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은 혁명적인 글쓰기 방법론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 한문화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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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으로 나온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서평단에 당첨이 되었다. http://cafe.naver.com/jhcomm/13279[출처] [한문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서평단 가이드(~3/22 마감) (독서 공간 리뷰어스 클럽) |작성자 소원

이 책은 한문화 출판사에서 2000년도에 초판을 발행했고, 2005년에 개정1판, 2018년에 개정2판으로 나왔다. 전 세계적으로 150만부가 넘는 판매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책이다.

나는 글쓰기에 관심이 생긴 이래로 작법서를 제법 읽었더랬다. 작법서를 읽는 동안에는 쓰고자 하는 의욕이 마구 솟구친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면 얼마 안 있어 나는 다시 글쓰기의 귀차니즘이 된다. 그러다 다시 다른 작법서를 읽는다. 다시 또 의욕이 앞선다. 몇 몇 글을 쓰긴하지만 정말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두려워 하고 쓰지 않고 있다. 이러한 내가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지인에게 추천받은 지 2년 만에 읽어 보았다. 그 2년이란 시간이 아까울 정도의 작법서였다. 저자 나탈리 골드버그는 나를 의자에 앉혔고 글을 쓰게 했다.

어떤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는다면, 모든 페이지에 밑줄을 긋게 될 것이다’ 라고 했다. 그만큼 마음에 와 닿는 글귀가 정말 많았다. 저자는 미국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불교도이다. 그녀는 카타 기리 선사의 말을 자주 인용한다. 선사의 말은 삶뿐 아니라 글쓰기에도 적용이 된다. 추천의 말에서 주디스 게스트가 이런 말을 했다. ‘이 책은 글을 쓰고자 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인생의 모험을 앞둔 모든 이들에게도 최고의 안내서이다.’ 나 또한 이 책을 읽고 주디스 게스트의 말에 공감되었다.

나탈리 골드버그에게 많은 위로를 받았고 좋은 충고를 들었고 용기를 얻었다. 내 글이 쓰레기일지라도 계속해서 써 봐야겠다. 



규칙적으로 달리기 훈련을 하게 되면, 이 훈련 자체가 저항감을 잘라내고 무시해 버릴 수 있는 또 다른 훈련이 된다. 당신은 계속 달린다. 이렇게 한참 동안 달리다 보면 당신은 어느새 달리기를 사랑하게 된다. 게다가 목적지가 보이면 절대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골인을 하고 난 후에는 다시 또 달려 보고 싶다는 갈증에 사로잡힌다.

축구팀이 단 한 경기를 뛰기 위해 아주 오랜 시간 연습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글쓰기를 위한 훈련 시간을 오랫동안 내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졸작을 쓸 권리가 있다.”라고만 하자. 그저 많은 글을 쓰겠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

덧없이 지나가 버리는 세상의 모든 순간과 사물들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켜 주는 것, 그것이 작가의 임무이다.

멈추지 말라. 망설이지 말라. 백일몽을 꾸지 말라. 제한된 시간이 끝날 때까지 쓰라.

작가의 임무는 평범한 사람들을 살아 있게 만들고, 우리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그냥 쓰라. “그래, 좋아!”라고 외치고, 정신을 흔들어 깨우라. 살아 있으라.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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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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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루드비크는 마르케타에게 농담처럼 쓴 편지로 공산주의 학생 연맹에서 퇴장 당한다. 이후 군입대를 하고 탄광에서 수년간 일한다. 그런 와중에 루치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수렁에 빠진듯 절망적인 삶을 살던 루드비크에게 새로운 인생이 찾아왔지만 결국 루치에는 떠난다. 탄광에서 나온 루드비크는 학생 연맹에서 자신이 퇴장 당하는데에 주역을 맡은 제마네크에게 복수심을 갖는다. 우연히 제마네크의 아내 헬레나를 만나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동침한다. 그러나 헬레나와 제마네크는 이미 이혼 위기에 있고 제마네크는 헬레나보다 어리고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하는 중이다. 루드비크의 복수는 수포로 돌아가고 헬레나는 갑자기 돌변한 루드비크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그저 헤프닝으로 끝이 난다.
한편 루드비크는 학창시절 자신에게 도움을 받았던 친구 코스트카에게 루치에의 과거 이야기를 듣는다. 진정 루치에를 알고 사랑했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은 루치에를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된다.
야로슬라프는 루드비크와 가장 친한 사이였지만 루드비크가 학생 연맹에서 퇴장당하고부터 서로 멀어졌다. 그는 계속해서 공산주의 연맹을 이어갔고 민속 축제를 이어갔다. 그러나 17년의 세월동안 세상은 변해갔고 민속축제는 이제 사람들 관심을 받지 못한다. 루드비크는 야로슬라프 결혼식때 함께 하자던 연주를 거부했지만 이번엔 스스로 연주를 하겠다고 나선다. 둘은 민속 축제에서 함께 연주한다. 그러다 야로슬라프는 심근경색으로 쓰러진다. 루드비크가 눈물을 흘리며 연주자들과 야로슬라프를 부축해 구급차로 향한다.


이야기는 1948년 2월 즈음에 시작한다. 세계 2차대전이 끝나고 얼마 안 된 즈음 공산주의가 추앙받는 이데올로기로 떠오르는 시기다. 주인공 루드비크는 공산주의 학생연맹에 가담했지만 농담섞인 편지 한통으로 인생이 뒤바뀐다. 자신이 진정 사랑했다고 믿은 루치에는 사실상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 그것은 루드비크가 공산주의를 잘 알고 학생연맹에서 활동했다는 것 또한 사실 자신을 잘 몰랐던 것 아닌가하고 연관지어 생각해보았다.
루드비크는 십수년 만에 친구 야로슬라프를 민속 축제 '왕들의 기마행렬'에서 만난다. '왕들의 기마행렬' 축제는 이제 더이상 사람들의 이목을 못 끈다. 당국에서도 적극적으로 축제 지원을 하지 않아 도로도 막아주지 않는다. 도로에서 말과 자동차가 서로 엉켜버리는 일도 생긴다. 이 한물 간 행렬은 루드비크와 야로슬라프를 비유하는 듯 하다.

[농담]은 총 7부로 구성되어있는데 각 부의 제목은 등장 인물의 이름이고, 등장인물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했다. 그런데 유독 7부에서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세 명이나 적어 놓았다. 루드비크, 헬레나, 야로슬라프. 밀란 쿤데라는 왜 이 세 인물을 마지막 부에 넣었을까?
루드비크와 야로슬라프, 헬레나의 공통점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이제 한물 간 사상이 되는 과도기에 희생양이라는 것 아닐까. 심근 경색으로 쓰러진 야로슬라프가 루드비크에게 말한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그냥 여기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라고. 자기는 여기 있고 싶지 않고 들판으로 나가고 싶었다고, 특히 내가 왔기 때문에, 특히 내가 돌아왔기 때문에 그랬다고 아름다운 별빛 아래 우리는 정말 근사한 연주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공산주의라는 사상에 갇히지 않고 변화하는 세상과 함께 변할 때 그곳에 갇혀있지 않고 들판으로 나갔더라면 그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루드비크가 헬레나를 다른 사람에게 던지고 싶어한 하나의 돌멩이쯤으로 만드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가르치지만 철학이라는 일반적인 명칭 속에 점잖게 감추어 놓는 제마네크처럼 기회주의적인 사람처럼만은 아니더라도.

이야기는 1965년 12월 5일로 끝난다. 처음 이야기가 시작되고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다. 세상은 변한다. 어떤 시대에 최고로 추앙 받던 이데올로기도 다른 것으로 대체되고 변하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이 미친듯이 등불을 흔들어 대며 해안가를 어슬렁거리고 있다면 그는 미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밤에, 길 잃은 배가 거친 파도에 휩싸여 헤맬때, 이 사람은 구원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는 천상과 지옥 사이의 경계에 있다. 그 어떤 행위도 그 자체로서 좋거나 나쁘지 않다. 오로지 어떤 행위가 어떤 질서 속에 놓여 있느냐 하는 것만이 그 행위를 좋게도 만들고 나쁘게도 만든다.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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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이루는 밤 헤르만 헤세 선집 12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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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이루는 밤>은 소설이 아니고 헤세가 살아생전에 남긴 에세이다.  총 42편이 실려있다. 그 안에는 작가 헤르만 헤세의 삶의 여정과 철학이 모두 담겨있다. 헤세의 삶과 철학에서 소설의 배경과 인물이 창조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고인이 된 소설 작가의 개인적이고 현실적인 삶이 반영된 에세이는 같은 시대를 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내가 가장 인상깊게 읽은 부분은 <소소한 기쁨>이다.

'소소한 기쁨'을 누리는 능력은 분수를 지키는 습관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  소소한 기쁨은 눈에 띄지 않고, 칭찬받지 않으며, 돈이 들지 않는다!

헤르만 헤세는 소소한 기쁨을 이야기하면서 분수를 언급한다. 분수를 지켜야 소소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내가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가방을 하나 사서 기뻐한다면 그것은 소소한 기쁨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분수에 어긋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처럼 날개가 없다고 안타까워 하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분수를 알기 때문이다. 분수를 알면 안타까움보다 기쁨이 더 가까워진다.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느끼는 것이 분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공감 된다. 내 분수파악을 잘 해야 작은 것에서 감사를 느낄 수 있고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
-크리스마스
우리가 약간의 사랑과 관심을 보내는 모든 하찮은 것은 기쁨과 삶의 의욕으로 우리에게 보답한다. 그러나 우리 중 대다수는 돈에 온갖 사랑과 관심을 바치지만, 돈은 환멸과 빨리 늙는 것으로 우리에게 보답할 뿐이다. 아무리 작더라도 사심없는 모든 헌신, 모든 관심, 모든 사랑이 우리를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삶의 지혜로서 특이하지만 간단한 비밀이다.  ...  권력이나 소유물, 인식이 아니라 사랑만이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은 어디서나 최종적인 지혜이다. 모든 사욕 없는 마음, 사랑에서 비롯된 모든 포기, 모든 적극적인 동정, 모든 단념은 넘겨주는 것이자 체념인것 같지만, 그러한 것은 더 풍요롭게 되고 더 위대하게 되는 것이며, 앞으로 그리고 위로 이끌어 가는 유일한 길이다.
- 자연의 향유
훌륭한 사람은 자신의 가족과 주변 환경뿐 아니라 모든 인간생활과 자연생활과도 친근하다고 느낀다.
- 책을 읽고 소유한다는 것
책을 읽는다는 것은 좋은 독자에게는 낯선 사람의 본질과 사고방식을 알게 되고, 저자를 이해하려고 하며, 그를 될 수 있는 한 친구로 삼으려 하는 것을 의미한다.

단지 심심풀이로만 책을 읽는 자는, 아직 그런 자가 많고 또 그게 최상일지도 모르지만, 독서한 뒤에 읽은 내용을 잊어버려 나중에도 책을 읽기 전이나 마찬가지로 빈곤할 것이다. 그러나 친구의 말에 경청하는 자처럼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책이 그에게 열려 그 자신의 것이 될 것이다. 그가 읽는 것은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고 그에게 남고 그의 것이 되어, 친구만이 할 수 있는 것처럼 그에게 기쁨과 위안을 줄 것이다.
- 독서
생각없는 산만한 독서는 눈에 붕대를 감고 아름다운 풍경 속을 산책하는 것과 같다. 자신과 일상생활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자신의 삶을 보다 의식적이고 성숙하게 다시 단단히 손에 쥐기 위해 독서해야 한다.

-마르틴의 일기에서
사랑받는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행복은 사랑이지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사랑할 수 있는 자는 행복하다. 영혼의 모든 움직임은 사랑이다. 영혼은 그러한 움직임 속에서 자신과 자신의 삶을 느낀다. 그러므로 많이 사랑할 수 있는 자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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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엄마 콤플렉스 - 잘못된 보호가 실패를 두려워하는 아이로 만든다
김지영 지음 / 책들의정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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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엄마 콤플렉스>는 제목만으로 확 끌려 본 책이다.
아들만 하나인 나는 화내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것과 훈육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것을 착각했던 때가 있었다. 훈육이란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확실히 구분해 주고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나는 꼭 화를 내야된다는 생각을 했던거 같다. 이런 나는 책 제목대로 <착한엄마 콤플렉스>에 빠졌던 것이다. 이후로 나는 화내지 않고 단호하게 얼마든지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걸 많은 시행착오로 깨달았다.
단호하다는건 엄마의 의지가 강하게 드러난다는 걸 말한다. 아이들도 엄마가 건성으로 말하는지 의지를 가지고 단호히 말하는지 귀신같이 안다.

  <착한 엄마 컴플렉스>를 받아 보고 나니 책 표지에 '아직 서툰 초보 엄마를 위한 부모 수업'이라고 쓰여있었다. 그 문구를 읽고 나는 어라? 난 이제 초보 엄마 아닌거 같은데. 이건 이제 내가 안 읽어도 되는 책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아들이 10살이 된 나는 왜 초보 엄마란 생각이 안 드는지. 그러고선 다시 생각을 바꾸었다. 11살의 엄마 12살의 엄마 성인의 엄마는 모두 그 나이의 아이를 처음 키워보니 초보일 수 밖에 없다고 말이다.

책 제목의 착한 엄마 컴플렉스,그러니까 무조건 잘 해주고 아이가 원하는 걸 다 들어주는 엄마,  잘못된 보호로 실패를 두려워하는 아이로 만드는 엄마는 착한 엄마가  아니다 라는 걸 주 주제로 다룬 책인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저자가 어떤 상황이나 문제에 대해  자신의 아이와 어떻게 대화하고 해결해 나가는지 많은 조언을 해주는 책이었다. 나처럼 육아서적을 많이 본 엄마들은 아 또 그렇게 뻔한 이야기구나 하고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각성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읽어가는데 역시 어떤 육아책이든 또 새로이 얻는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가장 도움이 된 부분은 <6장- 지적 성장을 이끄는 토론>이었다. 나는 우리 아들에게 가장 잘 가르친 부분이 있다고 한가지만 말해보라면 단연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웠다는 걸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난 뒤에 서로 토론을 나눈 적은 거의 없었던거 같다. 나의 작은 소망은 우리 아들이 커서 고등학생이 되면 지금 내가 참여하고 있는 고전깊이 읽기 독서토론회에 함께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내가 지금 우리 아들이 읽은 책을 같이 읽고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게 바로 토론이 되는게 아닌가!
그러고보니 가끔 우리 아들이 나에게 재미있는 책을 읽고나서 엄마도 읽어보라고 몇 번을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마다 엄마는 암마책 읽기도 바쁘다며 외면했다. 영화를 함께보고 서로 이야깃거리가 생기듯이 책도 같이 보면 또다른 이야깃거리가 생긴다. 
오늘 나는 우리 아들이 재미있게 읽었다는 <양반전>을 읽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이 책에 나온 양반이라면 어떻게 했을지, 내가 천민이라면 어땠을지 등 서로 주거니 받거니 정말 토론을 벌였다. 의외로 아들이 굉장히 좋아했다. 내일 또 다른 책을 읽고 토론하자고까지 했다. 평소 아들이 책을 읽고 나면 (나는 안 읽고는) 그책은 어땠는지 내가 질문을 퍼부을 때와는 완연히 달랐다.

나는 이렇게 <착한 엄마 컴플렉스>를 통해 아들과 또다른 가정 문화를 창출할 수 있었다.

  나는  어떤 육아서적을 읽든 모두 다 실행해보고 따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 각자 키우는 아이들의 연령과 성격,성향은 모두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육아의 전반적인 조언을 얻고 싶다면 <착한 엄마 컴플렉스>를 읽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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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늑대 헤르만 헤세 선집 4
헤르만 헤세 지음, 안장혁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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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황야의 늑대라고 지칭하는 하리할러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그야말로 외로운 황야의 늑대다. 숲속의 늑대와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황야에서 고독과 외로움으로 괴로워한다. 그는 자기 내면에 늑대의 본성과 인간의 본성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네 권째 읽고 나니 어느 정도  공통점을 발견했다.
첫번째 공통점은 등장인물이다. 주인공 옆에는 늘 정신적 지주와같은 혹은 주인공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 늘 등장한다. <데미안>에서는 싱클레어가 온전한 자아를 찾게 된 결정적 영향을 준 데미안이 그랬고, <수레바퀴 밑에> 에서는 한스의 친구 하일너가 그랬고, <싯타르타>에서는 뱃사공이 그랬다.

두번째 공통점은 늘 양극단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밤과 낮, 따뜻한 세상과 차가운 세상, 늑대의 본성과 인간의 본성 등등.

세번째 공통점은 그 정신적 지주와 같은 인물이 죽거나 떠나는 것을 통해 주인공으로 하여금 온전한 자아를 발견하는 상징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결국 헤세는 이러한 양극단을 오롯이 받아들여야 온전한 자아가 된다는 자아발견에 대한 이야기를 늘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황야의 늑대>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주인공 스스로도 자신은 두개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두 가지 본성을 이렇게 정리해 보았다.
무의식-본능-늑대/ 의식-절제-인간.
인간의 본성을 양 극단으로 나눈다면 맞는 말일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헤르만 헤세는 본문 중 에서 '천가지 영혼'을 언급한다. 인간의 본성은 양극단으로 치우친 것이 아니라 천가지나 된다는 말이다. 어떤 일로 행복한 나, 기쁜 나, 열광하는 나, 불행한 나, 화나는 나, 고독한 나, 외로운 나,불안한 나 모두가 '나'라는 한 인간에게로 귀결된다. 이러한 다면적인 나를 우리는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매사에 진지하고 학식을 갖춘 하리할러는 헤르미네란 인물을 만나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동안 해보지 못한 경험들,생각들을 하게 된다. 모짜르트대신 째즈를 듣고, 정적인 생활대신 춤을 추고, 늘 혼자였던 하리할러가 많은 사람들 틈에 어우러져 지낸다. 이건 마치 헤르미네가 늑대소년을 인간세계로 데려와 하나하나 가르쳐 짐승인 늑대소년을 사회화 시키는 느낌이었다.

<황야의 늑대>의 크라이막스는 하리할러가 미친자들만 입장 가능한 마술극장에서 온갖 경험을 하는 대목이다.이 대목은 마치 환타지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그 많은 상상의 세계. 그것은 분명 헤르만 헤세만이 표현할 수있는 것들일 것이다.

헤세는 천가지 영혼을 가진 다면적 자아를 받아들이는 방법으로 유머를 내놓았다.

"자네는 늘 말을 지나치게 비장하게 하는 편이지. 하지만 곧 유머를 배우게 될 거네, 하리,유머의 압권은 모름지기 교수대에 섰을 때의 유머겠지. 그러니 그곳에서 유머를 배우게.
-중략-
자네는 유머를 배워야 해. 자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네. 자네는 인생의 유머, 삶이라는 교수대 위의 유머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네. p.309~310

인생에서 유머를 배우라며 충고하는 사람이 모짜르트인 줄 알았던 하리 할러는 상대가 다름아닌 째즈연주가 파블로라는 걸 알아챈다.

이렇게 헤르만 헤세는 인생에서 유머를 배우라고 말한다. 수년 전 읽은 빅터 플랭클의 <즉음의 수용소>가 떠오른다.  저자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견딜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유머다. 뭇 영화에서도 생사의 갈림길 한 가운데 있는 고조된 긴장감 속에서 유머만큼 사람의 마음을 안심시키고 여유롭게 하는 것도 없다.


언젠가 나는 웃음을 배우게 될 것이다. 파블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차르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ㅡ <황야의 늑대> 마지막 문장.

우리는 살아가면서 파블로같은 자아,모차르트같은 자아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겠다. 더 나아가 천개의 자아를 받아 들여 유머를 잃지 말아야겠다. 그것이 진정 행복하고 여유로운 삶을 사는 지름길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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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2018-04-17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찌보면 산다는 것 자체가 유머인지도 모르겠네요. ˝삶이라는 교수대 위의 유머˝, 고개가 끄덕여지는 조언 같아요. 좋은 리뷰 읽고 갑니다~

rereho 2018-04-26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그러네요. 삶자체가 유머예요ㅡ ㅎ 댓글 달아주시니 감사합니다~^^