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사전, 서로 다른 세계

여기, 두 개의 사전이 있습니다. 동일한 단어를 아주 다르게 풀이하는 사전이죠. 가령, 연애라는 단어의 뜻풀이부터 볼까요?


연애 : 특정한 이성에게 특별한 애정을 품고 둘만이 함께 있고 싶으며 가능하다면 합체하고 싶은 생각을 갖지만 평소에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무척 마음이 괴로운(또는 가끔 이루어져 환희하는) 상태.

 

연애 : 남녀 사이의 그리워하는 애정(남녀 사이에 그리워하는 애정이 작용하는 것). 사랑.

"가능하다면 합체하고 싶은 생각을 갖지만,... 마음이 무척 괴로운 상태"라니 약간 웃음이 납니다. 반면, "그리워하는 애정. 사랑", 뭔가 연애에 어울리지 않게 건조하고 좀 딱딱한 면이 있군요. 그렇지만 사전이니까 간단 명료, 무색무취, 이런 게 옳다, 하는 분도 있을 듯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사전에는 개성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맞는 걸까요?

 

사전이란, 말의 올바른 의미가 쓰여 있는, 그 어떤 사전도 거의 같은 사전이라고 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죠. 그리고 사전을 만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일반 사람들은 상상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단지 상당한 노력이 든다는 것 정도?



사전(辭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총누계 4000만 부에 육박하는 경이적인 발행 부수를 기록한 일본의 국어사전 산세이도 국어사전신메이카이 국어사전. 두 권 모두 전후 산세이도 출판사에서 간행된 일본어 사전으로 이 두 권이 거둔 성과는 가히 역사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좋은 벗과 두 영웅은 양립할 수 없다

 

산세이도 국어사전쓴 겐보 히데토시는 1914년생으로 국어학자로서 사전을 위해 평생 혼자 채집 한 용례가 145만개에 이를 정도로 초인적인 노력을 경주한 천재 편찬자입니다.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을 쓴 야마다 다다오는 1916년생으로 고전문학 연구자로서 반골의 귀재 사전 편찬자이자 사전 계의 혁명아라고 불리죠. 그러나 이 기념비적인 사전을 만든 두 인물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아마다(왼쪽, 겐보(오른쪽)


막대한 언어를 작은 사전에 예문과 함께 수록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일뿐더러, 언어는 살아 있고 변화하는 실상을 반영하면서도 명쾌한 것을 요구합니다. 두 사람 모두 국어학자지만 두 사전의 성격과 내용은 판이하다. 산세이도 국어사전이 간결하고, '현대적'이라고 한다면,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은 독단적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 주관적 해석으로 가득합니다.


겐보는 사전은 말을 찍는 거울이며, 동시에 말을 바로잡는 귀감(거울)이라고 생각했다. 야마다는 사전이란 문명 비평이라고 생각하고 전통적으로 사전 출판계에서 내려오던 답습과 모방을 완전히 배제했다. 이렇듯 두 사람은 기본적인 신념도 서로 부딪혔다. 두 천재가 맞붙는 곳이 언어라는 것이 싸움을 더욱 드라마틱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 두 학자의 언어관, 사전관, 그리고 인간과 삶에 대한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두 천재 사전 편찬자가 사전을 중심으로 서로 힘을 합치거나 결별하는 과정은 두 개의 초인적인 에너지가 부딪치는 것처럼 장대하고 스릴 넘치는 전개와 더불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소설보다 더 기이한 사전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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