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비합리가 합리적이야. 주위의 모든 사람이 세상은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돌아간다고 믿는다면, 적어도 세상이 그렇게 돌아간다고 믿는 척이라도 하는 게 이롭단 말이야. - P91

나는 노년이 되면 여행을 하며 살 거라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여행은 젊은이를 위한 것이니까. 나이를 웬만큼 먹어서까지 여행에 나서지 못한 사람은 나 같은 꼴이 되고 만다. 태어나 자란 곳에 뿌리를 내리고 붙박이는 것이다.
내가 캠리슬을 세상에서 으뜸가는 곳으로 여기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곳에서 평생을 보내 놓고 이제 와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 상상이 안 될 뿐이다.  - P184

사랑이 아빠를 묶어 놓았다. 엄마에게, 저 끈질긴 밀물에게. - P199

그렇게 답하며,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유대감을 느꼈다. 그것은 중력처럼 단단했다. - P201

삶이 의미를 얻는 수단이 바로 죽음이니까.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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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동안 내가 천착한 중요한 주제 하나는 격렬한 변화 앞에서 인간으로 남고자 부단히 애쓰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었다. 현대성은 전통을 전복하고 세상의 크기를 인지하는 인간의 감각을 뒤엎었으며, 이로써 몇 세대가 흘러도 또렷이 파악하기 힘들 만큼 커다란 영향력으로 우리 삶을 바꾸어 놓았다. 오늘날 개개인은 고대의 어떤 현자보다도 더 많은 정보와 지식에 접근할 수 있고, 그 결과 우리는 소비와 여가, 직업, 결혼, 자기 정체성의 선택이라는 측면에서 과거의 어느 세대보다 더 큰 자유를 누린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더 자유롭다고, 더 현명하다고, 더 인간적이라고 느낄까? 아니면역설적이게도 과거보다 더 혼란스럽고 더 답답하다고, 더 불안하다고, 그러면서도 덜 인간적이라고 느낄까? - P8

그러나 이야기는 단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일을 이해하도록돕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시간의 강을 건너가는 동안 길잡이가되어 주기도 한다.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또 원래 출발한 곳이어디인지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목적을 지니고 앞으로 나아가며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지키고자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결국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셈이다. 미래를 예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 가는 이야기를. - P11

부자는 사는 법도 죽는 법도 가난뱅이하고는 완전히 딴판이어서, 부와 권세는 얄따란 살갗에 보이는 흔적이 다가 아니었다. 그런 것들은 말그대로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일찍이 죽음은 평등의 수호자로 위세가 대단했지만, 이제 그마저도 부자들은 피해 가는 모양이었다. 세상에 분노한 사람이 그렇게많은 것도 당연했다. - P43

그 무렵의 내가 행복하게 지냈던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행복을 잃고 나서 뒤늦게 행복했던 것을 알아차리는 경우는 자주 있게 마련이다. - P51

당신은 나에게 삶을 줬지만, 그렇다고 내가 당신을 소유할 수 있는 건 아니었어요. 사랑은 중력 같은게 아니에요. 그냥 늘 존재하는 거라고,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선 안 돼요. 그러니까 나는 계속 그렇게 기다릴 게 아니라, 마땅히 내 손으로 삶을 개척해야 했던 거죠. - P53

내가 겁먹은 열여섯 살 아이였을 때에는 내 안에서 찾아 불러내지 못했던 것이, 일흔두 살이 되고보니 자연스레 나를 찾아왔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그저 삶을 견디는 능력이었다. - P54

나는 존과 함께 보냈던 길고 긴 나날을 돌이켜보았다. 그런데 기억에 남은 날들은 너무도 적었다. 끝없는 시간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기에 결국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선택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삶을 낭비했다. 그래서 기꺼이내 삶에 플라스티네이션 처리를 했다. 고치 속에 숨은 누에처럼.
세계 곳곳에서 삶이 영원히 이어졌지만, 사람들은 전보다 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함께 나이 들지 않았다. 함께 성숙하지도않았다. 아내와 남편은 결혼식 때 한 선서를 지키지 않았고, 이제 그들을 갈라놓는 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권태였다. - P59

내가 늙어 가다가 죽기로 마음먹은 것은 사랑 때문이 아니었다.
시간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다시 그리고 또다시시작해야 하는 운명으로부터
"나는 여러 번의 삶을 살면서 이미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어. 어떤것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으로 끝을 맺어야 하는 법이란다." - P61

믿음의 문제란 모름지기 그 끝에 이르면 합리에 기반한 주장으로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게 마련이고, 거기서는 도약을 하는 수밖에 없다. - P62

때로 우리는 스스로 구한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용서를 찾아 헤맨다. 그리고 세상은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베풀곤 한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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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려면 자신이 속한 무리의 과거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게 아버지의 지론이었다. - P43

「아빠 말을 잘 기억해 두렴. 진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얘기해 줄 수는 없단다. 거짓에익숙해진 사람들의 눈에는 진실이 의심스럽게 보이기 마련이거든.」 - P47

그래, 하늘이 무너질 일은 없다.
살아 있는 한, 우리에게 닥치는 불행은 그저 삶의 항해에서만나는 잔파도에 불과하다. 그게 없다면 얼마나 지루할까.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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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고전이 진부할 것이라 지레짐작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오래 살아남은 고전은 처음부터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웠는데 지금 읽어도 새롭게 다가온다. 다시말해 지금 읽어도 새로운 것은 쓰인 당시에도 새로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고전이라고해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당대의 진부함과 싸워야만 했다. 고전은 당대의 뭇 책들과 놀랍도록 달랐기 때문에 살아남았고 그렇기에 진부함과는 정반대에 서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낡거나 진부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책들은 살아남았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후대로 전승되었을 것이다.  - P15

비극은 대부분 우리보다 나은 사람이 내재된 성격적 결함으로 파멸하는 얘기다. 반대로 희극은 우리보다 못한 이가 우스꽝스런 행동을 하는 것을 편안한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니 시나리오를 쓰려고 한다면 적어도 자기가 쓰는 것이 비극인지 희극인지를 결정해야 하고, 그에 따라 걸맞은 덕성 혹은모자람을 인물에게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한 "비극에서 우리를 가장 매혹하는것은 급전과 발견"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어 극작의 초심자들이 사건의 결합보다 조사와 성격 묘사에서 성공을 거둔다"고 말하는데, 이는 플롯을 성격보다 더 높이 평가하는 그의 이론과 일치한다. 그는 극에서 중요한 것은 인물의 성격보다 ‘사건의 결합‘, 즉 플롯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 플롯에서 중요한것은 스토리를 완전히 달리 보게 만드는 반전, 그리고 그 반전을 통해 주인공이 획득하게 되는 새로운 인식이라고 보았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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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미드나잇>에서 이제 사십대에 다다른 셀린(줄리 델피)은제시에게 묻는다. "지금의 나를 만난다면 이번에도 기차에서뛰어내릴 건가요?" 비엔나에서 만난 사람과 같이 살고 있지 않은 나는 비슷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그녀를 만나리라는 확신도 없이 무작정 부다페스트행 기차에 다시 오를 수있겠는가?"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행동은 스물여덟 살에게나 어울린다. 그럼 사십대의 남자에게는 무엇이 어울리나?
바로 지금 하고 있는 것들. 극장의 어둠 속에 몸을 파묻고 영화 보기, 달콤쌉싸름한 회고담 늘어놓기, 그러다 혼자 괜히 쓸쓸한 기분에 젖어 맥주 마시기, 그리고 글쓰기.
이십대는 몸으로, 사십대는 머리로 산다. 살아보니 둘 다 나름대로 좋았다. 이제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가 찍을 다음 영화를 기다린다. 내가 어쩌면 살았을 수도 있었을 또다른 삶을 기다리는 기분으로. - P67

죽음과 종말을떠올리면 현재의 삶은 더 진하고 달콤해진다. 로마인들은 이천년 전에 이미 그걸 알고 있었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의 파국을 상상해보는 것은 지금의 삶을 더 각별하게 만든다. 그게 바로 카르페 디엠이다.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은 그렇게 결합돼 있다. - P90

에피쿠로스가 죽음의 무의미성이라는 계단을 통해 고귀한 쾌락의 세계로 들어갔다면, 우울증 환자들은 삶의 무의미와 고통이라는 다이빙대에서 죽음의 세계로 점프한다. - P94

그런데 자기만의 방식으로 약점을 커버하면서 살아남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잘못하면 샤워실 가수처럼 놀림감이 되기 십상이다. 우디 앨런이 샤워실 가수 에피소드로 보여준 것은 ‘아마추어 예술가도 자기 약점만 극복하면 충분히 프로페셔널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즉 스칼라좌에서 노래하는 가수가 된다는 것은 노래 실력만으로가능하지 않다는 것, 거기에는 노래 실력 이상의 뭔가, 예컨대최소한 담력이라도 필요하다는 것으로 나는 읽었다. - P102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겪은 일을 ‘진심‘을 담아 전하기만 하면 상대에게 전달되리라는 믿음 속에서 살아간다. 호메로스는 이미 이천팔백여년전에 그런 믿음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알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진심은 진심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진심 역시 ‘잘 설계된 우회로‘를 통해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그게 이 세상에 아직도 이야기가, 그리고 작가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 P115

"사람마다 연극적 자아라는 게 따로 있는 건가요?"
내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인간에게 연극적 자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연극적 자아가 바로 인간의 본성입니다. 어렸을 때 소꿉놀이를 생각해보세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데도 아이들은 엄마, 아빠, 의사와 간호사를 연기합니다. 인간은 원래 연극적 본성을 타고납니다.이 본성을 억누르면서 성인이 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되려는 욕망, 다른 사람인 척하려는 욕망을 억누르면서 사회화가 되는 겁니다. 연극은 사람들 내면에 숨어 있는 이 오래된 욕망,
억압된 연극적 본성을 일깨웁니다. 그래서 연기하면 신이 나는거예요."
그의 말은 <시저는 죽어야 한다>에서 죄수들이 왜 <줄리어스 시저>의 배역은 태연하게 소화하면서 영화 속 자신의 모습을 연기하는 일에는 서툴렀는지에 대해 흥미로운 힌트를 준다.
우리가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존재,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끝없이 변화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게 무엇인지 영원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우리가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장면은 바로 우리의 일상일 것이다. - P122

파묵은 말한다. "꿈을 꿀 때는 그 꿈이 진짜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꿈이니까요. 우리는 소설도 진짜라고 생각하며 읽습니다. 하지만 머릿속 한구석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모순되는 상황은 소설의 본질에서 옵니다. 소설 예술은 서로 모순되는 것들을 동시에 믿을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바탕을 둡니다."(오르한 파묵, 소설과 소설가, 민음사, 2012) - P130

언제든 멈출 수 있는 책과는 달리 영화는 어쩐지 한번 지나가면 돌이킬 수 없는 현실처럼 느껴진다.  - P131

그는 마치 정해진 운명을 읽어주듯 담담한 확신을 가지고 말했고 나는 그의 말을 ‘앞에서 날아오는 돌‘이라고 여기고 피하지 않고 맞았던 셈이다.
우리의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운명예정 따위를 믿을게 아니라면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우리에게 자기실현적 암시가 꼭 필요한 인생의 순간들이 있다는 것. 그 암시가 꼭 점쟁이나 관상쟁이에게서 나올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다. - P154

치밀하고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버지상은 별로 현실감 없이, 다소 성급한 윤리적 선언처럼 다가온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영화가 도시/시골, 외둥이/다둥이, 전업주부/워킹맘, 유능/무능, 냉정/친밀의이항대립항들 위에 구축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항대립은문제를 명쾌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편리한 장치이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현실은 이항대립 사이 어딘가에서 부유한다. 현대의 가족들은 전선이 분명하게 그어진 정규전이 아니라 사방에서 총알이 날아오는 시가전을 치르고 있다. - P167

여집합은 스스로 자신을 규정할 수가 없어 여집합이다.  - P174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우선은 자신이 예측 가능한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전제를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탐정의 눈으로 자신의 일상을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것이다. 출근길을 바꾸고 안 먹던 것을 먹고 안 하던짓을 하며 난데없이 엉뚱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면 우리는 점차예측 불가능한 인간이 되어갈 것이다. 이런 엉뚱한 연습에서얻어지는 부산물도 있다.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감수성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무심하게 내버려둔 존재, 가장 무지한 존재가 바로 자신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 모른다. - P184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 하나 있다면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 P192

한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기위해서는 단순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데에서 좀더 나아가야 한다. 보고 들은 후에 그것에 대해 쓰거나 말하고, 그 글과 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직접 접하지 않고서는, 다시 말해, 경험을 정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타자와 대화하지 않는다면, 보고 들은 것은 곧 허공으로 흩어져버린다. 우리는 정보와 영상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많은 사람이 뭔가를 ‘본다‘고 믿지만 우리가 봤다고 믿는 그 무언가는 홍수에 떠내려오는 장롱 문짝처럼 빠르게 흘러가버리고 우리 정신에 아무흔적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도 책상 앞에 앉아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생각의 가장 훌륭한 도구는 그생각을 적는 것이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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