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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애하는 적
허지웅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평점 :
이번이 그의 두번째 책을 읽는 것이지만, TV를 보지 않는 나는 여전히 허지웅을 잘 모른다. 하지만 예전에 읽었던 그의 책에서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나 낯설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여기고 싶은 부분들이 더러 있었다. 때문이 이 책을 선택하는 데에는 별 다른 주저함은 없었다. 제목 또한 눈길을 끌었다. '나의 친애하는 적'. 나는 유무형의 싸움에 있어서 한번도 내 상대편을 존중할만한 상대로 여겨본 적이 없었다. 그건 내가 비뚤어진 것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내가 그동안 상대해 왔던 이들의 수준이 다 고만고만해서 였을 수도 있다. 저자는 이 제목을 통하여 "나 자신에게 지나치게 심취하는 일"을 경계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 어려운 신독(愼獨)의 경지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3부 '끓는점'이라는 소제목은 거기에 속한 대표적인 글의 제목을 땄다. 물론 이러한 소제목들이 각 부에 속한 글들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굳이 대강적인 분류를 하자면, 1부는 저자의 생활과 연관된 개인적인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2부는 '잊을 수 없는 얼굴이 있다'라는 제목 아래 그의 아버지, 엄마(나의 가장 친애하는 적), 데이비드 보위, 팀 커리, 도널드 서덜랜드, 신해철, 앤서니 퍼킨스 등 그에게 직간접적으로 영감을 주었던 이들에 대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3부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이슈들이 주로 묶여 있는 것으로 보아, 책의 구성을 나, 나의 주변, 사회로 확장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 것 같다.
영화주간지와 월간지 기자로 일했다는 경력 때문인지, 영화에 관한 이야기가 매우 많다. 영화의 내용을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글도 있고, 영화의 감독이나 배우에 대한 강한 호감을 드러내는 글도 있고, 영화의 존재가치와 사회와의 연계성에 대해 언급한 글도 있다. 저자가 언급한 영화들을 다 섭렵하여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바로 알아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영화적 취향이 그리 강하거나 필수적인 영화들을 찾아 보는 성격이 아닌, 더군다나 가끔 서평은 읽고 참고하지만 영화평은 전혀 읽지 않는 나로서는 그것들을 다 이해할 수가 없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였다. 만약 이 책이 영화에 대한 그동안의 평론을 엮은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나는 이 책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이나 고시원 이야기 같이, 매스컴을 통해 그를 잘 접하지 않는 내게 익숙한 에피소드가 있다는 점은, 적어도 이 부분에 관해서는 그의 첫 에세이인 <버티는 삶에 관하여>에서 언급했던 것과 매우 유사하다는 느낌이다. 신해철과의 인연, 그와의 안타까운 이별에 대해서는 공감하겠으나, 그와 관련된 에세이가 2편이나 (그것도 상당히 중복적인 표현으로) 된다는 점, 후반부로 갈수록 앞 뒷글의 흐름에 맞지 않는 한 페이지정도의 글이 드문드문 보인다는 점은, 책의 처음에 비해 뒤로갈수록 안타깝게도 글의 분량이나 짜임새가 성기어진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에세이를 쓸 때 그것을 어떤 소재로 구성할지는 무척 중요한 것 같다. '악의 평범성' 같은 소재는 다른 사회적인 에세이에서도 너무 자주 접하는 소재여서 식상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아버지, 엄마, 청소, 편의점 아르바이트, 트위터 등 개인적인 배경과 일상을 소재로 한 에피소드 몇 편은 꽤 마음에 들었다(덕분에 밑줄을 많이 그었다). 처음 책을 폈을 때는 개성이 강하고 편향적인 것 같았던 그의 시선이, 책을 덮으면서는 결국 자신을 경계하며 남을 살펴보게 하고, 사회적인 약자들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게 하고, 거듭된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도록 당부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이런 시선과 더불어 한정된 분량 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간결하고 정확하게 이끌어내는 그의 재량이 부럽기도 했지만, 만약 그의 세번째 에세이가 나온다면 굳이 읽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질수록 가장 조심해야 할 건 나 자신에 지나치게 심취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에 심취하면 쉽게 뜨거워지고 자기 사정과 감정만이 특별한 것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자기 사정에만 너그럽다보면 남의 사정은 나보다 덜한 별것 아닌 게 되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괴물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주변 세계를 친애하는 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확실히 도움이 되어주었습니다. - 6쪽
남의 말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남 탓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은 쉽게 불행해지지 않는다. 불행할 시간이 있으면 더 많은 걸 책임지고 노력한다. 어른스러운 길이란 건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선택과, 이후 어른스럽게 책임지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 45쪽
청소란 그 공간을 완전히 이해하게 만든다. - 50쪽
돌이켜보면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을 붙잡고 되돌려지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 늘 너무 오랫동안 분개했던 것 같다. 특히 인간관계가 그랬다. 거기에는 어떤 오해나 실수가 있더라도 어찌됐든 돌이킬 수 있어야만 진짜 우정이고 진짜 사랑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진짜 사랑과 진짜 우정이란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서로 다른 논리들 앞에서 유명무실해진다. 사실 언제든 돌이킬 수 있다는 믿음은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게 하고 결과적으로 사람을 좀 비겁하게 만든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최소한 내가 실패한 관계들은 대개 그랬던 것 같다. 결국, 우리는 모두 순순히 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가 필요하다. 돌이키고 되돌리는 것에 대한 집착은 좀 느슨하게 내버려두고 말이다. - 53쪽
아마도 사람들은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면서 구덩이 안에서 모래를 퍼내는 일을 매일같이 반복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 지루하고 의미 없는 반복에 염증을 느끼던 사람조차 마침내 길들여지고 익숙해져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하고 심지어 자아를 성취하며 만족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분투하는 사람보다 일상에 침몰된 사람이 더 행복해 보인다. 다시 꺼내볼 때마다 전율한다. 마침내 구덩이 밖으로 나설 기회를 가지게 되었음에도 다시 들어가 당장의 목적에 만족하고 설레어하는 풍경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어느 쪽이 더 옳은 선택일까. 더 권할 수 있는 삶일까. - 112쪽
살다보면 삼루에서 태어난 주제에 자신이 흡사 삼루타를 쳐서 거기 있는 것처럼 구는 사람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나는 평생 그런 사람들을 경멸해왔다. 그런데 이제 와 돌아보니 내가 딱히 나은 게 뭔지 모르겠다. 나는 심지어 삼루에서 태어난 것도 삼루타를 친 것도 아닌데 아무도 필요하지 않고 여태 누구 도움도 받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혼자 힘만으로 살 수 있다 자신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자신감이 건강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에 와서야 그것이 착각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 - 126쪽
어떤 면에선 아버지 말이 맞았다. 그게 누구 덕이든, 나는 독립적인 어른으로 컸다. 아버지에게 거절당했듯이 다른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게 싫어서 누구의 도움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하거나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고 멀쩡한 척 살아왔다. 시간이 흘러 지금에 와선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도, 타인의 호의를 받아들일 줄 아는 능력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혼자서밖에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 좋은 어른은커녕 이대로 그냥 독선적인 노인이 되어버릴까, 나는 그게 너무 두렵다. - 127쪽
결국 남은 건 뒤의 말뿐이었다. 맥락은 결코 기록되지 않는다. 과격한 말이었다. 어쩌면 과격하고 선정적인 나중의 말만 남은 게 당연한 노릇인지도 모르겠다. - 190쪽
전에는 뭔가를 내려놓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쉽게 까먹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살아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까먹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까먹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까지 함께 잊어버리기 마련이더라. 그리고 그렇게 까먹은 중요한 것들은 너무 중요하고 소중해서, 반드시 훗날 가슴을 치고 후회하게 된다. 어쩌면 뭔가를 내려놓기 위해 필요한 건 망각이나 체념이 아니라 이해하는 태도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 입장이었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이해 말이다. - 191, 192쪽
좋은 다큐는 반드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진실에 관해 스스로 한번 더 의심한다. 그리고 그런 의심의 사유를 통해 관객이 영화를 찬양하게 만드는 대신 관객이 영화에 당황하게 만든다. 그런 종류의 당황은 필연적으로 관객의 고민과 깊은 울림을 이끌어낸다. - 229쪽
무엇을 다루었느냐가 중요하지 작품의 함량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 이 엄혹한 세상에, 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나는 별로 대화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다큐 <자백>에서 과거 군부 독재 시대를 비판하는 등장인물의 대사처럼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이든 상관없다‘는 태도다. 내가 편들고 싶은 것을 위해서라면 프로파간다라도 상관없다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그들이 비판하고자 하는 이들과 동업자다. 그뿐만 아니라 정치적 소재를 다루는 다큐들을 모두 퉁쳐서 함량 미달이라는 편견을 만들어내고 결과적으로 좋은 다큐가 빛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세상을 망치는 건 그런 사람들이다. - 229, 230쪽
악의 평범성 개념은 아이히만의 말년 인터뷰와 새로운 연구 결과들을 통해 반박되거나 보충되고 있다. 그러나 위계와 시스템, 적극적인 동조자들이 발견되는 이와 같은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악의 평범성 논쟁, 그리고 <엑스페리먼트>가 남긴 가장 중대하고 어려운 화두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래도 되는‘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 말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란 그렇게 힘들다. - 261, 262쪽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다시 만난다. 만날 것이다. 그러므로 당장 힘들고 어렵더라도 자폭하기보다 설득하고 싸워나가기를 포기할 수 없다. 요즘은 그렇게 원론적인 것들에 자꾸 마음이 간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던 가장 기본적인 믿음들이 세상을 더 많이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아직도 그런 걸 믿느냐는 사람들에 의해 수시로 훼손되어 버려지고 있다. 나는 그게 너무 슬프다. - 3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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