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뒤흔든 50가지 범죄사건
김형민 지음 / 믹스커피 / 202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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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개방된 역덕(?)이다보니 여러 장르의 역사책을 읽곤 했는데, 범죄관련 역사책은 또 처음이다. 그동안 비슷비슷한 책만 읽은 느낌인지라, 뭔가 이 책 새롭다새로워! 심지어 다루는 역사 속 범죄사건이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다루고 있고도 하고. 대체적으로 생소한 역사 속 범죄이야기인데, 일부는 알려진 이야기도 있다. 요즘 여러 TV프로그램(꼬꼬무, 세계다크투어 등) 에서 과거의 범죄사건을 다루기도 했는데, 그 범죄사건들 일부가 이 책 속에 수록되어 있는 것이다. 뭐, 중복이면 어떠하리. 이런 이야기는 한번보고, 두번보고, 세번봐도 재밌는걸?




역사책을 읽고 싶긴 한데, 뭔가 새로운 역사책을 읽고 싶다면? 바로 이 책 「세상을 뒤흔든 50가지 범죄사건」 추천추천! 뭐, 굳이 따지자면 역사책이라는 느낌보다는 꼬꼬무, 그알st 같은 책이긴..한데..ㅋㅋㅋ



읽다보니 세계사 속의 범죄보다는 한국사 속의 범죄가 더 눈길이 가는건, 역시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런건가? 아니면 지금도 동일한 사건들이 반복되어서 그런건가! 분명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어떤 류의 범죄사건은 사라졌지만, 반대로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이 생겨나는, 오히려 더 진화한 동종 범죄사건들도 있다는게 참 씁쓸하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데, 글쎄. 난 죄도 밉고 사람도 밉던데? 간혹 범죄자의 생활환경 또는 어린시절의 학대 등을 이유로 참작하거나,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미화하는 게 곧잘 보이는데, 이건 정말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범죄자의 ‘생활환경이 불우해서, 학대받아서, 어쩔수없어서’ 등으로 그들의 범죄를 합리화한다면, 그건 친일파(매국노)들에게도 면죄부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논리는 동일한 환경에서 자라도 범죄와는 거리가 아주 먼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과, 친일파(매국노)와 달리 나라를 위해 자신을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을 부정하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 세무 공무원 이석호, 그는 어떻게 대한민국 최고의 땅부자가 되었나!


세금 거두는 걸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 이른바 세리, 아전, 세무서원은 이 복잡하고도 피할 수 없는 세금 징수를 집행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악역을 담당해야 했다. 정직한 사람도 많았지만 세금을 빌미로 배를 채우거나 장난을 치던 나쁜 이들도 적지 않았기에 원성과 지탄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생략) 당국의 수사 때문에 “세무행정에 지장이 생기는”일은 수십 년이 흘러도 거짓말처럼 재연되었다. “검찰이 세무공무원들의 부조리에 대해 수사를 벌이자 서울 강서, 동작, 영등포, 관악세무서를 비롯 수도권 지역 20여 개 세무서의 소득세과 소속 세무공무원 중 대부분이 잠적해버려서 일선 세무 업무가 마비 상태에 빠졌다.”라는 것도 모자라 “해당 세무서장들이 검찰로 찾아와 세무공무원들이 검찰의 수사 확대를 겁내 잠적, 업무가 마비되고 있다며 수사 중지를 요청”한 상황까지 똑같았던 것이다. p 213~214



“정부는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면서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고자 ‘국유지 일소 계획’을 세워 국유지 매각을 독려했다. 이석호 씨는 관세 담당관으로 국유지 매각 업무를 맡고 있었다. 이 씨는 ‘국유재산에 관한 사무에 종사하는 직원은 그 재산을 취득하지 못한다’(국유재산법 14조)는 조항을 피해 친인척 등 타인 명의로 국유지를 싼값에 매입하거나, 점유자들에게 점유 중인 국유지를 매수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광주지방국세청 징세2계장(본인)’ 명의로 보내 국유지를 판 뒤 자기가 전매받는 형식으로 1만 200여 평을 ‘일소’하는 실적을 올렸다.”


무슨 말인가 하니, 국유지를 팔아 재원을 조달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을 이용해 일가붙이에게 싸게 팔아치우거나 나라 땅을 점유한 이들에게 국유지를 헐값에 팔아치우곤 가로채거나 되파는 등 20세기의 봉이 김선달 노릇을 한 것이다. 그가 팔아치운 토지 목록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다. (생략) 숫제 문화재고 천연기념물이고 공원이고 가리는게 없었고, 해당 관청은 이석호가 국유지를 팔아치운 것도 모르고 그 땅에 들어와 있던 사람들에게 임차료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팔아치운 땅이 여의도의 30배쯤 되는 3,045만 평이었다. (생략) 그런데 그에 대한 처벌은 놀라울만큼 가벼웠다. 1994년 구속된 후 대법원까지 올라가 징역 7년을 선고받은 이석호는 형기도 채우지않고 가석방 되었다. p 216


예나 지금이나 다를바 없는 공직자들의 비리, 부정부패!!! 정말 대한민국에서 사라지지 않는 범죄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자, 공직자 비리의 정점인 이씨는 구속되었으나, 가석방! 심지어 그 이후에도 몰래 취득한 국유지를 위조한 매도증서를 이용해 특례매입 등 191억원을 챙겼고, 그 아들 역시 82억원을 챙기는 등 국가 땅을 가지고 돈놀이를 했다. 그 과정에서 현직 공무원들의 비호를 받은 건 덤! 이건 과거 공직자의 비리라고 하기엔, 우리에게 너무 친숙하잖아?



세종시 공무원들의 특공 비리라던가, LH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신도시가 생기는 지자체 공직자 땅투기, 건강보험공단 횡령사건… 뉴스에서 나온 공직자 비리들만 나열해도 이정도인데, 뉴스로 알려지지 않은 공직자 비리 사건은 얼마나 많을지! 거기다 고위직 공무원들 재산내역 보면, 어휴. 한평생 공직생활만했다는데, 그 정도의 재산을 모을 수 있는지가 참 의아하다.



김영란법 이딴건 다 의미가 없다. 어차피 비리를 저지른 공무원들은 동일한 전적이 있는 현직, 전직 공무원들이 서로 감춰주고, 도와주고 할테니. 아마 대한민국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는 범죄가, 이런 공직자들의 비리&부정부패가 아닐까. 에잇, 퉷퉷퉷!




▶ 1970년대 흔했던 10대 ~ 20대 식모, 그녀들은 범죄의 피해자였다.


내 이모가 오랫동안 살았던 오래된 아파트의 부엌 옆에는 창고라고 하기엔 뭐하고 방이라고 부르기엔 좁은 공간이 있었다. 그곳은 ‘식모방’으로 설계된 방이었다. 당시 그 정도 규모의 아파트면 식모를 들이는게 상식이었고, 그 상식이 설계에 반영된 것이었다. 기실 부잣집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살림을 꾸리는 가정에서 식모를 들이는 건 흔한 일이었다. <하녀(영화)>에서 하녀의 유혹에 넘어가는 주인 역시 부자가 아니라 학교 음악 선생님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p 257



식모는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에 속했고, 노동법 등과는 전혀 상관없이 주인집의 ‘하녀’처럼 일해야 했다. 청록파 시인으로 유명한 박두진처럼 식모의 혼처를 구해주고 혼수를 장만해준 것도 모자라 결혼식장에서 친아버지처럼 신부의 손을 잡고 입장했던 따뜻한 사례도 있긴 하다. 하지만 주인집의 호통과 학대에 시달리며 모진 가사노동에 종사하는 이가 부지기수였다. 나아가 범죄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p 258



1965년 11월 17일자 <경향신문>에 ‘대학 나온 인텔리 주부’가 집에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없어졌다는 이유로 식모를 가둬 놓고 화젓가락으로 지지고 빗자루로 때린 끝에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등장한다. 죽은 식모의 나이는 불과 열 다섯 살이었다. 같은 해 10월에도 충북 제천경찰서 간부 집의 열다섯살 식모가 도둑 누명을 쓰고 곤봉으로 두둘겨 맞아 중상을 입었다는 보도가 나왔으니, 언론에 등장하지 않는 피해 사례는 얼마나 많았을까 싶다. p 259



이 시기 식모는 모진 노동과 학대와 더불어 집주인 남자들의 성적착취 대상으로 쉽사리 전락하기도 했다. 그 누구로부터도 제대로 된 관심과 보호를 받지 못했던 10대 소녀들은 더러운 욕망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취침 중에 몰래 침입해 욕정을 채우고 그 후에도 범하려 하므로… 동민들이 분개해 경찰에 고발”한 사건부터 “강도를 가장해 식모를 욕보인 뒤 나가선 복면을 벗고 강도야 부르짖었다가 들통난 집주인”까지 세상에 알려진 일만 해도 헤아릴 수가 없는데, 얼마나 많은 비통한 사연이 우리 역사의 그늘에 암장되었는지 귀신도 모를 일이다. p 261



산업화가 진행되고, 여성의 노동력이 산업현장에 대거 유입되면서 식모라는 직업은 사라졌다. 물론 가사도우미라는 직업이 있긴 하지만, 가사도우미는 계약에 따라 정해진 업무와 정해진 임금을 받는, 식모와는 뉘앙스부터 완전 다른 직업이다.



하지만... 식모라는 직업이 사라졌다고해서, 식모를 상대로 저지른 범죄(갑질, 성폭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범죄의 피해자가 식모라는 직군에서, 힘없는 서비스업 직군으로 바뀐 것 뿐이니까. 과거의 많은 식모들은 집주인 가족으로부터 당한 범죄피해는, 현재의 힘없는 서비스업 직군으로 옮겨갔다. 비단 서비스업 뿐만이 아니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들끼리도 상하관계에 따라 비슷한 범죄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저 피해자와 가해자의 직업만 바뀌었을 뿐, 범죄행위는 바뀌지 않았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라는 물음도 이제 덧없다. 이미 원인은 다들 알고 있으니까.



그저 서로가 서로를 ‘존중’ 하고, 같은 인격으로 본다면 이런 범죄는 일어나지 않을텐데. 이 역시 대한민국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을 범죄라는 생각이 드니 씁쓸하다.





▶ 일제강점기에도 ‘스토킹’은 있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말에서 사라져야 할 속담 두 개를 든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우선 아니 뗀 굴뚝 운운의 경우, 누군가에게 누명이나 오명을 뒤집어씌우기에 가장 효율적인 가해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인간의 의지가 지닌 힘을 묘사한 긍정적인 속담이긴 하지만, 이 속담을 ‘나무’가 아니라 ‘사람’에게 들이대면 곤란해진다는 문제가 있다. 거의 모든 사람은 누군가에게 끌리거나 사무치게 좋아하게 되는 경험을 한다. (생략) 그런데 그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감정을 강요해 ‘열 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들이대면 어떻게 될까? ‘스토킹’이라는 범죄를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p 327



뜻밖의 스토커를 소개해볼까 한다. 주인공은 일제강점기 소설가, 「봄봄」과 「동백꽃」으로 유명한 ‘김유정’이다. 김유정은 1937년 3월 29일 만 서른도 살지 못하고 폐결핵과 치질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가 끝난 뒤 김유정의 친구이자 김유정에게 소설 쓰기를 권했던 안희남이 누군가를 찾아간다. 『금수회의록』의 작가 안국선의 아들이었던 안회남이 찾아간 사람은 김유정보다 세 살 연상의 소리꾼 ‘박록주’. 


박록주를 만난 안희남은 냅다 소리 지른다. “네가 김유정을 죽였지!” 친구의 죽음에 눈이 뒤집혔다곤 하지만 안회남의 절규는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쪽이다. 박록주를 피가 마르도록 괴롭힌 건 김유정이었고, 김유정의 빗나간 열정이 김유정 자신을 태워버렸다는 편이 정확하니까. p 329



박록주는 재력가의 소실이었다. 즉 어쨌든 결혼한 몸이었다. 하지만 김유정의 들이대기는 지극정성을 넘어 사람을 들들 볶을 만큼 뜨거웠다. 박록주가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자 김유정은 지금 들어도 소름끼치는 행동을 시작한다. 1974년 <한국일보>에 연재되었던 박록주의 「나의 이력서」에 소개된 김유정의 편지 일부.


“당신이 무슨 상감이나 된 듯이 그렇게 고고한 척하는 거요. 보료 위에 버티고 앉아서 나를 마치 어린애 취급한 걸 생각하면 지금도 분하오. 그러나 나는 끝까지 당신을 사랑할 것이오. 당신이 사랑을 버린다면 내 손에 죽을 줄 아시오.” 


“오늘 너의 운수가 좋았노라. 그 길목에서 너를 기다린 지 세시간. 만일 나를 만았으면 너는 죽었으리라.” 


“엊저녁엔 네가 천향원으로 간 걸 보고 문 앞에서 기다렸으나 나오지 않았다. 만일 그때 너를 만났다면 나는 너를 죽였을 것이다. 그러나 좋아하지 마라. 단 며칠 목숨이 연장될 따름이니까.” p 330



여기까지라면 김유정의 광기에 이골이 난 박록주가 질끈 씹어 넘길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잉크에서 피비린내가 났다. 혈서였던 것이다. (생략) 병마를 견디지 못하고 요절한 그의 방 벽엔 “박록주 너를 연모한다.”라고 쓴 혈서가 붙어있었다고 한다. 도저히 사랑이라고 할 수 없는 집착. 절대로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없는 감정. 그것이 김유정의 그늘이었다. p 331



우와, 이건 좀 충격적인 이야기다. 그 유명한 소설가 김유정이 최악의 스토커였다니. 아, 정말 진짜 와. 뭐지? 하긴 국사시간이든 문학시간이든 교과서에 실려있는 유명인물의 그림자는 알려주지 않는게 우리나라 교육이니까.



당시 날이갈수록 심해지는 김유정의 스토킹으로 인해, 박록주는 경찰에 신고도 해봤으나, 경찰은 그저 구애일 뿐, 경범죄 이상은 아니라고 했다. 결국 피해자 박록주는 그 누구에도 도움을 받지못했고, 언제고 김유정 손에 사단이 날까 전전긍긍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근데 웬걸? 스토커 김유정이 병사하자 김유정의 친구라는 작자가 되려, 언제 죽임을 당할까 매일매일을 고통속에 살던 피해자에게 찾아가 “니가 죽였지!!”라고 분노를 폭발하다니.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진짜. 근데 참 놀랍게도 이 사건조차 현재의 스토킹 범죄들과 겹쳐진다는게 소름이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스토킹처벌법은 아~~~주 오랫동안 국회에 계류되어있다가 2021년 10월 21일에야 비로소 시행되었다. 즉 그 전까지만해도 스토킹은 사적인 사랑놀음일뿐, 범죄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하긴 어렸을때부터 『선녀와 나무꾼』같은 동화를 읽고, ‘열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없다’는 속담을 들으며 자라온 세대인데 말 다했지 뭐. 



늦게나마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이 된 것도, 수많은 사람들이 악질 스토커로 인해 안타까운 생명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뉴스에 나온 스토킹 희생자만해도 한둘이 아닌데, 과거에는 얼마나 더 많았을지는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렇게 정말 많은 스토킹 범죄 희생자들의 고통이 쌓이고 쌓여서, 겨우겨우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것이다. 그런데 참 웃긴게,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은 되었는데....그래도 희생자가 계속해서 나온다. 이쯤되면 뉴스를 보지 말아야되나 싶기도 하고. 



아침 눈뜨자마자 뉴스를 보고, 밤에 자기 전까지 뉴스를 보는 나인데, 뭐 뉴스에서 좋은 이야기가 나와야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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