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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헤어 ㅣ 우주나무 그림책 18
안단테 지음, 윤소진 그림 / 우주나무 / 2023년 3월
평점 :
표지는 노란색 바탕에, 깔끔한 선의 귀여운 그림이 잘 어울린다. 주인공이 아이가 아닌데도. 주인공은 헤어 디자이너 지우 씨다. 지우 헤어는 미용실 이름이고. (단지 미용실 이름만은 아니다. 마지막 장의 자그마한 반전^^)
미용 의자도, 샴푸 의자도 하나씩뿐인 자그마한 미용실을 혼자 운영하는 지우 씨. (혼자라기엔 개가 한 마리 있지만) 그에게서 나는 직업인의 태도를 본다. 나도 직업정신이 투철한 편이다. 하지만 지우 씨는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이 가졌다. 그것은 긍정적인 마음과 여유인 것 같다.
아침에 미용실 문을 여는 지우 씨. 미용실은 이미 깔끔하다. 앞치마를 두르며 지우 씨가 하는 말. “오늘도 좋은 하루를 만들어보자!” 지금부터 밤까지 달려야 하는 길고 고된 일상. 그래도 지우 씨는 웃으며 힘차게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준비 안 된 채 허둥대는 걸 참을 수 없어서 일찍 출근하는 편이다. 아이들이 도착할 때 쯤에는 이미 준비가 끝나 있어서 나는 아이들을 관찰한다. 관찰당하는 아이들은 함부로 행동하기 어려워서인지 우리반의 아침은 차분하다. TV화면에는 책상서랍에 정리해야 할 것들과 제출물, 오늘의 감상음악이 크게 제시되어 있고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 말이 한마디도 필요없는 우리 교실의 아침 루틴이다. 이정도면 여유를 가질 만도 한데 내 마음 속에는 여유란 게 없다. 전쟁의 시작일 뿐이다. 아이들이 돌아가고 나야 비로소 한숨을 돌린다. 퇴근은 기쁘지만 이미 진을 다 뺀 상태라 즐거움을 도모할 기운은 없다. 물론 지우 씨와 나의 공통점도 있긴 하다. 남의 돈 거저 먹지는 않는다는 것. 받은 만큼 일한다는 것이다. 좀더 좋게 말하면 최선을 다한다고 하겠다.
지우 씨와 나의 공통점이 또 있다. 다양한 고객(?)들을 상대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상황과 상태가 다르고,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지우 씨는 기꺼운 마음으로 그것들을 해낸다. 떼쓰는 꼬마를 달래 반듯한 꼬마신사로 만들고, 대머리 할아버지의 일곱 가닥 머리도 정성껏 만져 이발을 해드린다. 실연당한 아가씨의 하소연도 들어주고, 까탈 부인의 파마도 성공적으로 해낸다.
“그렇게 하루가 갔어요.”
“오늘도 괜찮은 하루였어. 그렇지?”
나의 하루도 그렇게 간다. 지우 씨와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다만 이런 마음가짐만 더 갖추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괜찮은 하루였어!
나는 평소 “모든 직업은 전문직이다” 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어느 일이든 내가 잘 모르는 일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는 편이다. 전문직의 요건에는 자격조건이 얼마나 까다로운가, 얼마나 어려운 훈련과정을 겪었는가도 있을 것이지만 이 그림책에 담겨있는 ‘섬세한 손놀림’도 있을 것 같다. ‘손놀림’은 꼭 액면 그대로의 ‘손’놀림만을 말하지는 않는 것. 그러니 모든 직업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것이 있다면 그는 전문직이라 인정받아도 될 것이다.
“지우 씨의 손놀림은 나뭇잎을 흔드는 산들바람 같았어요. 아침 햇빛을 머금은 듯 눈부셨고요.”
“지우 씨의 손놀림은 여름의 부푼 숲을 상상하듯 여유롭게 너울거렸어요.”
“지우 씨는 해거름 반짝이는 빛깔들을 모으듯 염색을 했지요.”
“지우 씨는 악기를 연주하듯 섬세하고 살뜰하게 파마를 했어요.”
이런 것을 예술의 경지라고 하던가. 수업을 예술에 비유한 교수님의 책도 있었지. 얼마 안남은 나의 직업생활을 예술로 마무리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너무 큰 꿈이긴 하지. 하루하루 ‘오늘도 무사히’를 되뇌며 살아가는 처지에.^^
모든 직업인들이 자신의 일을 이처럼 소중히 여기며 예술의 경지에 오른다면 세상이 좀 더 밝고 행복할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무엇’이 되는지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그 일을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그게 이 사회에서 통할 말인지 생각하면 조금 슬프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