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품격 - 말과 사람과 품격에 대한 생각들
이기주 지음 / 황소북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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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벽마다 눈이 번쩍!하고 뜨인다. 그리고.....꽤 오랜 시간 잠을 못잔다^_T. 집나간 잠을 돌아오게 하려고 이런 저런 방법을 써봤지만 실패. 그러다 신랑이 책을 읽어보라길래, 이번엔 그 새벽에 책을 집었다. 왠걸. 잠은 더 달아나고 그냥 다 읽었다. 그렇게 새벽녘에 읽은 책이 「말의 품격」. 하하하. 역시 밤에 책 읽으면 잠이 더 달아다는 건 국룰................은 개뿔. 다음 새벽엔 「코스모스」를 봐야겠다. 그정도면 다시 잠들겠지....




그나저나 오랫만에 읽은 「말의품격」은 한 밤중에 내 잠을 깨운 것은 물론이요, 내 자신을 반성하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하나 같이 맞는 말 투성이에다가, 읽으면 읽을수록 내 지난날의 언사가 계속해서 떠오르기 때문이다. 말은 글과 달리 내뱉으면 주어담을 수 없다. 그래서 말을 할 때는 한번씩 생각하고 말해야하는데, 하. 그게 정말 어렵다. 



무심코 내뱉은 말은 누군가를 할퀴는 칼이 될 수도 있기에, 말하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한다는 사실을 안다. 해서 격식을 차리고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는 그게 가능하다. 하지만 반대로 나와 친한 사람들과 마주하면, 이상하게 잘 안된다. 나와 평생 갈 사람들이기에, 그래서 더욱 말할 때 예를 갖추고 조심스레 대해야하는게 맞는게 그게 어렵다. 그래서 때로는 악의 없는 내 말 한마디에, 내 주위 사람이 상처를 입기도 한다. 이게 참, 반성을 하는데도 고치기가 어렵다. 하, 나이를 먹어도 이러니 원. 앞으로 우리 뿡뿡이가 이런 엄마를 보고 뭘 배울지T_T..



옛말에 이청득심耳聽得心이라 했다. 귀를 기울이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일리가 있다. 독일의 철학자 게오르크 헤겔은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바깥쪽이 아닌 안쪽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상대가 스스로 손잡이를 돌려 마음의 문을 열고 나올 수 있도록,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마음을 얻는 것도 가능하다. 이는 얼핏 교과서적인 얘기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수많은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적절한 말과 행동을 건네야 하는데, 이때 본질적인 해결책은 다름 아닌 상대방의 말속에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p 025-026


중용은 기계적 중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용은 단순히 중간 지점에 눌러앉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여건에 맞게 합리적으로 위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유연한 흔들림이라고 할까. (생략) 절충과 협상 과정에서 나름의 전제 조건이 있을 거란 생각도 든다. 무엇일까? 상대에 대한 완벽한 이해일까? 글쎄다. 각기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은 서로 다른 우주의 충돌이다. 충돌은 두 주체가 서로 맞부딪치고 맞서는 것이다. 갈등을 낳는다. 나와 생각이 다른 누군가를 향해 내뱉는 “내가 당신을 이해할게요” 라는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완벽히 뿌리내리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p 064-065



이 구절들을 요약하자면, 결국 ‘존중’과 ‘경청’ 이다. 존중과 경청은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에 제일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서로 존중할 줄 안다면 아주 자연스레 혐오는 사라진다. 모름지기 존중이란 서로가 같은 인간임을 알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그 다름을 인정할 수는 있게 한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에, 경청도 가능해진다. 경청이 가능해지므로써 불통은 소통이 되고, 불통으로 인한 감정소모도 사라진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만약 존중과 경청이 아주 당연한 사회적 가치가 된다면, ‘다름’이라는 이유 하나로 쏟아지는 혐오범죄와 마녀사냥은 자연스레 사라지지않을까.




삶의 지혜는 종종 듣는 데서 비롯되고

삶의 후회는 대개 말하는 데서 비롯된다.

-말의품격 p 018



살다 보면 크리스 가드너의 사례처럼, 긍정적인 말 한마디에 절로 미소를 짓게 되는 순간이 있다. 말에는 분명 모종의 기운이 담긴다. 그 기운은 말 속에 씨앗의 형태로 숨어 있다가 훗날 무럭무럭 자라 나름의 결실로 이어지기도 한다. 말은 오며하다. 말은 자석과 같다. 말 속에 어떤 기운을 담느냐에 따라 그 말에 온갖 것이 달라붙는다. (생략) 반대로 긍정적인 생각이 모두 걸러진 말, 비판론과 염세주의로 똘똘 뭉쳐진 언어만 내뱉는 사람은 사회 관계망 속에서 고립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p 099 - 100



말과 글에는 사람의 됨됨이가 서려 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사람의 품성이 드러난다. 말은 품성이다. 품성이 말하고 품성이 듣는 것이다. 격과 수준을 의미하는 한자 ‘품品’의 구조를 뜯어 보면 흥미롭다. 입 ‘구口’가 세 개 모여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말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품성이 된다는 뜻이다. 사람의 체취, 사람이 지닌 고유한 ‘인향人香’은 분명 그 사람이 구사하는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 p 137-138



타인을 향해 생각을 표현하고 감정을 전달하는 행위는 만인이 고민하는 숙제다. 그 과정에서 혹자는 상대의 의표를 찔러야 한다는 부담을 떨치지 못하고, 혹자는 누군가의 화법과 말투를 무작정 따라 하다가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우린 그렇게 살아간다. 말에 비법은 없다. 평범한 방법만 존재할 뿐이다. 그저 소중한 사람과 나눈 대화를 차분히 복기하고 자신의 말이 그려낸 궤적을 틈틈히 점검하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화법을 찾고 꾸준히 언품을 가다듬는 수밖에 없다. p 153



말에는 힘이 있다고 한다. 비슷한 의미로 옆나라 일본에는 언령言靈(코토다마)이라는 말도 있다. 나역시 말에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매일을 긍정적인 말을 쓰는 사람과, 부정적인 말을 쓰는 사람은 행동부터 분위기, 주변사람들까지도 판이하게 다르지않나. 특히 부정적인 말을 쓰는 사람들 주변에는 제대로된 사람이 없기도 하다. 끼리끼리는 과학이니까.



본인도 모르게 부정적인 말, 뾰족한 말, 험한 말을 쓰다보면 그로인한 부정적인 영향은 생각보다 크게 돌아온다. 그 영향이 본인에게만 한정된다면 ‘똥 묻은 개’라 생각하고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특히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원치 않아도, 부정적인 말만 쓰는 사람들을 만나기 일쑤다. 회사에서, 거래처에서, 혹은 학교에서. 분명 기분이 정말 좋은 하루였는데, 부정적인 말만 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네발내발하면서 욕짓거리를 내뱉는다면 어떠겠는가? 말이 누군가를 해치는 무기가 되는 극단적인 상황도 있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무분별한 악플들을 보자. 우리는 여러차례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무분별한 악플에 못이겨 생을 뒤로한 사람들을. 부정적인말은 그 자체 만으로도 누군가의 인생을 처참하게 무너뜨리는 무기가 된다.



나는 왠만하면 긍정적인 말을 쓰려고 노력한다. 욕같은 험한말은 왠만하면 사용하지 않는다. 이건 학창시절부터 그랬던 것 같다. 중학생 때였나, 네발내발하면서 욕하는 동급생들을 보면서, 꼭 뇌 텅텅인 것 처럼 보였다. 그전에도 욕을 잘 하지 않는 나였지만, 이 이후로는 더더욱 안하게되었다. 물론 운전을 하다가 가끔 만나는 김선생님(^^)들로 인해 자그맣게 욕을 하는 경우가 있긴 한데, 그건 뭐 차에 나 혼자있을때니까!



우리 뿡뿡이에게도 말에 대한 교육을 잘 해줘야할텐데. 휴. 요즘은 뭐 어린애들도 밖에서 뛰어놀다가도 네발내발 하고 있으니, 이런 험한 욕의 파도에서 우리 뿡뿡이에게 어떻게 교육을 해야할지 고민이 많다.



사람이 지닌 고유한 향기는

사람의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

-말의품격 p 132



정신과 의사이자 저술가인 아론 라자르에 따르면, ‘사과는 곧  솔루션’ 이다. 용기에 바탕을 둔 진솔한 뉘우침이야말로 상대망의 마음을 움직이는 유일한 해결책이며 이해 당사자들이 갈등과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의사소통 도구라는 것이 그의 논리다. 일리가 있다. 사과는 갈등과 갈등 사이에 유연함을 스며들게 한다. 사과는 틀어진 관계를 복원하는 기제機制로 작용한다. (생략) 지는 법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지는 행위는 소멸도 끝도 아니다. 의미있게 패배한다면 그건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다. 상대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인정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p 187-188



이 구절을 읽었을 때, 요즘 뉴스를 도배하고 있는 두 사건이 떠올랐다. 카카오 먹통 사건과 SPC그룹 제빵사 사망 사건. 두 사건 모두 워낙 어마어마한 사건이었기에,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자, 그럼 잘못을 일으킨 두 그룹의 대표는 사과와 이후의 행동은 어땠을까? 



카카오 대표가 사과할 당시에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지한 듯 했으나, 이후 국감 및 과기부에 제출한 사고 보고서등에서는 본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을 바꿨다. 카카오 먹통으로 인한 소상공인, 카카오 유저들에 대한 피해보상에 대해서도 매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SPC그룹 대표는  유가족들에겐 사과 한마디도 없었지만, 기자들 앞에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대체 왜??). 심지어 고인의 장례식장에 삼립 빵을 무더기로 보내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사망사건이 일어난 공장은 계속 가동되었고, 불과 몇일 안지나서 또 다른 SPC 계열사 직원의 안전사고가 발생했다(하지만 SPC그룹에서 만드는 포켓몬빵은 지금도 잘팔린다^^).



이는 비단 카카오나 SPC 문제만이 아니다. 수많은 기업들은 돈으로 덮기 어려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언제나 피해당사자가 아닌, 대국민 사과를 한다. 미리 입이라도 맞춘것처럼, 하나같이 다 똑같다. 이는 범죄자들이 피해자가 아닌 판사들에게 반성문을 제출하는 것 만큼이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거기다 재발방지, 후속조치라고 하는 것들도  피해당사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이 아닌, 어디까지난 기업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한다.



잘못을 했으면 깔끔하게 인정하고, 사과하고, 보상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것일까. 어른들을 보고 자라는 우리 아이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무엇을 배울까? ‘돈 있으면 잘못을 저질러도 괜찮구나, 내 잘못이아니라고 잡아떼도 되는구나’ 라고 배우는 건 아닐까. 씁쓸하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우주를 얻는 것과 같다.

-말의품격 p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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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우주를 받아든 손 소울앤북 시선
최준렬 지음 / 소울앤북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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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즐겨 읽는 편이긴 하지만, 시집은 잘 안읽는다. 주로 읽는 책들이 역사도서라서 그런가, 막 흔히 말하는 시어, 은유, 함축..등등이 나에겐 너무 어렵다고 느껴졌달까. 그래서 학교에서 배우던 일제강점기 시인들(윤동주, 김소월 등)의 시집도 가지고는 있으나, 솔직히 말해서 제대로 읽지는 못했다. 여러 독립운동단체들의 독립선언문들은 그렇게 확확 들어오고, 한번 읽고 두번 읽고 그러는데......시 만큼은 그게 안되더라, 하. 난 분명 본투비 문과인데, 왜이렇게 시가 어려운지! 하지만, 아무리 시가 어려워도 시집을 읽을 환경에 처하면 읽게된다. 시집을 읽을 환경이 대체 뭐길래? 라고 갸우뚱 할 지도 모르는데, 적어도... 중앙산부인과에서 출산을 하게된다면 그 ‘환경’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헤헤ㅔㅎㅅ.





오늘 리뷰하는 시집 『너의 우주를 받아든 손』을 쓴 시인, 최준렬 시인의 본케는 산부인과 전문의다. 그는 시흥 중앙산부인과 원장이기도 하다. 



나는 뿡뿡이를 품던 10개월간 중앙산부인과를 다녔고, 병원에 갈때마다 매번 벽면 전광판에서 한편의 시를 마주했다. 그 시의 제목은 ‘분만실에서’. 병원을 다닌 초반에는 산부인과라는 병원에 걸맞는 시라고만 생각했는데, 왠걸? 나를 담당해주시는 원장님이 쓰신 시였다. 즉, 이 시집을 쓴 시인 최준렬은, 나와 뱃속에 있는 뿡뿡이를 10개월간 돌봐주신 의사선생님이자, 우리 뿡뿡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 처음 마주한 분이다. 




분만실에서

성큼 걸어나오지 않고

아주 긴 시간

느리게 하강한 너를

맞으러 서 있다

너는  내가 받아낸

수많은 생명 중의 하나

첫울음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네 모습을 바라본다

묵직한 너의 우주를 받아든

손이 부끄러울 때가 있다


순수하고도 거룩한 인생에서

네가 처음으로 잡은 손

내 손가락을 움켜쥐는

너의 무한한 신뢰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힘이다


그것도 잠시

너를 엄마 품에 안겨준다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곳

엄마의 가슴은 천국이다


너의 등을 쓸어주고

태명을 예쁘게 부르면서

사랑한다 말하면

너는 대답하듯 크게 운다


사랑이 피어나는

아침 꽃밭을 본다

긴 진통의 여행을 끝낸

너와 네 엄마는

얼굴을 마주보고 잠을 잔다




처음 원장님을 뵈었을 때는, 조금은 무뚝뚝하셔서 약간 서운한 면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를 쓴 분이, 나를 담당하시는 원장님이라는 걸 안 이후에는 조금 달라졌다. 원장님이 겉으로는 살짝 무뚝뚝하셔도, 속은 그렇지 않으시구나. 병원에 걸려있던 이 시 한편이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나를 담당해주시는 최준렬 원장님에 대한 믿음을 주었다. 그 믿음 속에서 우리 뿡뿡이는 10개월간 별다른 이벤트 없이 건강하게 엄마 뱃속에 있다가, 원장님 손을 통해 건강하게 세상에 나왔다. 정말 다시한번 원장님과 수술실 간호선생님들에게는 무한한 감사를...!




계류유산


어린아이는 묻는다

엄마 뱃속의 동생이 왜 자라지 않는지


콩콩 뛰는 동생 심장 뛰는 소리가

왜 들리지 않는지


조용히 잠만 자면서

왜 쑥쑥 크지 않는지


사라진 입덧처럼 기척이 없는

아랫배를 만져보다

꽃잎 지는 창밖을 바라본다


나는 아이에게 침묵하고

아이는 보채듯이 또 묻는다

동생을

언제쯤 만날 수 있는지


나는 대답하지 못한다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이

어떻게 죽을 수 있는지

나도 모르는 것을


아이는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지만 난... 뿡뿡이를 낳기 전에, 난 또 한번의 임신을 했었다. 계획했던 임신이었고, 기다리던 아이였다. 당시에 담당 선생님도 최준렬 원장님이였다. 병원에서 분명 힘차게 뛰는 심장소리도 들었고, 기뻤었다. 하지만 그렇게 끝났다. 정기검진차 병원에 간 날, 심장소리가 들리지가 않았다. 원장님은 순간 당황하셨고, 난 순간적으로 멍해졌고, 신랑은 날 챙기느라 바빴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당시에 원장님이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고 해주셨다. 그 한마디 덕분에 자책감에서 조금이나마 더 빨리 빠져나왔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그 한마디가 없었다면 난 자책감에 빠져서 꽤 오랫동안 허우적거리지 않았을까.



5.18


날이 밝으면

형사 두 명이 집에 들어와

진을 치고 앉아있고

어머니는 휴교령이 내려진

대학의 적막한 잔디밭으로

풀매기 작업을 나갔다

최루가스 스멀스멀 올라오는 잔디밭

잡초 하나를 솎아내면

수배된 아들 생각에

매운 눈물 하나 떨구었다

쫓기는 동생을 접속하러 가는 미로

몇 번씩 뒤돌아보고서야

길이 끝났다

홀어머니의 애간장 끊어지는 한 숨 소리가

5월의 밤의 공포를 높여갔다

조사실이 있던 지하실로 가는 길은 지옥의 계단

그 계단은 흔들리고 내딛는 동생의 다리를

지켜주기엔 나도 어렸다


지술서를 쓰는 떨리던 손을 바라보며

나는 울고 있었다

취조하던 경찰이 피의자의 귀뺨을

사정없이 내리치던 지하실의 풍경

차라리 영화 속의 한 장면이었다면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


죽어야 할 사람은 아직도 살아있고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이제는 많지 않다.




마감의 시간


하루에도 마감이 있다


매일 모든 일에서 문을 닫고

퇴근하는 시간


빛의 스위치를 내리고

잠자리에 드는 어두운 시간도

마감이다


지금은

한해를 마감하는 시간


그렇게 마감이 쌓이고 쌓이면

세월은 대나무처럼 매듭져 자라나고


시간을 쟁여놓은 나이테처럼

나이가 된다


언젠가는 내 인생의 마감도

동지冬至처럼 말없이 올 것이다


단풍잎들 하혈처럼 쏟아낸

겨울나무 아래서

가을의 마감을 바라보고 있다



중앙산부인과에서는 병원에서 출산하는 산모들에게 출산 축하선물 꾸러미를 준다. 대부분 아기용품들인데,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이 시집이다. 이 시집을 받고, 중앙산부인과 바로 옆 중앙조리원에 이주일간 있었기에......위에서 말한 ‘시집을 읽을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ㅋㅋㅋㅋ 


참고로 중앙산부인과 입원실과 중앙조리원 각 방마다 최준렬 원장님의 시집이 별도로 비치되어있기에, 이건 뭐. 안 읽고 싶어도 계속 시집이 눈에 띄니 궁금해서 읽을 수 밖에 없기도 하고! 



출산후 입원실과 조리원에서 읽었던 원장님 시집을, 요즘 다시 읽고 있다. 왜? 우리 뿡뿡이를 재우기에 아주 효과적이기 때문에!!!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요즘 우리 뿡뿡이가 4개월 원더윅스(^_T)때문인지 낮잠에 드는게 넘 힘들어한다. 책을 읽어주면 엄마 말소리(?)에 편안해져서 잠들지 않을까 싶어서 책을 읽어주려고 하니, 이거 참. 눕혀놓으면 칭얼내고, 안아줘야 편안히 있는데, 안은 상태에서 책을 읽기가 넘 힘들었다. 그래서 최대한 얇고, 한 단락으로 끊어 읽을 수 있는 책을 찾다가 이 시집을 꺼냈는데.................완전 대박!



뿡뿡이를 힙시트로 안고 이 시집의 시를 읽어주다보면 뿡뿡이가 잠이 든다.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원장님의 시집이 나에게는 육아꿀템이 되어버린!! 거기다 평소 엄마아빠가 쓰는 일상대화가 아닌 언어들이니, 우리 뿡뿡이 성장발달, 언어발달에도 좋을 것이고. 정말 여러모로 원장님은 나의 은인...헷:) 



다시한번....감사합니다, 최준렬 원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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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흔든 50가지 범죄사건
김형민 지음 / 믹스커피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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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개방된 역덕(?)이다보니 여러 장르의 역사책을 읽곤 했는데, 범죄관련 역사책은 또 처음이다. 그동안 비슷비슷한 책만 읽은 느낌인지라, 뭔가 이 책 새롭다새로워! 심지어 다루는 역사 속 범죄사건이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다루고 있고도 하고. 대체적으로 생소한 역사 속 범죄이야기인데, 일부는 알려진 이야기도 있다. 요즘 여러 TV프로그램(꼬꼬무, 세계다크투어 등) 에서 과거의 범죄사건을 다루기도 했는데, 그 범죄사건들 일부가 이 책 속에 수록되어 있는 것이다. 뭐, 중복이면 어떠하리. 이런 이야기는 한번보고, 두번보고, 세번봐도 재밌는걸?




역사책을 읽고 싶긴 한데, 뭔가 새로운 역사책을 읽고 싶다면? 바로 이 책 「세상을 뒤흔든 50가지 범죄사건」 추천추천! 뭐, 굳이 따지자면 역사책이라는 느낌보다는 꼬꼬무, 그알st 같은 책이긴..한데..ㅋㅋㅋ



읽다보니 세계사 속의 범죄보다는 한국사 속의 범죄가 더 눈길이 가는건, 역시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런건가? 아니면 지금도 동일한 사건들이 반복되어서 그런건가! 분명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어떤 류의 범죄사건은 사라졌지만, 반대로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이 생겨나는, 오히려 더 진화한 동종 범죄사건들도 있다는게 참 씁쓸하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데, 글쎄. 난 죄도 밉고 사람도 밉던데? 간혹 범죄자의 생활환경 또는 어린시절의 학대 등을 이유로 참작하거나,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미화하는 게 곧잘 보이는데, 이건 정말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범죄자의 ‘생활환경이 불우해서, 학대받아서, 어쩔수없어서’ 등으로 그들의 범죄를 합리화한다면, 그건 친일파(매국노)들에게도 면죄부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논리는 동일한 환경에서 자라도 범죄와는 거리가 아주 먼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과, 친일파(매국노)와 달리 나라를 위해 자신을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을 부정하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 세무 공무원 이석호, 그는 어떻게 대한민국 최고의 땅부자가 되었나!


세금 거두는 걸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 이른바 세리, 아전, 세무서원은 이 복잡하고도 피할 수 없는 세금 징수를 집행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악역을 담당해야 했다. 정직한 사람도 많았지만 세금을 빌미로 배를 채우거나 장난을 치던 나쁜 이들도 적지 않았기에 원성과 지탄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생략) 당국의 수사 때문에 “세무행정에 지장이 생기는”일은 수십 년이 흘러도 거짓말처럼 재연되었다. “검찰이 세무공무원들의 부조리에 대해 수사를 벌이자 서울 강서, 동작, 영등포, 관악세무서를 비롯 수도권 지역 20여 개 세무서의 소득세과 소속 세무공무원 중 대부분이 잠적해버려서 일선 세무 업무가 마비 상태에 빠졌다.”라는 것도 모자라 “해당 세무서장들이 검찰로 찾아와 세무공무원들이 검찰의 수사 확대를 겁내 잠적, 업무가 마비되고 있다며 수사 중지를 요청”한 상황까지 똑같았던 것이다. p 213~214



“정부는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면서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고자 ‘국유지 일소 계획’을 세워 국유지 매각을 독려했다. 이석호 씨는 관세 담당관으로 국유지 매각 업무를 맡고 있었다. 이 씨는 ‘국유재산에 관한 사무에 종사하는 직원은 그 재산을 취득하지 못한다’(국유재산법 14조)는 조항을 피해 친인척 등 타인 명의로 국유지를 싼값에 매입하거나, 점유자들에게 점유 중인 국유지를 매수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광주지방국세청 징세2계장(본인)’ 명의로 보내 국유지를 판 뒤 자기가 전매받는 형식으로 1만 200여 평을 ‘일소’하는 실적을 올렸다.”


무슨 말인가 하니, 국유지를 팔아 재원을 조달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을 이용해 일가붙이에게 싸게 팔아치우거나 나라 땅을 점유한 이들에게 국유지를 헐값에 팔아치우곤 가로채거나 되파는 등 20세기의 봉이 김선달 노릇을 한 것이다. 그가 팔아치운 토지 목록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다. (생략) 숫제 문화재고 천연기념물이고 공원이고 가리는게 없었고, 해당 관청은 이석호가 국유지를 팔아치운 것도 모르고 그 땅에 들어와 있던 사람들에게 임차료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팔아치운 땅이 여의도의 30배쯤 되는 3,045만 평이었다. (생략) 그런데 그에 대한 처벌은 놀라울만큼 가벼웠다. 1994년 구속된 후 대법원까지 올라가 징역 7년을 선고받은 이석호는 형기도 채우지않고 가석방 되었다. p 216


예나 지금이나 다를바 없는 공직자들의 비리, 부정부패!!! 정말 대한민국에서 사라지지 않는 범죄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자, 공직자 비리의 정점인 이씨는 구속되었으나, 가석방! 심지어 그 이후에도 몰래 취득한 국유지를 위조한 매도증서를 이용해 특례매입 등 191억원을 챙겼고, 그 아들 역시 82억원을 챙기는 등 국가 땅을 가지고 돈놀이를 했다. 그 과정에서 현직 공무원들의 비호를 받은 건 덤! 이건 과거 공직자의 비리라고 하기엔, 우리에게 너무 친숙하잖아?



세종시 공무원들의 특공 비리라던가, LH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신도시가 생기는 지자체 공직자 땅투기, 건강보험공단 횡령사건… 뉴스에서 나온 공직자 비리들만 나열해도 이정도인데, 뉴스로 알려지지 않은 공직자 비리 사건은 얼마나 많을지! 거기다 고위직 공무원들 재산내역 보면, 어휴. 한평생 공직생활만했다는데, 그 정도의 재산을 모을 수 있는지가 참 의아하다.



김영란법 이딴건 다 의미가 없다. 어차피 비리를 저지른 공무원들은 동일한 전적이 있는 현직, 전직 공무원들이 서로 감춰주고, 도와주고 할테니. 아마 대한민국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는 범죄가, 이런 공직자들의 비리&부정부패가 아닐까. 에잇, 퉷퉷퉷!




▶ 1970년대 흔했던 10대 ~ 20대 식모, 그녀들은 범죄의 피해자였다.


내 이모가 오랫동안 살았던 오래된 아파트의 부엌 옆에는 창고라고 하기엔 뭐하고 방이라고 부르기엔 좁은 공간이 있었다. 그곳은 ‘식모방’으로 설계된 방이었다. 당시 그 정도 규모의 아파트면 식모를 들이는게 상식이었고, 그 상식이 설계에 반영된 것이었다. 기실 부잣집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살림을 꾸리는 가정에서 식모를 들이는 건 흔한 일이었다. <하녀(영화)>에서 하녀의 유혹에 넘어가는 주인 역시 부자가 아니라 학교 음악 선생님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p 257



식모는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에 속했고, 노동법 등과는 전혀 상관없이 주인집의 ‘하녀’처럼 일해야 했다. 청록파 시인으로 유명한 박두진처럼 식모의 혼처를 구해주고 혼수를 장만해준 것도 모자라 결혼식장에서 친아버지처럼 신부의 손을 잡고 입장했던 따뜻한 사례도 있긴 하다. 하지만 주인집의 호통과 학대에 시달리며 모진 가사노동에 종사하는 이가 부지기수였다. 나아가 범죄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p 258



1965년 11월 17일자 <경향신문>에 ‘대학 나온 인텔리 주부’가 집에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없어졌다는 이유로 식모를 가둬 놓고 화젓가락으로 지지고 빗자루로 때린 끝에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등장한다. 죽은 식모의 나이는 불과 열 다섯 살이었다. 같은 해 10월에도 충북 제천경찰서 간부 집의 열다섯살 식모가 도둑 누명을 쓰고 곤봉으로 두둘겨 맞아 중상을 입었다는 보도가 나왔으니, 언론에 등장하지 않는 피해 사례는 얼마나 많았을까 싶다. p 259



이 시기 식모는 모진 노동과 학대와 더불어 집주인 남자들의 성적착취 대상으로 쉽사리 전락하기도 했다. 그 누구로부터도 제대로 된 관심과 보호를 받지 못했던 10대 소녀들은 더러운 욕망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취침 중에 몰래 침입해 욕정을 채우고 그 후에도 범하려 하므로… 동민들이 분개해 경찰에 고발”한 사건부터 “강도를 가장해 식모를 욕보인 뒤 나가선 복면을 벗고 강도야 부르짖었다가 들통난 집주인”까지 세상에 알려진 일만 해도 헤아릴 수가 없는데, 얼마나 많은 비통한 사연이 우리 역사의 그늘에 암장되었는지 귀신도 모를 일이다. p 261



산업화가 진행되고, 여성의 노동력이 산업현장에 대거 유입되면서 식모라는 직업은 사라졌다. 물론 가사도우미라는 직업이 있긴 하지만, 가사도우미는 계약에 따라 정해진 업무와 정해진 임금을 받는, 식모와는 뉘앙스부터 완전 다른 직업이다.



하지만... 식모라는 직업이 사라졌다고해서, 식모를 상대로 저지른 범죄(갑질, 성폭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범죄의 피해자가 식모라는 직군에서, 힘없는 서비스업 직군으로 바뀐 것 뿐이니까. 과거의 많은 식모들은 집주인 가족으로부터 당한 범죄피해는, 현재의 힘없는 서비스업 직군으로 옮겨갔다. 비단 서비스업 뿐만이 아니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들끼리도 상하관계에 따라 비슷한 범죄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저 피해자와 가해자의 직업만 바뀌었을 뿐, 범죄행위는 바뀌지 않았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라는 물음도 이제 덧없다. 이미 원인은 다들 알고 있으니까.



그저 서로가 서로를 ‘존중’ 하고, 같은 인격으로 본다면 이런 범죄는 일어나지 않을텐데. 이 역시 대한민국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을 범죄라는 생각이 드니 씁쓸하다.





▶ 일제강점기에도 ‘스토킹’은 있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말에서 사라져야 할 속담 두 개를 든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우선 아니 뗀 굴뚝 운운의 경우, 누군가에게 누명이나 오명을 뒤집어씌우기에 가장 효율적인 가해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인간의 의지가 지닌 힘을 묘사한 긍정적인 속담이긴 하지만, 이 속담을 ‘나무’가 아니라 ‘사람’에게 들이대면 곤란해진다는 문제가 있다. 거의 모든 사람은 누군가에게 끌리거나 사무치게 좋아하게 되는 경험을 한다. (생략) 그런데 그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감정을 강요해 ‘열 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들이대면 어떻게 될까? ‘스토킹’이라는 범죄를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p 327



뜻밖의 스토커를 소개해볼까 한다. 주인공은 일제강점기 소설가, 「봄봄」과 「동백꽃」으로 유명한 ‘김유정’이다. 김유정은 1937년 3월 29일 만 서른도 살지 못하고 폐결핵과 치질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가 끝난 뒤 김유정의 친구이자 김유정에게 소설 쓰기를 권했던 안희남이 누군가를 찾아간다. 『금수회의록』의 작가 안국선의 아들이었던 안회남이 찾아간 사람은 김유정보다 세 살 연상의 소리꾼 ‘박록주’. 


박록주를 만난 안희남은 냅다 소리 지른다. “네가 김유정을 죽였지!” 친구의 죽음에 눈이 뒤집혔다곤 하지만 안회남의 절규는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쪽이다. 박록주를 피가 마르도록 괴롭힌 건 김유정이었고, 김유정의 빗나간 열정이 김유정 자신을 태워버렸다는 편이 정확하니까. p 329



박록주는 재력가의 소실이었다. 즉 어쨌든 결혼한 몸이었다. 하지만 김유정의 들이대기는 지극정성을 넘어 사람을 들들 볶을 만큼 뜨거웠다. 박록주가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자 김유정은 지금 들어도 소름끼치는 행동을 시작한다. 1974년 <한국일보>에 연재되었던 박록주의 「나의 이력서」에 소개된 김유정의 편지 일부.


“당신이 무슨 상감이나 된 듯이 그렇게 고고한 척하는 거요. 보료 위에 버티고 앉아서 나를 마치 어린애 취급한 걸 생각하면 지금도 분하오. 그러나 나는 끝까지 당신을 사랑할 것이오. 당신이 사랑을 버린다면 내 손에 죽을 줄 아시오.” 


“오늘 너의 운수가 좋았노라. 그 길목에서 너를 기다린 지 세시간. 만일 나를 만았으면 너는 죽었으리라.” 


“엊저녁엔 네가 천향원으로 간 걸 보고 문 앞에서 기다렸으나 나오지 않았다. 만일 그때 너를 만났다면 나는 너를 죽였을 것이다. 그러나 좋아하지 마라. 단 며칠 목숨이 연장될 따름이니까.” p 330



여기까지라면 김유정의 광기에 이골이 난 박록주가 질끈 씹어 넘길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잉크에서 피비린내가 났다. 혈서였던 것이다. (생략) 병마를 견디지 못하고 요절한 그의 방 벽엔 “박록주 너를 연모한다.”라고 쓴 혈서가 붙어있었다고 한다. 도저히 사랑이라고 할 수 없는 집착. 절대로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없는 감정. 그것이 김유정의 그늘이었다. p 331



우와, 이건 좀 충격적인 이야기다. 그 유명한 소설가 김유정이 최악의 스토커였다니. 아, 정말 진짜 와. 뭐지? 하긴 국사시간이든 문학시간이든 교과서에 실려있는 유명인물의 그림자는 알려주지 않는게 우리나라 교육이니까.



당시 날이갈수록 심해지는 김유정의 스토킹으로 인해, 박록주는 경찰에 신고도 해봤으나, 경찰은 그저 구애일 뿐, 경범죄 이상은 아니라고 했다. 결국 피해자 박록주는 그 누구에도 도움을 받지못했고, 언제고 김유정 손에 사단이 날까 전전긍긍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근데 웬걸? 스토커 김유정이 병사하자 김유정의 친구라는 작자가 되려, 언제 죽임을 당할까 매일매일을 고통속에 살던 피해자에게 찾아가 “니가 죽였지!!”라고 분노를 폭발하다니.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진짜. 근데 참 놀랍게도 이 사건조차 현재의 스토킹 범죄들과 겹쳐진다는게 소름이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스토킹처벌법은 아~~~주 오랫동안 국회에 계류되어있다가 2021년 10월 21일에야 비로소 시행되었다. 즉 그 전까지만해도 스토킹은 사적인 사랑놀음일뿐, 범죄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하긴 어렸을때부터 『선녀와 나무꾼』같은 동화를 읽고, ‘열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없다’는 속담을 들으며 자라온 세대인데 말 다했지 뭐. 



늦게나마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이 된 것도, 수많은 사람들이 악질 스토커로 인해 안타까운 생명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뉴스에 나온 스토킹 희생자만해도 한둘이 아닌데, 과거에는 얼마나 더 많았을지는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렇게 정말 많은 스토킹 범죄 희생자들의 고통이 쌓이고 쌓여서, 겨우겨우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것이다. 그런데 참 웃긴게,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은 되었는데....그래도 희생자가 계속해서 나온다. 이쯤되면 뉴스를 보지 말아야되나 싶기도 하고. 



아침 눈뜨자마자 뉴스를 보고, 밤에 자기 전까지 뉴스를 보는 나인데, 뭐 뉴스에서 좋은 이야기가 나와야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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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선생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 : 서양 편 - 지리로 ‘역사 아는 척하기’ 시리즈
한영준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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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을 읽을 땐, 주로 한일관계사 책을 많이 읽는 나지만, 그렇다고 세계사에 아예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우리집에 있는 역사책(전문/교양책 포함)중에서 세계사책 비율이 대략 20%정도라는게 함정일 뿐. 그저 한국사와 일본사, 한일관계사에 대한 비중이 높을 뿐이다. 아무리 적은 비율을 차지하는 세계사 책이라지만, 다른 집에 비하면 평균 이상의 분량이니 뭐 ㅋㅋㅋㅋㅋㅋ 내 나름대로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본다. 하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간 세계사 책이 내 손에 들어왔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 뭐 읽으라는 하늘의 계시인거죠!




내 개인적으로는 세계사를 처음 접했던 건 고등학생때다. 사탐 선택과목 중 하나가 세계사였던지라, 얼마나 빡세게 공부했던지! 그 전까지만해도 한국사홀릭이었는데, 그놈의 수능이 뭔지 세계사까지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후 생각보다 재밌는 세계사에, 한동안 빠져서 이책, 저책 읽었던 기억이 있다. 다만, 내가 좋아했던 세계사는 역시나 고대사 ~ 중세까지. 서로 치고박고 하는 스펙타클한 그 시대! 이 나라 왕이나, 저 나라 왕이나 이름이 똑같아서 더럽게 헷갈렸던 그 시대! 그 시기가 세상 재미있었다. 그렇게 재밌게 공부하던 세계사도, 근대사로 들어오면서 세계사가 세상 재미없어지기 시작했다. 아마 이후로는 치열하게 암기만 했었던 기억이...? 그리고 다시 한국사, 일본사만 파고 지내다가 조금씩 세계사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물론 내 주관적으로 편항된 시대, 또는 흥미로운 주제에 한해서만이었지만. 



이렇게 세계사 편식을 했던 내가, 모 예능(벌거*은 세계사)을 보면서 점점 세계사 박애주의(?)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읽게 된 책이 이 책, 「두선생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이다. 이 책이 여타 세계사 책과 다른 이유는 세계사를 보는 관점이, 왕조국가라던가, 민족이라던가 이런게 아니라 바로 ‘지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모 예능에서 세계사에 대한 편식이 사라진 이유가, 바로 ‘지리’였다. 왜 이 나라가 저 나라를 침략하는지, 왜 이 나라는 이만큼 발전했는데 저 나라는 아직도 저모양인지에 대한 설명에 ‘지리’를  대입하니 그렇게 이해하기 쉬울 수가 없었다. 새삼.....고등학교 때 세계사 공부를 이렇게 했다면, 암기가 아닌 이해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로!



그런 의미에서 이 책, 「두선생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는 세계사를 공부하는 청소년들에게도 강력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은 총 5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다. 각 챕터 내에서도 자연지리와 역사, 인문지리 및 요약정리로 나뉘어서 진행이 되기 때문에, 헷갈릴 일도 전혀 없다.


챕터1. 문명의 요람에서 혼란의 대륙으로, 중동


챕터2. 지리가 만든 여러개의 나라, 유럽


챕터3. 지리가 만든 초강대국, 미국


챕터4, 가지각색 아메리카, 중남미


챕터5, 인류의 시작과 세계의 끝, 아프리카


때마침 내가 즐겨보는 모 예능에서도 요근래 위 챕터에 대한 나라들이 주제로 나왔었는데 말이다! 그 예능을 보고 이 책을 읽으니 왠지 세계사 복습을 하는 느낌이기도 하다. 반대로 이 책을 읽고 그 예능을 다시보면 그건 그것대로 이해하기가 더 쉬울 것 같기도 하다.




챕터1. 문명의 요람에서 혼란의 대륙으로, 중동


‘중동’이라는 용어는 사실  유럽적 시각에서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19~20세기 영국에서 유럽 대륙의 동쪽에 위치한 동양 세계를 근동, 중동, 극동으로 부른데서 나온 말이에요. 유럽의 눈으로 만들어진 만큼, 중동 대신 ‘메나’,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라는 용어로 대신 부르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p 019



지금의 중동을 하나의 문화권으로 묶은 1등 공신은 단연 이슬람교입니다. 지도를 보면 앞서 말했듯 중동 지역 대부분이 8세기 이슬람 제국의 영향력 아래에 들어옵니다. 14세기부터는 아나톨리아반도와 맞은편의 발칸반도도 이슬람 제국의 영토로 들어오죠. p 042



중동 문명이 남긴,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유산은 무엇일까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유일신 사상의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조로아스터교까지 모두 중동에서 뿌리를 내리고 세계적인 유일신교로 발전했죠. p 048



내가 즐겨본다는 모 예능에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주제가 나온적이 있었다. 솔직히... 지금의 내 관점에서 중동근방은 분명 이슬람교가 태반인데, 어떻게 유대교인 이스라엘이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나 싶기도 했다. 그저 돈이 많으면 장땡인가 싶기도 했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중동은 지금의 관점으론 이슬람교가 태반이긴 하나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는, 우리가 아는 큼직 큼직한 유일신 사상의 종교들의 발생지였을 뿐이고. 하..하ㅏ...



그나저나 중동이라는 말 자체가 유럽중심의 단어라는 말에 조금 욱했다. 생각해보면 한국이나 일본을 극동이라 부르는 것도 결국 유럽중심의 시각이다. 분명 공부할 때 배웠음에도, 크게 자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저 때 유럽은 서로 땅따먹기하며, 자국을 팽창시키느라 바빴다. 그 과정에서 배를 몰고 나가 신대륙발견도 하고 말이다. 반면에 동양은.... 땅덩어리가 큰 중국이라는 나라 하나에 조아리고, 우물안에 살고 있었으니. 휴. 그 덕분에 세계지명들이 대부분 유럽중심으로 정해진 것도 어쩔수 없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중동이란 이집트-메소포타미아문명이 꽃피고 이슬람 제국이 형성된 지역을 가리킵니다. 민족적으로는 아랍인들이 많고, 종교적으로는 이슬람교를 믿으며, 지시적으로는 사막이나 고원지대가 많죠.


아라비아반도에서 살던 아랍인들은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현재 중동 권역의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페르시아제국을 세운 이란인들과 셀주크-오스만제국을 세운 터키인들은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면서도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면서 중동 사람들은 각기 독립하지만, 유럽 열강의 영향력에 놓이게 됩니다. 특히 전 세계를 떠돌던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고향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로 돌아오면서 중동 지역에 갈등이 유발됩니다. 또한 20세기에 중동 각지에서 석유가 발견되며 경제적 이권을 둘러싼 갈등이 현재까지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p 065 (요약정리 中)



이 책에서 제일 만족스러운 부분은 역시나 요약정리! 각 챕터내에 자연지리나, 역사, 인문지리에 대해 나라별로 알기쉽게 설명을 해준다. 분명 이해하기도 쉽다. 근데 이게 참, 이해하는 것과 남에게 아는 척(?)하면서 알려주는건 또 다른 일이라서^_T 이렇게 별도로 요약정리된 설명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더군다나 익숙하지 않은 중동국가는 더더욱!!





챕터3. 지리가 만든 초강대국, 미국


20세기 세계 역사를 주도한 나라, ‘초강대국’이라는 수식어가 참 잘 어울리는 나라, 그러나 건국된지 고작 300여 년 밖에 되지 않는 나라. 어디일까요?  바로 미국입니다. p 125



3억 3300만여 명이 사는 세계 3위의 인구 대국, 약 9800만km2의 면적을 자랑하는 세계 3위의 영토 대국, 미국은 어떻게 거대한 영토를 차지했을까요? 미국 영토의 역사에 대해 아는 척하려면 총 여섯장면을 기억해야 합니다. p 134



1732년 영국의 13개 식민주 완성. 1783년 독립을 인정받으면서 미시시피강 동쪽까지 진출. 1803년 프랑스에 미시시피강 서쪽 루이지애나 구입. 1819년 스페인에 플로리다반도 매입과 대륙횡단조약으로 태평양 진출 발판 마련. 1845년 텍사스 병합과 미국 멕시코 전쟁을 통해 본토의 대략적인 영역 확정. 1867년 알래스카반도 구입. 1898년 미국 스페인 전쟁을 통한 대서양과 태평양 거점 마련. 이 정도면 미국의 영토가 어떻게 꾸려졌는지 아는 척 할수 있겠죠? p 147



영국의 식민지 팽창(?)의 일환으로 시작된 미국. 몇 차례 전쟁을 거쳐 엄연한 국가로 독립한 미국. 건국된지 삼백년이 고작인 미국. 하지만 초 강대국이 된 미국. 미국은 어떻게 초강대국이 되었을까? 심지어 뿌리는 분명 영국인데, 왜 영국과는 다른 문화의 나라가 된걸까? 언제나 궁금했는데, 막상 공부하려니 딱히 손이 안갔던게 미국 역사다. 그러다가 이번에도 모 예능에서 미국에 대해 나오면서, 그때서야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았다고나 할까? 다만 ... 내 지적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는 조금 부족했던 건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 책 덕분에 미국 역사도 완벽하게 클리어!



미국은 지리적으로 천연 요새의 모습을 띱니다. 동서로 거대한 바다가 존재하고, 남북으로는 사막과 얼음 땅이 있어서 역사적으로 본토를 공격받은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또한 국토 중앙에는 로키산맥과 애팔래치아산맥 등에서 발원하는 미시시피강과 많은 지류가 흐르면서, 농업에 적합한 대평워닝 형성되어 있습니다.


거대한 미국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미국은 크게 북동부와 남부, 중서부와 서부로 나눌 수 있죠. 각 지역은 지리적으로 구분될 뿐만 아니라 주민 구성과 역사적 경험도 조금씩 달라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구분할 수 있습니다. p 161 (요약정리 中)




서양편을 읽고보니, 동양편은 언제나오나 목이 빠지게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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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리지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13
이중환 지음, 허경진 옮김 / 서해문집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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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지 거의 한달만에 리뷰를 쓰게된 우리 고전문학 《택리지》. 모름지기 내가 책 리뷰를 쓰는 이유는 책을 다시 한번 읽는다는 개념으로, 머리속에 있는 책에 대한 생각을 꺼내놓기 위함이다. 그런데.........가끔 이런식으로 책을 읽고나서 리뷰를 미루다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보내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럼 책을 읽었어도 읽은 것 같지 않고, 왠지 책 내용이 기억이 안나고 막 그런 느낌적인 느낌? 그래서 이렇게 더 미루다간 머리 속에 남는게 없겠다 싶어서, 부랴부랴 기억나는 내용만 적어보려고 한다. 




이 책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조선의 대표적인 실학가중 한명이다. 세력도 좋았고 나름대로 탄탄대로의 삶을 살았던 이중환이지만, 그가 살던 시기는 당쟁이 극렬했던, 숙종이 재위했던 때였다. 이중환의 당색은 남인. 숙종은 남인과 서인 사이에서 저울질하며 여러번의 환국을 단행했다. 남인의 손을 잡았을 땐 서인을 축출하고, 서인의 손을 잡았을 땐 남인을 축출했다. 숙종이 환국을 단행하는 카드로 사용했던 사람이 남인쪽 장희빈과 서인쪽 인현왕후(+숙빈 최씨)였다. 즉, 최종적으로 장희빈이 몰락하고 인현왕후가 복귀하면서 남인은 완벽하게 축출, 서인의 세상이 되었다. 조선이 망할때까지 쭉!



남인이었던 이중환은 이 모든 당파싸움 한 가운데서 모든 것을 겪었다. 권력 가까이에 있었으나, 권력 밖으로 밀려난 이중환. 그는 그렇게 방랑자의 삶을 택했다. 그의 명분은 조선팔도에서 사대부가 살만한 땅이 어딘지를 찾아다니는 것이었으나, 실상은 본인이 살만한 장소를 찾아다니는 것이었다. 뭐, 이유야 어쨌든 이중환은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그 땅에 얽힌 역사, 지리적 이점, 사회 문화상 등을 본인의 저서인 #택리지 에 조목조목 설명했다.


이중환이 《택리지》의 〈팔도총론〉에서 우리나라 인문, 지리를 설명했지만, 진정한 본문은 〈복거총론〉이라고 할 수 있다. 〈팔도총론〉이 “사대부는 어떤 곳에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고 모아 정리한 자료라면, 〈복거총론〉은 바로 그 대답이다. 지리, 생리, 인심, 산수, 네 항목은 그때까지 다른 지리서에서 설명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지세가 좋고, 생업이 넉넉하며, 인심이 후하고, 경치도 빼어난 곳. 이런 곳은 그도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그는 〈총론〉에서 다시 이 네가지를 묶어 간단히 설명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요약, 설명이 아니다. 그는 〈복거총론〉 ‘인심’ 부분에서 조선 후기에 사대부들이 겪은 당쟁을 설명하며, 당쟁이 없는 곳이 바로 사대부가 살 곳이라고 했다. 그런데 〈총론〉을 보면 그가 당쟁을 사대부만 겪은 피해라고 여기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당쟁이 300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사대부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이 치우친 논의를 하게 되었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염원한 땅이 어떠한 곳인지 짐작할 수 있다. 사람들이 치우친 논의를 하지 않고 사는 곳이다. 그는 사대부가 제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차라리 농, 공, 상으로 사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했다. p 006(옮긴이의 머릿말 中)



그는 어떤 곳을 좋아했는가? 〈팔도총론〉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판단한 곳은 공주 갑천 일대다. 그가 공주의 금강 언저리를 설명하면서 ‘사송정은 울지 집’이라고 한 것을 보면, 그는 결국 자기 고향을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고향에서 편하게 살지 못하고 두 차례나 유배 생활을 했으며, 그 뒤에는 별다른 벼슬도 못하고 온 나라 안을 30여 년 동안이나 떠돌아다녔다. (……) 그가 지리서의 성격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당쟁에 대해서 장황하게 기록한 이유는 그 자신이 누구보다도 당쟁의 폐해를 심하게 겪었기 때문이다. 그의 처가는 경종 때 신임사화를 계기로 당시의 왕세제였던 영조를 모함하면서 정권을 잡았지만, 뒷날 영조가 즉위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처가와 운명을 함께할 수밖에 없으니, 문과에 급제해 병조의 정5품 벼슬인 정랑까지 올랐던 그가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니 그가 인심이 좋은 마을에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사대부들의 당쟁 탓에 온 나라 인심이 나빠졌다고 개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p 007(옮긴이의 머릿말 中)



〈팔도총론〉



이중환은 팔도총론편에서 각 지역을 언급하며, 그 지역의 환경과 역사적인 유래, 현재상황등을 설명하고 마지막에 사대부가 살기 좋은지 아닌지에 대한 결론을 내린다.


-함경도


옛날에는 숙신에 속했다가, 한나라 때는 현도에 속했다. 그 뒤 주몽이 차지했는데, (고구려)가 망하자 여진이 차지했다. 고려때는 함흥 남쪽 정평부를 (북쪽) 경계로 했다가, 중엽에 윤관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여진을 쫓아 버리게 하고, 두만강 북쪽으로 700리를 지나 선춘령을 경계로 했다. 그 뒤 금나라에게 땅을 다시 돌려주고, 함흥을 경계로 삼았다. 우리나라 장헌대왕(세종) 때 김종서에게 북쪽으로 1000여 리 땅을 개척하고, 두만강 가에 6진과 병영을 설치하게 했다. (이때부터) 백두산 동남쪽에 있던 여진이 근거지가 모두 우리 판도에 들어왔다. p 040



또 나라 습속이 문법을 중히 여겨서 서울 사대부는 서북 사람과 혼인하거나 벗으로 사귀지 않았다. 서북 사람도 감히 스스로 사대부와 동등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서북 양도에는 드디어 사대부가 없게 되었고, 사대부들도 그곳에 가서 살지 않았따. 오직 함종 어씨와 청해 이씨, 본관이 풍양인 안변 조씨만이 조선 초기에 높은 벼슬을 했으며, 서울로 옮겨 와 살면서 대대로 과거에 급제했다. 그 밖에는 (이름난) 사람이 없다. 따라서 서북의 함경도, 평안도는 (사대부가) 살 만한곳이 못된다. p 048



-황해도


대체로 이 도는 국도 서북꽂에 위치해 평안도, 함경도와 이웃했으므로 활쏘기와 말 타기를 좋아하는데, 문학하는 선비는 적다. 산과 바다 사이에 끼어 있어 납, 철, 면화, 벼, 기장, 생선, 소금 등이 많이 나 부유한 자는 많지만, 사대부 집안은 적다. 그러나 평야 지대에 있는 여덟 고을은 땅이 기름지고 바닷가 열 고을은 경치 좋은 곳이 많으니, 역시 (사대부가) 살 지 못할 곳은 아니다. p 056



-강원도


(강릉부)이 지방 사람들은 노는 것을 좋아해서, 노인들이 기생, 악공과 함께 술과 고기를 싣고 호수와 산으로 가 질탕하게 놀기를 즐기며, 이것을 큰일로 여긴다. 그들의 자제들도 이에 물들어 문학에 힘쓰는 자가 적다. 또한 지역이 두 서울에서 멀어, 예부터 훌륭하게 된 사람이 적다. 오직 강릉에서만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제법 나왔다. (……) 대체로 이 아홉 고을은 모두 바닷가에 있으므로, 주민들은 고기 잡고 미역 따며 소금 굽는 것을 생업으로 한다. (……) 한때 노닐기에는 좋지만 오래 머물러 살 곳은 아니다. p 059



결론적으로 한반도 북부쪽은 사대부가 살만한 곳이 못된다는게 이중환의 총평이다. 이유는 다양하다. 함경도나 평안도는 여진과 경계에 있고, 농사지을 땅이 별로 없다. 심지어 함경도, 평안도를 비롯하여 황해도나 강원도는 문학보단 무예 또는 노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더더욱 사대부가 살만한 곳이 못된다고 한다.



-경상도


신라는 영남의 여러 나라를 다 차지하고, 고구려와 백제가 쇠망하기를 엿보다가 삼국을 통일했다. 그러나 말엽에 (진성)여왕이 즉위하자 명령이 시행되지않고, 불도를 지나치게 받들어 산골짜기마다 절이 두루 섰으며, 많은 백성들이 중이 되었다. 그러자 궁예가 고구려 땅을 차지하고, 견훤도 백제 땅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고려 태조가 나서서 고구려 땅과 백제 땅을 통일하자, 신라도 땅을 바치고 (고려에) 붙어버렸다. p 069



우리 왕조에 와서도 선조 이전에는 국정을 맡은 자들이 모두 이 도 사람이었고, 문묘에 모신 사현도 이 도사람이었다. 그런데 인조가 율곡 이이, 우계 성혼, 백사 이항목의 문생 자제들과 어지러운 정국을 진정시킨 뒤부터는 서울에 대대로 사는 집안의 사람들만 치우치게 등용했다. (……) 그러나 옛날 선배들이 남긴 풍습과 혜택이 지금까지도 없어지지 않아, 예의와 문학을 숭상하는 풍속이 있으며, 지금도 과거에 많이 합격하기로는 여러 지방 가운데 으뜸이다. p 070



(동래부와 대마도) 해마다 대마도 사람이 도주의 문서를 받아 왜인 수백명을 이끌고 와서 왜관에 머문다. 우리 조정에서는 경상도에서 바치는 조세 가운데 일부를 떼어, 왜관에 머무는 왜인에게 주었다. 그러면 그들이 절반을 도주에게 바치고, 나머지 절반을 경비로 썼다. (……) 이 섬은 원래 왜국에 딸린 것이 아닌데, 두 나라 사이에 있으면서 왜국을 빙자해 우리에게 요구하고, 우리나라를 빙자해 왜국에게 중하게 보였으니, 박쥐 노릇을 하며 이로움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을 토벌해 우리에게 복속시키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지 않으면 도주를 해마다 한 번씩 우리 조정에 조회하게 해 신하로 복종케 하고, 상을 주는 예로써 전에 주던 액수와 같이 후하게 줄수는 있다. 그러나 관을 지어 머물게 하며 조세를 주는 것은 마치 (우리가 그들에게) 조공하는 것 같아 명분이 바르지 않으니, 빨리 폐지하는 것이 옳다. p 075~076



-전라도


노래와 여색을 좋아하고 사치를 즐기는 습속이 있어 경박하고 간사한 사람이 많으며, 문학을 대단치 않게 여긴다. 그러므로 과거에 급제해 훌륭하게 된 사람의 수가 경상도에 미치지 못하니, 문학에 힘써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걸은 땅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타고나는 것이므로, (전라도의 인걸) 또한 적지 않다. 고봉 기대승은 광주 사람이고, 일재 이항은 부안사람이며, 하서 김인후는 장성사람인데, (모두) 도학으로 이름이 높았다. 제봉 고경명과 건재 김천일은 모두 광주 사람이며 절의로 이름이 높았다. p 083



(남원부) 구례의 서쪽에 있는 봉동은 샘과 바위가 기이하다. 동쪽에는 화엄사와 연곡사 같은 명승지가 있고, 남쪽에는 구만촌이 있다. 임실에서 구례까지 강을 따라 내려오면서 이름난 곳과 훌륭한 경치가 많고 큰 마을도 많은데, 구만촌은 시냇가에 자리해 강산과 토지의 이로움과 거룻배 및 생선, 소금의 이로움도 있으니, (이 가운데) 가장 살 만한 곳이다. p 091



옛날에 속수공이 ‘민지방 사람들은 교활하고 음흉하다’고 했지만, 주자 때 이르러 어진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어진 사람이 살면서 부유한 생업을 바탕으로 예의, 사양, 문장, 행실을 가르치게 되면, 살지 못할 곳은 아니다. 게다가 (전라도는) 산천에 기이하고 훌륭한 곳이 많은데 고려 때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크게 드러난 사람이 없었으니, 모였던 정기가 한 번쯤은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지역이 먼 데다 풍속이 더러우니, 살 만한 곳이 못된다. p 096



한반도 북부와 다르게 경상도에 대한 이중환의 평은 꽤나 좋다. 무엇보다 지리가 아주 좋다고 극찬한다. 뿐만 아니라 옛 신라가 있던 곳이며, 경상도는 문학을 숭상하고 문장과 덕행, 절개를 지키는 등 인재들이 많이 나온 곳이라고 한다. 물론 경상 좌도쪽은 땅이 메말라 백성이 가난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역시나 문학하는 선비가 많다고 호평한다. 그 와중에도 동래부와 대마도를 콕 집어서, 조선조정에 비판할 건 비판한다. 조선 백성들도 힘든데, 왜 우리 세금으로 왜놈들을 먹여주고 재워주냐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왜놈들때문에 임진왜란/정유재란을 다 겪고, 나라가 피폐해졌음에도 말이다.



경상도에 대한 극찬과 극명하게 대비되는게 전라도에 대한 비판이다. 물론 전라도에도 인재가 있었고, 임진왜란 당시에는 왜놈과 맞서싸운 의병들에 대한 극찬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라도는 간사한 사람이 많고, 문학을 숭상하지 않으며, 음흉하여 살만한 곳이 못된다고 못박는다. 앞서 한반도 북부에 대한 비판과는 사뭇 다른, 감정이 오백스푼 들어간 평이다. 이쯤되면 전라도 사람에게 대놓고 데인적이..................아! 그러고보니 선조 때 동인을 대학살시킨 서인, 송강 정철이 전라도에서 은거하던 사림들에게 수학했는데, 설마 그때문인가?(동인이 후에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짐)



-충청도


물산이 많기로는 영남이나 호남에 미치지 못하지만, 산천이 평온하고 아름다우며 서울에 가까운 남쪽이어서 사대부들이 모여 사는 곳이 되었다. 서울에 대대로 사는 집 가운에 이 도에 논밭과 집을 마련해 생활의 근본으로 삼지 않은 집이 없다. 게다가 서울과 가까워 풍속에 큰 차이가 없으므로, 터를 골라 살기에 가장 알맞은 곳이다. p 097



-경기도


(수원부) 여기서 서쪽으로 30리쯤 물길을 가면 연흥도가 있다. 고려 말엽에 종실 익령군 왕기는 고려가 장차 망할 것을 알았으므로, 성명을 바꾼 뒤 가족을 모두 데리고 바다를 건너 이 섬으로 도망 와 숨었다. 그래서 고려가 망한 뒤에도 (다른 왕족들처럼) 물에 빠져 죽는 환난을 면했고, 자손들이 그대로 (이 섬에) 살게 되었다. 지금은 (그들의 신분이) 낮아져 목장의 목자가 되었다. p 133



(개성부) 가장 통탄할 점은 정도전이 목은 이색의 문인으로서, 고려 말엽에 재상 반열에 있었으면서도 왕검과 저연이 하던 짓을 본받아 나라를 팔아서 이익을 챙기고 스승을 해치며 벗을 죽인 것이다. 게다가 고려가 망하자 또 왕씨 종실들을 없애는 계책까지 냈다. 자연도에 귀양 보낸다고 핑계를 대고서 큰 배 한 척에 왕씨들을 가득 태워 바다에 띄운 다음, 남몰래 보자기에게 배 밑바닥에 구멍을 뚫으라고 해서 가라앉힌 것이다. p 143



(개성부) 성에서 동남쪽으로 10여 리 되는 곳에 덕적산이 있는데, 이 산위에 최영 장군의 사당이 있다. 사당 옆에 침실을 만들고 민간의 처녀를 두어 사당을 모시게했다. 지금까지 300년을 하루같이 그렇게 했다. 그 시녀가 말하길 ‘밤이되면 신령이 내려서 교접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최영은 무모하고 용맹만 있는 사내여서, 자기 딸을 왕우의 비로 삼았고, 나랏일을 잘못해 마침내 사직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게 했다. (죽은 뒤에도 혼이)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땅에도 들어가지 못해, 국사도 교사도 받지 못하는 귀신이 되었다. 그런데도 남녀의 즐거움을 잊지 못했으니, 그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심복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어리석고도 음탕하다고 말할 만 하다. p 146



이중환이 말하는 사대부가 살기 좋은 땅이 충청도편에서 나온다. 충청도 중에서도 어딘고 하니, 바로 공주다. 아주 여러 이유를 들어 충청도가 살기 좋다고 극찬하지만, 자세히 보면 여기에도 사심이 오백스푼 들어가있는 듯 보인다. 그도 그럴것이 충청도 공주는 이중환의 고향이기도 하다. 뭐, 근데 이중환의 고향인 것을 떠나서, 현재 기준으로 충청도는 수도권은 아니지만, 수도권에 인접하고, 수도권보다는 집값이 저렴하니 지금도 살기 좋은 땅은 맞는 것 같다. 



경기도 편에는 이래저리 그 땅에 얽힌 고려말 조선초의 이야기를 많이 한다. 정확히는 조선조정에 의해 학살된 고려사람들 이야기를. 그 와중에도 최영장군을 깎아내리는 듯한 민간전승도 이야기한다. 뭐 이렇든 저렇든, 결론적으로 경기도는 당쟁에 편승한 사대부가 많이 살고 있기에, 경기도도 전체적으로 살만한 곳이 못된다는게 이중환의 평이다.



이중환이 가장 좋은 지리적 환경으로 꼽는 땅은 기름진 곳이고, 그 다음은 배와 수레와 사람과 물자가 모여들어 필요한 것을 서로 바꿀 수 있는 곳이다. 그는 무엇보다 인간의 생산 활동, 창조적인 생명력이 있는 땅을 중시했다.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생산 활동에 참여할 수 밖에 없는데, 생산활동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지리적 환경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의 지리적 환경이 상선의 운용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도 이것을 최대한 이용하지 못해 모든 물자를 말로만 운송하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한 그런 문제는 조선술이 발달하지 못한 데 있다고 보았으며, 물자의 운반 수단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박지원, 박제가 등이 배, 수레의 제조 및 활용을 주장한 것과 연관이 있다. p 151(《택리지》에 나타난 이중환의 실학사상)



이러한 《택리지》에도 한계점이 없는게 아니다. 풍수사상,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환경결정론적 시각, 선호하는 지방이나 지역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지리적 패러다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한점 등이다. 물론 《택리지》가 풍수지리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이중환 자신의 사상이라기보다는 18세기 사회 전반에 팽배한 길흉화복에 대한 음택풍수의 사유를 수용하고 나타낸 것 뿐이다. p 153(《택리지》에 나타난 이중환의 실학사상)



팔도총론편을 읽으면 이중환이 살기 좋은 환경으로 꼽는 곳의 주된 공통점이 있다. 농사짓기 좋은 기름진 땅이 있는 곳이거나, 배가 드나드는 강/바다 등 수로가 있는 곳, 수레가 다니는 넓은 도로가 있는 곳이다. 조선에서는 직업의 우선순위를 ‘사/농/공/상’으로 나뉘어, 제일 귀한건 공부하는 선비, 그 다음이 농사를 짓는 농부였다. 공업이나 상업같은 생산활동은 주자성리학자 입장에서는 멸시하는 쪽에 가까웠다. 고로 배, 수레 운반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조선의 사대부, 즉 주자성리학자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조선 사대부들에게 이중환 같은 사람들은 사문난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중환은 개의치 않았다. 공부, 농사도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당연히 가세가 기우니 공부를 할 수 없고, 운반을 할 수 없으면 농사를 지어도 잉여농산물을 팔 수가 없다. 어찌 운반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렇다. 이중환은 조선후기 실학자의 계보를 잇는 사람 중 하나였다.



〈복거총론〉


팔도총론에서 각 지역별 장,단점을 이야기하며 시동을 걸었다면, 복거총론은 팔도총론에 대한 해설과 함께 정말 살기좋은 땅이란 무엇인지, 자신의 의견을 서술한 택리지의 실질적 본편이다. 


-지리


무릇 살 터를 잡는 데는 지리가 으뜸이고, 다음으로 생리가 좋아야 하며, 인심이 좋아야 하고, 아름다운 산과 물이 있어야 한다. 이 네가지 가운데 한 가지라도 없으면 살기 좋은 땅이 아니다. 지리가 좋아도 생리가 모자라면 오래 살 수 없고, 생리는 좋아도 지리가 나쁘면 역시 오래 살 수 없다. 지리와 생리가 아울러 좋아도 인심이 나쁘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긴다. 또한 가까운 곳에 노닐만한 산수가 없으면 성정을 도야할 수가 없다. p 156



-생리


공자의 가르침에도, 넉넉해진 뒤에 가르친다고 했다. 제 몸도 가리지 못하고 빌어먹게 되어, 조상의 제사도 받들지 못하고 부모를 봉양하지도 못하며 처자의 윤리도 모르는 자에게 어찌 가만히 앉아서 도덕과 인의를 말할 수 있겠는가? p 161



물자를 옮겨서 교역하는 방법은 신농 성인이 만들었다. 이러한 법이 없으면 재물이 생길 수 없다. 그런데 (물자를 옮기는 방법으로는) 말이 수레보다 못하고, 수레가 배보다 못하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고 들이 적어서, 수레가 다니기에는 불편하다. 그래서 온 나라의 장사꾼들이 모두 말에다 짐을 싣는다. 그러나 (갈) 길이 멀면 옮기는 비용은 많이 들면서도 소득은 적다. 그러므로 (말로 짐을 옮기는 것이) 배에 짐을 실어 옮겨서 교역하는 이익보다는 못하다. p 164



-인심


서울은 사색당파가 모여 살아 풍속이 뒤섞여 고르지 않다. 지방은 서북 삼도를 빼고는, 사색당파가 동남 오도에 나뉘어 살고 있다. 경상도만은 모두 예안 이황의 학문을 숭상하는데, 유성룡은 이황의 문인이었다. 남인이라는 이름이 유성룡 때문에 생겼으므로, 온 도의 사대부들이 남인이 되어 의논이 통일되었다. 그러나 나른 도에는 사색당파가 고을마다 섞여 살고 있다. p 187



개벽 이래 천지간 여러 나라에서 인심이 일그러지고 무너져 본성을 잃었지만, 지금처럼 붕당 때문에 걱정한 적은 없다. 이를 그대로 두고 고치지 않으면 장차 어떤 세상이 될 것인가. 한 귀퉁이의 탄환만 한 나라가 비록 작다고는 하지만 산 백성이 100만이나 되니, 장차 그 심성을 다 잃어버려 구제할 수 없게 된다면 그 또한 슬픈 일이다. p 191



그러나 (같은 색목끼리 모여 사는 즐거움도) 사대부가 없는 곳을 가려서 문을 닫고 교제를 끊으며, 홀로 자신을 착하게 하는 것보다는 못하다. 그렇게만 되면 비록 농사꾼이 되거나 장인이 되거나 장사꾼이 되어도 (참된)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되면 (그 고장의) 인심이 좋은지 나쁜지도 따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p 190



-산수


산수는 정신을 즐겁게 하고 감정을 화창하게 한다. 사는 곳에 산수가 없으면 사람을 촌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산수가 좋은 곳 가운데는 생리가 박한 곳이 많다. 사람은 자라처럼 (모래 속에) 살지 못하고, 지렁이처럼 (흙만) 먹을 수 없다. 그래서 오직 산수만 보고 삶을 누릴 수는 없다. 그러므로 (산수만 보고 사는 것보다는) 기름진 땅과 넓은 들에 지세가 아름다운 곳을 골라 집을 짓고 사는 것이 좋다. 그리고 10리 밖이나 반나절 거리 안에 산수가 아름다운 곳을 사 두었다가 생각이 날 때마다 때때로 오가며 시름을 풀고 머물러 자다가 돌아온다면, 이야말로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p 251



특히 이중환은 ‘인심’편에서 맹모삼천지교를 이야기하며 지방의 풍속의 중요성을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동서 당쟁의 시초를 시작으로 붕당정치의 폐해, 인조반정, 서인들의 집권 및 분열 등을 길게 이야기 한다. 이중환 본인이 사대부이면서 당쟁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당쟁의 피해가 사대부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미친다는 이야기를 한다. 



당쟁의 피해가 백성에게까지 피해를 미친 대표적인 사례가 앞서 팔도총론에서 이야기했던 임진왜란이다. 임진왜란 발발 전 일본에 사신으로 갔던 황윤길과 김성일은 각각 서인과 동인이었다. 그들은 동/서인의 격렬한 당쟁속에서 선조에게 상반된 의견을 보고했다. 물론 그 보고에 따라 올바른 판단을 해야하는건 조선의 왕 선조였고, 선조가 올바른 판단을 하지못한것도 문제지만, 서로 당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상반된 보고를 한 두 사람도 문제였다. 결국 일본이 조선으로 처들어왔고 조선 땅에서 7년동안 전쟁이 벌어졌다. 또 다른 사례로는 병자호란도 있다. 병자호란 역시 조선의 사대부들이 척화파와 주화파로 나눠서, 서로 명분싸움만 하는 바람에 조선의 백성들이 또한번 피해를 입고야 말았다.



당쟁의 폐해는 비단 과거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공화국이 된 현재를 보면, 각 정당들이 서로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외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오고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이렇게 ‘반복’되는 좋지못한 행동을 개선하기 위함인데, 이 나라에선 언제끔 그게 가능해질런지, 그럴 가능성이 있긴 한건지 당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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