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들의 사생활> 이승우
몇 번의 시도에도 잘 안 읽어지던 작가가 ‘이승우‘였다.
어제 도서관 가서 한국문학 서가 뱅뱅 돌다 김혜진, 장류진의 작품, 그리고 이승우 작가의 이 책을 빌려왔다.
정희진 샘이 정찬, 이승우 작가 등에 대해 노벨문학상 탈 가능성을 언급하셨던데 그 이유로 정찬 작가의 작품도 읽어보게 되었고 의외로 정찬 작가의 작품은 나와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승우 작가는 솔직히 어떨지 모르겠다. 잘 읽어내고 싶은 욕심이 차오른다. 책들 괜히 팔아버렸나...
신형철 해설이네.... !
첫페이지만 읽었는데 어떤 장면이 떠오른다.
ㅎㅎ.. 느낌이 좋다.
1
왜 웃어요? 하고, 은색의 루주를 입술에 바른 거리의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왔을 때 나는 조금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반바지 차림의 여자는 기분이 별로 좋지않아 보였다. 그녀가 나를 까다로운 손님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표시가 찌푸린 얼굴에 그대로 나타났다. 그러나 물론 나는 여자의 기분을 헤아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자의 루주 색깔이 그런 부류의 여자들로서는 퍽 이례적이라는 생각을 잠깐 했던 것 같기는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지는 않았다. 나는 운전석에 앉아 있었고, 여자는 반쯤 열어젖힌 내 차의 유리창 안으로 얼굴을 집어넣고 서 있었다. - P7
형에 대한 내 감정은 날로 사나워졌다. 그녀에 대한 말 못할 사랑이 간절해질수록 형에 대한 미움도 커졌다. 나는 한 남자가 한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결코 허물이 될 수 없다는 명제에만 편집적으로 집착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은 떳떳하고 자랑스럽고 나아가 바람직한 것이다. 사랑의 대상이 누구든. 나는 사랑의 보편성에 매달렸다. 하나의 관념, 또는 추상화된사랑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러나 진공상태로 포장되어 있는 사랑이란 없다. 사랑은 언제나 그 사랑이 유발되고 고백되고 실연되는특별한 상황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랑은 상황 안에서의 사랑인 것이다. 모든 사랑이 특별한 것은 그 때문이다. 나는 그 점을 간과했다. 의도적인 눈감기, 필요가, 혹은 욕망이 어떤 진실에 대해 눈을감게 하고 새로운 진실을 창출한다. - P61
그리하여 나는 그녀에 대한 내 사랑이 어째서 허물인가, 무엇이 내 사랑을 당당하지 못하게 만드는가 하고 물었다. 나는 나에게 묻고 스스로 대답했다. 그것은 형의 존재였다. 나는, 하필이면형의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는가? 하고 묻지 않고, 왜 내 사랑 앞에형이 장애물로 있는가? 하고 물었다. 모든 생각이 나로부터 비롯하고, 나를 중심으로 돌고, 나에게서 멈췄다. 내가 태초였다. 내가있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의 사랑이 있기 전에는 어떤 사랑도 없었고, 또 없어야 했다. 나의 사랑이 있기 전에 있었던 어떤사랑도 실체가 아니었다. 실체가 아니므로 인정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나의 사랑이 있기 전에는 형의 사랑도 없었고, 없어야 했다.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실체로 인정할 수 없었다... 이쯤 되면 심각하지 않은가? 이쯤 되면 위험하지 않은가? 그랬다. 내 사랑은 심각한 사랑이었고 위험한 사랑이었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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