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동안 내가 천착한 중요한 주제 하나는 격렬한 변화 앞에서 인간으로 남고자 부단히 애쓰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었다. 현대성은 전통을 전복하고 세상의 크기를 인지하는 인간의 감각을 뒤엎었으며, 이로써 몇 세대가 흘러도 또렷이 파악하기 힘들 만큼 커다란 영향력으로 우리 삶을 바꾸어 놓았다. 오늘날 개개인은 고대의 어떤 현자보다도 더 많은 정보와 지식에 접근할 수 있고, 그 결과 우리는 소비와 여가, 직업, 결혼, 자기 정체성의 선택이라는 측면에서 과거의 어느 세대보다 더 큰 자유를 누린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더 자유롭다고, 더 현명하다고, 더 인간적이라고 느낄까? 아니면역설적이게도 과거보다 더 혼란스럽고 더 답답하다고, 더 불안하다고, 그러면서도 덜 인간적이라고 느낄까? - P8

그러나 이야기는 단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일을 이해하도록돕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시간의 강을 건너가는 동안 길잡이가되어 주기도 한다.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또 원래 출발한 곳이어디인지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목적을 지니고 앞으로 나아가며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지키고자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결국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셈이다. 미래를 예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 가는 이야기를. - P11

부자는 사는 법도 죽는 법도 가난뱅이하고는 완전히 딴판이어서, 부와 권세는 얄따란 살갗에 보이는 흔적이 다가 아니었다. 그런 것들은 말그대로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일찍이 죽음은 평등의 수호자로 위세가 대단했지만, 이제 그마저도 부자들은 피해 가는 모양이었다. 세상에 분노한 사람이 그렇게많은 것도 당연했다. - P43

그 무렵의 내가 행복하게 지냈던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행복을 잃고 나서 뒤늦게 행복했던 것을 알아차리는 경우는 자주 있게 마련이다. - P51

당신은 나에게 삶을 줬지만, 그렇다고 내가 당신을 소유할 수 있는 건 아니었어요. 사랑은 중력 같은게 아니에요. 그냥 늘 존재하는 거라고,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선 안 돼요. 그러니까 나는 계속 그렇게 기다릴 게 아니라, 마땅히 내 손으로 삶을 개척해야 했던 거죠. - P53

내가 겁먹은 열여섯 살 아이였을 때에는 내 안에서 찾아 불러내지 못했던 것이, 일흔두 살이 되고보니 자연스레 나를 찾아왔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그저 삶을 견디는 능력이었다. - P54

나는 존과 함께 보냈던 길고 긴 나날을 돌이켜보았다. 그런데 기억에 남은 날들은 너무도 적었다. 끝없는 시간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기에 결국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선택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삶을 낭비했다. 그래서 기꺼이내 삶에 플라스티네이션 처리를 했다. 고치 속에 숨은 누에처럼.
세계 곳곳에서 삶이 영원히 이어졌지만, 사람들은 전보다 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함께 나이 들지 않았다. 함께 성숙하지도않았다. 아내와 남편은 결혼식 때 한 선서를 지키지 않았고, 이제 그들을 갈라놓는 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권태였다. - P59

내가 늙어 가다가 죽기로 마음먹은 것은 사랑 때문이 아니었다.
시간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다시 그리고 또다시시작해야 하는 운명으로부터
"나는 여러 번의 삶을 살면서 이미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어. 어떤것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으로 끝을 맺어야 하는 법이란다." - P61

믿음의 문제란 모름지기 그 끝에 이르면 합리에 기반한 주장으로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게 마련이고, 거기서는 도약을 하는 수밖에 없다. - P62

때로 우리는 스스로 구한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용서를 찾아 헤맨다. 그리고 세상은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베풀곤 한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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