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우주를 받아든 손 소울앤북 시선
최준렬 지음 / 소울앤북 / 2018년 9월
평점 :
품절


내가 책을 즐겨 읽는 편이긴 하지만, 시집은 잘 안읽는다. 주로 읽는 책들이 역사도서라서 그런가, 막 흔히 말하는 시어, 은유, 함축..등등이 나에겐 너무 어렵다고 느껴졌달까. 그래서 학교에서 배우던 일제강점기 시인들(윤동주, 김소월 등)의 시집도 가지고는 있으나, 솔직히 말해서 제대로 읽지는 못했다. 여러 독립운동단체들의 독립선언문들은 그렇게 확확 들어오고, 한번 읽고 두번 읽고 그러는데......시 만큼은 그게 안되더라, 하. 난 분명 본투비 문과인데, 왜이렇게 시가 어려운지! 하지만, 아무리 시가 어려워도 시집을 읽을 환경에 처하면 읽게된다. 시집을 읽을 환경이 대체 뭐길래? 라고 갸우뚱 할 지도 모르는데, 적어도... 중앙산부인과에서 출산을 하게된다면 그 ‘환경’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헤헤ㅔㅎㅅ.





오늘 리뷰하는 시집 『너의 우주를 받아든 손』을 쓴 시인, 최준렬 시인의 본케는 산부인과 전문의다. 그는 시흥 중앙산부인과 원장이기도 하다. 



나는 뿡뿡이를 품던 10개월간 중앙산부인과를 다녔고, 병원에 갈때마다 매번 벽면 전광판에서 한편의 시를 마주했다. 그 시의 제목은 ‘분만실에서’. 병원을 다닌 초반에는 산부인과라는 병원에 걸맞는 시라고만 생각했는데, 왠걸? 나를 담당해주시는 원장님이 쓰신 시였다. 즉, 이 시집을 쓴 시인 최준렬은, 나와 뱃속에 있는 뿡뿡이를 10개월간 돌봐주신 의사선생님이자, 우리 뿡뿡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 처음 마주한 분이다. 




분만실에서

성큼 걸어나오지 않고

아주 긴 시간

느리게 하강한 너를

맞으러 서 있다

너는  내가 받아낸

수많은 생명 중의 하나

첫울음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네 모습을 바라본다

묵직한 너의 우주를 받아든

손이 부끄러울 때가 있다


순수하고도 거룩한 인생에서

네가 처음으로 잡은 손

내 손가락을 움켜쥐는

너의 무한한 신뢰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힘이다


그것도 잠시

너를 엄마 품에 안겨준다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곳

엄마의 가슴은 천국이다


너의 등을 쓸어주고

태명을 예쁘게 부르면서

사랑한다 말하면

너는 대답하듯 크게 운다


사랑이 피어나는

아침 꽃밭을 본다

긴 진통의 여행을 끝낸

너와 네 엄마는

얼굴을 마주보고 잠을 잔다




처음 원장님을 뵈었을 때는, 조금은 무뚝뚝하셔서 약간 서운한 면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를 쓴 분이, 나를 담당하시는 원장님이라는 걸 안 이후에는 조금 달라졌다. 원장님이 겉으로는 살짝 무뚝뚝하셔도, 속은 그렇지 않으시구나. 병원에 걸려있던 이 시 한편이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나를 담당해주시는 최준렬 원장님에 대한 믿음을 주었다. 그 믿음 속에서 우리 뿡뿡이는 10개월간 별다른 이벤트 없이 건강하게 엄마 뱃속에 있다가, 원장님 손을 통해 건강하게 세상에 나왔다. 정말 다시한번 원장님과 수술실 간호선생님들에게는 무한한 감사를...!




계류유산


어린아이는 묻는다

엄마 뱃속의 동생이 왜 자라지 않는지


콩콩 뛰는 동생 심장 뛰는 소리가

왜 들리지 않는지


조용히 잠만 자면서

왜 쑥쑥 크지 않는지


사라진 입덧처럼 기척이 없는

아랫배를 만져보다

꽃잎 지는 창밖을 바라본다


나는 아이에게 침묵하고

아이는 보채듯이 또 묻는다

동생을

언제쯤 만날 수 있는지


나는 대답하지 못한다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이

어떻게 죽을 수 있는지

나도 모르는 것을


아이는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지만 난... 뿡뿡이를 낳기 전에, 난 또 한번의 임신을 했었다. 계획했던 임신이었고, 기다리던 아이였다. 당시에 담당 선생님도 최준렬 원장님이였다. 병원에서 분명 힘차게 뛰는 심장소리도 들었고, 기뻤었다. 하지만 그렇게 끝났다. 정기검진차 병원에 간 날, 심장소리가 들리지가 않았다. 원장님은 순간 당황하셨고, 난 순간적으로 멍해졌고, 신랑은 날 챙기느라 바빴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당시에 원장님이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고 해주셨다. 그 한마디 덕분에 자책감에서 조금이나마 더 빨리 빠져나왔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그 한마디가 없었다면 난 자책감에 빠져서 꽤 오랫동안 허우적거리지 않았을까.



5.18


날이 밝으면

형사 두 명이 집에 들어와

진을 치고 앉아있고

어머니는 휴교령이 내려진

대학의 적막한 잔디밭으로

풀매기 작업을 나갔다

최루가스 스멀스멀 올라오는 잔디밭

잡초 하나를 솎아내면

수배된 아들 생각에

매운 눈물 하나 떨구었다

쫓기는 동생을 접속하러 가는 미로

몇 번씩 뒤돌아보고서야

길이 끝났다

홀어머니의 애간장 끊어지는 한 숨 소리가

5월의 밤의 공포를 높여갔다

조사실이 있던 지하실로 가는 길은 지옥의 계단

그 계단은 흔들리고 내딛는 동생의 다리를

지켜주기엔 나도 어렸다


지술서를 쓰는 떨리던 손을 바라보며

나는 울고 있었다

취조하던 경찰이 피의자의 귀뺨을

사정없이 내리치던 지하실의 풍경

차라리 영화 속의 한 장면이었다면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


죽어야 할 사람은 아직도 살아있고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이제는 많지 않다.




마감의 시간


하루에도 마감이 있다


매일 모든 일에서 문을 닫고

퇴근하는 시간


빛의 스위치를 내리고

잠자리에 드는 어두운 시간도

마감이다


지금은

한해를 마감하는 시간


그렇게 마감이 쌓이고 쌓이면

세월은 대나무처럼 매듭져 자라나고


시간을 쟁여놓은 나이테처럼

나이가 된다


언젠가는 내 인생의 마감도

동지冬至처럼 말없이 올 것이다


단풍잎들 하혈처럼 쏟아낸

겨울나무 아래서

가을의 마감을 바라보고 있다



중앙산부인과에서는 병원에서 출산하는 산모들에게 출산 축하선물 꾸러미를 준다. 대부분 아기용품들인데,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이 시집이다. 이 시집을 받고, 중앙산부인과 바로 옆 중앙조리원에 이주일간 있었기에......위에서 말한 ‘시집을 읽을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ㅋㅋㅋㅋ 


참고로 중앙산부인과 입원실과 중앙조리원 각 방마다 최준렬 원장님의 시집이 별도로 비치되어있기에, 이건 뭐. 안 읽고 싶어도 계속 시집이 눈에 띄니 궁금해서 읽을 수 밖에 없기도 하고! 



출산후 입원실과 조리원에서 읽었던 원장님 시집을, 요즘 다시 읽고 있다. 왜? 우리 뿡뿡이를 재우기에 아주 효과적이기 때문에!!!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요즘 우리 뿡뿡이가 4개월 원더윅스(^_T)때문인지 낮잠에 드는게 넘 힘들어한다. 책을 읽어주면 엄마 말소리(?)에 편안해져서 잠들지 않을까 싶어서 책을 읽어주려고 하니, 이거 참. 눕혀놓으면 칭얼내고, 안아줘야 편안히 있는데, 안은 상태에서 책을 읽기가 넘 힘들었다. 그래서 최대한 얇고, 한 단락으로 끊어 읽을 수 있는 책을 찾다가 이 시집을 꺼냈는데.................완전 대박!



뿡뿡이를 힙시트로 안고 이 시집의 시를 읽어주다보면 뿡뿡이가 잠이 든다.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원장님의 시집이 나에게는 육아꿀템이 되어버린!! 거기다 평소 엄마아빠가 쓰는 일상대화가 아닌 언어들이니, 우리 뿡뿡이 성장발달, 언어발달에도 좋을 것이고. 정말 여러모로 원장님은 나의 은인...헷:) 



다시한번....감사합니다, 최준렬 원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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