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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페미니스트 - 불편하고 두려워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록산 게이의 책은 영리하다. 다각도에서 보고 솔직하게 써서 빈틈을 줄인다.
"이 세상의 수많은 여성들이 처한 크고 작은 불평등과 부당한 현실을 이야기할 때 필요한 언어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어렸을 때는 몰랐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런 질문에 대답을 해준 건 페미니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답을 해주었다.
물론 페미니즘에도 문제가 있고 결함이 있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시시각각 변하는 이 사회를 중심을 갖고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준다. 페미니즘은 나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게 해주었다. 페미니즘은 서로 자기 말만 하려고 아우성치는 이 세상에서도 내 작은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믿음을 갖게 해주었다. 페미니즘이 결함이 있는 이유는 이것이 인간이 만든 운동이고 인간이란 태생적으로 결함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페미니즘에 비이성적으로 높은 기준을 세워놓고 페미니즘에게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있어달라고, 혹은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내려 달라고 조르고 있는 것만 같다. 페미니즘이 우리 기대에 못 미치면 페미니즘이라는 이름 아래 행동하는 인간들에게 결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페미니즘 자체가 잘못되었다며 정죄한다. (12-13)
그래서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단점과 모순으로 똘똘 뭉친 보통의 인간이니까. ... 나를 따라다닐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꼬리표를 환영한다. 왜냐하면 나는 인간이니까. 그래서 엉망진창이니까.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 내가 전부 옳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내가 믿고 있는 것을 지지하고, 이 세상에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내 글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면서도 온전히 나 자신으로 남고 싶을 뿐이다. ... 나는 페미니즘을 되도록 단순하게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페미니즘이 어렵고 복잡한 개념이고 지금도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으며 빈틈도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그저 이렇게 생각할 뿐이다. 페미니즘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도 못하고 그렇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를 믿는다. 여성에게는 자신의 몸을 지킬 자유가 있고 필요할 때는 복잡한 절차 없이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남녀가 같은 일을 했을 때 동일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선택이기도 하다. 어떤 여성이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지 않다면 그 역시 그녀의 권리이기에 존중한다. 하지만 그녀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 또한 나의 의무이며, 나라면 하지 않을 법한 선택을 하는 여성들을 지지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근본 원칙이라고 믿는다." (13-16)
이 책에서는 이 사회에서 넓게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여성혐오 현상-대중문화, 행태, 입법자들, 언론기사 등-에 대해 재치있게 다루었다.
또한 출판계의 젠더 문제와 문학적 신뢰성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이를 해결하는 것은 단순하다. 불평등을 정당화하지 않고 탁월한 여성작가의 작품을 출간하고 여성작가들에게 더 손을 뻗으라는 것. '여성소설'이라는 장르의 의미. 온전히 사회 이야기와 분리될 수 있는 것인가-남성이 쓰는 남녀, 가정 이야기와 무엇이 그렇게 다른가. 문학 기득권층에 의해 남성이 쓴 글이 기준이 되어 평가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탁월함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여성'/여성소설이 폄하의 의미로 쓰여서는 곤란하다. 노력과 행동에 의해 출판계의 젠더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믿는다. 그때는 오직 중요한 것은 출판계의 남녀차별 따위가 아니라 독서의 순수한 기쁨이 될 것이다."(요약인용)
연상반응 주의 trigger warning에 대한 이야기와 이에 대한 찬반 논쟁 부분도 흥미롭다.
"많은 사람들에게 각자의 역사가 있고 저마다 연상반응 주의가 필요한 주제들, 이야기가 있다. 이미 난 모든 것을 겪었기에 인터넷에 나오는 단어나 말이 나를 해칠 수는 없다. 이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계기나 그에 따른 연상작용과 마음의 상처 따위는 내게 일어났던 그 실제 사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문구는 내가 아니라 실제로 안전을 필요로 하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요약인용)
"여성 캐릭터는 왜 항상 호감만 연기해야 하는가. 영화나 방송에서. 문학 비평에서조차 호감일 필요가 있는가. 호감 캐릭터가 아니면서도 생생하고 실제 있을 법한 여성 캐릭터가 나오는 작품을 만나고 싶다."
- 이와 관련하여 그녀가 언급한 작품들: <배틀본 Battleborn>, <Treasure Island!!>, <Dare me> <Magnificence> <You take it from here>
여러 대중문화 작품들에 대한 비평이 이어지는데 아주 흥미로웠다. 여성, 소수인종, 신체적 약자라는 입장에서, 문화는 폭넓게 해석되어야 한다.
-<헝거게임>에 대한 열광
-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 Bridesmaids>, 레나던햄의 <Girls>, 마라 브록 아킬의 <걸프렌즈>
- 젠더에 대한 논의의 한계, 아쉬움. <남성의 몰락> 비평 - 여성혐오 현상을 축소해석. 케이트 짐브레노의 <여주인공들>. 주노 디아스 소설의 한계.
- 케이트 잠브레노 <그린 걸>, 조안 디디온 <Play it as it lays>
- 영화 <Help>에 대한 혹평
여성의 신체에 대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낙태 논쟁과 관련하여), 인종차별주의, 특권에 대한 이야기도 읽어볼 만하다.
"특권에 대하여. 그에 대해 미안해하고 사과할 필요는 없다. 그저 당신 특권의 범위와 영향력을 이해하고 당신이 전혀 감도 못 잡는 방식으로 이 세상을 헤쳐 나가고 경험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만 인식하고 있으면 된다."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스트가 아예 아닌 것보다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믿는다." (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