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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가 좋다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바다는 모든 사람의 로망일 것이다. 관광 차 훌쩍 떠났다가 바람이라도 쏘이고 다녀오면, 또 다시 가고 싶어 눈앞에 어른거리는 그곳이 바다이고 섬이다. 그런데, 진즉부터 그곳을 터전으로 애환을 느끼는 사람은 바다와 섬이 어떻게 다가올까? 그들의 본능적 그리움을 찾아 나선다.
< 나는 여기가 좋다, 문학 동네, 2009 >는 바다 전문 작가 한창훈의 작품집이다. 항구 도시 여수에서 뱃길로 두 시간 거리 거문도 출신 작가가 새 작품으로 ,< 청춘가를 불러요, 한 겨레 신문사, 2005 > 이후 5 번째 소설집으로 내 놓았다. 갓 잡은 해산물의 냄새가 풀풀 풍기고 신선미가 넘친다는 작품집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진솔하게 살아가는 섬사람의 삶을 8가지 맛을 내어 버무려 놓아 맛깔 나는 맛의 일품요리가 작품으로 담겼다. 소설 근본에는 언제나 섬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과, 섬 밖으로 나가려고 바다에 발목 잡히기 싫어 몸부림치는 인간의 모습이 표출되어 있다.
다루는 소재 자체가 질퍽한 느낌의 어촌의 삶이고, 그 삶이 그렇게 만만치 않은 황폐화 되어 가는 세상이 그려진다. 어둡고 험악한 삶의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래도 밑바탕이 착한 인간의 삶이기에, 서로 위로 받고 사는 정감 어린 풍경이 눈에 띈다. 그러기에 작품 에서 왠지 훈훈한 인정의 온기가 흐른다.
소설가 이문구의 작품에서 구수한 사투리가 별미로 맛을 내듯이, < 홍합 >으로 제3회 한겨레 문학상을 받은, 바다 사나이 특유의 걸쭉한 사투리가 소설 특유의 맛을 낸다. 거침없는 호탕함과 강직한 태도가 떠오르는 힘 있는 이야기에, 진득한 문학성과 재미를 안주 삼아 시원스럽게 펼쳐낸다. 이야기 속에 굳건히 터전을 잡고 있는 바다의 그리움이 있다.
이런 심기는 블랙 코미디 작품 속 <올 라인 네코 >의 사례처럼, 어려운 상황을 뚫고 거친바다를 향해 씩씩하게 나아갈 태세가 보이는 야무진 인물과도 같다. 작가는 어둡고 힘든 사실이라도 개의치 않는 밝은 시선을 끝내 놓지 않는다.
"올 라인 네코!"
잠시 입을 뗀 용철이 또 그 소리를 했다. 품에 안고 보니 다시 생각이 났다는 말이겠지만, 미정에게는 저를 붙들고 있는 여러 족쇄들이 순간 사라지는 말로 들렸다.
- p99, 올 라인 네코 -
믿음직한 작가의 뚝심은, 작품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있다. 작가의 특유한 개성이기도 한 심성 깊은 마음 쓰임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든다. 섬을 사랑하고, 섬에 발이 묶여 살고, 또 섬을 벗어나려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위안도 있고, 희망과 절망을 함께 보여준다.
삼각파도가 여차하면 뒤집어 질 듯 고달픔과 서글픔이 넘실대는 바다 풍경의 위협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며, 독특한 환경의 고립 된 섬과 섬을 벗어난 뭍에서 지지고 볶으며 사는 어민의 삶이 실감나게 살아 있다. 선창가 작부가 술잔을 기우리며 들려주는 연애 담에는 질퍽한 유머와 아직도 떠나지 못하는 삶의 그림이 애틋하다.
작가가 농담 같이 뱉어내는 뼈 있는 이야기 속에는, “잊혀 가는 아웃사이더들의 삶을 독자에게 끊임없이 환기해주는 것이 나의 몫인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그려낸 속내가 깃들여 있다. 성찰이 깃든 글에서 깊고 끈적끈적한 미워할 수 없는 삶과 죽음의 정경을 그려 낸다.
“ 우선은 세상 모양 있게 살지 말자. 다친다. 한곳에서 오래 살지 말자. 죽는다. 이렇게 생각했단 말이여. 그래서 집을 나섰고, 아예 인연을 끊어버린 겨... ”
- P166, 가장 가벼운 생 -
어쩔 수없이 배를 팔아 넘겨야 하는 선장의 사연에는 밀고 당기는 부부의 갈등이 빚어지고, 농담 같은 부자간의 갈등도 튀어 나온다. 어촌이 변해가는 현실도 부각 되고, 마을 밖 잠시만 벗어나도 풍습이 다른 제주도 관광 특구의 희한한 경험과 요지경 속 관광 여행 코스로 인간 세상 구경을 실컷 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