체로 재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마케도니아의 왕인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의 패권을 쥔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그리스의 도시국가가 패권 국가가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와도 동일하다. 로마 시대에도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존중받았지만, 그들은 더는 주인공이 될 수는 없었다. 그 점에서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의 멸망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해도 좋은 인물.

하지만. 마케도니아에서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까지 10년 간 승승장구를 거듭한 걸출한 왕의 일대기를 보다보면, 그리스의 몰락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기분이 되어 버린다. 그리스의 몰락은 단순한 몰락이 아니라 새 시대의 시작이기 때문일지도. 
10년 간 승승장구를 거듭한 걸출한 왕. 자신이 구상한 것을 대부분 이루어낸 왕. 대부분의 일을 직접 결정한 왕은, 그 누구보다 바빴을 터. 하지만 그럼에도 왕성한 활동을 계속해냈다. 결국은 그 왕성한 활동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에 끝까지 매달릴 수 있는 열정과 재능은 확실히 부럽다. 알렉산더 대왕처럼 살고 싶은지 묻는다면, 절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겠지만. 대충 사는 인생도 나름대로 묘미가 있다. 절대 열심히 살기 귀찮아서 하는 말이 아니다. 아닐 거다. 데헷.
 
시오노 나나미는 그리스인 이야기3을 끝으로, 더는 역사 에세이는 쓰지 않겠다고 후기에서 밝혔다. 아마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 책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팬도 많고 안티도 많았던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를 시작해서 다양한 시오노 나나미 책을 읽었다. 마음에 든 책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책도 있었다.
분명 그녀의 책은 완벽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녀의 감상으로 재구성한 다양한 시대의 이야기는 즐거웠다. 그녀의 시각으로 내가 아는 시대를 더듬는 건 색다른 맛이 있었다. 그런 그녀의 책이 알렉산더 대왕을 마지막으로 끝난다니 아쉽고 섭섭하다.

다만. 그녀가 알렉산더 대왕을 마지막으로 이 책을 끝낸 건, 그녀는 물러나더라도, 그녀의 뒤를 이을 새로운 작가가 나타날 거라는 희망을 품었기 때문.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리 슬프지는 않다.
시오노 나나미의 마지막 역사 에세이. 이것만으로도 시오노 나나미 팬이라면 읽어볼 만 하지 않을까. 알렉산더 대왕의 연대기는 워낙에 유명하지만, 이걸 시오노 나나미 시각에서 읽는 것도 분명 색다를 테고. 일단 시오노 나나미 그 이름만으로도 책의 재미는 어느 정도 보증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이 당신에게도 즐거웠으면 좋겠다.

서포터스 유종의 미를 지각으로 거두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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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뇌과학자의 뇌가 멈춘 날, 개정판
질 볼트 테일러 지음, 장호연 옮김 / 윌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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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으로 쓰러진 뇌과학자. 그리고 재기하기까지.
뇌졸중으로 쓰러져도 재기할 수 있다는 희망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책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질 볼트 테일러. 월북.

월북 서포터스 일환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골든타임에서 출간된 브레인 온 파이어라는 책을 떠올리며 읽은 책. 희귀병 때문에 뇌가 손상되어 자신을 잃어가던 여자가, 다행히 원인을 제거하여 무사히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 뇌라는 기관이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아마도.

브레인 온 파이어도 매우 극적이지만, 이 책은 더 극적. 30대 중반에 지나지 않는 여자, 그것도 뇌과학자의 뇌의 혈관이 터졌다. 뇌혈관이 터져 뇌세포가 죽어가는 동안, 어떤 감각이었는지 뇌과학자의 입장에서 생생하게 묘사하는 장면을 읽다보면, 나라는 존재는 참 부질없다는 씁쓸한 감상에 사로잡힌다.
 ‘나’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모든 것은 뇌에 달려있고, 그 뇌라는 기관이 파괴되는 순간, 지금까지 존재했던 ‘나’라는 존재도 말살된다. 인간의 영혼은 있기나 한 걸까, 영혼이 존재한다면 대체 어디에서 헤매고 있는 걸까. 그런 씁쓸한 감상을 가득 불러일으키는 책.

수술을 받은 저자는, 다행히 무사히 재기한다. 과거와 완전히 동일한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뇌과학자로서 활동하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그 과정에서 뇌에 대해 한층 더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뇌과학자로서는 오히려 더 성숙할 수 있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
 니체의 ‘나를 죽이지 못한 고통은 나를 성숙시킨다’ 이 말을 떠올려도 괜찮을 듯하다.

뇌에 대해 다루는 책이기는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뇌의 신비를 좀 더 알아보겠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읽으면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 책도 어떤 식으로 뇌가 죽어갔고, 어떤 식으로 뇌가 회복되었는지 세세하게 알려준다. 다만 이 책이 정말로 상정하는 독자는, 뇌졸중에 걸린, 하지만 아직은 회복하지 못한 사람. 그리고 그들을 대하는 가족들.
 뇌졸중에 걸려 회복된다는 확신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도 회복했으니 당신도 회복할 수 있다. 이런 희망과 용기를 주는 책이다. 현재 뇌에 문제가 있더라도, 뇌는 가소성이 뛰어난 기관이니 충분히 회복가능하며, 지금은 비록 제대로 활동할 수 없더라도, 환자 본인은 여전히 존엄하니, 그에 맞추어 대우해야 한다는 책.
 아직 회복되지 않았을 뿐, 인간으로서 열화된 건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부분. 저자의 망가진 뇌는, 이성과 수리를 담당하는 좌측 뇌. 우측 뇌가 활약하면 초 긍정적인 인간으로 변한다고 한다. 소위 ‘현실적인 사고’와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재활을 하면서 예전의 부정적인 사고가 살아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고 한다.
긍적적인 나와 현실적인 내가 서로 충돌해가면서 완전한 내가 구성되고, 그 과정을 내가 어느 정도 조율할 수 있다면. 한 번 노력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이왕이면 긍정적인 내가 좋지 않을까. 이왕이라면.

뇌졸중 환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 혹은 어느 정도의 언어능력은 회복된 뇌졸중 환자(즉,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 사람)이 읽으면 좋을 책. 이 책을 읽고, 회복 계획을 다시 짜며,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아울러서 역경을 딛고 이겨낸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 역시 앞으로 좀 더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좋을 책. 부디 이 책이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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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커피 - 음악, 커피를 블렌딩하다
조희창 지음 / 살림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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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과 커피의 씁쓸달콤한 조화
음악평론가가 들려주는 클래식 이야기를 커피와 함께 즐기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

 

 

베토벤의 커피. 조희창. 살림.

살림출판사 서포터스 마지막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작년. 타과 대리님이 공주에 있는 카페에 데려다 주신 적이 있다. 조용한 가게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향기로운 커피 향만이 가게에 가득했다. 절반 정도는 남겨 남편에게도 전해 주었다. 이미 몇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커피 향은 그윽했다.
가게 이름은 유감스럽게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그 커피 향은 여전히 코끝에 맺혀 있는 듯하다.

원래 원했던 책은 다른 책이었는데. 하필이면 그 책 출판이 늦어지는 바람에. 반 강제적으로 읽게 된 책. 별 기대 없이 책을 폈기에, 오히려 이 책에 빠질 수 있었다. 마침 퇴근길 클래식 수업을 읽은 뒤여서, 이 책에 나오는 클래식 음악이 좀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사람은 배우기 나름이라고. 다 어디든 써먹을 때가 있다고 하나 보다.

이 책의 저자는 음악평론가. 동시에 베토벤의 커피라는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 직접 볶아 내린 커피만을 제공한다고. 가격은 좀 센 듯하지만, 그만큼 커피에는 자부심이 있는 듯하다.
 그런 저자가, 클래식과 커피에 관해 써내려간 수필 혹은 에세이. 저자는 어떤 커피를 좋아하는지. 어떤 식으로 커피를 마시는 게 좋은지. 왜 카페에 메뉴를 제한하는지. 그런 소소한 신변잡기가 책 가득 펼쳐진다.
 아울러서 음악. 각 챕터 하단에 저자가 추천하는 음반과 공연 QR 코드가 있는 만큼, 책에 나오는 음악을 바로바로 찾아볼 수 있다. 저자가 꽤 신경 써서 영상을 고른 만큼, 실망하지는 않을 듯. 전문가의 안목을 찬양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당신이 이 책을 읽는다면. 카페가 좋겠다. 동네에서 하는 카페. 나직한 대화 소리만 들리는 매우 조용한 카페. 주인이 직접 내려준 커피를 든 채,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그리고 클래식을 튼다. 이왕이면 책 제목과 어울리게 베토벤이 좋겠다. 베토벤의 음악을 즐기며, 책장을 넘긴다. 그리고 가끔 커피를 입에 머금는다.
 씁쓸한 커피향과 우아한 클래식 선율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이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이 책을 좀 더 진하게 즐길 수 있을 듯.
 
 커피. 이미 우리 생활에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깊이 들어가면 여전히 어렵다. 특히 좋은 커피를 마시는 건 더더욱. 아울러 클래식도 영화나 게임 등 다양한 곳에서 사용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깊이 파고들면 쉽지 않다.
 친숙하지만 깊이 파고들면 어려운 둘을, 적절히 잘 조화한 책. 추운 겨울. 밖에 나가기 껄끄러운 당신에게, 겨울을 보낼 수 있는 한 가지 낙이 되어주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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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 나아질 수 없는 관계를 정리하는 치유의 심리학
에이버리 닐 지음, 김소정 옮김 / 갈매나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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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에 대해 분석하고, 어떻게 그 학대에서 벗어날지에 대해 설명하다
그와의 관계에서 자존감이 계속 낮아지는 기분이 드는 사람을 위한 책

 

 

그 남자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에이버리. 갈매나무.

갈매나무 서포터스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갈매나무는, 비틀어진 관계와 관련된 책에 흥미가 많은 모양이다. 서포터스로 활동하는 동안, 비틀어진 관계에 대한 책을 이 책을 포함해 세 권이나 읽었으니.

하긴. 세상에 이상한 사람이 한둘이어야지. 나쁘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그 나쁜 쪽으로 사람을 몰아가며, 사람이 괴로워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 꼭 어딘가에는 있다. 더 최악인 건, 그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는다. 상대방이 그렇게 행동해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부터 확인한 뒤, 천천히 마수를 드러낸다. 책에 나오는 묘사대로, 차가운 물에 개구리를 집어넣은 뒤, 천천히 물을 달구기 시작한다. 잘못되었다는 걸 눈치챘을 때는, 이미 끓는 물이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은 학대하는 남자와 학대받는 여자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 학대는, 육체적 학대처럼 극단적이지 않다. 오히려 겉보기에는 이것이 학대인가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다. 자존감이 낮아져 상담하러 온 사람들이, 그럼에도 자신이 학대당한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만큼 소극적이며, 그렇기에 더 음침하다.
가령. 여자는 식탁을 사고 싶어한다. 하지만 여자는 돈을 벌지 않는다. 여자는 남자에게 식탁을 사는 걸 이야기한다. 남자는 돈을 벌지만, 그 의견은 무시한다. 몇 대의 자동차는 구입하지만, 식탁은 구입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 몇 년 째 지속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식탁이 도착한다. 집 인테리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평소에 여자가 전혀 원하지 않던 형태의 식탁. 여자는 그 식탁에 실망한다. 남자는 화를 낸다. ‘네가 돈 한 푼 안 벌 동안 나는 열심히 일했는데. 그 돈으로 내가 원하는 것 대신 네가 그토록 원하던 식탁을 사주었는데. 네가 어떻게 그런 식으로 반응할 수 있느냐.’ 여자는 결국 기뻐하기로 한다. 남자를 달래기 위해서.

이 역시 학대의 일종. 남자는 여자를 무시하고 있다. 여자가 원하는 걸 들어주지 않는다. 식탁을 바라는 걸 알면서도 식탁을 사주지 않는다. 사주면서도 여자가 원하는 건 사주지 않는다. 하물며 돈을 벌지 못한다는 이유로 가치마저 떨어뜨린다.
 하물며 의견을 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분명 한 마디의 상의도 없이 멋대로 일을 진행하였음에도, 그에 대한 불만을 내는 건 틀어막아버린다. 가해자는 남자임에도, 여자가 가해자인양.
 드러나지 않기에, 오히려 이 학대는 교묘하게 계속되며, 계속해서 여자의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여자가 이런 대우를 받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이런 상황에서 계속 벗어나지 못하도록.

 가해자가 어떤 식으로 피해자에게 학대를 하는지. 그리고 그 학대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를 설명하
는 책. 여자 위주로 기술되어 있기에 남자 입장에서는 불쾌할 소지가 크다. 책 서두에서 남자가 학대당하는 경우도 분명 있고, 남자가 학대당하는 경우에도 이 책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은 하고 있지만. 글쎄, 어떨지. 남편에게도 일단은 읽어보라고 해보았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해를 명확하게 인정하는 사람보다는, 긴가민가한 사람에게 도움이 될 책. 분명 어딘가 걸리기는 하는데, 그 감정이 명확하지 않은. 사실은 정말 내가 나쁠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
 이 책을 읽는 당신이라면, 이 사실만 기억해주면 좋겠다. 당신에게는 약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당신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 사실을 알고 언제나 당당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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