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온 마고할미 푸른숲 작은 나무 10
유은실 지음, 백대승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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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나온 책이니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나왔다. 아이들한테는 '옛날책'인 셈이다. 그당시 이책은 중학년 권장도서로 많이 올라와 있었다. 나도 그때 읽었다. 그런데 큰 감흥이 없었나?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이번 여름에 작가님의 줌강의를 들은 김에 빠진 것을 채우는 느낌으로 다시 읽어봤다. 


아니, 왜 이 책을 흘려 읽었지? 지금 읽으니 훨씬 더 재미있다. 윤이네 집의 형편이 상상이 가고, 할머니의 존재가 너무 든든하고 흐뭇하고, 할머니의 수수께끼가 너무 궁금하고,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이야기가 알듯말듯하고 그랬다. 유은실 작가님의 책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책은 이럴 때~' '이 책은 이런 아이에게~' 할 수 있을만큼 주제가 분명하지 않았다. 그게 작가님 책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주제 여깄소~" 하는 책 중에도 좋은 책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내공은 이런 책에서 더 느껴진다. 


인물들의 설정도 찰지고 흥미롭다. 어른이 보는 관점인지도 모르지만. 엄마는 능력있는 웨딩플래너이고 아빠는 공무원시험에 붙은지 얼마 안됐다. 주말에도 바쁜 엄마는 집안일엔 거의 손을 안대고 그나마 아빠가 살림을 많이 맡아 했다. 하지만 이제 아빠도 바빠졌으니. 집에 도우미 할머니가 들어오시게 됐다. 


방을 하나 차지하는 입주도우미는 솔직히 좀 비현실적이지만 그래서 이야기는 더 흥미롭게 전개된다. 기분이 좋으면 입을 가리는 습관이 있는 아빠가 자꾸 입을 가리는 것도 너무 웃기고, 오신 다음날 아침 12찬 정식을 한시간만에 뚝딱 차려내는 장면에선 상상을 하지 않고는 못배긴다. 오와, 무슨 반찬이 있었을까. 나도 그 상 앞에 앉아보고 싶다.ㅎㅎ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힘은 할머니의 신비로움(?)이다. 신비롭다고 하기엔 우락부락하시지만 뭐라 달리 표현할 말이 없네.... 할머니의 입버릇은 "~~하는 사람이 제일 싫어." 인데, 첫날부터 내 물건 뒤지는 사람이 제일 싫다고 하셨고, 자기 방에 절대 들어오지 말라고도 하셨다. 그런데 할머니는 놀라운 점이 너무 많아. 그러니 윤이와 독자는 궁금할 수밖에.... 


할머니의 존재로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해져가는 집을 보니 우리 집에 며칠만 모시고 싶다.ㅎㅎ 그렇게 무뚝뚝하게 일만 잘하시던 할머니는 엄마아빠가 늦는 날 윤이와 밤하늘을 보며 옛이야기도 한다. 할머니의 옛이야기 해석은 특이하고 새롭다. 마고할미만 빼고... 윤이는 할머니가 마고할미라 확신하지만 할머니는 모른다고 딱 잡아뗀다. 


할머니는 오래 계시지 않았다. 남은 기간 수고비와 편지를 남겨놓고 사라졌다. 삐뚤빼뚤 글씨체와 "그동안 고마워씀니다" 하는 말투에선 그냥 보통의 할머니가 느껴지는데 대체 할머니의 정체는 뭘까? 왜 떠나셨을까? 그걸 맘대로 생각할 수 있는게 이 책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집 아이들에게 양가 조부모님들의 존재는 마고할미에 버금간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키우고 챙기고 언제나 집을 지키고 온기를 채워주셨다. 외할아버지는 박식하시고 달변이시라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고 한자를 가르쳐주셨고 야구를 같이 응원하셨다. 할머니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예뻐해주시고 편들어 주셨다. 조부모님들의 존재는 이토록 튼튼한 울타리였다. 세대가 바뀌어간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다. 외로운 노인들은 늘어가지만 자의든 타의든 사랑을 쏟을 대상이 주어지지 않는다. 슬픈 일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었지만 그 배경은 나의 경험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배경을 토대로 이 작품을 어떻게 읽을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옛이야기는 새로운 이야기의 젖줄임을 다시한번 확인하며 그 무한한 가능성에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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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을 찾아라 - 2022 아침독서신문 선정도서, 2021 문학나눔 선정도서, 2021 소년한국 우수어린이도서, 2021 한국학교사서협회 추천도서 바람그림책 114
김진 지음, 정지윤 그림 / 천개의바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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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이 시작되는 시기에 출간되었기에 한글날에 맞춰 나온 건가 싶었다. 그래서 내용 또한 한글 창제를 다루었으리라 예상했다. 이 책이 과연 한글창제에 대한 것일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한글의 우수성이나 창제의 원리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아예 한글 창제의 과정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한글'이라는 낱말 자체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왜 '그렇기도 하다'는 걸까? 마지막까지 가야 알 수 있다. 마지막장 마지막 문장. 거기에 한글창제의 정신이 담겨있다. 이 책은 장차 큰 나무가 될 씨앗이 아직 싹이 트기 전, 무한한 미래를 품은 작고 딱딱한 씨앗인 모습에서 끝이 난다. 이런 관점은 또 처음이다. 매력적이고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제목 그대로, 사라진 세종대왕을 '찾는' 이야기였다. 처음 한번 휘리릭 읽어볼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두번째 볼 때는 보였다. 찬찬히 뜯어볼수록 재미난 책이다. 아이들이 있는 집에선 소장하고 놀이처럼 보고 또 봐도 좋을 것 같다. 


세종대왕이 '사라진' 덕분에 신하들은 이곳저곳 왕을 찾으러 돌아다녀야 했다. 하필 과거시험을 보는 날에 말이다. 찾아다니는 신하들을 찾아 독자들도 그시대의 여러곳을 함께 살펴보게 된다. 경복궁의 모습, 시전, 피맛길, 사대문 밖까지. 그리고 그시대 사람들의 생활모습도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다. 글 작가 뿐 아니라 그림작가의 노고도 무척 크셨겠다고 짐작된다. 배경이나 복장, 물건들 하나하나까지 무심히 그릴 수는 없었을테니.... 덕분에 아이들이 볼때마다 새로운 걸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컨셉의 역사그림책이 되었다. 


예전에 유행했던 '월리를 찾아라'처럼 화면을 채운 많은 인물들 중 "임금님은 어디 계실까?" 놀이를 자녀들과 해보는 것도 좋겠다. 난이도는 그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낮다. 하지만 표지와 앞면지 정도는 유심히 살펴봐야 찾아낼 수 있으니 발견하는 재미가 꽤 있을 것 같다. 책을 꼼꼼히 보는 연습도 될 것 같고. 


무엇보다도 사라진 세종대왕의 '의도'를 짐작해보는 일이 마지막으로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활동이 될 것이다. 중요한 날 신하들을 속된 말로 '똥개 훈련' 시켜놓고 왜 미소를 지으시는 건지. 과거시험 문제에 담긴 의미와 배경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그 안에서 세종대왕의 고민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느낄 수 있다. 


한글창제를 그려낸 그림책들도 있으니 이 책을 먼저 읽은 후 연결해서 이어가면 좋겠다. 아주 중요한 위치와 역할을 맡아줄 이 책이 매우 고맙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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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11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11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쟈쟈 그림, 김정화 옮김 / 길벗스쿨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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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천당을 8권까지 읽고 곧 약발이 다할 것 같은 느낌에 더이상 안읽으려고 했는데 모임샘들과 이야기 나눌 일이 생겨서 읽어봤다. 느낌이 반반이다.
1. 아진짜~ 적당히 끝내도 되겠고만. 이 작가 다른 시리즈도 많은데 재미없다 소리 나오기 전에 빨리 끝내!
2. 아이고, 아직도 꽤 끌고 가시네. 하여간 이 작가 생산력이 정말 대단해.

중간에 두권을 빼고 읽었지만 딱히 읽기에 불편한 점은 없었다. 어차피 이 책이 장마다 주인공이 바뀌는 에피소드 모음이라서 중간에 아무데나 읽어도 상관없다. 흐름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 흐름 중에 큰 줄기가 전천당 주인 베니코와 화앙당 요도미의 대결이다. 선악 대비가 극명하다. 악을 추구하는 요도미는 사력을 다해 베니코의 일을 방해하고 효과를 오염시킨다. 베니코는 상당한 타격을 입기도 한다. 하지만 요도미는 극악한 인물이라기엔 좀 허당이어서 결국 베니코를 당해내지 못한다. 그래도 씩씩거리며 또 다음을 도모하는 걸 보면 못되고 고집센 어린아이를 보는 느낌이다. 그것 때문에 이야기가 또 12권으로 이어짐.... 이제 12권에서 멋지게 대단원의 막을 내렸으면 좋겠는데 과연 어찌될지?^^

요도미에 비해서 선하다는 것이지 전천당의 제품들도 절대선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욕망 자체가 선하지 않은데 뭐... [다이노소다와 유적 쌀로뻥]에서 화석을 찾고 싶은 료헤이, [벌레 퇴치 향수]에서 벌레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미스즈, [쏙쏙 추잉 껌과 날로 먹기 사블레]에서 친구들의 능력을 부러워하는 쇼 등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다. 그래도 전천당은 이들의 소원을 들어준다. 하지만 중요한 게 있다. '적정선'이다.

요도미의 전략은 쉽고 간단하다. 저 '적정선'을 무너뜨리는 제품을 주면 되는 것이다. '욕심이 화를 부른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멈추기 싫다. 그때 요도미가 나타나 몇마디 말로 꼬이면 대부분 넘어간다. 요도미의 말은 부채질에 불과하다. 욕망의 불씨는 자기 마음 속에 있었던 것이다.

좀 의외면서 인상적인 말이 있었다. [휙휙 탄산수와 첨첨 별사탕]에서 요도미의 꼬임에 넘어간 아야네를 베니코가 찾아간 장면이다. 속은 것을 알고 실망하는 아야네에게 베니코는 이렇게 말한다.
"....손님이 스스로 선택한 일, 그 선택으로 행복해질지 불행해질지는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후회만 하지 않으면 아마도 운은 따라올 것입니다."
정말로 잘못했을 땐 뼈저린 후회가 약이라고 생각하지만 후회를 털어버리는게 나을 때가 더 많다. 전천당 제품을 포기하고 괴로워하는 손님에게 이런 조언을 해줄 수 있다는 게 좀 멋지다.

이 시리즈를 통틀어 '질투'를 다룬 이야기가 꽤 많다. 그걸 기억하는 건 나 또한 그 감정에서 아직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겠지. 이 권의 마지막 이야기 [찢어 오징어]도 질투를 다룬다. 마사토는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옛 회사 동료 부부의 행복한 모습에 속이 뒤틀린다. 요도미는 그 마음을 공략해 '찢어 오징어'를 주었다. 이번에는 요도미의 제품이 먼저고 베니코가 다음이다. 마사토 앞에 나타난 베니코는 그의 마음이 미움인 것 같지만 사실은 '외로움'이고 '쓸쓸함'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마지막 순간에 그는 다행스럽게도 전천당의 새로운 제품과 교환한다. 화앙당의 '찢어 오징어'는 결국 부메랑으로 요도미에게 돌아가게 되어, 이 시리즈의 특징인 권선징악을 완성한다. 물론 악의 무리는 여전히 다음 악행을 도모한다. 시리즈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시리즈 전반에 흐르는 주제 (지나친 욕심 금물, 적정선 지키기)는 매우 중요한 인생의 진리라고 생각한다. 행복을 지키는 자세라고 할까. 슬기로운 행복 생활! 현실엔 전천당이 없어 안타깝지만 화앙당도 없으니 다행이지 뭔가. 어쩌면 마음 속에 있는지도 모르니 그걸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겠다. 오랜만에 성경구절이 하나 떠올랐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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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타기를 거부합니다- 1955년 미국 인종차별반대운동, 세상을 바꾼 그때 그곳으로 2
마리옹 르 이르 드 팔루아 지음, 모르간 다비드 그림, 김영신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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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차별- 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 위해
엠마 스트라크 지음, 마리아 프라드 그림, 김휘택 옮김 / 걸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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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평등 수업
소피 뒤소수아 지음, 자크 아잠 그림, 권지현 옮김 / 다림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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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지다
정구열 지음 / 시와에세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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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시장이 있어서 딱 하나만 골라잡으라면 난 음악을 잡겠다. 아름다움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 생각한다. 그 표현의 방식은 다양하다. 음악, 미술, 문학, 무용, 연극 등등.... 이것들을 통칭해서 예술이라고 한다. 그중에서 난 음악이라는 예술로 아름다움을 표현해보고 싶다. 하지만 이생망이라는 말도 있듯이, 마음 뿐이지 사실은 가능하지 않다.ㅎㅎ

그런 마음에서 4년 전에 동네 도서관의 동아리에 입단했었다. 합창 동아리! 오디션도 없이 모두 받아주는 아주 품넓은 합창단. 퇴근하고 다 풀린 다리로 도서관으로 가 지휘자님의 인도로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신기하게 새 힘이 나고 재미있었다. 가끔 무대에 서기도 했는데 수많은 큰 무대를 해오신 지휘자님이 그 작은 무대에 최선을 다해주시는 게 고맙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코로나 때문에 그 행복은 2년도 채 못갔다. 이젠 아득한 기억이 됐다.

코로나로 타격을 받은 분야가 많은데 그중 공연예술계가 대표적일 것이다. 가끔 궁금했다. 성악과 지휘가 업이던 그 지휘자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실까. 마스크로 입을 막아버린 세상에서 성악가들의 삶은 어떨까.

그러다 지휘자님의 소설이 세상에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반갑고 궁금한 마음에 사서 읽어보았다. 일단 음악에 몰두하시던 분이 첫 작품으로 이런 장편 서사를 완성하셨다는 점에서 경의를 표한다. 이야기를 끌어가려면 만만치 않은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접 겪어보진 않았지만) 알고있다. 주인공들과 주변인물들의 관계와 사건들이 씨줄날줄로 얽혀 긴 서사를 힘있게 이끌어갔다.

가장 높이 평가하고 싶은 점은 음악적 전문성을 작품 안에 구현한 점이다. 주인공 남녀는 음대생들이다. (남자는 성악, 여자는 피아노) 이들의 연주에 대한 묘사는 전문가가 아니면 하기 어려울 것 같다. 청각의 시각화라고 할까. 만화긴 하지만 <피아노의 숲>을 읽을 때도 그런 느낌이 들었었다. 책을 읽는데 소리가 잡히는 것 같은 느낌. 이 책의 장점이자 차별성이다. 그리고 배경 중의 한 곳인 이탈리아에 대한 묘사도 작가가 유학했던 곳이라 그런지 매우 상세하고 생생하다.

스토리에 대한 평가는 취향이 많이 좌우하기 때문에 쉽게 말할 수 없다. 나는 사랑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절대적인 사랑에 대해서 믿지도 않는다. 나든 상대방이든 언제든 변할 수 있는게 사랑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의가 감정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관점에서 본다면 오혁과 윤주는 그쯤에서 멈추고 서로 행복을 빌어줬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런 비극은 없었을 텐데. 하지만 스토리에 당위란 건 없다. 그런 삶도 있는 것이다. 슬프고 비참하다 해도. 소설은 내용별로 여러 장르가 있으니 젊은이들의 사랑을 다룬 이런 내용도 그중의 하나일 것이다.

시대적 배경인 80년대는 이제 나에게 철지난 느낌을 준다. 그시대 청춘이었던 저항적 남성은 이제 말 안통하는 꼰대가 되었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꿈꾸던 여성의 모습은 아름답기보다는 속이 터진다. 그리 많이 지난 세월도 아닌 것 같은데 우리의 이슈는 변했다. 그래서인가, 오혁과 윤주를 바라보는데 폐장한 늦가을의 장터에 부는 쓸쓸한 바람이 느껴진다. 이 느낌은 아마도 동시대를 지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이들은 이런 시대도 있었다는 것을, 그게 별로 오래지 않은 과거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 수도 있겠지.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다 산산히 깨진 이들의 희생의 가치는 부정할 수 없다. 지금도 권력자들과 희생자들의 부당한 관계는 존재한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교묘해졌다. 내가 서있는 자리는 어딘지, 내가 하는 일은 어떤 의미인지, 장차 어디로 흘러갈건지 볼 수 있는 더욱 밝은 눈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젊은이들은 지나간 역사에서 배울 점이 있겠지만 나는 그들에게 지나간 세대로서 자랑스럽기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모든 면에서. 요즘 부쩍 더 그런 마음이 드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다음 책이 이제는 기억을 부르는 책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보여주는 책이면 좋겠다. 음악의 시각적 형상화라는 작가의 차별성을 살려 새로운 이야기가 또 펼쳐지길 기대한다. 세상의 이슈는 변하지만 예술은 영원하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음악소설'이라는 신선한 장르가 열려도 흥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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