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개울이 어때서! 사계절 저학년문고 68
황지영 지음, 애슝 그림 / 사계절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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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는 옛이야기에서 많이 등장한다.

머리 한가운데 뿔이 달리고, 통통한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남자 도깨비가 우락부락하게 나오고, 귀여운 아기 도깨비가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 엄마가 어렸을 때, 마을 사람 중 도깨비에게 홀려서 큰일을 당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도깨비 불도 종종 나타났었다고 한다. 엄마는 무시무시한 도깨비 이야기를 했지만 어쩐지 무섭진 않다.

보통 이야기에 등장하는 도깨비는 사람들을 괴롭혀도 해학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예로부터 우리에게 그런 존재로 시작한 것처럼 마냥 밉지만은 않다.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도깨비는 아직까지 우리 주변에 있을까.

아니면 세상이 바뀌었으니 사라졌을까.

황지영 작가는 예전부터 도깨비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등장한 '도개울'

<도개울이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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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화는 일인칭으로 썼는데, 소심한 여자아이 '한수아'의 눈으로 바라본 이야기이다.

표지에 등장하는 빨간 부채 머리에 노란 티셔츠를 입고, 방망이를 맨 여자아이는 '도개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도깨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표지만 봐서는 저 아이가 도깨비 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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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에는 특별한 아이가 있어.

질끈 묶은 머리카락이 분수처럼 솟아 있고

수업 시간에도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메밀묵을 먹으면 눈이 번쩍이고

작은 몸집에 남다른 힘을 가진 내 친구, 도개울.

우리 반 아이들은 개울이나 너무너무 이상하대.

개울이의 특별한 비밀을 하나도 모르면서!"


한수아는 메밀묵을 구수하게 먹었다는 이유로 "구수아"라는 별명이 생겼다. 짝꿍 유찬이가 지어준 것이다.

한수아는 그 뒤로 유찬이와 메밀묵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

메밀묵 집 딸인데 별명을 얻고부터 메밀묵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별명 때문에 속상한 적이 많았다. 정말 별것도 아닌데 별명이 꼬리표처럼 붙는다.

아무리 아니라고 하지 말라고 해도 기어코 별명을 부르는 남자아이들 때문에 운 적도 있다.

소심한 수아는 전학 온 '도개울'의 행동을 보고 깜짝 놀란다.

 

대체 쟤는 왜 저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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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개울이 어때서!>차례를 보면

1. 구수구수 구수아

2. 이상한 도개울

3. 개울이와 메밀묵

4. 내 소원은?

5. 꼭 잡은 손

6. 우리의 약속


'도깨비'하면 '메밀묵'을 빼놓을 수 없다.

또 하나 '도깨비방망이','도깨비감투'도 뗄 수 없다.

동화 속에서 이것들은 어떻게 등장했을까.



도깨비라는 존재가 어른들에게는 익숙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조금 낯설 수 있다.

<도개울이 어때서!>에서는 도깨비의 이미지를 정말 잘 그려냈다.

목소리와 행동이 크고,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고, 힘이 넘친다. 메밀묵을 무척 좋아하고 은혜를 갚을 줄 아는 도개울.

도깨비의 특성들을 아이의 시선으로 풀어낸 부분이 재밌다.


도개울이 수아의 도움을 받고 "도깨비들은 은혜를 꼭 갚아."라고 말하는 부분이 등장한다.

'은혜'라는 말은 옛이야기에서 주제로 자주 나오는데. 동화에도 잘 녹아들었다.


수아는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해도 큰소리치지 못하고 선생님한테 이르지도 못하는 아이이다.

하지만 도개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아이다.

수업시간에 노래도 부르고, 선생님한테 혼이 나도 기죽지 않는다.

"다음에는 안 그럴게요!"

하고 큰소리로 대답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도개울의 행동을 아이들이 모두 따라 하면 안 되겠지만, 어느 정도는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동이 소심한 아이들이 생각도 소심한 건 아니다. 나서고 싶은 욕구가 있어도 꾹 참는다.

그러다 보면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고 스트레스는 계속 이어진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을 돌아보아도 그랬고, 내 딸도 그런 면이 보인다.

소심한 아이들에게 '도개울'이란 캐릭터는 감정의 해소를 도와줄 것이라고 본다.

 

수아는 도개울과 함께 지내면서 처음에는 남들과 '다른'모습에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도개울과 함께 하면서 재미있다는 걸 느꼈다.

 

도개울은 수아네 메밀묵 가게에 가서 메밀묵을 먹고 눈이 반짝인다.

수아는 어떻게 도개울이 도깨비라는 사실을 알았을까.

수아와 도개울은 어떤 일을 벌일까.

내 옆에도 도깨비가 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수아의 이야기 중에 특히 인상깊었던 장면이 있다.

 

수아네 호랑이 같은 담임 선생님이 도깨비방망이를 들고

"금..그음...흠흠."

"금, 금 나와라. 뚝딱!"

금, 은, 다이아몬드까지 외치는 모습이다. 엄하게만 보였던 선생님의 엉뚱한 태도는 웃음을 자아낸다.

선생님은 수아에게 그 모습을 들키고, 아이들에게 말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까지 한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무서워서 덜덜 떠는 아이도 조금 편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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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에 도개울이 나타난다면 나는 수아처럼 열린 마음으로 대해 줄 수 있을까?

만약 내가 개울이라면, 내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데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있을까?

작가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고 한다.

 

세상에 도개울 같은 사람은 많다.

꼭 도깨비라는 건 아니고 나와 많이 '다른'사람 말이다.

 

아이들도 자신과 다른 사람이 나타나도 마음을 열고 받아주었으면 좋겠다.

친구를 위해 작은 용기를 꺼낼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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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20.4 - 창간50주년 기념호
샘터 편집부 지음 / 샘터사(잡지)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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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동네, 근처가 대학로 였다.

어릴 때 부터 샘터 사옥을 자주 지나쳤더랬다.

빨간 벽돌과 담쟁이 덩굴이 빼곡히 매워진 샘터가 어떤 곳인지 잘 몰랐지만, 참 인상깊은 건물이라고 생각했다..
그 샘터가 그 샘터인줄도 모르고.

 

 

월간샘터는 다시 이어질 수 있었고 2020년 4월 창간50주년 기념호가 나왔다.

1970년 4월 창간호가 나왔고 50년을 한 달도 거르지 않은 개근호, 반세기를 함께 했다는 것이 참 자랑스럽다.

 

읽는 라디오같은 느낌의 월간샘터.

사람들은 저마다 사연을 써서 보내고, 채택이 되면 잡지에 실리기도 한다.  

그런 시스템이 왜 이리 좋은지 모르겠다.

다양한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진다.

 

월간샘터에는 다양한 컨텐츠가 있다.

특집, 독자의 이야기, 십자말풀이, 문화산책, 내일을 여는 사람, 사물에 깃든 이야기, 역사타임캡슐 등

특색있는 이야기가 담겼다.

그 중에 내가 좋아하는 코너는 '바람이 전하는 말'이다.

홍종의 동화작가님의 글이 담긴 페이지인데, 일상생활 속에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이야기를 담백하게 풀어냈다.

작가님이라 그런지 역시 주변을 보는 시선이 다르다.

이번 호에는 '나비를 부르는 한의사'라는 제목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쥐방울덩굴을 아끼는 한의사, 쥐방울덩굴 열매에 집착하며 따버렸던 작가

나중에 보니 쥐방울덩굴은 꼬리명주나비 애벌레의 유일한 먹이라고 했다.

근래 쥐방울덩굴이 사라지면서 꼬리명주나비도 사라지고 있다는 것,

한의사는 쥐방울덩굴을 정성스레 키우고 더불어 해마다 수백마리의 꼬리명주나비를 날려보낸다는 것.

나비를 부르는 한의사, 정말 동화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월간샘터 덕분에

동화작가님의 좋은 글도 읽고, 안 읽던 시도 읽는다.

저마다의 사연도 읽고, 각 분야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도 든다.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선사하는 월간샘터로 이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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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부른 명량의 노래
정찬주 지음 / 반딧불이(한결미디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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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명량해전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끝이 난다.

작가는 시각을 달리했다.

명량해전의 이야기를 이순신이 아닌 전라우수사 김억추 장수의 이야기로 이끌어나갔다.


왜군선봉장 구루시마를 화살 1발로 쓰러뜨린 공을 세웠지만, 지금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만 알고, 김억추 장군은 알지 못한다.

사실 이것뿐이랴.

어떤 역사적 사건이든 부각되는 이와 그림자에 가려진 이가 있기 마련이다.


같은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는 건 참 흥미롭다.

얼마전에 [뺑덕]이라는 청소년 소설을 봤는데, 심청이가 주인공이 아닌, ˻덕어멈의 아들이 주인공이 된 이야기였다.

[못다 부른 명량의 노래]도 그렇다.

이순신이 아닌 김억추 장수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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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억추 장수는 화살을 잘 쏘아 선조의 눈에 들었다.

그래서 표지가 화살인가보다.


이순신의 동지, 명궁수 김억추 장수 이야기 [못다 부른 명량의 노래]


김억추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특명으로 보낸 해적출신 왜군 선봉장(구루시마 미치후사)을 화살 1발로 죽였다.

전선 13대 133이라는 전력의 열세에서, 화살 1발로 전세를 뒤집었다.


그런 그가 빛을 보지 못한 까닭은 뭘까? 궁금해진다.

[난중일기]의 두 구절이 영향을 주었다고 보고있다.

그러나 이순신이 걱정할 정도로 왜선과 맞부터 싸웠다는 김억추.

충과 효를 다했던 장수 김억추.

작가는 김억추 장수가 임진왜란을 종식시킨 장수 중 한 분이라고 확신했다.

김억추 장수를 칭송하는 율곡 이이와 김명원, 이덕형, 유영경의 시를 보면 김억추 장수의 진면목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빛을 보지 못했던 장수를 주목하여 쓴 소설은 그 이유만으로도 참 멋지다.


새로운 면을 보려했고, 억울한 인물의 위상을 재조명했다는 점이 좋다.


이렇게 묻혀있는 인물들이 꽤 많을 거라고 본다.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가 많듯, 역사 속에서 공을 세우고 사라진 인물이 얼마나 많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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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녁 진압한 의리와 절의를 지금 누가 세웠는가

바로 이순신 통제사께서 세상을 구제하시던 때에

영웅은 한번 떠남으로써 돌아가실 때 돌아가시니

나도 비탄에 빠져서 머리를 돌리기조차 더디구나."


김억추가 쓴 이순신을 추모하는 시이다.

무장이 시를 쓴다는 건 특별한 일이였다고 한다.

칼과 활을 잡고 온 사람이지만, 시를 쓰던 사람.

충성스런 장수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단숨에 이 책을 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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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부른 명량의 노래] 이순신의 동지, 명궁수 김억추 장수 이야기

차례

교룡기/사신 길1,2/김억추석/화살로 충성하라/함경도 칼바람/무이보/투구와 갑옷/.적호의 난/이이의 십만양병/이순신의 공/작별과 약속/보복작전1,2/남솔/형제 결의/왜군 침략, 파천과 호종/갑산 전토/평양성 후퇴/명군 참패/평양성 타격/평양성 탈환/금의환향/우수영/판옥선 개조/ 명량으로 가는 바다/ 어란포, 벽파진해전/충과 효/명량해전/남당포 전투/이별주/ 작가후기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명궁수 김억추 장수



역사 소설인 [못다 부른 명량의 노래]는 내용 중간중간에 들어간 묘사가 참 잘 되어 있다.

그래서 역사소설이지만, 편하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

이순신만 부각되었던 이야기를 이순신 동지, 명궁수 김억추 장수의 시선으로 끌고 가는 점도 참 흥미로웠다.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었던 역사적 인물의 이야기.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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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도제희 지음 / 샘터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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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비평가, 사상가였던  도스토옙스키.

러시아뿐 아니라 세계의 문학에 영향을 끼친 그.

혹시 이 작가의 이름이 낯설더라도, 들으면 "아-"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작품들을 남겼다.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제목대로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에세이.

그동안 읽었던 에세이와 좀 다르게 느껴진다.

소설 몇 편을 함께 읽은 듯한 느낌이 든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읽기 전에,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에세이를 먼저 읽어보면 좋겠다.

그의 소설을 조금 더 쉽게, 편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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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의 책이 날 건지러 왔다."

도스토옙스키와 도제희 작가의 글의 만남.


갑자기 하게 된 퇴사, 그로 인한 충격.

과거 영어 과외를 하던 휴학생 시절 들고 다녔던 도스토옙스키의 책이 떠올랐다.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의 책을 읽으며 불안정한 시기를 되돌아본 기록.

삶의 미숙함에 대해 점검해본 사사로운 글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불안정해서 자신이 불완전하게 느껴지는 청장년 시기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느껴 봤을 만한 보편적인 이야기.

평범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토스토옙스키의 작품이 어우러지면서 신선한 이야기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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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 러시아에서 온 고전문학에는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다름 아닌 우리가 있었다.


200년 전의 글에서 우리의 삶을 투영할 수 있다는 사실은

시대가 다를지언정, 인간은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일까.


이 책에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 많이 인용되어 있다.

[가난한 사람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노름꾼], [백야], [미성년], [백치], [뽈준꼬프],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 [악몽 같은 이야기], [악령], [약한 마음], [죄와 벌] 등


이 많은 작품이 곳곳에 녹아있는 에세이를 읽고 나니,

고전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마음도 든다.

"도스토옙스키를 읽는 동안, 나는 고전이야말로 막장 드라마의 기원이었구나 싶었다"라는 저자.


인간 사이의 관계, 분노, 좌절, 각종 행위들

그것이 시대마다 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고전이 필요한 것이다.

그 안에서 느끼는 깨달음. 미리 깨달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현재의 내 이야기가 충분히 접목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는 200년 전의 과거와 현재가 넘나드는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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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_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무작정 퇴사한 날 필요한 사람/ 아, 또 서른이냐?/ 직장 생활의 우선순위/ 신중함은 무가치한 것/ 세입자가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 꼰대의 최후/ 자신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마세요/부러우면 이기는 거다/ 가족끼리 무슨 여행입니까/ 학연, 지연, 혈연은 죄가 없다/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법/ 오래된 친구/ 내 인생의 참고 사항/사람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 법1,2/ 마성의 여인, 인생의 주도권을 쥐다/ 우아하게 '을'이 되는 법 1,2/소심한 사람이 내딛는 행복의 첫걸음/ 뒷담화와 침묵 사이/ 고분고분한 사람이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법/ 까칠한 인간이 직장에서 살아남는 법/ 가족같이 생각한다는 말/ 멋있게 나이 든다는 것


에필로그_그래서 도스토옙스키




중간중간 작품의 등장인물이 한 페이지에 그림으로 나온다.

처음으로 등장한 작품이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이다.

표도르, 드미뜨리, 이반, 알렉세이, 조시마 장로, 까쩨리나가 등장인물로 소개되어 있는데.


더러운 기분으로 직장에서 퇴사한 저자가 위로를 받고자 전화를 건 '황'이라는 지인.

'황'은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막내 알렉세이 같은 존재인 것이다.

막내 알렉세이가 어떤 인물로 등장하기에?

작가는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를 간략하게 해 놓았다.

그 등장인물들이 고민이 있었을 때, 막내 알렉세이에게 털어놓는 장면도 인물별로 삽입했다.

그러니까 단순히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이란 작품에 대해 소개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 에세이가 아니다.

책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인물들까지도 파악해 묘사해냈다.


고전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재미있다.



[미성년]이라는 책과 '가족끼리 무슨 여행입니까'라는 단락이 인상 깊다.

자신을 양육하지 않았던 부모임에도 부모란 이유로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큰 갈등을 겪는 돌고루끼.

매사에 냉소적이고 삐딱한 돌고루끼와 그의 아빠는 자꾸 부딪힌다. 선한 어머니와 여동생은 중간에 껴서 치이게 되는 상황.

이들이 다시 관계를 회복하게 된 것은 돌고루끼가 그 집을 나와 하숙방에서 따로 살게 되고,

아버지가 하숙방에 찾아가면서부터이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완전히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들렸을 만큼의 변화.


이 이야기가 200년 전에 만 있었던 이야기일까.

현재와 전혀 벗어나지 않는 에피소드라고 볼 수 있다.


가까운 사이라도 멀리 떨어져 있어야, 즉 서로에게 공간을 주고 그 공간을 존중해 주어야 집착하지도, 강요하지도, 희생을 요구하지도 않을 수 있다.

공간이란..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해당한다.

서로가 독립적인 개체라는 사실을, 성향, 가치관, 성격 모두 다른 개인이라는 걸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어렵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메여 사는 사람들 참 많다.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두고 읽어보려고 한다.

고전을 조금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방법.

러시아 문학,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고전에 관심이 있다면 이렇게 읽어보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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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 번역가 권남희 에세이집
권남희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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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도, 번역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예전에 한창 일본 소설을 읽었을 때도 그랬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번역가가 궁금해진다.

글에 묻어나는 특유의 감성은 번역가에 따라 달라지는 걸 알게 되어서 일까.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 권남희의 에세이집 [귀찮지만 행복해볼까]를 읽었다.

귀찮지만,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내 인생의 행복을 결정함에 있어서도 귀찮음이 앞서는 이런 제목. 끌린다. 정말.

귀찮지만 뭘 먹어야 하니까 먹는, 귀찮지만 안 할 수는 없으니까 하는, 내 인생 같은 제목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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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소설가의 평 "권남희 번역가의 글은 정말 재미있다!" 가 표지에 크게 쓰여있다.

정말?

배송을 받고 먼저 가볍게 훑어보려고 했다가 완전 훅 빠져버린 에세이 집이었다.

에세이집은 특히 처음부터 별로면 끝까지 별로다.

내가 읽은 에세이집 중에 손에 꼽히는 책 중 하나가 될 이 책.

28년 차의 번역가의 내공인가.

글이 참 재미있다. 억지로 짜낸 재미가 아니라, 그녀의 일상에 소소한 재미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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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집순이로서, 눈물이 많은 여자로서, 강연할 때 덜덜 떠는 그냥 인간미 넘치는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막막한 바다를 바라보는 누군가에게,

그 바다를 건너는 누군가에게

한 줄쯤은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시작한다."

로 시작하는 이 책은, 빨간 펜으로 줄 치며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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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프롤로그_사실은 사실이다

1장 하루키의 고민 상담소

(하루키의 고민 상담소/무라카미 하루키와 노벨문학상/하루키가 마음을 허락한 사람/무라카미 하루키식 긍정적으로 생각하기/일본 편집자가 주고 간 책/이동진의 빨간 책방/아메리카노와 생과일주스/쫄보지만 화를 낼 때도 있다/카모메 식당의 그녀/오해를 남기고 떠나지 말기/이런 데서 위로를)

2장_잡담입니다

(애플과 구글/인맥인가 팔로맥인가/오가와 이토 씨의 메일/그녀의 시집 제목/무지한지 무례한지/타 업종 사람들의 습격/퇴사 위로 멘트/발 끼우고 문 닫기/헷갈리는 제목/눈의 치매/잡담입니다)

3장_남희 씨는 행복해요?

(그런 아이였다1,2/덜덜 떨었던 첫 강연/번역하는 아줌마/이제 인정하자/나무 늘보가 느린 이유/이번 생, 망작은 아니었다/남희 씨는 행복해요?/동창회에 가지 않는 이유/사람 잡는 갱년기/이놈의 슬럼프/내게도 익숙한 새벽 세 시)

4장_자식의 마음은 번역이 안 돼요

(사진은 사절/주객이 전도하다/너의 엄마를 졸업한다/우리 동네 훈육대장/21년 동안 냉동된 인연/알바 선배로서의 조언/사랑하는 강아지, 나무/그게 그렇게 울 일이야?/자신의 마음은 번역이 안돼요/관계)

5장_신문에 내가 나왔어

(내 팔자가 부럽다니/효도와 디스의 경계/알면서 왜 그랬어/엄마 이야기/신문에 내가 나왔어/그리운 아버지/할머니의 썸/맺힌 한마디를 날릴 때는/95세에 갖고 싶은 것/추억의 사오정 소환)

6장_가끔은 세상을 즐깁니다

(나이 50에 국카스텐 덕질을 하다/츠바키 문구점의 가마쿠라/특가 마쓰오카 2박 3일/더 늙기 전에 한 곳이라도/여행은 타이밍/곁을 내어 준다는 것/동유럽 여행의 발견/다시 돌아온 내 자리)

에필로그_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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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되는 이야기가 참 많았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도 있었지만, 그냥 권남희 작가의 생각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다.


그중 '발 끼우고 문 닫기'

유태인은 싸우고 돌아서서 "너랑 다시 안 볼 거야!"하고 집으로 들어오며 문을 '쾅!'닫는 게 아니라, 한쪽 발을 살짝 끼우고 닫는다고 한다.

마지막 말만은 입이 찢어져도 하지 말라는 조언.

지금은 마음이 그래도, 조금 지나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될 수도 있으니까.

살아가면서 한 번쯤, 겪었을 이야기다. 나는 한 몇 번쯤...

헤어지더라도 열린 관계로 헤어지는 게 어떨까.

어찌 보면 치사한 방법이라지만, 언제 어떻게 마주칠지 모르니까.


남녀 관계는 예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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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이야기와 연관 있다면 있을 수도 있는 이야기.


'오해를 남기고 떠나지 말기'

나한테 가장 인상이 깊은 이야기였다.


 

역자 후기를 보냈는데, "선생님, 더 추가해주실 거죠?^^"라는 글을 써서 되돌아왔다.

완성 원고에 그리 말하니, 권남희 작가의 기분은 살짝 상했던 터.

"선생님, 더 추가'해주실 거죠?' "->해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빨간 펜으로 고쳐 보냈단다.

글을 받은 편집자는 또 열심히 역자 후기를 추가해서 수정했다.

권남희 작가는 내 후기가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다시 또 본인 스타일로 고쳐보냈다.


이 모든 건 서로의 오해였던 거다.

권남희 작가가 습관처럼 "역자 후기는 교정볼 때 생각나면 더 쓸게요."라고 했고,

편집자는 그 말 때문에, "선생님, 더 추가해주실 거죠?"라고 써놓은 거다.

그런데 빨간 펜으로 "더 추가해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오니,

편집자는 나름 역자 후기를 수정해본 것.


 

이 오해는 다행히 풀렸지만, 세상에 얼마나 많은 오해가 있겠냐는 거다.

내 입장에서, 내 나름대로의 해석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

꺼내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닌 것을.

사람들은 오해 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고집하며 산다.

나도 그러고 사는 게 아닐까.

끝내 풀리지 못한 채 묻혀 버린 세상의 오해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오해라는 게 참 어렵지만, 풀지 못할 건 또 뭔가 싶기도 하고...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에피소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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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번역하는 아줌마로 칭하는 사람.

'번역가의 서재'를 취재하고 싶다는 의뢰가 가끔 들어오는데, 서재가 없다고 거절한다는 저자.


저자가 설명하는 작업 공간은 정말 인간적이다.

책상을 중심으로 왼쪽에 주방, 오른쪽에 거실.

앞에는 텔레비전,. 옆에는 소파,

발밑에는 멍멍이.

주부미가 철철 넘치는 공간.

그래서 따뜻한 번역이 나오는 것 같다는 멘트까지.


지금 서평을 쓰고 있는 내 주위를 둘러보니 웃음이 난다.

아줌마의 공간. 주부미. 뭔지 너무 알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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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좋은 관계 나쁜 관계가 있을 뿐이다.

흔히 관계가 파괴된 후 그런 사람인 줄 몰랐는데,

하고 상대방을 비난하지만

관계가 나빠진 것이지 사람이 나빠진 건 아니다.


뭐 사람이라는 게 항상 그렇게 해도

틀어질 수도 있는 거다.

게다가 점점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아도 사는 데 불편이 없다는 저자.

그래서 귀차니스트인 나는 쉬이 관계를 끊는다는 말.


귀차니스트인 나는 너무 공감이 된다.


점심을 같이 먹을, 어디 같이 가야 할 친구가 필요하다고 여겼던 때도 있었지만

점점.

그런 관계가 없어도 불편함이 없어진 지금.

오히려 편함을 느끼기도 하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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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딸이 "다른 사람 다 행복해 보이는데 나만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아"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한테는 너도 행복해 보여. 원래 남들은 행복해 보이는 거야."라고 대답을 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남들도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사실.

인생의 조증도 아니고 어떻게 행복하기만 하겠는가.

서로 행복한 시기가 다를 뿐.

자기가 행복할 땐 남을 보지 않아서 서로 엇갈릴 뿐이다.


인터넷에서 '행복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하는데, 지금부터 행복해 볼까. 아, 귀찮은데...

라고 마무리를 지은 이 멘트.



정말 내가 힘들 때 남의 행복만 보이는 법인 것 같다.

들여다보면 모두 똑같은데.

알면서도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이다.


SNS가 특히 그렇다.

나는 힘든데, 다른 사람은 정말 행복하게 지낸다.

그래서 마음이 가라앉을 때도 있다.

작가의 말대로 어떻게 사람이 행복하기만 하겠는가.

불행을 꺼내놓지 않아서 그렇지.

남들 앞에 보여주는 게 '행복한 모습'이었을 뿐.



맺힌 한마디를 날릴 때는 일이 끊길, 인연을 끊을, 냉전 할 각오를 하고 말하라는 조언.

그러나 맺힌 한 마디를 날린다고 좋은 일이 생기지는 않는다는 현실적인 이야기.


정말 인간적인 에세이 한 권을 읽었다.

평범한 아줌마라고 하는 권남희 작가가 참 특별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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