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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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아몬드>를 재미있게 읽었기에, 작가의 이름만으로 구매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집중할 수 없는 산만함이 들기 시작했다. 요즘 젊은 세대의 고민을 담아내는 트렌드가 잘 반영되었다는 생각은 든다. 한 줄로 하면 <82년생 김지영>의 평범함을 상징하는 김지혜가 <88만원 세대>가 되어 이 부조리한 사회의 구조 속에서 살아가다가 <69>과 같은 "놀이를 통한 균열. 균열을 통한 변화"를 시도 했지만... 이라고 정리하련다.

지상에서 자동차를 타거나 빠른 걸음으로 걷는 사람들 중 자신들의 발밑에 요란한 전동차가 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할 사람이 오늘 하루 몇이나 될까. 알면서도 모두들 알지 못한다. 혹은 잊고 산다. - 24쪽

말문이 막혔다. 어쩌면, 애 안 낳아본 것들이랑은 말이 안 통한다는 그녀의 입버릇에조차 내가 헤아릴 수 없는 진심이 담겨 있는 건 아닐까. 그녀가 원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도록 강요하는 시스템이 문제일 수도 있다. 입바른 말 한번 했다가 미운털이 박히고, 궃은일을 맡게 되고 견딜 수 없게 되고 밥줄이 끊긴다... -72쪽

"그랬군요. 그런데 사실 난 가끔 궁금해요. 우리가 욕하고 한심하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데 똑같은 입장에 놓였을 때 나는 그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비판하는 건 쉬워요.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성, 상식을 잣대 삼으면 되거든요. 그런데 인간이 이기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순간에 놓이면 존엄성과 도덕, 상식을 지키는 건 소수의 몫이 돼요. 내가 그런 환경과 역사를 통과했다면 똑같이 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결국 뭔가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어떤 노력이요?"
"적어도 내 몫을 위해서만 싸우지는 않겠다고 자꾸자꾸 다짐하는 노력이요. 마음에 기름이 끼면 끝이니까. 정답이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요. 더 나은 어떤 것을 향해 차츰 다가가고 있기만을 바랄 뿐이죠." - 80, 81쪽

그때 나 홀로 결심했었다. 모두가 함께 모여 있을 때 혼자였던 순간을 잊지 않겠다고. 특별히 그 결심에서 무슨 이름을 붙여주고 싶진 않다. 집단의 기억이 아니라 온전히 내 가슴에만 새겨진 외롭고 아름다운 그림 조각이다. 거기서 나는 조금 슬픈 예감을 했다. 모두가 오늘을 잊어버리고 말 거라고. 지금의 열기는 곧 사그라질 불꽃같은 거라고 말이다. - 90쪽

없는 사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뭔가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 없는 사람이다. 늘 소리치고 있는데도 없는 사람이다. 수면 위에 올라있지 않으면 없는 사람이다. 반지하방에 살면 없는 사람이고, 문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없는 사람이고, 인생과의 게임에서 지면 없는 사람이다. 가슴이 아팠다. 나는 그동안 대체 무얼 한 걸까. 이들과 어울리는 내내 나는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서만 발버둥쳤다. - 202쪽

"나름의 애정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행운을 빌어. 살다 보면 알게 될거야. 누구나 마음속 깊은 데엔 겹도 모양도 다른 사람이 끝없이 들어있다는 걸." - 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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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임경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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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울 정도로 한 곳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좋은 반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계획하며 설레어하거나 낯선 곳에서의 경험에 흥분하는 성격이 아님에도 여행서적은 꾸준히 읽어왔던 편이다. 몸으로 뛰는 것보다 눈으로 읽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다수의 다른 것들처럼 여행도 글로만 배우고 마는 성격이었으나, 몇 년 전부터는 그나마 있는 여행서적도 읽지 않고 있다. 여행을 하다보면 당연히 그 여행자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과 많은 사건 그에 따른 감상이 있기마련지만, 이러한 일련의 우연들도 '발단-전개-위기-절정'순으로 정교하게 계획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을 읽은 후부터였을 것이다. (여기서 굳이 그 책의 제목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그 책의 저자는 이후에도 장소를 바꾸어가며 3-4권의 여행기를 더 펴낸것으로 안다.) 


장장 열흘이나 되는 긴 연휴에도 불구하고 남들은 한번쯤 계획했다는 여행을 전혀 생각해보지 않고 있는 스스로에게 놀라며, 읽기에 부담스럽지 책 한 권으로 물리적 여행을 대신하고 싶었다. 마침, 임경선 작가의 여행기가 발간되었다는 광고를 보았고, 그가 다녀온 여행지 또한 언제고 한번은 가보고 싶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교토였기에 주저하지 않고 책을 골랐다. 책을 훑어보니 곳곳에 교토의 하늘이나 작은 상점들을 찍은 사진들이 눈에 띄었다. 여행기에 사진이 빠질 수는 없겠지만 사진집이 아님에도 필요 이상의 사진을 덕지덕지 붙여 놓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터라, 이 정도 수준이면 괜찮겠다는 안심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여행지에서 있을 법한 우연과 과장이 전혀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다른 여행기에 비해서는 흥미로운 요소가 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작가의 차분하고 담담한 글은 그가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교토의 정서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읽다보니 이 책에는 흔한 교토의 명소보다는 오래된 서점, 식당, 카페, 빵집과 같은 가게들에 대한 탐방과 취재가 주된 내용이었다. 작가는 몇 대째 가업을 잇는 오래된 가게, 일부러 드러나지 않게 골목에 위치한 가게, 방문객에게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가게들을 찾아다니며 교토 사람들의 습성이나 생각, 정서들을 읽어내고 있다. 


작가의 일본이나 하루키에 대한 애정을 익히 알고 있는 터라, 그가 교토의 장점이라고 꼽는 선대로부터 유지되어 온 가치의 보존, 그 가치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 그러나 그것을 무작정 드러내지는 않는 겸손함이라는 항목들에 그리 큰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교토 내 몇 곳의 특색있는 가게와 운영자들을 보여준 이 책을 다 읽은 독자들이 과연 작가가 서문에서 칭찬 일색으로 예찬하고 있는 교토와 교토인의 긍정적 덕목들 - 이를 테면 개인주의자이되 공동체의 조화를 존중하고, 물건을 소중히 하되 물질적인 것에 휘둘리지 않고, 차분하지만 단호하고, 예민하고 섬세하지만 자기만의 색을 지키고, 성실히 노력하지만 결코 무리하지 않고, 욕망보다는 절제를 겉치레보다는 본질을 선택하는 삶 - 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서문에서의 이러한 완벽과도 같은 예찬은 작가가 그리고 있는 교토의 분위기, 본문의 어조와 내용, 이 책의 전체적인 느낌을 고려했을 때 그리 잘 어울리지만은 않는 과장은 아니었을까.

어떤 사람들에겐 가게를 연 목적이 돈을 되도록 많이 버는 것이 아니다. 가게의 몸집을 크게 키우는 것도 아니다. 많은 손님들이 들이닥치면 오히려 곤란하다. 호리베 씨는 사람이 많이 몰리다 보면 주인이 원치 않는 유형의 사람들도 와버리고 일도 번잡해져, 자신이 바라던 서점의 모습을 잃을까 봐 우려했다. 그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와서 화제의 베스트셀러나 신간을 사가는 그런 서점을 차릴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 지나다 우연히 들르는 손님보다 이 서점의 존재를 사전에 알고 일부러 찾아와주는 손님을 편애하기로 했다. 그런 손님들이 이곳에서 호리베 씨의 엄선된 책 큐레이션을 통해 자신에게 딱 맞는 책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랐다. - 39쪽

역사가 오래된 노포일수록 그 오래됨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뽐내지 않는다. 한 염색집은 230년 넘게 영업했음에도 노포임을 드러내는 어떤 수식어도 간판에 내걸지 않는다. 그 호칭은 가게가 스스로 붙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불러주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노포가 의미하는 것은 ‘신용’이다. 한눈 팔지 않고 전통을 지켜온 가게가 있고 거기에는 일편단심인 손님들이 존재했다. 손님은 선대 때부터 거래해온 가게를 꾸준히 애용하고, 가게 주인도 손님이 대대로 찾아주는 것이 고마워서 질 좋은 제품으로 보답한다. 제대로 된 노포일수록 나만 빛나면 된다, 나만 눈에 띄면 된다 하는 오만한 태도 가 없다. 내가 원조라고 주장하는 법도 없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자기 가게만의 고유한 색을 지켜나갈 뿐이다. 반짝거리는 새것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낡고 약간 녹슨 듯한 세월의 흔적, 그리고 그기서 비롯하는 향수 어린 감성을 교토는 더 가치 있게 여긴다. - 45, 46쪽

오로지 교토의 총체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주민들과 기업들이 기꺼이 협조한다. 나 혼자 튀기보다 주변과 조화를 이루려는 마음, 각자가 조금씩 양보하는 그런 마음들이 모여,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변함없이 유지해나간다. - 97쪽

‘내 형편에 맞지 않는 것은 사지 않는다’가 교토인의 자연스러운 감각이다. 그들은 허세를 경계한다. 자신의 경제적 상황에 걸맞지 않게 돈을 펑펑 쓰거나 고가의 물건을 몸에 걸치고 다니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 172쪽

한편, 교토 사람들은 ‘교토’라는 단어 자체에 자랑할 만한 브랜드 가치가 있음을 내심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으로 ‘교토’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는 가게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가게 간판이나 노렌에 교토를 상징하는 ‘京’이 새겨져 있다면 그것은 자기 본연의 실력 대신 ‘교토’라는 상징적인 브랜드에 의지하는 ‘가짜’로 간주한다. ‘교토 요리’라고 간판에 굳이 써 붙이는 식당도 그 행위 자체로 이미 ‘요리 솜씨에 자신 엇음’을 드러낸다고 본다. - 173쪽

교토 사람들에게는 돈보다도 가치관이나 살아가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들은 자극적이고 화려한 생활보다는 심플하고 온화한 삶의 방식을 지지한다. 교토에서는 수억 연봉도, 고급 외제차도, 명품 브랜드도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교토라는 환경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근사하기에 나답게 살아가면 그것으로 족하다. 좋아하는 일을 원하는 대로 하면서 살아가기를 바라고,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나에게 깊은 충만감을 줄 수 있는지, 반면 무엇이 필요 없고 의미 없는지를 자연스럽게 깨달아간다. 그것이 ‘진짜’의 인생이니까.
‘이 삶의 방식이야말로 나한테 맞는 방식’임을 아는 것. 무리하거나 타산적이 되거나 폼 잡거나 하는 것을 멈추고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 진정한 호사란 내가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그 삶의 방식을 정할 자유일 것이다. - 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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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오라 2017-10-11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보다도 여행지에서 있을 법한 우연과 과장이 전혀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진심이신가요? 첫10페이지까지만 읽어도 그게 느껴지는데 말입니다.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 - 저수지를 찾아라
주진우 지음 / 푸른숲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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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주진우 기자의 책을 죄다 구입해서 읽었지만, 많은 사건들을 다루어서 그런지 사건의 제시가 다소 산만하기도 하고, 읽다보면 맥락이 뚝뚝 끊어지는 느낌이 드는 그의 글(문체) 자체를 솔직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신간이 나오면 어김없이 구입하는 이유는, 직업만 기자일뿐 다른 기사를 그대로 베끼거나 유명인 트위터와 페이스북 받아 쓰기를 하고 있는 기레기들은 차마 할 수 없는 사실들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취재하는 그의 기자정신과 뚝심에 탄복하기 때문이며, 소시민인 나로써는 차마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을 끈질기게 해내고 있는 그를 응원할 방법이 이것 밖에는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큰 돈이 사라졌는데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찾지 않고,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그 돈 이야기를 하면 경계하고, 돈 이야기를 다시 꺼내면 빨갱이라고 한다. -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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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김민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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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학습법이나 방법론에 관한 책은 웬만하면 사서 읽는 편이다. 영어를 잘 하고 싶다는 욕망이 책을 읽게 되는 가장 큰 동기가 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내 상황이나 내 학습방법이 괜찮은지를 비교해보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부'라는 단어를 접하면 나는 너무나도 당연히 조용한 도서관에 앉아 몇 시간을 몰입하고 있는 모습을 그리곤 한다. 그리고 그렇게 도서관에 가서 앉아 있은지 이미 너무나도 많은 세월이 지나가 버린 현재는 공부에서 손을 놓다 못해 떼고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을 하며 산다. 그러나 이러한 공부에 대한 고정관념, 판타지, 핑계, 자기합리화를 이 책은 여지없이 깨버린다. 영어가 늘지 않는다고 늘상 투덜대면서 정작 영어책 한 권 외워볼 생각은 왜 안하냐는 반문에 딱히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한다.


언제부터 시작이라는 시작점을 미리 설정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당장. 독립된 시간과 장소가 없음을 탓하지 말고, 출퇴근 시간과 같은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 짬짬이 하루 한 문장이라도. 가시적인 성과에만 목말라하지 말고, 지치지 않게 꾸준히. 이렇게만 보면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은 어찌보면 당연한 공부방법이지만, 그동안 이 당연한 방법을 유독 영어에만은 적용하지 않았던 이유를 모르겠다.


단순히 "~해라", "~하지 마라"라는 조언이 아니라, 스스로 경험했던 바를 통해 유용한 팁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이 책의 효용은 충분하다. 수험용 영어공부라 아니라면, 최적화된 방법론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를 기웃거릴 필요 없이 영어책 한 권부터 시작하면 된다. 문제는 언제나 실천이다.

"I wish I could tell you it gets better. But, it doesn‘t get better. You get better."
"상황이 좋아질 거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렇지는 않을 거야. 대신 네가 더 나은 사람이 될 거야."
시트콤을 보다가 순간 멍해졌습니다. ‘상황은 더 좋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버틴다면, 너는 더 나은 인간이 될 것이다.‘
"나 이제 때려치울 거야!"하고 물러나면 나의 한계가 거기까지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버티는 자에게는 한계가 없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그날까지 버텨야겠어요. - 6,7쪽

무엇보다 가장 힘든 때는, 몇 달째 열심히 했는데도 실력이 나아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그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야 합니다. 적어도 첫 번째 계단을 만날 때까지는 버텨야 합니다. 양질 전환이 이루어지는 첫 번째 전환점 말입니다. 이 첫 고비를 넘기면 영어 공부에 재미가 붙을뿐더러, 인생에서도 힘든 순간에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책 한 권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기 위해서는 매일 한 과씩 외우고, 전날까지 외운 것을 복습하는 공부가 중요합니다. 복습을 할 때 핵심은 책을 보지 않고도 영어 문장이 떠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을 보고 읽으면 다 아는 것 같은 착각이 생기거든요. - 24쪽

<지속하는 힘>의 저자 고바야시 다다아키의 다음 문장이 제 생각을 대변해주는 듯 해요.
매일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훗날 영어를 사용하는 일을 하게 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어 혹독한 훈련을 견뎌내고 있지만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다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세상은 그런 것이다. (중략) 영어 공부를 그만두면 영어를 쓰는 일에 종사하게 될 가능성은 제로다. 훈련을 그만두면 올림픽 대표 선수도 선발될 가능성은 없다고 보면 된다. - <지속하는 힘> (고바야시 다다아키 지음, 정은지 옮김, 아날로그) - 28쪽

우린 돈으로 모든 것을 사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어요. 건강도, 외모도, 행복도 다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사실 이 모든 것은 돈으로 살 수 없어요. 오로지 시간으로만 살 수 있습니다. 영어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싼 돈을 들여야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시간입니다. - 117쪽

인출 연습
어떤 책을 읽을 때 한 번에 여러 번 읽기보다 한 번 본 다음 기억에서 꺼내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영어 문장을 눈으로만 보지 말고 눈을 감거나 다른 곳을 보면서 외워보는 거지요. 셀프 쪽지시험을 치면서 외운 것을 확인하는 과정은 장기 기억에도 유리하고, 모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효율적인 공부가 되게 해줍니다. 책을 보고 계속 읽으면 다 아는 것 같지만, 눈을 감고 문장을 외워보면 기억이 나지 않는 문장이 뭔지 알 수 있거든요. 그 문장만 집중해서 다시 외울 수 있습니다. - 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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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의 정치학 - 왜 진보 언론조차 노무현·문재인을 공격하는가?
조기숙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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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전에 읽은 책인데, 연휴 때 책 정리를 하다가 이제야 읽었다는 기록을 남긴다. SNS를 하다가 우연히 한 동영상에서 신좌파에 대한 설명자료를 접하게 되었다. 기존 자본 vs 노동의 대립을 통하여 좌와 우를 구분하던 이분법이 현재는 더이상 유용하지 않으며, 탈권위주의를 추구하는 새로운 이념이 이른바 신좌파를 창출하였다는 짧은 설명은 꽤 흥미로웠다. 그 동영상 자료 말미에 바로 이 책에 대한 광고가 덧붙여져 바로 구매해서 읽었다. 


'노무현과 문재인 죽이기'(1장), '구좌파 진보언론 대 신좌파 노무현'(2장), '호남 왕따와 친노 왕따, 그 불가분의 관계'(3장)라는 구성과 강렬한 표현을 보면, 대선 당시의 언론구도와 탄핵 이후 좌우의 극렬한 대립, 중도라 칭하는 이들의 선전 등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그려지는듯 하다. 저자는 노무현과 문재인에 대한 그동안의 진보와 보수언론의 프레임을 비판적으로 제시하여, 이른바 진보언론이라고 불리우는 한경오마저도 이러한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를 설명한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현재는 아직까지도 자본과 노동의 대립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낡은 사고들이 탈권위적, 탈물질적, 탈이념적 색채를 갖고 있는 신좌파의 이념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시점이다. 그러면서 진보언론마저도 자본을 비판하며 결국 자본으로 회귀하는 순환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글이 일련의 시간적 흐름으로 서술된 것이 아니라, 저자가 강조하는 포인트가 시기상 노사모, 대선,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절 등을 전후로 이동하며 그때마다 설명이 되고 있어 다소 산만한 감은 없지 않다. 물론 이해의 편의를 위해 그런 것이겠지만 각 장 마지막에 붙어 있는 '정봉주와의 대담'은 팟캐스트의 대화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어서 어수선하다는 느낌도 들었다.그럼에도 보수를 막연하게 싫어하는 내가 정말 진보라 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 자문할 수 있었다는 점은 이 책의 내용만이 아니라 책을 읽었다는 것 자체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더불어 정치에 관심이 없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지만 조기숙이라는 이름이나 그를 둘러싼 여러 논쟁들에 그렇게 익숙하지 않았고,노무현 vs 조중동의 대립에서는 조중동을 비판하면서도, 노무현 vs 한경오의 대립에서는 나름 진보적인척하며 한경오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였으며, 노동 이외의 가치들을 모두 경원시하는 시각을 견지하려 했던 지난 날의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보통 가해자와 피해자만 있으면 왕따가 성립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왕따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구조와 집단의 협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는 의식하든 하지 않든, 왕따가 발생하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왕따에 대한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왕따 현상은 피해자와 가해자만이 아니라 동조자, 방관자가 있어야 비로소 성립된다. - 92, 93쪽

즉, 노무현은 호남 왕따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은 호남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되는 데 성공했다. 이는 가해자 입장에서는 매우 무서운 일이었을 것이다. 가해자는 최초의 방어자를 철저히 제압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야 제2, 제3의 방어자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노무현을 철저히 왕따시켰다. - 97쪽

서구에서는 20세기에 좌우 대립이 있었다. 영국에선 자유당이 보수당에 일부 흡수되면서 사라지고, 노동당이 좌파 정당으로 등장해 복지권이 확립되었다. 그래서 20세기에는 경제적 민주화를 추구하면 좌파, 경제적 자유(사유재산권)를 추구하면 우파가 되었다. 경제 문제가 정당을 가르는 핵심 균열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발로 68혁명이 일어났다. 68혁명은 경직되고 비인간화 된 공산주의에 대한 염증을 표출했다. 20세기의 자본이냐 노동이냐 하던 경제적 균열은 둘 다 물질주의일 뿐이다. 물질주의는 빈곤과 전쟁 등을 겪은 세대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68세대는 2차 대전 이후 평화화 풍요 속에서 자란 중산층의 자녀들이다. 이들은 전후 세대로서 배고픔과 전쟁의 위협을 모른다. 이들에겐 물질이 더는 중요하지 않기에 진보와 보수, 좌와 우가 기본적으로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히려 좌우가 서로 싸우면서도 똑같이 권위주의적이라는 점을 혐오했다.
권위주의 문화는 기본적으로 집단주의에 기초한다. 집단주의는 집단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데, 이것이 유럽의 신세대에게는 설득력이 없었다. - 156쪽

노사모를 연구한 김용호 교수에 따르면,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인주의적이고 탈물질주의적인 특성을 나타낸 집단이라고 한다. 나는 노사모가 우리나라 최초의 68혁명 세대라고 생각한다. 19세기 말의 자유주의는 사유재산을 지키기 위한 참정권운동이었다. 즉 제1세대 시민권을 목표로 했었다. 그러나 노사모에서 시작된 친노 세력은 참여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제3세대 시민권자였다. 참여정부에서 일했던 모든 인사가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노무현을 지지하고 지금 문재인을 지지하는 친노 시민들은 신좌파라고 할 수 있다.
2004년 탄핵 반대 집회는 시민단체들이 주최했지만 자발적 시민들의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에서 신좌파적인 특징을 띠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와 같은 ‘민주주의 2.0’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 173쪽

민주주의는 모든 발언을 허용하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의 발언만 허용한다. 민주주의를 위협에 빠뜨리는 일베의 자유는 사법적 처벌의 대상이라는 게 선진 민주국의 기준이다. - 189쪽

참여정부 말기, 소위 진보 지식인들이 "노무현, 유시민, 조기숙은 진보가 아니니 진보 논쟁에 끼지 말라"고 일갈한 적이 있다. 20세기 이야기라면 이들이 맞다. 좌파가 진보였다. 그런데 노무현은 21세기 최초의 대통령이다. 나는 오히려 구좌파만이 진보라고 생각하는 그들이 더는 진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동만이 최고의 가치이고 노동자만이 사회의 진보를 이룬다는 생각은 이미 20세기의 흘러간 노래일 뿐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1968년의 혁명과 세대교체를 거치면서 유럽은 혁명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1987년 참정권을 획득했고, 1988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지속된 노조의 파업과 노동쟁의로 노동자의 인권과 권익 측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이때 제2세대 시민권을 위해 가장 열심히 싸웠던 사람이 노무현, 문재인 같은 노동.인권 변호사였다. - 192쪽

노 대통령이 한.미FTA를 체결하자 소위 진보언론과 지식인은 왼쪽 깜빡이 켜고 우회전을 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세계화와 자유무역이 신자유주의라며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합리적 토론을 막는 정치공세일 뿐이다. 우리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수출이 우리만큼 중요하지 않은 유럽의 대다수 좌우 정당도 EU에 동의했다. EU는 자유무역뿐 아니라 화폐의 통일, 노동력의 이전까지 포함하는 거대한 세계화다. 여기에 반대하는 건 소수의 극우 세력뿐이다. 트럼프나 샌더스 같은 극우, 극좌파만이 보호무역을 지지한다. - 194쪽

미국의 흑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조용히 협상할 뿐, 공화당을 찍겠다고 협박하진 않는다. 공화당 찍어봐야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조용히 협상하는 이유는 대놓고 협상하다 백인들을 자극해 그들이 공화당으로 결집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흑인들이 조심했음에도 2016년 미국 대선에서는 백인 남성만 공화당으로 결집한 게 아니라 백인 여성의 53%가 트럼프를 찍었다. 빼앗기는 것에 대한 가진 자들의 두려움이 더 갖기 위한 못 가진자들의 마음보다 더 절실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289, 290쪽

국민의당은 결국 호남과 민주당을 이간질하고 지역주의를 부추김으로써 호남에서 교두보를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호남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호남 왕따의 방어자였던 친노와 호남 사이를 갈라놓은 것이다. 이들이 호남 왕따로 국민을 분열시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한 역대 대구 출신 대통령들과 무엇이 다른가? 국민의당은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호남인 스스로 왕따를 자초하게 했고, 대구 출신 역대 대통령들은 외부에서 호남인을 왕따시켰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둘 다 호남 왕따 현상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 290쪽

우리나라에서 내각제 개헌이 위험한 이유는 정당의 당원이 힘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 의원들에게 권력을 주면 국회의원 선거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내각제에서 지도부가 되려면 다선 의원이 유리하므로, 국민은 자기 지역 의원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계속 뽑아줘야만 한다. 지금 다선 의원들이 국민의 삶에 무슨 도움을 주는지 한번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북한과 대치 상태에서 우리나라의 이념적 지형은 매우 좁다. 결국 국회 선진화법 핑계로 여도 야도 없이 180명의 의원이 손잡고 돌아가면서 죽을 때까지 권력 나눠 먹기를 하겠다는 이야기다. 이들이 그리는 이상은 딱 일본이다. - 315쪽


페이스북에서 ‘신좌파(참여민주파)’라는 용어에 대해 설왕설래가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더 명확해졌겠지만 신좌파는 서구적 맥락에서 1968년 이후에 만들어진 용어다. 신좌파는 좌파의 아류가 아니라 20세기 이념인 좌우를 모두 거부하면서도 진보적인 삶을 지향해서 붙어진 용어다.
좌파는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기에 개인을 억압한다. 우파는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기에 소비만능주의가 된다. 국가와 시장 모두를 거부하면서 자유로운 개인의 모임인 공동체를 통한 제3의 영역 확장을 강조하는 게 신좌파다.
신좌파의 시각으로는 구좌파와 우파가 권위주의적이란 면에서 차이가 없다. 신좌파는 좌우를 모두 부정하기에 탈권위주의적이고 탈 물질적이며, 탈이념적이다. 문화적으로 리버럴하고, 경제적으로는 실용적이며, 정치에 관심이 많고 정치 지식도 많다. 부당한 권위를 부정하지만 대인 신뢰가 높도 기부도 잘 한다. 정치적 의사표현이 적극적이라 시위와 항의에도 적극 참여하며, 유머를 즐기고 정치를 문화의 영역으로 승화시킨다. - 329쪽

국민통합은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문재인을 찍지 않은 국민에게도 시민권을 보장하고 정책의 수혜 대상으로부터 배제하지는 말아야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사람을 쓰려면 정당정치가 왜 필요한가. - 3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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