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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백수로 있을게 - 하고 싶은 게 많고, 뭘 해야 좋을지 몰라서
하지혜 지음 / 책과나무 / 2019년 2월
평점 :
만 2년.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백수 생할 일기
힘겨운 백수 생활에, 동지애를 느끼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
조금만 더 백수로 있을게. 하지혜. 책과나무.
이 책을 읽으며 한 생각. 저자가 백수 생활을 끝내고 2~3년 정도 지나 같은 내용으로 책을 썼다면 딱 내 취향이었을 텐데.
책이 나빴다는 건 아니다. 자신의 감정을.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감정들의 가닥을 잡아, 어떻게든 글로 정제하려고 노력한 글은, 내 백수 생활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너무 날것의 감정이었기에,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웠다.
나는. 내 삶의 무게로도 충분히 벅차기에, 타인의 감정까지 감당할 여유는 없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면 저자에게 미안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30이 되어서야 겨우 직장을 구했다. 그런 만큼 아직 20대 중반에 불과한 저자가, 나는 지금 무엇하고 있나, 이렇게 한탄하는 것, 살짝 어이가 없다. 아니. 아직 살 날도 창창한 사람이. 정말로 시간을 죽이고 있던 나와 달리 열심히 블로그에 글도 쓰고 사진도 찍고 잘 살고 있건만. 블로그와 인스타 인기를 발판으로 책 내고 강연다니며 살아도 되겠네. 예전의 백수들의 마음을 달래며, 그들의 멘토도 되어주며.
에잇. 책 읽다 보면, 저 사실 학점도 높고요. 어학 점수도 높고요. 이런저런 경력도 많이 쌓았고요. 그냥 예전 생각 하려고 읽었는데, 학점도 낮고, 아르바이트 경험도 거의 없고 어학 점수따위는 토익 840점이 전부인 나로서는 슬슬 배알이 꼬이기 시작한다. 뭐야. 신세 한탄은 절로 가서 해. 딱 이런 기분.
뭐. 하여튼. 개인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는 싫지 않지만. 시일이 지난 뒤 돌아보면서. 그런 일도 있었지. 그런 느낌의 정제된 감정으로 써내려간 글이 좋다. 아직 그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웃으며. 듣는 사람이 어두워지는 얼굴을 향해 고개를 저으며. 아니, 지금은 괜찮아. 그렇게 말해주는 듯한 책.
위기와 갈등도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 모두는 행복했습니다. 그런 류의 이야기가 좋다.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아무 것도 아니라는 기분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일만 시켜주면 뭐든 잘할 것 같은데(정작 일 시작하면, 또 달라지지만 하여튼), 기회만 주면 뭐든 할 수 있을 듯한데. 세상은 내게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내 앞에 가고 있는 사람은 실상 대단해보이지도 않는데. 저 사람 그냥 빈둥대는 것 같은데.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어쩐지 나는 초라해지는 기분이어서. 걱정해주는 목소리조차, 걱정이 아닌 질타로 들리기 시작한다. 낮아진 내 자존감이, 타인과의 관계조차 망가져버린다.
내게는 남편이 있었다. 네가 취직을 할 때까지 내가 어떻게든 지원해줄게. 그리고 정 안 되면 내가 데리고가줄게. 아니, 그렇지만 취직은 했으면 좋겠지만. 이런 어투로 그냥 담담히 옆에 있어준 남편 덕에, 나는 그리 자존감을 크게 다치지 않고 백수 생활을 청산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고. 보통은 이렇게까지 지지해주는 사람은 가족이어도 잘 없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당신이 직장이 없어서. 몇 번이고 서류 전형을 준비하고 면접 준비를 해도 그래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 책이 당신에게 위로가 되면 좋겠다. 지금 현재의 목소리이기에, 나만 힘들지 않고, 나만 지친 게 아니구나. 그런 마음이 물씬 다가오리라 생각한다. 진심으로.
그리고. 주제넘을지도 모르겠지만,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지금 당신이 직장이 없는 건, 당신 잘못이 아니다. 당신의 노력이 부족해서. 당신이 무능력하기 때문에. 그 때문이 아니다. 단지 당신의 능력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없을 뿐이고, 아직 당신에게 기회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당신은 성공할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주면 좋겠다.
당신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