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시작하는 민주시민교육 - 시민의식과 민주적 문제해결력을 키우는 그림책 수업의 힘
그림책사랑교사모임 지음 / 맘에드림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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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시민교육이란 특별한 별도의 교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교육의 거의 모든 순간이 민주시민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공교육의 목표와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특별영역의 책이라기보다는 일반적으로 널리 활용될 책이다. 교과도 사회, 도덕 정도를 넘어서 더 많은 교과에 적용 가능하다.

 

각 챕터의 제목을 보아도 이 책을 보는 교사들이 유용한 것을 어느 대목에서든 꼭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권, 자유, 평등, 평화, 다양성, 사회적 소수자, 연대, 사회참여, 환경, 윤리적 소비, 미디어 리터러시, 민주주의와 선거. 보편적으로 꼭 필요한 가치와 태도, 바른 인식을 길러줄 수 있는 주제들이다.

 

이 책의 차별성은 그 접근을 그림책으로 잡았다는 점이다. 그림책 활용 수업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그만큼 유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운영의 깊이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일단 시도하기는 전혀 어렵지 않다. 어떤 지도방법은 엄두를 내기 어려워서 하는 분들만 하는 것으로 치고 눈을 돌려버리게 되는데, 그림책은 접근이 쉽다. 물론 그 바다에 빠져보면 이 세계가 무한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 깊이에 허우적거리게 되지만....^^;;; 접근성은 매우 좋다. 그림책이 가진 착함과 친절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은 초,,고 선생님들이 모인 집필진에서 쓰셨기 때문에 각 학교급의 수업 사례가 다 들어있다. 초등보다는 중등 수업이 더 많을 것 같아 초등용에 비해서는 참고할 것이 적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상위 학교급의 수업사례를 보는 것도 흥미롭고 도움이 되었다. 챕터마다 일관적인 구성과 깔끔한 편집도 읽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확실히 내가 알고 있는 책, 활용해본 책으로 진행한 수업을 읽을 때는 바로 이해가 되고 머릿속에 그림이 딱 그려졌지만 잘 모르는 책일 경우에는 정확하게 잡히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바로바로 찾아보며 읽으면 효율적인 읽기가 되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일단 속독을 했다. 주제별로 필요한 부분부터 천천히 다시 읽어야겠다. 그림책부터 일단 찾아놓고. 소장하며 자주 펼쳐보기에 적당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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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나는 너를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이꽃님 지음 / 우리학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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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스포가 있음. 주의-

 

<죽이고 싶은 아이>에 이은 이꽃님 작가의 청소년 소설이 나와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어보았다. 인간 내면의 문제와 반전 면에서 이꽃님 작가는 정말 탁월하신 것 같다. 작가가 설계해 놓은 판에서 독자들의 감정도 이리저리 격동한다.

 

내 처음 감정은 같잖음이었다. ‘꼴값떨고 자빠졌네와 비슷한 느낌? 같잖기로는 남자애 여자애 막상막하였지만 남자애 쪽이 좀더 강한. 이따위를 사랑이라고 부르는구나 니네는. 작가님이 이번에는 이렇게 같잖은 사랑을 그렸나? 설마 이게 다는 아닐테지. 이게 다라고 해도 뭔가 하고픈 말이 있을 테지.

 

당연히 이게 다가 아니었다.

 

사귀는 남녀학생이 저수지에 갔다가 남자애(해록)가 실종되었고 여자애(해주)는 운동화를 물가에 가지런히 남긴 채 젖은 모습으로 돌아와 지금은 멀쩡히 집에서 경찰을 맞이하고 있다. 경찰의 조사를 받으며 서술한 이야기로 서사가 전개되는데, 해주가 해록이한테 과거를 회상하며 말하는 관점으로 서술된다.

기억 나? 우리가 저수지에 갔을 때 말이야. 그날 유난히도 어두웠잖아.”

이런 식으로 말이다. 중반 이후까지 해주의 관점에서 그들의 연애사가 서술된다.

 

한없이 가볍고, 소비적이기만 하고 생산적인 것은 없으며, 감정의 유희에 불과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그들은(여자애는) 사랑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내가 개네들 반에 있었다면 나는 최대한 멀리했을 거다. 왜냐면 노답이니까. 설득하고 논쟁하느니 그냥 멀리하는 방법을 선택했을 거다. 한때 친구였던 아이들이 그러했듯이.

 

앞에서도 처음 느낌을 말했듯이 남자애 쪽이 훨씬 더 꼴값 느낌이었다. 명품 타령을 한다든지, 치마 입은 애가 좋다고 말해서 여자애가 매주 옷을 사게 만든다든지, SNS에 여자애 사진을 올리면서 내 거라고 칭한다든지. (이 칭호는 정말이지 질색이다. 아이돌 노래 중에 내꺼하자인가 하는 노래가 있던데 자세한 가사는 안 들어보았지만 제목만으로도 패스) 하지만 해주는 그걸 추구했다. 서로의 내 거가 되는 것을. 해록이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하고, 모든 관계가 무너져도 해록 하나로 만족하려고 했다. 그럴수록 해주에게 해록은 절대적인 존재가 되었고 절대 놓쳐서는 안되는, 자기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물론 해록이 보여줬던 관심과 애정표현에 설레고 행복했던 마음은 이해가 간다. 누군들 그런 순간에 대한 로망이 없겠는가? 하지만 이런 대목을 보면 그런 마음이 다 사랑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팔을 뿌리치고 걸어가는 네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어. 이대로 널 보내면 안 된다고. 널 보내면 다른 애한테 가서 나에게 보여줬던 달콤한 미소를 짓고 따뜻한 눈길을 보낼 것 같았어. 죽어도 그 꼴을 볼 수는 없었어.” (155)

 

드디어 반전은 다가온다. 해주를 찾아온 아줌마 경찰의 입에서 나온 말들. 탐문을 통해서 확인한 사실들. 그것은 지금까지의 해주의 말이 매우 교묘하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것을 알려준다. 남자애가 훨씬 꼴값이라는 나의 느낌도 해주의 말에 속은 것이었다. 남을 지배하려는 속성을 가진 인간이 가진 파괴력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했다. 작가는 그 영향력을 곰팡이에 비유했다.

 

그 다음은 친구였을 거야.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점점 부모에게서 멀어져 친구와의 관게에 집중하게 되니까. 너는 부모님이 너에게 그랬듯 네 말이면 뭐든 복종하는 친구가 필요했어. 순진하고 착한 몇 명의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친한 친구가 되어주는 척하며 너는 친구들을 마음대로 이용했을 거야.”

철렁했다. 이런 아이들이 분명히 있다. 투톱도 인정 못해, 자기 혼자 원톱이어야만 하는 아이들. 필적할 대상이 나타나면 눌러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은 뜻대로 되지 않아 고립되면 피해자로 돌변하여 주변을 가해자로 만들고 흐느껴 울기까지 한다. 그 아이가 친 올가미에서 벗어나기는 어른도 쉽지 않다. 그런 아이가 쉽게 바뀔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읽어보면 알 것이다. 한숨과 함께.

 

사랑은 누구나 한다. 이 책이 사랑 이야기라고 해주가 주장하는 것처럼. 그래. 사랑은 괜찮은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지. 그 건강성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건강하지 못한 사랑은 무관심보다도 해롭다. 현실적으로 나는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엮이지 않기 위해 최대한 멀리할 것이다. 자식들에게도 엮이지 말라고 신신당부할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가 우리반 학생이라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인간은 멀리하여 고립시키는 것이 정답인가? 그럼 고립된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마지막으로 드는 생각.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에게는 이런 면이 없는가?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즐기면서 지배욕을 점점 키워가는 모습. 반대로 나를 지배하는 사람에게서 단호히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 누구나 아찔한 순간이 있을 것 같다. 산다는 건 참 복잡하다. 자주 살피고 돌아봐야 한다. 이 책을 청소년들이 읽고 자신을 돌아봤으면 한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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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대신 아파해 줄 사람 저학년은 책이 좋아 26
이수용 지음, 심윤정 그림 / 잇츠북어린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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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에 대한 이야기인가 했다. 내가 슬플 때 나만큼 슬퍼해줄 사람... 그런 사람이 있어야 슬픔이 치유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이야기는 아니었다. 걱정, 불안, 용기, 직면에 대한 이야기였다. 불안과 걱정은 나의 근본적인 문제이고, 그것 때문에 나는 애니어그램 검사에서 가장 높게 나온 유형 말고 세 번째로 나온 유형이 나의 유형인가보다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 유형의 내면 문제가 불안이라고 해서 말이다.

 

혼자 불안해하는 것도 이 책의 그린이와 닮았다. 그 불안의 요소가 사라지고 나서야 누군가에게 말을 할 수 있다. 그동안 정체가 불분명한 불안은 내 안에서 엄청나게 몸집을 부풀린다. 하지만 대부분의 불안은 알고보면 바늘끝을 갖다댄 풍선처럼 쪼그라들게 마련이다. 그린이의 불안처럼 말이다.

 

그린이는 3학년인데 아직도 앞니가 훤히 비어있다. 그린이 반에서 앞니가 안 난 아이는 없다. 보통 2학년에는 다 나니까... 친구들과 사진을 찍어도 앞니가 빠져있는 그 모습이 그린이는 보기가 싫다. 그러던 중 단짝 보미가 너 잇몸이 더 커지고 있는 것 같아.” 라고 하는 말에 불안은 더 가중된다. 치과의사인 보미아빠가 보시더니 앞니가 잇몸 안에서 자라고 있으며, 마취주사 맞고 잇몸을 째 주면 아무 문제 없다고 했다. 그러나! 두 가지 공포가 단번에 다가왔다. 잇몸을 짼다니! 그리고 잇몸에 주사를 맞는다니! 그 주사는 엄청 아픈 철주사라고 고등학생인 언니가 겁을 주었다.

 

이 현실동화에도 판타지 요소가 있었다. 전에 학원 다녀오다 넘어진 날, 그린이는 약국에 들렀는데 약사 할머니가 초콜릿을 주었다. ‘나 대신 다른 사람이 아프게 되는초콜릿이었다. 효과가 바로 나타났다. 두 번째로 찾아간 날 할머니는 좀 까다로운 약이라며 다른 초콜릿을 주었는데, 누군가에게 먹여야 하는 초콜릿이었다. 즉 그 초콜릿을 먹는 사람이 대신 아프게 되는. (제목이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너무나 두려운 고통을 앞두고, 그린이는 과연 누구에게 이 초콜릿을 줄까?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어린이 독자들은 함께 숨을 죽이며 그 결과를 지켜볼 것 같다.

 

결국 그린이의 아픔은 걱정한 것보다 크지 않았으며 그동안 그린이의 두려움과 마음고생도 그럴만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저 빠른 대처, 때에 맞는 결단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런데 어른들도 그걸 못해서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일을 키우고 마음고생은 고생대로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저학년 대상의 귀여운 동화지만 어른들이 봐도 뜨끔한 내용이다. 아니 사실 아이들은 잘 모를 수도 있다. (어른들은 모를 수가 없고.ㅎㅎ)

 

내가 특히 공감한 이유는 어른이 되어서도 이런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도 있지만, 어릴 때의 경험이 그린이와 너무 유사해서다. 채 빠지지 못한 유치 어금니 밑으로 영구치가 솟아 올라왔다. 그 상태가 매우 오래갔던 걸로 기억하는데 난 그게 무슨 큰일인 줄 알고 불안해하면서도 부모님께 말을 하지 못했다. 또 하나는 아래 속눈썹이 안쪽으로 향해 자꾸 눈을 찔러서 툭하면 눈물을 흘렸었다. 눈이 아프다고 우는 딸이 걱정되신 부모님은 그당시 종로에 있는 유명한 안과에 나를 데려가셨다. 조금 더 지켜보자고 하시면서 수술을 해야될 수도 있다고 했다. 다음 안과 방문 때까지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밤마다 두려움에 시달렸다. 어금니와 눈, 두가지가 한꺼번에 주는 두려움으로 매일밤 끙끙대다 잠이 들었다. 아무에게도 그 두려움을 말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때 형성된 것인지도 모른다. 두려움을 대하는 나의 평생의 태도가 말이다. 결과는 너무나 싱겁게도 어금니는 쑥 빼는 걸로 해결되었고, 속눈썹은 성장하면서 괜찮아지는 걸로 결론이 났다. (아니 그 마음고생은 어디로.....?^^;;;) 안과에서 괜찮다고 결론이 날 날 그때 난 하루 결석을 했었고 처음으로 형제들 빼고 나만 엄마 아빠와 종로의 만두집에서 외식을 했다. 엄마 아빠가 나 많이 먹으라고 만두를 밀어주시는데 너무 좋아서 좋은 걸 못 느낄 정도였다고 표현해야겠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우습냐고.^^;;;;; 하지만 어릴 때는 조그만 문제가 우주와도 같은 무게.... 아니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인지도 모르겠다.

 

정말 우습게도 이제 자녀들까지 성인이 된 내가 그린이같은 어린아이를 보며 두려움일수록 빨리 대처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겪을 일은 겪는다. 하지만 안 겪을 일까지 겪지는 말자. 심리와 태도는 선천적인 면이 강해서 (그러니까 인간 유형이 어느정도 있는 것이겠지)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지만, 그래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겠다. 그리고 나의 어린시절 같은 두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는 이 책을 살며시 권해주겠다. 아니면 교실에서 읽어주고 두려움 성토대회 같은 것을 해보면 서로 위안도 되고 용기도 낼 수 있으려나. 아무래도 결론은 치과에 빨리 가!”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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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점 백곰 큰곰자리 70
김유 지음, 최미란 그림 / 책읽는곰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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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보만보-무적말숙-백점백곰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다 읽었다. 무적말숙의 리뷰를 썼다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없다. 겁보만보는 있는데. 어쩐지.... 무적말숙은 구체적인 내용이 잘 생각이 안 난다. 이래서 적어놔야 해. 백점백곰은 적어두자.^^

 

만보가 떠났다 돌아온 그 길에서 말숙이가 서성거리며 끝났고, 몇 년 후 말숙이가 주인공인 무적말숙으로 돌아왔다. 무적말숙이 끝날 때쯤 백고미가 서성거렸고 또 얼마 후 백점백곰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 시리즈는 아직 끝날 때가 되지 않았다. 이 책에도 마지막에 서성거리는 또다른 아이가 있기 때문이지. 그 아이의 이름은....^^

 

옛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길을 떠나고, 다시 돌아온 그는 떠나기 전의 그가 아니다. 이 시리즈도 각 편마다 그 공식이 다양하게 적용된다. 만보는 이제 더이상 겁보가 아니고, 말숙이는 이제 더이상 막무가내 심술대장이 아니다. 그렇다면 백고미의 문제는 무엇이며 어떻게 거듭났을까? 궁금해진다. 어떻게보면 이러한 공식은 매우 식상하고 뻔한 교훈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것이 김유 작가님이 가진 이야기의 힘인 것 같다. 옛이야기들이 그렇듯이. 그리고 최미란 작가님의 그림도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이제 이 시리즈와 뗄 수 없는,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만드는, 저절로 연상되는 그림이 되었다.

 

겁보만보, 무적말숙, 제목에서 주인공들의 문제가 보인다. 그런데 백점백곰은 무슨 문제일까? 백점이 왜 문제지? 이것도 어느정도 추리는 가능하다. 백점만 추구하는 완벽주의자? 강박? 아니면 잘난척? 아니면 부모님의 압박?

 

이름은 백고미지만 친구들 사이에선 백곰으로 통한다. 태몽도 백곰이었고 덩치 크고 느리고 하얀 것이 이미지도 비슷하다. 하지만 고미는 니는 덩치는 곰만 헌디 마음은 코딱지만 하다니께.” 라는 친구 영이의 말대로 잘 삐지고 속이 좁다. 공부만 잘하면 큰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며 친구들은 무시한 채 날마다 문제집만 들여다본다. 할머니와 부모님은 귀한 자식인 고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지만, 그렇다고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고 채찍질하는 건 아닌데, 고미는 그렇게 친구들에게서 고립되어 혼자만 승부욕을 불태우며 살아간다. 그러다 고미가 쌓아온 백점의 성에 흠집이 나는 일이 생긴다. 고미는 좌절하다가, 자신을 위로해 줄 친구 한 명도 옆에 없다는 것까지 깨닫게 되어 더욱 슬퍼진다.

 

이제 고미도 그 길에 들어설 차례다. 그 길에서 고미는 누구를 만나고, 어떤 변화를 얻게 될까? 떡 만드는 꼬부랑 할머니(이젠 빵도 만드심)와 동굴에 들어갔지만 사람이 못된 호랑이를 만났다. 그들과 대화하면서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백고미.

 

그리고 마지막에 만난 것은.... 고미가 자기 자신과 마주했다고 할까. 속으로 조금 놀랐다. 평범한 듯 비범한 이야기는 이런 곳에서 나오는게 아닐까. 난 작가가 아니지만 엄청 노력해서 작가가 되었다고 해도 이런 생각은 나지 않을 것 같아. 음 그러니까 작가는 절대 되지 말아야겠다.ㅎㅎㅎ

겁보만보 때부터 이야기의 맛을 최고치로 살려주던 찰진 사투리는 여기서도 여전하다. 특히 고미네 할머니인 기여할머니. ‘기여라는 말 오랜만에 들어보네. 그 말을 고미도 이어받는다.

기여, 우린 인저 친구가 되었구먼.” (57)

 

이 책에서 한 문장만 고르라고 한다면 그건 좀 무리한 요구지만.... 꼭 그러라면 난 이 문장을 고르겠다.

세상에는 길이 많더라고유.” (79)

이걸 깨달았으니 고미는 이제 바라던 큰 사람이 될 수 있겠다. 개미 콧구멍 속 코딱지만하게 작았던 마음도 커지고, 더이상 외톨이도 아니고, 문제집만 들여다보며 조바심 내지도 않고 여유있고 의연한 백곰으로 말이다.

 

이제 그 고갯길 앞에는 다음 아이가 서 있다. 그 아이는 무엇 때문에 길을 떠날까 궁금하지만, 4권이 나올 때까지 참기로 하고. 살면서 그 고갯길을 한 번 이상은 넘어야 할 텐데. 우리 아이들이 그 고갯길로 갈 때 주저앉히는 어른은 되지 말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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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아이들 소원잼잼장르 4
전건우.정명섭.최영희 지음, 안경미 그림 / 소원나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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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독서 추천도서들 중에서 동네 도서관에 있는 책을 몇권 빌려와 봤다. 그중의 한 권인데, 처음 느낌은 에잉? 추천하기엔 너무 어둡고 무섭지 않나?’였다. 하지만 그 음울 사이에 희미하고 작은 빛을 찾아볼 수도 있고, ‘어두우면 어때, 밝은 전망만큼 어두운 전망도 있을 수 있는 거지. 어쩌면 이쪽이 더 가능성 있는 전망일 수도 있는걸.’ 하는 생각도 든다. SF나 공포문학 쪽으로 저자들의 명성을 믿고 선택한 면도 있다. 특히 최영희 작가님의 어린이, 청소년 문학들을 거의 읽어보았고 대부분 좋아한다.

 

지구에서의 마지막 밤(전건우), 정크봇(정명섭), 불을 지피는 악마들(최영희) 이 세 단편을 엮는 책의 제목은 <종말의 아이들>이다. 종말이라... 낱말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무섭다. 하나같이 환경과 인간성이 파괴된 무서운 미래를 그린다.

 

지구에서의 마지막 밤의 종말 원인은 소행성 충돌이다. 언제부터인가 보이기 시작한 소행성의 진행 방향은 정확히 지구를 향하고 있었고, 막을 방법은 없고, 이제 어둑어둑한 하늘에 붉은 소행성의 엄청난 크기는 종말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음을 알린다. 나사는 그 마지막 날을 측정해 알렸고, 이야기의 배경은 바로 그 전날이다. 지구에서의 마지막 날.

 

작가가 그린 종말의 인간성에 공감이 가면서도 혹시 아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함께 종말을 맞는 사람들의 인간성은 생각보다 아름다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작품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부인은 못하겠다. 여기서는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못이겨 블러드 아이라는 괴물이 되었다. 어차피 죽을 거지만 사람들은 그 와중에도 서로 죽이고 도망친다. 그 안에 지하, 지호, 지유 세 남매가 있다. 부모마저도 블러드 아이가 되어, 장남 지하는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 엄마를 밀어내야 했다. 세 남매는 막내 지유의 소원대로 초코파이를 구하기 위해 위험한 거리로 나선다. 내일이 지구의 마지막 날이자 지유의 생일이다.

하늘을 깨부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묘사가 너무 실감난다. 세 남매는 꼭 끌어안은 채 이 시간을 보낸다. 무섭지 않다는 아이들의 대화가 눈물겹다.

 

정크봇에서도 괴물로 변해버린 인간의 존재가 나온다. 바로 트리맨이다. 이들에게 상처를 입으면 고통을 당하다 같은 트리맨이 된다는 점이 좀비와 흡사하다. 남은 소수의 사람들은 어찌하든 살아보려 애쓰지만 이미 식량과 의료를 비롯한 모든 환경이 너무 열악해졌고 인간의 수명은 40세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중에 한경이 엄마가 여기저기서 얻은 부품들을 조립하여 만들어낸 정크봇이 그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어주는데.... 이것을 지키는 것마저도 쉽지 않다. 그래도 산 존재는 그저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인가. 한경이와 친구들은 포기하지 않으며 다음을 이야기하면서 끝난다.

 

불을 지피는 악마들에서는 변종동물의 위협이 지구를 삼켰다. 무시무시한 변종 메뚜기의 묘사에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든다. 으으윽.... 힘있고 가진 사람들은 지하도시를 설립해 피해 들어가고, 거기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위험하고 거친 들판에서 하루하루 위험과 맞서며 살아가고 있다. 메뚜기를 당해낼 수 없으니 방법은 알집을 재빨리 불태우는 것뿐이다. 그래서 지하도시 사람들은 그들은 우코바크라고 부른다. 바로 이 작품의 제목인 불을 지피는 악마들이라는 뜻이다. 어처구니 없지만 몇 세대가 지나는 동안 이것은 전설로 굳어져서 두 집단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놓여졌다. 작가는 여기에서 편견에 대한 설명을 꽤 정성껏 하고 있다고 느꼈다.

 

들판의 소녀 라다케와 지하도시의 굴뚝 청소부 소년 토미가 어른들에게 허락받지 못한 만남과 협력을 하게 되며 이야기가 펼쳐지니, 이 책은 그래도 세 작품 중 희망이 가장 많이 들어있다고 할까. 하지만 미래의 전망으로 치자면 못지않게 어둡다.

 

생각해보면 인류가 지금처럼 편하게 산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초기 인류의 삶은 생존이었을 것이고, 마지막도 어쩌면 그러하지 않을까. 근대 이후 짧은 편리를 누리고자 인간은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것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가 지금 우리나라의 큰 문제인 출산율의 극한 감소로 보여지는 것이 아닐지. 생각보다 두려움은 가까이에 있을 수도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굴러간다. 그 바퀴는 무심히 희생자들을 깔아뭉개고 굴러가기도 한다. 그 바퀴를 제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공포를 극대화하여 괴물이 되는 것이 맞을까. 소박하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서로를 한번이라도 더 돌아보는 게 맞을까.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지금으로서는 겸손이 아닐까. 이 책을 덮으며 든 생각이다. 이 책을 내가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고학년 어린이들이 읽어보겠다고 하면 고개를 끄덕일 것 같고 그들의 생각이 궁금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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